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대혼돈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하대혼돈』은 이 책의 제목이자 중국의 마오쩌둥의 지혜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대학 다닐 때 군사정권이 금서로 지정한 것을 몰래 읽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 같아 저으기 망설였다. 그때는 두려움이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하여 두려움보다는 '생각의 혼란'이 줄 사고 체계의 붕괴가 걱정된 것이다. 만일 마오쩌둥의 지혜라면 마땅히 공산주의 이론일 것이고, 그가 중국을 통일하고 옛날 '황제'처럼 군림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독자의 생각은 부정적인 게 많다. 문화대혁명도 그런 부정적 인식을 가중시켰다. 등소평이 자본주의 경제를 일부 도입하는 이른바 '흑묘백묘론'에 의한 개방정책이 아니었다면 중국은 지금 최빈국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독자의 선입견이다. 그런데 이 제목의 단어가 마오쩌둥의 지혜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망설임이 없을 수 없었다. 책을 읽기 전에 조금 사전 공부를 해야만 했다.

세게백과사전이나 역사대백과사전, 철학대사전, 서양사상사대백과 등 사전을 찾아봐서는 '천하대혼돈'이란 부문은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이 책을 번역한 옮긴이의 말을 읽어봤다. 다행히 대략의 의미를 알 수 있게 풀어쓴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천하대혼돈』은 지젝이 여러 언론 매제에 기고한 짧은 글들을 묶은 책이다. 그 가운데는 트럼프의 정치 행보에 관련된 내용도 다수 섞여 있다. (중략) 사실 이 책의 제목이 된 '천하대혼돈'도 이런 바탕에서 나왔다. 이 표현은 세계를 끊임없는 모순의 충돌로 이해한 마오쩌둥의 사상을 응집한 것이기도 하다. 정서와 안정은 정치의 소멸을, 대혼돈은 정치의 출현을 의미한다. 지젝은 트럼프의 출현이 미국의 위기에서 기인한 것이고, 이 위기는 정치의 귀환을 불러올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이다. 2020년 미국의 대선은 이런 예견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지 않는다. 다만 민주당은 2020년에도 역시 샌더스를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데 성공하고 말았다. 이 책에서 지젝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의 귀환이자 또한 정치적 주체의 호명이다."

어렴풋이나마 제목의 배경에 대해 조금 설명을 들은 탓인지 책의 성격이나 저자의 성향, 출판의 이유 등에 대해 짐작이 간다. 다만 독자의 정치나 세계 문제에 대한 지식이 짧아 그의 의견을 잘 수용할 수 있을지, 또 부족한 면이 있는지 지적하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일단은 충분히 경청하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책장을 넘긴다.

 

 

책에 따르면 지젝의 정치학은 국가간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해체이다. 지난 세대까지 세계를 지탱해온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지향점은 현재에 이르러 힘을 잃었다. 권위주의를 전복하고 자유 민주주의 수호라는 목표를 이룬 여러 저항이 마주한 것은 되풀이되는 실업, 가난, 사회 부패 등 자본의 실재였다. 위기의 근원은 우리 체제 자체에 내재하기에 현재 나타나는 좌파의 저항 정치학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는 현존하는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으로는 인류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의회 민주주의로는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없고, 단순히 한 정치 정당이 더 많은 투표를 얻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게다가 전 지구적 자본주의와 그 정치경제학은 구조적으로 급진적 정치의 가능성을 봉쇄하고, 기후 위기론을 경제 논리로 바꾸는 식의 환상을 재생산하며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즘의 망령을 불러낸다. 지구가열에서 난민에 이르기까지, 디지털화한 통제에서 유전공학적 조작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당면한 도전은 전 지구적 재조직화를 요청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젝이 레닌의 오래된 질문으로 돌아가,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 묻고, 천하대혼돈은 곧 기회라고 본 마오쩌둥의 오래된 지혜를 되새기며, 자본주의국가의 철폐를 꿈꾼 마르크스의 슬로건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이러한 지젝의 지향점은 개인의 욕망부터 체제 변환에 이르는 총체적 대안의 정치학을 프로그램하고 다양한 저항 세력을 아우를 정치 지도자에 대한 요청으로 구체화한다. 문제는 대중의 눈먼 욕망이 아니라 경험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정치력의 창조 여부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5부 ‘대혼돈을 넘어’에서 지젝은 정치의 대혼돈이 어떤 방식으로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불러올 수 있는지 탐색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주제는 매우 광범위하다. 인종차별, 공산주의, 자본주의, 기후문제 등 총 5장에 걸쳐 다양한 주제를 다룬 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행동하게 만든다.

『천하대혼돈』에서 다루는 주제는 현대정치와 문화 현상 가운데 이민, 반유대주의, 미국과 유럽의 정치 현안, 중국 문제, 기후 위기, 사회주의 등 지구촌 이슈를 총망라한다. 1부에서는 평화적 공존이라는 미명 아래 ‘자본’이라는 실재만 건드리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허용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의 허위에 관해, 2부에서는 각종 허위 대립을 일으켜 현대정치를 혼란하게 하는 포퓰리즘이라는 유령을, 3부에서는 정치구조는 물론 무의식 세계까지 파고들기 시작한 ‘디지털 정치학’을, 4부에서는 문화와 권력이라는 불가분의 관계와 인간 심리의 심층을 다루며, 5부에서는 대혼돈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한다. 글의 작성 시점은 2018년도 하반기에 집중되어 있지만, 거대한 변화 속 현 상황을 진단하는 지젝의 성찰의 지도를 파악하고 그의 지적 성실성을 엿보는 데 큰 의미가 있다.

 

1부 새로운 세계 질서

2부 현대정치와 포퓰리즘

3부 디지털 정치학

4부 문화와 권력

5부 대혼돈을 넘어

 

 

지젝은 우리 시대의 숱한 논쟁에 개입해 자기주장을 거침없이 내놓는 논쟁적 인물이다. 그가 펼치는 비판은 이념의 좌우를 가리지 않고 때로 ‘상식’도 거스르며 분야를 넘나든다. 그래서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고 자주 구설에도 오르내린다. 하지만 그는 한때의 위로나 미봉책을 제시하는 철학자가 아니다. 슬로베니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등 현실정치에 도전한 적도 있었던 특이한 이력도 있다. 그는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 현실 정치 등에 대한 분석 역시 왕성하게 하고 있으며 주목할 만한 인사이트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 『천하대혼돈』은 지젝의 기고문들을 경희대 이택광 교수의 제안으로 한국에서 처음 출간하는 책이라고 한다. 미국 패권중심에서 탈 양극화되는 세계질서, 우파 포퓰리즘의 창궐, 디지털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가짜뉴스, 문화 권력, 기후 변화 등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대혼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는 매우 다양하고 거대담론이다.

 

 

지젝은 이러한 대혼돈이 기존 질서를 넘어서 새로운 질서와 정치적 테마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옳다 그르다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독자는 그것을 판단할 식견을 갖추지 못해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입장에서 서평을 이어나간다. 저자가 담론화하는 이슈나 어젠더에 대해서는 거의 동의하지만 저자의 견해가 담긴 글에서는 일부 저항감도 느낀다는 사실만 미리 밝힌다. 현재 전 지구적인 위기(기후, 차별, 경제, 감염병 등)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그 기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읽고 배우기에 주저함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생각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느낀다.

 

 

한 가지 더 좋았던 점은 전 세계 인류의 거대담론이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고 복잡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쉬운 말로 설명해 이해가 쉬웠다. 아마 저자의 글쓰기 능력도 이 책을 읽기에 한몫을 해주리라 믿는다. 그의 다른 책을 읽어보질 못해 한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 책을 읽고 소화하기에는 굉장히 훌륭한 글쓰기 실력이라는 점도 느껴질 정도로 논리도 정연하다. 이와 함께 하나의 내용을 다루는 분량은 대략 10페이지 이내여서 독자로서는 이해하기가 훨씬 쉬웠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는 우리 삶이 평소처럼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우리 내면조차 바꿔야 한다는 점을 인정할 때만 가능하며 이러한 상황에서 『천하대혼돈』을 통해 우리가 선 자리를 먼저 되짚는 통찰을 제공했다."는 판단을 내리는 데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모두가 인류의 위기를 말한다. 또 누군가는 현대 문명의 종말을 예언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위기의 정확한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 제4차산업혁명 같은 단어는 이미 위험성이 제거된 관용구가 되어버렸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도 인류가 비상사태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애써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가 현재 마주한 위기는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고 다면적인 원인에서 비롯했기에 해결책은 고사하고 그 실상을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천하대혼돈』은 오늘 인류가 마주한 전 지구적인 혼란의 양상을 풀어낸 슬라보예 지젝의 칼럼집이며, 원저 없이 한국에서 처음 출간되는 지젝의 신작이다. 대여섯 쪽으로 이뤄진 서로 다른 주제의 글들이지만, 조각을 맞추어 퍼즐을 완성하듯 세계의 여러 양상을 연결해 위기의 전체상을 그려낸다. 각 글은 지젝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과 날 선 통찰을 품고 있으며, 마치 창문을 깨고 날아드는 벽돌처럼 우리를 깨우고 당장의 변화를 촉구한다.

 

 

저자 : 슬라보예 지젝

 

현대철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자,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꼽힌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태어나 류블랴나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 파리제8대학교에서 정신분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학교, 프린스턴대학교, 파리제8대학교, 런던대학교 등 세계 주요 대학교에서 강의했고, 경희대학교 석학교수 EMINENT SCHOLAR로 재직 중에 3,500여 명의 청중이 참여한 ‘경희대 석학초청특강’에서 강연하기도 했다.

지젝은 급진적 정치이론, 정신분석학, 현대철학에서의 독창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대중문화를 자유롭게 꿰어내며 전방위적 지평의 사유를 전개하는 독보적인 철학자다. 강렬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감과 그와 대비되는 독특한 유머 감각 때문에 언론에서는 그를 ‘문화이론의 엘비스 프레슬리’ ‘지적인 록스타’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스로는 ‘정통 라캉주의적 스탈린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공산주의자’라고 칭하며, 여전히 ‘혁명’의 불씨를 품고 그 현실화를 위해 노력한다. 첫 책인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시작으로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용기의 정치학》 《팬데믹 패닉》 등을 펴냈으며, 실천적 이론가로서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의 숙제 - 남들처럼 살면 내 인생도 행복해지는 걸까요?
백원달 지음 / FIKA(피카)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듣도 보도 못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올해 들어 작년과 같은 출근하고 일하고 동료들과 함께 정담도 나누고... 퇴근 후엔 함께 식사도 하고 또는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같이 보내는 일상. 한 번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거의 코로나에 매몰돼 살았다. 나와 가족의 생명이 달린 문제이니 방역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데다 심할 때는 저녁 여가를 보낼 만한 곳도 대부분 문을 닫아 '집콕'이 올해 일상의 가장 큰 부분으로 남는다.

돌아보니 어려운 상황에서 용케도 살아남아 그래도 내년에는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연말연시 역시 집콕의 연속이다. 다행인 것은 백신이 개발돼 접종을 3개월 정도 남았으니 희망이 보이는 집콕이라 예전처럼 암울하지 않아 괜찮다. 또 집콕은 독자에게 책 읽는 습관을 다시 갖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해 한편으론 보람도 있다. 그러나 일상은 되찾으려면 몇 개월은 더 버텨야 하고, 오랜 방역 활동으로 지쳐가고 경제적 부담까지 더하게 된 연말이 을씨년스러워 안타깝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잡고 하루 하루 더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일상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되돌아 생각컨대 우리 일상이 늘 똑같은 것처럼 느껴졌지만 사실은 조금씩 다른 것이었음을 이번 집콕 기간에 발견해낸 수확 중의 하나이다. 집안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 책을 벗 삼고(어쩔 수 없이), 읽은 책에서 가장 많이 조언을 듣은 말, '진짜 나를 찾아노는 시간'을 가진 것도 일상의 중요한 시간 중의 하나였다. 이로 인해 지난 일상이 매일 똑 같은 것처럼 생각됐지만 사실은 조금씩은 달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보다 조금씩은 나아진 나를 찾는' 게 오늘의 나의 일상이다는 점을 확실히 알게 됐다. 그래서 인생은 '일상의 연속'이 아니라 '일상의 합'이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이 책 『인생의 숙제』도 공감 가는 책 중의 하나이다. 일상을 찾아가는 법이 쓰여 있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다. '카툰에세이'라고 독자가 명명한 것은 만화의 형식을 빌었지만 내용이 에세이이고, 지극히 섬세한 감정이나 심리를 다룬 점에서 독자가 임의로 붙인 분류인데 혹시 잘못이면 용서해 주시길...

 

 

이 책은 화자(話者)의 일상이 독자와 많이 닮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차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면 어쩌면 너무 다른 얘기가 되기도 한다. 같은 테두리 안에서 남과 여라는 구별만으로도 똑 같은 일상이 전혀 반대일 수 있다는 깨달음도 준다. 독자 입장의 얘기이니 각설하고 내용에 대한 이야기로 옮긴다. 한마디로 찡하고 서글프고 웃기고 직장인으로서 공감 백배의 에세이다.

작중 화자는 아침에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고 밥 먹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벌써 밤 11시. ‘진짜 왜 지금 11시냐고. 말도 안 돼.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남은 시간이라도 알차게 보내고 싶은데 아무것도 하기 싫다. 사실 할 것도 없고. 오늘도 불 꺼진 이불 속에서 습관적으로 SNS를 본다. 의미 없이 흘러가는 휴대폰 화면처럼 나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가는 걸까? 하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들도 다 그런다길래 참고만 살았더니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잊어버렸다. 서른셋 직장인. 독자와는 퇴근 후 시간이 많이 다르다.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어떤 날은 180도 다른 삶이다.나이도 꽤 차이나는 33세의 여성 직장인과 50대의 남성 직장인의 퇴근 후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개인적인 차이가 아니라 집단적 차이라면 조금은 생각해볼 일이다.

 

 

적금, 연금, 보험, 대출...

현재의 나는

늙고 힘없는 나의

노예다.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서만

살아가는 현재의 나는

지금… 행복할까?

- 「오늘 죽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다」 중에서

 

 

글자가 쌓여서 글이 되고

글이 쌓여서 한 권의 책이 되듯

 

나의 시간도

흘러가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가면

좋겠다.

- 「세상 맛있는 것들을 똥으로 바꾸는 쓸모없는 기계」 중에서

 

 

나이가 늘어갈 때마다

해야만 하는 것,

하면 안 되는 것,

못 하게 되는 것들도

점점 늘어만 간다.

나이 드는 건 내 잘못이 아닌데.

- 「나이 드는 건 내 잘못이 아닌데」 중에서

 

 

날 너무 사랑해서

결혼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결혼할 때 만난 사람이라서

결혼하는 거라는

 

이런 마음이

그에게서 느껴질 때의

그 상실감

-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야」 중에서

 

 

『인생의 숙제』의 유나(작중 화자)는 어느 날 대청소를 하다가 옷장에서 초등학교 때 쓰던 일기장을 발견한다.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면서 어렴풋이 기억을 떠올린다. 어렸을 때 글쓰기를 참 좋아했었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완전히 똑같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 어떤 날은 유난히 머리가 잘 되고, 어떤 날은 운 좋게 버스가 일찍 오고, 어느 날은 커피 맛이 더 좋았다. 그래,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정말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독자와는 앞서 언급한 대로 개인적 차이가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면서 차이가 조금씩 발견된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였지? 뭐할 때 행복했었지? 뭔가를 진짜 열심히 해본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더라?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유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신춘문예에 투고할 시를 써보기로 한다. 반짝거리던 진짜 나를 찾아가는 빛나는 이야기.

독자와는 개인적인 앞날에 대한 차이가 있고, 좋아하는 것, 해보고 싶은 것도 다르다. 즉 하루종일 일하고 집에와 쉬고 하는 일상은 누구나 비슷하지만 개인적 성격이나 성향, 지향하는 바(인생관이라해도 무방할 듯)에 따라 시간을 다르게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남녀의 성향 차이, 남자직장인과 여자직장인의 사회적 차이, 아내와 남편의 관습적 차이로 여성들이 훨씬 불리한 조건이라는 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나의 실패가

실패인지 아닌지

지금 당장 판단해서는 안 된다.

 

실패로 일을 마무리한다면

실패는 실패로 끝나겠지만

 

실패가

앞으로의 삶에 거름이 된다면

실패의 의미는

‘성장’일 테니까.

- 「실패란 실패일까」 중에서

 

이 책 『인생의 숙제』는 이렇게 1화씩 끝날 때마다 공감되는 글들이 적혀 있다. 이 부분들을 읽는 재미도 크다. 그림으로 다 하지 못한 말을 쓴 것 같기도 하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배려인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보는 재미에 읽는 재미까지 더 흥미롭다. 내용 중 슬픈 부분도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나씩찾아서 이뤄보려는 작중 화자의 뒤늦은 깨달음은 독자를 향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도 생각된다.

행복해 보이기보다는 이제는 정말 행복하다고 이야기할 때까지 삶은 어려울 것이고, 정말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어려운 부분의 10분의 1도 안될지도 모른다는 다소 슬픈 결론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산다.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씩 낫기 때문이고, 그 조금씩 나은 삶이 행복을 앞당겨주고 행복한 시간을 늘려줄 테니까. 그리고 그것들의 합(合)이 자신의 삶이 될 테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자물리학적 정신치료, 빙의는 없다 - 정신의학과 양자물리학의 만남
김영우 지음 / 전나무숲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의학은 과학이다. 과학적 원리를 이용해 병의 원리를 밝히고 치료제도 개발된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병을 규정하는 데는 과학적 이론과 실험, 과학적 원리에 부합해야 하고, 모든 병의 치료제도 과학적으로 입증된 후 연구 개발과 과학적 실험, 임상실험을 거친 후 안전성이 기준을 넘어서야 약으로 상용화될 수 있다. 이런 복잡한 과학적 원리를 이용하는 것은 인체가 우주물리학처럼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독자는 알고 있다. 병도, 병원균(바이러스 등)도 현대사회가 복잡하고 얽히고설킨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정신적인 이상 여부도 과학적 원리에 입각해 증명되어야 질병으로 규정하고, 그래야 치료제 개발도, 치료도 가능할 것으로 의학계는 믿고 있다.

대부분의 육체적 질병은 가장 최근 암 치료의 가능으로 '못 고치는 병은 없다'라고 할 정도로 의학과 약학계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정신적 질환자가 엄청나게 늘어나는데도 치료제나 치료법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당연히 현미경으로도 관찰할 수 없는 무형의 뇌 신경 이상 증세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적절한 치료제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대표적으로 치매, 알츠하이머 등 뇌신경 이상으로 오는 질병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상 증세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정상적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양식으로 작동하지 않고 이상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증세마저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역시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인정돼야 치료제도 나올 터다. 정신의학은 의학계에서도 가장 늦게 분류된 정신이상증세를 다루는 의학이다. 프로이드, 칼 구스타프 융도 모두 정신의학계의 창시자나 다름없다. 이후 100년 가까이 발전을 거듭했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정신이상 증세의 치료법도, 치료제도 없는 상태다.



정신의학계가 쉽지 않은 내린 부분의 치료법에는 물리학적 접근, 우주공학적 접근 등과의 연계성을 밝혀 치료하는 방법도 꽤 힘을 받는 것 같다. 여기에 도입되는 물리학 이론 중 가장 많은 부분이 입증된 양자역학(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이다. 이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 1882~1970)으로, Quantenmechanik(크반텐메하닉)이란 이름을 붙였다. 그것이 그대로 영어로 번역된 뒤에, 일본에서 ‘量子力學(료오시리키가쿠)’라 새로 번역됐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어와 ‘양자역학’이란 용어로 번역됐다고 한다. 양자역학이란 말을 이해하려면 ‘양자’와 ‘역학’을 각각 살펴보는 것이 좋다. ‘양자(量子)’로 번역된 영어의 quantum은 양을 의미하는 quantity에서 온 말로, 무엇인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역학(力學)’은 말 그대로는 ‘힘의 학문’이지만, 실제로는 ‘이러저러한 힘을 받는 물체가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물리학의 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힘과 운동’의 이론이다. 이렇듯 양자역학이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이 이러저러한 힘을 받으면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은 빛의 본성이 탁구공이나 쌀알 같은 입자인지, 아니면 물결이나 소리와 같은 파동인지를 놓고 진지한 논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빛을 입자로 보는 부류나 파동으로 보는 부류 모두 형광현상1)이나 냉광 현상2), 광전 효과3) 등을 설명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사전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이 1905년 발표한 ‘빛알이론’은 양자론의 기초가 됐다. 이미 19세기 말에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공간 속에서 펴져 나가는 전자기파임이 밝혀졌다. 하지만 빛을 단순히 전자기파로 본다면 냉광이나 광전 효과를 설명할 수 없었다. 빛이 파동이라면 진동수4)와 파장5)을 가질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1955)은 빛이 파동이긴 하지만 그 에너지가 일정한 단위로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고 제안했다. 이 제안이 바로 1905년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빛알 이론으로, ‘양자’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준다. ‘빛알’은 ‘빛양자’나 ‘광양자’(光量子), 또는 줄여서 ‘광자’(光子)라고 부른다. 이 이론은 쉽게 말해, 빛의 에너지는 실수가 아니라 자연수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물건을 살 때 100원짜리 동전으로만 살 수 있어, 1,000원짜리 물건을 사는데 100원 동전 10개를 내는 것과 같다. 여기서 동전 하나를 ‘양자’로 볼 수 있으며, 빛의 경우에는 ‘빛양자’ 또는 ‘빛알’이 된다.

빛의 에너지를 ‘빛알’의 개수로 바꿔서 따지게 되면, 그동안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빛과 관련된 많은 현상들을 설명해 낼 수 있었다.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제안은 매우 혁명적이었지만, 이미 1900년, 그의 스승이었던 독일의 막스 플랑크(Max Karl Ernst Ludwig Planck, 1858~1947)가 흑체복사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빛알 이론과 직접 통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적이 있었다. 플랑크의 복사 법칙이라 불리는 이 법칙을 설명하면서 그는 최초로 ‘양자’의 개념을 주장했고, 이는 양자역학의 토대가 된다.



이 책 『양자물리학적 정신치료, 빙의는 없다』의 저자 김영우는 양자물리학에 기반한 최면치료 기법들을 이용해 다중인격과 귀신들림(빙의 현상, 무병), 해리 등 난치의 환자들을 전문적으로 진단·치료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의학은 대표적인 융합과학이므로 여러 분야의 과학이 발전하는 속도에 보조를 맞추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만일 심리학과 물리학, 생물학과 우주론, 작은 분자와 거대한 천체들을 종합적으로 연결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양자물리학이 없다면 이 도약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또 정신의학 역시 예외가 아니다. 우리 생각과 감정, 주위 환경과 사건의 파동과 에너지의 본질을 이해해야 그것이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증상과 질병이 생기는 원인과 과정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그 파동과 에너지가 우리 주변의 가까운 사람과 먼 사람, 동물과 식물, 물체와 물질, 시간과 공간 등 여러 요소와는 어떻게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며 영향력과 정보를 주고받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통일성과 양자얽힘, 비국소성이 우리의 삶과 일상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작용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근원적 지식들을 모아야 언젠가 우리는 ‘인간과 우주의 본질과 존재 목적’을 과학적이고 종합적인 눈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고 영적 신비현상과 체험, 신의 본질, 창조와 진화는 모순이 아니라 공존하며 상호협조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자신과 세상을 깊이 이해하고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될 때 인류는 한 차원 높은 의식에 도달해 현대사회를 짓누르는 여러 어두운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 진위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노력해야 할 일임을 언급하고 있다.



저자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고도로 훈련된 과학자인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왜 하필이면 ‘전생’, ‘빙의’ 같은 영적(靈的 spiritual) 체험과 초자연적 현상들을 주제로 이야기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저자에 따르면 그 이유는 그러한 현상들이 사람들에게 빈번히 일어나는 일인 데다 이러한 초자아 현상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삶과 죽음, 고통의 의미를 깨닫고 의식의 발전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적 체험과 초자연적 현상들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지구상의 모든 지역과 문화권, 종교에 속한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보편적 현상이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전통 정신의학과 심리학은 인간의 영적 체험과 초자연적 현상들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찾거나, 이 같은 체험과 현상을 환자의 치료에 이용해보려는 진지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또한 초자연적 체험을 하는 사람들은 정신질환자가 아닌 평균 이상의 지성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고, 의식 수준이 높을수록 더 자주 영적 체험과 초자연적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데도 정신의학계는 이 같은 현상을 ‘체험하는 사람의 환각이나 착각일 뿐’이라고 무시해왔다. 이러한 태도는 과학의 기본 원칙인 ‘현상과 자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탐구하는 태도’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정신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의식을 이해해야 하고, 그러려면 인간과 우주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에겐 ‘신경정신과 전문의이니 정신의학에만 기초해서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라는 학문 간 경계가 없다. 증상 치료에 필요하다면 자연과학, 철학, 종교, 예술, 심리학 등을 통합해 증상을 이해하고, 최면치료나 전생퇴행 요법과 같은 방법도 신중히 활용한다. 그러한 저자의 열린 태도가 사람들에게 영혼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저자는 이와함께 빙의, 해리성 정체성 장애(다중인격장애), 채널링 현상 등의 초자아 현상과 최면치료, 전생기억 같은 치료 방법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과, 이를 다루는 매체의 방식이 이 치료방법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일부 TV 프로그램을 통해 초자아 현상은 귀신들림 현상으로, 최면치료는 자신 안에 깃든 또 다른 영혼을 쫓아내는 퇴마의식으로 인식돼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진실은, 초자아 현상은 귀신의 장난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상념, 감정의 에너지와 외부의 에너지 파동이 복잡하게 얽혀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즉 인간 의식의 일부인 생각과 감정은 일종의 에너지로 볼 수 있는데, 그 내용에 따라 특정 파장의 에너지 파동을 만들어낸다. 같은 내용의 생각과 감정이 오랜 기간 반복될수록 그 파동의 힘은 계속 중첩되고 증폭되어 큰 힘을 축적해 몸과 마음, 주변 사람들, 주위의 공간으로 끝없이 퍼져나가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어떤 원인에 의해서건 부정적 생각과 파괴적 감정의 파동 에너지가 반복적으로 쌓여 지나치게 강해지고 이를 통제하거나 중화시킬 수 있는 반대 성질의 에너지 파동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경우,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이런 파괴적 파동 에너지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된다.

그러면 결국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해주는 에너지 체계의 균형이, 점점 강해진 파괴적 에너지 파동에 의해 깨지거나 왜곡되어 각자의 성격, 특징, 환경적 요소, 내면에 축적된 여러 종류의 에너지 등과 상호작용해 다양한 형태의 정신 증상으로 표면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의학이나 물리학 지식이 저급한 독자로서는 정오의 판단을 하기 어렵다.



저자에 따르면 정신 증상의 발생 과정을 위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면 치료는 그 과정을 거꾸로 돌려놓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증상을 일으키는 에너지 파동들을 약화시키고 제거해 안정된 상태로 되돌리고 건강한 에너지를 충분히 채워가는 치료방법을 쓰는 것이다. 실제 이 원칙을 환자 치료에 적용한 결과, 불안, 우울, 환각, 강박 등의 정신 증상과 여러 신체 증상들이 그 종류나 심한 정도와 관계없이 대부분 호전되었다고 한다.

어떤 질병이건 처음에는 미세한 에너지 차원에서의 불균형과 왜곡으로 시작되지만 이를 방치할 경우 그 파괴적 힘이 점차 강해지며 분자와 세포, 신체 조직에 손상을 주고 눈에 띄는 증상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크고 작은 내적·외적 에너지 파동들을 초기에 제거하고 건강한 에너지를 채워주는 방법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많은 질병과 고통스런 증상들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 증상의 치료 과정에서 가장 신비스럽게 여겨지는 것이 최면치료인데, 이것도 양자물리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면은 한마디로, ‘의식의 확장 상태’다. 이 상태에서 인간은 우주 전체와 깊은 교류를 나눌 수 있다. 이때 몸과 마음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은 양자 차원에서부터 우주 공간의 다양한 파동 및 에너지장과 통일된 공명을 이룰 수 있으며, 홀로그램 방식으로 우주 공간 전체에 퍼져 비국소적으로 저장된 모든 정보(아카식 레코드, 정보장 이론)에 접근해 일상적 의식 수준에서는 이해하거나 풀 수 없는 여러 문제와 증상의 원인을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오감(五感)이라는 육체적 감각의 좁은 창문을 통해서만 세상을 경험하다가, 모든 장애물이 사라져 몸과 마음을 포함한 우주의 전 영역으로 감각과 인식이 확대된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 상태에서의 정보 교류 방식은 양자 차원에서처럼 순간적이면서도 전체적이기 때문에 그 힘이 아주 강렬해 우리 내면에 깊이 각인되며, 즉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빙의와 해리성 정체성 장애 이론과 실제 환자 치료에서 마주치는 상황들도 양자물리학적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모든 빙의 증상의 원인이 죽은 사람의 영혼이나 악령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현재 빙의와 해리성 정체성 장애(다중인격장애)의 진단 기준에 포함되는 여러 증상과 불안과 우울 등 일반 정신 증상들 역시 양자 이론으로 대부분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고와 감정은 반복될 때마다 그 파동 에너지가 중첩되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큰 힘을 가진 독립된 에너지 덩어리로 발전할 수 있다. 이것을 일부 심리학자들은 상념체(想念體 thought form)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양자론적 관점에서는 ‘반복되면서 강해지고 뭉쳐진 파동 에너지’라고 볼 수 있다. 환자의 내면에서 이렇게 강하게 형성된 부정적 에너지체가 표면으로 올라오거나, 환자 외부에 형성되어 있던 부정적 에너지체들이 환자에게 오염되어 환자를 지배할 때 그 에너지체의 특징에 따라 환자의 평소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인격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에너지도 소립자들의 덩어리인 양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에너지체가 하나의 인격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특히 스스로 빙의에 걸렸다고 생각해 두려움에 빠진 환자는 지속적인 불안과 공포의 파동을 만들어내고 빙의에 대한 여러 가지 상상을 반복해 점점 그 믿음을 강하게 만드는 에너지 파동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환자의 마음속에서 반복되고 축적된 여러 부정적 상념과 상상의 에너지, 외부로부터 받은 큰 충격이나 지속적 스트레스의 누적된 에너지로 인해 환자 내면의 에너지 체계에 상처와 약점이 생길 수 있고, 그 속에 오염되거나 파고든 강한 부정적 에너지체는 빙의나 다중인격장애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인격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에너지체의 종류와 수가 많을수록 증상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그러니 이런 환자들의 내면에서 올라온 낯선 인격이 자신은 환자와 다른 특정인임을 주장하며 그에 대한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어떤 정보를 말하거나, 환자와 치료자를 위협하며 스스로 악마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 인격이 실제 그 특정인의 영혼이나 악마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우주 공간에는 전 영역에 걸쳐 모든 종류의 정보가 홀로그램 방식으로 저장되어 있어 어느 정도의 민감성과 확장된 의식을 가진 사람은 최면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변성 의식 상태에서 쉽게 접근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정보를 근거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저자는 오랫동안 수많은 빙의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항상 환자 내면의 독립된 인격체들이 어떤 주장을 하건 상관없이 이들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에너지를 제거하는 작업에 집중하는 동시에, 환자 내면의 상처 입은 에너지 체계를 건강하게 복구시키는 치료와 교육을 병행하고 있다. 이 작업만으로도 대부분의 환자들이 크게 호전되거나 완치될 수 있다는 사실은 빙의 증상 역시 건강한 에너지 체계의 왜곡과 오염에 의해 생기는 다른 증상과 그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흔히 ‘신기’라고 부르는 영적 감수성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의 경우 역시 불필요한 에너지 파동을 제거하고 약화시키는 치료 방법으로 호전될 수 있다. 따라서 빙의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나 악마가 덧씌운 것’이라는 믿음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양자론적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의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상념의 파동들이 모여 귀신이나 악마라고 불릴 만큼 어두운 특징과 의식을 가진 파동 에너지의 덩어리로 존재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 다중인격의 경우, 때로는 환자와 가까우면서 큰 영향력을 가진 살아 있는 사람의 강한 집착의 상념이나 부정적 감정도 다중인격의

형태로 빙의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이 사실 또한 빙의의 원인이 죽은 영혼이 아니라 어떤 종류이건 강력한 에너지 파동의 간섭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그러나 귀신이나 악마가 존재할 수 없다는 과학적 결론이 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대로 죽은 사람의 의식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따로 존재할 수 있다면 그 의식의 에너지체를 영혼이라 부를 수 있고, 그 에너지 파동은 예민한 사람들에게 감지되거나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심신이 약한 사람들에게 그 에너지가 오염되거나 기생할 수 있다면 결국 죽은 영혼이 씌운 것이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그러나 일부 환자의 증상이 정말 죽은 사람의 영혼이나 악령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라 해도 이 역시 일종의 부정적 에너지체의 오염이기 때문에 그 힘을 제거하는 같은 원리의 치료 방법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흔히들 믿는 것처럼 ‘귀신이 씌워 생기는 불치의 병이며 신내림을 받거나 굿, 천도제를 통해서 쫓아낼 수 있는’ 빙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이 무기가 될 때 - 무너지지 않는 멘탈을 소유하는 8가지 방법
스티븐 클레미치.마라 클레미치 지음, 이영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의 일상을 잃어버린 지 거의 1년이 다 돼간다. 우리나라는 처음 대구에서 급속도로 확장될 때를 제외하면 이후 7개월 이상 검진자 수, 확진자 수, 치료율 등에 가장 안정적인 수치를 유지해오면서 선진국으로부터도 방역 모범국가란 말을 들었다. 이른바 'K 방역'이다.

확진자를 따라 감염자의 원인을 따라가며 선제적으로 방역조치를 하는 등 수준 높은 방역 시스템을 보여주었고, 대구에서는 의료진의 헌신적인 방역 및 치료 등이 돋보이는 그야말로 감염병 방역의 모범이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독자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그리 오래 가지 않으리라 기대했다.

그래서 더욱 개인 방역도 열심히 하고, 가능한 한 개인 휴식도 집에서 취하는 '집콕' 생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지냈다. 그러나 선진국의 방역은 우리처럼 하지 못해서인지, 안 한 건지 모르지만 확진자 수가 좀처럼 줄지 않더니 급기야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도 발견되는 시점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며 꽤 오래 갈 것 같다는 불안감도 생겼다. 특히 백신이 곧 나온다는 희망의 메시지도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접종되는 시기가 빨라야 내년 4월로 예상된다는 뉴스도 계속 나오고 있다. 불안이 점점 두려움으로, 급기야는 분노로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특히 얼마 전 하루 확진자 수 1000명이 넘어서고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은 상태의 연속이다. 이젠 분노의 마음도 조금씩 커지는 것 같다. 우선 분노를 가라앉히고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해야 계획도, 실천도 해야 할 단계란 직감적인 상태로 파악된다.



이 모든 상황을 견디고 참아오면서 독자는 개인적으로 한 가지 얻은 게 있다.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인 것이다. 정확하게는 한동안 안 읽었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것이다. 스스로의 의지로 했다기보다는 집에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독서였기 때문이다. 이 기간 읽은 책은 예전 수년 간 읽었던 분량과 비슷하다. 주로 읽은 책은 소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에세이나 자기계발 서적들이었다. 6개월 동안 읽은 책은 100권에 가까우니 어쩌면 학교 다닐 때를 제외하곤 가장 많은 책을 읽은 기간인 듯싶다. 이 기간에 우리나라에서 발간한 나온 책의 숫자를 독자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인터넷 서점에 들러 본 책은 거의 에세이나 자기계발 서적이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증세가 확산되면서 이런 책을 찾는 독자가 많아졌나보다. 이 책 『마음이 무기가 될 때』도 분류상 자기계발 책이고 멘탈 건강관리를 다룬 책이다.

예부터 우린 어른들로부터 삶에 대해 들을 때 ‘모든 게 마음에 달렸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 맞는 말이라 생각해왔다. 선조들도 오랫동안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실제로 매 순간 마음을 뜻대로 컨트롤하며 긍정의 힘을 끌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렵기 때문에 그런 말도 나왔으리라. 그런 노력과 실천을 하면 우리의 삶은 원하는 바 가까이 갈 수 있으니까. 어렵다고 마음도 먹지 않거나, 마음은 먹어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원하는 삶에 훨씬 못 미치는 삶을 살게 될 터이니.



이 지점이 저자가 책을 쓴 이유가 되는 것 같다. 우리 마음을 구성하는 요소와 행동을 결정하는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면,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나면 매 순간 더 나은 생각과 행동을 선택할 수 있고, 나아가 매일 ‘최상의 나’로 살아갈 수 있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저자는 연구와 상담 경험을 통해 강인한 멘탈의 소유자들은 바로 그 원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라는 결론에 접근했다.

『마음이 무기가 될 때』는 30년간 다양한 국적과 문화의 조직에서 코칭을 해온 저자들이, 뇌과학과 신경 심리학을 바탕으로 마음의 보편적 원리를 밝히고 그에 따라 멘탈을 강화하는 8가지 행동 유형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언어ㆍ종교ㆍ문화ㆍ신념ㆍ세계관을 초월하여 인간의 삶을 공통적으로 지배하는 마음의 원리는 간단하면서도 근본적이다.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선이 하나 있다. 이 선은 마음을 ‘선 위’와 ‘선 아래’로 나누며, ‘선 위의 마음’을 택하면 겸손과 사랑으로 움직이는 최고의 내 모습이, ‘선 아래의 마음’을 택하면 자존심과 두려움에 휘둘리는 최악의 내 모습이 나온다. 즉, 마음의 선 아래로 미끄러졌을 때, 우리는 방어적이고 부정적으로 행동하며 일과 인간관계에서도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 마음속 깊은 곳에는 선이 하나 있다. 대단히 얇은 선이다. 너무나 얇아서 대개의 경우에는 있는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삶을 사는 방식은 이 선을 따라 균형을 이룬다. 우리의 마음(우리가 성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선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순식간에 옮겨가곤 한다.

- 「서장 삶의 원리를 형성하는 네 가지 마음」 중에서



우리는 언제나 ‘선 위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매 순간 선 위의 마음을 선택할 수 있는 강력한 멘탈을 기르는 방법을 일러준다.

현재 자신이 어떤 마음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지 파악한 후, 선 위의 마음이 만드는 8가지 행동-진정성, 변혁, 신뢰, 성취(겸손의 4가지 행동), 연결, 격려, 발전, 연민(사랑의 4가지 행동)을 강화함으로써 매일 당신 안의 최고의 모습으로 살아가길 권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행동패턴을 멈출 수 있을까? 먼저 저자들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주로 사용하는지 스스로 체크해볼 수 있는 ‘마음유형분석지표’를 개발했다. 우리 마음을 사분면으로 구조화해 선 위에 해당하는 제2사분면과 제1사분면에는 겸손과 사랑을, 선 아래에 해당하는 제3사분면과 제4사분면에는 자존심과 두려움을 배치했다. 마음유형에 관한 75개의 문항에 답을 하고 나면 각 사분면별로 수치가 그래프로 표현되어 자기만의 마음유형분석 결과지를 받아볼 수 있다. 내가 어떤 마음을 많이 사용하는지, 겸손 사랑 자존심 두려움 중 어느 요소에 얼마나 이끌려 사는지 알고 나면 비로소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이런 순간을 맞는다. 그러고서 생각한다. ‘왜 그렇게 말을 했을까?’, ‘내가 …만 했더라면.’ 우리는 작은 문제를 두고 아이들과 배우자를 닦달한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팀원을 비난한다.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감 시한에 동의한다. 다행히도 우리는 매일 최선의 의도 역시 현실로 만든다. 말을 도로 주워 담고 싶다거나 다른 선택을 했다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는 협력적이고, 집중적이고, 솔직하고, 인내심 있고, 헌신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마음은 이기적인 상태에서 이타적인 상태로, 비판적인 상태에서 연민 어린 상태로, 동기가 부여된 상태에서 우울한 상태로, 건설적인 상태에서 파괴적인 상태로, 의심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자신감 있는 상태로 대단히 빨리 전환할 수 있다. 단 1분 안에도 효과적인 상태에서 비효과적인 상태를 오갈 수 있는 것이다.

- 「1장 네 가지 마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중에서



내일, 다음 주, 다음 달…. 당신 스케줄 표에는 이미 삶에 스트레스를 주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상사와 가질 회의일 수도 있고, 팀원들과의 까다로운 성과 회의나, 너무 오래 머물러서 폐가 되고 있는 손님과의 대화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상황의 어떤 점은 당신을 자극할 것이고 당신의 두뇌는 비슷한 상황에서 수년 간 끄집어내왔던 낡은 틀들 중 하나를 꺼내들 것이다. 당신은 이 점을 알고 있다. 일이 으레 그렇듯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으리란 점도 말이다.

우리는 회의를 위해서 의제와 슬라이드와 보고서를 준비한다. 다음 번 모임에 나가서 이야기할 휴가 계획을 완벽하게 만드는 데 시간을 들인다. 그러면서 성품(마음 자세, 사고, 행동)을 설계하는 일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자극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말이다. 성품 설계는 자신을 선 위에 머물게 하고 상호작용, 특히 까다로운 상호작용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다섯 가지 단계만 거치면 된다. 5분만 투자해서 이 활동을 한다면 선 아래의 상황을 시작도 하기 전에 완화시킬 수 있다.

- 「6장 선 위에 머무르는 3단계 전략」 중에서



책을 다 읽고 난 후 멘탈 강화 방법에 대해서는 확신이 선다. 어떤 원리에 의해 우리 멘탈이 대처하는지, 어떻게 강한 멘탈을 가질 수 있는지를 이 책에서 배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어떻게 길들여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가 문제다. 물론 책에 방법이나 지속 가능성을 모두 언급해 놓았다. 또 쉬운 말로 풀어쓰고, 필요한 경우 다이아크램이나 도표 등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많은 방법을 통해 이해하기는 쉬웠다.

한 가지 확신을 준 것은 8가지 비법이 모두 감정이고 마음이다. 이런 마음이 서로 연합하면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이란 믿음이다. 이런 믿음 아래 꾸준히 저자가 제시한 방법대로 멘탈 강화 연습을 꾸준히 한다면 어느 새 매우 높은 수준의 멘탈 소유자가 되리라 자신감이 생긴다.

오래 지속하면 습관이 된다. 이 멘탈 강화 연습도 마찬가지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습관이 되면 그 사람의 성격을 형성하고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의 튼튼한 기반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의 강화 때문에 자기계발 서적을 읽으리란 독자의 생각도 틀리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저자 : 스티븐 클레미치


리더십 컨설턴트이자 강연가, 개인과 조직 문화 코칭 전문 기업 ‘하트스타일’(Heartstyles)의 CEO이자 창립자. 아내 마라 클레미치 박사와 함께 ‘선 위의 마음’을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마음유형분석’ 모델을 개발하였다. 자기가 어떤 마음을 주로 사용하는지, 그로 인해 어떤 행동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지 진단함으로써 더 나은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게 돕는 이 모델은 현재 25개국어로 번역되어 KFC, 피자헛, 타코벨, 유니레버, 아멕스 등 글로벌 기업에서 리더십 프로그램으로 사용되고 있다.|||시드니 대학과 파리 대학에서 임상 심리학과 신경 심리학을 전공한 상담 심리학자. 다양한 조직에서 심리 상담가로 경력을 쌓았다. 심리학 전문가로 ‘선 위의 마음’을 구체화하고 ‘마음유형분석’ 모델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현재 남편과 함께 ‘하트스타일’을 이끌며 전 세계 수천 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리더십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매진하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평점 :
절판



어떤 사회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존재한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부를 쌓은 사람도 있고, 끼니를 잇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사람도 있다. 같은 시대 같은 땅에서 살아도 이런 차이는 발생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돈을 잘 버는 사람과 돈을 못 버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들이 돈 버는 데 관심이나 노력이 있고, 없는 결과라고 단순 평가하기는 어렵다. 돈을 번 사람도, 돈을 벌지 못한 사람도 동의할 것이다. 척어도 노력이나 돈에 대한 관심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구분을 짓는 척도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차이로 빈부의 차이는 인류 시작 이후부터 공동체 안에서 생겨왔을까. 독자는 관심은 크게 갖지 않았지만 부자를 부러워하기도 했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갖고 있는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이다. 스스로 벌어 먹고, 사회의 틀에 맞춰 일하고 먹고, 결혼하고 자녀 낳아 키우고 하는 매우 보통의 사람처럼 살아온 사람일 뿐이다. 특별한 재주도 없고, 그렇다고 신체나 정신에 특별한 이상이 없다. 다만 '부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 없지만 '남에게 손 벌려 먹고 살아서는 안 된다' 정도의 생각은 일생 갖고 살아온 지극히 평범한 보통 시민이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산다. 돈을 많이 벌고, 못 벌고는 개인의 능력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개인의 능력 차이인데 왜 극도의 빈부 차이가 지속될까.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잘못 됐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어느 분야에서 모두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일한다면 그 차이가 돈으로 환산했을 때 수십 배, 수백 배 차이난다고 하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 아닐까.



이 책 『가난의 문법』은 도시연구자 소준철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연구한 결과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소설처럼 허구의 사실을 엮은 것이 아니다. 연구 활동을 꾸준히 해온 저자는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여성 도시 노인의 생애적 특징과 재활용품 수집이라는 일을 통해 가난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어떠한 가난의 경로를 거쳐왔는가? 분기점에서 한 어떤 선택이 그들을 가난으로 이끌었는가? 그들이 살아온 삶, 재활용품 수집을 시작한 이유, 수집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경쟁, 노인들의 지역공동체를 들여다보며 가난의 구조를 배운다. 그 구조는 개인의 노력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여러 가지 문제를 연구한 결과를 갖고 논문 형식의 글을 썼다. 다만 자신이 실제 만난 사람의 익명성 보장을 위해 가상의 인물을 내세울 뿐 그들이 하는 일과 생활 등은 모두 저자가 직접 겪거나, 취재한 후 자료를 더해 연구 분석해 낸 결과물이다. 이런 점에서는 르포르타지 문학이라고 해도 괜찮을 듯싶다. 그러나 이런 분류는 무의미하다. 저자가 소설을 쓰기 위해, 혹은 고발 차원에서 이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도시연구자로서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을 맞닥뜨린 문제의 원인을 추적해 나가면서 얻어낸 연구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도시 빈민들을 연구해 그들의 가난이 사회 제도의 문제점도 한몫한 것이기 때문에 사회 제도의 수립, 정책 과정에서 이들 문제의 보완점이 반영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저자는 ‘윤영자’라는 여성노인의 생애경로를 해부하며 노인들의(특히 여성노인의) ‘가난’에서 구조를 찾으려 시도한다. 윤영자는 개인적으로는, 결혼, 3남3녀의 출산, 그들의 대학 진학, 그들의 결혼, 자식들의 퇴직 및 사업 실패와 금전 요구, 남편의 퇴직, 남편의 질병과 같은 사건사고를 겪었다.

사회적으로는 남방개발(남편의 인도네시아 파견), IMF 경제위기, 북아현동 재개발, 2008년 세계경제위기 등의 경로를 거쳤다. 윤영자는 한때 아현동에 단독주택을 구입할 정도의 부를 축적했지만 이런 개인적/사회적 사건사고를 겪으며 자산을 잃고, 지금은 20만원 남짓 하는 연금과 폐지를 주워 판 돈, 노인일자리사업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합쳐 50만원 남짓으로 한 달을 살아가고 있다. 윤영자씨의 가난은 그녀의 개인적인 선택으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국가와 사회와 시대의 변화 과정에 휘말린 결과다. 저자는 이렇게 윤영자의 생애경로를 좇으며 가난의 구조를 해부한다.

가난한 여성노인에 대한 상징은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다. 대개는 재활용품을 줍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된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광고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한 포스터는 더 노골적이다. “65세 때, 어느 손잡이를 잡으시렵니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아래에는 여행용 캐리어가, 위에는 신문이 쌓인 카트가 그려져 있었다. 국민연금에 가입하면 “노년에 폐지를 팔아 생계를 잇지 않고, ‘품위 있게’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p. 125)



달동네가 재개발되고 판잣집이 사라지면서, 넝마를 입고 고물을 주우러 다니던 넝마주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사람들은 우리사회에서 가난이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가난은 모습을 바꾸었을 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판잣집 대신 쪽방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넝마주이 대신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나타났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그 옛날의 공동체는 사라지고 한낮의 동네에는 일할 곳 없는 노인들만 남았다. 도시의 노인들은 각자도생하며 폐지를 줍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65세 언저리를 은퇴연령으로 정해놓고 그 연령이 지나면 미래세대에게 일자리를 넘기기를, 이제는 쉬면서 사회의 복지제도라는 혜택을 누리기를 ‘강요’한다. 그런데 왜 폐지를 주워 파는 노인들이 있는 걸까? 젊은 날에 저축을 못한 것이, 연금을 부으며 노후 대비를 하지 못한 것이, 자식이 있어도 그들에게 부모의 생활비를 댈 능력이 없는 것이, 과연 노인들의 잘못일까?

리어카나 카트를 끌며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모습은 지금, 우리 시대 가난의 표상이다. 가난의 표상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왔다. 전후 시대에 누더기를 입고 맨발로 미군들에게 껌을 구걸하는 모습에서, 경제성장기 달동네의 판잣집 좁은 부엌에서 연탄불을 때는 모습, IMF 경제위기 이후 도심을 차지한 노숙인의 모습으로.

“가난의 모습은 늘 바뀔 것이다. 다음에 올 ‘가난’이 어떤 모습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p. 9)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가난의 문법이 바뀌었다." 도시의 가난이란 설비도 갖춰지지 않은 누추한 주거지나 길 위에서 잠드는 비루한 외양의 사람들로만 비추어지지 않는다.(p. 28)

거리에서 폐지와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인 리어카나 카트를 끌고 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충 다음의 세 가지 정도로 나뉜다.(세 가지 반응이 혼재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외면하거나, 동정하거나, 두려워하거나.세 가지 반응을 나타내는 무리 중 각자의 사정은 이렇다.

첫째, 외면하는 사람들의 경우다. 아스팔트에서 김이 나게 뜨거운 날, 혹은 언덕길이 빙판이 된 날, 폐품을 잔뜩 쌓아 수백 킬로그램은 될 리어카를 끌고 그 길을 힘겹게 걷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불편한 마음이 절로 든다. 하지만 그들의 처지를 직면하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젊었을 때 저축을 별로 안 한 사람들이겠지, 자식 농사를 잘못 지어서 자식이 생활비도 안 주나 보네. 나는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고 연금도 붓고 있으니 저런 노인이 될 일은 없을 거야. 외면하는 이들은 그들의 처지가 ‘내 일’은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고는 고개를 돌린다.

그다음으로 ‘재활용품 수집 노인’이란 단어다. 지난 몇 년간의 조사를 통해, ‘폐지 줍는 노인’이란 사회적 호칭의 한계를 느끼게 됐다. 우선 그/녀들은 폐지만을 줍는 게 아니며, 재활용이 가능한 폐품을 줍는다. 다시 말하자면, 그/녀들은 국가와 산업이 산정한 재활용 체계의 말단에서 ‘재활용’ 가능한 폐품을 수집하여 판매하는데, 이는 폐품을 재활용 체계로 밀어 넣는 비공식적인 현상이다. 단순히 ‘폐지 줍는’이라고 표현할 때, 이 현상의 문제를 은폐하고 개인의 문제로 따지게 만드는 상황이 발생한다.(p. 14~15)



둘째,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는 어떤 이들은 동정하기를 택한다. 폐지 줍는 노인들은 연민의 대상이 된다. 두 번째 경우에 속하는 이들은 가끔 노인들의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주기도 하고, 어디에 폐품이 많이 쌓여 있다고 알려주기도 하고, 집에 모아둔 폐품을 노인들에게 건네기도 한다. 이들은 늙어서도, 몸이 아픈데도, 푼돈을 위해 거리를 쏘다녀야 하는 그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다. 세 번째 경우의 사람들은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다. 그 노인들의 처지가 언젠가 ‘내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이들은 현재의 사회보장 제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노인이 되었을 때 사회보장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며 걱정한다.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여 일찍 은퇴하거나, 질병으로 모아둔 재산을 병원비로 소진할 경우, 자식이 없거나 자식에게 노후의 부양을 기대하지 못하는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고려하며 냉정하게 미래를 계산한다. 하지만 남는 것은 실질적인 대비보다는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커다란 두려움이다. 나도 저런 처지가 되면 어쩌지.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가난의 문법이라고 표현해 가난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 책은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에는 다 사연이 있다. 그리고 가난은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고, 이 가난을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 구조와 정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기회를 주는 내용었다. 이 책은 75세의 재활용 쓰레기를 줍는 여성이라는 가상 인물을 만들어 그들의 삶을 따라가면서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가상의 인물인 윤영자씨의 시간대별 하루 일과와 함께 저자의 그에 대한 사회 문제(또는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들을 수 있다. 윤영자씨의 이야기는 한 편의 소설과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녀의 삶은 소설이 아니다. 70세 이상의 재활용 쓰레기를 줍는 여럿의 여성에 대한 사연을 모아 그들이 특정되지 않도록 섞은 이야기라고 한다. 누군가의 실제 사연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하지만 실제 이야기에 바탕이 있어 허구의 사실이 아니다.


저자 : 소준철


도시사회학 연구자. 가톨릭대학교에서 심리학과 국제관계학을,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다. 도시의 통치술과 하층민의 생계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며, 쓰레기 수거-처리체계, 수용시설, (해적판)출판물 시장에 이르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1970년대의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60~1980년대 서울시의 쓰레기 수거-처리체계 변화를 다루는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연구논문으로 〈정부의 ‘자활정책’과 형제복지원 내 사업의 변화〉가 있다. 서울연구원 ‘작은연구 좋은서울’ 우수논문상(2015)과 제1회 최재석 학술상 우수논문계획상(2020)을 수상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