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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번트가든의 여자들 - 18세기 은밀한 베스트셀러에 박제된 뒷골목 여자들의 삶
핼리 루벤홀드 지음, 정지영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북트리거 / 2024년 9월
평점 :
이 책 『코번트가든의 여자들』은 표제어나 표지로 봐서 '소설' 같은 느낌이 들지만 사회 비평의 책이다. 1957년 영국 런던에서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이 무렵의 세계 정세에 잠시 발을 들여놓자면 영국은 네덜란드 및 프랑스와 일련의 전쟁을 벌인 끝에 북아메리카에서 확고한 지배권을 가지게 되었다. 영국은 1757년 플라시 전투에서 영국 동인도 회사가 무굴 제국이 지배하던 벵골을 점령한 뒤 인도 대륙은 물론 아시아에서 주요 세력으로 성장하게 된다. 대영제국이라는 호화로운 명칭이 붙기 시작하는 빅토리아 여왕 재위 시기다. 영국은 안팎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패권국이 되어 가고 있었다. 대영제국의 기초를 다진 왕을 빅토리아 여왕으로 보는 이유다. 세계 어디에도 식민지가 없는 곳은 없었던 시절로 들어가는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 19세기에는 마침내 중국 대륙마저 장악한다. 잉글랜드 왕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적어도 세계 패권국의 위치를 고수했다.
이때 런던에서 한 권의 책이 왜 영국 사회를 들썩이게 했을까?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어떤 책이기에 매해 개정판을 내며 스테디 셀로로 자리를 굳힐 수 있었을까? 초판 발간 이후 이 책은 세기말까지 25만 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당시 출판계로선 엄청난 판매 부수다. 책 이름은 『해리스의 코번트가든 여자 리스트Harris’s List of Covent Garden Ladies』다. 이 책은 조끼 포켓에 넣을 정도의 작은 크기지만 공공연하게 들고 다닐 수는 없었다고 한다. ‘매춘부들’의 특기와 전공, 신상 명세를 기술한 남부끄러운 책이었던 탓이다.
이 책 『코번트가든의 여자들』은 그 ‘리스트’에 관한 책이다. 리스트의 표면이 아닌 행간에 파묻힌 사람들에 관한 책이라고 저자 핼리 루벤홀드는 밝히고 있다. 『해리스 리스트』에 얽힌 세 사람이 이 책의 주요 인물이다. 허영심 많고 가난한 시인과 ‘잉글랜드의 포주 대장’, 그리고 마담의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의 전철을 되밟은 ‘품위 있는’ 고급 매춘부. 이 세 사람이 리스트의 저작권자이자 『코번트가든의 여자들』의 주인공들이다. 이 세 사람의 굴곡진 삶을 파고들다 보면, 독자들은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이 당대 최고의 환락가 ‘코번트가든’, 그리고 사회의 변두리에서 위태롭고도 치열하게 살아가던 여자들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거리의 여자”, “애첩”, “님프”, “작부”, “갈보”, “비너스의 후예” 등으로 불린, 이른바 ‘매춘부’였다.
저자 핼리 루벤홀드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영국 리즈대학에서 영국사와 예술사, 역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 루벤홀드는 우리에게 알려진 빛나는 역사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천착해 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세심하게 읽고 구축한 유려한 내러티브를 통해, 오늘날 읽기에는 불쾌한 이야기로 가득한 옛 문헌이 생생한 내러티브를 품은 시대의 거울로 재탄생된다. 저자는 기록보관소에 묻혀 있던 자료들을 발굴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여성의 이야기와 희생자의 삶에 빛을 비추고 역사적 맥락을 되찾아 주는 저작들을 2005년부터 꾸준히 집필해 왔다.
루벤홀드가 주목하고, 해리스 리스트를 담은 책의 표제어에 등장한 '코번트가든'은 오늘날 런던의 주요 관광지다. 출판사 측에서 낸 소개글에 따르면 잡화점이 늘어선 아치형 지붕 아래로 북적이는 관광객들이 지나다니고, 거리 예술가들이 버스킹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곳이다. 광장의 오른쪽으로 뻗은 보우스트리트에는 런던을 대표하는 공연장 로열오페라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으며, 반대쪽 거리인 베드퍼드스트리트에서는 소박한 외관의 세인트폴교회가 왕래하는 방문객들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1700년대에 교회에서 바라본 코번트가든의 경관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밤에는 특히 더 그렇다. 거리 곳곳에 즐비한 유곽 겸 술집들이 밤마다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은근히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대놓고 유곽도 겸하는 음란한 가게들이다. 지금은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거리에 위치한 잉글랜드 사법부는 화려한 밤의 거리에 밀려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귀족과 부자, 작가와 군인, 배우와 부랑자들이 거리낌 없이 뒤섞이는 코번트가든에서는 “누구든 하고 싶은 대로 했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혼란과 불법·무법이 뒤섞인 공간이었다.
이 책 『코번트가든의 여자들』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마구 돈을 써도 지갑이 마르지 않던 상류층 남자들과 그들의 지갑을 호시탐탐 노리던 여자들. 그런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어떻게든 빌붙어서 한 푼이라도 뜯어내 보려던 또 다른 여자들과 남자들. 이들 대부분은 “18세기 영국 사회의 변두리에서 목숨을 간신히 부지하던 사람들”이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특히 세 명의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 “새뮤얼 데릭, 존 해리슨(잭 해리스), 샬럿 헤이즈는 이런 범주의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이 책은 지난 2005년 첫 출간됐다. 이번에 출간된 개정판은 2020년 판본이다. 저자 루벤홀드는 〈개정판 서문〉에서 "지난 15년 사이, 『해리스 리스트』와 앞서 언급한 세 저작권자의 이름은 대중문화 속으로 슬며시 스며들었다. 내 소설 『내 운명의 여자』를 비롯하여, 이머전 허미즈 고위의 『인어와 핸콕 부인』이나 마리아 매캔의 『에이스, 킹, 네이브』 등 코번트가든이나 웨스트엔드 일대에 살았던 여자들을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 여럿 나왔다. 텔레비전에서는 '해리스 리스트'와 그 명부에 적힌 여자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드라마가 자주 방영되었고, 특히 최근에는 바로 이 책을 토대로 만든 〈할롯〉이 큰 인기를 끌었다."고 밝힌다. 이제 '해리스 리스트'는 특정한 소수 마니아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다는 주장이다. 인터넷에서 '해리스 리스트'를 검색하면, 신문과 잡지, 블로그에 실린 관련 글이 수백 건씩 뜬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주제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 작품이나 보석 디자인, 전시회, 박사 논문, 학생 영화 등을 언급할 때면, 조용히 기쁨을 누렸다고도 저자는 털어놓는다. 망각되어 버렸던 이들이 수 세기의 세월을 되돌아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건 기쁜일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 세상은 18세기 말의 세상과 다른 만큼이나 2005년의 세상과도 완전히 다르다. 여성의 경험, 특히 섹스와 여성 신체의 성적 대상화에 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여자들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있으며, 그러한 변화는 오늘날뿐 아니라 과거사를 해석하는 데도 적용된다. 이는 역사를 전면적으로 재해석하자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동안 간과되었던 중요한 세부 사항에 초점을 더 선명하게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가령 표현이나 주변 정황 같은 것들 말이다. 일례로, 18세기에는 '유혹'과 '강간'이 사실상 동의어였다. 『해리스 리스트』에 기록된 많은 여성이 지금 기준이라면 강간으로 간주될 일을 겪은 탓에 성매매에 발을 들여놓았다. 리스트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아동기에 당한 성적 학대로 인해 매춘에 이르게 된 경우도 많았다. 리스트의 저자들과 이용자들은 이런 문제에 관해 오늘날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했고, 우리에게는 끔찍하게 들리는 견해를 수시로 표현했다. 대부분 부자와 귀족이었던 이 남성들에게 신분이 낮은 여자는 도구일 뿐이었다.
저자는 『코번트가든의 여자들』 초판본 집필 당시(2003년)에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이 남자들의 경박한 어조에 적응할 수 없었고, 지금은 더더욱 그렇다고 밝힌다. 『해리스 리스트』에서 우리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다. 때로는 동정적이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았던, 여성을 대신해서 말하는 남성들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지금이라면 저자는 그런 관점을 글에 그대로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성매매 종사자들을 일컫는 적절한 명칭에 관한 논쟁, 특히 '매춘부' 대 '성 노동자'라는 단어 사용을 둘러싼 갑론을박도 지난 15년 사이에 크게 달라졌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나 이번 책은 기본적으로 개정판이라기보다 중쇄인 까닭에, 사소한 수정을 하는 것 외에 본격적으로 고쳐 쓸 수는 없었다고 고백한다. 용어 사용은 분명 토론한 가치가 있는 논쟁거리이지만, 이 문제는 다른 책에서 심도 있게 다루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2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막이 오르다」 2장 「잭 해리스의 전설」 3장 「아일랜드 시인」 4장 「비너스의 탄생」 5장 「잉글랜드의 포주 대장, 잭」 6장 「그럽스트리트의 글 쓰는 노예」 7장 「사랑의 복잡함」 8장 「영감」 9장 「해리스의 숙녀들 소개」 10장 「『해리스 리스트』」 11장 「포주, 대가를 치르다」 12장 「플리트 교도소와 오켈리라는 남자」 13장 「해리슨의 귀환」 14장 「킹스플레이스의 산타 샤를로타」 15장 「배스의 작은 왕」 16장 「“창녀를 키울까, 경마를 할까”─암말을 키우는 법, 또는 어리석은 망아지를 이해하는 법」 17장 「원점」 18장 「품위 있는 켈리 부인」 19장 「『해리스 리스트』의 최후」 20장 「『해리스 리스트』의 여자들」 등이다. 책의 앞 부분에 〈18세기 런던 지도〉 〈개정판 저자 서문〉 〈책에 관하여〉 등이 게재돼 있고, 뒷 부분에는 〈도판 모음〉 〈부록: 코번트가든 애호가 목록〉 〈18세기 용어집〉 〈참고문헌〉 〈감사의 글〉 〈해제: 시인, 웨이터, '창녀'의 신분 상승기〉, 〈찾아보기〉 등이 20개 장의 본문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해리스 리스트』를 쓴 데릭은 아일랜드 출신의 방탕한 작가 지망생이다. 책에 따르면 포목상을 운영하는 친척 집에서 중간계급으로 성장했지만, 옷감을 파는 일엔 흥미가 없었다. 아직 ‘잭 해리스’가 되기 전의 젊은 존 해리슨은 베드퍼드스트리트의 술집에서 태어난 유망한 포주다. 친척 어른들 어깨 너머로 일을 배우며, 합법적인 일보다 불법적인 일이 돈이 된다는 걸 경험으로 익혔다. 악명 높은 마담 워드의 딸 헤이즈는 아버지 없는 사생아다. 워드 부인은 딸의 ‘처녀성’을 비싸게 팔고자 하고, 다른 여자들을 착취하여 딸의 앞날을 열어 주려 한다. 저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의 미래를 꿈꾸던 세 젊은이의 삶은 마침내 ‘코번트가든’에서 뒤얽힌다.
『코번트가든의 여자들』 저자 루벤홀드는 당시의 코번트가든은 단순한 유흥가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18세기 중반의 코번트가든은, 말하자면 20세기의 할리우드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멋들어진 가명을 지어낼 수도 있고, 비극적인 인생사를 꾸며 댈 수도 있었다. 세 사람은 각자 원하는 방식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꾸며 냈다. 데릭에 관한 어떤 기록에서도 그의 부모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고, 해리스가 떠나온 뒤의 해리슨 가족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샬럿이 어머니의 성 대신 선택한 ‘헤이즈’라는 이름에 얽힌 사연도 우리에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역사를 되는 대로 꾸며 내지만, 저자 루벤홀드는 세심한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둘러싼 거짓들을 파헤친다. 저자의 사려 깊은 서술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꿈과 욕망을 품고 사회에서 살아남으려 분투하는 보통 사람들이었다는 사실뿐이다. 1757년 처음 출간된 『해리스 리스트』는 다름 아닌 ‘매춘 가이드북’이었다. ‘매춘부’의 프로필과 특기 등이 빼곡히 적혀 있는, 당대 신사들의 안주머니에 꽂혀 있던 필수품이었다.(책 뒷 부분의 〈부록: 코번트가든 애호가 목록〉를 보면 어떤 사람들이 이른바 '단골' 고객이었는지 명단이 있다.) 실제로 『해리스 리스트』를 쓴 사람은 데릭이지만, 위대한 시인이 되기를 꿈꿨던 그는 죽을 때까지 부끄러운 이력을 감췄다고 루벤홀드는 기록하고 있다. 책의 이름은 런던 뒷골목을 주름잡고 있던 포주이자 정보통의 이름을 빌린 ‘해리스 리스트’가 되었다. 해리스는 (가짜) 이름과 여자들의 목록을 빌려주고서도 정작 수입은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책이 그 정도로 오랫동안 많이 팔릴 줄 몰랐던 것이다. 헤이즈는 한창때 이 책에 직접 이름을 올렸고, 나중에는 저작권자 명단으로 이름을 올린다. 저자 루벤홀드는 이들의 굴곡진 인생사를 매개로 당대인들이 살아갔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되살려 낸다. 이로써 오늘날 읽기에는 불쾌한 이야기로 가득한 옛 문헌이 생생한 내러티브를 품은 시대의 거울로 재탄생한다.
뒷골목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 낸 데릭의 필력은 『해리스 리스트』의 성공에 중요한 요소였다고 루벤홀드는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 ‘리스트’는 충분히 사실적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름이 적힌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키티 피셔 양이 보내 온 편지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리스트의 작성자들은 ‘뇌물’을 동봉한 편지까지 보내면서 리스트에서 이름을 빼 달라고 간청하는 키티 피셔 양의 항목을 지우는 대신, 편지의 전문을 그대로 실었다. 무엇보다도, “『해리스 리스트』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일부는 소녀라고 해야 맞다)은 강간이나 아동 성 착취의 피해자였다”. 루벤홀드가 지적하듯이, 당대 남자들은 “여성의 곤경에도 말로만 공감하는 태도를 보인다”. 여자들에게 많은 빚을 졌고, 그들에게 나름의 연민과 동질감을 느꼈던 데릭도 예외는 아니었다. 『해리스 리스트』는 어디까지나 남자들을 위한 책이었다. 대부분의 매춘부들이 어쩌다 그 일을 하게 되었는지, 그 여자들이 어떤 심정으로 손님을 받는지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따라서 『해리스 리스트』에 오른 여성들은 자신의 관점으로 이야기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많은 사례에서 여성들의 이야기는 『해리스 리스트』 제작자에게 고객들이 들려준 이야기와 상당히 달랐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에는 많은 여자들이 일이 없는 기간에 임시방편으로 ‘매춘’을 했다. 멀쩡한 가정의 하녀들도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알 수 없었고, 다른 업종들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았다. 성폭력을 당한 탓에 하릴없이 매춘을 시작하게 된 여자들도 부지기수였다. 중간계급은 이즈음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계층이었고, 그런 만큼 유동성도 굉장히 심했다. 물론 위로 올라가는 건 어려웠지만, 누구나 조금만 삐끗하면 사회의 밑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리스트는 그러한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루벤홀드는 “이런 현실을 고려한다면, 사람들이 왜 매춘에 희망을 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매춘’은 많은 여자들에게 신분 상승을 꿈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는 것. 그들 중 몇몇은 실제로 드라마틱한 신분 상승을 이뤄 내기도 했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의 줄리아 로버츠처럼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사회는 여성들에게 허황된 신데렐라 스토리를 약속하고, 젊은 여자들을 서슴없이 낚아 올린다. 물론 신분 상승을 일궈 낸 여자들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술에 절거나 성병에 걸려 초췌해진 몰골로 공동묘지에서 비참하고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이 책은 섣부른 도덕적 비난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면서, 가혹한 세상에 맞서 어떻게든 삶을 일궈야 했던 보통 사람들의 속사정을 들려준다. “그저 주어진 순간을” 버티며 “더 나은 삶을” 꿈꿨던 사람들과,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결국엔 가라앉고 만 이들의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이야기”에 루벤홀드는 거짓과 기만의 시대상을 밝히고자 집필했다. 저자와 함께 세 문제적 인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마침내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을 마주치게 된다. 그들은 ‘코번트가든의 여자들’이다.
저자 : 핼리 루벤홀드(Hallie Rubenhold)
역사가·저술가·방송인. 18~19세기 영국 여성사를 전문으로 한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영국 리즈대학에서 영국사와 예술사, 역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 내셔널포트레이트갤러리의 큐레이터, 미술품 딜러, 대학 강사로도 활동해 왔다. 기록보관소에 묻혀 있던 자료들을 발굴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여성의 이야기와 희생자의 삶에 빛을 비추고 역사적 맥락을 되찾아 주는 저작들을 2005년부터 꾸준히 집필해 왔다.
2019년에 출간된 루벤홀드의 대표작 『더 파이브』는 영어권 논픽션을 대상으로 한 영국 최고 권위의 베일리 기퍼드상을 수상했고,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헤이페스티벌 올해의 책, 굿리즈초이스어워드 역사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밖에 『레이디 워슬리의 변덕(Lady Worsley’s Whim)』(2008)은 2015년 BBC에서 〈레이디 W의 스캔들(The Scandalous Lady W)〉로 영화화되었고, 『코번트가든의 여자들(The Covent Garden Ladies)』(2005)은 2017~2019년에 영국과 미국에서 서비스된 드라마 시리즈 〈매춘부(Harlots)〉에 모티브를 제공했으며, 『매춘부의 핸드북(The Harlot’s Handbook)』(2007)은 BBC에서 동명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도 했다.
해제 : 권김현영
자신만의 시선과 목소리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고 이야기해온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PC통신과 인터넷이 보급되던 1990년대에 나우누리 여성 모임 ‘미즈’의 운영진을 맡았던 영페미니스트이다. 같은 시기에 게릴라 여성운동 모임을 표방한 돌꽃모임 멤버로 활동하며 ‘편협한 페미니스트들의 저열한 잡지’를 만들고 지하철 성추행 방지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2000년대에는 여성주의 네트워크 [언니네]에서 편집팀장이자 운영진으로 활동했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했다. 이후 이화여대 여성학과에서 공부하며 이화여대, 국민대, 성공회대 등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고, [한겨레], [씨네2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여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페미니스트의 눈으로 다시 본 세계는 이전과 전혀 다르지만, 그 눈은 그에게 고유한 자신으로 삶을 사는 굳건함, 아무도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없는 단단함, 다른 사람의 인정을 구하지 않는 당당함을 가져다주었다. 여전히 무엇이 더 나은 길인지 고민하지만 분명한 점은 페미니스트로서 살아온 시간을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는 것. 그래서 그는 오늘도 여성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글을 쓰는 삶을 계속하자고 다짐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이다. 『언니네 방 1~2』,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등의 편저,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성폭력에 맞서다』, 『대한민국 넷페미사』, 『미투의 정치학』 등의 공저가 있다.
역자 : 정지영
고려대학교 영어영문과를 졸업했으며, 글밥 아카데미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오랫동안 사회운동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정치적·사회적 이슈를 분석하고 노동, 여성 등의 문제를 다뤘다. 인간과 지구가 모두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을 바라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글을 옮기고 알리는 번역가가 되려 한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