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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미래 - 2013년 제37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애란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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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를 들어 올렸을 때, 빛을 보고 놀라 달아나는 벌레 때처럼 이곳에는 온갖 말들이 바글거린다. 오직 신만이 전부 이해하고 기뻐할 만한 문법들과 시제 그리고 멜로디가 .... 여성과 남성형, 복수와 단수, 수동과 능동, 반말과 높임말 등 각 나라의 고유한 문법이 오선지 역할을 하면, 사람디 낼 수 있는 많은 소리들, 어금닛소리, 헛소리, 입시울소리, 잇소리, 반잇소리와 콧소리, 목소리 등이 음표가 되어 장엄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한다. 거기에 억양이나 손동작, 표정 같은 것이 가미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 다채로운 화음 안에는 도무지 지루한 걸 싫어하는 신의 성격과 남과 똑같은 걸 못 견뎌하는 인간의 의지가 담겨있다.

 

(24-25p)

 

 

 

길을 걷다 보면 꼭 어딘가 이상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멍하니 허공을 보며 이상한 단어를 끊임없이 내뱉는 사람, 전철 이 곳 저 곳을 막 왔다갔다 하면서 횡설수설을 늘어놓는 사람들. 그들을 보는 시선은 어딘가 각이 져 있거나 기울어져 있다. 어쩌면 푸코의 지적처럼 우리가, 사회와 학교, 병원이 그들을 그렇게 정의하는지도 모르겠다.

 

전철을 타면 다들 고개를 떨구고 조그만, 네모진 화면을 열심히 눌러댄다. 그것이 어떤 대답과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말하는 법을 점점 잊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 TV, 신문.. 짧고 간결하게, 몇 개의 그야말로 "충격" 스럽지 않는 것들만 순간적으로 나열하는 단어들을 보면서 점점 우리의 단어가 그렇게 하나로 모아지다 결국 그 규정된 무엇의 테두리 밖에 있는 것들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정상이 아니라고 규정짓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가끔 이상한 말을 끊임없이 되뇌거나, 마치 누가 듣고 있다는 듯 아주 작은 소리로 허공에 무엇을 속삭이는 그 단어들에 귀 기울이게 된다. 무언가 신비한 조합의 단어와 문장을 마주칠 때는 마치 댐에 수십년 동안 갇혀 있던 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쏟아져 거대한 몸집을 하고 나를 덮치는 느낌이다.  

 

 

 

조셉 코수스  <하나와 세 개의 의자> , 1965

 

 

조셉 코수스의 <하나와 세 개의 의자> 라는 작품에는 실제 의자, 사진의 의자, 그리고 글로 적힌 의자가 각자 존재하고 있다. 과연 무엇이 의자인가? 이는 플라톤 이래 "진정한 의미의 실재" 를 찾아 끊임없이 나섰던 수많은 이론과 사상, 미술적 개념에 대한 도전이며 그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정의해온 개념에 대한 회의에 대한 시도이다.

 

미술사에서 입체파가 매우 지적인 시도를 한 이후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추상을 거쳐 그린버그가 자기비판과 자기규정의 형식성으로 규정하여 만들어진 모더니즘의 거대한 덩어리는 당연하게도 그 순수함과 미니멀리즘이라는 사회와 분리된 그 자체만을 위해 존재하는 어떤 것을 낳았으며 한편 그 반대얼굴의 쌍둥이격인 "의도" 라는 개념 또한 낳게 된다.

 

무엇인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관념에 의해 규정한 것을 위한 틀에 무한히 개성을 함몰하였으되 다시 또 그 틀을 벗어나고자 했던 그들의 시도는 짧고 간결하며, 눈만 뜨면 "충격"과 "경악" 을 주는 내용과 인과관계 없는 화면과 글의 사각에 갖혀버려 결국 그 틀을 깨고 나온 비정상적이라고 규정하는 꿈틀대는 단어들과 같지 않을까.

 

 

그는 자신의 두 다리와 귀동냥으로 배운 '중앙어' 에 의지해 고향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별을 보고 방향을 가늠하며 달리다, 걷다, 다시 뛰기를 반복했다. 뒤꿈치가 갈라지고 발톱에서 피가나도 개의치 않았다. 중앙에서는 그를 '마지막 화자' 라 명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획책일지 몰랐다. 

 

...

 

그래도 그는 또 걸었다. 그리고 앞으로 고향사람들을 만나 밤새 이야기할 거리를 생각했다. 정신이 혼미해졌을 땐 어릴 적 자신이 먹고 자란, 아주 달고 시원하며 과즙이 가득 들어 있는 열매를 떠올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거의 몇 달 만에, 갖은 고생을 한 그가 고향에 도착했을 때, 협곡을 지나 산등성이를 넘고, 무성한 덤불을 헤쳐 마침내 마을 입구에 다다랐을 때 .... 그곳에는 먼지바람이 이는 황량한 평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다 잘려, 밑동만 남은 나무들이 처참하게 박혀 있었다.

 

(28-29p)

 

 

 

어디선가 출처없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적절한 양념을 뿌려 가공한 단어와 글, 말이 점점 더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다. 하나의 단어를 익히고, 저마다 그것으로 무수한 많은 문장을 만들고, 또 누군가에게 전해 주던 시대는 이미 먼 얘기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것은 시간을 두고 자연스레 피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공장 컨베이어벨트에서 만들어져 나온 것이다.

 

소근소근 작고, 나긋나긋 밝고, 살랑살랑 귀를 간지르던 그런 감정을 담은 글자들은 구 시대적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함께 그것을 만들어내던 애틋한 생각과, 행동, 나아가 사람의 관계 또한 촌스러운 것이 되어 부끄러운 것이 되어가고 있다. 소중하다고 여긴 많은 것들이 버려야 할 것들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길에 굴러다니는 돌, 풀, 하늘, 바람, 이름 모를 벌레들, 밤새 몰래 내리는 비... 저마다 다른 무엇이듯, 각자의 생각은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 그 생각이 만들어 낸 단어, 문장, 글. 나는 너무나 쉽고 빠르게 그것을 누군가 정해 놓은 단어, 생각으로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기에 비정상이되, 어딘가에서 울리는 태곳적 글과 웅얼거림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나무에 그려지고 돌에 새겨지며 태어났다. 내 첫 이름은 '오해' 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나를 점점 '이해'로 만들어주었다. 나는 내 이름이었거나 내 이름의 일부였을지 모르는 그 단어를 좋아했다. 나는 복잡한 문법 안에 담긴 단순한 사랑, 단수이자 복수, 시원이자 결말, 거의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노래였다. 하루치 목숨으로 태어나 잠시 동안 전생을 굽어보는 말이었다. 내 몸은 점점 불어났다. 내 이름은 길어졌다. 오랜 시간이 흘러 누구도 한 번에 부를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하지만 이 순간, 나는 그게 어떤 세계에서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33p)

 

 

작가는 빠르게 변해가고, 그렇지만 점점 더 삶과 멀어지는 글자들을 보면서 누군가 곰살맞게 해주는 얘기를 떠올리면서 이 작품을 써 내려갔는지도 모르겠다.  태곳적에서 터져나오는 약간 정신나간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는 이 시대에서 그것을 바로 보고, 그것에 대한 고민를 꺼내 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짧은 단편의 행간에서 무수한 물음표을 보았다. 아주 먼 곳의 기억, 말과 글. 그리고 그것으로 이루어지는, 문학의. 그리고 각자의 삶의. 그리고 나는 그 곳 어딘가에 서 있는가 하는 고민의 흔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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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주위가 조금씩 시끄러워질 무렵 잘 쌓아 올렸던 담이 시간의 흐름에 의해 조금씩 무너지는 것처럼, 어디서인지 모를 얕고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는 것처럼, 입춘이 지나고 또 몇날이 지나고 나니 졸업이 다가왔다.

 

전혀 고급스럽다고 할 수 없는. 적나라한 빨강색의 점퍼를 입은, 아직 안경을 쓰지 않았던 영효는 아무도 오지 않는 졸업을 지금은 도무지 어디에 두었는지 그것이 이 세상에 존재했었는지 모를 학교에서 준 상장과 부상이었던 작은 국어사전과 함께 맞았다.  

 

마룻바닥은 조금 더 차갑게 느껴졌고, 교실의 창틀, 늘 앞만 보고 있었던 칠판, 헤진 실내화, 학교 건물을 오르내리며 수 없이 걸었던 계단, 점심시간에 숨바꼭질을 하면 늘 뒤로 숨던 나무, 봄의 아찔함을 전해주던 학교 지붕, 여름의 수돗가, 가을의 그네, 겨울의 운동장.. 모두 낯설게 느껴졌다.

 

영효는 졸업이 곧 새로운 시작을 알기엔 어린 나이였다. 그 날은 평소 먹기 어려웠던 몇의 음식과 이제 곧 낯설고, 새롭고, 날선 공기가 교실에 가득한, 기대감보다는 불안함이 가득한 그런 까닭 모를 기운에 조금 힘이 빠지는, 단지 그런 날에 불과했다.

 

햇빛은 창을 통해 들어오고, 낯빛이 조금 하얀 소년의 얼굴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만 존재했고, 누구 하나 선뜻 말거는 이 없어 더욱 고요해 보였다. 영효는 함께 했던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의 졸업을 함께 하기 위해 온 가족들이 모두 빠져 나가고 나서야 조용히, 천천히 학교를 나왔다.

 

-

 

그날은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영효는 그 학교를 다녔던 누군가와 학교를 다시 찾았다. 텅 빈 곳. 점심시간이 되면 그렇게나 땀을 많이 흘리며 곳곳을 다니던 그곳인데 그런 곳은 모두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졸업식에 받았던 작은, 지금은 그 누구도 졸업식에 선물로 주지 않을 사전처럼.

 

밤에도 환히 불을 켜 놓고, 학생들은 공부를 했다. 물론 저마다의 특색이 있어 어떤 학생은 그야말로 책을 잡아먹을 것 처럼 공부를 했고, 어떤 이는 꾸벅꾸벅 졸기도 했으며, 또 누구는 영어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음악을 듣다 혼나기도 했다.

 

학교는 모의고사나 학교에서 보는 시험 성적을 복도에 붙여 놓곤 했다. 올해는 무슨무슨 대학을 몇 명 보내고, 누구는 무엇이 되었으며, 자랑스러운 동문들에 대한 얘기를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얘기하곤 했다. 교실 속 아이들은 다들 잘 다듬어진 잔디 같았다.  

 

졸업식에 늦게 나타났다. 다들 무슨무슨 학교에 합격해서 때론 웃고, 무슨무슨 학교에 합격을 하지 못해서 때론 씁쓸한 얼굴을 했다. 학교의 창문은 그대로인데 왠지, 쓸쓸해 보였다. 그 창문과, 계단은 이제 너희들에게 해 줄 일은 마쳤다는 듯, 조용히 숨을 쉬곤 했다.

 

명암이 심한 얼굴들 속에서 영효는 표정이 없었다. 그 얼굴은 졸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단지 오래 걸었던 그 문을 걸어 나오는 것이 졸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그에게는 그날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고, 3년을 가족보다 더 오래 보았으되 가깝지 않은 이들과의 이별만이.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오랜만에 학교에 들렀다. 군대를 제대한 후 처음 들려보는 곳이었다. 이상하게 교실 속에서 했던 일들은 기억나지 않았다. 뒷 산에서 누구의 나무인지도 모를 밤나무를 털던 일. 아직 흔적이 남아있는 신사참배 장소를 기웃거리던 일. 무슨 풀을 보고 그림을 그리던 일.

 

-

 

잠을 잘 자지 않았다. 홀로 기숙사에 남아 눈을 감고 누워있기 일쑤였다. 사 오년간 참 많이도 들렸던 강의실, 실습실, 도서관도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방안에 있기 갑갑하면 휑한 학교를 그냥 혼자 걸었다. 의미 없는 날이 지나 그날이 오면. 하는 상상을 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영효는 밤에 학교 가로등 불빛을 따라 걷곤 했다. 텅 비어 버린 강의실, 동아리실, 문닫힌 매점, 급수탱크, 기숙사 옥상, 학교 옆 개울가, 노천극장.. 그러다가 미묘하게 떨리는 바람결이 사나워질 때

방으로 돌아왔다.

 

그날은 나이가 들어 보였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며 어색한 웃음을 건넸다. 싸구려 양복을 입고 서서히 모든 것들을 털어 냈다. 랭보를 읽던 빈 강의실, 밤을 새워 그림을 그리던 실습실, 자주 걷던 오솔길, 너무 차갑거나, 너무 더웠던 공기, 자주 신발에 끼던 작은 돌멩이 까지도.

 

영효는 졸업 후 학교에 거의 가는 일이 없었다. 어쩌다가 어쩔 수 없이 졸업증 원본을 가져와야 할 경우를 빼고는 가지 않았다. 날 선 음지와, 저 아래로 흐르는 공기, 너무 가파르게 펼쳐진 오르막과 내리막. 가끔 그 사이 그를 맞아준 새벽빛 나무들만이 생각날 뿐.

 

-

 

입춘이 지나고 입을 꼭 다물었던 공기가 웃는다. 지금 걷는 학교 어딘가에서는 하이얀 이를 드러내며 세상 모르게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코 끝이 반짝반짝한 구두를 신고 잘 다듬은 머리와 제법 값나가는 옷을 바람에 날리, 그 어딘지 모를 작은 그림자 하나를 머리에 둔, 사람들이.

 

작은 사전, 깜깜한 밤 하늘을 보며 저편에는 무엇이 있을까 기대하던 부푼 공기, 처음 따뜻하고 애틋한 손을 맞잡던 설레임, 반갑게 인사하며 공중에 흩뿌리던 하이얀 웃음, 머리 뒷 편 너머 아쉬운 숨소리를 내는 계단. 저 어딘가에서 소리 없이 오는 따스한 공기.

 

 

영효는 그 사이를 혼자 걸으며, 기억 저편 오래전 노래를 들었다.  

 

 

 

 

 

 

 

 또각또각

 조용히 사라지는

 공기와 바람 속에서.

 함께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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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별이 늦게 빈 자리에 들면.

 

 

손끝하늘에 눈을 담는다.

 

 

무지개저편 그 끝

 

 

작은 호두나무.

 

 

 

 

 

 

 

 

이 월은

 

떨어지다 만 눈물처럼 즐거움을 모두 내어주고

그림자 곁으로 사라져 버린

끝이 말아 올라가는 바람결

 

 

앞서 가는 웃음소리

들뜬 높은 음

하늘로 뻗은 나뭇가지

 

 

짧고, 깊은 발걸음

나란히 걷는. 뒷모습 뒤로

 

 

앞을 보되, 조금씩 늘어지는 발자국

눈덮인 길

침묵.

 

 

반음 낮은 목소리와 두 계단 낮은 발걸음

사선으로 기울어진 허공 속 새를 따르며 잠시 들어올린 눈.

어느새 저 멀리 떨어져버린.

 

 

 

 

 

 

 

 

 

옅은 음 하나를 주머니에 담는다..

 

저 멀리 소리없이 사라져 버리기 전에

 

회색빛 이 월의 얼굴에 감춰진 색

 

하나를 눈에 담는다.

 

외로운 이 월을.

 

어루만진다.

 

 

 

 

 

 

 

 

눈 길 닿아진,

 

손 길 떨어진,

 

호두나무 빛

 

무지개 꿈 속

 

어느 바람에.

 

 

 



 

 

 

 

짧고 길게 맞잡은손

잊어질까. 잊혀질까.

나즈막이. 하루만더

쓰고읽다.  이 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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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바람이 발목을 휘감는다. 습기 먹은 공기는 푸석이는 머리를 더욱 붕 뜨게 한다. 낮은 공기와 천천히 흘러가는 낮은 시간. 그만큼의 무게를 지닌 생각이 담긴 손짓은 허공을 가른다. 짧게 반짝이는 여름의 이슬.

 

어디로 가다 멈추었는지 모를,

전깃줄의 끝. 홀로, 이제는 이름조차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잊혀져버린 어느 새의 눈이 멈춘 공간의 저편.

 

습기 먹은 밤, 이제 곧 사라질 물기를 조각같은 공간의 저편에 담아 두고 있는.

공간의 밤.

 

 

 

 

 

이제는 1바이올린 연주자의 이름을 따서 그들의 쿼텟 이름을 짓는 전통은 없어진 것 같다. 생각나는 건 부슈 밖에는 없지만 그들을 제외하고는 아마데우스, 이탈리아노, 린지,  타카시, 알반베르크,  부다페스트, 에벤, 아르테미스 .. 모두 그들 나름대로 이름 지은 현악사중주로 활동했거나 활동하고 있다. 

 

 

 

 

 

타카시(Takacs) 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않다. 이 곡을 듣는데 이들이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지에서 명시하고는 있지 않지만 1 바이올린은 Edward Dusinberre 인 것 같다.) 서양 고전 음악사상 오페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장르에서 최정점의 음악을 만들어냈던 베토벤. 그의 현악 사중주는 그 가운데에서도 저 높은 곳에서 유난히 밝은 빛을 내고 있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곡은 그가 30세가 될 무렵 전곡을 쓴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18의 여섯 개의 현악4중주곡에서부터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해인 1826년의 작품 135에 이르기까지 모두 16곡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외에도 결과적으로 단일 악장의 독립된 작품으로 출판된 <대푸가> Bb장조 133이 있다.  - 음악세계, 베토벤편 p.176  

 

 

 

어떤 이는 베토벤이 쓴 다양한 장르의 곡은 모두 교향곡을 위한 스케치라고도 한다. 협주곡, 소나타, 각종 실내악곡들. 과연 현악사중주는 어떠할까. 그의 피아노 소나타와 같이 이 현악사중주는 그이 삶과 궤적을 같이 한 것으로 그가 교향곡에서 남긴 없적과 거의 대등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니 이는 그 독립장르로서 위치가 확고하다. 특히 후기 피아노 소나타와 함께 흔히 후기 현악사중주로 분류하는 곡들 역시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원함으로 고전음악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곡이다.

 

미학(미술)에서의 대표적 형식주의자인 로저 프라이(Roger Eliot Fry, 1866~1934.9.9) 와 클라이브 벨(Clive Heward Bell, 1881-1964)은 시대와 환경 구별 없이 그 독자적으로 예술을 구별하고자 하였다. 현대의 포스트 모더니즘(맥락주의)에서는 비판받고 있지만 극단적으로 추상을 전개한 몬드리안이나 말레비치가 전개한 모더니즘적 사고에서는 그러한 관념이 스며들어 있다. (미술사에서 하나의 극단을 부정하고 또 다른 길을 찾아나서는 모습을 살펴볼 때 서양의 저 먼 곳에서부터 시작해 온 것 같은 형식주의 또한 유사한 예를 찾아 등장할지도 모른다.)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 No.8 / Oil on canvas

 

 

베토벤의 곡을 듣다보면, 그 음악 자체로 따로 떨어져 고도의 형식미를 가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주 사소한 동기에서 시작하여 점차 드러나는 견고하고 장대한 건축물은 비록 그것이 하나의 환영물이었다 하더라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고전주의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하기도 하므로 내가 생각하기에 보다 낭만성을 띤 작곡가들과 비교했을 때 무채색의 기조속에서 그 어느 곳으로 회귀하려는 순수추상적인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이 순수추상적 조형미가 바로 극히 공들여 다듬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또 그 독립적인 모습을 견고히 유지하고 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세워놓은 현악사중주의 전통 아래, 당시로서는 너무나 파격적이고 심원하여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던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을 꼽자면  op.130, op.132 를 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op.130은 제5악장 "카바티나" 가 op.132 는 제3악장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op.132의 제3악장은 첫머리에 [병에서 나은 이가 신에게 바치는 성스러운 감사의 노래] 라는 글을 적어 두고 있다. 이 곡을 쓸 당시 그는 지병(장염)으로 고생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병의 호전과 함께 이 곡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바이올린 두 대와, 첼로 한 대, 비올라 한 대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빈틈이 많아 보인다. 곡의 느낌상 빈틈이 많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베토벤의 교향곡을 듣다가 이 곡을 들으면 적잖이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빈 공간이 너무 많고 심심한 느낌이 난다. 그러나 이 악기 네 개로 만들어내는 입체감과 깊이는 때로는 수많은 관악기와 현악기를 능가하기도 한다. 각각의 악기가 느슨한 공기 속에서 엮이고 엮여 비록 작지만 고고한 빛을 지닌 단단한 공간을 만들어 냄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얕은 바람, 허공을 가르는 시선, 이제 곧 사라질 물기를 조각같은 공간의 저편에 담아 두고 있는. 공간의 밤 을 느끼게 한다.

 

4/4박, 못갖춘 마디로 시작하는 제 3악장은 1바이올린의 여린 두 음으로 시작한다. 악보는 처음 바이올린을 배우는 학생도 연주할 만큼 쉽다. 맑고 투명하게 시작하는 곡은 이후 3/8박자로 바뀌며 안단테로 넘어가는에 이는 보다 밝은 분위기이며 상대적으로 앞부분보다 음표상 변화가 있는 편이다. 이후 이것은 발전하며 숭고하게 끝을 맺는다. 유투브 동영상의 연주는 타카시 쿼텟의 연주이다. 이들은 데카에서 초/중/후기 모두 음반을 발매했다.

 

 

 

 

 

 

 

최근에 하이페리언으로 옮겨 또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이 베토벤의 녹음은 여러 면에서 뛰어난 음반이다. ASV 가 기약없이 폐점한 상태에서 린지 쿼텟(Linsay QT)의 음반을 구하기 쉽지 않은 상태에서는 비교적 안심하고 구입할만한 음반이 아닐까 싶다. 음질면에서 질감이 잘 살아나 있으며 곡을 관조하는 모습도 잘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선명한 투명성을 보여준다. 린지 쿼텟의 1바비올린이 보다 더 폭이 크다면 이쪽은 약간 절제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사중주는 음반의 선택폭이 그리 크지 않겠지만 적절히 균형잡힌 이 음반은 여러 면에서 선택할만하다.

 

 

낡고, 바랜 종이가 바람에 부스러지듯 하다. 

그런 허공을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습기를 머금은 까닭이다.

빈 종이 하나를 꺼내 접어두라고.

마음을 접어두라고 한다.

 

가끔은 발목을 휘 돌아 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싶은 법이다. 가끔은 거대한 그림 앞에서 고백하고 싶은 법이다. 가끔은 눈을 감고 허공에 눈을 맡아 두고 싶은 법이다.

 

그리고,

습기가 적절히 부푼 밤. 허공과 바람에 맞겨 두었던 공간에 종이를 꺼내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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