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섭게 추운 겨울이다. 며칠째 먹을 음식물을 구할 수 없었다. 하루종일 눈 속에서 찾아낸 것이라고는 나뭇가지 몇 개 밖에 없었다. 춥고 배가 고프다.  


지난 봄에 열매를 따다 만난 여자는 제법 배가 많이 불러 있다. 다른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거닐고 있었다. 다가가 몸짓으로 뭔가 얘기했고, 곧 나를 따라 이 무리에 들어왔다. 


동굴은 조금 아늑했다. 마침 불씨가 있어 그것으로 모닥불을 피워 놓았다. 배고픔에 먹을것은 없지만 밝은 느낌은 뭔가 좋은 일을 가져다 줄 것 같다. 


어디선가 늑대의 울음소리가 난다. 곧 저 멀리 어떤 동물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두렵다. 달도 사라져 없는 겨울 밤, 춥고 배고프지만 밝은 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아늑한 빛을 보며 동굴 벽에 들소를 그려본다. 내일은 우리 부족이 뭔가 덩치 큰 동물을 사냥했으면 하는 생각과 함께... 다시 얼른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 



* * *



어둠과 빛. 해가 떨어지고, 빛이 사라지면 우리는 잠을 자거나 움직임을 멈추게 된다. 빛이 서서히 많아지면 사람들은 활동을 하며 우리 주변의 물건들은 단정하게 옷을 입은 채 제 모습을 드러낸다. 구석기시대보다도 더 전, 인류에게 빛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앞을 보게 해주고, 두려움을 없애주며, 따뜻함을 전해준다. 전기가 없었을테니 불, 해와 달에서만 전해져 오는 빛은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소중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주변의 맹수들, 추위, 배고픔에 시달렸을 그들에게 빛은 참 고마운 무엇.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연의 빛 뿐만 아니라 전기가 만들어낸 엄청난 빛에 둘러싸여 있다. 언젠가 그토록 원했던 빛은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 주위에 넘쳐나고 있다. 휴대폰, 백열등과 형광등, 가로등, 네온사인, 자동차의 불빛, 컴퓨터와 TV의 화면에서 나오는 불빛. 지금 이 시대에서는 빛이 너무나 강렬하고 많아 오히려 그 빛에서부터 도망가고 싶어지기도 한다. 겨우 일어난 아침에 맞이하는 전철의 환한 빛, 일터에서의 눈부신 형광등과 휴대폰의 현란한 불 빛,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마주하는 온갖 폭력적인 빛들. 

 

나를 끊임없이 심문하는 것 같은 그 빛을 피해, 사물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방에 물끄러미 앉곤 한다. 잠시 눈을 감고 그 먼 옛날의 어느날을 생각한다. 지금은 어둠 속에서 맹수가 나타나지도 않고, 추위로 동상에 걸리지도 않는다. 그 극심한 배고픔에 시달리지도 않는다. 단지 그 내 의지와 상관없이 폭력적인 빛에서부터 도망쳐 태고에 그 아늑함을 전해주는 은은한 빛이 생각날 뿐.


온갖 비개성적 소음이 귀를 피곤하게 하듯, 온갖 비개성적 빛이 나를 시달리게 할 때, 자리에 앉아 조용히 불빛을 켜곤 한다. 어둠이 빛을 빨아들이고 있을 무렵의 어느 저녁, 은은히 퍼져 나오는 약간 노란 빛의 빛. 그 빛을 지탱해주는 것은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루체플란이다. 무겁고 둥근 바닥에 휙휙 돌아가는 몸체, 그리고 무수한 모습으로 변형하는 형태, 어딘지 모르게 철지난 것 같으면서도 아직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디테일. 



 


 

http://www.luceplan.com/Prodotti/1/2/138/t/84/Fortebraccio


 


세상에서 벗어난 그 작은 방에서 퍼지는 그 은은한 빛 아래에서 손때가 묻어나는 노트를 펼치고, 수줍은 얼굴빛을 하고 나를 측은하게 바라봐주는 물건들의 인사를 들으면 그 아늑함이 물밀듯 몰려온다. 어쩌면 빛을 내는 그 무엇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길에서 파는 1000원짜리의 그것, 또는 대형마트에서 무심하게 서 있는 그것이나. 하지만 아늑한 빛을 내기 위해 몸체를 잡고, 전원의 손잡이를 올리고, 내쪽으로 그 몸체를 꺾어 빛을 모으는 것과 같은 행동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무엇이 있다. 



* * *



어떤 책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의식을 깨우는 감각의 힘에 대한 프루스트의 성찰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하지만 아주 먼 과거에서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했을 때, 인간은 죽고 사물은 부서져 산산조각 난 후에도, 훨씬 연약하나 오래 견디고, 실체를 찾기 훨씬 힘들고, 훨씬 끈질기고, 훨씬 충실한, 냄새와 맛은 유일하게 오랜 시간 남겨진다. 마치 영혼처럼 다른 모든 폐허 가운데 홀로 기억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거의 만져지지 않는 작은 한 방울 정수 속에 흔들림 없이, 추억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품는다. 


기억을 깨우는 의미 있는 사물은 '추억이라는 거대한 구조물' 이다. 이는 단순한 시적 해석을 뛰어넘는 사물이 지닌 위대한 치유 능력의 증거이다. D.W. 위니캇은 '중간대상' 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아이가 곰인형이나 담요한테 보이는 애착은 엄마한테 받는 사랑이나 안정감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p. 114-115. 수잔 폴락 - 할머니의 밀대 중 





* * *




 

 

 

 


 

저 먼 옛날 빛이 귀했던 시절, 어느 이름모를 누군가가 빛이 전해다주는 따스함을 그리워하며 두려움에 스스륵 잠이 들었듯 나 또한 언젠가 루체플란 이라는 이름을 잊으며 영원히 잠을 잘 것이다. 하지만 그 몰개성적이며 폭력적인 빛들과는 달리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던 그 빛은 나의 마음에 포근함과 따스함으로 남을 것 같다. 언젠가 프루스트가 마들렌 향을 느끼며 지난날을 회상했듯이, 수잔 폴락이 할머니의 밀대를 보며 어떤 희미한 기억을 생생히 불러냈듯이.


<윤광준의 생활명품>에서 말한 것 처럼 관절이 꺾이는 유형의 프로토타잎에 속하는 이 조명등은 어둠과 빛의 경계를 잘 잡아낸다. 그 빛에서는 회상을, 그 어둠에서는 휴식을 맞이한다. 생각보다는 가격이 많이 나가고, 우리나라에서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은, 아쉽지만 단정한 외관과 충실한 기능성은 그를 상쇄한다. 무엇보다도 하루를 살아가는 가운데 휴식을 주고, 회상의 향기를 덧붙여준다는 점이야말로 "나" 에게는 의미를 담은 물건이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생활품>의 조건이다. 


하루가 떠나간다. 나를 짓누르는 빈곤함,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는 무수한 눈과 입, 온갖 소음과 빛의 몰개성에서 나는 더 작아지고 볼품없어진다. 구석기시대에 어떤 이가 느꼈을 배고픔, 야생동물의 공격과 같은 두려움과 생존에의 공포 못지않은 사회. 점점 작아지고 어두워지는 내게 위안을 주는 빛. 내게 루체플란의 빛은 그러하다. 






 

Liszt / Consolation D flat major No.3 (S.172) / Pf. Valentina Lisit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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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6-3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환하다고 생각하며 책상에 앉아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어두워졌네요. 컴퓨터가 아니라 종이 노트만 보고 있었다면 어두워진걸 진즉 알았을텐데, 컴퓨터 모니터의 빛 때문에 어둠을 못느끼고 있었던거죠.
마지막 세줄의 내용은 갈수록 저를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이유중 하나와 일치하네요. 기계, 물질, 편리함, 외형, 결과물, 이런것들이, 생명과 정신과 과정의 우위에 서가고 있는 사회. 일부러 꿋꿋하자고 다짐하지 않으면 참 쉽게 마음이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선택하신 곡이군요. 위로가 필요하니까.

Nussbaum 2013-06-30 22:50   좋아요 0 | URL
hnine님. 댓글을 달다가 문득 옆의 그 바닷가 사진을 보니 마음이 시원해지려고 합니다.
이곳은 더운 하루에 비까지 내려 습한데 계시는 곳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요새 눈이 자주 피로해지는 것 같은데, 왜그럴까.. 하고 생각해보니 눈을 너무 혹사시키고 있었더라고요. 컴퓨터, 책을 가까이 했는데 요새는 또 작은 스마트폰 화면까지 들여다 보고 있으니 눈이 쉴 틈이 없던 것이겠지요.
오늘부터라도 좀 눈을 종종 쉬게 내둬야겠습니다.

..

도서관에서 뭘 하다가 눈을 좀 감고 잠시 구석기 시대의 벽화를 떠올렸습니다.
무색무취의 형광등 빛 아래에서만 있다보니 집 책상에 놓여 있는 루체플란의 빛이 갑자기 생각나더라고요.
조용한 방에서의 포근한 빛.

그때의 사람들은 그런 마음으로 그 그림을 그렸을까 싶었습니다. 그때가 더 살기 힘들었으되, 외려 생각은 많이 하지 않아도 되었겠지요. 너무 저 개인적인 느낌이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청년들의 느낌이겠지만 나와 우리를 억압하는 것들이 제 머리 위에 늘 켜져 있는 형광등 같아 보였습니다.

자연을 다스려 얻은 문명의 이기, 짜여진 사회 속 삶. 때로는 그 언젠가의 배고프되 포근한 빛의 느낌으로 다가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맹렬한 칠월을 앞두고 언젠가 어디에서 제가 올린 곡. 리스트의 위로를 다시 한 번 들어보네요. 감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숲노래 2013-06-30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빛 가슴에 담아
좋은 하루로 즐거이 마무리지으셔요

이제 칠월이 되는군요

Nussbaum 2013-06-30 22:33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감사합니다.
갑자기 비가 와서 좀 습한 밤인데, 잘 지내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맹렬한 칠월이 기다리고 있지요.
함께 도시의 폭염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과일과 곡식이 그러하듯 저도 잘 견뎌내야겠습니다.
 
지금 시작하는 여행 스케치 - 당당하게 도전하는 희망 그리기 프로젝트
오은정 지음 / 안그라픽스 / 201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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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은 세 번 얼굴이 바뀌는 달이다. 


동틀 무렵 연하게 흩어지는 빛으로 말갛고 동그란 얼굴을 드러낸 아이, 

해가 뾰족하게 날을 세울 때문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어느 청년의 성급하면서도 열정 가득한 풋풋함.

건물의 그림자가 긴 사선이 될 무렵에는 어느 평상에 앉아 지나간 시간을 꺼내보는 노인의 눈동자를 품고 있다. 


밝기에 더 깊은 어둠이 느껴지는 달, 곧 있을 맹렬함을 준비하는 유월은 아직 쌀쌀함이 몸의 반을 유지하고 있는 오월에 비해 활동하기에 좋은 달이다. 꽃의 화려한 색보다 짙은 푸름의 나뭇잎을 닮은, 멀리 떨어져 있는 오랜 벗을 만나기에도 좋고 한때 그렇게도 갖고 싶었던 물건을 곱게 쓰다 잠시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던 것 같은 가까운 친구와의 늦은 저녁도 좋겠다. 해 질 녘 혼자 부풀어 오르는 공기의 냄새를 맡으며 동네 한 바퀴, 장마가 일찍 오지 않는다면 편하고 가벼운 옷을 준비하여 하루 이틀쯤 한적한 곳을 다녀와도 좋을 날이다. 


혼자라면 세 번 얼굴이 바뀌는 달, 유월에 그림책 하나 들고 밖으로 나가 눈과 손에 바람을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나만의 새벽별, 손끝하늘, 무지개저편을 마음에 담아보는 것은 또 어떨지. 동틀 무렵의 어느 이름 모를 댕기 머리, 해가 뾰족하게 날을 세울 때의 약간 시끄러운 소리와 발자국, 건물의 그림자가 짙어질 무렵 길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


공책과 연필 한 자루, 열두 색 색연필, 붓 하나와 작은 고체 수채화물감.  그리 많은 도구가 필요하지는 않다. 단지 천천히 사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사람들의 표정이나 동작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눈에 잘 담아 손으로 옮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대한 많이 담고, 그려보고, 망쳐도 보자. "쉽게 그리는.." 시리즈에서나 볼법한 그 도식화하고 정형화한 그림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대하고, 만져보고, 마음에 담아 나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그려보자.



       



        



언젠가 나의 노트에 남겨 두었던 스케치 몇 장.


* * *


"지금 시작하는 여행 스케치". 이 책은 "지금 시작하는 드로잉" 으로 입시생들의 그림이나 기법적 설명에 그치지 않는 보다 내면적인 그림 그리기의 방법을 보여준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처음의 책에서 그러했듯 여기에서도 친근한 설명, 왜 그려야 하는지, 사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등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리기에 관한 내용도 좋다. 





작가는 자신의 결과물과 그것을 담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의 궁극적 목적은 여행을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좀 더 쉽고 다양하게 끄적임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스케치 기법만 알려주고는 싶지 않다. 나의 여행 철학과 경험담이 자칫 주관적일 수 있으나 그것은 그저 한 사람의 느낌이자 생각일 뿐이니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봐주었으면 한다. 그보다는 이 책을 통해, 여행은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며, 여행 스케치 역시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p.18



그리고 앞으로 그림을 그려 나갈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그림 실력이 좋아진다는 것이 손재주-기술이 현란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관찰법이 달라지면 손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림 실력이 좋아지는 진짜 비결은 '관찰' 이다. 지금부터 스치는 모든 물체를 외워서 그리는 생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자." 

p.39 








이 책에 담긴 스케치 몇 장.


* * *


이 밖에도 책 안에 작가가 남겨놓은 그림들이 많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앞서 써 놓은 말이라 생각한다. 자신만의 이야기, 사람과 사물의 관찰, 그리고 그것을 마음과 손으로 풀어내는 것. 무작정 누군가의 그림을 따라 그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눈과 마음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색깔 있게 표현하는 일. 아마도 자신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보다 책의 저자가 진정 원하는 것은 그것일지도 모른다. 

  





칠월의 맹렬함을 앞둔, 표정이 다채로운, 가벼운 발걸음을 걷기에 좋은 유월.

낯선 마음 한 움큼, 짙은 푸름 한 다발, 설레는 바람 한 줄기를 맞으러 밖으로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지도 못한 무엇이 눈과 손에 담겨올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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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6-22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 눈'으로 바라보면 '남 흉내내는 그림'을 그리고,
'내 눈'으로 바라보면 '내 이야기 담은 그림'을 그려요..

Nussbaum 2013-06-23 12:43   좋아요 0 | URL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내 눈으로 보고 기록하고 그리는 연습 또한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다락방 2013-06-27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어디에서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보이는 대로 그려라, 생각한 대로 그리지 말고. 뭐 이런 말을 들었었어요. 읽은거겠죠.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은 보이는 대로 그리는게 아니라 생각한 대로 그리려고 해서 그렇다고요. 저는 그림을 아주 못그리는 편이라 미술 시간이 싫기만했던 1人인데, 그 말을 듣고 '보.이.는.대.로.' 그려보려고 했지만, 여전히 제 그림 실력이 나아지지는 않더라고요. 전 여전히 '생각한대로' 그리고 있는걸까요? 역시 그림은 나랑 맞지 않는군, 흥. 이러고 있는데 여기서 또 비슷한 말을 듣네요.

"그림 실력이 좋아진다는 것이 손재주-기술이 현란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해다. 관찰법이 달라지면 손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그림 실력이 좋아지는 진짜 비결은 '관찰' 이다. 지금부터 스치는 모든 물체를 외워서 그리는 생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보자"


음치는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귀가 안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들은 자신에게 들리는 대로 부르고 있는거라고요. 그들 귀에는 그렇게 들리는 거라 그렇게 부르는 거라고요. 그러니 음치는 '귀'가 안좋은거라고 말이지요. 비슷한 맥락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저는 '관찰'을 잘 못하기 때문에 그림을 못그리는 걸까요? 그러고보면 저는 그림을 기억하지도, 외우지도 못하는 사람이니 맞는 것도 같아요. 그렇다면 '관찰'이란건, 어떻게 하는걸까요?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 제게는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Nussbaum(어떻게 읽어요, 이거?)님의 스케치들을 보다가 한숨이 나와서 댓글이 길어졌습니다.

Nussbaum 2013-06-29 09:32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안녕하세요 :)

아마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대로 그리라는 얘기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한대로 그리면 자꾸 아는 것을 그리게 되고, 이것이 객관적으로 그려지지 않고 왜곡한 모습을 그리게 되어서 그런 듯 싶네요. 비례, 형태, 선의 꺾임, 명암차이 등을 잘 관찰해서 그것을 토대로 그려야 하는데 생각한 대로 그리면 앞에 얘기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고 대략 이상한 모습이 되어 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본 대로 그리라는 주문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다락방님이 올려주신 무수한 페이퍼에 등장하는 책과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 배경 들을 읽다보면 다락방님은 뛰어난 관찰력을 지니고 계시는 듯 한데,, 아마도 중, 고등학교 시간에 너무 사실적인 그림만 강요해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신 것 같습니다. 대부분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들이 미대를 나온 분들의 작품들 & 미대 준비하는 학생들의 작품들이 많다보니, 자연적으로 사실적이고 그 기준에 맞는 표현력을 요구하겠지요.

제가 많이 알지 못하다보니 '관찰' 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말씀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그림 실력은 노력의 결과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비례나 명암 또는 선의 강약을 자꾸 찾아보고 물체의 외곽선을 보려고, 노력하고 색을 채워 넣어보고, 그것을 종이에 옮겨보는 것" 과 같은 시도를 많이 하다보면 자연스레 그림 실력은 늘게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얘기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주관적이어서 처음에는 누군가(학원)의 도움을 좀 받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말로 설명하는 것 보다는, 누군가의 그림을 따라 그려보고 그 상황에서 수정을 받는 과정에서 보다 명료하고 빠르게 기초를 세울 수 있다고 봅니다.

저도 그림이 제 뜻대로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종종 받곤 하는데, 다락방님께 뭔가 조언해 드릴 처지가 되는지 모르겠네요 ^^.. Nussbaum 은 누스바움 이라고 읽습니다. 이미 아실것도 같은데 호두나무 라는 뜻이고, 슈만 가곡집 노래에서 따 온 것입니다 :) 즐거운 주말 되세요 ~
 

 

 

 

 

 

 

 

바람이 달려온다. 짙은 먼지 구름 가득한 기억에 쌓여.

시간이 언제인지도, 그곳이 언제인지도 모른채

흰 구름에 고개를 묻을 때즘 크고 육중한 소리가 나를 깨운다.

 

전철안은 잠들어 있다. 가지런한 손과 발, 흐트러짐 없는 머리.

마치 조용히 담겨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계란 포장상자 안의 그것처럼.

 

강렬한 붉은 색 마저도 짙푸른 파랑색으로 만드는 그곳에서

나의 작은 의지에 덧붙여진 허공은,

그렇게 다시 짙은 먼지 구름의 기억과 흰 화면의 누군가를 깨운다.

 

 

 

 

 

 

얇은 막을 걷어내고, 회상과 의문을 두고 내린다.

내 잃어버린 시간과 물음. 저마다의 손과 발이 보여주는 삶을.

광화문역의 어딘가,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어딘가로 옮기는 발걸음

내 발걸음은 그 냄새를 알아차린다. 

 

때로는 스무걸음, 때로는 쉰 걸음

발걸음은 정직하고 곧세다.

작은 화면을 보며 나에게 돌진하는, 주위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몸이 만들어내는 삶의 환영에 한 막을 드리울 차례.

손은 그것을 잡고 노래한다.

눈은 그것을 읽고 소리친다.

 

 

 

 

소리가 멈춘 눈, 노래를 멈춘 손에는 이런 책들이 닿아 있다.

 

 

 

      

 

내가 잘 알지못하며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위를 둘러보면 한국이나 동양미술사 쪽보다는 서양미술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리고 또 많은이들이 구스타브 클림트나, 에곤 쉴레, 고흐, 피카소, 워홀 등 특정 작가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물론 무수한 미술감상법이 있겠지만 특정 작가에만 집중하다보면 다분히 작품의 표현성이나 작가의 일화 등에 대한 관심에 집중하게 되어 자칫 전체적인 맥락과는 무관하게 읽고 한계를 규정지을 가능성이 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고대부터 현대미술까지 전체적인 맥락과 주요 사조, 개별 작가들의 공헌과 한계점을 균형있게 살펴 본 후 세부를 보는 편이 더 낫다고 본다.

 

서양미술사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기 위한 책들을 몇 가지 꼽아 보자면 위와 같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서양미술사에 접근하기 쉽게 서술해 놓은 <청소년 시리즈>, 일목요연한 도표와 시원한 도판으로 개념을 잘 정리해 서술해 주고 있는 <클릭 시리즈>, 영원한 서양미술사의 바이블 <잰슨 서양 미술사>, 그리고 늘 "무슨 매체 에서 선정한 * 대 책으로 광고를 하는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가 있다.

 

간단히 이의 구성을 조금 더 나열해보면 <청소년 서양미술사> 는 주요 미술사조에 대한 설명과 함께 바로 주요 작가를 설명하는 구성을 띠고 있다. 예를 들면 "후기 인상주의" 라는 미술사조를 설명하고, 바로 고갱, 고흐, 세잔을 설명하는 식이다.

 

<클릭 서양미술사> 또한 주요 미술사조를 설명한 후 해당 작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청소년 서양미술사> 보다 설명이 더 많고, 양식별 특징이나 다른 미술사조와의 비교표 등을 제공하고 있어 미술사의 개념을 비교하며 읽기에 좋다. 그러나 <잰슨 서양미술사>와 같이 회화, 조각, 건축으로 나누어 서술하지는 않는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조악한 사진과 편집상태로 읽기 어려웠던 <잰슨 서양미술사> 는 비교적 큰 활자에 선명한 도판으로 다시 태어났다. 미술사조로 전체 미술사를 구별해 서술하고 있으며 앞서 얘기한 것과 같이 회화, 조각, 건축으로 각 영역을 나누어 세분화한다. 번역 탓일지는 모르지만 약간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곰브리치> 에 비해 비교서술적인 면에서 좀 더 쉽게 다가온다는 느낌이 든다. 예로 가령 초기 르네상스 혹은 후기 고딕으로 분류하는 조토(지오토, Giotto di Bondone)가 이룬 혁신을 서술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잰슨 - 207-208 p.

그러나 두치오가 설명적인 세부 묘사에서나 공간감의 표현에서 공통적인 구성 방식을 풍요롭게 각색한 반면, 조토는 그것을 급진적으로 단순화시켰다. 즉 그는 인물들의 동작이 화면과 평행하게 전개되는 것처럼 묘사하였으며, 풍경이나 건물 그리고 사람의 형상을 최대한 간결하게 압축시켰다. 더군다나 프레스코의 특징인 수수한 색상은 조토회화의 위엄을 한층 강조한다. ... (중략) ... 그렇다면 조토는 어떻게 이런 놀라운 효과를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일까? 두치오의 그림은 감상자들이 위에서 정경을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조토는 모든 인물들을 그림의 전경에 매치한 결과 감상자의 눈이 그림의 아래쪽에 집중되로록 유도하였다. 따라서 그림을 밑에서 올려다보는 경우에도 감상자는 자기 자신이 그림에 그려진 인물들과 동일한 지면에 서 있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관찰 시점의 선택이야말로 조토가 이룩한 진정한 업적이다.

 

 

곰브리치 - 201-202 p.

조토로서는 이 발견이 단순히 자신의 기교를 과시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회화의 개념 전체를 변경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림으로 기록하는 수법을 쓰지 않고 그 대신에 성경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눈 앞에서 전개되는 것과 같은 환영을 창조해낼 수 있었다. (중략) 그에게 있어서 회화는 기록된 문자의 대용품 이상의 것이었다. (중략) 조토의 그림에서 전면에 움츠리고 있는 인물들과 성 요한 사이의 거리를 상상해볼 경우, 우리는 즉각 그들 사이에는 공간이 있고 또 그들 모두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전면에 그려진 인물들은 모든 점에서 조토의 그림이 얼마나 완벽하게 새로운 것인가를 보여준다.

 

두치오의 템페라와 조토의 프레스코. 템페라는 색이 선명하긴 하지만 계란의 노른자를 안료로 하기 때문에 붓질이 잘 먹지 않는다는(밀린다고 표현한다.) 단점이 있다. 프레스코는 (습식 프레스코의 경우) 회칠을 하고 마르기 전에 안료를 칠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기법이나 보다 자연스러운 효과를 낼 수 있다. 잰슨의 경우 이 둘의 기법적 측면을 염두하고 함께 공간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를 설명한 듯하다. 곰브리치도 프레스코를 설명하고는 있으나 그는 조토의 인물 표현을 당시의 실물과 같은 조각상의 표현성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나의 관점으로, 때로는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의 경우 스스로 큰 시대를 구분하되 본인이 생각하는 주제를 잡아 그 것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 회화, 조각 등을 모두 같이 녹여 내고 있기 때문에 보다 활력 넘치기는 하지만 잰슨에 비해 때로는 선명하지 못한 인상을 준다. 이런 까닭에서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가 개인적 주관이 보다 강하게 들어갔다고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딱딱 끊어지는 듯한 문장, 작은 활자등을 좀 더 보완한다면 다르게 느껴질지도.

 

 

 

 

 

 

     

 

현대의 다양한 미술을 설명하기에는 앞의 개론서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현대 미술은 어떤 사조로 구별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분파가 있다. 이 책들은 미술에서 20세기 이후를 보다 자세히 다루고 있는 책들인데 개인적으로는 에드워드 루시 - 스미스의 <20세기 시각 예술> 이 괜찮아 보인다. 첫번째 린튼의 저서는 번역상태와 도판상태가 좋지 못하며 마지막 로잘린드 크라우스 등이 저술한 책은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

 

<20세기 시각 예술>1900년부터 10단위로 건축, 회화, 조각, 사진으로 나누어 주요 개념, 미술가등을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당시 시대상황이나 주요 미술가들의 영향관계등을 일목 요연하게 살펴보기에 좋다. 현대회화의 문을 연 세잔, 고흐, 고갱부터 Y.B.A. (Young British Artist) 의 가장 유명한 작가인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까지를 나열하고 있다.

 

 

 

 

 

       

 

이어 눈을 돌리면 우리 미술에 대한 책들이 있다. <청소년 한국미술사> 는 삼국시대와 고려를 설명한 장이 너무 짧아서 아쉬우나 조선시대는 비교적 자세히 설명을 해 놓았다. 안휘준이 조선시대를 구별한 것과 같이 전기(초기), 중기, 후기, 말기로 나누어 제시하였고 각 장에서 작가 위주로 회화를 먼저 설명하고 이후 각 시대에 유행했던 분청사기, 백자, 민속공예 순으로 나누어 제시하였다. 이 책을 앞서 얘기한 <청소년 서양미술사>와 같이 반드시 청소년만 읽으라는 법은 없다. <청소년 한국미술사>의 경우 딱딱하지 않고 친근한 설명은 재미를 더해준다.

 

두 번째로 <한국 미술문화의 이해> 는 우리 미술문화를 시대별로 나눈 것이 아닌 회화, 조각, 공예 등으로 나누어 서술한 책이다. 주제별로 묶어 살펴보기에 좋은 책이며 동양화를 이해하는데 필수인 준법, 점법등을 따로 살펴보기에 좋다. 민화에서의 각 사물의 상징등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사전과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다.

 

<클릭, 한국미술사> 는 각 시대별로 개괄한 후 회화, 조각, 고예, 도자, 건축, 석조 라는 큰 주제를 다시 나누어 시대별 특징과 미술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모두 내용이 충실한 편이며 처음 한국미술사를 전체적으로 훑기에는 적절한 책이다. 도판도 선명하고, 탑과 불상의 세부 명칭등도 따로 찾아볼 필요 없이 중간에 삽입해 놓고 있다. 다만 조선 회화 쪽의 설명이 너무 짧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 역사상 가장 회화가 다채롭게 발달한 시기인만큼 초기, 중기, 후기, 말기로 거쳐 그 흐름과 중국과의 영향관계를 좀 더 나열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지막 김원용, 안휘준의 <한국미술의 역사>는 클릭과 유사하게 시대별 개관 후 회화, 조각, 건축, 공예로 다시 세분화 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앞서 제시한 책들과 비교하여 가격이 조금 나가는 것이 흠이지만 읽어보면 예사롭지 않은 책임을 알 수 있다. 행간에서 깊이 연구한 흔적이 묻어나며 무엇때문에 이 미술품이 최고의 가치를 갖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조선 미술쪽 내용도 충실한 편이며 무엇보다 중국미술과의 영향관계가 충실하다. 다만 근대 한국 미술에 대한 언급이 없고, 변화상을 한눈에 보여주는 부분이 따로 없어 <클릭 한국미술사> 와 보완해 읽는다면 더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서양의 미술사가 그러하듯 동양의 미술사 또한 서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인도, 중국, 한국, 일본의 경우에는 익히 알고 있듯 꽤 밀접한 관계를 보이는데 불상, 회화, 공예품에서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말은 즉 우리 미술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도나 중국 미술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우리가 자랑하는 석굴암은 인도 아잔타 석굴 사원이 중국 윈깡 석굴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이후 신라에 영향을 준 형식을 따른 것이다. 현재 일본에 있는, 조선시대 최고의 회화 작품 가운데 하나인 안견의 <몽유도원도> 는 중국 북송의 이곽파(곽희파)의 영향을 받아 그린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화가 덴쇼 슈분은 남송과 조선의 회화를 탐구하여 일몬의 수묵화를 발전시켰다.

 

* 간단히 조선 초기의 회화적 흐름과 중국과의 연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초 도가사상적인 안견의 <몽유도원도> 는 산들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점, 바위의 표면에 붓질을 일일이 잇대어 필선이 드러나지 않도록 한 점, 공간처리기법 등에서 중국 북송의 이곽파의 영향을 보여주며 이후 조선화단에 매우 많은 영향을 끼친다.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는 강한 필묵, 소경산수인물화, 여백의 처리 등은 중국 명나라의 대진이 만든 절파적 표현 효과를 보여준다. 이후 중기에 김시, 이경윤, 김명국(광태사학파)등에 영향을 준다.

 

 

 

 

그런가 하면 이장손의 <산수도>는 나지막한 언덕과 산들, 두드러진 대각선 구도,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산을 미점으로 처리한 것은 북송대 미불과 미우인이 시작하고 이후 원대 고극공이 구사했던 미법산수풍을 보여준다.  

 

 

 

 

 

<청소년 동양미술사> 는 간략하지만 중국, 인도, 일본 등 나라의 변천의 핵심적인 내용을 잘 서술하고 있으며, 갈로의 <중국 회화 이론사>는 중국의 시대별 흐름에 따라 주요 화가, 화론, 기법의 특징을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연원, 그가 주장한 까닭, 사승관계, 영향관계까지 깊이 다룸으로써 고려, 조선 회화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오광수의 <한국 현대미술사>는 도입기, 변혁기, 오늘의 미술 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어 우리 미술의 근 현대의 모습을 살펴보기에 좋다. 다만 오래된 느낌이 나는 편집상태는 장황한 느낌이 난다. 최근 우리 미술의 근현대사를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니 이 부분은 후에 보완이 필요하겠다.

 

 

 

 

 

 

 

한 낮의 짧은 손길, 눈길 품은 시간과 책 몇 권.

 

다시 몸이 만들어내는 삶으로 돌아갈 차례.

손은 노래를 멈추고 눈은 그것을 기억하느라 조용하다.

  

다시 바람이 달려온다. 짙은 먼지 구름 가득한 기억을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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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6-14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미술사'라 하지만, 곰곰이 따지면 '한국 임금님과 양반과 학자'들 미술사이지
백성들 미술사는 아니에요.

돌울타리, 텃밭, 꽃밭, 나무밭, 여느 살림집 풀지붕, 나무문살, 문고리, 다듬이돌, 다듬이방망이, 절구, 다리미, 빨래터, 우물, 물동이, 밥그릇, 수저, 백성들 여느 옷, 바느질, 길쌈, 베틀, ...... 이 모두가 '미술사'로 다시 읽고 살펴야 할 빛과 그림과 이야기 아닐까 싶곤 해요...

Nussbaum 2013-06-14 20:42   좋아요 0 | URL
네. 말씀하신대로 저 위에 다룬 책 속에 등장하는 것들은 분명 대부분 어떤 면에서는 왕과 귀족을 위한 사치품이었을 겁니다. 우리의 미술품들은 누가 했는지도 모르게 그 장인의 이름조차도 남겨지지 못했지요. 최근에는 왕족이나 귀족에게 봉사했던 미술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참여하여 만들어낸 것들에 더 주목하고 기존의 가치나 이념의 의문을 품게 하는 노력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미술사를 다룬 책에 꼭 등장하는 토기, 분청사기, 민화, 막사발, 각종 공예품을 보면 양반이나 왕족보다는 백성들 숨소리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나아가 세상의 평안을 위해 만든 불화나 불상, 탑과 같은 미술품에서는 유난히 침략을 많이 받았던 우리네 삶의 단면을 느끼게 되는 것 같고요.

돌울타리, 텃밭, 꽃밭, 나무밭, 여느 살림집 풀지붕, 나무문살, 문고리, 다듬이돌, 다듬이방망이, 절구, 다리미, 빨래터, 우물, 물동이, 밥그릇, 수저, 백성들 여느 옷, 바느질, 길쌈, 베틀, ...... 이라고 하시니 최명희 님의 <혼불> 속의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함께 우리가 점점 잊어가는 무엇들도 그렇고요.

숲노래 2013-06-15 0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쓰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자용, 예용해, 진성기 같은 분들은 '학계에서 알아주지는 않는다'지만
'백성 미술 역사'를 꾸준히 밝히고 글과 책으로 알리는 노릇 하셨구나 싶어요.
안타깝다면, 이 세 분 책은 모두 새책으로는 그닥 안 팔려
모두 절판되고 헌책방에서만 어렵게 찾아볼 수 있어요...

Nussbaum 2013-06-16 11:12   좋아요 0 | URL
아 그런 분들이 있군요. 언젠가 시간이 되면 꼭 헌책방에서 찾아봐야겠습니다.

분명 맥락주의 뿐만 아니라 내재 또는 형식주의 비평 또한 동등하게 다뤄져야 하겠으니 좀 더 다양한 미술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은 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oren 2013-06-17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에 대해선 너무나 아는 게 없어서 뭐라 댓글조차 달기가 어렵네요.
아무튼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어느 한 예술 분야에 깊게 천착하시는 분들을 보면 그저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Nussbaum 2013-06-18 14:34   좋아요 0 | URL
oren 님 안녕하세요.

실은 저도 짧은 지식을 갖고 미술사 입문서에 관해 간단히 느낌을 말하였는데 잘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미술사 책 코너에 가면 늘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서양미술사, 동양미술사, 한국미술사 관련 책을 좀 꼽아 봤는데 셋을 묶어 보면 어떨까 싶어 같이 나열해 봤습니다.

왠지 본문을 자세히 읽어주셨을 것 같은데, 덕분에 더위에 이리저리 책 참조하면서 들었던 짜증스런 느낌이 확 달아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습기 많은 하루, 상쾌하게 보내셨음 합니다 !!!
 

 

오월은 빛과 어둠이 눈웃음을 주고 받으며 서로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달이다. 일 년 중 오로지 오월의 그 어느 때의 오후 세 시에만. 빛과 어둠이 정확히 반 반씩 그 공간을 사이좋게 나누어 보듬고 있다. 노랑 농담과 갈색 주름. 둘은 서로를 시기하지 않는다. 앞서 가는 젊은이의 옷자락은 앉아 있는 노인의 눈을 시리게 하지 않는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책 하나를 몸에 걸치고 길을 나선다. 앞서거나 뒤에 멈춰선 시간들, 빛과 어둠이 사이좋게 나눈 영역을 넘나들며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그 시간과 사람들 속에서 노란 농담과 갈색 주름을 듣는다. 오후 세 시. 그 아슬한 균형의 시간에, 사이좋은 빛과 어둠의 공간에.

 

약간 부스스한 머리를 한, 슈베르트의 들뜬 음악과 같은 경쾌한 발걸음의 노랑 농담. 수줍은 웃음을 띠고 맑고 경쾌한 음을 찾아 나선다. 약간 높은 톤, 잔뜩 붉어진 얼굴을. 그 어딘가에는 지나간 계절과 어둠의 시간을 노래하는 갈색 주름이 조용히 몇 음을 두드린다. 때로는 격렬하게. 베토벤의 머리칼처럼.

 

 

 

 

 

 

빛과 어둠의 아찔한 경계지점에 서서 읽는 구절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슈베르트>


"슈베르트는 흔히 순수한 서정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드라마틱한 음악 전개를 보면 이를 충분히 반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방랑자 환상곡>에서 피아노는 오케스트라로 아니, 그 이상으로 철저히 변신합니다. 기교가 뛰어난 피아니스트도 아닌 작곡가의 피아노 소리, 형식에 대한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능적으로 감지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 그의 피아노곡들은 섬세한 페달을 섬세하게 써야 비로소 제 맛을 살릴 수 있습니다. - 158p.

 



<베토벤>


 "베토벤 말고 희극과 비극을 모두 아우르는 작곡가는 없을 것입니다. 또 그가 아니면 어느 누가 다양한 변주곡에 깃든 경쾌함부터 자연의 힘을 풀어줬다 길들였다 하는 자유로움에 이르기까지 그 방대한 영역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었을까요? 또 어느 거장이 후기 작품에서 현재, 과거, 미래를 하나로 모으고 숭고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결합시킬 수 있었을까요? - 33p.

 

 

밝은 노랑색 공기.

악센트, 스포르찬토, 린포르찬토, 포르테. 조금씩 저 너머 그 공기와 색에 맞게 풍겨오는 꽃내음. 그 한 층 아래 겹쳐진 얇은 갈색의 눈웃음. 여유로운 아르페지오, 디미누엔도. 피아니시모. 오월의 세 시는 슈베르트와 베토벤을 따라 그렇게 노래한다.

 

 

 

 

 

 

책에 담긴 밸런스, 칸타빌레, 앙상블, 환상곡, 형식, 감성, 하모니, 유머, 기침, 해석, 음향, 피아노, 레가토, 옥타브, 오케스트라, 페달, 리듬, 리타르단도, 템포, 변주 그리고 고요의 나긋함을 듣는 짧은 시간.

나의 작은 옷에 걸친 한 권의 책은 오월의 공기와 내음에 화답하듯 이런 것들을 말한다.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Alfred Brendel)의 손과 눈으로.

 

 

<시작>

한 작품이나 악장의 특성은 거의 대부분 첫 시작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고음악일수록 더욱 그러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그 곡의 매력을 알아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이런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 바로 연주자의 중요한 임무가 아닐까요. 17p.

 

 

 

 

 

세 시 삼십 분이 되면 모래알은, 나뭇잎은, 거리의 공기는, 손을 맞잡은 두 연인의 얼굴은,

파아란 하늘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어둠을 조금 머금는다. 그 시간과 공기는 우리에게 아주 얇은 눈을 감아야 할 때를 알려준다. 곧 있을 눈부시게 흰 밝음을 예고한다.

 

 

 

 

 

 

 

까끌한 손글씨.

 

옅어진 붉은색 컵.

 

흐려진 머리의 두께.

 

진해진 바람.

 

음악은 손끝을 타고, 잃어버린 붉음을 찾는다.

 

손가락 끝이 일어나는 시간은 언제인가?

 

바람이 돌아올 때.

 

붉음을 머금고, 까슬한 바람을 곁에 세우고,

 

새초롬한 새 한 마리가 겨울 추위에 젖어 고개를 돌릴 때.

 

붉게 물든 손끝은 펜을 든다.

 

종이 위를 살곰, 까치발을 하고 슥슥 걷는다.

 

오월의 밝은 노랑과 갈색 사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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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5-29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ussBaum님이니까 쓸 수 있는 글이네요 역시.
Schubert에 대한 구절을 새로운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피아노를 오케스트라처럼 이용할 줄 알았던 작곡가, 순수한 서정시 vs 드라마틱한 전개. 와~
오랜만에 즉흥곡 3번을 들었습니다. op.90 네 곡중 주로 2번과 4번을 자주 듣고, 그 다음이 1번. 3번은 제일 안듣는 곡이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3번이 제일 안 '드라마틱'한 것 같기도 하고요.

Nussbaum 2013-05-30 13:14   좋아요 0 | URL

아마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그다지 와 닿지 않았겠지만 브렌델이 얘기하니 슈베르트에 관한 내용이 다시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거의 평생을 음악을 탐구하며 보낸 연주자이니 말이지요.

이 책은 그가 바라보는 음악에 대한 내용을 가볍게 터치하듯 풀어내서 약간 더 내용이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을 주었는데요. 러셀 셔먼의 책과 비슷한 느낌도 있었지만 바흐 브람스 슈만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쪽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단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에게 선뜻 권하기는 그렇지만 가볍게 바람을 스치듯 읽기에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내용상 뭔가 아쉬움이 남는 그런 책이었는데요 그의 다른 책도 있던데 거기엔 그의 음악에 대한 내용이 더 많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서 더 그런가 봅니다.


..

몇 년 전부터 그래왔지만 음악은 같이 들을 때 더 깊은 맛이 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둠이 제 자리를 하고 저 위에서 차분히 자리하고 있는 새벽, 공기가 부풀어 오르는 낮, 어딘가로 빛이 사그라드는 것 같은 저녁. 이렇게 페이퍼로 올려 종종 발걸음을 해 주시는 분들과 얘기하면서 들을 때 더더욱.

슈베르트 즉흥곡. 그 음표와 그 음표 사이에 숨겨진 무수한 얘기를 들어보는 오후입니다.
오늘 하루 새벽, 낮, 저녁 모두 푸름이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사람은 생각하고, 말을 한다. 생각의 마음을 담아 그 말을 전하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기쁘거나 슬플 때, 사랑하거나 미워할 때, 축하해주거나 위안을 주려할 때 그것의 마음을 담은 어떤 물건을 전해준다. 작은 컵, 반짝이는 반지, 꽃, 작고 귀여운 소품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자신을 닮은 무엇인가를 주변에 놓아두길 좋아한다. 음악을 좋아하면 음반이나 음악가의 흉상을, 책을 좋아하면 수많은 책이나 만년필을, 그림을 좋아하면 화집이나 그림도구를 곁에 둔다.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어떤 것, 감촉이 느껴지는 것.

 

 

마음을 담는 어떤 물건 곁에 둔다는 것은 합리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저 신석기 시대부터 인간은 심미성에 대한 욕구(빗살무늬 토기와 같은.)를 드러내지 않았던가. 그것은 때로 지나치게 비싸기도 하고, 쓸모없기도 하며, 외설적이기도 하다. 물건은 쓸모를 넘어 개인의 욕구와 취향을 투영하기도 한다. 계속 그것을 곁에 두고 관찰하면서, 그것이 마치 생명체인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그것에 담아 심리적 만족감을 얻으면서 그 사물이 다른 의미로 환원하여 자신의 정신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을 즐긴다.

 

 

정물화 (Still Life)는 사전적 의미로 다음과 같다.

 

 

 

서양화 한 장르.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이 없는 물건 즉 화초, 과일, 죽은 고기와 새, 악기, 책, 식기 등을 그린 회화(그림). 그 자체는 정지하고 있으나 배열의 미적 효과를 위해 화가에 의해 자유롭게 움직여짐. 생물도 전혀 배제되는 것이 아니고 들러리 역할로 그려지기도 함. 정물은 고대 로마 때의 벽화에서 부분적으로 그려졌으나 중세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음. 14세기 말경에 약간 그려졌고 16세기에는 죽은 새와 물고기가 단독으로 그려졌으나 17세기의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에서는 세밀묘사의 대상이 되어 독립된 화제로 확립됨. 18세기에는 샤르댕이 나와 섬세한 색채로 친밀한 효과를 높여 19세기에 가장 일반적인 제재(題材)가 됨.

 

- 출처 : <세계미술용어사전> 월간 미술 편집부

 

 

 

Still life. 이 정지되어 있는 시간은, 어떠면 정물화는 인간 개개인이 점유하고 있는 "각자의 사물" 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물이나 풍경의 부분에서 걸어나온 정물화의 배경에는 커지는 자의식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Giorgio Morandi, Still Life (Natural Morta) 1953. Oil on canvas /

출처 : http://www.artcritical.com/2008/09/01/giorgio-morandi-resistence-and-persistence/

 

 

모란디의 정물에는 병의 라벨이나 책의 표지와 같은 표식이 없다. (-위대한 예술가 501, 마로니에 북스, 363p.) 그것을 나타내는 사물의 형태, 사물이 갖고 있는 고유의 형태, 색에 집중하며 그 사물들이 갖고 있는 고요한 물질성을 도드라져 보이게 한다. 샤르댕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 화가의 그림은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사물 스스로 드러내지 않으며, 그러기에 보는 이에게 새로운 의미를 환기시켜 준다. 사물은 상징을 드러내지 않으며 그 스스로 어떤 알레고리나 교훈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무관심성과 몰개성성의 속성이 말을 하고, 생각을 투영한 나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물건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준다.

 

 

모란디의 정물이 그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무채색의 빈 종이로 나의 감정을 환기시킨다면 레이먼드 로위의 (Raymond Loewy)의 "유선형 디자인" 의 예는 저마다의 개성이 담긴 물건을 돋보이게 한다. 그것은 물건 스스로 나는 저것과 왜 다른가? 를 스스로 항변한다. 동일한 형태, 동일한 쓰임이라도 그것이 만들어진 생산지, 상표가 지닌 어떤 무형의 힘을 드러내며 대중매체의 끊임없는 노출을 통해 우리는 그것에 어떤 정신이 들어있다고 믿는다. 

 

 

 

Raymond Loewy , 1934

 

 

 

마치 인격을 지닌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소비의 사회" 에서 물건들은 저마다의 스토리를 갖고 태어난다. 그것이 얇팍한 상술일 수도 있고, 진정한 가치일수도 있다. 필요와 쓸모, 관조 혹은 정신의 전달로서의 대상인 사물들을 소유하는 것은 반드시 흔히 말하는 굿디자인의 4요소(기능성, 심미성, 경제성, 독창성) 에만 따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것을 소유하고, 같이 숨 쉬고, 삶의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의 선택에 의한 결과이며 사물에 투영하는 정신에 의한 것이다. 필요와 쓸모, 관조와 정신의 대상물은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문다.

 

 

 

 

 

 

윤광준은 그의 책(<윤광준의 생활명품>)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게걸스러운 탐욕은 죄악이다. 사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즐길 수 있어야 미덕이다. 가진 것이 넉넉지 않으므로 제대로 된 물건을 골라야 한다. 두 번의 선택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적지 않다. 좋은 것만 누리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 앞으로 맞게 될 봄날의 화창한 풍경은 내 차지가 아니다.

 

물건은 시간이 담겨야 아름다워진다. 보잘것없는 행적과 허비한 시간만이 내 몫이다. 잡다한 물건은 함께하며 생산의 도구로 활약했다. 보이지 않으면 믿지 못한다. 시간을 머금은 도구는 비로소 단단해지고 쓸모가 커져갔다. 손때 묻은 나의 물건들은 이력서처럼 또렷하다.

 

7-8p.

 

 

<윤광준의 생활명품> 을 처음 보았을 때 자신의 물건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라 단정하였다. 그러나 읽다 보니 조금씩 단지 자랑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며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려 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연재 형식으로 올렸던 글로서 그가 박봉의,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겠지만, 글은 단순히 사물의 그럴싸한 외투만을 묘사하고 있지 않다. 오래된 주전자, 작은 수첩, 포스트잍, 미군용 수통, 장서표, 손톱깎기, 가위, 골뱅이, 호두과자, 막걸리.... 모두 우리곁 가까이 쉽게 소유할 수 있는 것들도 꽤 많이 등장한다. 그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시간이 담겨 비로소 단단해지고 쓸모가 커진 것들"이다.

 

 

 

- Designers Meda, AlbertoRizzatto, Paolo / 1998

 

 

잠시 눈을 들어 내 주위를 본다. 언제부터 자리하고 있었는지 모를 물건들. 모란디의 정물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하얀 얼굴을 하고 수줍게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것도 있고, 레이먼드 로위의 연필깎기처럼 겉멋을 잔뜩 부리고 잔신만만하게 요염한 자태를 드러낸 것도 있다. 극히 미세한 것부터 내 키를 훌쩍 넘는 사이즈와 그만큼의 사이를 지닌 무게를 지닌 무엇들.

 

 

내가 가진 사물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설명한다는 것. 때로 그것은 나의 생각과 말을 더 잘 드러내는 것, 나의 정신을 더 잘 보여주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더 나아가 그 사물들의 외피를 묘사하고, 그것들과 함께 한 시간을 나열해보는 것은 스스로를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또 다른 방법이지 않을까. 내가 갖고 있는 사물들은 <생활명품>의 자격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가격의 기준을 낮춰준다면 나의 꽤 많은 사물들은 <생활품> 으로서의 자격은 충분히 되고도 남는다. 나의 생각과 말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나의 삶의 공간과 시간을 꽤 오랫동안 함께 점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카테고리는 나의 주변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저마다의 시간을 지니고 숨 쉬고 있는 어떤 사물들에 관한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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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5-17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밑에 Giorgio Morandi라는 이름이 두번 쓰인 것을 보고, 하나는 그린 사람 이름, 다른 하나는 그림의 또 다른 제목일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저 혼자 생각해보았습니다.
링크해주신 사이트도 들어가보았어요. 볼로냐에서 나서 볼로냐에서 생을 마감했군요. 세잔느의 정물화보다 좀 더 차분하고, 어떻게 보면 더 우울해보이기도 하고요. 전쟁에 참전한 후 신경쇠약에 걸렸다는데 그 이전에 그린 그림인지 후에 그린 그림인지 모르겠네요.
사물에 어떤 생명력이 느껴지기까지는 함께 한 시간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같아요. 제 친정에 가면 저랑 동갑인 선풍기가 아직도 제 역할을 잘 하며 버티고 있답니다 ^^

Nussbaum 2013-05-17 15:2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하루 잘 보내고 있으시지요?

어제 새벽에 뭔가 다른 일에 집중하다가 머리도 좀 쉴겸 썼더니 제가 모란디 를 두 번 적었습니다. 말씀해주신대로 실수로 작가 이름인 모란디(Morandi) 를 두 번 적어 넣었네요. ^^

정물화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샤르댕의 정물이 은은하고 고요함을 지니고 있는 사물들의 아름다움을 전해준다면 세잔의 정물은 우리 눈과 뇌의 감각을 일깨우는 진실이라는 면에서의 사물들의 느낌을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모란디의 정물에서 보다 진한 우수와 애써 드러내려는 지각에의 의지를 벗어난 관조를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1차, 2차 대전을 모두 겪은 그의 그림은 분명 미래파의 역동성이 지니는 힘과는 대조적으로 보이는데, 적어주신 그의 신경쇠약과 관련이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전쟁의 영향 또는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그림이 왠지 모르게 우울해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사회의 변화도 그렇고, 미술사적 흐름도 그렇고 매우 복잡한 시대를 살았던 그가 사망한 시점 (1964)을 봤을 때 이 그림은 모든 유파나 사상(특히 파시스트의 웅장함) 에서 벗어나려 했던 모습을 꽤나 잘 보여주는 그림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hnine님과 나이가 같은 선풍기라니.. 저는 제가 중학교때 용돈을 모아 샀던 작은 필통, 물건을 넣는 주머니 등을 보면서 꽤 오래 썼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 있는 생물인양 대하는데 그 선풍기는 마치 살아 움직일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제 역할을 한다는 그 선풍기가 꽤 멋지다는 생각도 해 보고요.

빛과 어둠이 딱 반이었던 날씨가 점점 그 정점을 지나가려 합니다. 일교차에 감기조심, 바쁜 일상에 마음조심 하셨음 합니다. ^^

숲노래 2013-05-29 0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살림살이
언제나
아름다운 손길로
알뜰살뜰
보살펴 주셔요

Nussbaum 2013-05-30 13:17   좋아요 0 | URL

네.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삶에 보기 드문 함께살기 아름다운 사진과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실은 몇 해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답글을 남기지 못했었네요.

살림살이 하시니 뭔가 더 주위 물건들이 빛이 나는 것 같습니다.
조만간 인사 드리러 가겠습니다.

oren 2013-06-15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정확히는 어제) 일찍 퇴근하는 길에 라디오에서 소개되었던 화가가 바로 조르지오 모란디였어요.
(정세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노래의 날개위에'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는 평생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살다가 그 집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하더라구요. 여행이나 미술관도 찾지 않았다고 하고요. '감정적인 여운이 작업을 방해'하기 때문에 그랬다고 하더군요.

평생 벽, 탁자, 컵, 그릇이 놓인 정물만 그렸던 그의 그림의 가치를 당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해 그의 그림은 대부분 '헐값'에 주위 사람들에게 넘겨졌다고 하던데,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되었다고도 하더군요. '존재로서의 고독'을 담아낸 그의 그림을 Nussbaum님 덕분에 '알라딘'에서 직접 보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그림을 보니 '이탈리아의 박수근'이라는 평가를 들을 만도 하네요.

Nussbaum 2013-06-16 11:05   좋아요 0 | URL
아 모란디를 라디오에서 소개했군요.

17세기부터 이미 독립하고 있던 정물화를 하나의 장르로 발전시킨 샤르댕의 작품도 좋지만, 저는 이상하게 모란디의 작품에 끌립니다.

섣부른 판단이지만 모란디는 왠지 조용한 사람이었을 것 같습니다. 경제적 부, 다른 이의 관심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미적 가치를 위해 매진했을 듯 싶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피카소처럼 정치나 미술적 유행에 무관하게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아마 당대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닌가.. 모딜리아니도 그렇고 사후에 이렇게 가격이 비싸지는 건 참 아이러니 합니다.

모란디의 작품이 들어 있는 페이퍼 관심있게 보아주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몇 해 전부터 oren님 사진과 글들 늘 감탄하며 잘 챙겨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