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 삶은 비로소 시작된다
히스이 고타로 지음, 이맑음 옮김 / 책들의정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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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생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 삶은 비로소 시작된다』는 긴 표제어지만 삶과 죽음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암시한다. 저자는 히스이 고타로, 일본 심리상담사로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대체로 설명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던진 질문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만약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당신이 지금 하려던 일을 계속할 것인가?" 저자는 말한다. 독자들이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아니라는 대답이 몇 번이고 이어진다면 삶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하고 싶지 않은 일만 하며 살아가는 삶에는 필연적으로 후회가 따라온다고 말을 꺼낸다. 이 질문이 시작되면 이미 답은 나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생은 유한하기에 언제까지나 삶의 질문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이제 답을 내리고 당신의 삶을 바꿔야 할 때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에서 최근 진행된 설문 조사 결과 90세 이상 노인의 90%가 죽음을 앞두고 ‘더 모험을 해봤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후회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무모하게 살아가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것이다. 어차피 저세상에는 돈도, 집도, 차도 가져갈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물질적인 자산을 잃는 건 진짜 불행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은 바로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후회할 일투성이였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는 〈서문(여는 말)〉에서 이처럼 미국의 한 설문조사 결과로 책의 말머리를 잡는다. 이 조사 결과는 저자의 평소 인생관이나 삶의 방식에 딱 들어맞아서 인용했을 것이다. 저자의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불행"이라는 주장은 의미가 깊다. 그걸 피하는 단 하나의 방법, 책을 읽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죽는 순간을 생각해 보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죽음을 진지하게 마주하는 순간 누구나 자신의 '본심'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고, 삶의 진리다.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두려워서 피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시는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할 일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죽음을 생각하는 동안 차라리 일을 하라고 독려하기도 한다.



저자는 한 단계 질문을 올린다. 언젠가 우리 모두 어차피 죽는다면 이 삶의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눈을 가린 채 죽음 같은 건 잊어버리고 눈앞에 놓인 삶을 살아가면 안 될까? 이에 대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위대한 삶을 살다 간 위인들을 예로 들어 답한다. 그들은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빠지지 않았기에 열정적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찰스 다윈이나 스티브 잡스는 단호하고 열정적으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죽음의 두려움에 빠지지 않았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언젠가 죽음이 닥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고 매일 고민했다고 설명한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찰스 다윈의 경우 진화론에 대해 이야기하며 죽음의 필연성에 대해 언급했고, 스티브 잡스는 매일 아침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고 강연을 통해 밝혔다. 이처럼 이들은 죽음을 맹목적으로 두려워하는 대신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언젠가 자신이 죽는다는 걸 받아들인 사람들은 내면의 진정한 감정을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다시 한 번 더 조언한다. 

"삶의 마지막 날, 당신은 어떤 감정을 느꼈으면 하십니까?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요? 

만약 불가능하다면 언제부터 삶을 바꿔야 할까요?

인생은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p.9)

자신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면 이미 저자가 말하는 「죽음의 세계」로 초대된 것이다. 저자는 이에 따라 "그럼, 당신을 지금부터 '죽음의 세계'로 초대하겠습니다."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독자들과 함께 이 여정을 함께하며 '죽음의 세계'를 탐구하겠다는 다짐이다.



이 책은 모두 4부 2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죽음이 물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냐고〉, 2부 〈끝을 정하는 건 운명인 줄 알았는데, 모든 건 내 선택이었다〉, 3부 〈내 삶에 잠들어 있던 빛나는 모든 것〉, 4부 〈인생의 파도에 휩쓸렸다고 생각했을 때 저 멀리 등대가 보였다〉 등이다. 책은 이제 죽음의 세계(본문)로 들어간다. 첫 장(章)에는 「불현듯 다가온 생의 마지막 날」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첫 문장이 보인다. "생의 마지막 날,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오늘은 당신 인생의 마지막 날이며,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여기서부터는 누워서, 등을 바닥에 대고 읽어주세요'란 말이 조그만 활자로 쓰여 있다) 이제 조금 더 상상의 시간을 갖는다. 당신은 잠옷을 입고, 지금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있습니다. 창문 밖으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병실에는 당신 혼자뿐입니다. 천장의 형광등 불빛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살을 살아왔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후회가 없습니까?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인생이었습니까?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의 영혼은 이제 곧 육체를 떠날 겁니다. 30초 후, 몸이 마치 사라질 것처럼 가벼워집니다. 20초 후, 당신은 죽음을 직감합니다. 시야가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몸의 모든 감각이 서서히 사라집니다. 공간에 녹아들어 나와 세상에 경계가 없어집니다.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심장 박동이 잦아들고 있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던 의식이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습니다.(여기까지는 독자들이 누워서 체험한다) 

이후 빛이 사라지고 깜깜한 암흑 속이다. 정신을 차린 독자가 깨알처럼 작은 흰 글씨를 발견한다. 글씨를 천천히 읽어본다. 

"정말 죽은 것처럼, 이제부터 5분 동안 움직이지 말고 눈을 감고 죽음을 느껴보십시오. 머릿속 5분이 지나면 다음 페이지를 펼쳐주십시오."



저자는 몇 가지 조언을 곁들여 질문한다. "해야 할 일이나 이루고 싶었던 꿈이 남아 있습니까? 후회하거나 아쉬운 일은 없으십니까? 이대로 삶을 마감한다니 아쉽지 않으십니까? 단 한 번뿐인 인생이 이대로 끝난다니······. 소리쳐 울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저자는 독자들에게 5분의 시간을 더 준다. 5분 동안 후회되는 일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크게 소리내 울어도 좋다. 후회는 독자들을 구석까지 몰아붙일 것이라고 예고한다. 하지만 후회는 새로운 삶의 세계로 향하는 입구이다. 후회하는 마음을 날개로 만들어 하늘로 날아오르면 된다. 저자의 조언은 마치 패러글라이딩을 입문하는 동승자에게 조언하듯 조심과 집중을 주문한다. 이제 날아오름으로써 독자들은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아직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p.23) 

3장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에서는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곁들인다. 도스토옙스키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방황한 적이 있다고 한다. 빚은 빚대로 늘어나고, 사람들에게는 따돌림당하고 무시를 당하기까지 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살아가던 어느 날, 도스토옙스키는 농노 해방 운동에 참여했다가 러시아 황제의 군데에게 체포된다. 8개월의 감옥 생활 끝에 총살형을 선고받는다. 형 집행 직전, 도스토옙스키가 생각한 내용을 저자가 전한다. 

"만약 내가 죽지 않는다면, 계속 살아갈 수만 있다면 나의 삶은 끝없는 영원처럼 느껴지며 1분이 100년 같으리라. 만약 내가 살 수만 있다면 인생의 1초도 소홀히 흘려보내지 않으리라······."

사형 집행 직전 도착한 황제 특사로 감형된 도스토옙스키는 이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고 저자는 기록하고 있다. 마음을 고쳐먹고 방황하지 않게 된 그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문학 작품으로 꼽히는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썼다. 그의 삶에서 대체 무엇이 달라졌던 걸까? 저자는 말한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마주보고, 후회에 사로잡혔다. 정말 죽음이 눈앞까지 찾아오고서야 도스토옙스키는 온전히 '죽음'의 존재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고, 덕분에 삶의 소중함을 받아들였다. 만약 이런 사건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고, 써지는 대로 글을 썼다면 우리는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을지도 모른다"(p.38~39)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에 따르면 삶에는 수많은 역경과 좌절이 있다. 그것들은 당신의 노력 여부와 무관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모이고 모여 값진 깨달음을 주는 순간이 있다. 이 책은 그런 순간들을 포착해, 그럼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쓰나미에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었지만 오늘도 바다로 나가는 어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다 보니 방글라데시의 교육 혁명을 일으키게 된 일본의 낙제생, 하룻밤 사이에 10억 원의 빚을 지고 목숨을 위협당했지만 과감한 도전으로 위기를 극복한 혁명가 등 수많은 사례를 통해 당신이 인생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다만 우리가 그걸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죽음 앞에 서고서야 비로소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독자들에게 이 책 『생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 삶은 비로소 시작된다』는 말한다. 너무 늦게 깨닫지 말고, 너무 늦게 후회하지 말라고. 인간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로 이미 수많은 독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히스이 고타로가 던지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다 보면 자신만의 찬란한 삶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27개 장(章)은 각각 1개의 질문이 들어 있다. 삶과 죽음에 관한 저자의 질문이다. 이 질문은 독자들 스스로 답해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독자들은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숙고해본 경험이 없을 터, 이를 위해 저자가 직접 「죽음의 초대」에 들어온 독자들에게 생각과 삶의 경계에 이르는 체험을 하도록 유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중요한 것들을 숙지해 희망하는 것부터 실천한다면 남은 생을 헛되이 살지 않을 거라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 독자들이라도 저자의 질문을 읽고 답하기에는 쉽지 않다. 저자는 죽음 앞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사례를 이 책에 실은 이유가 그때서야 제대로 후회가 되고, 남은 삶이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사유하고 실제 실천해 남은 삶을 위대한 업적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장 「담담하게 흐르는 평범한 일상의 행복」에서 저자는 "담담하게 흐르는 평범한 일상이 행복의 본질이다"고 말한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말하는 것, 걷는 것, 친구가 있는 것, 오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것····· 이미 우리는 행복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 저자는 이어 "인생의 목적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시작점이다. 행복에서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다."고 말한다.



23장 「우리는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적게 느낀다」에서는 쓸데없는 생각만 하다 보면 이 순간, 나를 스쳐지나가는 바람을 놓치게 된다고 경계한다. 인생은 이곳에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불교 수행법 중 하나인 선(禪) 또한 동일한 발상에서 시작된다고 밝힌다. 의식을 흩트리지 않고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선의 극치란 설명이다. 독자도 이와 관련, 들은 바가 있다. '현재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수행(修行)'이라고 한다. 스님들이 식당에 모여 밥을 먹으러 갈 때 신발을 벗고 차례차례 가지런히 거꾸로 놓아두고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는다. 이때 역시 수행중이라는 것이다. 만일 배가 고프다고 밥을 빨리 먹으려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빨리 들어간다면, 밥을 먹고 나올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같은 색, 같은 모양의 신발들이 어지러히 흩어져 있다면 자신이 신던 신발을 제대로 찾아들고 올 수 있을까. 신발 벗고 가지런히 되돌려 놓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수행이라는 것이다. 부처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꿈꾸지 말고 현재에 집중하라."

25장 「복잡하지만 단순한 인생의 진리」에서는 살아가는 동안 왜 내가 지금 꾸고 있는 꿈을 이루고 싶은 건지, 무엇을 위해서 이루고 싶은 건지 다시 한 번 목적과 동기를 되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말한다. 같은 일을 하더라고 목적에 따라 눈앞의 현실이 변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제 남의 시선에 휘둘리는 대신 본인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질문을 제시한다. 

"만약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정말로 쫒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p.217)

가슴 깊숙이 있는 나 자신에게 부드럽게 물어볼 것을 조언한다. 당장 답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진정한 자기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자신이 마음을 깨달으면 그 후에는 마음의 목소리를 따라 떠오른 아이디어를 실현하기만 하면 된다. 삶은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 어떤 부분에서는 간단하고, 간단하지만 그 안에 깊은 의미가 있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강조한다.


저자 : 히스이 고타로(ひすい こたろう)


출간 도서 누적 판매 200만 부를 넘긴 일본의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 카피라이터이자 심리 상담사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매일 3만 명이 메일을 통해 그의 테라피 매거진을 받아보고 있다. 히스이 고타로의 첫 출간작인 ?명언 테라피? 시리즈는 60만 부 이상 판매되며 큰 인기를 끌었고, 《생의 마지막을 생각할 때 삶은 비로소 시작된다》는 일본 출간 이후 40만 부가 넘는 판매를 기록한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저서로는 《마음이 꺾일 때 나를 구한 한마디》(공저), 《10% 행복 사과》, 《하루 한 줄 행복》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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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지적인 산책 - 나를 둘러싼 것들에 대한 끝없는 놀라움에 관하여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박다솜 옮김 / 라이온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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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see)'와 '알다(know)'는 우리 일상에서 어느 정도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영어도 혼용해 이를 혼용해 쓰기도 한다. 다만 영어에서는 처음 보고 이제 '앎'(see)과 기존에 '알고 있음'(know)으로 구별하는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인간은 모두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을 통해 주변을 파악하고 식별하는 것을 수행한다. 육감이란 인체에 구체적 감각 기관이 없이 분위기나 관련 상황을 인지하면서 받는 '느낌'이란 뜻이다. 이 감각 기관은 신체적 안전과 지능 발달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정보나 지식을 습득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가운데에서도 눈으로 보는 일은 가장 먼저 주위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신체 안전을 위한 방어에 가장 유용한 감각기관이다. 뿐만 아니라 대뇌에 확실한 정보를 가장 빨리 전달한다. 인간은 직립하면서 눈은 더 멀리 볼 수 있게 됐고,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발달되어 왔다. 우리의 인지 능력을 담당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대뇌의 전두엽이 눈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일상에서도 시각 정보에 대한 말이나 관용어 등이 많이 쓰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주마간산'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 책 『이토록 지적인 산책』은 '집중력'의 놀라운 힘과 '관찰력'의 차이에 대해 정교하고 위트 있는 언어로 설명한다. 저자 알렉산드라 호로비츠는 이 책에서 우리가 지식과 정보를 오감을 활용해 얻고 쌓아감으로써 얼마나 많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각 분야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산책'을 함으로써 그들이 보는 것과 저자 자신이 본 것을 비교함으로써 지식의 차이가 어떻게 벌어지는지에 대해 비교 설명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자신의 집 근처의 자신이 수십 년 간 살면서 봐왔던 주변에서 이들 전문가들과 함께 산책해 그들에게 보이는 지식을 알려줌으로써 자신과의 차이를 드러내 보인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 '산책'을 택한다. 

저자가 산책을 수단으로 선택한 것도 이유가 있다. 걷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걷기란 단순히 이곳에서 저곳으로 물리적 공간을 옮기는 행위만은 아니다. 생소한 두 사람이 함께 걷다가 친밀함과 호감을 갖게 되기도 하고, 풀리지 않는 답답한 일이 있을 때 산책을 통한 명상으로 해답을 얻는 경우도 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누구나 두 다리가 있다면 걸을 수 있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걷기란 곧 그 사람 자체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맨해튼의 활기 넘치는 생활방식에 매료된 저자는, 평범한 동네 길을 여러 전문가들과 함께 걸으며 ‘주목받지 못한 것들’에 주목해 보기로 한다. 저자는 그 첫 번째 대상으로 스스로를 선정하고 혼자 걷기에 나선다. 충분히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꼈다고 생각했지만, 11명의 ‘관찰 전문가’들과 함께 걷고 난 후에야 자신이 거의 모든 것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질학자, 일러스트레이터, 의사, 시각장애인, 아기, 음향 엔지니어, 곤충 박사, 타이포그라퍼, 야생동물 연구가, 도시사회학자, 반려견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낯익은 일상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아기와 함께 나선 길은 호기심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의사의 눈으로 바라본 군중들은 모두 잠재적 환자들이었으며, 시각장애인과 걷는 일은 오감을 열어주었다. 음향 엔지니어와 함께 한 산책은 한 편의 교향악과 같았고, 타이포그라퍼의 시선은 흔해빠진 간판 속에서 정교한 미학을 발견해낸다.

책에 따르면 시각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의사라는 직업처럼 교육을 통해 단련된 시각이 있고, 곤충을 찾아다니거나 글씨체를 연구하는 등 취미와 개인적인 열정으로 예민하게 다듬어진 시각도 있다. 또 어린아이와 시각장애인, 개처럼 존재 자체의 특성에서 비롯된 독특한 시각도 있다.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리고 어째서 우리 대부분이 그들과 같은 것을 보지 못하는지 호로비츠 박사는 묻고 또 묻는다. 저자의 풍부한 유머와 놀라운 통찰력은 가벼운 변화에서 시작해 삶에 대한 고찰로 이어진다. 발터 벤야민은 눈으로 관찰하고 머리로 사고하는 사람을 가리켜 ‘산책자’라 칭했다. 저자 역시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일상적인 풍경 뒤의 새로운 깨달음을 발견한다.

길에서 마주친 낯선 사람들이 각자의 루트로 전진하고, 앞을 보지 못해도 소리만으로 그늘의 위치를 찾고, 자세만 바꿔도 지나가는 이의 겸손함을 알아챌 수 있고, 나뭇잎 뒷면에 소인국의 우주가 펼쳐지는 세계. 세상 안에 또 다른 세상이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우리는 그것을 ‘관찰’이라 부른다.



이 책은 맨해튼의 특별할 것 없는 동네, 저자가 사는 동네 주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저자의 디테일한 묘사 속 도시 풍경은 뉴욕이지만 서울 같기도 하고, 낯설지만 친근하기도 하다. ‘동네’란 모든 역사와 건축과 자연과 생활이 한데 뒤섞인 마법 같은 공간이다. 하나의 환경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대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눈으로 자신이 사는 동네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비교 설명한다.

이 책에서는 해부학자들이 뼈 하나를 보고도 어떤 동물의 것인지 맞추고, 심지어는 그 동물을 복원해 내는 것처럼 도시라는 동물도 작은 단서 하나만 있으면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저자는 평범한 동네를 관찰한다는 것은, 보이는 모든 것의 역사를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누군가 깎거나 벼려서, 또는 손으로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언젠가 지금의 그 위치에 놓았을지 모른다. 눈앞의 모든 것은 한때 누군가에게 발견되었고 지금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바로 도시의 단서다. 저자는 이 단서들을 모아서 하나의 동네 역사를 지구 전체의 동식물, 생명체, 인간의 활동뿐만 아니라 지질과 지형의 변화까지도 역추적해 들어감으로써 2024년 오늘의 뉴욕 맨해튼의 한 지역의 역사를 고스란히 되살려 낸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읽기 전과 눈의 활용에 있어 많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주변은 물론, 동네, 나라, 세계, 지구 등으로 범위를 확대시켜 자신이 원하는 부분까지 살려낼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물론 관찰력과 집중력을 높인다면 말이다. 이유 없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 해결이 필요한 고민거리가 있을 때, 생활에 크고 작은 변화가 필요할 때, 거창한 여행이 아니더라도 일단 동네부터 산책해 보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 된다는 사실을 저자는 말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산책 후에 바라본 세상은, 그전과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선택하고 집중하여 생각하고 관찰하며 걷는다는 것 자체가 성찰의 행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는 말에 독자의 추정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풀어내는 정교하고 지적인 모험의 세계는, 가상의 것들에 쉴 새 없이 몰두해 있는 현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를 남긴다. "혼자 걸으며 나 자신과 대화할 것. 누군가와 함께 걸으며 서로가 ‘관찰’한 세상을 공유할 것."이라 선언이다.

이 책은 11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말한 열한 명(강아지 포함)의 전문가들과 함께했다. 「나를 둘러싼 것들에 대한 끝없는 놀라움에 관하여」란 부제를 갖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우리는 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라고 〈프롤로그〉의 제목으로 썼다. 자신의 감각을 깨우고자 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로 인해 동네를 걷는다는,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흔한 행위를 열두 번이나 되풀이했다.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전문적 시각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각각 다르게 걸어봄으로써 우리가 평소에 쉽게 놓치고 사는 일상적인 요소들을 포착하려 했다고 말한다. 동네 골목 골목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살아 움직이는 관찰 대상으로 삼아 일상의 세계를 탐사했다고 강조한다.

이런 탐사에서 익숙했던 것들은 낯선 면을 드러내고, 지겨웠던 것들은 신선하게 다시 다가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두 가지 요소를 활용해 탐사에 나섰다고 밝히고 있다. 첫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고난 것으로, 바로 앞에 있는 것을 보는 능력이다. 예컨대 이사를 한다면 처음에는 누구나 새 동네가 전에 살던 곳과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려고 눈을 크게 뜨고 모든 감각을 열어둔다. 나무 그늘이 더 넓게 퍼진다거나, 차가 더 많이 지나다닌다거나 하는 사실들이다. 두 번째 요소는 개개인의 전문 분야를 활용한 것이다. 모든 사람의 시간에는 프랑스인들이 '직업적 왜곡'이라고 이름 붙인 특정한 편향성이 존재한다. 바로 모든 상황을 자신의 직업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다. 정신과 의사는 슈퍼마켓 계산대 점원에서부터 배우자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서 병적 질환으로 진단할 수 있는 증상들을 읽어낸다. 경제학자는 커피 한 잔을 사는 단순한 행위에서도 거시경제 현상의 한 사례로 본다.



저자는 대도시 뉴욕에서 살고 근무하며 자연스레 도시의 활기 넘치는 생활방식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뉴욕을 비롯한 몇몇 도시의 평범한 동네 길을 탐사 지역으로 선택했다. 이 산책의 동반자들은 자신만의 분명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다. 시각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령 의사라는 직업처럼 교육을 통해 단련된 시각이 있고, 곤충을 찾아다니거나 글씨체를 연구하는 등 취미와 개인적인 열정으로 예민하게 다듬어진 시각도 있다. 마지막으로 어린아이와 시각장애인, 개처럼 존재 자체의 특성에서 비롯된 독특한 시각도 있다. 이들이 이번 산책에 동반한 전문가들이다. '관찰 전문가'라고 저자는 표현한다. 이들이 산책에서 보고 들려준 이야기를 자신이 함께 걸으면서 기록했다가 독자들에게 들려준다는 계획이다.

'가장 전형적인 동네 산책'을 하겠다는 목표를 의식한 나머지 평소보다 자의식이 충만한 상태로 현관을 나선 저자는 스스로 몰랐던 신비로운 관찰력을 발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천진난만하게 들떴다고 털어놓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자신에게 그리고 이번 산책에 퍽 만족했다고 한다. 그러나 "알고 보니 나는 거의모든 것을 놓치고 있었다. 다른 열한 명과의 산책들을 마친 뒤 나는 기분 좋은 탄성을 지르는 한편, 나의 평범한 시각의 한계를 깨닫고 코가 납작해지고 말았다. 그나마 위안거리가 있다면 나의 이런 부족함이 지극히 인간적인 특성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눈을 사용하지만, 시선이 닿는 대상을 경박하게 판단하고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기호를 보지만 그 의미는 보지 못한다. 남이 우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즉, 내게 부족한 것은 집중력이었다. 그저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은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그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아이들이라면 모두 선생님 또는 부모님으로부터 집중하라는 타이름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집중하는지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p.19~20)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독자들에게 '집중력'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또 집중력 향상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학자들이 제시하는 많은 방법이 대체로 효과가 없다는 점을 우선 인식해야 한다. 또 집중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겠지만, 심리학자들도 이런 궁금증에 정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 채 '선택적 집중'이란 말을 사용한다고 귀띔한다. "지각에서 어떤 분야를 강화시키고 나머지를 억누르는" 방법이다.



이 책에는 열한 번의 산책, 열한 명의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이들 전문가와 함께 동행해 그들의 시각으로 보고, 알아내고, 찾아낸 것을 저자가 기록해 글로 설명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1장 「아들 오그던과 함께-새로운 것을 사랑하는 병」, 2장 「지질학자 시드니 호렌슈타인과 함께-아주 오래된 낙서」, 3장 「타이포그라퍼 폴 쇼와 함께-완벽한 글자가 주는 희열」, 4장 「일러스트레이터 마이라 칼만과 함께-시선, 조용한 눈맞춤의 의미」, 5장 「곤충 박사 찰리 아이즈먼과 함께-섬세하고 유혹적인 벌레들」, 6장 「야생동물 연구가 존 해디디언과 함께-그 녀석의 은밀한 도시 살이」, 7장 「도시사회학자 프레드 켄트와 함께-느릿느릿 춤추며 걷기」, 8장 「의사 베넷 로버 & 물리치료사 에번 존슨과 함께-몹시 효율적인 걸음걸이」, 9장 「시각장애인 알렌 고든과 함께-우리가 듣지 못하는 주파수의 진동들」, 10장 「음향 엔지니어 스콧 레러와 함께-콘크리트 위의 교향악」, 11장 「」「반려견 피니건과 함께-촉촉한 코로 탐색하는 세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진정으로, 본다는 것」에 대해 썼다. 


이 산책들이 내 머릿속에 미친 영향은 손에 잡힐 정도로 또렷하다. 내 시야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내 머리는 나뭇잎에서 벌레혹을 찾아보고, 에어컨이 윙윙대는 소리를 듣고, 도시 골목에 버려진 쓰레기의 역겹도록 달콤한 냄새 또는 내 얼굴에 남은 비누 냄새를 맡을 수 있게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고, 심장고동을 느낄 수 있고, 길을 걷다가 보도의 다른 행인들과 공간을 협상할 때 몸무게가 어느 쪽으로 쏠리는지 감지할 수 있다. 나는 걸을 때마다 팔이 다리의 박자에 맞춰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앞뒤에 있는 행인들이나 지나가는 차 안의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 내 옆에서 걷는 피니건의 개 목걸이가 짤랑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제 내게 있어 걷기는 단지 육체를 수송하는 수단이 아니라 정신적인 고양을 가능케 하는 도구이자 몹시 매력적인 행위다. 유감이지만 지금의 나는 아무 때나 걸음을 늦추고 사방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산책의 동반자로 삼기에는 껄끄러운 사람이 된 듯하다. 원한다면 이런 습관을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새롭게 얻은 이 습관이 몹시 마음에 든다. 나는 우리 모두가 한때 지녔으나 느끼는 법을 잊고 있었던 것, 바로 경이감을 되찾았다.(p.371~372)


저자 : 알렉산드라 호로비츠(Alexandra Horowitz)

UC샌디에이고에서 인지과학분야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바너드 칼리지의 심리학 부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개의 인지능력’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다양한 연구를 하는 중이다. 『Being a Dog』, 『Our Dogs, Ourselves』 등 개의 행동을 분석하는 책을 꾸준히 집필했고, 특히 이 책의 원저인 『Inside of a Dog』은 ‘흠잡을 데 없는 개 행동학의 바이블’로 평가받으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냄새 맡기를 좋아하는 큰 개 두 마리, 고양이 한 마리, 강아지 한 마리와 뉴욕에 살고 있다


역자 : 박다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했다. 책 『멍든 아동기, 평생건강을 결정한다』, 『만만찮은 여자들』, 『불안에 대하여』, 『매일, 단어를 만들고 있습니다』, 『관찰의 인문학』, 『죽은 숙녀들의 사회』, 『여자다운 게 어딨어』, 『스피닝』 등을 번역했다. 배우자와 아이, 고양이와 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부지런히 찾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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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사랑 - 썸머 짧은 소설집
썸머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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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가가도 마음이 ‘쿵‘ 하고 부딪치면 사랑은 시작된다. 한 발만 더 내디디면 좋은 게 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이 순간이 사랑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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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사랑 - 썸머 짧은 소설집
썸머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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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사랑』의 표제어는 소설 제목이라기보다는 싯구처럼 보인다. 저자는 여름을 좋아해서인지 필명도 '썸머'다. 저자는 작가뿐만 아니라 이미 에세시를 출간한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또 배우와 영화, 영상의 연출가이다. "하나의 직업도 깆기 힘든 시대라는데 여러 개의 직업을 갖고 있다"면 부러워서 하는 말일까? 아무튼 그는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 열정을 가지고 여름의 태양처럼 자신을 이글이글 불태운다. 이 책은 저자의 첫 소설집이다. 지난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 동안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공개된 작품집이다. 소설책 치고는 작고 얇은 이 책에 소설 7편을 담았다. 얼핏 제목만 보아도 '여름'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소설은 길이에 따라 중·장편, 단편 등으로 나뉜다. 학교 국어 시간에 배우듯 장·중·단편 소설은 그 특성도 다르다. 쓰는 일은 작가의 일이고, 작가의 자유이어서 어느 길이로 쓸지에 대해서는 오롯이 작가의 자유 재량이다. 그러나 이 원고가 출판할 때에는 출판사와 협의를 해야 한다. 검열의 의미가 아니라 출판 책의 모양과 판형, 글자 크기, 페이지 수 등을 협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가 파악되면 출판사는 편집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원고 길이를 알아야 한다. 책의 페이지 수는 편집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다. 지금은 컴퓨터 자판을 이용해 글을 쓰지만 이전 세대는 대부분 200자 원고지에 펜으로 직접 한 자 한 자 메꿨다. 그래서 아날로그 세대 작가들은 컴퓨터로 치면 글이 더 안 써진다며 펜으로 200자 원고지에 쓴 경우가 최근에도 있다는 사실을 독자도 들은 바 있다. 

아무튼 이 책 이야기에 소설의 길이에 대해 한마다 하지 않을 수 없어 꺼낸 이야기다. 소설의 길이는 작가와 편집 출판사와의 문제이지 독자들은 전혀 관여할 바는 없는 문제이다. 다만 학교에서 배운 대로 장편의 경우 일생이나 시대를 가로지르는 시공간, 인물들이 일생 혹은 몇 세대를 이어져 내려온 이야기를 쓸 때 적절하다. 단편은 하나의 사건을 집중 조명하며 성격이 분명한 인물이 등장하며, 오랜 시간에 걸친 이야기라면 압축적으로 써야 한다. 또 구성 역시 소설 형식이 있기 때문에 따라 맞춰야 한다.



길이에 따라 소설이 구분되긴 하지만 분야별 구분은 여기에 적용하지 않는다. 어떤 소설이든 중·단편의 구별은 소설 길이에 따라 나뉜다. 따라서 장편 소설이 소설의 원형이라든지,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장편 소설을 쓴다든지 하는 점도 적용되지 않는다. 소설의 길이는 작가의 문장력이나 소설 기법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단편이 소설의 길이가 짧아서 붙여진 이름이듯이 장편은 소설의 길이가 길어서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이 소설집 『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사랑』 역시 작가의 소설 쓰는 능력과는 무관하다는 뜻에서 써본 말이다. 

출판사 측은 이 소설집을 '여름을 닮은 경쾌한 짧은 소설집', '단편 영화를 보는 듯이 선명한 이야기'들이라고 말한다. 출판사 리뷰에 따르면 이 소설집은 어디서든 만나고 헤어졌을 이름들과 ‘얼음물, 담요, 물감, 볼링공, ASMR, 수박, 그리고 수영장…’을 생각하게 한다. 엉뚱하게만 보이는 여름의 준비물이 빚어내는 뜻밖의 다정과 진득한 응원을 발견하게 되고, 독자들은 이 소설들을 읽는 또 하나의 기쁨을 맛볼 것이라고 밝힌다. 저자 썸머가 "사랑은 언제 어디서나 뜻밖의 충돌과 기울어진 마음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이 소설은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싱그러운 여름의 물기를 머금은 일곱 편의 서로 다른 에피소드를 통해 두근거리는 사랑과 정성스러운 일상을 기대하게 한다"는 추천평을 쓴 작가 가랑비메이커는 독자들이 삶과 사랑의 의지를 다지는 가장 빠르고 안전하고 다정한 방법을 알고 싶다면 썸머의 소설 속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어느 인물에든 자신의 삶을 대입해 볼 것을 조언한다. 조금의 이질감도 없이 우리는 곧장 주인공이 되어 데굴데굴, 어디론가 굴러가게 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저자 썸머는 「"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사랑, 마음이 한 쪽으로 쏠리거든요."」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소설 제목은 실제로 어느 영화에서 했던 대사"였다고 말한다. 대사가 아주 많은 영화였는데 감사하게도 감독이 직접 대사를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때 떠올린 문장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사랑이 뭘까"라는 물음에 대한 자신의 대답이었다고 회고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소설집에는 짧은 소설 7편이 담겨 있다. 길이로만 판단하자면 단편 소설 1~2편의 분량에 불과하다. 글재주가 뛰어나 간결한 문장으로 7편의 스토리를 이 작은 책에 담았다고? 선뜻 믿기지 않지만 분명 7편의 소설이 담겨 있다. 먼저 소설의 제목만 열거해 본다. 「얼음이 녹으면」, 「정아」, 「수족냉증」, 「데굴데굴」, 「양호실」, 「점점」, 「그녀의 여름방학」 등이다. 모두 신비스럽거나 판타지적인 요소도 없고 평범한 단어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단어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여름과 소설을 사랑하던' 자신이 여름 소설을 내게 된 것만 해도 아마도 세게 넘어진 듯하다고 말한다. 여기 '짧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평범하지만 어딘가 기운 마음의 방향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기어코 그들을 넘어뜨리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썼다. 여름이 오면 얼음이 녹듯 어딘가 꽁꽁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리고, 단단히 붙잡았던 마음의 벽이 와르르 무너지기를 바란다.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마음의 벽을 먼저 무너뜨리고 가슴을 열어 사랑하는 마음을 온몸에 가득 채우고 싶다는 마음이다. 저자의 이 같은 마음이 첫 번째 소설 제목으로 등장한다.

「얼음이 녹으면」 첫 문장은 "되게 초록이네."다. 국어 어법에 안 맞는 듯한 표현이지만 요즘 이런 표현을 많이 쓴다고 들었다. 특히 젊은 층에서 이 정도의 어법은 흔히 쓰인다고 하니, 첫 문장으로 채택한 국적 불명(?)의 문장으로부터 저자는 시대의 흐름에 적극 참여하는 젊은 세대일 것도 같다. 그렇지 않다면 예술적이며 독자들 누구나 머릿속에 쉽게 각인되도록 하는 말일 터다. 소설 속 여주인공인 연우는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내심 한가득 초록빛을 내뿜는 창밖 풍경이 꽤나 마음에 들어한다. 그런 연우의 마음이 들켰는지 은수는 아무 말 없이 연우가 앉은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그러자 한가득 초록빛을 내뿜던 풍경들이 차 안으로 쏟아지듯 밀려들어온다. 가득 풍기는 눅진한 숲 냄새, 따듯한 햇빛 냄새에 한결 더 기분이 좋아진 연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를 간지럽혔다. 소설 속 풍경이 '여름'을 짙게 암시하고 있다. 연인 사이인 두 사람은 여행을 떠나는 중이다. 연우는 다음 문장으로 은수와의 여행이 '호캉스'이기를 바랐지만 은수의 희망대로 여행지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애매한 어느 작은 마을로 가는 중이다. 호텔은커녕 숙소 하나 찾기도 어려운 산골 동네다.



두 사람은 영화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연우는 배우 겸 연출자로서 이 모임에 가서 시나리오를 쓰는 은수를 처음 대면한다. 첫 만남 때 은수는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말했던 것 같다.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있는(겨울이어서) 은수가 했던 말은 연우에게 아주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우연히 정류장까지 함께 걷게 되고, 두 사람은 꽤 만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별한 관계도 아닌 터에 중요하지 않은 대화를 끄집어내는 이유는 독자들도 다 느꼈겠지만 친밀감 이상의 감정이 발동된다면 으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구 던지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은근히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느껴진다. 

"··· 전에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잖아."

은수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연우를 휙 하고 올려다보고는 말없이 끄덕였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이야?"

"응, 난 여름이 좋아."

아직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짧은 순간 은수의 얼굴에 여름이 스쳐 지나가는 걸 연우는 느꼈다.

"여름이 왜 좋아?"

가늘게 다문 입속으로 신중히 답을 고르는 게 느껴졌다.

"음··· 차가운 물을 마실 수 있어서."

(중략)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연우는 그 순간 은수와 함께 여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p.16~17)



두 사람은 그리고 첫 번째 여행을 여름의 절정 7월에 함께 오게 된다. 중간에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만 굳이 저자는 표현하지 않는다. '시골이라 그런지 6시 반만 돼도 불그스럼한 노을이 지더니 얼마 안 가 하늘엔 푸른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연우는 밀 장을 봐온 재료들로 서둘러 저녁을 만들기 시작한다. 얼마 전 영화 현장에서 스탭들끼리 만들어 먹었던 해물파전고 비빔면을 꼭 은수에게 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지글지글, 프라이팬에서는 식용유가 반죽을 기다리며 소리를 냈고 마당에서는 하나둘 풀벌레가 울기 시작한다. 마루에서 잠에 든 은수가 깨지 않도록, 달궈진 프라이팬 위로 조심스레 반죽을 얇게 퍼올렸다. 

마루에 놓인 유리잔을 치우다 말고 잔에 남은 작은 얼음과 물을 삼켰다. 차가운 기운이 퍼지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제야 조금 은수를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은 이렇게 끝나지만 많은 생략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계절도 겨울 이른봄, 그리고 본격 여름인 7월로 바뀌는 동안 사건은 별 것도 없다. 다만 두 주인공의 마음속 변화를 대화나 여행 등을 통해 느낄 뿐이다. 소설을 짧게 쓰기 위해 생략한 것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를 통해 사람의 변화를 독자들이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표현되지 않은 것을 독자들에게 살짝 귀띔만 해주며 소설이 끝을 맺는다. 

잠에 든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연우는 이제 자신도 여름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고, 속으로 고백한다. 


저자 : 썸머


여름과 소설 그리고 영화를 좋아합니다. 수영과 풋살에 푹 빠져 지냅니다.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여전히 설렙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가 가장 짜릿!하고 행복합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랑과 용기를 얻어 추진력을 얻기 위함입니다.

“영화보다 먼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낮에는 카메라 안팎을, 밤에는 키보드 위를 달리는 배우이자 글 쓰는 사람 고아라. 때로는 주인공 때로는 스쳐 지나가는 인물의 자리를 오가는 그녀의 진짜 이야기는 카메라 밖에서 시작된다. 영화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 인생이라는 러닝타임 속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감정과 서사를 작은 노트와 유튜브 [여름비누]에서 짧은 필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 인스타그램 : //www.instagram.com/shy_ara

▶ 유튜브 : //www.youtube.com/channel/UCbzAryy7fkHXfCVqtUsdwiA/featured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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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남을 위해 살게 된다 - 지혜에 관한 작은 책, 엥케이리디온
에픽테토스 지음, 노윤기 옮김 / 페이지2(page2)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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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고통으로 보는 철학자와 성인을 우리는 알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 1788~1860)는 칸트와 같이 현상과 물자체(物自體)를 구별하지만, 경험적 현상의 세계는 주관의 여러 형식(시간, 공간 및 인과의 법칙)에 의존하는 단순한 표상에 불과하고 물자체에 해당하는 것은 의지, '맹목적인 생존의지'라고 본다. 무기적 자연에서 동식물, 인간에 이르기까지 전체는 이러한 의지의 객체화·개별화의 여러 단계이기 때문에 세계는 보편적으로 무근거, 무원리이고, 부단한 욕망에 쫓기어 만족할 수 없는데 이러한 삶은 고통이라고 했다. 

또 석가모니의 불교는 고통과 번뇌에서 해탈하며 부처가 되는 것을 이상으로 여긴다. 교리에 따라 대승인 북방불교와 소승인 남방불교로 나뉜다. 대승불교는 중생을 계도하여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것이 이상이며 중생의 능력을 큰 그릇으로 본다. 반면, 소승불교는 수행을 통한 개인의 해탈을 추구하며 소극적이고 개인적인 열반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 철학자와 성인은 2,300년 이상의 생존연대의 차이가 있지만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점은 공통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 인생에는 수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누구나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고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바로 우리가 세상일을 맘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데서 온다.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도 세상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그저 무심하게 흘러갈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생 고통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노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은, 로마제국 시대의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이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다.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당신이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걱정하느라 인생을 낭비하는 대신, 통제할 수 있는 일들에만 집중한다면 누구나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00년 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준 이 책은 단순히 이론적인 철학서를 넘어 실제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불변의 진리를 담은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통은 행복과 함께 인류의 삶에서 가장 큰 화두이며 영원한 숙제이다.



이 책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남을 위해 살게 된다』는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을 제자 아리아노스가 스승의 강의와 대화를 받아 적어 책으로 만든 것이다. 이 책의 원제인 『엥케이리디온』은 ‘손에 들고 다닐 만한 작은 것’, 즉 핸드북이라는 뜻으로 에픽테토스 철학의 정수만을 담은 요약집임을 뜻한다. 에픽테토스는 고대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자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노예였으며, 한쪽 다리가 불편한 불구의 몸이었다고 한다. 그가 태어날 당시 로마 제국주의 시대로 그리스는 로마의 속국이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그는 자신만의 철학을 갈고닦아 니코폴리스에 철학 학교를 세우고 가르침을 전하며 수많은 이들의 스승이 되어 존경을 받았다. 황제조차 그에게 가르침을 청할 정도였다. 그는 가장 부자유한 노예로 살며 자유에 대해서 누구보다 깊이 고민한 끝에 답을 얻었다. 그가 말하는 자유란 ‘자신의 삶을 원하고 결정하며,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원하거나 결정하지 않기에 좌절이나 실패에 영향받지 않는 정신적 태도’이다.

그는 외적으로는 자유롭지만, 내적으로는 이룰 수 없는 욕망과 같은 마음속 주인들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노예로 보았고, 반대로 외적으로는 노예지만 내적으로는 좌절과 갈등에서 자유롭다면 자유인이라고 여겼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행복은 내게 달려 있고 스스로 나에게 가져다줄 수 없는 것은 필요 없다.” 에픽테토스가 정립한 철학은 스토아 철학의 근간을 이룬다. 『명상록』을 남긴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그의 철학을 받아들이고 자기 철학의 기반으로 삼았다. 한때 노예였던 인물의 철학이 로마 황제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그 사상의 강력함을 드러내는 반증이기도 하다.

제자 아리아노스는 『엥케이리디온』에 대해 “에픽테토스의 말들 중에서 가장 시의적절하고 가장 철학적이며 영혼에 가장 큰 울림을 주는 말을 엄선한 선집.”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제목에 맞게 짧고 간결하지만, 에픽테토스 철학의 중요 핵심은 빠짐없이 담고 있다. 또한 『엥케이리디온』은 손에 쥐는 칼, 또는 단도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이 책이 사람들이 자신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점을 제목으로 암시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 뒷 부분에 〈작품 해제〉를 쓴 앨버트 살로몬(독일계 유대인 사회학자)은 "근대가 시작되던 시기에 스토아주의가 다시 부상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며 "그 시대에 필요한 철학적, 도덕적, 사회적 조건들이 한데 집결한 역사적 사건"으로 『엥케이리디온』 재부상의 필연적 시대상을 설명한다. 로마 스토아주의가 전제 왕권 시대의 도덕적, 사회적 지향점들이 이성의 철학이라는 돌파구로 집약된 외롭고도 용감했던 영혼의 철학임을 강조하고 있다. 

살로몬은 삶의 양식으로서의 철학은 언제나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전제한다. 스토아주의가 예속의 시대에 자유를 주창하며 당대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는 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즉 근대 시작 당시 삶의 많은 요소가 로마 스토아주의와 유사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이로써 근대라는 이름으로 독립적인 사상가가 탄생했으며 세속 문명에 기반한 자유로운 지식인들이 등장하게 된다. 살로몬은 근대는 중세 교회의 권위에 기반한 절대 국가라는 전제정치 질서가 무너진 시기였다고 풀이한다. 이에 따라 근대 철학 또한 주관적 의식을 철학의 기초를 삼으며 스토아주의의 기본 개념을 계승한 양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한다. 

인간의 도덕 문제를 강조한 스토아주의는 기존의 가치를 허물고 새롭게 재건하고자 한 급속한 전환의 시대에 적합한 철학이었다는 논리다. 이 작은 책에 스토아학파의 도덕철학 개념이 다양한 예시로 기술된 양상을 살피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고 말하는 살로몬은, 이 책이 학생들에게 스토아학파의 이론을 가르치기 위한 의도로 집필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흥미는 배가 된다고 말한다. 놀랍게도 저자는 스토아학파를 배우는 상급 단계의 학생들에게 최적화된 방식으로 철학자가 되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목욕을 급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목욕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고 목욕을 빠르게 한다고만 말하라.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 있는가? 좋지 않은 습관이라고 말하지 말고 술을 많이 마신다고만 이야기하라. 그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알지 못하면서 그 행동이 나쁜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p.119)



에픽테토스와 그의 책 『엥케이리디온』은 스토아주의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살로몬의 말은 어떤 의미일까. 살로몬은 세네카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립과 고독, 그리고 역사라는 실존적인 문제를 표현하는 최적의 사상으로 스토아 철학을 택했다고 말한다. 세네카는 인간이 가진 퇴폐적인 의식 부산물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회 심리학을 정립했으나(이 지점에서 그의 철학은 니체와 닮았다) 스토아학파의 이론을 체계화하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철학적인 원리를 고독한 통치자의 사상으로 변모시켰다. 그러나 이들과 달리 에픽테토스는 스토아 철학을 '삶의 원리이자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요컨대 『엥케이리디온』은 스토아주의의 이론과 실천이 함께 제시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어느 시대나 인간 삶의 근원적 화두 '고통'과 '행복'에 대한 문제를 철학적 입장에서 다루고 천착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에픽테토스는 그의 철학적 사유를 책으로 쓰지 않고 삶과 제자를 가르치는 현장에서 몸소 실천해 나가는 모습을 평생 보여주었다. 이것이 스토아 철학이 근대에 들어서 다시 급부상한 이유라고 살로몬은 역설한다. 

책에 따르면 스승의 강의를 책으로 집필한 아리아노스는 138년 공식 활동을 접고 문필 활동에 전념해 『담화록(Discoourses)』이라는 제목으로 8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가 엮어낸 『엥케이리디온』은 스토아 철학의 기본 원리를 쉬운 문장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스토아 철학을 삶의 양식으로 실천하는 데 필요한 여러 조언들도 담고 있다. 하지만 원본 저작물은 전해지지 않는다. 근대의 사회심리학자 미드(G. H. Mead)처럼 그도 학생들의 인간적이고 지적인 문제에 진심으로 헌신하며 스승이 간직해야 할 내적인 성품을 보여주고자 했다. 에픽테토스는 세네카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과 달리 자신의 철학에 대한 주관적인 이론 체계를 구상하지 않았다. 도덕철학이 가르침의 중심이었고 체계적인 인식론은 이를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그가 물리학이나 우주론을 경시했다고 주장한다면 그 비판은 수긍할 만한 것이었다. 이 점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엥케이리디온』에 투영된 스토아 사상의 가르침에 온전히 동화될 수 있다. 에픽테토스의 인격은 자연에 순응하는 그의 사유에 그대로 통합되어 있다.



이 책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남을 위해 살게 된다』은 장(章)의 구별 없이 모두 52개의 격언이나 잠언처럼 짧은 문장이 대부분이다. 문장에 대한 해석은 어쩌면 에펙테토스가 강의 중에 한 설명쯤으로 생각해도 될 듯하다. 이 책의 표제어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남을 위해 살게 된다' 역시 그것 중의 하나다. "에픽테토스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강의의 내용을 엮은 것"이라고 『엥케이리디온』을 출간한 제자 아리아노스가 말한 대로다. 독자가 말한 '아포리즘'은 흔히 우리가 배운 바로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 금언·격언·경구·잠언 따위를 가리킨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명한 아포리즘은 히포크라테스의 『아포리즘』 첫머리에 나오는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말이다. 또한 파스칼의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한 줄기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말도 널리 알려진 아포리즘의 한 예이다.

이 책에는 이 같은 문구나 문장이 52개의 제목으로 제시된다. 중요하고도 유명한 말 일부만 열거해 본다. 「통제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라」, 「배움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불행으로 타인을 비난한다」, 「문제를 마주할 때마다 내면을 관찰하라」, 「세상에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칭찬을 받으면스스로를 의심해 보라」, 「집착이 노예를 만든다」, 「아픈 것은 그 일 때문이 아니라 아프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죽음을 떠올리며 살아라」, 「그렇게 보이고 싶다면 스스로 그렇게 살면 된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괴로워하지 말라」, 「당신이 허락하지 않는 한 누구도 당신을 아프게 할 수 없다」, 「홀로 있을 때나 사람들과 있을 때 똑같이 품위를 유지하는 법」, 「이때는 맞고 그때는 틀리다」, 「내 능력을 벗어나는 역할을 맡지 말라」, 「적당히 멈추지 않으면 반드시 추락하게 된다」, 「지혜를 말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라」,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적처럼 경계한다」, 「글을 읽었다면 그 의미를 삶에 적용해야 한다」, 「결코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지금이다」, 「증명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 등이다.

우리가 살면서 자주 듣던 문장이 많다. 또 누군가가 이용한 것 같은 문장도 많다. 르네상스와 함께 서양의 근대를 보는 사람도 많다. 좀 더 엄격하게는 산업혁명의 시작을 근대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유럽은 교육 받은 신 지식인인들로 엘리트 계층으로 떠오른다. 시민 계급의 등장이다. 이들은 사회 부조리, 부의 편재, 인권의 존중 등 현실적인 문제를 개혁하는 데 앞장서며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그러나 아직 사회에는 '전근대적(사회 흐름과 발전에 뒤떨어진 사고 방식이나 기술 등)'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시민 계급의 급성장으로 전근대적 요소는 모두 개혁의 대상이다. 기득권 세력과의 갈등과 다툼이 불가피하다. 사회가 발전하는 과도기엔 언제나 혼란하다. 이때는 도덕적이고 지극히 상식적인 사회 의식이 폭력과 부조리, 혼란을 제압하는 디딤돌이 된다. 스토아 학파와 스토아주의가 대두된 이유이다. 이 책에 게재된 에픽테토스의 말 중에는 거의 모두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천히 읽어보면 시선이 개인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표제어는 물론 「세상에 대가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란 말에도 삶의 원리가 들어 있다. 세상은 인간과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를 뜻한다. 요즘 말로 "공짜 없다"는 이야기다. 세상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없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한 말이 "No pain No gain"(고통 없이 영광 없다)는 스포츠 용어로 바꾸어 말한 것일 뿐 에픽테토스가 2,000년 한 말이다. 

또 무엇을 하든 지금 당장 하라는 말도 유행처럼 퍼진 말이다. 「결코 미룰 수 없는 순간이 지금이다」의 변주곡이다. 이 책에는 이 말에 대한 설명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가장 고귀한 성취와 이성의 높은 판단력을 추구하는 일을 언제까지 미룰 생각인가? 이제 당신은 알아야 할 철학적 원칙들을 숙지했다. 그런데 그 원칙들을 발전시키는 행위를 미루고 언제까지 스승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것인가?


저자 : 에픽테토스(Epictetus)


서기 55년(추정), 로마 동쪽의 변경지방인 피뤼기아의 히에라폴리스에서 태어나 노예 신분이었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릴때부터 다리를 저는 불구자였는데, 태어날 때부터 불구였다는 설도 있고, 첫 번째 주인에게 구타를 당해 다리가 부러져 평생 불구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다행히도 두 번째 주인인 에파트로디토스가 에픽테토스의 재능을 인정해 해방노예로 풀어주었고, 당대 최고의 스토아학파 철학자로 알려진 무소니우스 루푸스에게 철학을 배울 수 있게 해주었다. 에픽테토스는 노예에서 해방된 후 로마에서 철학을 가르쳤지만, 서기 93년경 당시 로마의 폭군 도미티아누스가 철학자 추방령을 발표하자 헬라스 북서부 지역인 악티움 만에 있는 니코폴리스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서기 135년(추정) 사망할 때까지 철학을 가르쳤다. 에픽테토스의 가르침들은 그의 제자인 아리아노스가 강의 내용을 받아 적은 것이다. 『어록Discourses』이라 불리는 이 기록은 원래 총 8권이었으나, 그 중 4권만이 현존하고 있다. 이 책은 『어록』의 내용을 축약한 것으로, 통상 『엥케이리디온Encheiridion』이라는 책으로 통한다.


역자 : 노윤기


건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공기업에서 국제관계와 기업 홍보 업무를 보았으나 좋은 책을 읽고 소개하는 번역가의 업에 매료되어 바른번역글밥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번역가가 되었다. 옮긴 책으로는 『군중의 망상』 『이 진리가 당신에게 닿기를』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옥스퍼드 튜토리얼』 『구글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가』 『남자의 미래』 『단순한 삶의 철학』 『커피의 모든 것』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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