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은 유연한 생각을 하기 좋은 달. 


집중하긴 힘들지만 잠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갖기 좋은 시간. 


그런 자신의 눈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걸러내는 온도.


정해진 시간표에서 잠시 벗어나는 날의 모음


빗겨난, 빗겨있던 것들이 다시 태어나는 달. 




* *


여름이 산 정상에 섰다. 


동티모르 피베리 커피를 한 잔. 


유연한 밤. 빗겨있던 것들이 잠시 꿈틀. 













커피 : 사랑한다. 



* * *






I don't get many things right the first time,
In fact, I am told that a lot
Now I know all the wrong turns the stumbles,
And falls brought me here
And where was I before the day
That I first saw your lovely face,
Now I see it every day

And I know
That I am, I am, I am, the luckiest
What if I had been born fifty years before you
In a house on the street
Where you lived
Maybe I'd be outside as you passed on your bike. Would I know?
And in a wide sea of eyes
I see one pair that I recognize
And I know
That I am, I am, I am, the luckiest
I love you more then have
Ever found the way to say
To you
Next door there's an old man who lived to his nineties and one day
Passed away in his sleep,
And his wife, she stayed for a couple of days, and passed away
I'm sorry I know that's a strange way to tell you that I know we belong,
That I know
That I am, I am, I am, the luckiest





* * * *



빛 : 너무 밝은 빛 보다는 커튼을 통해 살며시 들어오는 빛


문득 우리는, 지구상에 있는 사람만큼이나 빛에 대한 많은 태도를 갖고 있는지 모른다. 는 생각.







약간은 숨어져 있는 빛




그리고, 까만 어두움.





시간 : 시간은 우리를 3차원 너머로 인도한다. 


모든 사람에게 시간은 같지 않다. 




브라운, 그레이아워스, 몬데인, 스와치 










그리고 아르네 야콥슨






노트 : 매일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공간과 시간을 걷는다.


나를 객관적일 수 있게 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통로.


0-check, 로디아, 몰스킨, 하네뮬레








안경 : 시력 디옵터 7 


아마도 이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아이씨베를린 - 나단, 옥토버 / 린드버그 - Nussbaum x 2










 수잔 로우리 : 집안 곳곳에서 


나에게 응원의 목소리


조용히, 소리내지 않고.









* * * * *


그리고, 사진 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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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3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8-03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9-08-03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커피, 사랑한다,에 심쿵. 저도 너무 사랑해서 100% 공감합니다. 청량한 페이퍼네요. 노트 등에 붙이신 라이언이 귀여워 웃고 갑니다.^^

Nussbaum 2019-08-03 09:41   좋아요 0 | URL
blanca님 참 오랜만입니다.

여름은 잘 지내고 계실지, 따님도 잘 크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아주 오래 전 전철에서 이동이 어렵다는 페이퍼가 생각납니다. 지금쯤 많이 커서 대화도 잘 하고, 같이 알콩달콩 지내고 있겠지요.

제가 사는 지역에 스벅 리저브 매장이 생겼는데, 밖에서 구경만 하다 들어가 보았네요. 아주 오랜만에 핸드드립으로 마셨는데, 맛이 좋았습니다. 2019 한여름의 기억으로 남을만해요.

노트에 붙인 라이언이 작게나마 웃음을 드렸다니 저도 아침에 좀 웃고 갑니다. ^^

 







예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어떤 아름다운 음악가, 한 마리의 우아한 말, 어떤 장엄한 풍경, 심지어 지옥처럼 웅장한 공포 앞에서 완전히 손들어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예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이다. 그와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다. 우정은 함께 예찬하는 가운데서만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한계, 모자람, 왜소함은 눈앞으로 밀어닥치는 숭고함 속에서 치유될 수 있다.

 



미셀 투르니에 <예찬> 서문 중에서.













아무렇게나 반바지를 입고 아무렇게나 반팔을 입었던 꼬마는 집에가는 길 소나기를 만났다. 아주 짧게.  


비가 그친 하늘을 보았을 때 펼쳐진 구름의 모습에 걸음을 멈췄고 여름을 사랑하게 되었다. 


늘 어디론가 쫒기듯 살았고, 늘 어디론가 향해 가야 한다 믿었던 그는 여름이 싫어졌다.  꽤 오랫동안.


많은 것을 내려놓고, 많은 것에 감사하고, 또 많은 것과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많은 것을 비워내니


구름은 눈 앞에 있었고, 어느새 여름이 다시 좋아졌다. 문득.










라비니아 마이어((Lavinia Meijer) 


두 살 때 오빠와 함께 네덜란드 입양. 그녀의 연주에는 슬픔보다는 기쁨이 더 많이 묻어난다. 


삶의 예찬같은. 떠가는 구름 같은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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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7-29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름을 좋아할 날이 오길 기다리며 음악 듣는데, 어쩜 소리가 저렇게 청량한지요.

Nussbaum 2019-07-29 17:18   좋아요 0 | URL
음반으로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오랜만에 다시 들으니 또 다르게 들리니 신기해요.
기사를 검색해보니 내한 공연을 했고, 낳아준 부모님을 만나고 돌아갔다는 말에 그녀의 연주가 조금 더 기쁨의 색채로 들리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힘들어하는 hnine님을 보면 얼른 이 더위가 가야겠지만, 낮에 잠깐 밖에 나가면 그 열기에 왜이리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겠습니다. 요즘은 여름이 좀 귀여워 보여요.

수연 2019-07-29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올려주시는 음악 모두 좋아요. 저는 살찌기 전에는 여름 좋아했는데 살찌고나니 여름이 좀 싫어지네요. 그리고 오늘 포스팅하신 내용은 마리아 칼라스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랑 겹쳐서 더 눈에 들어와요.

Nussbaum 2019-07-29 17:27   좋아요 0 | URL
또 마리아칼라스 기사 검색을 해보니 마리아 칼라스 관련 영화가 나오나 봅니다. 왠지 보셨을 듯 싶고, 거기에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좀 기다렸다가 한 번 봐야겠어요.

방학이라 저도 방학을 맞아 뭔가 하는 듯 안하는 듯 있는데, 이번 방학을 보내고 있는 시간이 제일 마음에 듭니다. ^^

내것을 많이 내주어야 하는 직업이니 또 열심히 채워놔야겠어요. 음악이 마음에 들으셨다니 저도 좋습니다. 그나저나 비긴어게인 3 잘 보고 계시지요? ㅎ 어제 챙겨 봤습니다.

희선 2019-07-30 0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름에 나타나는 구름을 참 좋았는데 언제부턴가 그런 구름을 볼 수 없게 됐어요 지구가 이상해져서... 어제는 구름이 뜬 것 같더군요 잘 못 봤지만, 넓게 본 건 아니지만 잠시 파란하늘을 봐서 기분 좋았습니다 지난주에 온 비 때문에 피해를 입은 곳도 있을 텐데, 자연은 그런 데는 아무 관심 없네요


희선

Nussbaum 2019-07-30 10:55   좋아요 0 | URL
저는 이상하게 작년과 올해를 자꾸 비교하게 됩니다. 작년에는 참 더웠고, 또 더웠던 기억 밖에 없어서 주위 사람들이 덥다하면 그래도 작년보단 덜 덥지 않냐고 되묻곤 해요.

지금 살고 있는 곳이 높은 층이어서 창문을 열고 옆을 보기만 하면 저런 구름이 보여서 참 좋습니다. 올해는 이런 구름이 좀 많아졌음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반가워요 희선님 !!
 



*



<약속해줘, 구름아> 박정대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신다. 담배를 피운다. 삶이라는 직업

커피나무가 자라고 담배 연기가 퍼지고 수염이 자란다. 흘러가는 구름 나는 그대의 숨결을 채집해 공책 갈피에 넣어둔다. 삶이라는 직업 

이렇게 피가 순해진 날이면 바르셀로나로 가고 싶어. 바르셀로나의 공기 속에는 소량의 헤로인이 포함되어 있다는데, 그걸 마시면 나는 76초의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삶이라는 직업 

약속해줘 부주키 연주자여, 내가 지중해의 푸른 물결로 출렁일 때까지, 약속해줘 레베티의 가수여, 내가 커피를 마시고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우고 한 장의 구름으로 저 허공에 가볍게 흐를 때까지는 내 삶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 *


 

한 시인의 시집을 읽다 생각했다. 회사에서의 일과 일상의 일이 뒤바뀌어 일상의 삶이 직업이 되면 어떨까 하고.

 

처음에는 마냥 좋아하다가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 나름의 또 어려움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흐르게 된다.

 

그러다 잠깐 자신의 서재를 막장이라 표현한 김훈의 인터뷰를 떠올리며 나는 어떤 도구를 갖고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지금 집으로 이사 오면서 꽤 많은 것들을 버렸지만 견물생심과 합리화를 통해 열심히 물건을 채워가고 있는데, 과연 그것들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좀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 * * 



꽃 : 올 봄 집 옆에 핀 벚꽃. 

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바람 : 바람이 물건이 될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모든 종류의 바람을 좋아한다. 










노을 : 저녁 6시에서 7시 사이의 시간.

노을을 볼 때는 아주 향긋한 냄새가 나는 어린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나무 : 나무로 된 모든 것을 사랑하며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책상, 스피커, 앰프, 각종 그림도구 거의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전주 최명희 문학관에서>












바다 : 바다를 꽤 좋아한다. 

만일 일년에 한 번만 여행할 수 있다면 반드시 바다로. 


<며칠 전 바다에 다녀온 바다> 









만년필 : 10년 동안 써온 만년필 두 개와 최근에 새로 산 만년필 하나.


왼쪽부터 라미 cp1 / 라미 사파리 라임 / 라미 2000.


만년필의 가장 큰 장점은 생각을 노트에 적을 때 가장 빨리 전달할 수 있는 도구라는 점에 있다.

마치 노트에 원래 생각이 적혀 있었다는 듯 적혀진다. 이것은 마법과 같아서 다른 도구로는 전혀 되지 않는 것.

써두었던 노트를 다시 읽을 때도 만년필로 적었던 글이 가장 만족스럽다. 




그리고.. 몽블랑. <마에스터스튁 르 쁘띠 프린스 솔리테어 듀에> 라는 긴 이름을 가진 만년필.










턴테이블 : 레가 RP6

스피커 : PROAC

앰프 : 온쿄 / 그람슬리


엘피로 듣는 음악, 확실히 덜 피곤하다.  










선풍기 : 발뮤다 그린팬 S

무선으로 사용 가능하며 쓸데 없는 버튼이나 장식이 없다. 

바람이 황당하게 작게 분다고 생각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자연스러운 바람이 온다는 생각. 








감자칩 : 감자의 그 맹한 맛이 좋다. 

고구마의 그 달달함이 끌리지 않아 과자는 거의 감자칩만 먹게 된다.







라디오 : 세상의 모든 음악


오프닝멘트를 매일 노트에 적고 있는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을 듣고 있으면 라디오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진행자의 멘트와 음악, 그리고 깊은 사유의 결과물까지 많은 것들이 들어 있는 프로그램.








카메라 : 소니 RX1RM2


언젠가 사진을 찍어 나중에 그림을 그리려 확대해 보니 정확한 색감과 형태를 알 수 없었다. 

스냅사진을 주로 찍어서 가볍고, 렌즈 교환이 필요하지 않은 작은 카메라가 필요함. 에 의한 심한 합리화 






* * * *



언젠가 라디오에서 먼 길 떠나는 사람들의 배낭 무게가 그 사람이 짊고 사는 인생의 무게라는

말을 들었다당장 내 주위를 둘러보면 짐이 참 많은 걸 보면서 내 인생의 무게가 꽤 많이 나간다는 생각에 잠시 측은해지기도.

 

"당신이 무엇을 ... 말하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줄게요시리즈가 참 많다따지고 보면 아무 것이나 다 붙여도 이 무엇이 시리즈는 완성할 수 있다무엇을 먹는지무슨 책을 읽는지쉬는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무엇을 취미로 하는지 등등.

 

요새 내 살아온 날을 돌아보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정의해보려 하고 있는데 내가 쓰고 있는 물건들이 곧 나의 삶의 대변인이 아닐까 싶었다물건 그 자체뿐만 아니라 물건을 사용하는 태도와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도 포함해서.







* * * * * 


이 카테고리 <물건> 시리즈는 계속 이어집니다.


음악은 세상의 모든 음악을 통해 만났던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의 <가을이 오면>


덥고 습하지만 약 보름 후면 말복이네요. 


말복이 지나면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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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7-26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우리 나라 가요 <가을이 오면>이네요.
더운 날 선곡으로 정말 멋집니다.
이 <물건> 카테고리 좋아요. 저도 생각해본 적 있는 카테고리인데, 언제부터 만들어만 놓고 빈 카테고리로 있는지 꽤 되었네요.

Nussbaum 2019-07-26 22:10   좋아요 0 | URL
에어컨 켜놓고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청소하고, 책 읽고, 맛있는 거 해 먹고 하다보니 밖의 세상이 어떤지 몰랐습니다. 잠깐 쓰레기 버리러 나갔는데 너무 덥더군요 ㅎ

이런날 어디선가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이 주어지길 기원했습니다. 우리나라 가요들을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가 편곡해서 연주한 곡인데, 처음에 라디오에서 듣고 참 좋아서 앨범도 구입했습니다. 원곡과는 조금 다른 감성도 좋고, 비슷한 감성도 좋고 그랬는데 LP를 구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쉽기도 합니다.

저도 이 카테고리에는 참 오랜만이어요. 계속 여기에 물건에 대해 써야지 했는데 그간 버리고 사고, 버리고 사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버릴거 이젠 거의 버려서 이 카테고리에 정리된 물건들을 나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뭔가 집중할 수 있을 때, 한 2주 정도 물건들 좀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요 ^^

그나저나 hnine님. 몸 안좋으신 거라면 얼른 나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2019-07-27 0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7 1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연 2019-07-27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도 음악도 이 여름방학을 더디게 만들어주네요.

Nussbaum 2019-07-27 23:25   좋아요 0 | URL
움.. 그런가요?? ㅎ

여름방학이라니.. 어떻게 아셨지 ㅎ 하는 마음에 흠칫하다가 아! 수연님 여름방학인가? 하고 괜히 웃음지어 봅니다.

여름방학 잘 즐겨보시지요 !!

2019-07-27 1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27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





꽤 오래 전 일이다. 국일미디어에서 나온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리뷰를 서재에 올린 적이 있었다. "읽다가 지치면 다른 책과 함께 읽는다" 고 했는데 어떤 분이 프루스트의 소설은 다른 책과 함께 읽히기를 거부한다. 라고 댓글을 남겼다.

 

그때도 그러했지만 지금도 나는 그 분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방을 코르크로 막아 모든 소음을 차단한 채 썼다는 프루스트의 소설은 어떻게 보면 단독으로만 읽어야 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에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는 프루스트의 소설은 닫힌 텍스트가 아니다. 다른 책을 읽으면서, 음악을 들으면서, 영화를 보면서, 시를 읽으면서 살아가며 어떤 추억을 떠올리면서, 다른 이와 대화를 하면서 끊임없이 떠올리는 어떤 대상이다. 프루스트가 남긴 소설의 진정한 의미는 그 텍스트를 읽는 사람이 각자 자신의 기억의 시간과 공간을 새롭게 정의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풍부한 인간적 삶을 살아가는 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시 읽으면서 꽤, 자주 숨이 막혔다. 프루스트가 남긴 텍스트를 따라가다 감정이 폭발할 것 같아 잠시 책을 덮어야했다. 오래 전 이 소설을 읽으며 어렴풋했던 것이 좀 더 명료해졌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소설이며 인간의 감각이 과연 얼마큼의 깊이와 넓이를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명료한 증명이라는 것.

 

여전히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 얘기하려는 두 단어. 시간과 공간.

 

 

 




* *




 

이 끔찍한 만연체를 읽다보면 처음에 그가 묘사하려고, 또는 서술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애매모호할 때가 많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비연속적인 시간과 실재 차원을 넘어선 공간의 개념으로 기억을 재생하고 사건을 서술하기 때문일 것이다.

 

프루스트의 소설에는 아주 긴 시간과 폭 넓은 공간이 존재한다. 그 불연속적인 시간과 두서없는 공간에 들어서면 우리는 낯설지만 낯익은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고 일상의 아주 작은 사건들이 만들어낸 무수한 감각들을 다시 불러와 삶의 새로운 기억으로 내면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간 속 기억의 단편들은 또 다른 의미가 되며 그 자체로 살아가게 된다.

 

안심. 요즘 다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 프루스트를 다시 읽으면서 20-30대 그를 만났던 내가 이 소설에서 그리 빗겨나지 않았음을 느낀다. 그의 소설이 묘사하는 바는, 우리가 점유하며 살고 있는 실제공간의 묘사가 아니며 3차원이라는 공간 너머에 존재할지도 모를 시간에 대한 것이라고.

 

그가 펼쳐놓은 공간은 어떤 실재하는 것에 대한 묘사의 촘촘한 공간보다는 그를 넘어서는 의미의 공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 누군가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도 아닌 만남과 잠시의 이별. 작은 손짓이나, 눈의 깜빡임 같은 것이지만 사실 그것 자체보다는 그 작은 행동에 담긴 무수한 감정과 의미,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전혀 새로운 감각을 담아내는 공간이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한 구절을 읽어보자.

 

오늘날 어떤 작가가 자신과 구별되지 않아 별 가치도 없어 보이는 그런 자기만의 몽상들로 채워진 작품을 두고 출판업자가 그 몽상에 비해 지나치게 좋은 종이를 고르거나 지나치게 아름다운 활자를 택하는 걸 보고는 겁을 내듯이, 글을 쓰고 싶은 내 욕망이 아버지로 하여금 그토록 많은 친절을 베풀게 할 만큼 중요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더욱이 변하지 않을 내 취미와 내 삶을 행복하게 해 줄 것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아버지는 두 가지 무서운 의혹을 내 마음속에 심어 넣었다. 첫 번째는 내 삶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게다가 뒤이어 올 삶도 지나온 삶과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는 의혹이었다. 두 번째는 사실을 말하자면 첫 번째 의혹의 또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가 '시간' 밖에 있지 않고 소설 속 인물처럼 시간의 법칙에 종속된다는 점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콩브레에서 덮개 달린 버드나무 의자 깊숙이에서 그 인물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을 때, 인물들이 그토록 날 슬픔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이론적으로 우리는 지구가 회전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실제로는 깨닫지 못하며, 우리가 걷는 땅도 움직이지 않는 듯 느끼며 그래서 편안히 살아간다. 삶의 '시간'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려고 소설가는 시곗바늘의 움직임을 미칠 듯이 가속화하여 독자로 하여금 이 초 동안 십년이나 이십 년, 삼십 년을 뛰어넘게 한다. 페이지 첫머리에서 우리는 희망으로 가득한 연인과 헤어졌지만, 다음 페이지 끝에 가면 양로원 안뜰에서 일상의 산책을 힘겹게 마치고 과거를 망각한 채 사람들이 건네는 말에 겨우 대답하는 여든 살 연인과 만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p.104



 

프루스트가 무수히 깔아놓은 감정의 미로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로는 매우 촘촘하며 너무나 실제적이어서, 때로는 전혀 실제적이지 않아서. 그러나 그 숨막히는 감정의 묘사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면 어느새 우리는 세상 저편에서 다른 차원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우리는 소설을 읽을 때 어떤 스토리가 있을 것이며 스토리라는 뼈대를 지탱하는 다양한 인물과 사건이 존재할 것으로 인식하며 마주하게 된다. 또한 이야기의 흐름에서 생겨나는 사건과 좀 더 치밀한 플롯이라는 장치도 기대하며 읽을 것이다. 여기에서 잠시 E. M. 포스터의 말을 빌려보면.




이야기를 시간의 연속에 따라 정리된 사건의 서술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플롯 역시 사건의 서술이지만 인과 관계를 강조하는 서술이다. 플롯은 지력과 기억력을 함께 요구한다. p.96

 

우리는 프루스트의 실제적인 음악 묘사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문학에서 리듬을 사용하고 리듬이 조성해야 하는 효과와 본질적으로 흡사한 무엇, 즉 음악적인 소절을 사용했다는 것을 우리는 찬양해야 한다. p.181

 

짧은 소절은 마치 그것을 작곡한 사람의 생활과 관련이 없듯이 청중의 생활과도 관련이 없는 자신의 생활을 갖고 있다. <이것은 거의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다> 하는 말은 그것의 힘이 프루스트의 작품을 내부에서부터 한데 얽어매는 데로의 지향이며 미를 이룩하고 독자들의 기억을 즐겁게 만드는 데로의 지향이라는 말이다. 때로는 이 짧은 소절이 처음에는 그것이 침울하게 시작하여 소나타를 지나 6중주곡에 흘러들도록 독자에게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이것이 독자에게 아무 의미도 주지 못하여 잊어버리게 될 때도 있는데 이것이 소절에서는 리듬의 역할인 것 같다. 이것이 패턴처럼 항상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귀염성 있게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우리에게 놀라움과 신선함과 희망을 채워 준다. 182

 

E. M. 포스터는 스토리, 인물, 플롯 환상, 예언, 리듬과 같은 소설의 다양한 요소를 서술하면서 프루스트의 텍스트에서 리듬에 주목했다. 내게는 어떤 뚜렷한 사건과 그로 인한 작가의 의지가 아니라 때로는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환기에 이 작품의 뛰어남이 있다고 들린다.

 

잠시 프루스트가 살았던 시대를 다시 한 번 간략히 둘러보자. 산업혁명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사람들은 다양한 변화에서 혼란과 기대를 동시에 갖고 세상을 바라보던 시기였다. 그가 살았던 프랑스에서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화가를 대입해본다면 1871-1922 클로드 모네(1840-1920), 르누아르(1841-1919) 로 대표하는 인상주의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이 갖고 있는 고유색을 부정하고 우리에게 보여지는 '빛의 순간성을 집중탐구하려했던 화가들이다. 또한 이 시기는 로베르 드마시, 오스카 레일렌더, 피치 로빈슨 등의 사진가들이 일명 "회화주의 사진"을 추구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한편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프랑스에서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프랑스 작곡가들의 실내악과 교향곡을 장려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고 이 가운데 세자르 프랑크(1822-1890)가 순환형식(forme cyclique) - 공통의 주제적 소재를 통해서 각 악장을 사슬처럼 엮으면서 전개시켜가는 기법 으로 주목을 받던 시기였다.

 

인상주의자들이 사진의 등장과 그간 자신들이 끊임없이 재현하려 했던 것들의 가치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점에 위기를 느끼고 빛의 집요한 탐구와 과학적 지적인 시도를 통해 회화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고 있었고 이는 어떤 물체는 어떤 색을 갖고 있다는 고유색의 개념을 부정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물체의 색을 담아내려 했다. 그러기에 그들은 캔버스를 들고 야외로 나가 작업을 시도했으며, 그 시간과 공간의 순간성으로 인해 빠른 붓질를 할 수 밖에 없었으라. 스티글리츠가 등장하기 전, 회화주의 사진은 다양한 화면처리를 통해 우리가 그림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인물과 풍경 그리고 사물들을 탐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뚜렷한 선적 표현보다 부유하는 듯 동적 표현으로 섬세한 감각으로 눈을 깨우고 있는 프랑크, 생상스, 포레의 음악들이 문화를 주도하고 있던 시기였다.

 

 

   

      

 





프루스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다양한 문화적 내용들을 살펴볼 때 그가 이 시대의 영향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회화나 음악과 함께 시대를 흐르고 있던 다양한 문화적 흐름들을 내면화 하고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가 느낀 다채로운 감각을 함께 느껴보라는 말을 전한다. 그 감각을 함께 느끼는 것 뿐 아니라 그동안 너무나 단편적으로 보았던 시간과 공간을 다시 살펴보라고 노래를 부르듯, 시를 읽듯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 * *

 




 

예전 이 소설을 읽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렴풋하지만 프루스트의 소설과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시간과 공간의 집요한 탐구이자 재해석이라는 점에서 어딘가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펼친 책에서 다시 한 번 그 유사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희생> 이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대개 길고 느릿하다. 인물과 배경의 한 장면 한 장면이 하나의 은유로 이루어져 있는 듯 하고, 그 한 장면이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나리만 스카코브가 타르코프키의 영화에 대해 얘기한 부분을 잠시 살펴보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B612출판사, 2012)


 

<프롤로그> 그는 단일한 숏 안에서 '실제 시간'을 재현하기 위해 이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 롱테이크란 영화의 일반적인 편집 속도보다 더 오랫동안 중단되지 않고 이어지는 화면으로, 타르코프스키의 경우 보통 슬로모션과 함께 구사한다. 롱테이크는 닫히기를 거부하며 계속 열린 상태로 남아 지속적인 현장감을 추구한다. 그리하여 관객은 내러티브를 잠시 제쳐 놓고 순수한 형태의 시간을 응시하도록 초대받는다. 말 그래도 '시간 속의 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p.9

 

 

<시간과 공간들> 종래의 영화에서 줄거리가 시-공간적 제어 장치 역할을 하는 반면,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느슨한 내러티브는 시간과 공간 선형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대신 수많은 혼란스러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절대성에서 불안정한 조건부 상태로의 이동이 이루어진다. 타르코프스키는 자신의 미학적 전략을 설명할 때 후자를 전자의 선형적 논리와 대조한다. '나는 피사체의 논리가 아니라 생각, , 기억 등 주관적인 논리를 보여줄 수 있는 몽타주 원칙을 찾고 있다. 또 불필요하게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들을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공간적 불연속과 단절은 사실 우리의 생각, , 기억의 특징이기도 하다. p.22

 

 

<거울의 기억> 문학작품의 참조에 대해서는 다소 진부한 감은 있어도 프루스트의 기념비적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거울>의 담론에 미친 영향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자서전을 주제, 자아, 저자와 같은 견고한 개념을 해체하는 텍스트 생산 행위로 본다는 점에서 이 프랑스 작가를 추종하는 듯하다. 나아가 감독은 자서전이 기존 장르의 경직성을 극복할 수 있는 창조적 행위라고 여긴다. 타르코프스키가 영화를 직고 약 10년 뒤에 <거울>의 시나리오를 고쳐 썼다는 사실은 '끝없는 전주곡'으로 남아야 할 자전적 작업의 특성을 재확인시킨다. p.122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다양한 상징, 은유로 현실의 장면을 건너 뛰며 절대적 시간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할 기회를 준다. 이를 통해 우리의 감각을 다양하게 자극하며 기억이 지니는 다양한 색채로 하나의 회화를 구성한다. 은유와 상상, 기억, 감각들. 이를 통해 인간이라는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프루스트와 궤를 같이 한다.

 

 

 

 

* * * * 





오르한 파묵 <소설과 소설가> p.12

 

내가 앉았던 오렌지색 안락의자, 바로 옆에 놓여 있던 역겨운 냄새가 나는 재떨이, 카펫이 깔린 방, 골목에서 고함지르며 축구하는 아이들, 멀리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가 점차 멀어지고, 내 앞에 새로운 세계가 단어들로 문장들로 열렸습니다. 이 새로운 세계는 책장을 넘길수록 분명해져, 마치 특수 약품을 부을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비밀 그림처럼 서서히 형태가 드러나고, 선 그림자, 사건, 등장인물 들이 명백해지곤 했습니다. 이 순간에 내가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늦추고 사람, 사건, 사물들을 기억하고 상상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나타나면 정말 속상하고 초조해졌습니다. (중략) 이윽고 힘들여 집중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내가 보고자 했던 진짜 커다란 풍경이, 마치 안개가 걷힌 후 커다란 대륙이 선명하게 드러나듯 내 앞에 펼쳐졌지요.

 

소설이 우리에게 삶의 평범한 세부 사항, 환상, 일상의 습관과 사물을 보여 줄수록, 우리는 호기심을 갖고 경탄에 사로잡혀 읽어 나가게 됩니다. 이것들이 배후에 숨어 있는 어떤 의미, 어떤 의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거대하고 광활한 풍경 속 모든 세부적인 것들, 모든 잎사귀와 꽃이 관심을 끌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 뒤에 의미가 감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삼차원적 허구이기에 우리 현대인에게, 다시 말해, 모든 인류에게 강력하게 호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설은 가장 표면에 있는 모습, 그러니까 우리 감각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사적인 경험과 지식에 대해서도 말하지만, 때로는 가장 깊숙이 숨어 있는, 그리니까 중심부에, 삶의 본질에, 톨스토이가 '삶의 의미' 라고 했던 것에, 다다르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그 존재를 낙관하는 그것에 대한 지식, 직관, 실마리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본질과 관련된 가장 심오하고 가장 귀중한 지식에, 철학의 난해함이나 종교의 사회적 압력에 시달리지 않고도, 우리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우리 자신의 이성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평등하며 가장 민주적인 희망입니다.

 


프루스트가 열어놓은 감각적인 미로그가 열어 놓은 감각의 입구는 활짝 열려 있으며 입구의 방향 또한 다양하다단지 몸을 맡기고 그 무수한 갈래의 미로를 탐험하면 된다그 미로에 들어가게 되면 내가 살아왔던 시간과 공간이 그 전과 다름을 느끼게 된다이 미로에는 불편하고 어두움의 영역이 아닌숫자를 다 세기도 어려운 다채로운 색과 구체화할 수 없는 형태를 가진 어떤 감각의 장면들이 펼쳐져 있다그리고 그 감각의 장면들 끝에는 읽는 이 각자의 또 다른 의미의 시간과 공간이 이어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며 시간과 공간이라는 내 나름의 이정표를 세우고 있는 지금, 오르한 파묵이 어느 강연에서 했던 말을 떠오른다. 소설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말하는 "삶의 본질" "의미"에 가장 근접한 작품 중 하나일 것이라 확신한다.

 

 

 

 * * * * *


음악 하나,  낡은 사진 한 장 

시간, 공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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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7-01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설을 읽는 동안에 아주 가끔씩은 특이한 경험을 할 때가 있더라구요. ‘눈‘으로는 소설 속의 주인공과 이야기와 시간과 공간과 분위기를 부지런히 따라가면서 온갖 감각으로 소설 속의 풍경들이나 소리나 냄새까지도 열심히 그려내지만, 정작 또 다른 상상의 공간에서는 끊임없이 ‘내가 지난 날에 직접 경험했던 온갖 댜양한 공간과 시간과 햇살과 바람결과 냄새와 소리와 분위기 등이 아주 생생한 어떤 과거의 기억들‘을 부지런히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 올려 ‘소설 속의 이야기‘와 잠깐씩 대조해 보기도 하고, 일부러 겹쳐 보기도 하는 그런 경험 말입니다.

저는 찰스 디킨스의 몇몇 작품들과 밀란 쿤데라의 여러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와 비슷한 체험을 했던 듯한데(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과 같은 작품에서도 자주 느꼈던 듯하고요.) Nussbaum 님이 쓰신 글을 읽어 보니 프루스트가 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야말로 바로 그러한 체험을 극대화하도록 쓰여진 소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Nussbaum 님의 말씀대로, ‘프루스트가 열어놓은 감각적인 미로‘를 탐험하면서, 내가 살아왔던 시간과 공간이 그 전과 다름을 느껴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그때 마주치게 될 ‘이루 헤아리기도 어려울 만큼 다채로운 색과 형태들‘이 어떤 것인지도 궁금하구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Nussbaum 2019-07-01 22:30   좋아요 1 | URL
방금 oren님께 다른 페이지에서 답글을 달고 왔는데, 또 이어서 달게 되었습니다. ^^

남겨주신 댓글의 첫 단락을 읽자마자 제가 프루스트를 읽으며 하려고 했던 말을 아주 적확히 꿰뚫고 있어 이렇게 답글을 다는 것 조차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꼼꼼히 읽어주셨다는 생각도 들고, 짧지만 핵심적인 내용이 담겨 있어 새삼 놀랍기도 합니다.

약간 쓸 데 없는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프루스트의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지극히 어려운 대상, 또는 숭배의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아무 선입견 없이 개인의 감각을 활짝 열어놓고 그가 펼쳐 놓은 텍스트를 차분히 따라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매 순간 무수한 감각을 가진 ˝인간˝임을 지각하면서 말이지요. 어쩌면 이 말은 20대의 저 스스로의 자기고백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어 다시 한 번 이 소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너비가 만들어 낸 또 다른 제 삶의 장면들이 어떤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집니다. 언젠가 보게 될 수 있을, oren님만의 프루스트 또한 매우 궁금해지고요.

밀린 숙제를 하나 끝냈는데 어제는 괜찮다가 오늘은 약간 허리가 아프네요. 뭔가 쓰면서 약간 긴장을 했나 봅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

희선 2019-07-04 0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은 빨리 읽기보다 천천히 되새기면서 봐야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책을 읽어본 적은 거의 없어요 본래 책을 빨리 못 보기도 하지만... 책을 보다보면 거기 나온 것뿐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것을 떠올리기도 하죠 모든 책이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책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합니다 어딘가로 가면 자신한테 돌아오는 것과 비슷하네요 책도 실제 가 보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기도 하죠 그걸 다 머릿속에 그려내지는 못하지만...

프루스트가 살았던 시대와 사람들 즐겁게 만나세요


희선
 







1. 소설 하나를 읽고 있다. 올해의 목표는 단 하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시 읽기.

 

2. 사진을 찍고 있다. 꽤 좋은 카메라도 샀다.

 

3. 거실에 작업공간을 다시 만들었다.

 

4. 시집을 다시 읽고 있다.

 

5. KBS 클래식 FM <세상의 모든 음악> 오프닝 멘트를 매일 노트에 적고 있다.

 

6. 하루에 8절지 한 장씩 그림을 그리고 있다.

 

7. 아들러와 PDC를 공부+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8. 내게는 벅찬 어려운 기타 곡을 하나 연습하고 있다.

 

9. 낡은 것들과 작별하고 있다. 감사인사와 함께.

 

10. 내가, 내가 되기를 희망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11. 마음을 내려놓고 음반을 다시 들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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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일을 그만두려고 마음먹은 날이 이제 3114일 남았다.

 

내가 나인지도 모른 채 살아왔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하루를 살고 있다. 내 것이 아닌 것들에 욕심의 흔적들을 살펴보고 있다. 욕심에 상처받았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나의 삶의 궤도와 다른 궤도를 가진 사람에게는 작별의 인사를.

 

삶의 단편에서 고뇌하며 멈추어 서 있는, 지난 날 나의 단편들과 마주하며 대화하고, 그들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말해주며 아름다운 말로 위로해준다. 내 삶의 단편들이 살아갈 또 다른 삶의 장면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며.

 

무엇이 되려하기 보다 무엇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의 확장과 시간의 세로축에서 또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하루를 예정하며 배워가는 것. 매일 삶의 장면에서 합리화가 아닌 객관적인 나의 방향을 아주 조금씩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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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페이퍼를 쓰게 된다면 위의 꼭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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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6-23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상 세상 깔끔하네요...

Nussbaum 2019-06-24 12:32   좋아요 0 | URL
ㅎㅎ

늘 열심히 살고 계신, 다락방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지요 ? ^^

hnine 2019-06-24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책상 두개를 붙여놓으셨어요?
이영훈 소품집, 저도 예전에 가지고 있었어요. 아끼던 음반이었는데 지금은 어디있는지도 몰라요 ㅠㅠ
오랜만에 듣네요.

Nussbaum 2019-06-24 12:31   좋아요 0 | URL
hnine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지요?

거실에 TV와 소파가 없다보니 공간이 조금 남아서 책상을 두 개 붙였습니다. 예전에 어디서 누가 쓰던 것을 주워 온 책상이 있었는데 이번에 버리고 새로 샀어요 ^^ 음.. 뭔가 새로운 작업공간이랄까.

이영훈 작곡가는 그간 몰랐는데, 라디오에서 소품집 곡들을 가끔 선곡해서 들려주어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 끌리는 부분이 있는 것이 좋더라고요.

아주 오랜만인데 당분간은 종종 들러야겠습니다. 조만간 hnine님 공간에 들르겠습니다.

희선 2019-06-25 0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하나만 다시 읽기라니 그것도 좋을 듯합니다 하나기는 해도 한권은 아니군요 저는 아직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한번 보려다 말았어요 어려운 기타 곡 연습 즐겁게 하세요 자꾸 하다보면 잘 하겠지요 되풀이하면 느는 것도 있지만 늘지 않는 것도 있는 듯합니다 적당히 해서 그런 건지도...


희선

Nussbaum 2019-06-25 08:32   좋아요 1 | URL
그간 내 것이 아닌 것에 너무 힘을 주고 살아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책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생각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당분간은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조금 이상한 답이긴 하지만 댓글 남긴 내용에는 또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반갑습니다. 희선님 ! 오늘은 희선님 스타일대로 답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



Nussbaum

oren 2019-07-01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KBS 클래식 FM <세상의 모든 음악>은 저도 애청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퇴근이 늦어 오프닝 멘트를 듣지 못할 땐, 새벽 1시에 재방송으로 나오는 걸 가끔씩 듣기도 하고요. 그걸 매일 노트에 적고 계시다니,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Nussbaum 2019-07-01 22:06   좋아요 1 | URL
oren님 오랜만입니다.

오늘 알라딘에 들어와보니, 여기저기서 20년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보면서 나도 그렇게 같이 나이들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이런 시간을 함께 보내고 소통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앞으로도 참 많은 일이 있고, 또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겠지요. 여기서 책과 함께, 책을 읽는 생각과 함께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저녁입니다.

다시 듣기로 듣고 있는데 아침마다 ˝어제는 어떤 얘기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출근하니, 출근길이 그리 힘들지 않는 생각하지 못했던 장점이 있네요 ^^ oren님도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니 저도 더 반가집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