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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클래식 - 눈과 귀로 느끼는 음악가들의 이야기
김호정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클래식은 어렵다"는 인식은 독자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닐 것이다. 독자는 클래식에 접근한 지 5년이 되었다. 클래식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결심을 하고 라디오 방송부터 들었다. 처음엔 낯설고 기초 지식도 없어서 무작정 듣기만 했다. 무슨 곡인지 누구의 곡인지는 아예 기억하지 않았다. 그냥 라디오를 켜놓고 늘 옆에 있는 '소리'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1년쯤 되니 자주 듣던 곡은 제목이나 작곡가들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굳이 따로 공부하거나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는데 방송에서 가끔씩 곡이나 작곡가에 대한 정보가 여러 번 반복해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기본 지식이 워낙 부족했기에 악보 보는 법도 몰랐고, 어떤 환경에 어울리는지 곡의 내용도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작곡의 배경도 가끔 설명해주는 라디오 진행자의 말에 의존했다. 열정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인지 쉽사리 접근을 허락치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읽은 한 권의 책이 독자의 음악 수준을 크게 높여 주었다. 입문자를 위한 음악 감상 책이었는데 쉽기도 하거니와 작곡 배경에 대해 읽고 곡을 찾아 들어보니 이해도 훨씬 쉬었다. 그렇게 서서히 작곡가의 생애와 관한 책도 읽게 됐고, 최근엔 작곡가별 곡을 한데 모아 몇 개 곡을 꽤 자세히 해석해 주는 책도 읽었다. 아는 척하긴 힘들어도 음악만 들어도 아는 곡이 꽤 많아지면서 더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올 초로 기억되는데 여느 날처럼 클래식 방송에서 임윤찬의 수상 소식을 방송 진행 아나운서가 다소 들뜬 목소리로 전했다. 누군데? 독자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굉장히 어린 피아니스트로서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었나 보다. 그러니 수상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다. 더 놀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기도 했다. 클래식 방송은 오랫동안 임윤찬의 수상 소식과 그의 연주 실력 등에 대해 초대 손님의 이야기를 통해 방송했다. 그리고 가끔씩 그의 피아노 연주곡을 방송을 통해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독자에게는 감동할 만한 이야기가 없었다. 독자의 '귀'가 막혔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치면서 손가락의 힘과 빠르기 등이 다른 음을 낸다는 것도 이때서야 알게 됐다. 독자는 불행하게도 음감이 좋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음악을 멀리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다들 치는 고등학교 시절 기타도 배우지 않았다. 독자는 늘 거리를 두면서 대중 음악과 친하지 못했다. 학문이나 예·체능이나 사전에 열심히 연습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수학 문제도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끊임없이 풀어가면서 익힌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예술이라서 다르겠는가? 물론 타고난 소질이란 것도 예술 분야에서는 필요할 터다. 그러나 능력과 실력을 가르는 것은 '피나는 연습'이란 사실은 수없이 들어왔다.
이 책 『더 클래식』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가들의 연주와 캐릭터를 재조명하는 취지로 집필됐다. 저자 김호정은 피아노를 치며 자랐다고 한다. 출신학교도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니 음악인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17년 동안 중앙일보 문화부에서 클래식 음악을 담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흔히 말하는 '전문기자'인 것 같다. 17년 간의 기자 생활 동안 얼마나 많은 음악인과 음악곡, 무대 등 엄청난 예술 감각의 소유자일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고전 음악가 16인의 스타일을 분석한다. 이미 전설이 된 선구자 백건우, 정경화, 정명훈, 조수미, 진은숙을 비롯해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거장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 등 국내 동시대 음악가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연주가 왜 좋은 건지, 음악가들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 소리를 내는 건지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추구한다.
저자는 클래식은 재연의 예술이라 말을 인용한다. 수백 년 된 음악을 자꾸 연주하는 이유는 매번 다르기 때문이다. 연주자마다, 지휘자마다, 작곡가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면 클래식을 듣는 귀가 생길 것이다. 정확한 지적인 것 같다. 앞서 독자가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것은 제대로 듣는 귀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이 책 『더 클래식』은 클래식을 듣고 싶은데 어디에서 시작할지 모르겠다고 느끼는 이들이나 특정 연주자에 관심이 생겨 구석구석 해부해 보고 싶은 이들, 유명한 음악가들이 왜 유명한지 궁금한 이들을 위한 가이드 북으로 썼다고 밝힌다. 가장 쉽고도 분명한 클래식 가이드북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썼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음악은 왜 좋을까?」란 제목의 〈서문(프롤로그)〉에서 자신이 음악가였다면 이런 시도는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문을 연다. 하지만 기사를 쓰고 콘텐트를 만들어내는 인생을 살면서, 음악을 말로 풀어내지 못하면 자신이 '할 일이 별로 없다' 생각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이떤 멜로디나 특정한 화음을 듣고 벅찬 감동을 느꼈던 이유에 대해 조금이나마 실마리를 찾아보고 싶었다고 집필 이유를 밝힌다. 음악가들이 인간의 감정과 신념을 음악으로 코딩한다면, 자신은 디코딩하는 작업을 해본 것이라고 비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예컨대 '이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왜 이렇게 좋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궁금해 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으리란 희망에서 책을 쓰게 됐다는 이야기다. 또 그렇게 알게 되는 음악가들 사이의 차이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음악가마다 다른 방식을 찾아가다 보면 결국 사람 자체를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 저자는 같은 곡을 놓고도 음악가들은 서로 다른 소리를 상상하고, 전달하는 방식도 판이하다고 말한다. 모두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오래된 악보를 놓고 수백 년 동안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이런 생각이 클래식 음악의 생명력을 설명하는 자신의 접근법이라 점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은 3개의 파트로 구분되어 있다. 1장(章)에는 저자 김호정이 청중으로서 편애하는 피아니스트들을 따로 모았다. 백건우,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을 분석한다. 2장에서는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국내 음악가 4인, 정경화, 정명훈, 진은숙, 조수미를 각각 조명하며 화제의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 및 한국의 10대 영재 음악가 3명(김서현, 김정아, 이하느리)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는 20세기의 추억을 부르는, 지금은 고인이 된 옛 음악가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레너드 번스타인, 마리아 칼라스,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깊숙이 파고든다. 이 중에서 백건우, 호로비츠, 번스타인, 파바로티의 글은 〈더중앙플러스〉 연재 당시에는 없었던 것으로 오로지 이 책 『더 클래식』 단행본에만 특별히 수록되었다고 한다.
독자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왜 상을 받았을까?에 대해 피아노를 잘 치니까!란 대답 이외의 다른 이유는 전혀 모른다. 클래식 입문자 수준이 이유를 알기에는 무척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임윤찬과 그의 연주곡을 조금 더 음악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많은 궁금증이 해소된다. 이 책이 그 역할을 위해 쓰여졌다. 클래식 입문자에게는 쉽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이 책이 알려준다는 이야기다. "그냥 좋으니까 좋은 건데 왜 좋으냐고 묻는다면" 정도의 대답이라면 아직 입문자 수준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독자로서는 분발에 불을 당기는 셈이다.
왜 어떤 연주는 재미있게 들리고 어떤 연주는 잔잔하게 귀를 지나가는지, 왜 이 음악가는 이런 소리를 냈고 그 순간 무엇을 추구한 것인지 이 책은 세밀하게 조명한다. 예를 들어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소리와 소리 사이의 간격을 조절하는 '독특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알려준다. 임윤찬은 또 이전에 다른 연주자들에게서는 들리지 않았던 소리를 강조하려는 본능도 보인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에 비해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피아노의 시인’이라 부를 수 있는 우아한 음색이 특징이며 시종일관 기품 있고 귀족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기술 점수 만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테크닉적으로 완벽하다는 점을 짚어내고 있다. 손열음은 피아노의 ‘딕션 장인’이다. 모든 음표가 정확하게 귀에 꽂히는데 이는 절대음감이 극도로 발달해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지만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는 알기 힘들었던 고전 음악가들 고유의 스타일을, 명확한 언어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은 중앙일보의 유료 구독 플랫폼 〈더중앙플러스〉에 연재된 ‘김호정의 더 클래식’을 새롭게 구성해 엮었다. 당시 구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 세계를 가이드해 주는 글”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분석” “왜 어떤 연주는 끝까지 몰입하여 듣게 되는지 정확히 알게 하는 기사” “한국에도 이런 클래식 기사가 있어 행복해요” 등 재미와 완성도를 모두 잡은 보기 드문 클래식 시리즈였다고 평가되었다.
이 책 『더 클래식』의 가장 큰 차별점은 음악을 들으며 동시에 읽을 수 있는 하이브리드 콘텐트라는 점이다. 글에서 설명하는 딱 그 부분에서 음악이 시작되는 것을 들으며 음악가들의 스타일을 비교해 볼 수 있다. 모두 117개의 엄선한 클래식 음원과 영상을 QR코드로 수록해 독자들의 입체적 감상을 돕는다.
임윤찬을 예로 들어보자. 저자는 그를 ‘건반 위의 피카소’로 명명한다. 과감하게 해체하고, 강렬하게 조합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많은 연주자가 주 선율에 힘을 준다면, 임윤찬은 잘 들리지 않는 왼손 반주나 화음의 아랫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표현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다 보니 낯선 음들이 마구마구 튀어나오는데, 그 충격과 새로움이 청자를 전율케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임윤찬의 연주를 오선지 악보로 시각화해서 건반 위의 피카소임을 증명한다. 언급한 대로 저자가 지적한 '다른 소리' 부분을 잡아내는 것도 대단하지만 공로는 연주자에게 돌아간다. 다만 저자는 QR코드를 끼워넣어 독자가 읽은 것과 함께 들으며 비교 가능하도록 책을 구성했다.
음악가를 비교하며 듣는 재미도 알려준다. 예컨대 언제나 정교한 연주자인 피에르 로랑 에마르와 틀린 음도 개의치 않고 전진하는 임윤찬의 베토벤 영웅 변주곡 13번째 연주를 나란히 들어본다. 그러면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에마르의 정갈한 열정과 임윤찬의 휘몰아치는 격정을 비교할 수 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그러나 아직 초보 수준을 면치 못하는 독자로서는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준에는 못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친절한 설명도 못 알아듣는 것은 아무래도 음악에 대한 지식보다도 소질 자체가 없는것인지도 모르겠다. 크게 상관할 건 없다. 독자가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고 그냥 애호가 수준이면 만족하니까. 그래도 저자의 주장에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말도 있다. "음악에는 정답이 없고, 자기만의 해석이 있는 연주자가 많아질수록 듣는이의 기쁨은 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치밀한 분석과 다양한 음악가 인터뷰를 통해 그 누구도 들려주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클래식 감상법을 제시한다.
소리의 빛깔이나 질감을 읽어내는 대목도 흥미롭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음악은 왜 해상도가 높은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소리엔 왜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있는지, 성악가 조수미가 깨끗한 물처럼 노래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한다. 음악을 언어화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이 책은 음악가들의 삶과 철학을 경유해 쉽고 명쾌하게 풀어낸다. 저자가 피아노 전공자인 것도 한몫했겠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음악가 대부분을 인터뷰해 온 저자의 내공과 성실함이 그걸 가능케 했을 터다. (임윤찬 단독 인터뷰도 실려있다) 아는 만큼 들리고, 들리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 이 책이 추천하는 명연주를 차례대로 음미하며, 음악이 주는 축복과 감동을 온전히 느껴보자. 올 가을은 클래식 향기가 가득한 특별히 기억에 남을 가을이 될 것이라 독자는 믿는다.
이런 재능이 음악에는 어떻게 연결될까요? 손열음 음악의 빛깔에 답이 있습니다. 같은 음을 누를 때도 그의 소리는 넓은 스펙트럼으로 표현이 됩니다. 똑같은 음표도 그에게는 다 다르게 들린다는 거죠. 그래서 손열음의 연주에서는 다양한 빛깔이 쏟아져 나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p.29) - 「손열음: 정확한데 유연하다」 중에서
“믿을 수가 없군. 네 노래는 꼭 깨끗한 물 같아.”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한 말입니다. 1987년 25세이던 소프라노 조수미가 노래하고 나서죠. 죽음을 두 해 앞둔 카라얀은 앞날을 꿰뚫는 듯한 눈빛으로 조수미를 봅니다. 이 장면은 다큐멘터리로 남아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p.152) - 「조수미: 신이 허락한 ‘맑음’」 중에서
저자 : 김호정
음악 하는 인생이 일반적인 줄 알고 피아노를 치며 자랐다.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에서 피아노, 언론정보학, 공연예술학으로 학사·석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경찰팀·시청팀, 산업부 유통팀에서 일했다. 이제는 음악 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예술의 풍요함을 신봉한다. 더 많은 사람이 풍족하게 음악을 듣도록 돕는 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문화부 음악 담당 기자이며, JTBC의 클래식 프로그램 [고전적 하루]를 기획·진행했다. 이탈리아 부조니 국제 콩쿠르 라이브스트리밍, 문화재청 덕수궁 석조전 음악회의 사회를 맡았다. 중앙일보 칼럼 ‘왜 음악인가’, 오디오 콘텐츠 [고전적 하루], JTBC 동영상 [헤이뉴스]의 ‘헤이 클래식’을 기획 및 진행하고 있으며 클래식 음악과 공연 전반에 걸쳐 글을 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