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 - 아침과 저녁, 나를 위한 인문학 30day 고윤(페이서스코리아)의 첫 생각 시리즈 3부작
고윤(페이서스 코리아) 지음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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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정신 없이 빠르고 복잡하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모든 일은 '빛의 속도'로 처리된다. 지구 상에서 오랫동안 지배자로 군림해 왔던 인류는 그 위치마저 흔들리고 있다. 인류가 만들어낸 '기계'에게 오히려 지배당하는 미래를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거기에 자본주의 사회의 원칙인 '무한 경쟁'에 인간은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과 불안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간 느낌마저 준다.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느라 애쓰고 있는 인류는 자신을 돌보지 못해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특징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채로 인생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우울과 스트레스 그에 따른 신체적인 병은 대게 ‘방치’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신체적인 질환은 심리적으로도 크게 영향을 미쳐 수많은 이름의 정신적 질환들이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이 책 『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는 현대인이 앓고 있는 질환들에 특별한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은 나름대로 치료와 예방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고윤은 흔들리는 우리의 삶에서 그나마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이유는 각 개인만의 원칙과 철학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이 원칙과 철학을 바로 세우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기 위해 집필됐다. 저자는 다양한 멘토들의 성공학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을 더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의 선험적인 행동과 연구는 삶의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최소한의 영감을 독자들에게 선사해 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매일 꾸준한 노력으로 1%씩 성장하는 삶을 전하는 저자는 지금 당신의 인생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것은 ‘철학의 부재’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바쁜 현대인이라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내버려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릴스나 숏츠 같은 소비성 콘텐츠로 도파민 중독에 빠지니 인생이 무너져가는 건 남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는 가벼운 도파민이 아니라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과 인생의 철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처방이다.

이 책은 저자의 전작 『왜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가』에 이은 후속작으로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다. 전작은 현대인의 삶의 지혜를 전할 목적으로 펴낸 격언집인 데 비해 이 책 『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는 심리적 증세를 통한 처방을 위해 각종 질환을 제시하고 치료를 제시한다. 전작에는 저명한 철학자나 심리학자 혹은 자기계발서 저자들이 책에 남긴 말 가운데 삶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한 지혜의 말들이 담겼다. 반면 이번 출간된 책은 현대인들이 노출된 43개에 심리 증후군을 설명하면서 치료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우울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자신을 먼저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집필한 까닭이기도 하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면 '지친 나'를 다독일 줄도 알아야 하며 적당한 쉼을 통해 일상의 여백을 만들기도 해야 한다고 저자는 책을 통해 주장한다. 

이에 따라 이 책 『왜 당신은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가』는 현대인이 가장 많이 겪고 있는 심리 증후군 43개를 토대로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마음 챙김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에 존재하는 심리 현상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고장난 점을 찾으며 회복의 시작점에 설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누구나 많이 들었을 PTSD나 번아웃 같은 대중적인 증후군도 있지만, 아도니스, 침묵의 나선, 아스퍼거 증후군 같은 현상도 충분히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 될 수 있기에 다채로운 시선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어려운 철학과 두꺼운 책이 부담스러운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독서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치열한 삶에 무너지고 있다면 이 책으로 '죽어가는 나'를 되살려 볼 것을 권유한다. 저자는 책의 〈서문(프롤로그)〉를 통해 분석 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Carl Gustav Jung)의 명문장을 제시한다.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들의 결정체가 아니다. 나는 내가 선택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 문장은 칼 융에 관한 책을 읽어본 독자들에게는 낯익은 말이다. 다만 그 정확한 뜻은 모르더라도. 칼 융의 분석 심리학을 말하는 대표적 명언으로 자주 인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도 이 문장을 비로소 이해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한다. 묵은 때를 벗겨내듯, 항상 들고 다녔던 오랜 짐을 벗어 던지듯 과거에 얽매인 나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고 밝힌다. 저자는 "오랫동안 완벽함을 좇았고, 닿을 듯하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목표를 향해 끝없는 경주를 벌이는 것처럼 학창 시절에는 100점 혹은 통과를 목표로 했고, 직장에서는 실수 없는 인재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며 세상의 기준표에 나는 낙제하고 말았다. 사회가 말하는 완벽함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갔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삶은 멀어져갔다."(p.3~4) 그런데 흥미롭게도 삶에 대한 괴리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건 존 레전드(John Legend)의 노래 가사였다고 털어놓는다. 어쩌면 저자가 살아온 여정이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일반 국민들의 삶일 것이다. 

"All your perfect imperfection.(당신의 모든 완전한 불완점함.)" 저자는 〈All of me〉에 나오는 가사를 머릿속으로 생각하다 홀로 삶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토록 불완전하고 불안정했던 삶은 고유한 삶으로서의 완전함을 채워 가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저자가 숨기려 했던 결함과 상처는 오히려 독특한 빛깔을 완성해 주는 요소였으며 과거의 모든 경험은 비료가 되어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저자의 이같은 경험을 발판 삼아 오랫동안 공부하고 연구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치료와 자기계발을 병행하는 독자들을 위해 모델을 제시한다. 이 책에는 인간의 불완전함이 만들어 낸 심리 현상과 삶, 그리고 죽어 가는 자신을 소생시켜 주는 단초가 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방치하고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던 사람들이 과거를 딛고 새롭게 출발하는 발걸음을 내딛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은 쓰였다. 

저자는 먼저 스스로에게 우리는 진정 나를 보살피며 살고 있을까? 혹시 타인을 위해 희생하느라 바쁘고, 보이는 껍데기에 혈안되어 죽어가는 나를 방치하고 있진 않은가? 하는 질문을 해볼 것을 권유한다.

진정 행복한 삶을 꿈꾼다면 ‘끌려가는’ 삶이 아닌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진리를 깨닫기는 어렵지만 완벽주의에서 벗어난다면 우린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곪았던 상처를 치유하며 잃었던 생기를 되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인이 겪고 있는 증후군은 이미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 책은 그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심리 현상 43가지를 큐레이션하며 삶을 고찰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준다.

이 책을 통해 여러 증후군에 대해 알아갈수록 독자들은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점검할 수 있다. 특히 결핍과 부합되는 현상을 발견한다면 지금 스스로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앞으로 생길 수 있는 마음의 병을 미리 예방할 수도 있으며 주변에 존재하는 소중한 이들을 지켜줄 수도 있다. 앞으로 펼쳐질 이 책의 여정은 새로운 활력을 얻는 새로운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진정한 성장을 경험할 수 있으므로 이 책을 통해 지친 심신을 달래고 새로운 삶의 기준점을 세울 것을 저자는 권유하고 있다.

저자가 책을 읽기 전의 독자들에게 미리 덧붙일 말은 “이제 남은 시간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다. 이제부터는 당신 홀로 삶이라는 여정을 떠나야 한다. 앞으로의 길이 언제나 평탄할 것이라 기대하지 마라. 좋은 일만 가득하리라 기대하지 마라.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당신이 겪는 모든 감정과 경험은 결코 그저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라는 존재의 일부이며, 그 모든 조각이 모여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이룰 것이다. 복잡하고 모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당신만의 의미를 발견해 나가길 바란다.”는 말을 전한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43개의 심리 증후군이 증상과 치료의 방법 등에 대해 짤막하지만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설명하고 있다. 미국에서 분류되는 기준에 의해 증후군은 분류돼 있으며, 증상과 치료법도 이에 따른다. 가장 많이 들어본 「PTSD」가 가장 먼저 제시된다. 또 저자가 주 100시간씩 일하며 겪은 「번아웃」이 마지막 43번째 제시된다.

모두 심리적 병인을 갖고 있으며 나타난 증세의 원인과 정도가 다른데 대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저자는 이 점을 감안해 일반적인 견지에서 서술하고 있으며 저자 스스로 겪은 증세에 대해서는 덧붙이기도 한다. 먼저 '잊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다'는 「PTSD」다. 이 단어 PTSD는 단어의 원래 의미와 다르게 자주 사용된다고 한다. 그것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회사 생활이나 혹은 친구들끼리 장난치던 중 트라우마와 비슷한 느낌을 받으면 '아, PTSD 올 것 같아"라는 말을 종종한다. 〈PTSD〉의 진짜 의미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줄여 부르는 말로, 극심한 외상 사건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 장애를 일컫는다. 여기서 극심하다는 말의 의미는 전쟁, 자연재해, 심각한 사고, 폭력, 성폭력과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의미한다. 실ㄹ제로 오프라 윈프리는 어린 시절 성폭력을 당한 경험으로 인해 생겨난 PTSD 증상과 오랫동안 싸워왔음을 밝히기도 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덧붙인다.

"그녀처럼 나도 11년간 PTSD와 싸워오고 있다. 2014년 5월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직장을 구해 첫 출근을 앞둔 3일 전, 나는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호지킨 림프종이라는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가장 젊고 건강했던 25살 초여름, 내 인생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멈춰버리고 말았다. 충격적인 사건이었음에도 왜 의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서울대학교 병원 맞은편 골목에 위치한 브런치 집을 찾아가 혼자 밥을 꾸역꾸역 먹었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 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하필 암 판정을 받은 날 혼자 밥을 먹게 되다니, 내 인생이 한없이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렇게 일주일 뒤 치료가 시작됐다. 아프다는 소문이 자자한 골수검사를 거쳐 본격적인 항암요법까지. 의사 선생님께서는 처방받을 치료약이 머리카락이 다 빠지는 약이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날 저녁, 스님처럼 반질반질한 대머리가 되었다."(p.11)

치료하는 동안 겪었던 정신적·육제척 고통은 극심했으며, 치료 후에 오는 '정서 조절의 어려움'을 항암 PTSD*로 얻게 되었다고 한다.

* 항암 PTSD : 암 관련 PTSD는 Cancer-Related(암 관련)이라는 단어를 축약해 CR-PTSD라 부른다.(저자 주)

여기에서 43개의 심리 증후군 모두를 소개할 수 없으니 몇 개의 이름만 나열하고 이해는 책을 통하길 바란다.(앞의 숫자는 책 목차에서 게재 순서 번호다) 2. 「만성피로 증후군」, 12. 「착한아이 증후군」, 13. 「야스퍼거 증후군」, 19. 「리플리 증후군」, 22. 「가면 증후군」, 26 「게슈탈트 붕괴 증후군」, 31. 「침묵의 나선」, 36. 「리셋증후군」, 37 「무드셀라 증후군」, 40. 「팅커벨증후군」, 41. 「방관자 효과」, 42. 「행복한 무지」 등이다.


내가 더 나아질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상황을 리셋시키는 것보단 결점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힘들다는 이유로 모든 걸 회피하고 있다면 당신에게 “비커밍”이라는 마법의 단어를 건네고 싶다. 사실 나는 인생의 성공에 대단한 방법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한 사람이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믿음을 바꾸고, 인생을 바꾸는 것만큼 빠르고 강력한 해결책은 없기 때문이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은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은 절대 부인할 수 없다. 만약 인생을 바꾸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면, 그 간절함을 주변 상황이 아닌 나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데 쏟길 바란다. 결국, 모든 것은 당신의 몫이다. 그저 더 나은 무언가가 되어 가는 비커밍Becoming에 집중하면,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리셋될 것이다. 오늘 하루만큼은 나라는 사람을 이제까지 알던 그저 그런 사람으로 평가하지 말고,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으로 바라봐주면 어떨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당신은 이미 그 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 작은 변화가 지속적으로 쌓이면 결국 큰 변화를 가져온다.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하는 일, 내가 품는 생각 하나하나가 나를 만들어간다. 그러니 부정적인 생각이나 회피 대신, 긍정적이고 대담한 태도로 삶을 이끌어가라.(p.186~187) - 「0부터 시작할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하겠는가」 중에서


저자 : 고윤(페이서스 코리아)


1년 6개월 만에 20만 팔로워를 확보한 1,000만 독자의 동기부여, 성공학 콘텐츠 전문가이자 대기업, 공기업, 고등교육기관 등 100여 회 이상의 강의경력을 가진 강연가이다. 현재는 다양한 이력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삶을 회복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2030 성공학 전문가로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20대에 걸렸던 혈액암과 투병 과정을 통해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으며 가장 절망스러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력뿐만 아니라 만족감Wholeness을 채우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pacerskorea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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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 흔들리는 인생을 감싸줄 일흔일곱 번의 명시 수업
장석주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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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는 50년 가까이 글을 써온 시인이자 작가인 장석주의 명시 해설서다. 특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지친 마음에 다시 한 번 삶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시들을 추려 모아 시의성도 매우 탁월하다. 저자가 시를 쓰기 시작할 무렵 시와 삶의 관계를 확실하게 연결시키는 동기부여가 된 시들이 많아 시인의 삶에 대한 시선을 느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왜 시가 필요한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깊게 생각해볼 단초를 제공한다. 이 책은 '만추'로 표현되는 이 시기에 읽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하게 시인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다는 독자의 생각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명시'가 우리에게 선물처럼 다가올 때 저자 특유의 느낌과 경험을 살짝 귀띔하는 문학적 센스로 큰 울림을 줄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천 개의 벼랑이 있고, 천 개의 벼랑을 넘으려면 천 개의 희망이 필요할 테다. 하지만 시(詩)는 현실에서 아무 쓸모도 없다. 시는 그토록 무용하지만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p.127)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자신의 문청(문학 청년) 시절을 잠깐 되돌아본다. "고양이가 오듯이 시가 왔다. 시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왔지만 그건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고, 끔찍한 아름다움이 태동하는 순간이었다."고 저자는 읊조리듯 털어놓는다. 시는 그 순간부터 저자에게 생동하는 기쁨이자 살아야 할 이유였다. 시가 생의 복잡함을 헤치고 첫 번째로 달려오던 그 파릇하던 시절, 저자의 마음에는 티끌이나 불순함 따위는 단 한 점도 없었다고 회고한다. 자신의 생애에서 워낙 오래 전의 일인 듯 "시 한 편을 얻을 때마다 기쁨으로 날뛰었겠지"라고 표현한다. 저자가 열다섯 살, 열일곱 살, 스무 살 때이었으니 이해할 만하다. 저자의 이 표현은 지금은 그때의 순수함도, 생동감은 잃어버렸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당시 저자는 "시가 내게 어떻게 왔던가?"라는 자문에 "릴케가 기쁨에 젖은 목소리로 첫사랑을 노래하듯 나는 노래했을 거다"라고 자답한다.

"사랑이 어떻게 너에게로 왔는가. / 햇살처럼 꽃보라처럼 / 또는 기도처럼 왔는가. // 행복이 반짝이며 하늘에서 몰려와 /날개를 거두고 / 꽃피는 나의 가슴에 걸려온 것을······" 시는 햇살, 꽃보라, 기도였다고 말한다. 시가 저자의 메마른 가슴에 빗방울과 씨앗을 뿌린 것이다.

앞서 독자가 언급한 시 한 편을 얻을 때면 기쁨으로 날뛰었을 저자가 이제는 순수성과 생동감에서 빛이 조금은 바랬을 것으로 추측했던 이유가 우리 사회의 풍요로움과 관계가 깊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충격적 고백을 과감하게 한 이유는 시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지 않고, 세상을 바꾸지도 못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희망을 속삭여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망가지고 부서진 채로도 살아갈 수 있음을 나지막이 읊조리는 유일한 언어, 시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살짝 비틀어 말한 것으로 이해했다.

저자는 이제 출간한 책이 100권을 넘고, 50년 가까이 시를 읽고 써왔다. 시인들의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번에 쓴 시 담론집인 이 에세이에 흔들리는 어른들에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저자가 77편의 명시와 해설을 담았다. 나태주, 백석, 칼릴 지브란, 메리 올리버 등 전 세대가 추앙하는 작품을 정성껏 가려 뽑고, 저자의 사색과 통찰이 더해진 글을 더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시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삶과 시를 연결한 해석은 장석주가 보여주는 시와도 맥락이 일치한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현대시는 어렵다"는 이유로 읽기를 거부하고 그래서 점점 잊어지게 되었다라는 사실을 되돌아보기에 저자 장석주의 이 시 담론은 매우 적절하다. 저자는 독자의 이 개인적인 변명을 다 이해한다는 듯 대학 입시의 카드를 꺼내든다. 오로지 정복의 대상이었고 다른 해석이 적용되지 않던 대입 수험생 시절처럼 시를 대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저 읽고 음미하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시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독자의 자신감을 조금이라도 일으켜 세워준다. 현실이 각박하고 마음에 여유가 느껴지지 않을수록 시와 가까워져야 한다는 저자의 마음을 완전 공감한다. 이 책은 소설처럼 내리 읽어 치우는 것보다 한두 편이라도 이 가을 꾸준히 읽을 것을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시와 함께 사색하기 좋다는 '만추'라서 더 좋다"라고 언급한 독자의 마음을 궤뚫는 듯하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나뉘어 있다. 1장 〈‘괜찮다’는 말보다 더 깊고 진한 위로가 필요할 때〉, 2장 〈어느 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온 문장들을 읽는다〉, 3장 〈시란 그토록 무용하지만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만드는 것〉, 4장 〈어쩌면 시를 잊고 살았기 때문에 그토록 외로웠던 것일지도〉, 5장 〈그래서 모든 날, 모든 순간에 저마다의 시가 있어야 한다〉 등이다. 5장에 77편의 시가 수록된 이 책의 구성이 어떤 이야기 책처럼 유기적이지는 않다. 모두 저자가 읽었던 시 중에서 어떤 시는 영감을 주었고, 또 어떤 시는 감동을 주었다. 어떤 시는 삶의 즐거움을 전달하고, 어떤 시는 사랑의 감정을 뭉클하게 받았던 시들이다. 시 뒤에 해설처럼 붙어 있는 길지 않은 저자의 글들은 짧아서 임팩트는 오히려 강하다. 시인이어서 간결한 언어로 이미지 상징이나 은유로서 전달하려는 심상을 강렬해진다. 한 번 읽고 버릴 문장은 한 문장도 없다.

저자는 전작 『은유의 힘』을 출간하고 가진 인터뷰에서 "보통 시인들이 시집 한 권을 완성하는 데 짧게는 삼 년에서 보통 오 년, 길게는 십 년도 걸리거든요. 그걸 단숨에 집어 삼키려고 하면 안 돼요. 시인이 그것을 내놓기까지 창작과정에서 겪은 것들을 어렴풋하게나마 따라가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은 그 연장선 상에서 읽으면 글맛과 시맛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많은 이가 본인이 가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고,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만 곱씹는다. 그리고 더 값진 것, 더 높은 자리를 얻는 데만 급급하고, 동시에 타인과의 비교를 놓지 못하며 혹여 뒤처지거나 부족해 보일까 봐 가진 것을 과시한다. 그렇게 애씀에도 불구하고 삶은 늘 허기지고 목마르며, 더욱더 마음의 성찰을 잃어가고 있다"고 저자는 이 시대를 진단한다.

그런 세상에서 힘겹게 버텨내는 우리들에게 이 책 『삶에 시가 없다면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는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때로는 투지를 불태우라고 격려하기도 한다. 저자는 ‘시’가 가진 힘을 믿는다고 밝힌다. 시가 가진 힘은 시인에게는 시를 쓰는 힘의 원천이다. 저자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삶의 이유를 확실하게 배운다.

“삶이 외롭고 허무하게 느껴질 때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같은 저자의 말은 힘들 때 마주하는 시 한 편이 누군가의 ‘괜찮다’라는 말보다 더 깊고 진한 위로를 준다. 또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바쁜 일상에 매몰돼 있던 생각과 감정의 확장을 꾀할 힘을 준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과잉의 시대에서 가장 짧은 문학이라는 성격 그 자체로 보여주는 덜어냄의 미학을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저자가 시를 쓰는 까닭이다. 

책에 수록된 빈센트 밀레이의 시 「봄」은 '4월아, 너는 무엇 때문에 다시 돌아오는가?'로 시작한다. 봄은 새싹이 돋고, 생명은 약동하는 계절이다. 봄 풍경은 우리에게 희망을 노래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속삭이는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이 시를 읽을 때면 저자는 뒷골이 송연해지고 소름이 돋았다고 밝힌다. 새로운 시작을 상징하는, 새싹이 돋는 봄이 아닌 ‘구더기가 죽은 이의 머리통을 갉아먹는 광경’의 봄을 직시하라고 시는 명령한다. 생명이 돋아나는 그 계절에도 죽음을 되새길 것을 요청하며 봄을 재정의하는 것이다. 저자의 시 「밥」도 이런 시작(詩作)의 예를 보여준다. “한 그릇의 더운 밥을 얻기 위하여 /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라는 구절이 있다. 먹고사는 일의 고달픔, 즉 살아남기 위해 택한 부조리한 타협과 현실에의 안주 그사이를 ‘밥 한 그릇’에 비유해 표현한 것이 아주 절묘하다. 

또 사랑의 쓸쓸함과 아름다움도 빼놓을 수 없는데, 「치자꽃 설화」는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어깨를 보며 /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라는 구절을 통해 감정의 과잉이 아닌 감정의 절제 사이에서 더 큰 슬픔이 번져나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더불어 시는 꼭 시적 의미나 깨달음만 던져주지는 않는다. 윤동주의 시 중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는 「소년」의 '하늘을 들여다보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라는 시구를 되뇌면 단순한 읽기를 넘어 색채가 주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끼게 되고,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라는 구절을 곱씹다 보면 우리말이 낼 수 있는 소리와 표현의 신비로움까지 알게 된다. 그렇게 내 마음에 와닿는 시구를 읊다 보면 자연스럽게 번잡함은 고요함으로, 불안감은 평온함으로, 그리고 일상 속 멈춰 있던 감각이 새롭게 물들게 된다.

1장 첫 글은 월트 휘트먼의 시 『풀잎』에 관한 저자의 해설이 조금 붙어 있다. 

인생은 당신이 배우는 대로 형성되는 학교이다. 

당신의 현재 생활은 책 속의 한 장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지나간 장들을 썼고, 뒤의 장들을 써나갈 것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의저자이다.

사람이 자기 조국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왜 국경에서 멈추는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당신의 사상을 하늘 위해 불로 새겨놓은 것처럼 그렇게 사고하라.

진실로 그렇게 하라.


휘트먼은 원시 자연의 모습에서 인간의 우애와 사랑과 죽음 및 종교 등에 관한 새로운 애상을 힘찬 리듬으로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는 근대 자유시의 선구적 작품이다. 휘트먼은 정식 교육은 조금밖에 받지 못했으나, 사환·인쇄공·교사·신문기자 등을 전전하는 가운데 서부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책에서보다는 민중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민중 시인이기도 하다. 이 시는 미국 민주주의와 서부 개척의 정신을 밑바탕이 되었다고도 평가된다. 

저자 장석주는 이 시가 삶의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다고 평한다. 저자는 이 시집 『풀잎』을 미국의 가장 위대한 시라고 표현하면서, 그는 진실을 옹호하고 악에 용기 있게 맞서라고 주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대숲 아래서」(나태주)는 조촐한 산골 생활에 자족하며 사는 사람의 참된 생각으로 가득 찬 시다. 달빛, 대숲, 밤안개, 달님, 우물이 어우러진 시를 읽으면서 나 역시 참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디 한 군데 삿된 생각이 스며들지 않은 시, 한 점 오욕이나 티끌도 묻히지 않은 시, 이런 무욕한 시는 순수하게 산 이만 쓸 수 있다. 읽고 나면 머리를 찬물로 헹군 듯 맑아지는 시, 삶의 올바름으로 이끄는 시다. 이게 좋은 시가 아니라면 어떤 시가 좋은 시인가? 스무 살 무렵 이 시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좋은 시란 좋은 삶에서 나온다는 걸 벼락같이 깨달은 탓이다.(p.214~215)


쉼보르스카는 시 「두 번은 없다」에서 사물과 현상에 대한 그의 관찰은 모호함이 없음을 보여준다. 그는 평이한 소재를 다룰 때조차 투명한 관찰로 명석한 시를 빚어낸다.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라고 노래한 시구도 명석해서 한 점 모호함도 끼어들 여지가 없다. “두 번은 없다”는 것은 인생의 한 핵심을 꿰뚫는다. 누가 두 번의 생을 꿈꾸는가? 우리의 생에서 반복되는 하루는 없다. 태어나서 사는 동안 똑같은 입맞춤, 똑같은 눈빛을 만날 수는 없다. 우리의 존재함은 돌이킬 수 없는 일회성으로만 견고하다. 우리 존재가 숭고하고 애틋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일회성으로 휘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라고 썼을 테다.(p.218)


저자 : 장석주(張錫周)


날마다 읽고 쓰는 사람. 시인, 에세이스트, 인문학 저술가. 그밖에 출판 편집자, 대학 강사, 방송 진행자, 강연 활동으로 밥벌이를 했다. 현재 아내와 반려묘 두 마리와 함께 파주에서 살고 있다. 1955년 1월 8일(음력),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였다. 나이 스무 살이던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시가 당선하고, 스물 넷이 되던 1979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각각 시와 문학평론이 입상하면서 등단 절차를 마친다. ‘고려원’ 편집장을 거쳐 ‘청하’출판사를 직접 경영하는 동안 15년간을 출판 편집발행인으로 일한다.

동덕여대, 경희사이버대학교, 명지전문대에서 강의를 하고, 국악방송에서 3년여 동안 [문화사랑방], [행복한 문학] 등의 진행자로도 활동한다. 2000년 여름에 서른여섯 해 동안의 서울생활을 접고 경기도 안성의 한적한 시골에 집을 짓고 전업작가의 삶을 꾸리고 있다. 한 잡지는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소장한 책만 2만 3,000여 권에 달하는 독서광 장석주는 대한민국 독서광들의 우상이다. 하지만 많이 읽고 많이 쓴다고 해서 안으로만 침잠하는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니다.

스무 살에 시인으로 등단한 후 15년을 출판기획자로 살았지만 더는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되자 업을 접고 문학비평가와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해왔다. 급변하는 세상과 거리를 둠으로써 보다 잘 소통하고 교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성에 있는 호숫가 옆 ‘수졸재’에 2만 권의 책을 모셔두고 닷새는 서울에 기거하며 방송 진행과 원고 집필에 몰두하고, 주말이면 안식을 취하는 그는 다양성의 시대에 만개하기 시작한 ‘마이너리티’들의 롤모델이다.”

저서로는 『몽해항로』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일요일과 나쁜 날씨』, 『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 『이상과 모던뽀이들』,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일요일의 인문학』,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고독의 권유』, 『철학자의 사물들』,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시간의 호젓한 만에서』,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공저) 등이 있다. 애지문학상, 질마재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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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아이 캐드펠 수사 시리즈 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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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귀신 들린 아이』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이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21권이 18년에 걸쳐 출간됐다고 하지만 각 권마다 독립된 사건을 다루니만큼 어느 책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다만 독자처럼 가톨릭이나 기독교를 잘 모르는 독자들은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이나 지명 및 역사적 용어 등은 미리 알아두는 것이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실명으로 나오는 도시, 성당, 수도원 및 수도원장 이름 등에 대해서 헛갈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별도로 백과사전이나 교회용어사전을 찾아 뒤질 필요는 없다. 이 책 뒷 부분에 주(註)를 저자 엘리스 피터스가 따로 지면을 할애해 별도로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 『귀신 들린 아이』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서기 1140년 9월 중순, 슈롭서의 두 영주, 즉 슈루즈베리 북쪽에 사는 영주와 남쪽에 사는 영주가 같은 날 수도원으로 심부름꾼을 보내왔다. 각각 자기 집안의 아들을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넣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 아이는 교단으로 들어왔고, 다른 한 아이는 거부되었다. 수도원 측에서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것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었다." 저자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주인공 캐드펠 수사는 신에게 자신을 의탁한 수도사이며,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전직 군인이자, 약제학 전문가이다. 이러한 캐드펠의 삶의 이력은 덜리 지역 약국의 약 조제사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해군으로 참전했던 저자 엘리스 피터스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처럼 보인다. 캐드펠 수사의 인간적 따스함과 영적인 깊이 역시 작가 자신의 성숙한 내면을 반영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 : 잉글랜드 슈롭셔주에 위치한 수도원으로, 원래 성 베드로에게 헌정된 작은 목조 교회였으나 11세기 후반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두 사도에게 헌정한 석조 건물로 개축되었다.

저자 엘리스 피터스는 시리즈 전편을 통해 중세 영국을 통째로 옮겨다 놓은 듯한 치밀한 묘사,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희로애락을 충실히 구현했다. 이 시리즈에서는 인간에 대한 신의 연민을 닮은 탐정 캐드펠의 시선을 느낄 수도 있다. 또한 독자에게 중세의 수도원에서 저잣거리로, 안개 낀 다리 밑에서 허브밭과 약제실로 종횡무진 여행하는 재미와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어느 날 귀족 가문의 젊은 청년 메리엣이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며 수도원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이 청년은 수도사가 되기에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그의 표정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했고, 수도원의 규율에 적응하지 못하며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밤마다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나고, 이를 목격한 다른 수도사들은 그의 영혼이 고통 속에 갇혀 있다고 믿는다. 특히 메리엣이 악몽을 꾸는 원인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점차 커져간다. 메리엣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있는 듯 보였고, 그의 이상한 행동은 수도원 전체에 불안을 안겨준다.

이 와중에 왕의 특사로 활동하던 한 성직자가 인근 지역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 성직자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었던 터라, 그의 실종은 지역 내에서 큰 논란이 된다. 실종된 성직자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그의 행적을 마지막으로 본 이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기 시작한다. 메리엣의 이상 행동과 실종된 성직자의 사건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직감한 캐드펠 수사는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조사에 나선다. 수차례의 탐문 끝에 캐드펠 수사는 귀족 가문 내에서 벌어진 갈등과 정치적 음모, 그리고 그로 인해 파생된 비극적인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게 된다.


"제 형태를 잃지 않은 채 숯으로 화한 통나무들이 굴러떨어지면서 주위에 매캐한 재의 연기를 피워 올리는가 싶더니, 나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메리엣의 발치께로 굴러떨어졌다. 얼핏 보아서는 식별하기 힘들 만큼 까맣게 그을리고 갈라진, 바싹 마른 가죽으로 된 물건. 기다란 앞부리에 변색된 버클이 고정되어 있는 승마화였다. 그 승마화에서 길고 딱딱한 것, 불에 타 너덜거리는 넝마들 사이로 상아처럼 하얗게 빛나는 어떤 것이 비어져 나와 있었다. 메리엣은 영문을 모르고 한동안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p.180~181)

저자는 신에게 자신을 의탁한 수도사이며,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전직 군인이자, 약제학 전문가인 캐드펠 수사의 요즘 말로는 탐정이나 수사관의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캐드펠 수사는 약초를 이용한 범죄부터, 당대 사람들의 종교적 신념, 내전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권력 다툼까지, 중세 유럽의 사회적 배경과 정치적 갈등을 손에 잡힐 듯 잘 파악하고 있다. 중세의 수사는 모든 일의 중심이 수도원에 의해 처리되고 수도원이 일반인들의 중심에 있다. 종교적 중심일 뿐 아니라 경제·사회의 중심 역할을 맡았다. 수도원 중심의 중세 사회는 이 비밀스러운 공간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된 사회였다. 심지어는 전쟁에도 관여하는 권력의 집합체이기도 했다. 살인 사건이나 정치적 역학 관계의 중심엔 늘 수도원이 있는 사회다. 이를 저자 피터스는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들은 고도의 지적 게임 같은 살인 미스터리의 성격을 지녔으면서도, 중세 시대의 복잡한 사회 구조와 인간의 존재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추리소설을 탐독하는 독자에게 독특한 재미와 대체 불가능한 감동을 선사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 엘리스 피터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으로 참전했다고 알렬져 있어 이 경험이 소설 집필에 많은 도움이 됐을 거란 추정은 쉽게 가능해진다.


"청년 곁에서 그의 어깨를 장난스레 두드리는 연인 또한, 청년과 짝을 이룰 만한 여자였다. 쭉 뻗은 날씬한 몸매에 제 오빠를 닮은 외모. 오빠의 훤칠하고 매혹적인 면면이 우아하고 화사한 아름다움으로 탈바꿈한 것 같은 그런 인상이었다. 타원형의 얼굴은 반투명해 보일 정도로 고왔으며, 눈은 오빠 못지않게 맑고 푸르렀다. 붉은빛이 감도는 곱슬곱슬한 금발이 그녀의 동그스름한 얼굴 양쪽을 감싸고 있었다. 이것으로 메리엣이 성직자가 되고자 한 이유는 충분히 설명된 셈일까? 메리엣은 사랑에 좌절한 나머지, 그리고 형의 행복에 실낱만큼의 슬픔이나 고통의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으려는 마음에 여자들이 없는 세계로 미친 듯 도피하려 한 것일까? 하지만 그는 제 고통과 번민의 상징을 수도원으로 가지고 들어오지 않았는가. 그게 과연 이치에 맞는 일일까?"(p.126~127)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인간의 도덕적 갈등, 죄책감과 구원을 다룬 작품으로, 엘리스 피터스의 이야기 구성력과 깊이 있는 심리 탐구가 눈에 띄는 소설이다. 여덟 번째 작품 『귀신 들린 아이』는 수도원에 들어온 신입 견습 수사의 어두운 비밀에 접근해 들어가는 스토리다. 저자 피터스는 인물들의 내면적 갈등, 중세 사회의 다양한 모습 등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 창출에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다. 이들 캐릭터를 통해 인간 본성과 도덕적 선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인기를 끈 이유다.

수도원에 새로 들어온 견습 수사의 괴성과 고함으로 수도원 내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떠는 소동이 벌어지는 와중에 슈루즈베리를 지나던 한 사제가 돌연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연히 캐드펠 수사는 사건을 밝히는 일에 뛰어든다. 캐드펠은 동떨어진 두 사건이 서로 연관돼 있다고 예감한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정황 속에서 캐드펠 수사는 사건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귀신 들린 아이』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신앙, 그리고 죄책감이다. 메리엣이라는 인물은 수도원에 들어옴으로써 과거의 죄로부터 도망치고자 했지만, 죄책감은 그를 밤마다 괴롭히고 그의 심신을 망가뜨린다. 캐드펠 수사는 사회의 법과 질서보다는 인간의 감정과 내면의 진실에 더 깊은 가치를 두고 사건을 해결해나가고자 하는데, 그가 고심한 부분은 인간이 자신의 잘못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진정한 용서와 구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 작품은 뛰어난 이야기 구성력과 심리적 깊이가 돋보인다. 추리소설적 재미뿐 아니라, 도덕적 선택의 중요성, 죄책감과 용서의 의미를 다룸으로써 짙은 여운을 남기는 수작이다. 캐드펠 수사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고 기지 넘치는 다면적 매력을 한껏 뿜어낸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역사와 추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라는 데 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스티븐 국왕과 모드 황후 사이의 왕위 계승 내전으로 혼란스러웠던 12세기 중세 잉글랜드로, 정치적 음모와 전쟁의 여파가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소설 속 사건들을 일으키고, 전쟁과 혼란 속에서도 평화와 정의를 추구하던 캐드펠은 각종 살인사건과 비극의 진실을 좇게 된다.

사건 해결을 주도하는 캐드펠 수사는 완전무결한 순백의 성직자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갈등을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 치밀한 추리력과 과감한 행동력을 발휘하면서도 연민이 가득한 시선으로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을 끌어안으며, 인간의 심리, 선과 악, 정의와 용서의 복잡한 본질을 탐구한다. 이러한 캐드펠 수사의 인간적 면모는 단순한 사건 해결을 넘어 죄와 용서, 정의와 자비 등 삶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캐드펠 수사가 신념과 연민 사이에서 매순간 갈등할 때마다 독자들도 그 고뇌를 함께 느낄 수밖에 없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인문학적 성찰까지 아우르는 역사추리소설의 원형이자 ‘지적 미스터리’ 고전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이 같은 특성 때문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 22개국에서 번역 소개된 밀리언셀러로, 영국 BBC에서 드라마화되기도 했다고 한다. 장장 18년 동안의 집필 끝에 1994년에 완성됐으며, 국내에선 1997년에 처음 소개됐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되는 개정판은 쉽게 읽히는 문장, 긴박하게 전개되는 스토리, 치밀한 추리의 세계, 생생한 묘사 등 원텍스트의 묘미를 최대한 살려 편집하였으며, 세련된 디자인으로 역사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만족시킬 것이다. 이후 21권까지 순차적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그건 사실입니다.” 캐드펠은 조용히 대꾸했다. “그 아이가 자신의 죽음을 얼마나 가까이 느끼는지 직접 얘기해보고도 모르겠습니까? 하긴, 그건 당신도, 또 우리 모두 마찬가지지. 다들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죽음이라는 병을 안고 나오잖습니까. 태어난 날부터 내내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셈이에요.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 그 시간을 보내느냐 하는 겁니다. 당신도 그 아이의 말을 들었죠. 그는 자기가 피터 클레멘스를 살해했다고 자백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 소문이 퍼지지 않았을까요? 그건 나와 마크 수사, 그리고 휴 베링어를 빼면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메리엣은 사법 당국에서 자기를 중범으로 감시하고 있으며, 그 헛간이 곧 감옥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 당신에게 분명히 얘기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애스플리. 그의 자백을 들은 우리 셋 가운데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다들 그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마음 깊이 확신하지요. 그 아이의 아버지인 당신이 그 얘기를 들은 네 번째 사람이자 그가 죄인이라 믿는 유일한 사람입니다.”(pp.274~275)


저자 : 엘리스 피터스


움베르토 에코가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으며 애거사 크리스티를 뛰어넘었다고 평가받는 세계적인 추리소설 작가 엘리스 피터스(본명 에디스 파지터 Edith Pargeter)는 1913년 9월 28일 영국의 슈롭셔주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덜리 지역 약국에서 조수로 일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해군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그녀가 쌓은 이러한 다양한 경험과 이력은 소설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1939년 첫 소설 『네로의 친구 호르텐시우스』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63년 『죽음과 즐거운 여자』로 미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에드거 앨런 포 상을 받았다. 1970년에는 '현대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치사와 함께 '마크 트웨인의 딸'이라는 호칭을 얻었으며, 1977년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을 발표하며 시작된 캐드펠 수사 시리즈로 큰 사랑을 받았다. 1981년에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The Chronicles of Brother Cadfael)의 한 권인 『수도사의 두건』으로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주는 실버 대거 상을 받았다. 영국 문학에 기여한 공로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훈장(Order of the British Empire)을 수여받았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문학적 성취와 함께 역사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드러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고전으로 손꼽힌다. 1995년 10월, 생전에 지극히 사랑했던 고향 슈롭셔에서 여든두 해의 생을 마쳤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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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클래식 - 눈과 귀로 느끼는 음악가들의 이야기
김호정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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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어렵다"는 인식은 독자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닐 것이다. 독자는 클래식에 접근한 지 5년이 되었다. 클래식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결심을 하고 라디오 방송부터 들었다. 처음엔 낯설고 기초 지식도 없어서 무작정 듣기만 했다. 무슨 곡인지 누구의 곡인지는 아예 기억하지 않았다. 그냥 라디오를 켜놓고 늘 옆에 있는 '소리'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1년쯤 되니 자주 듣던 곡은 제목이나 작곡가들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굳이 따로 공부하거나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는데 방송에서 가끔씩 곡이나 작곡가에 대한 정보가 여러 번 반복해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기본 지식이 워낙 부족했기에 악보 보는 법도 몰랐고, 어떤 환경에 어울리는지 곡의 내용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작곡의 배경도 가끔 설명해주는 라디오 진행자의 말에 의존했다. 열정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인지 쉽사리 접근을 허락치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읽은 한 권의 책이 독자의 음악 수준을 크게 높여 주었다. 입문자를 위한 음악 감상 책이었는데 쉽기도 하거니와 작곡 배경에 대해 읽고 곡을 찾아 들어보니 이해도 훨씬 쉬었다. 그렇게 서서히 작곡가의 생애와 관한 책도 읽게 됐고, 최근엔 작곡가별 곡을 한데 모아 몇 개 곡을 꽤 자세히 해석해 주는 책도 읽었다. 아는 척하긴 힘들어도 음악만 들어도 아는 곡이 꽤 많아지면서 더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올 초로 기억되는데 여느 날처럼 클래식 방송에서 임윤찬의 수상 소식을 방송 진행 아나운서가 다소 들뜬 목소리로 전했다. 누군데?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굉장히 어린 피아니스트로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었나 보다. 그러니 수상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다. 더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기도 했다. 클래식 방송은 오랫동안 임윤찬의 수상 소식과 그의 연주 실력 등에 대해 초대 손님의 이야기를 통해 방송했다. 그리고 가끔씩 그의 피아노 연주곡을 방송을 통해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독자에게는 감동할 만한 이야기가 없었다. 독자의 '귀'가 막혔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치면서 손가락의 힘과 빠르기 등이 다른 음을 낸다는 것도 이때서야 알게 됐다. 독자는 불행하게도 음감이 좋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음악을 멀리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다들 치는 고등학교 시절 기타도 배우지 않았다. 독자는 늘 거리를 두면서 대중 음악과 친하지 못했다. 학문이나 예·체능이나 사전에 열심히 연습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수학 문제도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끊임없이 풀어가면서 익힌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예술이라서 다르겠는가? 물론 타고난 소질이란 것도 예술 분야에서는 필요할 터다. 그러나 능력과 실력을 가르는 것은 '피나는 연습'이란 사실은 수없이 들어왔다. 

이 책 『더 클래식』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가들의 연주와 캐릭터를 재조명하는 취지로 집필됐다. 저자 김호정은 피아노를 치며 자랐다고 한다. 출신학교도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니 음악인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17년 동안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클래식 음악을 담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전문기자'인 것 같다. 17년 간의 기자 생활 동안 얼마나 많은 음악인과 음악곡, 무대 등 엄청난 예술 감각의 소유자일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전 음악가 16인의 스타일을 분석한다. 이미 전설이 된 선구자 백건우, 정경화, 정명훈, 조수미, 진은숙을 비롯해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거장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 등 국내 동시대 음악가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연주가 왜 좋은 건지, 음악가들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 소리를 내는 건지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추구한다.

저자는 클래식은 재연의 예술이라 말을 인용한다. 수백 년 된 음악을 자꾸 연주하는 이유는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연주자마다, 지휘자마다, 작곡가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면 클래식을 듣는 귀가 생길 것이다. 정확한 지적인 것 같다. 앞서 독자가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것은 제대로 듣는 귀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이 책 『더 클래식』은 클래식을 듣고 싶은데 어디에서 시작할지 모르겠다고 느끼는 이들이나 특정 연주자에 관심이 생겨 구석구석 해부해 보고 싶은 이들, 유명한 음악가들이 왜 유명한지 궁금한 이들을 위한 가이드 북으로 썼다고 밝힌다. 가장 쉽고도 분명한 클래식 가이드북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썼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음악은 왜 좋을까?」란 제목의 〈서문(프롤로그)〉에서 자신이 음악가였다면 이런 시도는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문을 연다. 하지만 기사를 쓰고 콘텐트를 만들어내는 인생을 살면서, 음악을 말로 풀어내지 못하면 자신이 '할 일이 별로 없다'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이떤 멜로디나 특정한 화음을 듣고 벅찬 감동을 느꼈던 이유에 대해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찾아보고 싶었다고 집필 이유를 밝힌다. 음악가들이 인간의 감정과 신념을 음악으로 코딩한다면, 자신은 디코딩하는 작업을 해본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예컨대 '이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왜 이렇게 좋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궁금해 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으리란 희망에서 책을 쓰게 됐다는 이야기다. 또 그렇게 알게 되는 음악가들 사이의 차이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음악가마다 다른 방식을 찾아가다 보면 결국 사람 자체를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 저자는 같은 곡을 놓고도 음악가들은 서로 다른 소리를 상상하고, 전달하는 방식도 판이하다고 말한다. 모두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오래된 악보를 놓고 수백 년 동안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이런 생각이 클래식 음악의 생명력을 설명하는 자신의 접근법이라 점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은 3개의 파트로 구분되어 있다. 1장(章)에는 저자 김호정이 청중으로서 편애하는 피아니스트들을 따로 모았다. 백건우,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을 분석한다. 2장에서는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국내 음악가 4인, 정경화, 정명훈, 진은숙, 조수미를 각각 조명하며 화제의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 및 한국의 10대 영재 음악가 3명(김서현, 김정아, 이하느리)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는 20세기의 추억을 부르는, 지금은 고인이 된 옛 음악가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레너드 번스타인, 마리아 칼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깊숙이 파고든다. 이 중에서 백건우, 호로비츠, 번스타인, 파바로티의 글은 〈더중앙플러스〉 연재 당시에는 없었던 것으로 오로지 이 책 『더 클래식』 단행본에만 특별히 수록되었다고 한다. 

독자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왜 상을 받았을까?에 대해 피아노를 잘 치니까!란 대답 이외의 다른 이유는 전혀 모른다. 클래식 입문자 수준이 이유를 알기에는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임윤찬과 그의 연주곡을 조금 더 음악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많은 궁금증이 해소된다. 이 책이 그 역할을 위해 쓰여졌다. 클래식 입문자에게는 쉽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이 책이 알려준다는 이야기다. "그냥 좋으니까 좋은 건데 왜 좋으냐고 묻는다면" 정도의 대답이라면 아직 입문자 수준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독자로서는 분발에 불을 당기는 셈이다. 

왜 어떤 연주는 재미있게 들리고 어떤 연주는 잔잔하게 귀를 지나가는지, 왜 이 음악가는 이런 소리를 냈고 그 순간 무엇을 추구한 것인지 이 책은 세밀하게 조명한다. 예를 들어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소리와 소리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는 '독특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알려준다. 임윤찬은 또 이전에 다른 연주자들에게서는 들리지 않았던 소리를 강조하려는 본능도 보인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에 비해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피아노의 시인’이라 부를 수 있는 우아한 음색이 특징이며 시종일관 기품 있고 귀족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기술 점수 만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테크닉적으로 완벽하다는 점을 짚어내고 있다. 손열음은 피아노의 ‘딕션 장인’이다. 모든 음표가 정확하게 귀에 꽂히는데 이는 절대음감이 극도로 발달해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지만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는 알기 힘들었던 고전 음악가들 고유의 스타일을, 명확한 언어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중앙일보의 유료 구독 플랫폼 〈더중앙플러스〉에 연재된 ‘김호정의 더 클래식’을 새롭게 구성해 엮었다. 당시 구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 세계를 가이드해 주는 글”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분석” “왜 어떤 연주는 끝까지 몰입하여 듣게 되는지 정확히 알게 하는 기사” “한국에도 이런 클래식 기사가 있어 행복해요” 등 재미와 완성도를 모두 잡은 보기 드문 클래식 시리즈였다고 평가되었다.

이 책 『더 클래식』의 가장 큰 차별점은 음악을 들으며 동시에 읽을 수 있는 하이브리드 콘텐트라는 점이다. 글에서 설명하는 딱 그 부분에서 음악이 시작되는 것을 들으며 음악가들의 스타일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모두 117개의 엄선한 클래식 음원과 영상을 QR코드로 수록해 독자들의 입체적 감상을 돕는다.

임윤찬을 예로 들어보자. 저자는 그를 ‘건반 위의 피카소’로 명명한다. 과감하게 해체하고, 강렬하게 조합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많은 연주자가 주 선율에 힘을 준다면, 임윤찬은 잘 들리지 않는 왼손 반주나 화음의 아랫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표현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다 보니 낯선 음들이 마구마구 튀어나오는데, 그 충격과 새로움이 청자를 전율케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임윤찬의 연주를 오선지 악보로 시각화해서 건반 위의 피카소임을 증명한다. 언급한 대로 저자가 지적한 '다른 소리' 부분을 잡아내는 것도 대단하지만 공로는 연주자에게 돌아간다. 다만 저자는 QR코드를 끼워넣어 독자가 읽은 것과 함께 들으며 비교 가능하도록 책을 구성했다. 

음악가를 비교하며 듣는 재미도 알려준다. 예컨대 언제나 정교한 연주자인 피에르 로랑 에마르와 틀린 음도 개의치 않고 전진하는 임윤찬의 베토벤 영웅 변주곡 13번째 연주를 나란히 들어본다. 그러면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에마르의 정갈한 열정과 임윤찬의 휘몰아치는 격정을 비교할 수 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그러나 아직 초보 수준을 면치 못하는 독자로서는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준에는 못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친절한 설명도 못 알아듣는 것은 아무래도 음악에 대한 지식보다도 소질 자체가 없는것인지도 모르겠다. 크게 상관할 건 없다. 독자가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고 그냥 애호가 수준이면 만족하니까. 그래도 저자의 주장에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말도 있다. "음악에는 정답이 없고, 자기만의 해석이 있는 연주자가 많아질수록 듣는이의 기쁨은 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치밀한 분석과 다양한 음악가 인터뷰를 통해 그 누구도 들려주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클래식 감상법을 제시한다. 

소리의 빛깔이나 질감을 읽어내는 대목도 흥미롭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음악은 왜 해상도가 높은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소리엔 왜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는지, 성악가 조수미가 깨끗한 물처럼 노래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한다. 음악을 언어화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이 책은 음악가들의 삶과 철학을 경유해 쉽고 명쾌하게 풀어낸다. 저자가 피아노 전공자인 것도 한몫했겠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음악가 대부분을 인터뷰해 온 저자의 내공과 성실함이 그걸 가능케 했을 터다. (임윤찬 단독 인터뷰도 실려있다) 아는 만큼 들리고, 들리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 이 책이 추천하는 명연주를 차례대로 음미하며, 음악이 주는 축복과 감동을 온전히 느껴보자. 올 가을은 클래식 향기가 가득한 특별히 기억에 남을 가을이 될 것이라 독자는 믿는다.


이런 재능이 음악에는 어떻게 연결될까요? 손열음 음악의 빛깔에 답이 있습니다. 같은 음을 누를 때도 그의 소리는 넓은 스펙트럼으로 표현이 됩니다. 똑같은 음표도 그에게는 다 다르게 들린다는 거죠. 그래서 손열음의 연주에서는 다양한 빛깔이 쏟아져 나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p.29) - 「손열음: 정확한데 유연하다」 중에서


“믿을 수가 없군. 네 노래는 꼭 깨끗한 물 같아.”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한 말입니다. 1987년 25세이던 소프라노 조수미가 노래하고 나서죠. 죽음을 두 해 앞둔 카라얀은 앞날을 꿰뚫는 듯한 눈빛으로 조수미를 봅니다. 이 장면은 다큐멘터리로 남아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p.152) - 「조수미: 신이 허락한 ‘맑음’」 중에서


저자 : 김호정


음악 하는 인생이 일반적인 줄 알고 피아노를 치며 자랐다.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에서 피아노, 언론정보학, 공연예술학으로 학사·석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경찰팀·시청팀, 산업부 유통팀에서 일했다. 이제는 음악 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예술의 풍요함을 신봉한다. 더 많은 사람이 풍족하게 음악을 듣도록 돕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문화부 음악 담당 기자이며, JTBC의 클래식 프로그램 [고전적 하루]를 기획·진행했다.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콩쿠르 라이브스트리밍, 문화재청 덕수궁 석조전 음악회의 사회를 맡았다. 중앙일보 칼럼 ‘왜 음악인가’, 오디오 콘텐츠 [고전적 하루], JTBC 동영상 [헤이뉴스]의 ‘헤이 클래식’을 기획 및 진행하고 있으며 클래식 음악과 공연 전반에 걸쳐 글을 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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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술 - 바로 써먹는 논리학 사용법
코디정 지음 / 이소노미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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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논리학'이란 단어는 우리가 사회에서 많이 사용한다. 학교를 다닐 때는 오히려 사용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학에 가서야 교양과목으로 선택해 '철학' 수업을 한 한기 들은 게 전부다. 교재 『철학개론』을 배울 때 논리와 논리학이란 단어가 수 차례 사용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철학 수업 몇 시간 들었다고 논리학은커녕 논리란 단어 자체의 개념 확립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그리고 '논리'와는 멀어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학교 다닐 때는 잘 쓰지 않던 단어가 사회 생활할 때 훨씬 자주 사용된다. 어떻게 논리나 논리학을 배우지 않았는데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하고, 상대를 설득시킬 수 있었을까? 논리학을 배우지 못했던 독자로서는 아직도 궁금하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독자는 지금도 몇 개의 단어를 제외하곤 '논리'의 정확한 뜻과 논리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지도 알지 못한다. 귀납법과 연역법은 언젠가 문학 시간을 통해 배운 것 같고, 윤리학은 철학서나 동양고전 등에서 워낙 자주 나오는 말이라 뜻 정도는 알게 됐다. 논리학(logic, 論理學)이란 인간의 지식활동에 관련된 특정한 종류의 원리들을 분석하고 명제화하며 이들을 체계화하는 분야의 학문이란 사전적 풀이를 빌리지 않더라도, 설명하진 못하지만 막연하게 인지하고 있는 상태의 논리학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이 책 『생각의 기술』이 아직 알지 못하는 논리와 논리학에 조금 접근하는 데 도움을 줄 듯하다. 이미 책을 읽은 독자가 '도움을 준다'라는 확정적 표현을 하지 못한 것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워낙 논리학에 문외한인 탓에 굉장히 쉽게 쓰인 책이라고 하는데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이 책의 앞 부분(약 70페이지)는 정말 쉽게 읽힌다. 책의 〈서문〉과 〈논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다. 독자처럼 한 번 읽어서 완전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책을 덮지 말고 볼펜을 사용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체크하고 다시 읽기로 하고 건너 뛰어가면 점핑 독서를 해서라고 한 번 끝까지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최소한 어떤 단어들이 사용되는지는 알아낼 수 있다. 

논리학이나 철학에서 사용되는 단어는 어떤 점에서 보면 완전히 같은 것, 혹은 비슷한 맥락의 뜻으로 쓰이는 것을 단어들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이 정도만 이해한다면 시간이 날 때 막혔던 부분을 다시 한 번 읽고 생각해 본다면 분명 훨씬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책의 내용에 따라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따르면 인간은 무엇이든 생각하고, 그 생각을 표현한다. 인생의 모든 것은 생각과 표현으로 이루어지고, 생각과 표현을 통해 생겨난 성과가 행복과 부와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관한 다양한 스킬이 궁리되었다. 하지만 지금껏 알려진 기존 지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그 유용함이 달라지기 때문에,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수리 논리학은 ‘이미 표현된 것’만을 다루고, 어떤 표현이 ‘참’이고 어떤 표현에 오류가 있는지 안내해 주지만, ‘인간의 머릿속’에는 무수히 많은 거짓과 오류가 자연스럽게 서식한다는 점에서 실생활에서 활용하기 어렵다. 

인간의 생각과 표현에 관한 표준은 없는 것일까? 어떻게 생각이 탄생하고 어떻게 오류가 발생하는 것일까? 어떻게 거짓이 전속력으로 퍼지고 또 어떻게 지식이 확장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것을 고집하며 감정적으로 반응하기까지 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유용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그 통찰을 통해, 더 나은 생각을 하고, 더 효과적인 표현을 고를 수 있으며, 일을 더 잘하고 더 멋진 성과를 낼 수 있다. 더 잘 소통하면서 더 좋은 평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해답을 논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제안한다.

흔히 논리학이라고 하면 19세기 이후의 논리학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 『생각의 기술』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로 대표되는 전통 논리학을 복원하면서 독자들이 쉽게 논리 지식을 얻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수학자들이 제안하고 일부 철학자들이 응답해서 정립된 19세기 이후의 논리학은 그 탐구 범위가 좁다. 2,3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전통 논리학과 달리, 수리 논리학이라는 이름을 갖는 그것은 인간 머릿속에서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것을 배제한 채, 표현된 문장 중에서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학문’으로 논리학을 축소시켰다. 이 책은 표제어를 수식하는 부제 「바로 써먹는 논리학 사용법」이란 문구가 의미하듯 실용적인 목적으로 저술된 논리학 책이다. 저자 코디정은 유튜브 〈코디정의 지식 채널〉을 통해 제공한 '논리학 콘텐츠 시리즈'에서 많은 시청자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았다.

이 유튜브 지식채널에서 제공한 영상의 제목 몇 개만 참고 사항으로 여기에 적어본다. 〈북에디터가 알려주는 독서 스킬-최대독서법〉, 〈당신을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지적인 여행-자유론, 완전정복〉, 〈슬픈 황제-자유론이 말하는 아우렐리우스〉, 〈반증사용설명서-반론의 힘, 변증〉, 〈여성의 종속-존 스튜어트 밀의 멋있는 책〉 등 23개의 동영상과 '쇼트(short)'에 10여 개의 새로운 영상을 추가해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참과 거짓을 판별하고 추론의 타당성을 분석하는 기존 논리학이 아니라,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생각이 탄생하고, 도약하며, 또 어떻게 참과 거짓이 뒤섞이게 되는지를 탐구하는 논리학을 이 책에서 소개한다. 칸트와 논리학의 환상적인 결합을 소개하는 이 책은 마치 라식 수술을 받은 것 같은 선명한 시야를 독자에게 선물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옛날에는 생각을 하는 일은 신분이 남다르거나 정신적 지도자 같은 극소수의 사람만의 특권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그 특권을 사용한다. 적어도 머리를 쓰는 일만큼은 권력과 재산에 얽매이지 않는다. 인생의 모든 일은 머리를 쓰는 일이다. 인간의 지식과 소통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머리를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은 일일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답한다. ① 성실히 일함에도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하는 사람 ② 열심히 공부해도 입시와 자격 시험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하는 사람 ③ 효과적으로 독서를 못하는 사람 ④ 타인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 ⑤ 타인을 설득하는 일을 함에도 논리력이 부족한 사람 ⑥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기획자 ⑦ 더 효율적인 결과를 내놓고자 하는 개발자 ⑧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 ⑨ 이미 꼰대가 되었음을 본인만 모르는 어느 중년 ⑩ 자녀에게 더 좋은 인생 조언을 하려는 부모의 머릿속을 시원하게 해줄 것이다. 

오늘날은 AI가 인간의 머리를 학습하는 시대이다. 도대체 인간의 머리 안에서 생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기계가 인간을 학습하는 이 시대에, 도대체 기계가 자신의 무엇을 모방하고 있는지 호모 사피엔스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만 년 전 인류가 날카로운 돌멩이를 바라보면서 그것의 효용을 생각했던 것처럼, AI를 삶의 무기로 삼는 호모 사피엔스는 기계 너머의 기술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생각의 기술(The Art of Thinking)이라고 저자 코디정은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17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1강 「논리란 무엇인가」, 2강 「논리를 공부해서 무엇을 얻는가」, 3강 「논리의 전체 구조」, 4강 「개념이란 무엇인가」, 5강 「생각의 탄생, 판단이란 무엇인가」, 6강 「생각의 도약, 추론이란 무엇인가」 등은 논리의 기초를 다룬다. 여기에서는 이 책이 다루는 논리학이 머리 바깥으로 표현된 문장들이 아닌, 머리 안쪽의 〈인간 공통의 머리 구조〉에 관한 것임을 천명한다. 다양한 예와 함께 매력적인 설명이 펼쳐진다. 7강 「토대 구조 모형」, 8강 「인간 지식의 코어, 연역」, 9강 「연역을 보충하는 귀납」, 10강 「경험은 논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11강 「유추, 경험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간 지식의 좌충우돌」, 12강 「확률의 위안」, 13강 「변증, 반론의 힘」은 논리 '심화편'이다. 독자들은 심화편에서 인간이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고 확장하며, 또 어떻게 오류에 휩싸이면서 잘못된 지식을 고집하는지 넉넉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지식 습득과 소통의 면에서 강력한 무기를 얻을 수 있다. 14강 「설득의 기술」, 15강 「생각의 집합」, 17강 「끈과 가위」에서는 이런 질문에 다양한 사례로 답한다. 

이와 함께 〈부록〉은 책 말미에 붙이는 게 보통이지만, 그러면 독자들이 잘 읽지 않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일부러 편집을 바꿔서 책 중간중간에 부록이 들어갔다. 논리학에 대한 편견을 정정하고, 논리적으로 독서하는 방법과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스킬을 전한다. 마지막 〈부록〉은 「논리학 Q&A」, 「논리적으로 독서하는 법」, 「논리적인 글쓰기」 등 3편의 글에서는 논리학에 대한 편견을 정정하고, 논리적으로 독서하는 방법과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스킬을 전한다. 마지막 「논리학이 주도하는 철학의 계보」는 논리학을 기본 뼈대 삼아 철학의 계보를 살펴본다. 서양철학을 공부해도 지식이 되기는커녕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돼버리는 까닭은 우리가 논리학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 철학의 지혜를 온전히 얻기 위해서라도 논리학의 복원이 필요하고, 이 책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저자는 새로운 세계, 그런데 매우 친숙한 세계가 우리들 머릿속 세계라고 강조하고 이곳에서 기계가 우리를 모방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칫 우리가 기계를 모방하려 한다는 우려를 예방하기 불식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 머릿속 세계가 우리가 인생의 무기를 찾을 곳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논리학에 대해 문외한인 독자가 이 책을 한 번 읽고 모두를 이해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독자가 볼펜을 준비할 것을 권유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해 독후감이나 서평을 한 번 읽고 제대로 쓴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책의 성격에 대해서는 읽은 대로의 느낌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면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선에서 머물러야 할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 가장 먼저 어려움을 느낀 부분이 '추론'에 관한 부분이다. 추론은 문학 시간에 연역법, 귀납법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있다. 철학에서 추론의 쓰임새에 이렇게 쓰고 있다. "서로 관련된 둘 이상의 대상들은 지속적이든 일시적이든 관계를 맺고 있다. 추론은 바로 이러한 관계들을 발견하고 비교한다. 이러한 관계는 감각에 직접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관계가 감각에 의해 직접 주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이런 관계에 대한 인상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런 관계를 발견하고 비교하는 일은 지각의 일이 아니라 추론의 일이다. 우리가 동일, 시간과 공간의 관계들 등에 관해 관찰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결코 추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관계들 가운데 어떤 것에서도 정신은 감각에 직접 나타난 것을 넘어서서 대상들의 실재적 존재나 관계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념에 의존하는 관계인 유사, 반대, 성질의 정도 그리고 양 또는 수의 비례는 관념의 변화가 있어야만 변화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관계는 지각에 의거한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관념에 독립적인 동일, 시간과 공간의 관계, 인과 관계들에 어떤 추론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과 관계를 제외하고는 추론적 요소를 찾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동일,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서는 직접적인 감각 대상을 넘어서는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흄 『인성론』 「해제」, 2004, 장동익)

저자 코디정은 6강 「생각의 도약, 추론이란 무엇인가」에서 '논리의 꽃, 생각의 도약을 알아봅니다'란 머리붙임말을 사용했다. 이에 따르면 판단의 관점에서 문장을 재구성할 경우 판단은 대상에 대한 생각이고, 따라서 판단을 내리려면 대상이 있어야 한다. 여기 어떤 사물이 있다. 관찰자가 등장해서 그 사물을 바라본다. 그러면 사물은 대상이 된다. 여기 꽃바구니가 있다. 관찰자가 이 꽃바구니를 목격하지 않았다면, 그 관찰자에게, 꽃이든 말든, 꽃이 예쁘든 아니든, 그 꼿이 무엇이든,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사물이다. 그런데 관찰자가 등장해서, 그 꽃바구니를 목격한다. 그러면 사물은 대상이 된다. 모든 사물이 관찰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극히 일부의 사물만이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관찰자에게 나타난다. 이렇듯 사물이 대상이 되는 것은 관찰자에게 하나의 '사건'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 입장에서 바라본 세계의 존재방식이다.

사실 백과사전을 동원하고 또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도 문장의 뜻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알 것 같다가도 문장이 길어지면 다시 의미가 흐려진다. '추론'을 설명하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철학자들은 매우 느리게 생각한다. 철학 공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철학자처럼 느리게, 천천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다른 말로 '디테일'이라고 한다. 슬로우와 디테일은 다른 단어이지만, 철학 공부에서는 거의 같은 의미의 개념이다."(p.141) 이 책을 읽어나가는 데 결정적 문장이라고 생각되는 대목이다. 저자는 이 꽃바구니 사건을 첫 번째 사건으로 '맛있는 떡 사건'과 '끼어들기 사건'을 추가로 사례 설명을 더한다. 3가지 생각 사건에서 나타난 판단, 즉 명제 중에서 한 가지씩 추려낸다. '① 꽃바구니가 예쁘네 ② 이 떡은 맛있는 쑥인절미네 ③ 저 차는 끼어들기한다'. 이들 판단, 문장, 명제는 일종의 사실 판단의 성격을 갖는다. 이 자체로는 가장 기초적인 생각에 불과해서 그다지 대단한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인간은 이 단순한 문장에서 지금 여기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지점으로 생각을 도약시킨다. 예컨대 '꽃바구니가 예쁘네'라는 지금, 여기에서의 판단에서, '이 꽃바구니를 연인한테 선물해야지'라는 새로운 판단으로 생각을 도약시킬 수 있다. 이런 판단은 '꽃바구니가 예쁘네'라는 문장에는 전혀 들어있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다. 즉 생각의 도약이 이루어진다. 

이 경우 '꽃바구니가 예쁘네'를 사고력 1, '이 꽃바구니를 연인한테 선물해야지'를 사고력 2로 구별한다. 전자의 사고력은, 대상에 대해서 관찰자가 머릿속 개념을 적용해서, 지금, 여기의 판단을 만들어내는 사고력이다. 그런데 후자의 사고력은 과거에 보관되어 있는 판단을 이용해서 대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생각을 도약시키는 추론의 사고력이다. 철학자들은 전자의 사고력 1을 오성(understanding)이라 칭하고, 후자의 사고력 2를 일컬어 추리력, 즉 이성(reason)'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오성 대신에 지금은 '지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이다. '이 시대의 지성'라는 문장에서 사용하는 지성이 아니다. 대상을 판단하고, 그 판단을 통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지적 능력, 즉 지능으로서 인간 머리의 지적인 특성을 뜻한다. 


글의 주체는 ‘나’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혹은 선택해야 하는 페르소나Persona’이다. 페르소나란 가면을 뜻하며,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등장인물이 사용하던 가면에서 유래된 단어다. 심리학자 융은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지니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면Persona’이 글쓰기의 ‘인격Person’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됐으므로 글을 쓴다. 그렇다면 그 상황에 맞는 페르소나를 선정해서, 그 페르소나 관점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p.259)


저자 : 코디정


에디터, 언어활동가, 변리사. 『괘씸한 철학 번역』(2023)을 포함하여 열 권의 책을 저술했다.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로 제2회 정문술 과학저널리즘상(인터넷부문) 수상. 숭실대학교 국제법무학과에서 지식재산법을 가르치며(겸임교수), 유튜브 <코디정의 지식 채널>을 운영한다. 본명 정우성.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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