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술 - 바로 써먹는 논리학 사용법
코디정 지음 / 이소노미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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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논리학'이란 단어는 우리가 사회에서 많이 사용한다. 학교를 다닐 때는 오히려 사용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학에 가서야 교양과목으로 선택해 '철학' 수업을 한 한기 들은 게 전부다. 교재 『철학개론』을 배울 때 논리와 논리학이란 단어가 수 차례 사용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철학 수업 몇 시간 들었다고 논리학은커녕 논리란 단어 자체의 개념 확립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그리고 '논리'와는 멀어졌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학교 다닐 때는 잘 쓰지 않던 단어가 사회 생활할 때 훨씬 자주 사용된다. 어떻게 논리나 논리학을 배우지 않았는데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하고, 상대를 설득시킬 수 있었을까? 논리학을 배우지 못했던 독자로서는 아직도 궁금하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독자는 지금도 몇 개의 단어를 제외하곤 '논리'의 정확한 뜻과 논리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우는지도 알지 못한다. 귀납법과 연역법은 언젠가 문학 시간을 통해 배운 것 같고, 윤리학은 철학서나 동양고전 등에서 워낙 자주 나오는 말이라 뜻 정도는 알게 됐다. 논리학(logic, 論理學)이란 인간의 지식활동에 관련된 특정한 종류의 원리들을 분석하고 명제화하며 이들을 체계화하는 분야의 학문이란 사전적 풀이를 빌리지 않더라도, 설명하진 못하지만 막연하게 인지하고 있는 상태의 논리학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이 책 『생각의 기술』이 아직 알지 못하는 논리와 논리학에 조금 접근하는 데 도움을 줄 듯하다. 이미 책을 읽은 독자가 '도움을 준다'라는 확정적 표현을 하지 못한 것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워낙 논리학에 문외한인 탓에 굉장히 쉽게 쓰인 책이라고 하는데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이 책의 앞 부분(약 70페이지)는 정말 쉽게 읽힌다. 책의 〈서문〉과 〈논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이다. 독자처럼 한 번 읽어서 완전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책을 덮지 말고 볼펜을 사용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체크하고 다시 읽기로 하고 건너 뛰어가면 점핑 독서를 해서라고 한 번 끝까지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최소한 어떤 단어들이 사용되는지는 알아낼 수 있다. 

논리학이나 철학에서 사용되는 단어는 어떤 점에서 보면 완전히 같은 것, 혹은 비슷한 맥락의 뜻으로 쓰이는 것을 단어들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이 정도만 이해한다면 시간이 날 때 막혔던 부분을 다시 한 번 읽고 생각해 본다면 분명 훨씬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책의 내용에 따라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따르면 인간은 무엇이든 생각하고, 그 생각을 표현한다. 인생의 모든 것은 생각과 표현으로 이루어지고, 생각과 표현을 통해 생겨난 성과가 행복과 부와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관한 다양한 스킬이 궁리되었다. 하지만 지금껏 알려진 기존 지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그 유용함이 달라지기 때문에, 잘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수리 논리학은 ‘이미 표현된 것’만을 다루고, 어떤 표현이 ‘참’이고 어떤 표현에 오류가 있는지 안내해 주지만, ‘인간의 머릿속’에는 무수히 많은 거짓과 오류가 자연스럽게 서식한다는 점에서 실생활에서 활용하기 어렵다. 

인간의 생각과 표현에 관한 표준은 없는 것일까? 어떻게 생각이 탄생하고 어떻게 오류가 발생하는 것일까? 어떻게 거짓이 전속력으로 퍼지고 또 어떻게 지식이 확장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것을 고집하며 감정적으로 반응하기까지 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유용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그 통찰을 통해, 더 나은 생각을 하고, 더 효과적인 표현을 고를 수 있으며, 일을 더 잘하고 더 멋진 성과를 낼 수 있다. 더 잘 소통하면서 더 좋은 평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해답을 논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제안한다.

흔히 논리학이라고 하면 19세기 이후의 논리학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 『생각의 기술』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로 대표되는 전통 논리학을 복원하면서 독자들이 쉽게 논리 지식을 얻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수학자들이 제안하고 일부 철학자들이 응답해서 정립된 19세기 이후의 논리학은 그 탐구 범위가 좁다. 2,3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전통 논리학과 달리, 수리 논리학이라는 이름을 갖는 그것은 인간 머릿속에서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것을 배제한 채, 표현된 문장 중에서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학문’으로 논리학을 축소시켰다. 이 책은 표제어를 수식하는 부제 「바로 써먹는 논리학 사용법」이란 문구가 의미하듯 실용적인 목적으로 저술된 논리학 책이다. 저자 코디정은 유튜브 〈코디정의 지식 채널〉을 통해 제공한 '논리학 콘텐츠 시리즈'에서 많은 시청자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았다.

이 유튜브 지식채널에서 제공한 영상의 제목 몇 개만 참고 사항으로 여기에 적어본다. 〈북에디터가 알려주는 독서 스킬-최대독서법〉, 〈당신을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지적인 여행-자유론, 완전정복〉, 〈슬픈 황제-자유론이 말하는 아우렐리우스〉, 〈반증사용설명서-반론의 힘, 변증〉, 〈여성의 종속-존 스튜어트 밀의 멋있는 책〉 등 23개의 동영상과 '쇼트(short)'에 10여 개의 새로운 영상을 추가해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참과 거짓을 판별하고 추론의 타당성을 분석하는 기존 논리학이 아니라,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생각이 탄생하고, 도약하며, 또 어떻게 참과 거짓이 뒤섞이게 되는지를 탐구하는 논리학을 이 책에서 소개한다. 칸트와 논리학의 환상적인 결합을 소개하는 이 책은 마치 라식 수술을 받은 것 같은 선명한 시야를 독자에게 선물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옛날에는 생각을 하는 일은 신분이 남다르거나 정신적 지도자 같은 극소수의 사람만의 특권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그 특권을 사용한다. 적어도 머리를 쓰는 일만큼은 권력과 재산에 얽매이지 않는다. 인생의 모든 일은 머리를 쓰는 일이다. 인간의 지식과 소통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머리를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은 일일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답한다. ① 성실히 일함에도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하는 사람 ② 열심히 공부해도 입시와 자격 시험에서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하는 사람 ③ 효과적으로 독서를 못하는 사람 ④ 타인과의 소통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 ⑤ 타인을 설득하는 일을 함에도 논리력이 부족한 사람 ⑥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기획자 ⑦ 더 효율적인 결과를 내놓고자 하는 개발자 ⑧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 ⑨ 이미 꼰대가 되었음을 본인만 모르는 어느 중년 ⑩ 자녀에게 더 좋은 인생 조언을 하려는 부모의 머릿속을 시원하게 해줄 것이다. 

오늘날은 AI가 인간의 머리를 학습하는 시대이다. 도대체 인간의 머리 안에서 생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기계가 인간을 학습하는 이 시대에, 도대체 기계가 자신의 무엇을 모방하고 있는지 호모 사피엔스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 만 년 전 인류가 날카로운 돌멩이를 바라보면서 그것의 효용을 생각했던 것처럼, AI를 삶의 무기로 삼는 호모 사피엔스는 기계 너머의 기술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생각의 기술(The Art of Thinking)이라고 저자 코디정은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17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1강 「논리란 무엇인가」, 2강 「논리를 공부해서 무엇을 얻는가」, 3강 「논리의 전체 구조」, 4강 「개념이란 무엇인가」, 5강 「생각의 탄생, 판단이란 무엇인가」, 6강 「생각의 도약, 추론이란 무엇인가」 등은 논리의 기초를 다룬다. 여기에서는 이 책이 다루는 논리학이 머리 바깥으로 표현된 문장들이 아닌, 머리 안쪽의 〈인간 공통의 머리 구조〉에 관한 것임을 천명한다. 다양한 예와 함께 매력적인 설명이 펼쳐진다. 7강 「토대 구조 모형」, 8강 「인간 지식의 코어, 연역」, 9강 「연역을 보충하는 귀납」, 10강 「경험은 논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11강 「유추, 경험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인간 지식의 좌충우돌」, 12강 「확률의 위안」, 13강 「변증, 반론의 힘」은 논리 '심화편'이다. 독자들은 심화편에서 인간이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고 확장하며, 또 어떻게 오류에 휩싸이면서 잘못된 지식을 고집하는지 넉넉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지식 습득과 소통의 면에서 강력한 무기를 얻을 수 있다. 14강 「설득의 기술」, 15강 「생각의 집합」, 17강 「끈과 가위」에서는 이런 질문에 다양한 사례로 답한다. 

이와 함께 〈부록〉은 책 말미에 붙이는 게 보통이지만, 그러면 독자들이 잘 읽지 않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일부러 편집을 바꿔서 책 중간중간에 부록이 들어갔다. 논리학에 대한 편견을 정정하고, 논리적으로 독서하는 방법과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스킬을 전한다. 마지막 〈부록〉은 「논리학 Q&A」, 「논리적으로 독서하는 법」, 「논리적인 글쓰기」 등 3편의 글에서는 논리학에 대한 편견을 정정하고, 논리적으로 독서하는 방법과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 스킬을 전한다. 마지막 「논리학이 주도하는 철학의 계보」는 논리학을 기본 뼈대 삼아 철학의 계보를 살펴본다. 서양철학을 공부해도 지식이 되기는커녕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돼버리는 까닭은 우리가 논리학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 철학의 지혜를 온전히 얻기 위해서라도 논리학의 복원이 필요하고, 이 책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저자는 새로운 세계, 그런데 매우 친숙한 세계가 우리들 머릿속 세계라고 강조하고 이곳에서 기계가 우리를 모방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칫 우리가 기계를 모방하려 한다는 우려를 예방하기 불식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이 머릿속 세계가 우리가 인생의 무기를 찾을 곳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논리학에 대해 문외한인 독자가 이 책을 한 번 읽고 모두를 이해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독자가 볼펜을 준비할 것을 권유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해 독후감이나 서평을 한 번 읽고 제대로 쓴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책의 성격에 대해서는 읽은 대로의 느낌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면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선에서 머물러야 할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 가장 먼저 어려움을 느낀 부분이 '추론'에 관한 부분이다. 추론은 문학 시간에 연역법, 귀납법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있다. 철학에서 추론의 쓰임새에 이렇게 쓰고 있다. "서로 관련된 둘 이상의 대상들은 지속적이든 일시적이든 관계를 맺고 있다. 추론은 바로 이러한 관계들을 발견하고 비교한다. 이러한 관계는 감각에 직접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관계가 감각에 의해 직접 주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이런 관계에 대한 인상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런 관계를 발견하고 비교하는 일은 지각의 일이 아니라 추론의 일이다. 우리가 동일, 시간과 공간의 관계들 등에 관해 관찰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결코 추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관계들 가운데 어떤 것에서도 정신은 감각에 직접 나타난 것을 넘어서서 대상들의 실재적 존재나 관계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념에 의존하는 관계인 유사, 반대, 성질의 정도 그리고 양 또는 수의 비례는 관념의 변화가 있어야만 변화할 수 있는 것이므로, 이 관계는 지각에 의거한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관념에 독립적인 동일, 시간과 공간의 관계, 인과 관계들에 어떤 추론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과 관계를 제외하고는 추론적 요소를 찾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동일, 시간과 공간의 관계에서는 직접적인 감각 대상을 넘어서는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흄 『인성론』 「해제」, 2004, 장동익)

저자 코디정은 6강 「생각의 도약, 추론이란 무엇인가」에서 '논리의 꽃, 생각의 도약을 알아봅니다'란 머리붙임말을 사용했다. 이에 따르면 판단의 관점에서 문장을 재구성할 경우 판단은 대상에 대한 생각이고, 따라서 판단을 내리려면 대상이 있어야 한다. 여기 어떤 사물이 있다. 관찰자가 등장해서 그 사물을 바라본다. 그러면 사물은 대상이 된다. 여기 꽃바구니가 있다. 관찰자가 이 꽃바구니를 목격하지 않았다면, 그 관찰자에게, 꽃이든 말든, 꽃이 예쁘든 아니든, 그 꼿이 무엇이든,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사물이다. 그런데 관찰자가 등장해서, 그 꽃바구니를 목격한다. 그러면 사물은 대상이 된다. 모든 사물이 관찰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극히 일부의 사물만이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관찰자에게 나타난다. 이렇듯 사물이 대상이 되는 것은 관찰자에게 하나의 '사건'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 입장에서 바라본 세계의 존재방식이다.

사실 백과사전을 동원하고 또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도 문장의 뜻을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알 것 같다가도 문장이 길어지면 다시 의미가 흐려진다. '추론'을 설명하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철학자들은 매우 느리게 생각한다. 철학 공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철학자처럼 느리게, 천천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다른 말로 '디테일'이라고 한다. 슬로우와 디테일은 다른 단어이지만, 철학 공부에서는 거의 같은 의미의 개념이다."(p.141) 이 책을 읽어나가는 데 결정적 문장이라고 생각되는 대목이다. 저자는 이 꽃바구니 사건을 첫 번째 사건으로 '맛있는 떡 사건'과 '끼어들기 사건'을 추가로 사례 설명을 더한다. 3가지 생각 사건에서 나타난 판단, 즉 명제 중에서 한 가지씩 추려낸다. '① 꽃바구니가 예쁘네 ② 이 떡은 맛있는 쑥인절미네 ③ 저 차는 끼어들기한다'. 이들 판단, 문장, 명제는 일종의 사실 판단의 성격을 갖는다. 이 자체로는 가장 기초적인 생각에 불과해서 그다지 대단한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인간은 이 단순한 문장에서 지금 여기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지점으로 생각을 도약시킨다. 예컨대 '꽃바구니가 예쁘네'라는 지금, 여기에서의 판단에서, '이 꽃바구니를 연인한테 선물해야지'라는 새로운 판단으로 생각을 도약시킬 수 있다. 이런 판단은 '꽃바구니가 예쁘네'라는 문장에는 전혀 들어있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생각이다. 즉 생각의 도약이 이루어진다. 

이 경우 '꽃바구니가 예쁘네'를 사고력 1, '이 꽃바구니를 연인한테 선물해야지'를 사고력 2로 구별한다. 전자의 사고력은, 대상에 대해서 관찰자가 머릿속 개념을 적용해서, 지금, 여기의 판단을 만들어내는 사고력이다. 그런데 후자의 사고력은 과거에 보관되어 있는 판단을 이용해서 대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생각을 도약시키는 추론의 사고력이다. 철학자들은 전자의 사고력 1을 오성(understanding)이라 칭하고, 후자의 사고력 2를 일컬어 추리력, 즉 이성(reason)'이라고 한다. 요즘에는 오성 대신에 지금은 '지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이다. '이 시대의 지성'라는 문장에서 사용하는 지성이 아니다. 대상을 판단하고, 그 판단을 통해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지적 능력, 즉 지능으로서 인간 머리의 지적인 특성을 뜻한다. 


글의 주체는 ‘나’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혹은 선택해야 하는 페르소나Persona’이다. 페르소나란 가면을 뜻하며,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서 등장인물이 사용하던 가면에서 유래된 단어다. 심리학자 융은 인간은 천 개의 페르소나를 지니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쓰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면Persona’이 글쓰기의 ‘인격Person’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됐으므로 글을 쓴다. 그렇다면 그 상황에 맞는 페르소나를 선정해서, 그 페르소나 관점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p.259)


저자 : 코디정


에디터, 언어활동가, 변리사. 『괘씸한 철학 번역』(2023)을 포함하여 열 권의 책을 저술했다.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로 제2회 정문술 과학저널리즘상(인터넷부문) 수상. 숭실대학교 국제법무학과에서 지식재산법을 가르치며(겸임교수), 유튜브 <코디정의 지식 채널>을 운영한다. 본명 정우성.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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