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그 두 번째, 포르투갈 길 - 리스본에서 피니스테레까지 순례길 700km
정선종 지음 / 작가와비평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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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나이로 들어서면서 그나마 아침마다 한 걷기 운동도 최근에 거르기 일쑤다.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정말로 걷는 일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든다. 나이가 들어서 가벼운 운동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근력이 떨어져 운동은커녕 걷기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얼마 전 건강 관련 책에서 읽은 건강 지식이다. 걷기는 모든 운동의 기본이 되기도 하고, 또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적절한 운동으로 많이들 하는 것 같다. 뛰는 것과 직접 스포츠에 참여하는 일이 힘들어질 경우 걷기는 최소한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게 의사들의 한목소리다. 걷기는 힘이 비교적 덜 들고 속도나 운동량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기에 노년의 운동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 『산티아고 그 두 번째, 포르투갈 길』은 유럽의 곳곳에 산재한 성지 순례길을 걷는 70대의 한 순례객의 완주기다.

사람은 매일 걷는다. 출근을 위해 또는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어디론가 향하기 위해 우리는 걸어야만 한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행위이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이기도 하다. 걷는 동안 아름다운 풍경을 접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걷는 이의 상황과 마음가짐에 따라 길은 다르게 다가온다. 이러한 걷기의 미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길은 단연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이 책 『산티아고 그 두 번째, 포르투갈 길』의 저자 정선종은 말한다.

이 책은 산티아고로 향한 두 번째 여정을 담은 여행에세이이다. 걷기에 빠진 저자가 “나는 왜 걷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출발하여 목적지인 산티아고를 거쳐 땅끝마을 피니스테레에 이르기까지 36일간 걸은 700km의 순례길을 생동감 넘치는 문장으로 담아냈다. 저자가 찍은 사진과 함께 동반자인 아내의 스케치를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포르투갈 길의 풍경을 더욱 생생하게 전한다.

저자는 「나는 왜 걷는가?」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 한 부류는 산티아고 길을 걸은 사람이고 또 한 부류는 그 길을 걷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고 산티아고 길을 한 번도 걷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산티아고 길을 한 번만 걸은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독자는 이미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어 700~800km에 달하는 순례길을 걷기에는 체력에 자신이 없어졌는데 저자는 평생 걷기를 즐겨 하신 분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독자는 평소 30분 걷기도 힘들다고 최근 산책을 겸하는 그 시간을 버텨낼 정도의 체력도, 자신감도 이미 소진됐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그 걷기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평소 다니던 의사의 권고로 시작했었다. 젊었을 때는 체력은 되지만 시간 탓하며 못 걷고, 나이 드니 이젠 체력이 안 따라준다. 이 책의 저자에 비춰볼 때 몸 관리에 성실하게 임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 책을 읽기에는 걷기에 대한 자세부터 바뀌어야 할 듯하다는 느낌이다. 저자는 자신의 건강 관리를 위해 걷기를 시작한 것은 맞지만 다른 어떤 일도 앞서서 걷기가 생활에 일부로 만들었으나, 독자는 시간 날 때 타인의 권유로 짐짓 걷기를 해본 척했다는 자책감마저 든다. 저자의 걷기 예찬은 이 책 끝날 때까지 계속될 터이니 잘 읽고 걷기에 대한 영감이라도 얻어 30분 걷기를 다시 실천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 걷기의 속도로 천천히 읽어나간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리스본에서 출발해 목적지인 피니스테레까지 700km를 도시 구간별로 나누었다. 1장 「Before the Camino」, 2장 「Lisboa~Tomar」, 3장 「Tomar~Porto」, 4장 「Porto~Tui」, 5장 「Tui~Santiago 그리고 Finisterre」 등이다. 모두 원어로 표시돼 있어 읽기 불편해도 책을 읽어나가면서 불편함은 해소될 것이다. 1장은 본격적으로 걷기 전의 이야기로 저자와 포르투갈의 인연을 들여다볼 수 있다. 2장부터 5장까지는 설렘과 고난이 교차하는 순례길 위의 이야기이다. 출발지인 리스본부터 토마르, 포르투, 투이를 지나 목적지인 산티아고, 그리고 덤으로 걷는 길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 매일의 기록을 특유의 솔직담백한 문체로 담아냈다. 독자 역시 전문 글쓰기 작가가 아닌 저자의 소탈한 문장과 함께하며 유쾌한 시간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두 번째 도전이다. 그러나 걷기는 국내 및 미국 등 해외 유명한 길을 모두 섭렵할 정도로 오랜 기간에 걸쳐 걷기를 삶의 일부로 실천했다. 부록으로는 산티아고 순례길 준비 방법과 장비, 역사가 실려 있으며, 날짜별 루트 요약도 있어 전체 여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여행정보를 담은 여행 안내서가 아니다. 저자가 현직(삼성전자 포르투갈 법인장)에 있을 때 딸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잃는 비극적 경험 이후 30주년 되는 해 이 길을 다시 선택한 것은 이번 순례길이 단순한 여행의 성격이 아니라고 한다. 김낙희(토마스) 전 제일기획 사장은 〈추천사〉를 통해 저자의 딸에 대한 추모와 사랑을 담은 여정이라고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번 산티아고 길은 당초 2020년 봄, 칠순을 기념해서 걷기로 예정했지만 느닷없이 닥친 코로나 팬데믹에 의해 가로막혔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리스본 직항편을 운항하던 아시아나 항공도 비행기 길을 취소했다. 저자는 이 팬데믹 기간을 오히려 국내의 길을 더 걷는 기회로 삼았다. 4년간 코리아둘레길 가운데 해파랑길 750km, 남파랑길 1,470km, 서해랑길 1,800km를 걸었다. 또 지리산둘레길 300km도 걸었다. 이제 나이도 70을 넘겨 중반으로 치닫고 있다. 저자는 나이를 이유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열정이 건강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자신의 건강보다는 동행할 아내의 건강에 대한 염려이다. 

포르투갈 길을 이미 직접 경험한 저자의 이번 여정에는 현실적인 조언이 듬뿍 담길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현지 경험과 열정, 건강 상태 등이 한데 묶인 까닭이다. 앞으로 산티아고 포르투갈 길을 경험해 보고 싶거나 다녀올 계획이 있는 분들에게 저자의 이야기는 좋은 조언이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수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인생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저자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면서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끝까지 나아갈 용기도 얻게 되기를 저자는 기대한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사실 중국의 고대 사상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해야 할 일, 의지로 이루어낼 수 있는 일, 그것을 중국의 공자는 길(道)로 표시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순례길도 같은 의미로 들린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산이 높은 것을 확인하려고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듯, 거기 길이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 길을 걷는 것 또한 아니라고 말한다. "산이 거기 있어도 내가 오르지 않으면, 길이 거기 있어도 내가 걷지 않으면 산도 길도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힘들게 오르면서 걸으면서 고생도 하고 후회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더욱 성숙해지고 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p.16)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많은 사람이 걷는 루트는 프랑스 길이라고 한다. 저자 역시 2017년에 첫 산티아고 순례길로 프랑스 길을 다녀왔고 두 번째로 선택한 길이 바로 포르투갈 길이다. 포르투갈로 떠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스본에서보단 제2의 도시 포르투에서 출발을 하는데, 리스본에서 포르투까지 숙소와 식당 등의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지 않기도 하고 대체로 차도를 따라 걷는 구간이 많아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저자는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서 포르투갈 길을 온전히 느끼고자 수도 리스본에서 출발해 산티아고를 거쳐 피니스테레까지 모두 721km의 순례길을 따라 걸었다. 프랑스에 비해 순례자에게 친절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고 마음씨 좋은 포르투갈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고 책에서 회고한다. 매일 기록을 잊지 않고 실천한 저자의 부지런함 덕분에 독자들에게도 포르투갈 길만의 매력이 그대로 전달된다. 지친 길 위에서 마주한 오렌지 한 바구니처럼, 이 책은 따뜻한 위로와 기분 좋은 웃음을 선물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저자는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느 길 앞에서건 주저하지 않는다. 또 ‘천천히, 꾸준히 그러나 끝까지’ 걷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빠름보다는 느림을 추구하며 주변을 돌아보는 그의 모습을 통해 “나는 왜 걷는가?”라는 질문이 결국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기나긴 길을 걷는 일과 같다. 길을 걸으며 어디서 묵고, 무엇을 먹을지 등을 선택하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지 앞에 서게 된다. 길이 있어도 걷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인생은 순간의 결정들로 완성되고 나만의 삶의 의미로 채워진다. 『산티아고 그 두 번째, 포르투갈 길』은 매일 목적지를 향해 걸으며 보고 느끼고 사유한 순례의 여정을 통해 지금도 묵묵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을 천천히 음미하는 법을 알려줄 것이다. 모든 독자들이 이 책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영감을 받을 수 있기를 저자는 바란다.

2장이 실질적 순례길의 시작이다. 책의 목차에 「Lisboa~Tomar」로 표기돼 있다. 7일간 여정으로 163km에 이른다. 3일차 'Via Franca~Azambuja(20km)' 구간이다. 저자의 서술을 살펴본다. "오늘은 빌라 프랑카에서 아잠부자 마을까지 20km를 걷는다. 오른쪽에는 태주강이 흐르고 왼쪽으로는 철길이 달려가는 평탄한 길이다. 형형색색 들꽃들이 길을 따라 지천에 깔려 있다. 눈이 즐겁다. 클로버, 엉겅퀴, 양귀비, 데이지··· 아는 꽃 이름은 거기까지다. 

숙소를 나서서 한 2km쯤 왔을까.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이 길에서 처음 만나는 카미노 순례자다. 스웨덴에서 왔다는 30대쯤으로 보이는 여인이다. 오늘 아침 숙소 식당에서 우리를 봤단다. 얼마를 같이 걷다가 여인이 앞서간다. 반갑지만 우리 아줌마들 걸음이 느리니 계속 같이 걸을 수는 없다. 인연이 있으면 어디선가 또 만나게 되겠지. 원래 카미노란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그런 길이니까.

20km를 걷는 내내 쉬고 마실 것이 보이지 않는다. 기차역이 보여 들어섰더니 아무것도 없다. 철길을 따라 건너 멀리 마을에 가면 뭔가 있을 법은 하지만 갔다가 되돌아오는 수고까지 감당하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그냥 물이나 마시고 가자."(p.88~89)

독자도 유럽 여행을 다녀 왔지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부분은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들이다. 이는 서양 문명의 초기부터 전해오는 결과다. 오늘날 서양 문명의 발상지라고 하는 그리스에 가보면 그들이 대형 건축물(신전)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신전을 지었지만 점차 왕궁이나 정치적 건축물, 또는 공공건물 등의 아름답고 웅장한 자태는 2,500년이 지난 건축물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그리스 문명을 받아들이고 유럽 대제국을 건설한 로마 문명도 대형 건축물에 많은 돈과 신경을 썼다. 로마는 다신교이었고, 피지배국에 일정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고, 또 불이익을 주지도 않았다. 그러다 기독교를 결국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성당 건물이 엄청나게 유럽 전역에 올라갔다고 한다. 서로마 멸망 이후에도 유럽은 다시 기독교 문명으로 통일된 제국을 이어온 셈이다. 어차피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 시작을 포르투갈에서 시작했으니 오늘날 포르투갈의 국가 위상으로 보아 브라질 대제국을 건설했으리라고는 쉽게 짐작되지 않는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로마의 지배를 받다가 5세기 경부터(서로마 제국 멸망 시기쯤으로 추정) 12세기까지 오랜 시간 아랍 무어족의 지배를 받았다. 토마르는 무어족의 중심도시였다가 12세기 기독교 영토회복 후 십자군 기사단의 본부가 되었던 도시다. 그래서인지 토마르시의 심벌 마크도 십자군 기사단이 사용했던 원형십자가 방패 모양이다. 시내에는 성당과 성채, 다리 등 많은 역사적 유물이 남아 있는데 대부분 16세기 포르투갈의 전성기에 확장, 재건된 르네상스 양식들이라고 저자는 전한한다. 

"엊그제 산타랭에서 얘기했던 산타 아레네 성당도 이곳에 있어 들어가 보니 제대 뒤에는 성모나 예수 십자가 대신 이레네 성녀가 자리하고 있다. 시내 중심가에서 바로 계단을 타고 으로면 토마르성으로 올라간다. 로마 때부터 건설돼 무어족 지배 시절, 그리고 십자군 기사단까지 사용했던 성채라서 그런지 곳곳에 기독교는 물론 아랍 냄새도 풍긴다. 긴 회랑을 걷다가 보니 언뜻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채 내부에는 '그리스도 수도원(Convento de Cristo)'이라는 화려한 성당도 있다."(p.128)


카미노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는 나쁜 날씨가 이어질 때가 아니라 구름 한 점 없는 땡볕이 계속될 때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보다 잘 견디는 사람이 더 훌륭하다. 진정으로 멋진 사람은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사람이다. 힘든 걸 겪어 내야만 인생의 달콤함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카미노는 인생 길이다.(p.239)


저저 : 정선종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삼성 그룹에 입사하여 회장 비서실 홍보팀, 삼성전자 수출부장, 스페인 포르투갈 법인장, 제일기획 부사장 등을 역임하며 35년간 삼성에 몸을 담았다. 삼성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골프가 좋아 인생 2막은 골프에 미쳐 보기로 결심한다.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골프 대학 PGCC(Professional Golfers Career College)를 졸업하였고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골프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3년부터는 4년간 대교 그룹에서 운영하는 마이다스 골프클럽(청평, 이천)의 경영을 책임졌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국내외를 돌아다니면서 명문 골프장 탐방을 하고 있고 틈틈이 국민대 등에서 골프 강의도 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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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 안전가옥 오리지널 42
배예람 지음 / 안전가옥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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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부터 괴물을 격리하는 것은 인간에게도 그리고 괴물에게도 과연 좋은 일일까? 저자는 전래 동화 속 괴물들과 화해를 꾀하고 인간과 괴물이 함께하는 세상의 비전을 펼쳐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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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 안전가옥 오리지널 42
배예람 지음 / 안전가옥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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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이 소설 작품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의 저자 배예람은 〈작가의 말〉을 통해 "나의 인생 한편에 늘 존재했지만 결코 만날 수 없었던 친구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러브레터"라고 말한다. 우리는 괴물에 대해 "꿈에 나타날까 무섭다"는 말로 일축한다. 사실 우리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괴물은 대부분 그리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다만 구전이나 설화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에 교훈적인 내용을 담아 '도깨비'처럼 선한 인상을 남긴 괴물들도 간혹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부정적이다. 일단 외모가 무섭다. 외모가 무서우면 사람들은 당연히 가까이 하기 어렵고 꺼려한다. 권선징악의 우화나 전설에서 선행을 하는 괴물들은 우리 사회에서 악을 행하는 무리들을 징벌하기 위해 무서운 외모로 등장하기도 한다. 

최근 소설의 경향이 빠르게 SF 판타지로 옮겨진 느낌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최고의 과학의 시대를 맞이하고서도 판타지 소설이 주류를 이룬다는 것이 왠지 부조화스럽다. 과학의 어깨 위에 올라타서 판타지 소설을 집필한다면 더 멀리 넓게 볼 수 있어서일까? 아니면 독자들의 취향이 판타지를 이끌고 있는 것일까? 문학을 공부하거나 직접 쓰는 작가가 아닌 일반 사람으로서 궁금하지만 속내를 읽을 수 없어 답답하지만 판타지는 과학만 함께 엮는 게 아니라, 범죄와 미스터리 등 합동하는 영역을 무한히 늘려가고 있다. 우주의 생성과 소멸 등을 밝혀낸 21세기 과학은 무한하게 발전하고 있다. 실제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한가운데 들어선 느낌이다. 과거에 상상했던 게 눈앞에서 현실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인류는 과학으로 접근하면 인류가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는 듯이 거침없이 발전하고 있다. 자율주행뿐만 아니라 우주여행도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에 대해 의문을 갖든 풀지 못할 것은 없다는 태세다. 

그러나 인류가 우주를 지배할 꿈은 아직 근본적인 문제인 '속도'와 '시간'이다. 두 물리적 현상이 지금까지의 해결하지 못한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초월한 타일 슬립 소설, 차원의 문제로까지 확대시킨 '순삭(공간 이동)'까지 많은 SF 소설의 전성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전설이나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귀신(괴물)의 문제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그 모습을 바꿔가기도 한다. 기괴한 모습의 괴물들은 사실 우리에게 "괴물은 무섭다", "귀신은 나쁜 일을 한다" 등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의 저자 배예람은 괴물에 대해 공포나 무서운 느낌을 벗어난 친근한 이미지로 변신하고 있다. 저자에게 괴물은 친구이고 애정의 대상이다. 그래서 거침없이 러브레터도 쓴다. 이 책이 러브레터다. 저자는 장르 소설 독자들 사이에서 많은 사랑과 기대를 받아 온 분이다. 이 소설도 두 번째 장편소설이자 장르소설이다. 괴물과 귀신이 공존하는 현대를 배경으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오컬트 판타지를 선보이고 있다.

귀신을 보는 ‘눈’을 가졌지만 괴물을 다루는 ‘손’은 갖지 못한 주인공 보늬는 그럼에도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에서 꿋꿋이 버티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애쓴다. 3년 동안 사무실 붙박이로 지낸 보니는 어느 날 회사에 나타난 전래 동화 괴물을 물리친 일을 계기로 신입 직원 지운과 함께 ‘임시 파견팀’을 꾸리게 된다. 앞으로 그들의 눈앞에는 또 어떤 괴상하고 기이한 괴물이 나타날까?

저자에게 괴물은 내쫒거나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니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었을까? 저자가 이번 작품에서 내세운 주인공 보늬는 저자의 분신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늘 자신을 한심하게 묘사하지만, 언제나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이 책을 출판한 〈프로듀서의 말〉에서도 명확하게 지적되고 있다. "보늬는 아주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매일매일 내가 재능이 없다는 걸 확인받는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일지, 그럼에도 그런 하루하루를 버티며 좋아하는 것 옆에 있고자 하는 마음은 얼마나 큰 것일지 쉽게 짐작할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심지어 자신이 훨씬 더 큰 재능을 가진 대안이 명확이 보이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그런 보늬의 용기와 괴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감동하여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린다."(p.397)

괴물과 귀신이 공존하는 현대의 대한민국. 일반인들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중으로부터 괴물을 격리하고 보호한다는 사명을 지니고 암약하는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이하 한국괴물관리협회)가 있다. 대외적으로는 〈사단법인 한국실뜨기협회〉로 알려진 협회는 전국에 다섯 개의 지부가 있으며 괴(怪)와 관련된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비밀 조직이라는 점 외에는 일반 회사와 다를 게 없는 협회에서는 괴물을 다루는 ‘손’을 가진 ‘괴물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다. 그리고 이 협회에서 유일하게 괴물을 다루는 ‘손’ 대신 귀신을 보는 ‘눈’을 가진 인물, 강보늬가 있다. 괴물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손’을 갖지 못한 보늬는 파견팀 소속이면서도 3년 내내 사무실 붙박이 신세다. ‘손’이 없는 보늬는 괴물에게 생채기 하나, 흠집 하나 낼 수 없고, 따라서 파견을 나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협회 사람들은 그런 보늬를 본체만체하기 일쑤이고, 그럴 때마다 보늬는 탕비실 구석에서 여자 귀신과 잡담을 나누거나 회장실에서 목이 없는 괴물 무두괴와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달래곤 한다. 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일에 재능이 없는가. 그렇게 보늬는 늘 괴로워하면서도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에서 꿋꿋이 버틴다.

사무실에 남은 인력이 없어 모처럼 구 팀장과 파견을 나간 보늬는 잡으러 간 도깨비에게 연민을 느껴 그냥 보내 주고 만다. 구 팀장은 화가 나서 보늬에게 협회를 그만두라고 말하고, 다음 날 사직서를 제출하려던 보늬는 밤마다 사무실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을 듣는다. ‘귀신’이란 두 글자에 귀가 번쩍 뜨인 보늬는 스스로 귀신을 잡겠다고 나서서 탐문을 시작한다. 모두가 귀신인 줄 알았던 존재는 알고 보니 전래 동화에 나오는 괴물이었고, 보늬는 신입 직원 지운과 함께 전래 동화 괴물을 물리친다. 이 일을 계기로 보늬는 지운과 함께 ‘임시 파견팀’을 꾸리게 된다. 앞으로 이들의 눈앞에는 또 어떤 괴상하고 기이한 괴물들이 나타날까?

이 소설 작품은 모두 8개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돗가비와 돗가비」「어서 눈을 떠서 저를 급히 보옵소서」「웰컴 투 해피랜드」「요술 맷돌」「여우 누이의 재앙」「도근천의 비밀」「나랑 같이 먹지」「에필로그」 등이다.

첫 장의 「돗가비와 돗가비」에서는 한국괴물관리협회의 직원들의 역할과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한다. 특히 한국괴물관리협회는 괴물들의 등급을 정하고 자료화해 관리하고 있다. 이를 테면 제목에 있는 '돗가비'는 도깨비의 옛말이다. 이 도깨비의 출현이 인지되면 직원들이 출동한다. 출동하는 직원들은 괴물 잡는 '손'을 가지고 있다. 형사가 범죄자를 잡아들이듯 괴물을 잡아 완전히 굴복시켜 관리한다. 물론 범죄 조서 쓰듯이 일일이 신상 정보는 물론 '범행 사실'을 바탕으로 낱낱이 관리 카드에 저장된다. 여기서 보늬는 '손'이 없어 현장 출동엔 갈 수 없다. 대신 괴물을 보는 '눈'이 있지만 이는 현장 출동의 부적격 요소다. 손이 없으면 괴물을 제압하거나 잡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도깨비는 위험 괴물은 아니다. 흉악한 범죄자는 아닌 것으로 협회 직원들은 분류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보늬도 함께 출동은 했지만 차량 안에서 기다릴 것을 지시 받는다. 직접 제압은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직접 제압하려고 출동한 직원들의 대화로 봐서는 보늬가 자격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직원 구 팀장이 지금 잡으러 가는 도깨비는 '백(白)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다고 고지하며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손가락 하나로도 제압 가능하다는 표시다. '핑거 스냅'.

저자가 달아놓은 주(註)를 통해 한국괴물관리협회에서 괴물을 분류하기 위해 부여하는 등급의 내용을 알 수 있다. 백 등급의 괴물은 사람을 해치려는 목표가 아닌 다른 특정 목표를 가지고 있거나, 괴물 전문가의 힘으로 통제가 가능한 괴물을 말한다. 백 등급의 괴물은 한번 확보되면 보안실에서 지내게 된다고 설명이 달려 있다. 또 '청(靑) 등급'도 있다. 이 등급의 괴물은 사람을 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우호적인 괴물로, 인간과 소통이 가능하거나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괴물을 포함한다는 말이다. 이 등급의 괴물은 보안실을 나와 사무실 구역을 돌아다니도록 풀어놓기도 한다는 주석의 설명이다. 구 팀장의 핑거 스냅은 수많은 괴물들을 체포하면서 슬슬 권태에 빠져든다. 그 핑거 스냅으로 제압이 충분하다는 구 팀장은 선배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난 실적을 올린다. 도깨비 다음에는 어둑시니였고, 다음에는 불가사리. 불가사리 다음에는 생사귀(까만 모습에 머리에는 다섯 갈래로 나뉜 뿔이 달린 괴물)였다. 그 이후로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단피몽두(사람의 두세 배 정도 되는 크기에 얼굴에는 몽두를 쓴 괴물), 쌍두사목(머리가 둘 달린 듯한 느낌을 주느 괴물. 눈이 네 개이며 뿔이 달렸다), 식인충(고운 망사 같은 껍질에 싸인 벌레로 사람을 빨아 먹는다)······.

이 소설 작품 『사단법인 한국괴물관리협회』에는 다양한 전래 동화 속 괴물들이 등장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전래 동화가 사실은 괴물들의 탄생 설화라는 흥미로운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떤 전래 동화 괴물이 등장하는지는 책을 통해 직접 만나보기를 권한다.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한 가지 주제는 빗나간 재능에 관한 이야기다. 보늬는 어릴 적부터 괴물을 사랑할 운명을 타고났다고 믿었고, 한 번도 이를 의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외할머니와 엄마처럼 괴물을 다루는 ‘손’을 갖게 될 거라 믿고 있던 보늬에게 찾아온 것은 귀신을 보는 ‘눈’이었다. 보늬의 마음 한편에서는 언제나 괴물을 향한 순정이 반짝거렸지만, 보늬는 오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무난한 학과를 졸업해 무난한 회사에 다니고, 무난한 현실을 살던 어느 날, 보늬는 한국괴물관리협회의 회장인 외할머니 귀순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스물여섯 살 보늬는 모든 걸 내팽개치고 한국괴물관리협회에 들어간다. 사랑하는 것들 옆에 있기 위해서.

사랑하는 일에 재능이 없음을 깨닫는 일은 괴롭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보늬의 모습은 읽는 이에게도 용기를 선물할 것이다. 이 소설의 또 한 가지 주제는 괴물과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다. 보늬에게 괴물은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징그러우면 징그러울수록 어여쁜 친구들’이지만, 모든 이에게 그런 것은 아니다. 함께 임시 파견팀을 꾸린 지운 역시 괴물에 대한 애정이 충만한 보늬를 이해하지 못한다. 누구보다 괴물을 아끼는 보늬는 인간이 괴물을 ‘다스리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끊임없이 고민한다.

괴물도, 인간도, 그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뿐인데 인간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괴물을 다스리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이는 단지 인간과 괴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일 수 있다.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이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며 자신만의 답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괴물 '옹고집'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가 고딕활자로 지면에 드러나 있다. 물론 다른 괴물들도 모두 하나씩 차례로 활자화돼 지면에 모습을 나타낸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옹고집에 대한 보고서를 여기에 발췌, 정리한다. 

개체 이름: 옹고집

일련번호: KMMA-448

등급: 황(黃) 등급*

종류: 인간형 괴물(둔갑)

활동지역: 전국

탄생(일부 『월야괴담』 발췌): 옛날 옛적에 황해도 옹진에 옹고집이라는 부자가 살았다. 그는 심술궂고 끔찍한 구두쇠여서, 여든 살 노모를 차가운 방에 재우고 식사도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불효를 저질렀다. 그는 습관처럼 노모를 구박했을 뿐 아니라 남녀 종들을 심하게 부려 먹고 폭력까지 행사할 정도로 사악한 인간이었다.

심지어 그의 행패와 폭력을 견디다 못한 종들이 죽는 사건마저 발생했다. 죽어 나가는 종들이 많아 집 안에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도는 등,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한 스님이 시주를 받으러 와 집 안의 불길한 기운을 물리쳐 주겠다고 나섰다. 당연히 옹고집은 스님에게 오물을 뿌리는 등 푸대접했고, 이에 크게 화가 난 스님은 지푸라기 인형을 만들어 옹고집을 벌하는 주술을 걸었다. (중략)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괴물 전문가들에 의해 격리되었다. 괴물 전문가들은 괴물에게 옹고집이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붙였고, 이 사례는 진짜 옹고집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로 변형되어 일반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 황(黃) 등급: 황 등급의 괴물은 사람을 해치거나 죽이려는 목표를 가진 괴물로, 이 등급의 괴물은 제거해야 한다.


저자 : 배예람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즐겨 쓴다. 밤마다 침대에 누워 내일 무엇을 쓸지 상상만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지독한 게으름뱅이. 게으름을 이겨 내고 한 줄이라도 쓰는 것이 매일매일의 목표. 2019년 안전가옥 앤솔로지 『대스타』에 수록된 「스타 이즈 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안온북스 ‘내러티브온’ 소설 편 『왜가리 클럽』에 수록된 「인어의 시간」을, 안전가옥 앤솔로지 『호러』에 수록된 「엔조이 시티전(傳)」을 썼다. 오래오래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리뷰어스클럽 #리뷰어스서평단 #이벤트서평 #사단법인한국괴물관리협회 #배예람 #안전가옥 #장편소설 #장르소설 #도깨비 #판타지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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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너머의 공간 이야기
장윤정 지음 / 푸른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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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실제 촬영지가 어디인지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탐구해야 할까? 현 시점에서 지역이나 건물 공간까지 형성된 역사적 배경까지 알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이 책은 이를 학문적으로 접근해 발견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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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너머의 공간 이야기
장윤정 지음 / 푸른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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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이 책 『스크린 너머의 공간 이야기』는 표제어에 나타난 두 개의 단어만으로도 책의 내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스크린'과 '공간'이라는 단어들이다. 영화는 태생이 매스미디어의 성격을 띠고 있다. 영화는 문학에서 소설의 서사와 과학의 사진(필름)을 연결시켜 허구가 사실로(상상이 현실로) 바뀐 경험을 제공한다. 즉 소설 문학이 가진 상상적 허구를 마치 사실인 듯 형상화해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이 움직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경이로운데 이 움직이는 사진들이 현실의 공간과 만나게 되면 그야말로 영화 속 스토리가 사실로 인지돼 관람객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책의 독자들이 소설을 읽고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장소나 인물을 머릿속에 각인하며 스토리를 따라간다. 그러나 영화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힘들여 발휘할 필요가 없게 해준다. 영화가 처음 나타날 때는 영화관이 있어야 상영이 가능했다. 필름을 영사기에 넣고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물인 필름과 영사기를 각 가정에서 구비해 사용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 일상에서 매일 사용할 필요도 없는 물건이기도 하다. 영화는 태생부터 대중을 상대로 대량 전달 기능이 전제되어 있었다. 

더욱이 영화 제작 기법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영화 속 공간은 필요하다면 우주나 바닷속, 땅 속 등 실제 가지 않고서도 촬영이 가능한 구조물을 만들어 영화를 그럴 듯하게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데까지 이르게 됐다.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영화는 예술 분야보다 산업이 되기 시작했다. 거기다 영화 속 매시지를 담아 전달한다면 상업 이익보다 훨씬 큰 홍보도 가능하다는 데 영화의 매력은 날로 커졌다. 

영화가 발명된 지 150년 정도 될 시점에서도 여전히 영화는 커다란 대중 미디어 역할을 하고 있다. TV가 등장하면서 한때 위기를 맞았던 영화는 이제서야 콘텐츠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문학에 비해 독자의 상상력을 앗아가고 세뇌 시키는 영화는 예술성보다는 대중 전달 기능을 충분히 살려 산업화됐다. 이젠 영화 한 편 제작하는 데 수백억 원이 투입되는 게 예삿일이 된 시대다. 우리나라 영화도 이미 '천만 관객' 시대를 맞은 지 수십 년이 됐다. 많은 제작비를 투입해도 충분히 수익이 보장되는 시대를 연 것이다.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 관객만 대상이 아니다. 콘텐츠에 따라서는 해외에서도 큰 호응을 받을 수 있다. 대한민국도 해외 유명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수상하는 시대다. 이는 오롯이 영화 관련된 분들만 혜택을 받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의 이미지는 높이는 데도 한몫을 한다. 우리 고유의 문화는 아니지만 영화는 이제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에도 당당히 한몫을 하고 있다. 이 책 『스크린 너머의 공간 이야기』는 영화 속 공간과 실제 공간이 어떻게 관람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품격은 물론 스토리의 진실성에 한층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지리적 공간에 대한 연구 논저의 하나로 출간됐다. 관객 중에서도 깊숙이 영화에 관계한 분들은 물론 영화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영화 속 공간 배경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 데 계기가 될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영화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제 우리 시대는 미디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울 정도로 삶의 전 분야에서 미디어(대량 전달 매체)를 이용한다. 누구나 쉽게, 그것도 별도의 돈이나 시간이 필요 없다. 이미 신문이나 라디오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에서 영상으로 이루어진 뉴미디어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현대인들은 ‘미디어와 함께하는 삶’에 익숙해졌다. 이러한 발전과정에서 미디어 속 데이터-영화, 드라마, 광고 등 공간의 재현을 바탕으로 하는 영상 데이터-는 다양한 매체로 축적되며, 절대적인 양을 무한히 늘려가고 있다. 무한 축적된 데이터를 찾기가 쉽지 않으리란 생각은 이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몇 개의 검색어만 입력하면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인터넷을 누비며 필요한 정보를 쉽게 손에 넣는 것이 당연한 시대다. 방법만 터득한다면 미디어 속에서 생겨난 지리적 궁금증 역시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은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 속의 무심코 지나간 공간이 어떤 장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지 지리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호기심을 드러낸다. 저자 장윤정은 영화지리학을 오랫동안 공부해온 분이라고 한다. 사실 영화 입문자라도 되면 들어봤음직한 용어지만 영화계는 이미 널리 알려진 용어인 것 같다. 이 책은 영화와 영화 속 공간, 그리고 실제 공간이 어느 정도 역할과 기능을 하는지, 영화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는지, 또 공간의 이미지 확보에는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 논문에 가깝다. 저자는 영화에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영화 관람부(그런 동아리나 자치모임이 있나?)에 소속돼 한 달에 한 번씩 종로의 단성사나 피카디리 극장에서 영화를 보곤 했다니 진정 영화광이라 해도 괜찮을 듯 싶다.

그 시절을 거쳐 시간이 훌쩍 지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저자는 요즘 영상에 익숙해져 가는 아이들이 걱정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과거 경험했던 영화보다 지금의 영화가 폭력성, 선정성이 커졌기에 아이들이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건강한 성장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던 것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아이들 사고에 매체가 영향을 주는지가 궁금해졌다고 한다. 영상을 요약하면서 아이들과 대화를 해왔다고 한다. 아이들은 가짜 뉴스와 유튜브의 무분별한 정보 사이에서 사실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영화처럼 개연성 있는 픽션은 가끔 현실과 혼동한 경우도 발견했다. 아직 초등학생이라 어리기도 하지만, 아이언맨이 만든 세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대역배우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스파이더맨에 푹 빠졌다. 그의 불운을 이겨낸 성장 스토리나 마블 책을 읽을 때도, 아이들은 궁금증이 생기면 마블 백과사전을 찾아 읽었다. 허구일지도 모를 상상의 세계를 탐구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소설과 다르게 이미지를 전달하는 미디어의 영향이 염려되었다고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이에 따르면 여행을 다녀오면 아이들은 랜드마크를 기억하고,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같은 장소가 나올 때마다 기뻐했다. 영화 〈슈퍼소닉 2〉(2022)에 스페이스 나들이 배경으로 나오거나 〈인사이드 아웃〉(2015)에 금문교가 나오면, 여행했던 때를 떠올리면서 즐거워했다. 영화 속에서 미디어와 관련된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초등학교 역사 수어 시간에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손 들고 발표하는 것과 같은 기쁨을 주는 듯했다. 지리 정보나 역사 연표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 왜 그 장소가 선택되었는지, 어떤 장르의 영화가 내용과 장소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졌다.

이 책의 집필 동기와 취지는 생각해보면 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 저자도 박사학위를 마친 지 11년이라는 시간이 쌓이는 동안 육아에 전념했기에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더해졌다고 말한다. 지리적 미디어 문해력이 넓은 세상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공간의 재현과 간접 경험이라는 개념을 통해 영화와 드라마를 볼 때 생겨나는 물음에 답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밝힌다.

이 책은 〈서문(intro)〉과 〈맺음말(outro)〉 외에 4개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미디어 속 공간의 재현 경험〉, 2부 〈미디어 공간의 텍스트 생산〉, 3부 〈미디어 인지 공간과 지리적 미디어 문해력의 상호작용〉, 4부 〈지리학을 통해 본 미디어 속 상징 스팟: 촬영지가 왜 궁금할까요?〉 등이다. 책에 따르면 삶에서 시간과 장소에 대한 기록은 함께 나타난다. 영화에서도 시간의 흐름과 내용의 전개에 따라 장소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지리학에서는 오랫동안 장소에 대한 논의를 축적해 왔고, 이를 영화에 응용하여 영화에 나타난 장소를 살펴볼 수 있다. 영화에 표현된 장소는 실제 세계에서 영화의 특정 신(scene)과 관련된 촬영지가 함께 선택된다. 그 장소는 익히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곳으로 해당 영화를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의 삶(지역민, 관객, 여행자 등)이 있는 곳이다. 또한 영화에 나타난 공간들은 영화가 제작·편집·상영에 이르기까지 제작자에 의해 재현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즉 만들어진 이야기의 전개 결과로서 영화 속 장소는 영화와 관련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사라져 가고, 지역 극장보다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을 선호하고 있다. 코로나 시기인 2021년 서울 극장이 문을 닫은 것을 저자는 기억해 낸다. 이제는 복합 영화관이 영화를 선별하여 상영하고, 집에서는 OTT로 편하게 영화를 보는 시대다. 저자는 드라마의 양적인 성장과 확장된 채널을 통한 미디어 송출은 실제 장소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방영 이후 시청하면서 겪는 촬영 장소에 대한 논의는 물론, 미디어 관람자나 지역의 방문자 인식 변화 또한 지리학의 실존적 문제가 되어 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OTT의 성장과 함께 tvN을 포함한 종편 드라마의 진입과 그에 이어 새롭게 등장한 ENA와 같은 신규 채널은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는 배우와 감독-프로듀서의 범위를 확대시키고 있다.

이 책은 1부에서 우리 영화 중 공간 재현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디어를 통한 경험은 특정 공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하고, 그 공간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며, 감정적 반응을 유발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미디어 공간 재현은 미디어가 특정 장소, 사람, 사진 등을 어떻게 묘사하고 표현하는지를 분석하는 개념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는 미디어 텍스트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보다는 특정한 방식으로 선택, 구성, 왜곡하는 과정을 통해 재현된다는 점에 주목한다는 것. 재현된 공간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장소를 표현한 것이라 쉽게 이미지화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역사적 사건 중에서 왜 특정한 사건이 영화 소재로 선택되는지, 특정한 하나의 장소가 어떻게 전혀 다른 주제를 가진 영화들의 촬영지가 되었는지를 분석하면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답을 얻게 해 줄 것이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1부에서는 「동일한 장소, 영화마다 다른 관점」이란 주제에 따라 6·25 한국전쟁 중 벌어진 '인천상륙작전'을 그린 영화를 대상으로 인천을 살펴본다. 각 영화에서 어떤 관점으로 보고 제작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 중 전세를 역전시킨 변곡점으로 역사와 전사는 기록하고 있다. 동족상잔이라고도 하는 6·25 전쟁 가운데 인천상륙작전이 어떤 변곡점을 가져왔는지는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잘 알 것이다. 저자는 1950년 9월 15일만을 영화화하기란 쉽지 않다고 전제한다. 전개 내용에 따라 이데올로기가 극명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선동의 의미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이데올로기 편향성이 반영된 영화들을 분석하기 위해서 포지셔널리티(위치성)를 제시한다. 포지셔널리티는 개인의 속성과 대상에 대한 해석에 주관적 편향성을 반영하여 형성된 편향성을 의미하기에, 제작자에서 비롯된 포지셔널리티를 분석하겠다는 말이다. 이러한 시도는 역사적 사건으로 알려진 장소의 미디어 공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저자는 인천상륙작전을 상륙군 관점, 방어군 관점, 첩보부대 관점으로 나뉘어 살펴보고 있다. 1965년에 상영된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참전 군인 편거영이 극본을 썼다. 또한 조긍하 감독은 〈인천상륙작전〉을 만들면서 고심했다고 한다. 남주인공 배우 신영균과의 인터뷰로 알 수 있듯이 당시 특수촬영을 할 수 없었던 실정이라 실탄을 쏘며 목숨을 걸고 촬영에 임해야 했기 때문이다. 오래된 영화이지만 당시 유행했던 007류의 첩보영화 스타일로 긴박함이 느껴지고 극본가가 통신장병이었던 경험이 영화에 잘 표현되어 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흑백영화이고 1960년대 우리나라의 야산은 벌거숭이였기에 마치 전쟁시기로 돌아간 것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1965년의 한국 정세는 냉전체제 아래에 있었다. 한국 정부는 한일회담과 베트남 파병을 한국, 미국, 일본의 반공전선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명확한 대결구도를 선택했다. 그해 소려의 코시긴 수상이 북한을 방문하였고, 중국문화대혁명으로 중소 관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1965년의 경직된 분위기가 이 영화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1965년에 한국전쟁 영화 13편이 개봉했다. 영화 〈남과 북〉, 〈나는 죽기 싫다〉를 이어, 휴전 후 처음으로 비무장지대에서 촬영한 반(反) 기록영화 〈비무장지대〉, 〈북에 고한다〉까지 제목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이어 「〈월미도〉에서 방어군 관점」이란 소제목을 통해 북한이 인천상륙작전을 어떤 관점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월미도〉란 영화를 찾았지만 통일부 산하 북한자료센터에서는 이 자료가 없다고 한다. 북한에게는 인천상륙작전이라는 단어는 인정할 수 없는 전환점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화 〈월미도〉가 제작된 시점은 김일성 생일 7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하던 시기이다. 또 김정일은 『영화 예술론』(1973)을 책을 저술할 정도로 영화에 관심이 많았고, 김씨 일가의 체제를 수비하는 데 북한 영화가 동원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저자는 지적한다. 2016년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휴전일인 7월 27일에 개봉됐다. X-RAY 작전을 수행하다 전사하신 임병래 중위, 홍시욱 하사 외 15인의 대원들과 켈로 부대원에 관한 실화에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장학수라는 인물을 허구적으로 설정하여 이념적 대립이 종교, 사회, 계급 간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물어본다. 인천상륙작전이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은 것은 확실하지만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르고 얻은 값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 38선으로 나뉜 이념적 대립이 분쟁의 씨앗이 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팽팽했던 긴장 관계가 한반도에서 화약고를 터뜨린 것이다. 이후 70여 년이 지났고, 여전히 휴전 상황이다.

이와 함께 인천 외에도 한국전쟁에서 주요하게 다뤄진 영화 속 장소들이 있다. 3년 여 동안의 전쟁에서, 장소를 다루게 되면, 배경으로 전쟁 시점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제작 당시의 쟁점을 파악해 볼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이러한 영화를 토대로 공간 재현의 경험 결과를 여섯 가지로 나눠 내놓았다. ① 싸움의 치열한 전장이다. ② 수도 서울이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3개월 간 북한군을 경험한다. 일부 문인들은 부역의 불가피성과 북한군 통치하의 체험을 생생히 전달한다. ③ 후방에서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부산이나 전쟁 초기 피난시기 대구 일대이다. 〈내가 마지막 본 흥남〉과 〈태극기 휘날리며〉가 대구를 표현한 영화이고 낙동강 전선 일대를 중점 표현한 영화 〈포화 속으로〉(2010),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2019) 등이 있었다. ④ 지리산 권역이다. 휴머니즘 반공 영화라 명명되는 빨치산 영화는 〈피아골〉(1955), 〈남부군〉(1990), 〈태백산맥〉(1994) 등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실향민이 잃어버린 공간이다. 〈내가 마지막 본 흥남〉(1984), 〈길소뜸〉(1985), 〈간 큰 가족〉(2005), 〈만남의 광장〉(2007) 등을 들 수 있다. ⑥ 인천상륙작전 이후 체류했던 북한지역이다. 〈원산공작〉(1976)은 첩보부대가 세균전을 준비해 원산 상륙을 단계에 걸쳐 시도한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평양에서 시가지전을 벌인다. 북한 영화 〈적구 도시에서〉(1966)는 중국 참전으로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기 전 연합군에 포위되었던 시기를 재현하며 도시에 잔류에 있었던 자유 진영을 보여 준다. 한국전쟁 영화는 진영 간 체제수호를 기저에 두고, 지배체제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해 왔다. 이는 주제 선택 시에 전쟁을 촬영할 만한 장소를 섭외하고, 허가를 받고,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전투장면을 재연할 때 환경을 훼손해 가면서 영화를 제작해 왔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에는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수많은 공간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진다. 〈미나리〉〈도굴〉〈신과 함께: 인과 연〉〈도깨비〉〈슬기로운 감빵생활〉〈사랑의 불시착〉〈천문〉〈국제시장〉〈낭만닥터 김사부〉〈동백꽃 필 무렵〉〈오징어 게임〉뿐만 아니라 외국의 영화도 몇 편 소개된다. 


저자 : 장윤정


서울대 국토문제연구소에서 재직 중이다. 서울대 지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화를 통한 장소 이미지의 교류?북제주군 우도를 사례로」로 석사학위를, 「인천상륙작전 영화 속 장소 재현」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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