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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숙제 - 남들처럼 살면 내 인생도 행복해지는 걸까요?
백원달 지음 / FIKA(피카) / 2020년 11월
평점 :
듣도 보도 못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올해 들어 작년과 같은 출근하고 일하고 동료들과 함께 정담도 나누고... 퇴근 후엔 함께 식사도 하고 또는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같이 보내는 일상. 한 번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거의 코로나에 매몰돼 살았다. 나와 가족의 생명이 달린 문제이니 방역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데다 심할 때는 저녁 여가를 보낼 만한 곳도 대부분 문을 닫아 '집콕'이 올해 일상의 가장 큰 부분으로 남는다.
돌아보니 어려운 상황에서 용케도 살아남아 그래도 내년에는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연말연시 역시 집콕의 연속이다. 다행인 것은 백신이 개발돼 접종을 3개월 정도 남았으니 희망이 보이는 집콕이라 예전처럼 암울하지 않아 괜찮다. 또 집콕은 독자에게 책 읽는 습관을 다시 갖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해 한편으론 보람도 있다. 그러나 일상은 되찾으려면 몇 개월은 더 버텨야 하고, 오랜 방역 활동으로 지쳐가고 경제적 부담까지 더하게 된 연말이 을씨년스러워 안타깝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잡고 하루 하루 더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일상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되돌아 생각컨대 우리 일상이 늘 똑같은 것처럼 느껴졌지만 사실은 조금씩 다른 것이었음을 이번 집콕 기간에 발견해낸 수확 중의 하나이다. 집안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 책을 벗 삼고(어쩔 수 없이), 읽은 책에서 가장 많이 조언을 듣은 말, '진짜 나를 찾아노는 시간'을 가진 것도 일상의 중요한 시간 중의 하나였다. 이로 인해 지난 일상이 매일 똑 같은 것처럼 생각됐지만 사실은 조금씩은 달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보다 조금씩은 나아진 나를 찾는' 게 오늘의 나의 일상이다는 점을 확실히 알게 됐다. 그래서 인생은 '일상의 연속'이 아니라 '일상의 합'이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이 책 『인생의 숙제』도 공감 가는 책 중의 하나이다. 일상을 찾아가는 법이 쓰여 있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다. '카툰에세이'라고 독자가 명명한 것은 만화의 형식을 빌었지만 내용이 에세이이고, 지극히 섬세한 감정이나 심리를 다룬 점에서 독자가 임의로 붙인 분류인데 혹시 잘못이면 용서해 주시길...
이 책은 화자(話者)의 일상이 독자와 많이 닮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차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면 어쩌면 너무 다른 얘기가 되기도 한다. 같은 테두리 안에서 남과 여라는 구별만으로도 똑 같은 일상이 전혀 반대일 수 있다는 깨달음도 준다. 독자 입장의 얘기이니 각설하고 내용에 대한 이야기로 옮긴다. 한마디로 찡하고 서글프고 웃기고 직장인으로서 공감 백배의 에세이다.
작중 화자는 아침에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고 밥 먹고 이것저것 하다 보면 벌써 밤 11시. ‘진짜 왜 지금 11시냐고. 말도 안 돼.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남은 시간이라도 알차게 보내고 싶은데 아무것도 하기 싫다. 사실 할 것도 없고. 오늘도 불 꺼진 이불 속에서 습관적으로 SNS를 본다. 의미 없이 흘러가는 휴대폰 화면처럼 나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가는 걸까? 하지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들도 다 그런다길래 참고만 살았더니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잊어버렸다. 서른셋 직장인. 독자와는 퇴근 후 시간이 많이 다르다.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어떤 날은 180도 다른 삶이다.나이도 꽤 차이나는 33세의 여성 직장인과 50대의 남성 직장인의 퇴근 후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개인적인 차이가 아니라 집단적 차이라면 조금은 생각해볼 일이다.
적금, 연금, 보험, 대출...
현재의 나는
늙고 힘없는 나의
노예다.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서만
살아가는 현재의 나는
지금… 행복할까?
- 「오늘 죽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다」 중에서
글자가 쌓여서 글이 되고
글이 쌓여서 한 권의 책이 되듯
나의 시간도
흘러가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가면
좋겠다.
- 「세상 맛있는 것들을 똥으로 바꾸는 쓸모없는 기계」 중에서
나이가 늘어갈 때마다
해야만 하는 것,
하면 안 되는 것,
못 하게 되는 것들도
점점 늘어만 간다.
나이 드는 건 내 잘못이 아닌데.
- 「나이 드는 건 내 잘못이 아닌데」 중에서
날 너무 사랑해서
결혼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결혼할 때 만난 사람이라서
결혼하는 거라는
이런 마음이
그에게서 느껴질 때의
그 상실감
-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야」 중에서
『인생의 숙제』의 유나(작중 화자)는 어느 날 대청소를 하다가 옷장에서 초등학교 때 쓰던 일기장을 발견한다.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면서 어렴풋이 기억을 떠올린다. 어렸을 때 글쓰기를 참 좋아했었다는 점을. 돌이켜보면 완전히 똑같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 어떤 날은 유난히 머리가 잘 되고, 어떤 날은 운 좋게 버스가 일찍 오고, 어느 날은 커피 맛이 더 좋았다. 그래,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정말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독자와는 앞서 언급한 대로 개인적 차이가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면서 차이가 조금씩 발견된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였지? 뭐할 때 행복했었지? 뭔가를 진짜 열심히 해본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더라? 누군가는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유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신춘문예에 투고할 시를 써보기로 한다. 반짝거리던 진짜 나를 찾아가는 빛나는 이야기.
독자와는 개인적인 앞날에 대한 차이가 있고, 좋아하는 것, 해보고 싶은 것도 다르다. 즉 하루종일 일하고 집에와 쉬고 하는 일상은 누구나 비슷하지만 개인적 성격이나 성향, 지향하는 바(인생관이라해도 무방할 듯)에 따라 시간을 다르게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남녀의 성향 차이, 남자직장인과 여자직장인의 사회적 차이, 아내와 남편의 관습적 차이로 여성들이 훨씬 불리한 조건이라는 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나의 실패가
실패인지 아닌지
지금 당장 판단해서는 안 된다.
실패로 일을 마무리한다면
실패는 실패로 끝나겠지만
실패가
앞으로의 삶에 거름이 된다면
실패의 의미는
‘성장’일 테니까.
- 「실패란 실패일까」 중에서
이 책 『인생의 숙제』는 이렇게 1화씩 끝날 때마다 공감되는 글들이 적혀 있다. 이 부분들을 읽는 재미도 크다. 그림으로 다 하지 못한 말을 쓴 것 같기도 하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배려인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보는 재미에 읽는 재미까지 더 흥미롭다. 내용 중 슬픈 부분도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나씩찾아서 이뤄보려는 작중 화자의 뒤늦은 깨달음은 독자를 향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도 생각된다.
행복해 보이기보다는 이제는 정말 행복하다고 이야기할 때까지 삶은 어려울 것이고, 정말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어려운 부분의 10분의 1도 안될지도 모른다는 다소 슬픈 결론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산다.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씩 낫기 때문이고, 그 조금씩 나은 삶이 행복을 앞당겨주고 행복한 시간을 늘려줄 테니까. 그리고 그것들의 합(合)이 자신의 삶이 될 테니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