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본 다큐에서 어떤 화가가 세밀화를 그리는 모습을 소개한적이 있다.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관하게 몰입하는 모습, 문득 그 장면이 생각났다. 꽤나 큰 캔버스이지만 작은 형태 하나하나를 형형색색의 물감으로 채웠던 장면. 이 책 곳곳을 채우면 혹시 나도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 내부를 보면 하나를 완성하는데 꽤나 집중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색연필이나 물감, 마카나 수성펜은 비교적 많은 종수를 갖고 있는 것이 좋겠다. 혹시나 다시 해볼 수 있으니, 책을 복사해서 여러장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 제공 이미지>

 

 

 

양면이 그림 하나로 이루어진 것도 있고, 한 면에 그림 하나가 들어 있는 것도 있다. 그런데 이 책에는 깨알같은 재미가 숨어 있는데, 바로 이 그림 속에 동물들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고양이, 벌, 다람쥐, 부엉이 등등.. 뿐만 아니라 병속의 편지, 보물상자, 열쇠등도 숨어 있다.

 

 

 

 

 

베롤 프리즈마 칼라(아마 출판사 책 소개에서도 베롤 프리즈마 유성 색연필을 쓴 듯..) + 수채화붓 3자루 + 수채물감 을 펼쳐놓고 제일 무난한 것부터 연습삼아 그려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듯.. 과연 안티-스트레스가 될 것인지 반신반의하면서..

 

 

 

 

 

 

 

안티-스트레스 컬러링북이라 하니, 그냥 손가는 대로 채웠다. 나뭇잎이 무슨 색일까? 공작이 어떤 빛을 띠더라? 꽃은 무슨 색일까? .. 라는 고민보다는 그냥 어릴 때 크레파스로 막 칠하듯 그렸다. 테두리 무시하고, 색연필과 붓으로 그냥 휙 하고 지나간 곳도 많다.

 

너무 자잘한 것까지 채우지 않아서일지 아니면 너무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서인지 재미도 있고, 집중하게 하는 책이다. <비밀의 정원> 이라는 제목답게 내가 만드는 상상의 정원이라는 생각으로 조금 엉뚱하게 채워본다면 그리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고, 재미도 있지 않을까.

 

컬러링북을 몇 권 더 갖고 있는데 이책과 함께 다른 책의 그림도 같이 그려보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이기에는 아래 책이 더 좋았다.

 

 

 

 

일단 손 푸는 용으로 호랑이 한마리 좀 멍하게 그리고.

 

 

 

 

아방가르드하게 단순하고 진하게.

 

 

 

 

재밌는 상상하면서 집 채색!

 

 

 

 

 

대학시절 과제하던 생각나는데, 더 재밌는 모양!

 

 

 

 

마치 전철에 나 혼자 타고 있는 느낌! 뭔가 생각나게 한다.

 

 

 

응. 그래. 스트레스 받지 말자!

 

 

 

 

 

 

 

    

 

 

 

잠시 혼자가 되어도 좋고, 누군가와 함께여도 좋을 것 같다.

컬러링북 + 오후 시간 조금엔.

잠시 상상의 세계로 다녀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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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2-01 0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ussbaum님도 이 책을! ^^
전 그림 속에서 숨은그림 찾기하는게 재미있네요. 호랑이 얼굴도 설명없으면 그냥 지나칠 뻔 했어요.

Nussbaum 2015-02-02 00:12   좋아요 0 | URL
컬러링북을 좀 찾아보다가 여유 있을 때 좀 그려봤습니다 ~

생각없이 슥슥,, 너무 생각이 없었는지 이 정원에 다양한 동물과 사물이 숨어 있는 줄 몰랐었는데 앞에 설명보고 다시 한 번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 도안이 다 되어 있어서 색만 칠하면 되긴 하지만 색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참 많이 다르더라고요.

암튼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blanca 2015-02-0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색감이 다르네요. 수채물감의 저 몽환적 느낌이 넘 좋아요.

Nussbaum 2015-02-02 00:14   좋아요 0 | URL
네. blanca님. 요거 분홍공주님과 같이 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좀 재미붙이면 집중해서 하지 않을까요..? 포트폴리오로 묶어서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크면 보여줘도 좋을 듯 싶구요 !


수연 2015-02-02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채화 분위기 물씬 나는 작품_ 의외의 발견_ 저도 다음에는 물감으로 도전해봐야겠어요. :)

Nussbaum 2015-02-02 21:19   좋아요 0 | URL
네 수채로 크게 크게 칠하고, 나중에 자잘한 부분은 색연필로 해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 나중에 꼭 야나님 작품도 볼 수 있음 좋겠습니다~~ :D
 
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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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열정, 동기, 핍진성

 

 

 

소설은 두 번째 삶입니다. 프랑스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이 말한 꿈처럼, 소설도 우리네 삶의 다채로움과 복잡함을 보여 주고, 우리가 아는 것 같은 사람, 얼굴, 물건 들로 가즉 차 있으니까요. 마치 꿈에서 그러하듯이, 우리는 때로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가 접한 것들의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우리가 어디 있는지도 잊고, 우리가 보고 있는 상상의 사건이나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착각에 빠집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소설에서 보고 희열을 느꼈던 허구 세계가 현실 세계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느낍니다.

_오르한 파묵 <소설과 소설가>

 

 

 

  소설을 대할 때면 언제나 미안함이 든다. 다른 종류의 책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어서일까? 언제부터인지 소설에는 도통 손이 가질 않는다. 이러저러한 까닭으로, 지금 내 작은 책장에는 소설책이 거의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소설을 멀리하게 된 것은.. 책장 뒤의 초라한 구색을 하고 있는 소설을 보면서 다시 소설에 대한 애정의 눈길이 생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스무살이 되던 해, 지극히 정신없으면서도 무료하기 짝이 없던 나는 나만의 재미있는 놀이를 하며 지냈다. 보통 책을 대출하면 나오는 대출증을, 책 맨 뒤페이지에 살짝 붙여 놓고 다시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가끔 책을 반납 한 후 다시 그 책을 찾아보면 누군가가 거기에 낙서를 해 놓은 경우도 있었다. 그땐 그 놀이가 꽤 재미있었기 때문에 공강시간이면 총류 000부터 끝까지 훑어보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책을 대출하고 내가 읽었다는 표시를 은밀히 하곤 했다.

 

  대출증을 붙여 놓는 놀이의 대상은 주로 아무도 안볼 것 같은 책이었는데, 이를테면 모기의 습성에 관한 책이나 좋은 이름 짓는 법 혹은 유전자의 역할, 종교전쟁을 다룬 것들이었다. 물론 소설도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소설은 많은 사람들이 책을 대여해 봤기 때문에 새책을 처음 펴는 희열을 느끼는 일이 적었다. 하지만 소설가의 삶의 때가 묻은 문장들을 몸으로 접할 수 있었다. 그 때가 아니었으면 나는 마르셀 프루스트, 살만 루시디, 오르한 파묵, 움베르트 에코, 미셀 우엘벡, 폴 오스터와 같은 작가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과 만나 20대를 거쳐 30대를 때론 진지하게, 때론 헛웃음도 짓고, 때론 가벼이 털어버리고, 때론 상상 너머의 세계를 살고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여전히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책 가운데 가장 아끼는 책을 최명희의 <혼불> 로 여기면서 왜였을까? 도스토옙스키의 그 인간의 내면을 날카롭게 도려내는 모습에 진이 빠지고, 레이먼드 카버의 작은 일상을 사랑하며, 김소진의 안경알 사이의 거리에서 멈칫하기를 좋아하는데. 돌이켜보건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어느 추운 날, 술을 마시다 문득 든 생각이 그 시발점이었던 것 같다. 소설은 어쩔 수 없이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

 

 김연수는 책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그러므로 지금 초고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은 소설가에게 필요한 말은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자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내가 왜 소설에 편견을 갖게 되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소설에 흥미를 잃게 된 시점은 언젠가부터 등장한 바람 불면 날아갈것 같은 텍스트의 나열 뿐인 소설을 읽고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거기엔 아무 의미도, 시사하는 바도, 고민도 없었다. 그런 경험이 되풀이되자 소설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훌륭한 소설가들이 경험한 것들, 내적인 것에서 끓어오르기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며 표면화된 결과물, 고민하는 텍스트들이 포함하는 여러 함의에 대한 의미를 더 이상 찾지 않게 된 것이다. 소설가와 소설이 하는 일에 대한 애정의 시선, 나는 그것을 잃고 있었다.

 

 

 

 

 

 

 

 

 

 

2부. 플롯과 캐릭터

 

 

 

독자들은 왜 어떤 소설에 그토록 열광할까? 서평 때문일까? 서평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상을 받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 잊어버린다. 책표지 때문일까? 좋은 표지를 보면 소비자는 진열대에서 한번 들어보지만, 표지는 어디까지나 포장일 뿐이다. 우아한 인쇄 때문일까? 책등에 찍힌 로고 때문에 책을 구입한 적이 있는가? 엄청난 광고 때문에? 대중들이 책 광고가 있다는 것일 알기나 할까? 영향력 있는 에이전트 때문에? 아쉽게도 이것도 독자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아니다. 실상 독자들이 소설에 열광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훌륭한 이야기다.

_제임스 스콧 벨 <소설 쓰기의 모든 것> 플롯과 구조. p.22

 

 

  최명희 작가의 <혼불>은 내게 특별한 책이다. 실력있는 요리사에게 죽기 전에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라 하면 자기가 어릴 때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음식이라고 말하거나 높은 명성의 화가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말하라 하면 자신이 천진난만했을 때의 첫 작품이라고 말하는 경우에서 보듯 "처음" 이 주는 강렬함은 매우 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들어가기의 그 기간동안 그리 용돈이 많지 않았던 나는 동네 서점에서 책을 보곤 했다. 그 때 꽤나 거금을 들여 책을 몇 권 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책들만큼은 버리지 않고 책장에 잘 꽂아 두고 있다.

 

  <혼불>. 10권으로 만들어진, 그러면서도 미완이라 부르는 그 긴 소설을 그렇게 열심히 읽었는지 지금도 의아스럽다. 작가 최명희는 교직에 있다가 나와 소설을 쓰기 위해 자신의 병과 싸우며 고독하게 그 책을 썼고 그 책은 꾹꾹 눌러담은 문장과 행간의 쉼표가 가득하다. 그 텍스트에는 우리의 근대사를 관통하는 삶이 녹아 있으며, 잊고 지내왔던 문화의 조각들이 숨어 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읽는 나를 다른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색다른 경험, 색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수학공식같은 증명이나, 논술의 글쓰기, 아마 가보지도 못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다른 새로운 삶. 그 삶이 책 안에서 일어난다는, 환상을 담은 이야기가 그 책을 그렇게 열심히 마르고 닳도록 읽게 만든 힘이었다.

 

  주인공 강모와 강실이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 무수한 삶의 발자국 속에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지내는 사람을 한순간에 잡아다 머나먼 환상으로 이끄는 힘을 지닌 이야기. 그 이야기를 이루는 토대가 바로 플롯과 구조, 캐릭터일 것이다. 이런 소설에 애정을 듬뿍 가진 어떤 사람을, 조금 어색하지만 김연수가 얘기한 식대로 말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소설가-> 독자)

 

내가 읽는 소설의 주인공이 '행동한다-좌절한다-곰곰이 생각한다-다시 행동한다'를 반복하면서 점점 절정을 향해 나아간다면, 소설을 읽는 나 역시 '읽는다-좌절한다-곰곰이 생각한다-다시 읽는다'를 반복하면서 점점 소설 읽기의 절정으로 올라가야만 하리라. 독자라면 플롯의 시작점이 행동이라는 걸 알아야만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자신의 삶이 '읽기' 에서 시작한다는 사실도 알 것이다.

_김연수 <소설가의 일> p.104

 

 

소설을 읽겠다면, <크리스마스 캐럴>의 마지막 장면을 항상 기억하기를, 어떤 인간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변함이 없다는 것. 달라진 사람은 말, 표정 및 몸짓, 행동으로 자신이 바뀌었음을 만천하에 보여준다는 것. 그러므로 소설을 읽겠다면 마땅히 조삼모사하기를. 아침저녁으로 말을 바꾸고 표정을 달리하고 안 하던 짓을 하기를.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_김연수 <소설가의 일> p.140

 

 

 

 

 

 

 

3부. 문장과 시점

 

 

소설을 가늠하는 궁극적인 기준은, 가령 우정의 기준이라든가 우리가 정의할 수 없는 무엇의 기준처럼 그것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될 것이다. 감상 뒤에 쳐져서 [아, 나는 그것이 좋은걸], [그래도 그것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걸] 하고 말을 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것은 감상이 너무 크게 또는 성급하게 말을 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소설이 갖는 강렬하면서도 벅찬 인간적인 면을 피해서는 안된다. 소설에는 인간성이 스며들어 있다. 인간성의 고양이나 침체를 피할 수도 없는 것이며, 비평을 받지 않도록 제쳐 놓을 수도 없다. 우리는 인간성을 미워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없어지든지 심지어는 순하게 되어도, 소설은 시들어 한줌의 언어 이외엔 남을 것이 거의 없다.

_ E. M. 포스터 <소설의 이해>

 

 

  아주 오랜만에 <혼불>을 꺼냈다. 책 윗등이 누렇게 바랬다. 내 마음이 저리 물러난 것인지 그 누런 종이는 나의 낯빛보다 더 빛을 잃어 조금 더 처량해 보였다. 무심코 펼친 페이지. 그 페이지의 구절은 강모와 강실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여전히 이 책은 어디를 펴도 늘 같은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같은 표정도.

 

그 소꿉놀이 밥상을 받은 사람은 강모였다. 어린 도련님 강모는, 오류골댁 살구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고 차린 꽃밥에 칠첩 반상 백옥 같은 사금파리 접시 위의 색색 반찬을, 강실이가 집어 주는 대로 받아 맛나게 먹었다. 그 아홉 살 열 살의 동그란 머리 위로, 봄은 이울인 살구나무의 구름 같은 연분홍 비칠 듯 말 듯한 꽃잎들이 하염없이 흰 눈처럼 날아 내려,  강실이의 작은 어깨와 저고리 깃, 옷고름 사이로 스미어 지고, 강모의 앞자락 무릎에 졌다. 그리고 밥상 위의 밥그릇과 국그릇, 반찬그릇 색색 위에 하얗게 졌다. 나풀나풀 날아 내리는 꽃잎들은 여리고 곱다 못하여 애달프기 그지없는데, 강모는 내리는 꽃잎의 너울 저쪽에서 나뭇가지 젓가락으로 꽃밥을 먹으며 웃고, 강실이는 내리며 스러지는 봄눈같이 안타까운 꽃잎들의 이쪽에서 웃으며 새 그릇에 꽃밥을 담았다. 꽃잎은 녹는 것이 아니어서 봄눈보다 고와, 돗자리와 밥상과 마당 위에 비늘같이 작은 몸을 누이었다.

_최명희 <혼불> 6권. p.99-100

 

  마침표를 읽어내면서 나는 예전보다 꽤 납작한 삶을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김연수는 "문장" 을 다루는 부분에서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이 말은 평범한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미문의 인생이다. 소설 속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추잡한 문장을 주인공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인생을 뻔한 것으로 묘사할 때 나온다. 사랑하지 않으면 뻔해지고, 뻔해지면 추잡해진다." 소설 한 권 읽지 않는다고, 소설가가 쓴 미문 하나 못 읽어낸다고 다 흔한 인생과 흔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닐테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읽고,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마음상태를 만드려고 부단히 노력할 것이며, 또 그 문장을 읽고 다시 그 아름다움을 텍스트 더 나아가 소설가가 쓰려고 했던 마음상태까지를 느끼는 흔치 않은 사람이 되려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오랜만에 꺼낸, 눈이 자연스럽게 애처로워지면서 애틋해지는 저 단어와 문장을 오랜만에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떤 작가가 17년간 쓴 소설을 대하며 그 문장은 쉬이 이루어지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문장과 시점을 다루는 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어쩌면 김연수가 이 책 첫머리에 마르셀 프루스트를 등장시킨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매일 소설을 쓰게 되면 가장 느리게 쓸 때, 가장 많은 글을, 그것도 가장 문학적으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시작에 불과하다. 느리게 쓴다는 것은 문장을 공들여 쓰고 플롯을 좀더 흥미진진하게 구성한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거기에는 소설이란 인간이 겪는 고통의 의미와 구원의 본질에 대해서 오랫동안 숙고하는 서사예술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다."

 

  "인간이 겪는 고통의 의미와 구원의 본질에 대한 숙고" 그것이 소설을 예술의 한 장르로 끌어 올리는 척도가 될 것이며 독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오래 머물러야 하는 것이 아닐까. 문득 책장에서 꺼낸 어떤 책의 한 구절처럼.

 

<만일 정말로 네가 이 모든 일을 의식적으로 행한 것이라면, 바보스럽게 어쩌다가 그냥 저지른 게 아니라, 만일 진정으로 어떤 일정하고 확고한 목적이 있었던 것이라면, 너는 왜 지금까지도 지갑을 들여다보지 않았고, 네가 무엇을 훔쳤는지 알아보지도 않았느냐? 그러면서도 왜 넌 온갖 고통을 감내하며, 이런 비열하고 추악하고 저급한 짓을 의도적으로 저질렀느냐? 그런데 너는 조금전에 그 지갑을 물에 던지려고 했다. 네가 아직까지 열어 보지도 않은 물건들과 함게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셈인가?>

  그랬다. 그건 그랬다. 그건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는 이것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이건 그에게 전혀 새로운 질문이 아니었다. 지난밤에 물에 버리기로 작정했을 때도 그 어떤 흔들림이나 갈등도 없이,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다른 어떤 것도 불가능한 것처럼 그는 그렇게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p.162-163

 

 

 

 

 

 

마치는 글.

 

 

소설은 처음과 끝 사리에 자신의 총체성의 본질적인 것을 포함한다. 소설은 그럼으로써 한 개인을, 그의 체험을 통해 하나의 전체적 세계를 창조해야 하고 또 그렇게 창조된 세계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 인간을 무한한 높이고 고양시킨다. 이 높이는 서시시적 개인은 물론이고 단테의 개인, 즉 이 같은 의의를 자신의 순수한 개인성 덕택이 아니라 그에게 베풀어진 은총 덕택에 얻는 단테의 개인조차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높이다.

_ 게오르그 루카치 <소설의 이론>

 

 

  김연수는 이 책에서 그런 농담을 한다. 오르한 파묵이 자신의 책 <소설과 소설가>에서 자신이 소설에 대한 비밀을 너무 많이 하여 작가협회에서 제명당하게 될 지 모른다고 하였는데, 오히려 자신이 그럴 위험에 처해 있다고. 분명 이 책은 소설가의 작업 대한 많은 얘기를 한다. 그가 어떻게 착상을 하며, 어떤 자세로 텍스트를 다루는지, 어떻게 그럴싸한 사건을 만드는지, 사람들이 푹 빠져 읽을 수 있는 플롯과 개성적이며 전형적인 캐릭터는 어떻게 만드는지, 독자의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름다운 문장은 무엇인지, 소설가가 어떻게 그 자신의 일에 매진해야 하는지.. 분명 김연수는 인간을 사랑하고, 서사를 만들고 탐구하기를 좋아하며, 깊은 인식을 가진 미래의 훌륭한 소설가를 염두하고 글을 썼을 것이다그러나 나는 약간은 다른 시각을 덧붙여 글을 읽는다. 그의 글은 언젠가부터 소설 읽기를 멀리한, 그러나 아직은 애정이 남아 있는 독자를 위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책의 끝부분에 적은 말은 얼마나 나를 다시 소설로 이끌게 하는가. 눈물겹다.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에 가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해하려고, 가 닿으려고 노력할 때, 그때 우리의 노력은 우리의 영혼에 새로운 문장을 쓰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도 있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건 우리의 노력과는 무관한 일이다. 하지만 이해하느냐 못하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우리의 영혼에 어떤 문장이 쓰여지느냐는 것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대답하기 위해 나는 평생을 쓸 수 밖에 없었겠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_김연수 <소설가의 일> p.262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어 읽은 소설은 살아있었다. 아직 그 문장은 거기서 숨쉬고 있었다. "허구" 라는 장르의 특성에 지나치게 마음을 뺏긴 나머지 본질을 잊고 있었던 내게 김연수의 책 <소설가의 일>은 곧 독자의 일이었다. 애정을 잃고 꽤나 멀리 걸어왔지만 돌아가려고 하는, 돌아가고 싶었던 어느 독자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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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5-01-24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젊을 땐 정말 `책은 곧 소설`인 줄 알았던 듯해요. 책을 붙잡는다는 건 언제나 `어떤 이야기` 속으로 풍덩 빠져들어간다는 걸 항상 기대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소설은 허구`라는 걸 자꾸만 의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느낄 때가 생기기도 하더군요.

최명희의『혼불』을 자신이 만난 생애 최고의 작품으로 주저없이 내세우는 제 친구가 있는데, 저도 언젠가는 그 소설을 꼭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인용해 주신 저 짧은 대목만 읽어 봐도 금세 그 책 속으로 빨려들어갈 듯한 느낌이 드니 말이지요.

Nussbaum 2015-01-25 00:00   좋아요 0 | URL
oren님 안녕하세요.

김연수의 산문집을 읽으며, 페이퍼를 작성하면서 지나간 나의 20대를 돌이켜보기도 하고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요근래 꽤 많은 책을 팔아치워 책장이 조금이나마 한산해졌는데 그 팔려나간 책들 가운데 소설의 비중이 꽤나 큽니다. oren님 말씀을 듣고 나니 최근까지는 `어떤 이야기` 속에 풍덩 빠져들어간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천일야화 세트를 구매하여 다시 읽게 되니 `어떤 이야기` 에 다시 빠져드는 제가 좀 신기하기도 했지요.

이 글을 작성하면서 다시 오래된 소설을 펼쳐보았습니다. 언젠가 고민 없이 그저 그 세대만을 가벼이 반영하는 소설과, 그뒷표지에 그 소설을 극찬하는 평이 잔뜩 실려 있는 것을 본 후 멀어졌던 그 발걸음을 다시 되돌려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하신 `진짜 이야기` 는 그곳에도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부족한 제가 그것을 찾지 못하고 떠돌아다녔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제가 너무 <혼불>에 대한 기대를 많이 심어드린 것은 아닐까 조금 걱정스럽습니다. 불완전하게 갑자기 뚝 끊어진 스토리, 중간중간 작가가 삽입한 많은 묘사에 의한 빠르지 못한 전개, 약간은 물을 먹어 늘 하강곡선을 그리는 듯한 어조와 풍경의 시선들. 현실 반영의 측면에서 부족한 감이 있다 하더라도 늘 제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작가의 문장과 같이 걸었던 제 푸른 날의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대학 4년 내내 좁은 기숙사에서도 그 10권은 꼭 지니고 다녔던 그 시절의 추억은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네요.

blanca 2015-01-29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혼불을 너무 좋아해요. 이 책은 살아 있는 것 같아서 언젠가 또 한번 제대로 다시 만나얄 것 같아요.

Nussbaum 2015-01-31 18:34   좋아요 0 | URL
blanca님 안녕하세요.

예전에 <혼불> 관련해서 페이퍼였는지 남기신 글 본 기억이 납니다. 다시 제가 남긴 리뷰를 읽어 보니 그 책에 대한 내용을 많이 쓴 것 같네요. 늘 생각나는 책인데, 다시 생각해보면 소설의 힘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살아있다는 말 참 좋은 것 같습니다.
 

 

 

 

 

 

 

n-t.   하나만 질문할께요. '음악의 기쁨'은 어디 있는 거죠?

 

r-m.   언제나 양극단 사이에 있죠. 한쪽에는 자연의 모사, 다시 말해 물리적이고 맹목적인 흉내내기가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자연에 대한 망각, 다시 말해 음악을 설계도 한 장으로 전락시키는 철저한 추상화가 있고요.

 

(중략)

 

인간의 음악은 자연의 목소리에 메시지로서의 가치를 더해주고, 그 메세지는 우리에게 사물과 마음의 거대한 신비를 밝히는 듯합니다. 

 

p.24

 

 

책 뒷면에는  1947년 출간된 클래식 음악의 고전   이라는 말이 크게 적혀 있다.  그렇다! 이 책은 꽤 오래전에 나온 책으로 주로 클래식 음악을 이루는 각 요소들과 현대음악까지 음악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번역하여 출간하는 클래식 음악이나 음반의 역사를 다룬 외국의 책은 꽤 오래전에 나온 책인 경우가 많다.) 주제를 하나 정해 그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과 대담형식으로 내용을 전개해 가는 형식이다. 작은 판형으로 나온 책이지만 그 내용과 폭이 상당히 넓고 깊다.

 

클래식 음악의 다양한 요소와 장르를 다룬, 1권의 목차를 보자. 


* 음악은 무엇으로 하는가?
대담 1 우리는 왜 음악을 하는가? 12
대담 2 성악에 대하여 26
대담 3 기악에 대하여 38
대담 4 합창에 대하여 52
대담 5 현악기에 대하여 68
대담 6 하프와 금관악기에 대하여 83
대담 7 성악에 대하여 98
대담 8 하프시코드에 대하여 112
대담 9 피아노에 대하여 125
대담 10 오르간에 대하여 136
대담 11 리듬 150
대담 12 조성 164

* 음악의 형식들
대담 13 민요 180
대담 14 협주곡 195
대담 15 오페라발레와 무용곡 205
대담 16 조곡 218
대담 17 소나타와 교향곡 232
대담 18 교향곡의 안단테 245
대담 19 푸가 255
대담 20 서곡 266
대담 21 교향시 277

* 형식과 장르
대담 22 실내악 290
대담 23 4중주 302
대담 24 종교음악 314
대담 25 교회 칸타타 329
대담 26 음악의 형식이란 무엇인가 342
대담 27 미지의 미녀들,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음악들 356
대담 28 작곡은 어떻게 하는가 370
대담 29 신구논쟁 383
대담 30 ‘부정음不正音’에 대하여 395

 

 

이 책만 제대로 읽어도 클래식 음악의 상당한 부분에 대해 기본적인 내용을 습득할 수 있을 정도로 각 대담의 주제가 빈틈 없다. 대담자와 진행자가 모두 음악의 전문가이다 보니 해당 음악 장르의 태동과 역사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변화의 맥을 매우 잘 짚고 있으며, 간결한 설명으로 장황하지 않게 핵심을 전달한다.

 

 

 

  

 

2-3권은 음악사를 다루고 있는데, 작곡가를 시대 또는 악파로 나누어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책 앞장에 따로 붙어 있는 음악사 일람표를 보면 주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스칸디나비아, 러시아, 영국, 스페인 작곡가들이 그 대상임을 알 수 있다. 대담자들은 각 작곡가의 작품과 생애, 후대에 끼친 영향 등을 간결하면서도 균등하게 다루고 있다. 다양한 작곡가들이 어떤 음악적 자양분을 토대로 작품을 만들었는지,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작곡가들 간에 서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등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그 예를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n-t. 베토벤의 명백한 독창성, 거의 심란할 정도의 독창성은 시대에 앞선 과감하고 새로운 언어로 표현되지 않았나요?

 

r-m. 분명히 짚고 넘어갑시다. 베토벤은 음악의 정신과 어조를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음악은 베토벤 이전과 이후로 분명히 갈라지죠. 따라서 그의 메세지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한 음악적 요소, 방법, 기법은 시대에 앞서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동시대를 살았던 베버나 로시니에 비하면 되레 뒤처져 있었어요.

 

(중략)

 

r-m. 들어봐요, 타그린 씨, 베토벤의 새로움은 음악의 짜임새에 있지 않아요. 속도, 절대적인 어조, 전례 없는 고집스러움, 고독과 침묵 속에 갇힌 마음과 정신의 폭발이라고 할 만한 면이 새로운 거죠.

 

<음악의 기쁨 2권 중 - 베토벤>

 

 

r-m. 그런 점에서 슈만이 독보적이고 생산적이지요. 슈만 덕분에 음악은 장식적이거나 극적인 차원에서 벗어납니다. 음악이 내면의 서정을 발견하게 된 겁니다. 음악은 일상의 기적 속으로 파고듭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로써 슈만은 근대적인 감성에 그토록 접근했지요. 그는 근대적 감성의 분위기를 도입한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낭만파를 뛰어넘어 모데스트 페트로비치 무소륵스키와 드뷔시를 예고한 음악가이지요.

 

<음악의 기쁨 3권 중 - 슈만>

 

 

 

 

 

흥미로운 부분에 붙여 놓은 포스트잍이 어지럽다. 실은 내용이 좀 어려워 보여 번역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매우 매끄러운 번역탓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내용을 쉽게 접할 수 있었는데 번역투의 글도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고 간결한 문장 덕에 핵심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서양 고전)음악의 기쁨]. 책을 읽고 이 책에 등장하는 화자들이 말하는 음악의 기쁨이란 길고 긴 클래식 음악을 수놓고 있는 다양한 작곡가의 삶과 그 삶 속에서 피어났던 음악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깊이 이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음악의 기쁨을 한껏 느끼는 것이 쉬워 보이진 않지만 먼지가 쌓여가는 나의 흔적을 또렷하게 다시 들여다보게 한 계기였다. 그 음악의 기쁨은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에게 나름의 열정과 흥미를 맛보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

이 책에 대한 끝없는 호의.. 그렇다고 불평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띠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클래식 교양서의 신기원! 비슷비슷한 에피소드만 반복하는 초심자용 클래식 입문서와 너무 어려운 음악 교양서 사이에 놓인 '예쁘고 반가운 징검다리"..

 

"너무 어려운 음악 교양서" 가 과연 어떤 종류의 책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견해로는 이 책은 꽤나 오히려 읽기 어려운 교양서에 속한다. 그 까닭으로 첫째, 이 책에는 전문적인 둘의 대담이다보니 둘의 의중을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때로는 핵심을 표현하기 위해 문학이나 다른 예술적 장르를 빗대어 표현하는 부분이 종종 등장한다. 둘째, 해당 작가의 일생이나 사상, 그리고 그 음악에 대한 얘기가 매우 다양한 수준에서 접근이 이뤄지다 보니 짧은 문장이지만 다양한 배경지식을 필요로 한다. 셋째, 작곡가의 작품을 소개할 때 다른 작곡가와 비교 대조하는 부분은 그 특성을 더욱 잘 드러내기도 하지만 자칫 다른 작곡가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때는 그 특성을 파악하기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n-t. 그런데 순수음악을 그토록 강조했던 당디가 어떻게 회화성은 용납할 수 있었죠?

 

r-m. 나는 당디의 회화성을 이해하려면 그가 프랑크의 가르침에 빠져 있을 때조차 베를리오즈의 관현악법을 줄기차게 참조했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베를리로즈는 기악으로 회화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단연 최고였죠. 그리고 당디는 바그너의 악극에서 온전한 예술작품의 실현을 기대했었어요..

 

<음악의 기쁨 3권 중 - 당디>

 

이 짧은 부분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당디는 프랑크와 베를리오즈의 영향을 받았고, 바그너의 악극에서 무엇인가를 기대했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더 잘 읽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작곡가의 특성 또는 작품의 느낌을 알아야 한다. 당디(댕디)의 어쩌면 가장 유명한 작품 <프랑스 산 사람들의 노래에 의한 교향곡> 과 세자르 프랑크의 <교향곡 D단조> 를 들어본 적 없는 독자라면? 바그너의 다양한 악극에 대한 이해가 없는 독자라면?

 

앞서 말했듯 이들의 대화에 등장하는 많은 대화들은 많은 함의를 지니고 있어서 오히려 때로는 피상적이거나 장황하게 들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 텍스트를 온전히 읽기 위해서는 많은 음악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는 더 많은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생각으로 보다 클래식의 감상과 "이해를 위한 징검다리"를 위해서는 서양 음악사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해설서나 사전류가 더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라우트의 서양음악사> 나 <작곡가별 명곡해설 라이브러리> 또는 <라루스 음악 사전> 등.

 

 

 

               

 

 

 

 

++

한때. 음악을 업으로 삼아 살 때가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클래식 음반.

이제 그때를 지나, 돌이켜 보니 참 많은 말을 하고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없는 것, 내 범위를 뛰어넘은 것들.

 

무수한 말들이 담긴 서재를 없앴을 때

잠깐 앓았다. 

그리고 그 문자 사이 의미 없는 공백을 알았다.  

 

형형색색의 탁한 색의 외투를 벗고 차라리.

이곳저곳 해진 옷을 입고 다시 보는 흰 공백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공백은, 조금은 더 맑다.

 

그럼에도 조금 머뭇거리는 것은 그때 두고 온 사람들 때문.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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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5-01-14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동영상을 업로딩하셨네요. 알라딘서재 바뀐 이후로 안되고있는걸로 알았어요.
저도 글렌 굴드의 이 음반 가지고 있는데 최소의 소리? 혹은 자극만 필요한 상황에서 일을 해야할때 주로 들어요.

저 책 세권을 다 읽으셨군요. 전 처음에 표지를 보고 진짜 교과서인줄 알았다니까요 ㅠㅠ

Nussbaum 2015-01-15 12:0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nine님 !
어제 껌껌한 새벽부터 길을 나서서 하루종일 밖에서 떨었더니 몸이 아직까지 좋지 않네요.. ㅠㅠ

동영상.. 나중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차단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유투브 동영상 링크를 고려하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올리기는 좀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저는 글렌 굴드의 음반을 자주 듣진 않지만(그러고보니 요새 음반을 듣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네요~)이렇게 가끔 찾아 들으면 넘치는 생동감이 돌아서 좋던데 페이퍼에 무슨 음악을 올릴까 하다 생동감이 느껴지는 동영상이 좋겠다 싶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굴드의 허밍이 같이 들어가 있어서 혼자 있을 때 들으면 좀 무섭기도 하덴데, 혼자 계실 때 괜찮으신지 모르겠습니다. ㅎ

요 책들은 한꺼번에 모아서 올리려 했는데, 시간 틈틈히 읽고 정리해둬서 이제야 올리게 되었습니다. 글자가 꽤나 작다보니 달리는 기차 안에서는 읽기 힘들었어요 ㅠㅠ

수연 2015-01-14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권은 보라색이더라구요. 저는 이제 막 1권을 펼치고 있는 시점이라서_ 근데 초심자에게는 확실히 어렵더라구요;;

Nussbaum 2015-01-15 12:1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야나님. 처음 뵙겠습니다.

이 시리즈가 4권도 있군요 +_+ 한 번 검색해봐야겠습니다.
확실히 재밌긴 재밌는데, 워낙 종횡무진 하다보니 때로는 너무 많은 개념이나 사람들이 등장해서 어지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최대한 친절하게 설명했다고 느끼겠지만요..

다락방 2015-01-14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저 책, 엄두도 나질 않아요.
안녕, Nussbaum 님.
:)

Nussbaum 2015-01-15 12:20   좋아요 0 | URL
오 다락방님. 안녕하세요.

왠지 모를 친근감이 마구 솟네요. 오늘은 회사에 몸을 잘 붙들고 계실지.. 아침에 출근길에 책은 잘 들고가셨을지.. 모닝 커피는?.. 점심은..? 저녁 메뉴는..? 등등 뭘 하고 계실지 궁금하네요.
이 책, 한 번 읽는 건 어렵지 않은데 두 번, 세 번 읽다 보면 점점 어려워지고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이제 점심시간이네요. 무슨 메뉴를 고르실까? ㅎㅎ
 

 

 

낭만주의 시에서 광기의 언어에 고유한 것은 낭만주의 시가 최종적인 종말의 언어이자 절대적인 재시작의 언어라는 점이다. 즉, 그것은 낭만주의 시가 어둠 속에 잠기는 인간의 종말이자 그 어둠의 끝에서 발견되는 빛이라는 점인데, 그러한 빛은 최초의 완전한 시작상태에 있는 사물들의 빛이다. "어렴풋한 지하의 장소가 점차로 명확해지고 그곳의 모소한 영역에 머물러 있는 창백한 얼굴들이 부동의 근엄한 표정으로 암영과 어둠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나서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새로운 광명이 환하게 빛난다. 광기는 위대한 귀환의 언어를 말한다. 그 귀환은 현실의 수천갈래 길을 한없이 걷는 오랜 모험여행의 서사적 귀환이 아니라, 폭풍우를 단번에 고조시키다가도 되찾아진 기원 속에서 환하게 비추고 다시 가라앉히는 순간적 섬광에 의한 서정적 귀환이다. "열 세 번째 여자가 돌아오는데, 그녀는 또다시 첫 번째 여자이다." 이것이 바로 광기의 힘이다. 즉, 광기의 힘은 타락의 최종지점이 최초의 아침이고 황혼이 가장 싱싱한 빛으로 마감되며 종말이 재시작이라는 인간의 그 야릇한 비밀을 표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광기는 고전주의 시대의 오랜 침묵을 넘어 언어를 되찾는다. 그러나 이 언어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 세계의 파열, 시대의 종언, 야수성에 함몰된 인간이 문제이던 르네상스 시대의 오랜 비극적 담론을 잊어버린 언어이다. 광기의, 이 언어는 재탄생하긴 하지만 서정석의 폭발로서, 즉 인간의 마음속에서 내부는 또한 외부이고 주관성의 극단은 대상의 직접적 매혹과 동화하며 모든 종말에는 끈질긴 귀환을 약속하고 있나는 발견으로서 재탄생한다. 더 이상 세계의 비가시적 형상이 아니라 인간의 내밀한 진실이 투명하게 비쳐보이는 언어.

 

미셀 푸코, <광기의 역사> 3부 정신병원의 탄생 중.

 

 

 

 

 

 

 

 

 

슈만은 46세를 살았고, 그의 마지막 2년은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보냈다. 슈만은 교향곡,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곡, 피아노곡, 가곡과 함께 1곡의 오페라를 작곡하였으나 최후 2년간에는 단지 몇 곡의 작업만 했을 뿐이다. 그는 법률을 공부했으나 음악과 문학을 마음에 품고 있었으며 음악가의 삶을 살았고 작곡가 뿐만 아니라 문필가로서 브람스를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아내 클라라에게 결혼기념으로 가곡집(Myrthen Op.25)을 선물하려고 했으며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장인과 법적 다툼을 벌였다.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뒤셀도르프를 거친 슈만의 삶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생이 짧았다 해서 위 짧은 몇 줄로 묘사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느낌이다. 그가 남긴 음악을 듣고 있으면 슈만의 삶과 정신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어린이의 정경, 피아노 5중주, 피아노 협주곡, 교향곡, 그리고 이 외의 많은 피아노 독주곡을 듣다보면 단지 이는 음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시, 하나의 정신, 하나의 마침표나 쉼표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의 삶에서 볼 수 있는 대립쌍은 음악에도 녹아 있다. 

 

 

  프로이트의 용어를 다시 빌려오자면, 슈만의 음악은 쾌락의 원리 너머에 있다. 앞으로 살펴볼 것처럼, 또한 언어의 원리 너머에 있는데, 아마도 이 둘은 같은 의미일 것이다. 고통은 다른 범주, 이를테면 반복, 죽음의 충동, 비참의 범주에 속한다.

 

  이 음악은 종종 힘겹고, 때로는 견길 수 없는 것이 된다. 이 음악은 우리 안에서 우리가 알고 싶지 않은 것을 건드린다.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광기, 우리 자신의 죽음을, 슈만을 연주할 때 우리는 쇼팽이나 브람스의 경우와는 대조적으로 거의 기쁨을 느낄 수 없다. 마치 그런 고통 속으로 들어가게 될까 봐, 그로부터 나올 수 없을까 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왜 하필 이런 음악인가? 이런 음악은 상처 입은 살갗, 일상의 균열, 완만한 고통의 점령, 돌연 민낯을 드러낸 사람이나 다름없다. 

 

미셀 슈나이더, <슈만, 내면의 풍경> p.51 

 

 

 

그렇다면 슈만의 음악에서 무엇이? 몇 곡의 예를 보자.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보자. 이 곡은 3개의 악장으로 이뤄져 있는 전통적인 협주곡 양식이나 그는 애초에 외형적 효과를 노린 협주곡을 쓰려던 것은 아니었다. 이 곡은 환상곡에서 시작한 것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색채감이 풍성한 낭만성을 지니고 있다. 음악세계사의 슈만편에서 보면 이 곡은 "베토벤의 4번 피아노 협주곡의 방향으로 낭만화를 진행시킨 협주곡" 이라 하고 있는데 베토벤의 3번과 5번의 사이에 있는 그 협주곡의 특성을 보면 어느정도 수긍 가능하다. 1악장, 강렬한 피아노의 타건에 이어 목관(ob.)이 부드러우면서도 조심스럽게 시작을 알린다. 목관의 따스함(Clar.)과 피아노의 중립성은 이 곡의 전반부에서 어울리지만 양립한다. 마치 서로를 옭아매듯 그렇게 밝음과 어두움을 나눈다. 이들은 서로의 극한을 넘는 법은 없다. 

 

슈만의 바이올린 소나타(2번 Op.121)는 어떤가? 1악장의 강렬함과 3악장의 서정은 극을 이루어 대립하고 4악장의 화려함은 슈만의 한 생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당시에 과연 이 곡이 환영받았을지 의문이지만 그의 부인 클라라, 요하임과 리스트는 호평을 남겼다. 음악세계 슈만 편에서 시피타는 이 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는 문장이 나온다. "괴로운 감정 없이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우울한 파토스적 작품"

 

 

 슈만의 음악은 오래전부터 해석이 불가능했다. 분노와 신비와 감정에 넘치는 <크라이슬레리아나>를 해석할 수 있는가? 슈만 음악의 위대한 연주자들은 그것을 '해석' 하지 않는 이들이다. 말하려, 표현하려, 의미를 두려 하지 않는 이들이다. 그들은 슈만이 자신을 해석하도록 자신을 내맡긴다. 다짐도, 비장한 효과도, 의도도, 표현도 없이. 그들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잃어버린 미지의 언어를 배우듯이 슈만을 연주한다. <어린이 정경> 제 1곡의 <낯선 사람들>처럼 낯설고 이국적이다. 그 연작의 기초가 되는 주제는 변조된 고통의 모티브다. 혹은 뜻밖의 불협화음, 절분법으로 귀착되는 긴앞꾸밈음이다. 타격 입은, 하지만 유일하게 대위법적인 전개에서 나온 화음으로 이루어진 그런 경계라고나 할까. <새벽의 노래> 곧 노래에 대한 향수를 읊는 노래가 그런 것이다. 

 

미셀 슈나이더, <슈만, 내면의 풍경> p.55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슈만의 피아노 독주곡에서 그의 특성을 많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환상 소곡집 (Op. 12), 교향적 연습곡(Op.13), 어린이 정경 (Op.13), 그리고 E.T.A 호프만의 작품과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크레이슬레리아나 (Op.16) 등. 어쩌면 그의 내면의 조각이 가장 잘 드러난 장르는 이 피아노 독주곡이 아닐까 하는데 때로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이며 인간의 의식 내부를 날카롭게 묘사해내는 부분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후 현대까지 많은 작곡가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의식 너머의 세계, 그 환상성을 슈만은 그 자신의 내면에서 찾고 드러냈다. 그것은 바로크, 로코코와는 분명 다른 지점이며 색채이고, 음영이다.

 

 

 

 

 프란시스코 고야 - Majas on a Balcony

 

 

때로 슈만의 음악을 들을때 고야의 그림이 눈 앞에 지나가는 것을 본다. 그리고 묻는다. 앞의 두 여인과 뒤의 남자는 무엇인가? 빛과 어두움의 경계는 무엇인가? 과연 누가 앞이고 누가 뒤인가? 얼굴을 가린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누구인가? 미셀 푸코가 "광기의 힘은 타락의 최종지점이 최초의 아침이고 황혼이 가장 싱싱한 빛으로 마감되며 종말이 재시작이라는 인간의 그 야릇한 비밀을 표명하는 것" 이라는 언뜻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를 하는 것처럼.

 

 

 

Schumann vn. sonata No.2 3rd mov. 

 

 

슈만이 라인강에 몸을 던지려 했던 그 내면의 순간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생의 마지막 2년 동안 그의 마음에는 과연 무엇이 자리하고 있었을까? 그의 음악은 무엇일까? 양립성? 그럼에도 그 극한을 넘지 못하는 한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인간 기저의 무한과 유한성? ... 그럼에도 답은 찾을 수 없다. 그저 눈과 귀를 닫고 짧은 생각으로 그 조각에 대해서 유추할 뿐.

 

 

 

 

우리는 하나의 징후다, 더는 아무 의미도

 

더는 아무 고뇌도 아니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는

 

거의 잃어버렸다

 

낯선 땅에서 언어를. 

 

   횔덜린,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 짧게 나마 이 책 <슈만, 내면의 풍경> 과 몇 음반에 대해 덧붙이면.

 

당연하겠지만 작가(미셀 슈나이더)는 슈만의 음악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읽다보면 슈만의 곡을 연주하면서 얻은 감정까지도 드러내고 있는데, 그로 인해 더 깊게 슈만 내면의 단면을 묘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횔덜린의 시구를 일곱 개 장의 제목으로 삼은 에세이로 횔덜린과의 연관성에 중심을 두었고, 그럼으로 슈만 내면의 극점에 다다르고자 한 책이다. 여러 구절에서 저자의 눈이 매우 반짝이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기 위해 매우 많은 노력을 들였다는 생각이 든다. 슈만의 곡이 주는 난해함과 필시 저자가 문장마다 숨겼을 감지하기 어려운 시선들. 꼼꼼한 역자 덕분에 그 시선들을 조금이나마 가까이할 수 있었다. 후기 가운데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는데 이 책에 나오는 곡을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터의 연주로 접했다는 것이었다. 과연 어땠을까? 그 강렬하고 직설적이며 먼지가 이는 듯한 날것의 느낌을 받았을까? 아니면 약간 어두운 조명아래 충실한 작곡가의 내밀하며 다양한 내면의 조각을 전달하는 리히터의 모습을 보았을까?   

 

살펴보면 슈만의 음반은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그리고 가곡까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음반으로 나오는 것 같다. 낱장도 좋고, 요즘같이 박스반이 넘쳐나는 세상엔 독주곡과 가곡의 전집을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독주곡과 가곡집을 염두해 두고 있다면 다음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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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6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6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젠 내가 겁이 많아진 것도

자꾸만 의기소침해지는 것도

 

나보다 따뜻한 사람을 만나서

기대는 법을 알기 때문이야

 

또 말이 많아진 것도

그러다 금새 우울해지는 것도

 

나보다 행복한 사람을 만나서

나의 슬픔을 알기 때문이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의 품이 포근하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사랑을 나눠줄 만큼 행복한 사람이 되면

 

그대에게 제일 먼저 자랑할 거에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의 품이 포근하게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사랑을 나눠줄 만큼 행복한 사람이 되면

 

그대에게 제일 먼저 자랑할 거에요

 

 

 

 

 

 

 

 

 

참 많은 말을 하고 살아왔지.

차가운 말과 장황한 말들.

 

까닭 모를 눈물 두 방울.

자취를 따라 지나가는 생각 두 줄기.

 

조용한 방을 채우는 고요.

깊은 곳에 닿는 뭉툭한 시간.

 

내가 다른 무엇이 되는 때.

그 바람이 수줍기를. 의미 있기를.

 

바람이 분다.

거친 말이 흩어진다. 흩어진 재는 내게 닿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달, 십일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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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11-2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나의 모습을 계속 발견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나의 세계가 확장되어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곽진언이라는 이름을 Nussbaum님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네요. 노래도 들어보았고요.
오늘 글의 키워드는 ˝말˝인가요? 노래 가사에서도, 아래 Nussbaum님 글에서도 그 글자가 눈에 특별히 들어와서요.
노래 제목이 자랑. 자랑하고 싶은 누군가를 가졌는가...저 자신에게도 물어보았는데.. ㅠㅠ

Nussbaum 2014-11-23 00:00   좋아요 0 | URL
네. 슈퍼스타k 가 올해 6번째인데 어제 밤에 결승에 올라 우승을 한, 곽진언 이라는 사람의 경연 마지막 노래입니다. 가사가 참 좋더라고요.

이름하여 슈퍼스타k6를 첫 주 방송부터 빼놓지 않고 봤는데 무엇보다 노랫말이 좋아 마음속으로 응원하던 참가자였었지요.

hnine님 말하신 것 생각하니, 오늘 별반 볼 것 없이 남긴 페잎은 어쩌면 ˝말˝ 에 관한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이 듭니다. 언젠가 길고 길게 썼던 페잎이며, 많은 사람에게 했던 길고 길게 했던 말에서 남은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요새는 참 많이 듭니다.

그래서일지 이 공간에서 자꾸 말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대신 희안하게도 생각은 더 늘은 듯 싶어요. 오늘 가만히 자리에 앉아 책장을 보면서 그 깊은 뜻을 알 수는 없겠으나, 파스칼 키냐르가 남긴 책들의 심연에 한 발 더 들어가는 느낌. 아 이런거구나 하고 짧게 혼자 속삭였습니다.

언젠가 많은 말들과 많은 생각의 접점이 만족스러워질 때, 그 때가 오면 누군가에게 더 따뜻하게 자랑하듯 이 자리에 뭔가를 남기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눈물이 잠시 뺨을 타고 흐르는 짧은 시간에 그 시간을 아주 오랫동안 담을 수 있는 자취의 생각들, 조용한 마음의 방을 채우는 고요와 고요의 깊은 곳을 닿은 조금은 뭉툭해진 시간을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별반 새로울 것 없겠으나 아주 작고 조용하게 뭔가 다른 것을 느끼고 이해할 때까지는 아마도 당분간은 말을 아끼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