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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사랑 - 썸머 짧은 소설집
썸머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4년 7월
평점 :
이 책 『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사랑』의 표제어는 소설 제목이라기보다는 싯구처럼 보인다. 저자는 여름을 좋아해서인지 필명도 '썸머'다. 저자는 작가뿐만 아니라 이미 에세시를 출간한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또 배우와 영화, 영상의 연출가이다. "하나의 직업도 깆기 힘든 시대라는데 여러 개의 직업을 갖고 있다"면 부러워서 하는 말일까? 아무튼 그는 자신이 맡은 영역에서 열정을 가지고 여름의 태양처럼 자신을 이글이글 불태운다. 이 책은 저자의 첫 소설집이다. 지난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 동안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공개된 작품집이다. 소설책 치고는 작고 얇은 이 책에 소설 7편을 담았다. 얼핏 제목만 보아도 '여름'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소설은 길이에 따라 중·장편, 단편 등으로 나뉜다. 학교 국어 시간에 배우듯 장·중·단편 소설은 그 특성도 다르다. 쓰는 일은 작가의 일이고, 작가의 자유이어서 어느 길이로 쓸지에 대해서는 오롯이 작가의 자유 재량이다. 그러나 이 원고가 출판할 때에는 출판사와 협의를 해야 한다. 검열의 의미가 아니라 출판 책의 모양과 판형, 글자 크기, 페이지 수 등을 협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가 파악되면 출판사는 편집을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원고 길이를 알아야 한다. 책의 페이지 수는 편집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다. 지금은 컴퓨터 자판을 이용해 글을 쓰지만 이전 세대는 대부분 200자 원고지에 펜으로 직접 한 자 한 자 메꿨다. 그래서 아날로그 세대 작가들은 컴퓨터로 치면 글이 더 안 써진다며 펜으로 200자 원고지에 쓴 경우가 최근에도 있다는 사실을 독자도 들은 바 있다.
아무튼 이 책 이야기에 소설의 길이에 대해 한마다 하지 않을 수 없어 꺼낸 이야기다. 소설의 길이는 작가와 편집 출판사와의 문제이지 독자들은 전혀 관여할 바는 없는 문제이다. 다만 학교에서 배운 대로 장편의 경우 일생이나 시대를 가로지르는 시공간, 인물들이 일생 혹은 몇 세대를 이어져 내려온 이야기를 쓸 때 적절하다. 단편은 하나의 사건을 집중 조명하며 성격이 분명한 인물이 등장하며, 오랜 시간에 걸친 이야기라면 압축적으로 써야 한다. 또 구성 역시 소설 형식이 있기 때문에 따라 맞춰야 한다.
길이에 따라 소설이 구분되긴 하지만 분야별 구분은 여기에 적용하지 않는다. 어떤 소설이든 중·단편의 구별은 소설 길이에 따라 나뉜다. 따라서 장편 소설이 소설의 원형이라든지,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장편 소설을 쓴다든지 하는 점도 적용되지 않는다. 소설의 길이는 작가의 문장력이나 소설 기법의 문제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단편이 소설의 길이가 짧아서 붙여진 이름이듯이 장편은 소설의 길이가 길어서 붙여진 이름일 뿐이다. 이 소설집 『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사랑』 역시 작가의 소설 쓰는 능력과는 무관하다는 뜻에서 써본 말이다.
출판사 측은 이 소설집을 '여름을 닮은 경쾌한 짧은 소설집', '단편 영화를 보는 듯이 선명한 이야기'들이라고 말한다. 출판사 리뷰에 따르면 이 소설집은 어디서든 만나고 헤어졌을 이름들과 ‘얼음물, 담요, 물감, 볼링공, ASMR, 수박, 그리고 수영장…’을 생각하게 한다. 엉뚱하게만 보이는 여름의 준비물이 빚어내는 뜻밖의 다정과 진득한 응원을 발견하게 되고, 독자들은 이 소설들을 읽는 또 하나의 기쁨을 맛볼 것이라고 밝힌다. 저자 썸머가 "사랑은 언제 어디서나 뜻밖의 충돌과 기울어진 마음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이 소설은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싱그러운 여름의 물기를 머금은 일곱 편의 서로 다른 에피소드를 통해 두근거리는 사랑과 정성스러운 일상을 기대하게 한다"는 추천평을 쓴 작가 가랑비메이커는 독자들이 삶과 사랑의 의지를 다지는 가장 빠르고 안전하고 다정한 방법을 알고 싶다면 썸머의 소설 속 주인공이 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어느 인물에든 자신의 삶을 대입해 볼 것을 조언한다. 조금의 이질감도 없이 우리는 곧장 주인공이 되어 데굴데굴, 어디론가 굴러가게 될 것이라면서 말이다.
저자 썸머는 「"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사랑, 마음이 한 쪽으로 쏠리거든요."」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소설 제목은 실제로 어느 영화에서 했던 대사"였다고 말한다. 대사가 아주 많은 영화였는데 감사하게도 감독이 직접 대사를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때 떠올린 문장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사랑이 뭘까"라는 물음에 대한 자신의 대답이었다고 회고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소설집에는 짧은 소설 7편이 담겨 있다. 길이로만 판단하자면 단편 소설 1~2편의 분량에 불과하다. 글재주가 뛰어나 간결한 문장으로 7편의 스토리를 이 작은 책에 담았다고? 선뜻 믿기지 않지만 분명 7편의 소설이 담겨 있다. 먼저 소설의 제목만 열거해 본다. 「얼음이 녹으면」, 「정아」, 「수족냉증」, 「데굴데굴」, 「양호실」, 「점점」, 「그녀의 여름방학」 등이다. 모두 신비스럽거나 판타지적인 요소도 없고 평범한 단어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단어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여름과 소설을 사랑하던' 자신이 여름 소설을 내게 된 것만 해도 아마도 세게 넘어진 듯하다고 말한다. 여기 '짧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평범하지만 어딘가 기운 마음의 방향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기어코 그들을 넘어뜨리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썼다. 여름이 오면 얼음이 녹듯 어딘가 꽁꽁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리고, 단단히 붙잡았던 마음의 벽이 와르르 무너지기를 바란다.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마음의 벽을 먼저 무너뜨리고 가슴을 열어 사랑하는 마음을 온몸에 가득 채우고 싶다는 마음이다. 저자의 이 같은 마음이 첫 번째 소설 제목으로 등장한다.
「얼음이 녹으면」 첫 문장은 "되게 초록이네."다. 국어 어법에 안 맞는 듯한 표현이지만 요즘 이런 표현을 많이 쓴다고 들었다. 특히 젊은 층에서 이 정도의 어법은 흔히 쓰인다고 하니, 첫 문장으로 채택한 국적 불명(?)의 문장으로부터 저자는 시대의 흐름에 적극 참여하는 젊은 세대일 것도 같다. 그렇지 않다면 예술적이며 독자들 누구나 머릿속에 쉽게 각인되도록 하는 말일 터다. 소설 속 여주인공인 연우는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내심 한가득 초록빛을 내뿜는 창밖 풍경이 꽤나 마음에 들어한다. 그런 연우의 마음이 들켰는지 은수는 아무 말 없이 연우가 앉은 조수석 창문을 내렸다. 그러자 한가득 초록빛을 내뿜던 풍경들이 차 안으로 쏟아지듯 밀려들어온다. 가득 풍기는 눅진한 숲 냄새, 따듯한 햇빛 냄새에 한결 더 기분이 좋아진 연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이 이마를 간지럽혔다. 소설 속 풍경이 '여름'을 짙게 암시하고 있다. 연인 사이인 두 사람은 여행을 떠나는 중이다. 연우는 다음 문장으로 은수와의 여행이 '호캉스'이기를 바랐지만 은수의 희망대로 여행지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애매한 어느 작은 마을로 가는 중이다. 호텔은커녕 숙소 하나 찾기도 어려운 산골 동네다.
두 사람은 영화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연우는 배우 겸 연출자로서 이 모임에 가서 시나리오를 쓰는 은수를 처음 대면한다. 첫 만남 때 은수는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고 말했던 것 같다.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있는(겨울이어서) 은수가 했던 말은 연우에게 아주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우연히 정류장까지 함께 걷게 되고, 두 사람은 꽤 만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별한 관계도 아닌 터에 중요하지 않은 대화를 끄집어내는 이유는 독자들도 다 느꼈겠지만 친밀감 이상의 감정이 발동된다면 으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구 던지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는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은근히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느껴진다.
"··· 전에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잖아."
은수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연우를 휙 하고 올려다보고는 말없이 끄덕였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여름이야?"
"응, 난 여름이 좋아."
아직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짧은 순간 은수의 얼굴에 여름이 스쳐 지나가는 걸 연우는 느꼈다.
"여름이 왜 좋아?"
가늘게 다문 입속으로 신중히 답을 고르는 게 느껴졌다.
"음··· 차가운 물을 마실 수 있어서."
(중략)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연우는 그 순간 은수와 함께 여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p.16~17)
두 사람은 그리고 첫 번째 여행을 여름의 절정 7월에 함께 오게 된다. 중간에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만 굳이 저자는 표현하지 않는다. '시골이라 그런지 6시 반만 돼도 불그스럼한 노을이 지더니 얼마 안 가 하늘엔 푸른빛이 맴돌기 시작했다. 연우는 밀 장을 봐온 재료들로 서둘러 저녁을 만들기 시작한다. 얼마 전 영화 현장에서 스탭들끼리 만들어 먹었던 해물파전고 비빔면을 꼭 은수에게 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지글지글, 프라이팬에서는 식용유가 반죽을 기다리며 소리를 냈고 마당에서는 하나둘 풀벌레가 울기 시작한다. 마루에서 잠에 든 은수가 깨지 않도록, 달궈진 프라이팬 위로 조심스레 반죽을 얇게 퍼올렸다.
마루에 놓인 유리잔을 치우다 말고 잔에 남은 작은 얼음과 물을 삼켰다. 차가운 기운이 퍼지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제야 조금 은수를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은 이렇게 끝나지만 많은 생략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계절도 겨울 이른봄, 그리고 본격 여름인 7월로 바뀌는 동안 사건은 별 것도 없다. 다만 두 주인공의 마음속 변화를 대화나 여행 등을 통해 느낄 뿐이다. 소설을 짧게 쓰기 위해 생략한 것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를 통해 사람의 변화를 독자들이 느끼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표현되지 않은 것을 독자들에게 살짝 귀띔만 해주며 소설이 끝을 맺는다.
잠에 든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연우는 이제 자신도 여름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고, 속으로 고백한다.
저자 : 썸머
여름과 소설 그리고 영화를 좋아합니다. 수영과 풋살에 푹 빠져 지냅니다.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 많아서여전히 설렙니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가 가장 짜릿!하고 행복합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사랑과 용기를 얻어 추진력을 얻기 위함입니다.
“영화보다 먼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낮에는 카메라 안팎을, 밤에는 키보드 위를 달리는 배우이자 글 쓰는 사람 고아라. 때로는 주인공 때로는 스쳐 지나가는 인물의 자리를 오가는 그녀의 진짜 이야기는 카메라 밖에서 시작된다. 영화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 인생이라는 러닝타임 속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감정과 서사를 작은 노트와 유튜브 [여름비누]에서 짧은 필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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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