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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예대의 천재들 - 이상하고 찬란한 예술학교의 나날
니노미야 아쓰토 지음, 문기업 옮김 / 현익출판 / 2024년 7월
평점 :
이 책 『동경예대의 천재들』은 일본의 현대 예술계를 이끄는 〈동경예대〉와 예비 예술가들인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동경예대〉를 우리는 '도쿄예술대학교'로 읽는 게 맞을 것 같다. '동경(東京)'은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는 음이기 때문이다. '현지 발음주의'로는 도쿄 예술대학이고 일본 사람들도 '도쿄'로 읽을 것이다. 이 학교는 전신인 동경미술학교와 동경음악학교를 포함해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일본 최고의 종합예술학교이다. 팝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 작곡가 류이치 사카모토 등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예술가들을 양성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 1세대 대중가수인 현인(현동주)도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예술계의 도쿄대’로 불릴 만큼 세계 수준의 예술가 양성을 목표로 한다. 이 학교 입시 경쟁률과 난이도는 오히려 도쿄대보다 높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일본 도쿄도 다이코구 우에노(우에노 캠퍼스)에 있는(제1 캠퍼스) '일본 국립종합예술대학'이다. 이바라키현 토리데시의 토리데 캠퍼스(제2 캠퍼스),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나카구의 요코하마 캠퍼스(제3 캠퍼스), 도쿄도 아다치구 센쥬의 센주 캠퍼스(제4 캠퍼스)가 있다. 이처럼 캠퍼스가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는 것은 학교 규모가 계속적으로 커졌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일본 예술계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예술대학으로 손꼽히는 도쿄 예술대는 1949년 도쿄미술학교와 도쿄음악학교를 합병해 국립 종합예술대학으로 면모를 갖췄다. 도쿄미술학교와 도 음악학교 모두 구제전문학교다. 구제전문학교란 1903년 메이지 36년 칙령 제61호 ‘전문학교령’으로 세운 고등교육기관이다. 오늘날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통합과정에 해당하는 구제(舊制)중학교와 고등여학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3년 이상 교육하는 학교였다고 교사(校史)는 밝히고 있다. 오늘날 단과대학과 비슷한 개념이다. 도쿄 예술대학의 전신 중 하나인 도쿄미술학교는 회화, 조각, 건축, 도안 분야의 전문가와 미술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 1887년에 설립한 일본의 국립미술학교였다. 1896년에는 서양화가이자 정치인 구로다 세이키1866~1924)를 주축으로 서양화과를 개설했다. 도쿄미술학교는 서양화과 개설 후부터 일본 사회에서 서양화를 전파하는 중심 역할을 했다.
도쿄 예술대학은 20세기 초 일본 미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 교육기관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한국 미술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로 불리는 고희동(1886~1965)을 비롯한 김인승(1910~2010), 심형구(1908~1962), 오지호(1905∼1982), 이종우(1899~1981) 등 근대 서양화단을 이끈 주요 화가들이 이곳에서 유학했다.
또 다른 전신인 도쿄음악학교는 메이지 시대 교육자 이사와 슈지(1851~1917)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이사와는 정치인 메가타 다네타로(1853~1926)와 함께 음악교육 의견서를 문부성에 제출하고, 문부성은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듬해인 1879년 일본 음악교육 조사 등을 목적으로 한 음악취조괘를 설립했다. 이후 음악취조괘는 도쿄 사범학교 부속 소학교(현 쓰쿠바대학 부속 소학교)와 도쿄여자사범학교부속유치원(현 오차노미즈여자대학 부속유치원) 학생에게 음악교육을 제공할 교원을 육성하면서 음악전문교육기관의 역할을 해나갔다. 그 뒤로 여러차례 명칭을 변경했고 1887년 10월 4일 도쿄 음악학교로 정했다. 1893년 한때 도쿄고등사범학교(현 쓰쿠바대학)의 부속학교가 됐다가 1899년에 다시 독립했다.
도쿄 예술대학 우에노 캠퍼스에 대부분의 학과와 시설이 집중돼 있다. 부속도서관, 미술관, 연주예술센터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도쿄 예술대학 미술관(University Art Museum)이 유명하다. 1887년부터 작품을 수집해 오늘날 3만 점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이 중 22점이 국보 또는 중요문화재(2022년 도쿄 관광 공식 사이트 GO TOKYO 기준)다. 또 대학 졸업생이나 교원의 작품도 전시하고 있다. 이 학교는 또 한국인 유학생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도쿄미술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한 두 번째 한국인 유학생 김관호(1890~1958)의 〈해질녘, 1916〉을 소장하고 있다. 1941년 도쿄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성남중, 서울중·고등학교 교사로 활동한 김재선(1918~1948)의 〈자화상, 1941〉도 있다. 또 김홍도와 함께 조선 후기 정조·순조 연간을 대표하는 화원 화가 이인문(1745~1824 이후)의 작품 〈포도〉도 이곳에 있다.
1963년 대학원도 개설했다. 처음에는 석사 과정만 제공하다 1977년 박사 과정을 수용할 수 있도록 확장해 대학 전체 교육 및 연구 수준을 향상시켰다. 1987년에는 이바라키현 토리데시에 새로운 캠퍼스를 인수했고, 2004년 일본은 국립대학을 정부조직에서 분리시켜 독립법인으로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한 국립대학법인법을 제정하면서 도쿄 예술대학은 국립대학법인이 됐다. 2005년에는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영화뉴미디어대학원을 설립했고 2006년에는 센주 캠퍼스를 열었다. 2016년에는 글로벌예술대학원을 신설했다. 오늘날 도쿄 예술대학은 미술학부(7개 학과)와 음악학부(7개 학과)로 이뤄져 있다. 대학원에는 미술연구과, 음악연구과, 영상연구과, 국제예술창조연구과의 4개 연구과가 있다.
이 책 『동경예대의 천재들』은 일본에서도 베일에 싸여 있던 도쿄 예술대학의 캠퍼스 풍경을 흥미롭게 담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예대 출신 아내를 둔 저자 니노미야 아쓰토가 직접 학교를 탐방하며 각 학과의 학생들과 만난 내용을 유머러스하게 써 내려간 이 에세이는 명문 예술대학 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작품으로서의 재미를 모두 충족해 준다. 우리나라 독자로서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일본 예술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 예술대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볼 수 있고, 그들의 캠퍼스 라이프를 통해 일본 예술계의 흐름도 알아볼 수 있어 읽을 만한 책으로 추천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것들은 우리 독자로서는 별로 중요한 것들이 아니지만 일제 강점기 우리 예술가들이 유학 갔던 곳이기도 해서 독자가 교사를 찾아내 몇 줄 적은 것이다. 또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하면서 예술의 중요성에 대해 눈떴다는 반증이기도 해서 독자도 공부도 할 겸 적었다. 사실 독자가 도쿄 예술대학교와 비슷한, 우리나라 서울 예술대학교도 있어 비교 겸 찾아 넣었다.
서울 중구 예장동에 있는 서울예술대학교(Seoul Institute of the Arts)도 〈서울예전〉, 〈서울예대〉를 거쳐 오늘날 명칭을 갖게 됐다. 1962년 유치진이 연극 교육을 통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에 의한 민족문화의 단절을 극복하고, 나아가 민족극을 수립, 중흥시킬 전문예술인을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했다. 1979년 서울예술전문대학으로 승격되어 주간부에 연극과 2학급, 영화과·방송연예과·응용미술과·무용과·문예창작과에 각 1학급씩, 7학급 280명, 야간부에 연극과·영화과·방송연예과·응용미술과·문예창작과 등 5개 학과에 5학급 200명 정원으로 확장되었고, 초대 학장에 유덕형이 취임했다. 1981년 사진과와 국악과를 신설, 8개 학과에 18학급 720명의 졸업정원으로 모든 분야의 예술교육이 가능한 고등교육기관으로 면모를 일신하였다. 1987년 11월 야간부에 응용미술과·문예창작과·국악과를 설치하고 전공을 분리하였다. 1989년 3월 응용미술과, 문예창작과, 국악과를 각각 시각디자인과(주간)·실내디자인과(야간), 문예창작과(주간)·극작과(야간), 국악과(주간)·실용음악과(야간)로 개편하였다. 1998년 서울예술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고, 2001년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캠퍼스를 신축, 이전했다. 2002년 연극과·영화과·방송연예과·실내디자인과의 수업연한을 3년으로 연장했다. 2008년 전 학과를 3년제로 개편하고, 전공 심화과정을 개설했다. 현재 우리 연극·영화·TV드라마 등에 출연하는 베테랑들 중 많은 수가 이 학교 출신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도쿄예술대학교〉는 ‘예술계의 도쿄대’로 불리워지며, 입학하기 위해 재수는 기본에 5수, 6수를 하는 일도 잦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됴쿄 예대에 가지 못해 미련이 남은 부모가 자식이라도 보내기 위해 애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실력이나 인기 면에서 본다면 단연 최고의 예술 학교임에는 틀림없을 듯하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하는 만큼, 탄탄한 기초는 물론 반짝이는 재능까지 갖춘 예대생들은 소위 '천재'로 불리운다고 한다. 과연 그런 천재들이 모인 도쿄예대의 캠퍼스 라이프는 어떤 모습일까. 푸르른 녹음으로 둘러싸인 붉은 벽돌 담장 안, 마주 선 미술학부와 음악학부의 캠퍼스에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예술혼을 불태우는 젊은 예술가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자 아오야기 씨가 눈을 감으며 입을 오므렸다. 높고 투명한 음색이 한없이 퍼져나가다가 갑자기 빠른 리듬으로 전환되는가 싶더니, 다시 소리가 매끄럽게 뻗어 나갔다. 아오야기 씨는 마치 공중에 떠올라 입에서 마법의 구름을 내뿜고 있는 듯했다. 이게 정말 휘파람인가?
“참말 이거 뭐 대단타…….”
너무 감동한 나머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사투리가 나올 만큼 굉장한 연주였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그 누구보다도 즐겁게 휘파람을 부는 아오야기 씨의 표정이 더 강렬하게 남았다. 바라보는 내가 더 기뻐질 만큼 무척 기분 좋은 모습이었다.
‘물건을 만드는 시간을 좋아한다’라고 말한 사노 씨가 떠올랐다. 분명 이런 걸 말하는 거겠지? 두 사람은 남에게 인정받겠다든가, 남을 이기겠다든가 하는 생각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어디까지나 자연스럽게, 즐기면서 최전선을 달리는 사람들이다. 천재란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른다.(p.90~91)
저자에 따르면 도쿄예대의 두 학부, 미술학부와 음악학부는 학부당 7개의 학과와 각각의 세부 전공들로 나뉜다. 구성 체계로만 본다면 일반적인 대학교와 큰 차이가 없는 듯 보이지만, 예대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자유로운 학풍'이다. 개별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능력과 흥미에 따라 자율적으로 전공 실력을 향상하도록 하는 분위기는 예술성을 무한히 성장시킬 수 있는 토양이 된다. “예술은 가르쳐 준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예대생이 입학하자마자 듣게 된 말이다. 이 말처럼 저자가 만난 예대생들은 수동적으로 대학의 커리큘럼에 의지하는 대신 자신의 꿈과 목표를 향해 각자의 길로 질주한다. 전공 공부와 개인 프로젝트,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하루에 몇 시간 자지 못하면서도 ‘예술에 들이는 시간이 좋다’라고 기꺼이 말하는 이들이다.
예술을 향한 그들의 뜨거운 열정은 굳이 여기에 쓰지 않아도 독자들이 대부분 잘 아는 사실이다. 도쿄예대뿐이겠는가? 우리의 서울예대도 마찬가지고 세계의 어느 대학이든, 특히 예술대 학생들의 열정은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들의 열정은 진지하게 듣는 독자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상상을 초월하는 표현 방식으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아닌 밤중에 온몸에 화선지를 겹겹이 붙여 저자를 깜짝 놀라게 한, 저자의 아내도 도쿄예대생 출신이다. 어느날 부시시 잠에서 깬 저자가 잠자리에 아내가 없어 이 방 저 방 찾아다니다 아내의 괴상망측한 모습에 아연실색한 모습도 이 책에 소개된다. 뿐만 아니다. 토플리스에 타이츠 차림으로 캠퍼스를 활보하는 정의의 히어로 브래지어 우먼, 모두의 창조적 에너지가 폭발하는 혼돈의 예대제까지 평범함을 거부하는 도쿄예대의 일상은 어딘가 이상하지만 저마다의 빛깔로 찬란하고 열정으로 더욱 활활 타오른다.
이 책의 시작점은 도쿄예대의 비밀스러운 담장 너머 예술가의 꿈을 키우는 학생들을 만나 재미있어 보이는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자그마한 호기심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명문 예술대학’이라는 이름이 가진 위상처럼 어딘가 문턱이 높고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세계. 하지만 그 속에서 만난 학생들은 하나하나 반짝이는 원석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자신보다 더 뛰어나고 열정적인 동료에 대한 부러움,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생계와 재료비 등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 등으로 고민하는 평범한 청년이기도 하다. 도쿄예대 졸업생 중 취직을 선택하는 사람은 매년 10% 미만이라고 하니 예술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다. 관심이 없는 듯한 학생들도 어떤 형태로든 예술을 계속하기 위해 진학을 선택하거나 아르바이트 등으로 버티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 간다니 과연 '예술대학답다'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이 가운데 극히 소수만이 전업 예술가로 살아남는 세계라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예대는 '잉여인간 제조소' 같은 면이 좀 있어요."
공예과에서 염색을 전공하는 히하라 유카코 씨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화는 보통 '지금 뭐 만들어?'로 시작돼요. 결국 미술캠의 예대생은 다들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하거든요. 분명 뭘 만드는 대학이긴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되나 싶어요. 선택지가 그거 하나뿐이라도 괜찮은지······."
히하라 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 잇었다. 다들 장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졸업 후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10년 후, 20년 후에는 자신이 뭘 하고 있을지, 그런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물론 불안을 자극하는 말을 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p.228~229)
겉으로 다루어지는 일화들만으로도 흥미로운 에세이지만, 그 모습을 그려 내는 저자의 응원 어린 시선에 공감한다면 더욱 풍성한 독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봐도 극과 극의 인상을 풍기는 미술캠과 음악캠이지만 도쿄예대의 학생들은 누구나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비슷한 고민과 열정을 품고 있다. 서로 손을 맞잡고 세상에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젊은 예술가들, 도쿄예대 캠퍼스는 오늘도 개성과 재능을 자유롭게 꽃피우는 청춘의 열기로 가득하다. 세상의 평범한 기준과는 어딘가 다르지만, 이곳에는 무엇보다 뜨겁게 빛나는 열정이 있다. 예술을 향한 그들의 마음은 단순히 좋아한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숙명적인 이끌림이다.
저자 : 니노미야 아쓰토(二宮 敦人)
1985년 도쿄 출생. 일본 히토츠바시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현재는 작가로 활동 중이며, 독특한 발상과 적극적인 취재가 뒷받침된 탄탄한 글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09년 《!》라는 작품으로 데뷔했으며 주로 호러 및 오락 소설을 중심으로 다수의 작품을 집필했다. 《우편배달부 하나키 도코가 훔쳐본다(郵便配達人 花木瞳子が?み見る)》, 《점집·요센도의 통계과학(占い??陽仙堂の統計科?)》, 《폐교의 박물관 Dr. 가타쿠라의 생물학 입문(?校の博物館 Dr. 片倉の生物?入門)》, 《1번 선에 수수께끼가 도착합니다(一番線に謎が到着します)》, 《문예몬스터(文藝モンスタ?)》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마지막 의사는 벚꽃을 올려다보며 너를 생각해(最後の?者は?を見上げて君を想う)》 등 대히트를 친 ‘마지막 의사’ 시리즈 등 인기 시리즈를 다수 보유. 처음 도전한 논픽션 작품 《최후의 비경 도쿄예술대학: 천재들의 카오스 같은 일상(最後の秘境 東京藝大―\天才たちのカオスな日常)》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역자 : 문기업
일본 문부성 국비유학과 출판사 근무 등을 거쳐 다양한 책과 서브컬처를 한국에 소개하고자 마음먹고 번역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현재 출판 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내가 대화하는 이유』, 『에밀리의 작은 부엌칼』, 『패미컴 컴플리트 가이드』, 『와카코와 술』, 『학원X봉쇄』, 『소설 문호 스트레이독스』, 『싸우는 빵집 주인과 기계장치 종업원』, 『여신의 이노센스』, 『마술사 오펜 애장판』, 『술 한잔 인생 한입』, 『사야와 함께』, 『거짓말쟁이 패러독스』, 『S parther 에스 파트너』, 『이상적인 기둥서방 생활』, 『크로크로클락 결(結)』, 『버터 바른 고양이의 패러독스 2』, 『오키테가미 쿄코의 비망록』, 『와카코와 술』, 『이세계는 스마트폰과 함께』,『클락워크 플래닛』, 『내가 대화하는 이유』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