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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컬렉터스 - 한국의 수집가 17인
이은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8월
평점 :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독자는 직장 생활을 하지만 비즈니스를 위한 저녁 식사나 만찬 등 사교모임 자리는 많지 않은 편이다. 수년에 한 번 정도 어쩔 수 없이 참석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비즈니스를 위한 식사 자리를 가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직장이다. 그런 자리에선 으레 어쩌다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대화가 길어져 조금 늦어지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 업무 외적인 얘기로 대화를 한다. 그러나 얼마 전 독자가 다니는 회사 대표가 가야 할 곳인데 대표의 개인 사정으로 대신 참석한 적이 있다.(회비 정산된 돈을 직접 가져가야 한다는데 자신이 급한 일로 독자에게 대신 부탁했다.) 대외 비즈니스는 독자의 일도 아닌 데다 관계 회사 대표들끼리의 모임이니 대부분 각 회사의 대표들이 참석하는 자리에 독자는 마땅히 갈 자리가 아니다. 그러나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을 대표가 얘기하며 간 그 만찬 자리에서 옆 자리에 앉은 어떤 분이 말을 걸어와 대화가 시작됐다.
그 분은 비즈니스 얘기가 아니라 그림에 대한 얘기여서 처음엔 적잖게 당황했다. 그 분도 조금 어색했는지 이내 그치고 말았다. 뒷날 대표를 통해 들은 얘기는 '잘난 척 좀 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림에 대해 좀 아는 분인데 만찬 자리에 참석하면 꼭 그림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때 아니게 그림 공부도 한 적이 있다는 게 대표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더 웃었던 것은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본 외국의 고급 사교 모임에서 클래식 음악이나 유명한 화가의 그림에 얘기하는 모습이 떠올라서 우리나라도 그런가? 하며 웃어 넘기고 말았지만 마음속은 편치 않았다.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확인한 느낌이어서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림의 가격만을 관심 갖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작품성이라든지 화가의 삶에 대한 고급스런 대화, 격조 있는 만남의 자리는 좋은 만남이고 삶의 윤활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아트 컬렉터스』는 그림, 조각 등 예술 작품을 모으는 일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표제어 '아트 컬렉터'에 대해 저자 이은주는 "예술 작품을 단순히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 속에 들여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흔히 '미술품 수집가'란 말로도 쓰인다. 이 책 『아트 컬렉터스』는 그런 이들, 예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자신의 공간 속에 작품을 들여온 '아트 컬렉터'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예술 전문 기자로 활동해온 저자 이은주가 저마다 다른 개성과 취향을 지닌 한국의 아트 컬렉터 17인을 직접 만나 그들의 수집 철학과 예술 세계를 밀도 있게 담아낸 기록이다.
저자는 단순한 수집품 나열을 넘어, 예술을 통해 자기만의 감성과 시선을 작품에 투영하며 삶을 채워가는 이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저자는 각 컬렉터의 자택과 수장고, 갤러리 등을 직접 찾아가 일상 속에서 예술이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기록하며, 작품이 공간과 인생 속에서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준다. 한때는 사적인 공간에 머물렀던 이들의 컬렉션이 이제 한국 예술계를 움직이는 소중한 자산으로 자리매김한 지금,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아트 컬렉팅은 문화입니다」란 제목의 〈서문〉에서 '아트 컬렉터'는 한국 사회에서 아직은 낯선 존재라고 말한다. 저자처럼 미술 기자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돈을 주고 미술품을 사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지만, 그들은 가끔 미술 시장의 매출 규모를 통해 드러나는 존재일 뿐이라는 말로 수가 많지 않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사실 독자처럼 일반인들은 가끔 해외뉴스나 혹은 일년에 한 번쯤 신문이나 방송에서 언급되는 소더비 등 유명 경매 회사에서 서양 미술 거장의 작품이 수백 억원, 수천 억원에 팔렸다는 토픽감 뉴스를 통해서 들을 뿐이다. 또 취미나 감상을 위해 비싼 값을 치를 수 있는 사람들쯤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되면 미술품 수집은 '부자들만의 취미'라는 편견은 사라진다. 일제 강점기 부자였던 간송 전형필의 우리 미술품 사랑은 문화재를 일본인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구입해 지켜냈기에 그는 미술품 수집가나 애호가라기보다 애국자 반열에 오른 분이니 일반 미술품 수집가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게 독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다만 우리나라 최대 재벌이었던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유산으로 미술관에 남겼다는 2만 여점의 미술품을 생각해보면 돈을 벌 목적으로 미술품을 사 모으거나 구입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간송이나 이건희 회장 역시 단순히 재산 증식을 목적으로 그 많은 미술품을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는 이들처럼 거대한 컬렉터는 아니더라도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술과 함께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현실적이고 따뜻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겼다. 이들 역시 미술품에 대한 관점은 '재테크가 아닌 취향'이라는 점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때문에 어느 정도의 돈을 벌거나 마련이 가능한 사람들이지만, 역시 제1 조건은 '취미, 취향'이 대부분이다.
이 책에는 모두 17명의 컬렉터가 나온다. 이들은 한결같이 '좋아서', '끌려서' 미술품 모으기를 시작했다. 또 이들의 수집 과정을 살펴보면 열정을 넘어 '수집벽(癖)'에 가깝다. 또 이들이 미술품 수집은 단순히 예술품을 모은 수준이 아니다. 전문가 같다. 이래서 이들의 수집은 단순한 취미나 재테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독자는 이해한다. 어떤 수집가는 미술품 수집이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태도이며, 오랜 시간 공들여 쌓아 올린 자신만의 세계이기도 하다. 저자에 따르면 컬렉터에게 예술품은 단순한 소유물이 아닌, 삶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동반자이기도 하다. 미술 기자인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건 예술 시장에서 늘 언급되지만 막연하게만 여겨졌던 아트 컬렉터들이 어떤 작품에 매료되어 그것을 소유하게 됐는지, 예술과 함께하는 삶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국의 아트 컬렉터 17명의 집(수집품 전시하는 곳)을 직접 찾아가 만난 특별한 대화들이다. 이들 컬렉터는 저자와의 대화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과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이야기한다. 또 미술품은 단순한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관심사를 따라가는 여정이며, 그것이야말로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컬렉팅의 비결이라고 털어놓는다.

이 책은 1,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예술계의 ‘보이지 않는 손’, 아트 컬렉터〉, 2부 〈예술과 함께면 일상이 새롭고 설렌다〉이다. 모두 15개의 장(章)으로 나뉜다. 17명인데 왜 15개 장으로 구분돼 있을까? 두 개의 장은 아예 부부가 함께 등장한다. 일심동체 아트 컬렉터이다. 장(章)의 제목만 봐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챈다면 이미 전문가 급이다. 1부엔 1장 「문 열면 백남준이 맞는 그 집-서정기 패션 디자이너」, 2장 「신촌에 예술 아지트 구축한 MZ세대 부부-노재명 아트 오앤오 대표·박소현」, 3장 「병원서 만난 특별한 컬렉션-홍원표 탑여성앤탑성형외과 원장」, 4장 「터미널, 예술을 품다-이영민 대전복합터미널 부회장」, 5장 「건축가의 작업실 옆 라운지-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 6장 「천년의 빛을 좇다-주재윤 소나무한약국, (주)셀라돈 대표」, 7장 「컬렉터에서 갤러리스트로-안혜령 리안갤러리 회장」, 8장 「자연 속에 펼친 미래 비전-김정완 매일홀딩스 회장」 등이 소개된다. 또 2부는 9장 「기업과 삶에 스며든 예술-김희근 벽산엔지니어링 회장」, 10장 「100년 건축에 심은 예술의 힘-황인규 CNCITY에너지 회장」, 11장 「한국 민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다-김세종 평창아트 대표」 12장 「프로페셔널 리서치 노하우 공개합니다-윤영준 이젤 대표·이가현 이젤 이사」, 13장 「이중섭이 이끈 수집 인생 40년-안병광 유니온그룹 회장」, 14장 「‘패션 덕후’의 수집 철학-심준섭 오프닝 대표」, 15장 「달항아리에 홀려, 경영이 예술이 되다-이상준 (주)더프리마 회장」 등이 저자와 속깊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 컬렉터 중에서 그림이 가장 많고, 민화, 한국화, 조각, 설치미술, 공예품 등 마치 일부러 각 부문별로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미술 전반에 걸쳐 컬렉터들이 있다는 것도 흥미롭다.
이들 컬렉터는 미술품 수집에 뜻이 있는 사람들은 대세나 블루칩을 좇는 순간 오히려 방향을 잃기 쉽다고 말하며, 진짜 즐거움은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과 함께 살아가는 데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말해준다.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예술품 수집이 소수의 취미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책장을 덮을 때쯤, 독자들은 역시 예술품을 수집하는 즐거움과 컬렉션의 참된 가치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거실 중앙에 백남준의 설치 작품을 두고 일상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패션 디자이너, 병원의 진료실과 복도 곳곳을 미술품으로 꾸민 성형외과 원장, 터미널 공간을 문화예술로 채운 기업 경영자, 컬렉션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재단 이사장,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는 젊은 MZ세대 부부 컬렉터까지··· 이처럼 예술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컬렉터들의 다채로운 일상과 철학이 이 책 속에서 펼쳐진다.
시장의 트렌드나 경제적 가치로 작품을 좇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안목을 키우는 과정은 대화가의 작품 제작과 삶의 과정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받느다. 이렇게 감성을 풍부하게 가꾸는 과정은 결국 안목을 믿고 작품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랍기만 하다. 이 때문에 이들은 스스로 좋아하는 가치를 삶 속에 녹이는 또 한 사람의 예술인을 대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들이 수집한 미술품에 대한 각각의 치열한 고민과 선택의 과정을 읽다보면 정말 예술인 못지 않은 열정과 삶에 대한 애정도 함께 느껴진다. 이들은 자신의 미술 작품을 단순히 보는것을 넘어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으며, 예술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도 저자의 글 속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듯하다. 이 책은 이 밖에도 예술 시장의 흐름과 컬렉터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다. 예술 작품의 가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리고 동시대 예술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컬렉터들이 수십 년 수집한 작품은 간혹 비싼 것도 있지만, 대다수 작품들은 컬렉터들의 안목과 관점에 의해 선택된다는 사실은 예술에 대한 또 하나의 관점을 독자들에게 전하기도 한다.
"제 미감을 충족시키고 자극하는 것들은 다 모은 거죠. 그게 그림이기도 하고, 골동품이기도 하죠. 작품 반열에 오른 가구이기도 하고요. 아주 비싼 것은 별로 없어요. 오래전 벼룩시장에서 적은 금액으로 산 것부터 이것저것 두서 없이 다 모은 거예요."(p.14)

"처음에는 그림과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틈만 나면 점심 시간에 병원 주변의 갤러리에서 작품 구경을 했죠. 갤러리 대표님과 친해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게 됐어요. 먼저 작은 그림 여러 개를 샀지만 큰 사이즈로는 자작나무 숲을 그리는 이수동 작가의 〈겨울사랑〉 100호(162.2*130.3cm)가 처음이었어요. 따뜻한 색채에 연인이 벤치에 앉아 있는 단란한 모습이 좋아서 지금도 병원에 걸어두고 있어요. 현대미술이 대부분이고 특정 장르나 테마는 가리지 않아요. 어떤 작품이든 일단 내 마음에 드는 게 우선이에요. 컬렉션이 늘어나면서 작품이 지역, 작품의 형식, 그리고 시기도 다채로워졌죠."(p.79)
"여기가 젊은 사람들의 놀이터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죠. 우리 때는 이런 미술관이 없었거든요. 저는 미술관이야말로 감정을 감성으로 바꿔주는 곳이라고 믿거든요. 사람들이 여기서 만나고, 보고, 느끼고, 소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무엇보다 여기가 돈 많은 사람을 위한 미술관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편하게 찾아오는 곳, 문턱 낮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었죠."(p.353)
저자 : 이은주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서강대에서 영문학(전공)과 신문방송학(부전공)을 공부하고, 중앙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국제부, J 스타일 등의 부서에서 일했다. 이후 문화부에서 영화와 음악, 책과 건축, 디자인 기사를 썼다. 중앙일보 재직 중 서강대 언론대학원에서 ‘영상’을 전공(수료)했으며, 영국 외무성 장학생(Chevening Scholarship)으로 선발돼 런던대 버크벡 칼리지(Birkbeck, University of London)에서 영화 이론(History of Film and Visual Media)을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에 칼럼 「이은주의 아트&디자인」을 연재하고 있다. 일찍이 영화에서 출발한 시각 매체에 대한 관심이 런던 생활을 통해 미술 분야로 확장됐고, 북 섹션을 담당하며 다양한 시각 예술을 인문학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키웠다. 이 여정을 지속해서 이끈 힘이 ‘아름다움(Beauty)’과 ‘지혜(Wisdom)’라는 화두였음을 지금에야 깨닫는 중이다. 이 길 위에서 경험하며 발견해온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데 관심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