생존 - 시즌1 신들의 행성
남근우 지음 / 하움출판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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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 카페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판타지소설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21세기 '대세 문학'은 판타지소설임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독자는 판타지소설을 읽은 적이 없는 상태에서 21세기를 맞았고, 또 '해리포터'(1997~2007)를 읽기 전까지는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은 판타지 소설이 없었다. 내용이 환상보다는 공상에 가깝다는 독자만의 그릇된 인식이었겠지만, 읽으려 해도 도무지 재미가 없었다. 마음 잡고 읽는다 치더라도 수십 페이지를 읽고선 그냥 내팽겨쳤다. 이런 편식(?) 성향은 독자가 고등학교 때 이미 길들여진 것 같다. 다름 아닌 무협소설이다. 무협소설이라면 밤 새워 읽는다는 친구의 권유로 읽기 시작했으나 불과 10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잠들고 말았다. 무협지나 판타지소설 모두 권선징악, 해피엔딩, 정의 실현 등이 주제였다. 너무나 뻔한, 주제와 결말이지만 마니아들은 의외로 많다는 점을 그 친구를 통해 들은 적도 있다. 그들은 자신들끼리 모여 책 안에서 사용된 무술에 대해 논하기도 하고, 정말 진지하게 무협지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화제가 무궁무진하다고도 전해 들었다. 무협지와 오늘날 판타지소설은 다소 다른 점이 있지만, 리얼리즘 입장에서 본다면 황당무계한 공상적 내용에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판타지소설은 21세기 들어 문학계를 뒤흔들었다. 도화선에 해피포터의 조앤 K. 롤링이 불을 붙였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시리즈 발표 10년 동안 전 세계가 해리포터 신드롬을 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로도 제작되고, 이후 쏟아진 판타지소설에도 많은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판타지 문학은 히어로(영웅) 영화와 더불어 최다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른바 '판타지 전성시대'다. 철학자 이정우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대중들의 심리와 그 심리를 파고들어 이익을 남기려는 자본주의, 그리고 이 두 존재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로지와 대중문화의 뒷받침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판타지소설 또는 환상소설에 대한 국내 문학평론가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세계문화사전』(2005)에 쓴 강준만 교수의 「판타지 소설」에 따르면 김성곤은 대중적 환상소설을 ‘저질 문화 쓰레기’라고 비난했으며, 하응백은 ‘문학이라기보다는 활자로 된 신종 문화 산업’으로 규정하면서 그것의 문학적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최강민은 다른 자세를 취했다. 환상소설을 진지한 탐구의 대상으로 삼자는 것이다. 그는 “일반 대중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중적 판타지소설에 대한 평론계의 작업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것은 기존 평론계가 ‘본격문학/대중문학’이라는 이원적 구도에 여전히 갇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중문학에 관심 있는 전문 비평가의 부재가 초래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 판타지소설에 대한 비평적 무관심이 서구중심주의를 확산시키는 데에 일조를 했다는 점에서 평론계의 직무유기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강민은 “우리는 종종 비현실적 환상의 서사에서 당대의 진실을 발견한다. 한국에서 환상소설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는 더 이상 기존의 현실이라는 프리즘만으로 당대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반성적 자각의 소산이다. 상상력의 벽에 부딪친 일부 작가들은 환상을 새로운 상상력의 돌파 수단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문학의 지형을 탐색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디지털 문화를 배경으로 한 가상현실의 롤플레잉게임(RPG)도 환상소설을 유행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강민은 “환상이 구축한 초월적 세계는 무(無)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기존의 현실을 비틀고 찢는 콜라쥬와 몽타주 등에 의해 변용된 세계”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곳은 현실의 규율이 적용되지 않기에 억압된 욕망이 마음껏 탈주하는 해방의 시공간이다. 이런 점에서 ‘환상문학은 문화적 억압이 야기하는 결핍을 보상하려는 욕망의 문학’이다. 환상이 현실에서 억압된 욕망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다는 것은 기존 지배질서와 충돌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환상문학이 현실의 제반 모순을 망각하는 최음제라는 일부의 시각은 그 타당성을 상실한다. 물론 일부의 환상문학이 현실도피와 정체성 혼란을 부추긴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환상문학을 싸잡아 부정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소설 『생존 1』은 저자 남근우가 대하 시리즈로 기획 출간한 첫 번째 책이다. 화성과 지구를 연결하는 대서사시로서 첫 발자국을 뗀 셈이다. 화성에서 시작된 화성인과 지구인의 운명을 넘나드는 웅장한 서사는 신과 생명의 기원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전혀 새롭고 신선한 가설을 바탕으로 펼쳐진다고 출판사 측은 소개한다. "화성과 지구를 연결하는 숨겨진 비밀과 인류의 미래를 함께 상상하고 풀어보는 신비한 작품"이라고 야심찬 기획이라는 것이다.

출판사에 따르면 이 소설 작품은 터무니없는 상상이 아닌, 과학적 공감대 위에 세워진 흥미롭고도 논리적인 가설을 바탕으로 집필된 독창적인 작품이다. 저자는 화성이 지구보다 먼저 문명을 꽃피운 서식 행성이었으며, 대형 혜성 충돌로 멸망했다는 가설을 통해 인류 문명의 기원을 새롭게 해석한다. 또한 화성과 지구 사이의 억만 년 문명 격차가 지구 역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치밀하게 풀어내며, 단순한 상상이 아닌 “있을 법한 이야기”로 독자를 설득한다. 『생존』은 단순히 흥미로운 소설을 넘어, “만약 인류가 화성 문명의 후예라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다시 쓰여야 하는가?”라는 강렬한 질문을 던진다. 과학과 상상,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새로운 우주사를 모색하는 이 책은 독자에게 깊은 여운을 남길 것으로 독자도 기대한다.

우석대학교 전자공학과 맹성렬 교수는 〈추천사〉를 통해 『생존』은 지구에 지적 생명체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 화성에서 먼저 지적 생명체가 등장했다는 매우 합리적인 가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소설에는 최근에야 알려진 놀라운 과학적 지식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남근우 작가의 소설은 이미 8년 전에 탈고되었는데, 화성의 지하 깊숙한 곳에 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제야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맹 교수는 1938년 10월 미국의 연극 연출가 오손 웰스는 CBS 라디오 방송을 위해 아주 실감나는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한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우주전쟁』을 각색한 〈뉴스〉를 연출했다고 언급한다. 이 프로그램은 천문학자들이 화성 표면에서 빛을 감지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지구에 운석이 떨어진다. 이 운석이 화성인들의 우주선임을 알리는 뉴스 속보가 이어진다. 현장에 출동한 특파원은 화성인들이 쏜 광선의 희생자가 된다. 이 방송이 나가는 사이 미 전역에서 큰 난리가 일어났다.(p.8)



이 〈뉴스〉가 너무 실감 나게 연출된 나머지 진짜 화성인 침공이 일어나는 줄로 착각한 많은 시민이 대피 소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웰스의 연출 탓도 있었겠지만 화성에 진짜 어떤 문명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많은 사람의 믿음 또한 이 소동에 크게 기여했을 것으로 맹 교수는 전한다. 1947년 6월 이후 미국에선 UFO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쇄도하며 외계인 침공에 대한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때도 사람들은 1945년 원자폭탄 폭발이 화성인들의 관심을 이끌어 그들이 나타나고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했다. 이는 단지 민간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군 내부에서도 심각하게 고려되었던 사실이이라고 맹 교수는 이야기한다. 

특히 이런 우려를 한 이들 중에 칼 세이건이 있었다고 맹 교수는 지적한다. 이에 따르면 대학교 1학년이던 1952년 세이건은 애치슨 미 국무부 장관에게 편지를 써서 외계인 침공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처방안을 따져 물었다. 1976년 바이킹 계획*에 깊숙이 개입했던 칼 세이건은 착륙선이 화성의 어느 지역에 착륙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었다. 맨 처음 그는 피라미드를 닮은 지형들이 밀집되어 있는 '큐도니아(Cydonia)'라는 곳에서 생명체 발견 확률이 높다고 보고 곳을 착륙장소로 선정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통신 문제 등을 이유로 그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착륙선이 내렸다. 결국 생명체 발견 시도는 무위로 끝났다. 그러나 최근 '큐도니아' 부근에서 인공적인 구조물로 보이는 지형들이 발견되어 여전 화제가 되고 있다. 프랭크 드레이크와 칼 세이건 등이 주도해 SET1 계획이 추진된 시기는 1960년이다. 

먼 우주에서 오고 있을지도 모르는 지적 외계인의 전파 신호를 포착하자는 취지의 이 프로젝트는 50년이 넘었어도 아직 어떤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 하버드대 천문학과 아비 로브 교수 등에 의해 우리 태양계에서 지적 외계인 흔적을 발견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활발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지구 바깥에서 그런 발견이 이루어질 확률이 높은 곳은 화성이다.

* 바이킹 계획 : 화성 탐사 계획. 화성에 생물체의 생존 여부와 지형의 모습, 양극의 극관 모양 등을 탐사했다.(독자 주)



저자 남근우는 〈서문〉을 통해 "우주공상 작품 속 내용에는 수많은 가설과 설정이 존재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공상과학 작품에 대한 특혜인지는 모르겠으나 터무니없는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터무니없는 허구들이 그저 순간적인 흥미거리는 될지언정 실질적인 우주과학에 대한 많은 공감을 얻어내는 데는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생존』을 집필할 때 지금까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합리적이며 공감 가득한 가설에 바탕을 두었다고 밝힌다. 즉 가능할 수 있거나 최대한 공감될 수 있는 상황을 가설화시킨 것이라는 말이다. 이런 형식의 가설로 완성된 작품은 그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으로 저자는 주장한다. 아무리 가설이라도 전혀 터무니없다든지 논리에 역행하고 합리적이지 않는다면 과학소설로서의 큰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은 물론 순간적인 흥미거리 외에는 큰 여운이 남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 작품에서 저자의 가설에 대한 설정은 분명하다. 화성을 모티브로 한 모든 작품 자료를 종합해보면 태양계에서 다른 어떤 행성보다 스토리에 대한 가설의 퍼즐을 완성된는데 화성이 최적이라는 데 있다. 따라서 화성은 지구와 인류의 역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지금까지 화성 관련 작품의 가설들이 자초지종이라는 완성도가 없었으며 내용에 대한 바탕과 뿌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그 바탕과 뿌리는 다음 세 가지로 구분되고 있다. 

① 화성이 대형 혜성 충돌로 멸망했다는 설정의 가설이다. 이는 이미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이지만 이를 통한 스토리 연결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자초지종이 있는 완성된 가설이라는 것이다.

② 화성은 골디락스 존**으로 태양에서의 거리를 바탕으로 지구와 같은 환경이 조성되었던 완전한 서식 행성이었다는 가설이다. 화성은 태양계에서 지구와 함께 유일한 서식 환경이 조성되었던 행성으로 모든 구성 성분이 지구와 같을 수밖에 없어 모든 생명체가 지구 생명체와 거의 동일하다는 가설이 가능한 것이다. 태양계의 암석행성인 지구와 화성의 구성 물질이 거의 동일하다는 것은 이미 세상에 밝혀진 바와 같다. ③ 태초에 불덩이였던 화성은 지구보다 일찍 식어 당연히 생명체가 먼저 생겨나고 지적 생명체 또한 그와 연동하여 유추해볼 수 있다.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 생명체가 존재하기에 적합한 행성의 위치 범위를 뜻하는 천문학 분야의 용어이다.(독자 주)



이 책 『생존 1』은 「시즌 1 신들의 행성」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프리퀄(prequel) 성격이다. 오리지널 영화의 전사(前史)를 다룬 작품이라는 뜻이다. 영화의 프리퀄은 오리지널 주인공의 과거 이야기 또는 오리지널 에피소드에 선행하는 사건을 보여 주어 본편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생존 1』에서는 원시 지구에 지구보다 먼저 문명을 이룬 화성인인 ‘슈카르’와 ‘마야’가 아들 ‘고드’의 첫돌을 맞아 지구로 여행을 온다. 그들이 세운 방어벽인 감마봉에 의해서 지구의 유인원 ‘징카’의 새끼가 죽는다. 이로 인해 복수심에 불탄 징카가 아직 어린 고드를 납치하고, 죽이려 하다가 고드가 ‘어린’ 개체이기에 차마 죽이지 못하고 키우게 된다. 결국 고드는 우두머리가 되어 무리를 이끈다. 이후 돌연변이 개체를 발견한 화성인 탐사대에 의해 죽은 고드의 시체를 화성 최대 의료기관에서 생체 복원 수술과 뇌기능 향상 프로그램을 통해 고드는 다시 화성인으로서의 기억과 지식을 되찾는다. 원래 슈카르가 처음부터 지구에 여행하게 되었던 ‘화성인의 지구 이주’에 대한 도움을 주면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하기까지가 이 책의 큰 줄기이다.

화성인이 지구 이주를 꿈꾼 이유는 그들의 행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던 ‘초대형 혜성 켈리’ 때문이다. 켈리 혜성이 화성과 충돌하게 되면 화성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예측 프로그램을 화성인들은 갖추고 있었다. 물론 ‘고드’가 지구에서 유인원 무리와 지내면서 종족 번성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지구에서의 삶이 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만 큰 흐름은 화성인의 지구 이주이다. 이로 인해 화성이 얼마나 고도로 발달된 문명과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서술된다. 불량 종족인 '도그리온족'과 '버드리아족'의 위협도 존재해 극적 김장감을 높이기도 한다.


화성의 대기권을 빠져 나올 즈음 멀리 뒤로 보이는 화성은 초대형 혜성인 켈리 혜성의 충돌과 함께 거대한 불덩어리로 변하면서 이글거리고 있었으며 혜성 켈리의 엄청난 충돌 폭발로 인한 후폭풍이 고드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마에 흐르는 땀과 시커먼 먼지, 그리고 루이 박사의 핏자국 사이로 한없는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p.423) 


저자 : 남근우


영화, 방송, 드라마, 연극 등 다채로운 경력의 전문가. 전 사단법인 연극배우협회 영상사업국 국장으로 활동하며 연극계의 발전에 기여했고 영화 및 방송 연기자 캐스팅 전문업체인 액터월드와 서울캐스팅의 대표를 역임했다. 특히 KBS VJ특공대 등 주요 TV 방송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공연기획과 연출 및 제작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바 있다. 이를테면, HOT와 유승준 환경 콘서트 같은 대형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했으며, 제1회 전국 청소년 가요제의 기획, 제작, 연출을 맡아 전국 최초의 청소년 가요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기도 했다. 집필한 책으로 『연예인은 자격증이 없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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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유결점
서동주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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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속에는 수많은 좌절과 불안, 흔들림이 존재한다. 괜찮다. 결점이야말로 스스로를 살아있게 하는 결정체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자기만의 빛을 찾아가는 동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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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유결점
서동주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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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완벽한 유결점』의 저자 서동주는 예전엔 '서세원의 딸'로 알려진 인물이다. 지금 그의 이름으로 검색해 보면 "대한민국의 전 코미디언, 배우, 영화 기획자, 목사, 방송인, 부동산 개발 업자" 등으로 나올 정도로 다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한 '만능 엔터테인먼트'이다. 얼마 전 작고한 전유성과 함께 서세원은 몸보다는 말로 웃음을 유발하던 사람이다. 전유성이 진지한 톤에서 황당한 발언으로 웃기는 스타일이었다면, 서세원은 한국인의 어법이나 억양을 교묘하게 비트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독특한 톤을 이용해 웃기는 희극인이었다. 저자 서동주를 이야기하면서 그의 아버지 고 서세원씨를 이야기하는 게 결례인 줄 알지만 서세원 씨가 워낙 거물 엔터테인먼트로 남긴 일이 많아 서두에 끄집어 낼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많은 독자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서동주는 그의 아버지 못지 않은 재능과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인 것 같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인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것인지는 독자로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저자 서동주는 불우(?)한 가정 환경에도 불구하고 MIT와 와튼스쿨, 캘리포니아 변호사라는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방송 출연과 작가 등 재능은 물론 폭발적인 에너지에도 놀랄 만하다. 이 책의 표제어가 시사하듯 그는 환경에서 다소 '결점'을 갖고 있다.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석연찮은 비참한 사망... 그에게 수많은 좌절과 불안, 흔들림이 있었을 거라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세상 일이 다 그렇듯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다시 나타난 저자의 모습은 눈을 다시 뜨고 바라보아야 할 정도로 굉장한 이력을 쌓았다.


저자 서동주의 화려한 이력은 그냥 재주만으로 쌓아 올린 게 아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웨즐리 대학 재학 시절 자매학교인 MIT에서 수학, 과학을 듣고 있었다. 공부만 한 덕에 늘 1등을 했다. MIT에 가을 학기에 편입 원서를 냈는데 떨어져서, 학교 규정상 봄 학기에는 아예 외국인 학생의 원서 자체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일단 원서를 내놓고 학교 입학 관리 본부에 찾아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원서 내는 것만 허락해달라고 빌었다. 

타학생인 서동주 자신이 MIT에서 학점을 잘 받았다고 편지 쓰고 여러번 편지 써서 역사상 처음으로 봄학기임에도 불구하고 편입을 허락했다. 편입이 결정된 날, 입학 관리 본부에서 직접 전화를 주었다는데, "대니엘, 너 정말 집요하다. 붙었으니까 이제 찾아오지도 말고 편지도 쓰지마!" 라고 했다. 대학 입학을 할 때도, 원하는 학교에 다 떨어져서 웨슬리 대학에 갔다가 나중에 MIT로 편입을 했다. MIT-웨즐리여대가 교차수강 되기에 이를 계획하고 입학하는 것은 미국 여대생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편입 전략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대학들은 편입 시험이 없고 정원도 많다. 그렇기에 미국은 재수보다 편입이 흔하다. 미국 대학에서 동양인들이 매우 열심히 공부해서 고학점을 가져가는 것은 매우 유명하다. 많은 유학생들도 이에 대해 말했다. 특히 이과 쪽은 백인들이 따라 갈 수가 없다. 미국에서는 동양인=수학을 잘 한다는 인식이 있다. 

미국인들은 자신이 엄청 뛰어나지 않은 이상 대부분 공부보다 인맥(네트워킹)을 쌓는데 집중한다. 연구는 안 할 것이니 공부보다 인맥이 있는 게 취업에 훨씬 수월하다. 해고 당해도 재취업할 때 굉장히 용이하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학점, 자기소개서에 "3000자 이상 쓰는 질문 5개 이상" 이런 기업은 거의 없고 자유양식이다. 이력서 사진부터도 인종차별이라 첨부를 못 한다.



저자는 전작 『샌프란시스코 이방인』을 출간한 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생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분명히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믿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중간에 주저앉을 수가 없는 이유로 '끊임없는 노력'이라고 말한다. 포기한다면 거기에서 영화가 끝나니까. 그런 그가 어렸을 때부터 써오던 일기를 19년 동안이나 쓰지 않았다고 한다. “아빠가 내 일기를 허락 없이 읽고 그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걸 증거로 나를 혼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뒀다”고 털어놓는다.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상처들을 감당하기 힘들어” 숨을 토해내듯 써내려갔다. 그 글들이 모여 『샌프란시스코 이방인』이 됐다고 설명한다. 

오랜 시간 서동주는 ‘누구누구의 딸’로서 비쳤다. 『샌프란시스코 이방인』 안에서 그 수식어는 뒤로 물러나고 ‘서동주’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 속으로 스며든다. 서동주가 지나온 시간, 지금의 서동주를 이루고 있는 것들, 그 수많은 조각들 중 하나다. 

“읽어보시면 저라는 사람하고 (독자들이) 겹치는 접점이 많아서 놀라실 것 같아요.” 서동주는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이방인』 속의 서동주는 외로웠고, 치열했고, 사랑하고 싶었고, 꿈을 찾고 싶었다. 도전했고, 실패했고, 다시 도전했다. 결코 낯설지 않은 이야기였다. “더럽고 어두운 비밀 하나쯤” 안고 살아가는 모습까지도. 왜 이토록 힘든 말들을 꺼내놓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는 ‘위안’을 말할 것이라고 인터뷰 내용에도 나와 있다.

전작 『샌프란시스코 이방인』의 〈프롤로그〉를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인생관을 고백했다. "세상이 던져 대는 돌은 막을 수도 없고 상처 입기 마련이지만 그 상처가 나의 전부가 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살아감에 있어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아파하며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꿈을 꿀 것인가. 나는 꿈을 꾸는 쪽을 선택했다. 인생은 마음대로 제어되지 않더라도 내가 꿈꾸며 살아가는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도 아프더라도 다시 꿈을 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길을 내가 같이 걸어가 주고 싶다."


『완벽한 유결점』을 펴낸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동주의 모습을 담았다. "흔히 우리는 흠 없는 완벽함을 꿈꾼다. 하지만 삶의 궤도는 애초에 매끄러운 원이 아니다. 수많은 미세한 흔들림과 균열 속에서 우리는 방향을 잃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기도 하며, 그렇게 자기만의 궤도를 만들어 간다. 『완벽한 유결점』은 바로 그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서도 서동주는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꺼내 놓는다. 로펌에서 “넌 게으른 거니, 아니면 멍청한 거니?“라는 말을 듣던 순간의 치욕, 방송과 사회 속에서의 왜곡된 시선, 가족사에서 비롯된 깊은 상처,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느낀 두려움까지 일시에 몰려들었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자신의 인생 역정에는 수많은 질타가 있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은 누군가의 완벽한 성공담이 아니라, ‘흔들리고 무너졌지만 다시 일어난’ 이야기다. 저자는 말한다. “걱정은 암세포 같다. 방치하면 온 뇌를 통째로 잠식한다.” 그렇기에 걱정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완벽해지려는 강박이 아니라, 일단 작게라도 움직이는 것이다. 시작이 두렵더라도, 실패가 따르더라도, 흔들리더라도 괜찮다. 그 결점이 오히려 자신을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완벽함은 언제나 흠집 없는 표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견디고 살아낸 흔적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더 단단하고 빛나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는 설명과도 맞닿아 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새로운 요구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우리에게 가장 깊은 위안을 건넨다. 이 책은 자기 삶의 결핍과 상처를 인정하고, 불완전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법을 알려준다. 불완전한 삶 속에서도 빛을 찾을 수 있음을 보여주며,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무엇인지 깊이 사유하게 만든다.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조금 더 애를 쓰면 결과는 늘 성장이란 보상을 주기 마련이죠.”



삶은 늘 예상치 못한 변수와 균열로 가득하다. 하지만 균열은 무너짐이 아니라 빛이 스며드는 틈이 되기도 한다. 저자 서동주의 문장은 바로 그 틈을 증명한다. 고통을 숨김없이 기록하면서도, 그 속에서 작고 단단한 희망을 길어 올리는 글.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한 사람의 자전적 기록을 넘어, 흔들리며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거울이 된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결점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완벽한 유결점』은 그 사실을 가장 우아하고 단단한 언어로 증명하는 책이다. 삶의 무게 앞에서 지치고 흔들린 이들에게, 이 책은 진지한 위로이자 실질적인 동행이 될 것이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더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이 전하는 가장 큰 선물이다.

방송인 이혜성은 〈추천사〉에서 저자 서동주의 '삶의 용기'를 전한다. "사람들은 흔히 흠결 없는 모습에서만 사랑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서동주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른 길을 보여줍니다. 작은 상처와 결핍이야말로 인간을 더 깊고 따뜻하게 만들며, 그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아름다움이 자라난다고 말이지요. 『완벽한 유결점』은 꾸밈없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 그리고 흔들림 속에서도 끝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힘을 전합니다. 방황은 실패가 아니라, 원하는 삶에 다가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임을 이 책은 차분히 일깨워 줍니다. 결점 때문에 때로는 멀리 돌아가더라도, 결국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더 단단하고 더 빛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은 고요하게 속삭여 줍니다."


삶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소소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기에 더 아름답고, 더 소중하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늘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중요한 건 그걸 알아차리고, 마음껏 누리는 것. 오늘 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선택이다.(p.200~201) - 「행복은 작고, 그래서 진짜다」 중에서


앞으로의 삶에서도 완벽한 설계도는 없을 것이다. 예산을 넘기고, 시간은 어긋나고, 생각지도 못한 균열이 생기면서 지붕이 무너지는 큰 사건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나는 확실하게 안다. 


무너진 벽도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것. 

어긋난 계획도 다시 그릴 수 있다는 것. 

작은 집도 마음만 있다면 

삶으로 부족함 없이 채울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내가 만든 이 집에서 

나를 조금씩 다듬어간다.(p.238) -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 서동주


미국 캘리포니아 변호사이자 방송인, 그리고 작가. 퍼킨스 코이(Perkins Coie)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해 현재는 딥테크 기업의 법률 이사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길은 언제나 직선이 아니라, 수많은 굴곡과 질문들로 이어져 있었다. 열세 살, 혼자서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부터 그는 늘 스스로 길을 개척해 왔다. 웰즐리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며 예술적 감각을 키웠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서 수학을 탐구하며 사고의 깊이를 더했다. 와튼스쿨에서 마케팅 석사 학위를, 샌프란시스코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 과정을 마치며 학문의 지평을 넓혔고, 마침내 2019년 캘리포니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수십 번의 서류 탈락, 크고 작은 불합격은 그를 좌절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든 경험이 단단한 힘이 되어 지금의 서동주를 만든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도전을 즐기는 태도, 그것이 그의 이름을 가장 잘 설명하는 언어다. 삶은 늘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오가지만, 그는 그 길 위에서 웃고 울며, 다시 글로 기록해 왔다. 저서로는 《샌프란시스코 이방인》, 《내일의 나를 위한 다짐》, 《서동주의 합격 공부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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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의 초상
주요한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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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 200%의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1979년 10월 26일을 잊었을지 모른다. 혹시 기억한다 해도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듯하다. 얼마 되지 않은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통령 암살이기 때문이다. 때는 엄혹한 '유신 정권'이라 불리던 대통령 박정희 18년 독재가 막을 내린 날이기도 하다. 이 소설 작품 『10·26의 초상』은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자 타임슬립으로 가능한 SF 소설이다. 그리고 누구도 기록하지 않은 역사 속 퍼즐을 맞춰 가는 장편 소설이다. 시대를 초월해 이 사건은 묘하게도 일년 365일 중 10월 26일에 일어난 우리나라 우리 민족에게 있어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1597년 명량해전에서 나라를 지킨 이순신, 1909년 하얼빈역에서 제국의 심장을 겨눈 안중근, 1979년 궁정동 안가에서 대통령을 향한 총성이 울린 그날. 모두 10월 26일에 벌이진, 대한민국 역사 속 사건들이다. 

그날을 향해 저자 주요한이 시간 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세 개의 시대가 조용히 맞물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10월 26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하는 것 같다.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10·26의 초상』은 한반도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단 하나의 날짜, 10월 26일을 중심축으로 한 시간 미스터리 서사다. 앞서 언급한 세 사건은 우리 역사 교과서에 기록된 ‘사실’이지만, 이 소설은 그 틈과 이면,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상상 가능한 가능성을 탐색한다. 주인공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이미 흐르는 역사의 시간 속에 떨어진다. 그리고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도우려는 작은 선택들이 서서히 거대한 그림 속 조각처럼 맞춰지기 시작한다. 이 특파원들이 등장인물 '쉬리' '괴도 버드' '나리' 등이다.



표제어에 들어 있는 날짜 10월 26일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 일어난 일로 각인되어 있다. 임진왜란·정유재란 시 이순신의 명량대첩의 순간도 당시 음력으로 날짜를 기록했기에 나중에 양력으로 변화시켜보니 10월 26일이었다고 저자는 책 속에서 등장 인물의 입을 빌려 밝힌다. 또 만주 하얼빈에서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식민지화한 일본 초대 내각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살해한 날 역시 10월 26일이었다. 이때는 아마 일본군이 태양력을 쓰고 있어 양력 기준으로 신문이고 법원 날짜가 양력이었기에 그대로 쓰면 될 일이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저격 장면은 연극·영화를 통해 자주 봐온 일이기에 쉽게 머릿속에 저장하기 쉽다. 또 역사적, 지리적 배경도 이미 많은 '팩트 체크'가 이루어짐으로써 객관화되어 있다. 안중근은 블라디보스톡에서 1909년 10월 『대동공보』를 읽고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대장성 대신 코코프체프와 협상을 벌이기 위해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안중근은 동지 우덕순 및 통역 유동하와 10월 22일 하얼빈에 도착한 후 지형정찰을 하고 자신이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안중근은 코코프체프의 안내를 받으며 도열한 의장대를 사열하던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발사하여 그의 가슴과 옆구리와 복부에 명중시켰다. 그리고 그는 큰 소리로 “코레아 우라(대한국 만세)”를 삼창했다. 안중근의거는 일제의 한국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린 쾌거였으며, 침체되어 있던 항일운동을 다시 활성화하는 기폭제였다.

이순신의 '명량대첩'은 정유재란 때인 1597년(선조 30) 9월 16일(음력) 이순신이 명량(울돌목: 전라남도 진도와 육지 사이의 해협)에서 일본 수군을 대파한 해전을 말한다. 이 해전의 승리로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10배 이상의 적을 맞아 협수로의 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그들의 서해 진출을 차단함으로써 정유재란의 대세를 조선군에게 유리하게 전개할 수 있게 하였다고 역사서는 기록하고 있다.



'10·26 사태'라고 불리우는 대통령 박정희 시해 사건은 1979년 10월 26일 밤 7시 40분경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安家)에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金載圭)가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를 살해한 사건을 가리킨다. '십이륙사건'·'십이륙정변'·'박정희대통령시해사건' 등으로 불린다. 이 사건으로 유신체제는 막을 내렸다.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는 18년간 권좌에 있으면서 1인 집권의 권위주의를 계속 강화해 나아갔다. 특히 헌정 질서를 파괴하면서 1972년 10월에 등장한 유신체제는 억압적인 비민주적 정치를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1970년대 후반으로 넘어 오면서 그 동안의 정치·경제적 모순들이 폭발하기 시작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경제적으로는 중화학공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로 상황이 악화되어 있었다. 중화학공업화의 추진은 이 부문에로의 중복, 과잉 투자로 인한 효율성 상실과 소비재 품목 품귀라는 이중의 문제를 야기했다. 이는 곧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었는데, 1979년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한국경제의 고성장 전략 추진과정에서도 그 유례가 없는 18.3%에 달하였다. 고도성장으로 1인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보상받으려 했지만 독재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민심은 체제로부터 등을 돌렸다. 또한 수출주도형 공업화에 의한 고도성장 전략은 노동자와 농민의 상대적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었는데 경제 위기의 심화 과정에서 이들 계층의 소외감도 점차 심화됨으로써 그들의 생존권 요구도 거세어졌다.

대외적으로는 1977년에 출범한 미국의 카터(Carter, J.) 행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군철수라는 카드를 이용해 한국의 인권상황을 개선하려 하였으나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거부해 한·미간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또한 박정희는 자주국방을 달성하기 위하여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시도하면서 미국을 자극하였다. 이에 '박동선 사건'까지 겹쳐 한·미관계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달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야세력과 야당은 반 독재 민주화 운동과 민중의 생존권 투쟁을 계속 전개해 나갔다. 1972년 유신체제 출범부터 긴급조치와 계엄, 재야인사의 구속 등이 계속되었으나 민주화의 방향을 거스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특히 1978년과 1979년은 정치·경제적 모순이 정치적 위기로 연결된 시기였다.



1978년 동일방직사건과 함평고구마수매사건 등의 생존권 투쟁은 민주화 운동의 수준을 급격히 고양시킨 사건이었다. 그 해 12월 12일의 제10대 국회의원총선거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32.8%의 득표율을 올려 여당인 공화당의 득표율 31.7%를 앞지르게 되었는데 이는 민심의 이반 현상이 표출된 사례인 것이다. 이에 집권여당은 위기감을 가지게 되었으므로 극단적인 강경 대응 이외에 여타의 대응책을 찾지 못하였다.

1979년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오원춘 사건은 유신정권과 가톨릭 세력의 정면충돌을 야기시켰다. 1979년 8월의 YH사태는 이전의 노동소요가 절정에 이른 사건이었다. YH무역은 소규모 수출 업체로서 사장이 체불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미국으로 도피한 상태였다. YH노조의 여공들은 자신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당시 김영삼 총재하에서 유신정권에 대한 강경 투쟁을 전개하던 신민당사로 들어가 농성을 벌였다. 경찰은 8월 11일 여공들을 강제로 해산시키기 위해 당사내로 진입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여공 김경숙이 건물 옥상에서 투신해 사망하였다. 이에 대해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는 사인은 경찰의 과잉진압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YH사태는 소규모의 비체제적인 노사갈등에 불과하였으나 정권에 대한 도전이 조직화되는 상황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일종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야당을 비롯한 전 민주화운동세력과 유신정권 사이의 첨예한 대립을 야기시켰던 것이다. 김영삼은 유신철폐의 선명한 기치를 내걸어 중도통합론을 표방한 이철승을 1979년 5월의 전당대회에서 누르고 신민당의 새로운 대표로 등장하였었다.

김영삼은 박정희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였고, 외신기자클럽 회견에서 통일을 위해 김일성을 만날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정부는 이에 김영삼의 축출을 기도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신민당 대의원 2명이 전당대회 당시 투표권이 없음을 선언하였고, 김영삼의 정적인 이철승계의 인물들이 전당대회 결과의 무효를 제소해 법원은 김영삼의 총재직 박탈을 결정하였다.



국회는 더 나아가 김영삼의 9월 16일자 〈뉴욕타임스〉지 회견 내용이 국가를 모독했다는 이유로 10월 4일 그의 국회의원직까지 박탈하였다. 결국 정부는 야당까지도 제도권 정치의 틀 밖으로 내모는 형국을 초래하였다. 그 동안 쌓였던 국민의 불만이 김영삼 출축을 계기로 폭발하였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창원 등지에서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것이 유신체제의 종말을 초래하였던 부마항쟁으로서 이 지역은 김영삼 총재의 근거지이기도 하였다. 10월 15일의 시위는 부산대학교의 학생시위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날의 시위는 주동자들이 연행됨으로써 확산되지 못하였으며, 본격적인 시위는 16일부터 이루어졌다. 16일 교내에서 집회를 가진 부산대 학생들이 시내로 진출하였고, 이에 동아대·고려신대, 고등학생, 전문대생 등의 학생에다가 일반시민까지 가세하였다.

3,000여 명의 시위대는 게릴라식으로 경찰과 충돌하였고 자정에 이르도록 격렬한 시위를 계속하였다. 17일에는 부산대에 휴교령이 내려졌으나, 날이 어두워지면서 시위는 더욱 확산되었다. 시민들의 호응 속에서 시위군중은 경찰서·파출소·세무서·동사무소·신문사·방송국 등에 투석하였다.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16일부터 17일 이틀 동안 경찰차량 6대가 전소되고 12대가 파손되었으며, 21개 파출소가 파손 또는 방화되었다. 18일 자정에는 부산시 일원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공수부대 등의 군병력이 투입되어 시위군중을 진압하였다. 18일에는 경남·마산 일원으로 시위가 확산되었다. 경남대에 무기휴교령이 내려진 가운데 오후 6시경부터 시작된 시위는 곧 2,000명의 시위군중을 이루어 공화당사를 공격하고 파출소·신문사·방송국·법원·검찰청·동사무소 등에 피해를 입혔다. 19일 밤에도 마산·창원 지역에 이러한 사태가 계속되자 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을 발동하였다.

박정희의 퇴진을 요구한 정권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던 부마항쟁은 강경진압에 의해 일단 해결되었으나 그 대응 방식을 둘러싼 집권층 내부의 갈등을 야기시켜 10·26사태를 발생시켰다.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은 부마항쟁에 관한 강경진압을 주장하였으며,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이었고 양인은 서로 경쟁적인 입장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차지철의 입장을 수용해 강경진압을 채택하자 차지철의 견제로 진퇴위기에 몰린 김재규가 10월 26일 만찬 도중에 박정희와 차지철을 살해했다.



10·26 사태 직후 최규하 과도정부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으며 10월 말 군부 고위층은 유신헌법의 폐기를 결정하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유신체제가 무너졌으며, 전두환 정권이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미국은 10·26 사건을 사전에 알지 못하였다고 주장했다. 10·26 사태는 유신체제를 무너트린 획기적인 사건이었지만 김재규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민주화를 위한 의거’는 아니었다는 게 법적 결론이다. 이전부터 민주화를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것이 아니었던 김재규가 의거 운운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하여 서둘러 만들어 낸 사후 명분에 불과한 것이라는 게 당시 법조계의 판단이었다. 또한 김재규와 그 하수인들인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조직적으로 가담하기는 하였지만 치밀하게 계획된 것은 아니었으며 차지철과의 개인감정이 표출된 우발적인 범행으로 볼 수도 있다.

김재규는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와 사전 모의는 하지 않았으며 단지 ‘거사 후 연대’를 시도하기 위해 10·26 당일에 궁정동 안가의 별실에 초대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승화는 연대를 거부해 쿠데타로 진행되지는 못하였으며, 결국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가 집권하는 빌미를 만들어 주었다. 10·26사태로 민주화가 되기보다는 권위주의 통치가 연장되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시해는 박정희의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었다는 김재규의 명분론에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시해하였다는 것도 동양적인 유교 윤리에 벗어나는 것이었다.

후속 정권도 이러한 역사적 선례를 용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김재규 일당은 사형되고 10·26 사태에 대한 법적 심판은 일단락되었다. 법적 심판은 그렇다하더라도 역사적 평가는 다를 수 있다. 10·26 사태의 마무리 과정에서 12·12 사태가 일어나는 등 민주화가 지체되기도 하였지만 10·26 사태 자체는 민주화를 요구하였던 부마항쟁으로 촉발되었고 보다 장기적으로는 유신체제의 붕괴와 군부독재 종식의 한 계기가 되었다는 차원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주요한


주요한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조용히 사람과 시간을 응시하는 사람이다. 10년 넘게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생과 사의 최전선에 있었던 그는, 그곳에서 길어 올린 삶의 감각을 단단한 문장으로 옮긴다. 첫 소설집 《노량진 학원 살인사건》에서는 밀실과 진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 추리를, 《호랑이, 백두대간의 울음》에서는 인간과 동물, 문명과 자연의 경계를 탐색했다. 장편 《10.26의 초상》은 시간여행이라는 서사 장치를 통해 이순신과 안중근, 10.26 사태, 그리고 21세기 한국 사회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폭력과 기억, 선택의 문제를 다층적 구조로 직조하며, 개인과 역사,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그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는 늘 생각해 왔다. 왜 대한민국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는 탐정도, 괴도도 좀처럼 등장하지 않을까. 그래서 써보기로 했다. 한국의 역사 속을 걷는 인물들, 그들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추적하고 경계를 넘는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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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예수의 언어 - 영원불멸의 고전에서 길어올린 삶의 지혜와 진리의 가르침
김학철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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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초역 예수의 언어』는 예수의 가르침을 종교적 틀에서 벗어나, 그가 살았던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 비추어 오늘날의 삶 속에서 새롭게 해석했다. 국내 최고의 종교학자 김학철 교수가 예수를 단순한 종교적 인물이 아니라, 한 인간이자 지혜로운 스승으로서 조명하며, 그의 언어 속에 담긴 실존적 통찰과 인문학적 가치를 되살렸다. 이 책은 네 복음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전해지는 예수의 언어를 통해 삶의 방향과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하루 한 장씩 곱씹으며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이 책은 단순한 문자적 번역을 넘어 독자의 마음에 성찰의 씨앗을 틔우도록 이끈다. 예수의 언어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삶의 갈증을 풀어내는 길을 제시하며, 종교적 신앙을 넘어 누구에게나 통찰과 용기를 건네준다.

저자 김학철은 「그대들은 무엇을 찾고 있나요?」란 제목의 〈서문〉에서 「마태복음」 등 네 복음서에 대한 설명으로 말문을 연다. 이에 따르면(존칭어를 예삿말로 전환: 독자) 예수의 말만 모은 초기 기독교 책들이 있다. 정경(正徑)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도마복음서」, 「디다케」 등이다. 또 「마가복음」에는 없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통으로 나오는 예수의 말씀 자료, 흔히 'Q(자료라는 독일어 Quelle에서 온 것)'라고 부르는 자료가 있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그러나 지금 정경에 속한 네 복음서에서 예수의 말은 대부분 이야기 속에 있다. 맥락을 갖는다는 뜻이다. 예수의 말이 전해지다가 거기에 이야기가 덧붙여졌고, 그것이 복음서에 수록되었는지, 아니면 예수의 말만 있었는데 복음서 저자가 그 말을 중심으로 이야기로 확장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니면 예수의 말이 포함된 이야기 전체가 전승되어 복음서에 들어왔을 수도 있다. 그 과정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복음서에 나온 예수의 말은 대부분 이야기 속에 나온다. 

이야기 속에서 예수의 말만을 따로 떼어 번역해 달라는 출판사의 제안에 잠시 머뭇거렸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러나 초역(超譯)이라면 상황은 다르다고 저자는 말한다. 초역은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말이 속한 이야기 맥락은 물론 역사, 사회, 문화적 맥락을 감안하여 문자를 넘어선 과감한 번역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문자적 번역'과 '초역'의 다른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자신이 왜 초역을 했는지를 독자들이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이 이야기 속의 맥락을 잡아낸 것이라는 점이고, 문자적 번역과의 다르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또 한 모임에서 '초역 예수의 언어'를 쓰고 있다고 알리면서 한 첫 번째 말의 초역을 들려주었다고 말한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언을 했다. 거기에 서 있던 요한의 제자들 가운데 두 명이 과감히 요한을 떠나 예수를 좇아갔다. 예수는 자신을 따라오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을 보고 '그대들은 무엇을 찾고 있나?'라고 묻는다. 이것이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첫 말이다. 그리고 그 한 문장을 이렇게 초역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그대들, 그대들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의식주가 해결되기를 바라는가? 안전을 바라는가? 돈과 명예와 권력을 원하는가? 자기 삶이 실현되기를 바라는가? 그대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대들이 나를 따르고자 할 때 그대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그 욕망은 무엇인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심연에 놓인 그 욕망은 무엇인가?'"(p.7)

저자가 초역 과정의 한 부분을 들려주자 모임에 참석한 한 분이 "미드라쉬로군"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유대인들에게 오래전부터 있었던 성서 주석 방법인 미드라쉬가 초역과 닮았음을 새상 깨닫게 되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미드라쉬는 히브리어 동사 '다라쉬'에서 온 말로, '찾다', '연구하다', '해석하다' 등을 뜻한다. 현재의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성서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미드라쉬 문헌은 2세기 것이니까 최소한 1,800년 이상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예수가 2,000년 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건넨 일상의 조언부터 삶을 건 결단의 요청까지 오늘날 이해할 수 있는 교훈적 의미로 되살리려 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또 이른바 실존적 함의 를 드러내려고도 했다. 가끔은 오래전에 읽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처럼 쓰려고도 해보았다. 이런 저런 방법을 심사숙고해 결정한 것이 이 책에 활자로 나타난 것임을 저자를 밝힌다. 이에 따라 가급적 하루에 하나씩만 읽기를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이 책은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성찰의 씨앗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모두 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마음 고쳐먹기〉, 2장 〈생각 다시 하기〉, 3장 〈인생 새로 보기〉 등이다. 네 복음서에 담긴 예수의 말을 모아 세 축(3장)으로 엮었다. 각 구절은 단순한 교리의 지침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본질적인 물음이다. 복음서에 담긴 예수의 말들은 종교적 맥락을 넘어 일상에서 바로 실천 가능한 지혜라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한글로 읽는 성경은 기독교인들이라면 세 가지 원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쯤은 잘 알 것이다. 독자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아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구분에 대해서도 잘 모를 정도로 문외한이다. 다만 그동안 영상이나 몇 권의 책을 통해 지식으로서의 성경의 겉만 조금 알 뿐이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사전 공부로 백과사전을 통해 성경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았다. 사전에 따르면 성경의 언어는 세 가지로 기록되었다. ① 『구약성서』는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되어 있다.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언어로서 구약성경 대부분은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창세기, 에스라, 예레미야, 다니엘서의 일부에서 아람어가 사용되고 있다. 고대 히브리어는 성경에서 ‘유다 방언’(왕하 18:26; 느 13:24; 사 36:11) 또는 ‘가나안 방언’(사 19:18) 등으로 불린다. 특히 ‘가나안 방언’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살면서 가나안 사람들의 언어를 자신들의 언어로 만들어 사용한 것이 히브리어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된 이후(B.C. 586년경) 히브리어는 주로 문서 등 문어체로 사용되고, 일상 생활에서는 대부분 아람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라를 잃고 뿔뿔이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들은 점차 히브리어를 잃어버려 성경을 읽기도 어려웠다. 이에 따라 70명(정확하게는 72명)의 유대인 학자들이 애굽에 있는 지중해 연안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모여 각처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헬라어로 된 구약성경을 번역하게 된다. 이 성경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셉투아긴타’(Septuaginta, ⅬⅩⅩ)이다. ‘셉투아긴타’는 라틴어로 70을 뜻하는바, 성경 번역 학자들이 70명인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② 『신약성서』는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광대한 헬라 제국은 지중해 연안을 비롯하여 소아시아, 애굽, 인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에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헬라어는 대부분 나라에서 공용어처럼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이 헬라어 중에서도 보편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쓰고 읽는 ‘코이네’로 기록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코이네는 헬라 사회에서 대단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 수준 높은 고급 언어는 아닐지라도 모든 사상을 충분하게 전달하고 문법 체계가 단순하며 가장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여 복음 전파에 아주 유리한 특징을 갖고 있어 신약성경의 언어로 채택된 것 같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은 장(章)과 절(節)로 구분되어 있다. 하지만 성경이 처음부터 장과 절로 구분된 것은 아니다.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과 헬라어로 된 신약성경은 원래 장과 절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여기에 장(章) 구분을 한 최초의 인물은 영국 캔터베리(Canterbury) 대주교인 스티븐 랭튼(Stephen Langton, 1150-1228)이다. 이것을 영어성경에 최초로 적용시킨 사람은 영국 종교개혁자 위클리프(Wycliffe)로서 ‘위클리프 영어성경’(John Wycliffe’s Version, 1382)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절(節)을 최초로 구분한 인물은 프랑스 궁정인쇄사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로 그는 1551년 헬라어 신약성경에 처음으로 절을 구분하고 그것을 인쇄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적용시킨 최초의 영어 신약성경은 『제네바 성경』(Geneva Bible, 1500)이다. 하지만 이렇게 장과 절을 구분하는 것은 성경본문을 인용하기에는 아주 편리하였지만 때론 인위적으로 끊거나, 문법 체제에 맞지 않게 잘못 끊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폐단도 있었다. 그리하여 절 구분을 하지 않고 이전의 절 구분을 난외주로 처리한 성경이 나왔는데 곧 NEB(New English Bible, 1961-1970)가 그것이다. 한글성경의 장과 절 구분은 전통적으로 영어성경의 장과 절 구분법을 따른 것이다.

이 책 『초역 예수의 언어』는 『신약성서』를 텍스트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 탄생 이후는 『신약성서』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네 복음서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등은 『신약성서』에 포함되어 있다. 철학사전에 따르면 『신약성서』는 일종의 고대문헌으로 간주하는 한 단일문서가 아니며 저자, 성립한 시기, 장소 등도 다양한 27개나 되는 여러 문서의 집성이다. 저자 문제는 복잡해서 동일 저자에 귀속될 수 있는 것도 몇 개 있지만(누가, 파울), 저자가 분명치 않은 것도 많다. 또 복음서 저자는 전승(傳承)을 편집한 사람으로 볼 수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저자는 아니다. 성립시기는 기원전 50년경부터(데살로니카인에게의 제1편지) 2세기 중반경 것(「베드로의 제2편지」)까지 포함되어 있다. 성립장소는 대부분 명확치 않지만 팔레스티나를 중심으로 해서 고대 지중해 세계에 분포되어 있다고 추정된다. 이들의 문학 유형도 다양해서 복음서, 서간, 묵시문학 등으로 나뉜다. 더욱이 서간이라 해도 구체적인 상황과 연결되어 있는 것, 또는 일반적인 성격의 것도 있다.



또 「사도행전」은 역사서라기보다 오히려 「누가에 의한 복음서」로 이어지는 일종의 복음서라 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신약』은 『구약』과 함께 「경전」, 즉 교양과 신앙생활의 기준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신약』에 담긴 여러 문서는 반드시 처음부터 경전을 의도하고 씌어진 것은 아니고, 또 이들 외에도 같은 종류의 여러 문서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 문서들에서 현재의 경전을 뽑아내고, 그 외를 「외경」이라고 한 것은 최종적으로 4세기의 교회였다.

당시 교회는 『신약성서』는 전체가 하나의 기준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역사적 비판적 방법에 기초한 연구는 『신약』에 담겨져 있는 각종 문서에 있어서는 성립사정이나 문학 유형뿐만 아니라 사상도 다양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전 이외의 각종 문서의 연구로 이들 사상이 각기 특정 사상조류에 속하고 있는 것도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신약성서』로서의 사상을 구하는 입장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우에도 그 내부의 사상의 다양성은 인식되어진 위에 통합을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종래 대잡파(大雜把)로 파악되어온 기독교사상은 개개의 문헌으로 재음미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 김학철에 따르면 예수는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을 걸었던 한 인간이자, 동시대를 살아간 이들에게 직접 말을 건넨 존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의 말은 종교적 해석과 전통 속에서 여러 겹의 의미로 덧입혀졌다. 저자는 그 겹겹의 해석을 걷어내고, 문자 그대로의 번역을 넘어 오늘의 삶과 맞닿은 초역(抄譯)으로 다시 풀어냈다. 초역은 단순히 단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지금 우리의 삶에 울림을 주는 언어로 되살리는 일이다.

예수의 언어가 이토록 위대한 이유는 모든 이를 일깨우는 참된 지혜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예수의 한마디 한마디는 특정 종교에 속한 사람들만을 위한 말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성찰할 수 있는 삶의 원리로 이어진다.



예수의 언어는 시대를 넘어 오늘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고, 우리 각자가 마주한 현실 속에서도 깊은 울림을 던진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은 교리를 따르기 위한 성경 해설서가 아니다. 신앙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예수를 절대적 존재라기보다 삶을 성찰하게 하는 멘토이자 길잡이로 바라보며, 그가 전하려 했던 생생한 메시지를 오늘의 자리로 불러온다. 저자는 예수의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어 우리 내면 깊숙한 갈증을 비추는 거울로 삼는다.

"내가 미리 말해둘 것이 있습니다. 내가 떠난 후 그대들은 지역 회당에서 쫒겨날 겁니다. 회당에서 주도권을 잡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박해하고 그대들을 죽이려고 할 겁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고, 그분에게 제물을 드리려는 것으로 생각하겠지요.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하느님을 거스르면서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착각하다니요. 그러니 그들은 하느님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고 할 수 있지요. 내가 미리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은 그대들이 이 박해 때문에 흔들려 스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요. 고통의 때가 왔을 때 낙심하지 마세요. 악을 행하면서 선의 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어디든지 있기 마련입니다.(p.222) - 「요한복음」 16:1-4 - '하느님을 위한다는 착각' 중에서

저자 : 김학철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연세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 소장, 한국기독교교양학회 부회장, 한국신약학회 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신약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기독교 교양을 학문의 주제로 삼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 교양학 및 신약성서를 주제로 한 수십 편의 논문 외에도 《허무감에 압도될 때, 지혜 문학》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 《마태복음서: 고전으로 읽는 성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기쁨: 사도 바울과 새 시대의 윤리》 《렘브란트, 성서를 그리다》 《손으로 읽는 신약성서》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세바시〉, JTBC 〈차이나는 클라스〉, CBS 〈잘잘법〉, 〈삼프로TV〉 등 방송과 유튜브에 출연해 성서와 기독교 교양을 소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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