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서 - 152 True Stories & Innocent lies 생각이 나서 1
황경신 지음 / 소담출판사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후두둑. 톡톡, 가벼이 지붕을 때리는 무언가.

 

봄비가 진하게 내리는 날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향하는 열차표를 한 장 사기로 한다.

그리고 길을 나서는 한 걸음이 닿을 수 있는, 저 멀리 낯선 곳까지 걷기로 한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비가 그치기 전 밤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며 눈 주위를 촉촉하게 했던 밝은 것들, 때로는 눈을 적시는 것들을 마음껏 담아서.

 

 

 

 

 

불협화음, turn, 선, 더블플랫, 노래, 슬픈 이야기, 오케스트라, 식후 30분, 얼마나, 모르겠다, 반지, 99퍼센트의 여인,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것, 나는 거짓말을 했다, 베토벤 10번 교향곡, 세르반테스, 무수한 반복, 그 말은, 바라보는 것은 소유된다, 연습하면 다 돼, 편, 그럴 수만 있다면, 아직 이렇게, 외롭습니까, 기적처럼 만났으면 해….

이는 오래오래 빼곡하게 작가의 뇌리에 박힌 것들이다. 어쩌면 모두가 흔하게 쓰는 말들이다. 흔하지만 작가에게는 취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것들이다. 좋은 기억이거나 나쁜 기억이거나.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일상 속에서 추억으로 남아 사소하지만 잊히지 않는 152개의 진실과 거짓말들을 소재로 담았다.

 

 

- 출판사 소개 중

 

 

알싸한 겨울의 공기가 봄비의 부스스함에 자리를 내주고 저 멀리 발걸음을 재촉할 때가 되면, 겹겹이 쌓인 삶의 부스러기가 눈과 마음을 헤집고 들어온다. 발걸음을 재촉해 삶의 눈길을 밟게 한다. 꾸욱, 미묘한 발자국 소리. 삶을 걷는 소리.

 

헤겔의 관념론 미학에 반대하며 "미는 생활이다" 라는 주장을 했던, 러시아의 사상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1828-1889). 그는 불온한 사상을 유포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갖혀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장편 소설을 완성하였고, 20년이 넘는 유배생활을 마감하는 동시에 생을 마쳤다. 그는 미에 대해 <예술과 현실주의 미학> 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하였다.

 

인간이 아끼는 모든 대상에 들어 있는 가장 일반적인 것,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삶이다. 그중 으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지만 그 다음은 어떤 방식이든 살아가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어찌 되었든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생명이 유지되기를 원한다. 따라서 위의 명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미는 생활이다. 무엇이든 그 안에서 생활은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아름답다. 무엇이든 생명을 드러내거나 그것으로 우리가 생명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은 아름답다."  

 

- 창홍 미학산책 235 발췌

 

 

 

살아가면서, 낯익은 사람들, 낯설은 물건들

그것에 다가가기, 그것을 잠시 잊기

다시 볼 수 없을 듯 눈에 담기. 살아가며.

 

여행을 떠나며 한 발 움직이며 담는 주변의 것들. 이 작은 책에서는 그것에 대한 작은 기록.

체르니세프스키가 '미는 생활이다' 라고 정의했던 그 작은 삶을 살아가면서 찾고 만나며 보는 무엇이.

 

 

 

 

 

아무도 없는 새벽을 가르지르는 소리.

눈을 꼭 감고 귀를 열어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

살아감이 삶이 되는 소리. 땅을 짚는 발이 온 몸을 울리는 소리.

피아노 건반 사이의 거리의 느낌이 이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는 소리와 느낌. 감각들.

 

 

 

 

 

 

PAPER, 초콜릿, 세븐틴! 순수함과 달콤함이 느껴지는 3음절 단어들이다. 그리고 생각나는 한 사람은, 황경신. 그녀는 월간 PAPER 편집장. 현재까지도 PAPER를 만들고 있다.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작은 사물에까지 애정을 품는 섬세함과 매혹적인 문체로 깊고 깊은 소녀의, 여자의, 어른의 속내를 이야기했던 그녀가, 이 가을 『생각이 나서』로 우리의 감성을 다시 일깨우고 있다. 생각해보면 어리석도록 깊고 처연하도록 아름다운 말이다. 생각이 나서, 라는 그 말은. 때론 질투와 동경과 희망으로, 때론 포기와 좌절과 허무감으로 지금까지의 그녀를 이룬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게 작가의 색과 감성을 덧칠하고 있다. 글쓰기와 감성만큼은 카멜레온 같은 황경신의 친절하지 못한 한뼘노트다, 『생각이 나서』는.

 

- 알라딘 책 소개 중

 

 

 

이, 책과 작가를 소개하는 문구는 이 책을 담은 눈과 귀, 그리고 감성올  대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아주 작게 울리는 바람과 수줍음, 그 마음을 타고 조용히 새벽을 가르는 어느 나그네가 봄길을 딛는 발자국의 느낌을 담기에는 더더욱.

모노, 아날로그의 주파수를 담아 원목의 몸통을 울리는 작디 작은 라디오 티볼리가 전해주는 조용하고 눈낮은 인사. 툭 하고 스위치를 켜면 피어나는 램프, 그리고 작은 목소리.

이 책에는 그런 작지만 몸을 녹여주는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

 

 

 

 

 

 

 

미묘하게 부풀어가는 봄비, 봄바람, 봄햇살.

그 속에서 자리한, 일상이 건네주는 팍팍함과, 까슬까슬함.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벼운 옷을 입고 떠나는 새벽 여행.

 

그 티켓은 아직 유효하다.

 

 

 

 

 

Grieg Lyric Pieces Book I, Op.12 - 1. Arietta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정 삶이 짧은 여행이었다고 부를 수 있는 작곡가 슈베르트. 그는 서른을 갓 넘기고 가느다란 발자국 소리를 내며 바람을 스쳐 지나갔다. 베토벤을 매우 존경했던 그는 "가곡의 왕" 이었으나 뿐만 아니라 현악 사중주, 교향곡, 피아노 소나타 등에서도 비할 바 없는 애잔함과 유머, 진지함과 회한이 담긴 작품을 남긴 작곡가 이기도하다. 


그만이 남길 수 있는 깊은 감정선의 골이 느껴지는 작품가운데에서도 1828년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21번, D.960 은 그가 사망한 해에 남긴 곡으로서 그의 최만년의 작품이다. 듣고 있으면 세상의 끝을 아주 가벼이, 그러면서도 아주 무겁게 내딛는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 곡은 진지하고 비장하면서도 어떤 뜻 모를 가벼움도 느껴진다.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곡답게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이 곡을 연주하고 그 연주를 음반에 담고 있다.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한의 시간 속에서 무심히 구름 흘러가는 어느 한적한 시골길, 그곳에서만날 수 있는 조금 쓸쓸해 보이는 눈빛의 노인을 보는 듯한 빌헬름 켐프의 1967년 DG녹음, 청량한 한낮의 그림자가 주는 명암 속에서의 한적함이 느껴지는 브렌델의 1971년 필립스 녹음. 


이 뿐만 아니라 라두 루푸, 클라라 하스킬, 디터 체흘린, 안스네스 ... 등 다양한 연주자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내며 또는 숨기며 슈베르트의 아픈 발자국에 동행하고 있다. 시간을 담은 예술인 음악은 주관적이고 추상적일 수 밖에 없으니, 각각의 연주는 듣는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 


이 곡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연주자가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터가 아닐까 하는데 내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는 이 곡의 음반을 적어도 네 종 이상 남겼다. 1961년 (브릴리언트), 1972년 (올랭피아), 1972년 (프라하) 등이 그것인데 모두 뛰어난 연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내가 확인한 정보가 맞다면 첫머리에 크게 올린 음반은 1972년 9월 프라하 녹음으로서 바로 위에 올린 음반 가운데 맨 마지막 박스에 들어 있던 음원을 담고 있다. 그간 이 박스물은 절판 상태였고 중고가격은 아마존에서 수백, 수천달러로 거래가 이뤄지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 프라하 녹음이 하나 둘씩 SACD 포맷으로 나오고 있다. 전설 속 연주를 음반으로 쉽게 만나게 되었다. 


이 프라하 녹음을 기억을 더듬어 위의 나열한 음반들과 비교해 들어 보았을 때 (브릴리언트 보다) 약간 더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음질탓도 있겠으나 전체적으로 명암대비가 덜 한 느낌이다. 피어나듯, 서서히 그러면서도 진한 어둠을 뿌리는, 약한 조명을 켜놓고 악보를 보면서 연주하던 리히터의 해석은 크게 변함이 없으되 관조하는 느낌이 더 보인다. 


그대로 발을 담가 빠지게 만들며 곡을 차분하게 이끌어 가면서도 그 큰 테두리 속에서 마음의 결을 흔드는 것을 잊지 않는 그의 모습은 다른 피아니스트와 분명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한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리히터의 손과 발에 감탄하는지 이 음반에서도 그 모습은 찾아 볼 수 있다. 







Paul Klee, <Pastorale (Rhythms)> 1927, Tempera on canvas mounted on wood




조용하게 시작하는 도입부를 지나, 세상을 조심스레 어루만져주는 느낌의 곡이 흐를 때면 클레의 천진난만함을 담은 그림 속 음표들이 떠오른다. 세상의 시끄럽고 복잡한 일에서 잠시 손을 놓고 자신의 마음 속 장면에 몰두하게 만드는 추상미술의 장르에서 느껴지는 순진함과 그 이면의 고뇌가 들려온다. 


작곡한 음악의 전달자 라는 사명을 끝까지 잃지 않았던 리히터의 이 음반은 한껏 높아지는 소음과 밝음으로 가벼워지는 발걸음 뒤로 조금씩 사그러들어가는 어느 골목의 그늘 속 어둠을, 따뜻함이 미묘하게 섞여 풍기는 바람 속의 어느 북풍의 낮은 음을 내게 전해 준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수줍고 애달픈 발자국 속에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3-03-10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69(네번째줄) 가 아니라 960인거죠?
마침 969도 한번 들어보았더니 쓰신 글의 분위기와 확연히 달라서 금방 알겠네요^^

저는 소리를 듣는 동안은 소리만 들리던데, 님의 글에서는 항상 그림과 음악이 공존합니다.
시끄럽고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도록, 세상을 조심스레 어루만져주는 음악이라니 참...좋지요?

Nussbaum 2013-03-10 18:50   좋아요 0 | URL
hnine 님 꼼꼼하게 읽어주셨네요 ^^
지적해주신대로 제가 오타를 냈습니다 ~

요즘은 예술을 사회의 맥락속에서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대세인데 너무 그런 면에서 해석하다보니 가끔은 음악, 미술 그 자체로만 들여다 보는 시선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작가의 내면세계나, 의도에만 집중해 듣는 음악도 때론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늘 한결같이 자리에서 열심히 나아가시는 모습보면서, 덕분에 가끔 남기는 페이퍼나 리뷰의 이 공간이 덜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어딘가 산책 다녀오곤 하는데 오늘 달아주신 댓글은 산책길에 마주치는, 왠지 모를 삶의 여유가 느껴지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빛 같은 느낌입니다.
새삼스레 이런 공감의 띠도 참 소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역시나 첫 댓글 ! ^^ 감사합니다.
 
이철수의 웃는 마음 - 판화로 사람과 세상을 읽는다
이철수 지음, 박원식 엮음 / 이다미디어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2012년, 우리들의 대화에 의자 몇 개 더 놓을 수 있습니다.
안부를 묻습니다.                                                                                                                                 7페이지.

 

 

삶, 자연, 마음, 사람.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 맑개 펼쳐진 공기를 보고, 밝은 어디론가 나가 일을 하고, 밝아 오는 하늘을 마시며, 어둑어둑 밤길을 걸어 집으로. 뜻하지 않은 일을 만나고, 때론 사람에 부딪치고, 좋은 사람과 웃고, 소근소근 대화를 하며 잠을 자는 일. 그런 하루 속에서 잠시 구름 하나 띄워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을 때 펼치고 싶은 책.

 

 

 

 

"조금만 눈 크게 뜨고 보면 세상의 기준이란 터무니없지요?

거기에 무작정 항복할 일이 아니죠. 백기 투항? 참으세요!"    38페이지

 

 

판화는 유화, 수채화, 콩테, 과슈, 템페라, 아크릴 등등 무수한 회화의 표현 기법이 내지 못하는 강렬하며 함축적인 표현 효과를 갖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볼록판화에 속하는 목판화는 오목판형인 동판보다는 선명하지 않지만 날카로움과 극적 대조,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는 기법.

 

바쁘고 짜여진 삶에서 여기 실려 있는 판화를 보고 있으면 삶의 표면에, 나의 마음이 가진 얇디 얇은 삶의 나이테에 강렬하되 결코 쓰리지 않는 선을 새기는 느낌이다. 바둑판이 상처가 나면 그 상처를 보듬고 아물어 더 멋진 바둑판이 되듯, 이 강렬한 자국을 마음에 새겨 품으면 내 작고 초라한 삶이 잠시나마 웃음으로 변한다.

 

작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 대한 손길. 보고 있으면 그 손길의 온기가 느껴지는 느낌. 막 지은 하이얀 밥의 모락모락 김이 바람에 사라지기 전에 전해오는 느낌. 그 밥이, 그 쌀이 먼 곳에서 어느 이름모를 농부의 손길을 거치고 비를 맞고 바람을 견디며 뜨거운 햇빛을 머리에 이고 견뎌낸 그 강인함이 느껴지는 소리.

 

 

 

 

'밭에서 잘 익은 과일 야채 거두어 옵니다. 계산대에 쏟아놓고 돈 치르는 일이 없는 게 제일 좋습니다. 덜 익었다 싶으면 하루 이틀 두었다 거두면 되고, 너무 많으면 이웃에 따다 주면 됩니다. 제 집에 없으면 가까이 지내는 이웃에게 얻어다 먹어도 됩니다. 시장이 제일 사나운 이웃 아닌가요?"                                                                                         58페이지

 

 

 

 

밥 먹고, 일 하고, 사람을 만나고, 잠을 자면서

사람은 낮에 누구나 저마다의 소리를 낸다.

때로는 고개를 젖히며, 때로는 고개를 한껏 들어 올리며.

 

 

 

 

 

" 분명한 건, 농사든 막노동이든, 머리 써서 지식을 팔든 누구나 반성적 성찰이 필요하겠죠. 한마디로 제 농사일은 반성적 차원이에요. 호미들고 하는! "                                                                                                           111페이지

 

 

 

 

대지미술.

대지미술은 크리스토, 스미스슨 등이 주축이 되어 미술의 개념 확대와 자연에 대한 경이를 미술에 끌어 들이려고 했던 경향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진한 신념에서조차 생명의 위협을 주었던 미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인위성에 대한 경고. 하늘은 비어 있고, 물은 제 갈길 가고, 땅은 많은 것을 키우며, 사람은 그것들에 감사해하고.

 

 

 

 

'강을 팔아 경제위기를 넘기고 나면, 이 다음에는 산을 팔게 되나요? 백두대간을 통채로? 그 다음에는 다도해를 팔고 동해 바다 독도도 팔게 되나요? 마지막에는 하늘을 팔면 되겠습니다.'                                                              135페이지

 

 

 

 

별들이 분주한 새벽이 되면 잠시 뜨거워진 마음을 내려 놓는다.

말도, 사람도, 빛도. 놓고 조용히 뒤를 돌아보며 묻고 또 묻는다.

그렇게 닿는다. 나의 마음에, 바른 결에. 바른 대답에.

 

 

 

 

"의심하고, 묻고, 의심하고 다시 묻고 .... 그걸 현실에 적용해서 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음도 분명해요. 쓸데없는 사변들을 거추장스러운 옷처럼 끌고 다닐 일이 아니죠. 머리나 가슴뿐 아니라 온몸으로 통찰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자기긍정은 그렇게 해서 얻어지라.                                                                                                            170페이지

 

 

 

 

2013년, 봄밤 삶의 바람결을 타고 잠시.  꾸벅꾸벅, 삶의 단편에 스르륵 잠이 들 때 즈음.

손끝으로 넘기는 사각거림이 대답일까 하여. 하나씩 조심스레 넘깁니다.

어느 이름 모를 독자가, 내어주신 의자에 앉아.  웃는 마음을 하고서.

 

 

228페이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입] Complete Solo Piano Recordings 1972-1996 (Box)
조지 윈스턴 (George Winston) 연주 / 소니뮤직(SonyMusic) / 1997년 7월
평점 :
품절


 

 

 

          

 

 

* George Winston Complete Solo Recordings 1972-1996 / 7CD Box set

* 1996 Windham Hill Records (BMG)

 

 

 

Ballads & Blues - 1972

Autumn - 1980

Winter to Spring - 1982

December - 1982

Summer - 1991

Forest - 1994

Linus & Lucy The Music of Vince Guaraldi - 1996

 

 

 

 


 

 

내 안에 담긴 밤이 간다.

손 끝을 저리게 했던,

코 끝을 빨갛게 물들이던 단편과 함께.

 

다시 돌아온다 하는 뒷모습

밝고 살진 해, 세상 가득 노란 환한 웃음

선명한 눈동자를 지나면.

 

저 멀리 낮은 바람이,

길 가던 이름 모를 산새가

더 이상 남지 않는 발자욱이, 마지막 흰색의 잎새가.

 

어느날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 빠진 그 자리에

다시 돌아와 파란 촛불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나텔로 <성 조르주> 1415년, 대리석

 

<성 조르주>는 고대 이후 처음으로 제작된 입상으로서 고전적인 '대응 균형' 자세의 완전한 형식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작품이다. 도나텔로는 이 한 점의 작품을 통하여 고대 조각의 핵심적인 특징을 완벽하게 실현해 내고 있다. 즉 그는 인간의 신체를 움직임의 잠재력을 가진 하나의 조절된 '구조'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신체에서 발산되는 억제된 에너지는 저 멀리 지평선으로부터 접근해오는 적들을 응시하는 눈빛을 통해 방출되는데, 용을 죽일만한 용기까지 가졌던 이 성 조르주는 '새로운 아테네'의 자랑스럽고 영웅적인 수호자로 칭송된 인물이었다.

 

잰슨 서양미술사, 249-250 

 

 

서양미술사적 흐름에서 고딕 시기를 지나 르네상스가 발아할 무렵, 피렌체에서 도나텔로는 그리스의 조각들이 가져온 커다란 혁신성을 르네상스에 전해주었다. 대응균형은 "아르카익 스마일" 대신 진지하고 사색적인 표정과 콘트라포스토를 통해 역동성을 가능하게 해주었고 도나텔로는 그 정신성과 물질성을 르네상스로 들어가는 문에서 다시 응집시켰다.

 

잰슨이 그의 책(서양미술사; Histroy of Art for young people)에서 소개한 것처럼, 그리 많은 동작을 취하지 않고 단지 약간의 몸의 뒤틀림만을 가미한 몸체에 꼿꼿이 세우고 날카롭게 응시하는 표정은 그리스 고전기의 이상적인 모습에 헬레니즘과 로마초상조각의 감정성까지 포함해 보는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

 

이 작품의 경우 조각상 아래의 부조(릴리에보 스티아치아토(rilievo stiacciato, 평부조기법) 를 보면 대략 이 조각상의 주인공이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현재 대부분 통용하고 있는 예술가의 자의식이 높아가고 있던 그 시대에 제작한 이 조각상의 작품 의도나 해석의 근거는 학자별로 대부분 유사하며,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유형의 조각상의 분위기를 서양 고전 음악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무겁고 진지하며 사색적이고, 무엇인가 거대한 음의 흐름이 큰 줄기를 이루고 도도하면서도 감정을 고양시키는. 그러면서도 고전미를 유지하고 있는 작품이 떠오른다. 아마도, 적어도 나의 생각으로는 장르면에서는 교향곡이, 인물면에서는 브람스가 먼저 떠오른다.

 

 

 

 


 

 


브람스의 교향곡은 모두 네 개이다. 베토벤의 교향곡들이 저 높은 곳에 우뚝 서 있는 상황에서, 혹은 그렇게 작곡가 스스로 믿었던 까닭에서인지, 정확한 것은 그만이 알겠지만 첫 번 째 교향곡을 작곡하기까지는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2, 3번은 상대적으로 간결하고 소박하게, 1, 4번은 영웅적, 비극적 느낌이 든다.

 

1번 교향곡의 경우 마치 네 악장이 소설의 기승전결을 보는 것 같은, 베토벤의 영향을 감지하게 하는 부분도 보이지만 베토벤의 3번 영웅교향곡이나 9번 합창 교향곡과는 약간 성격이 다르다. 영웅교향곡보다는 강렬한 맛이 덜하고 중후한 맛이 있다. 합창교향곡보다는 짧고 거대하진 않지만 보다 간결하면서도 뭔가 톱니바퀴처럼 착착 굴러가는 느낌이 든다.

 

오래전부터 브람스의 교향곡에서 명반으로 사랑받고 있는 지휘자 오토 클렘페러와 필하모니아의 1950년대 레코딩은 한 음 한 음 짚어가면서 브람스의 고뇌의 여정을 따라간다. 마치 저 멀리 몰려 오고 있는 적들 혹은 용을 향한 <성 조르주>의 응시처럼 서두르거나 당황한 기색 없이 결전을 준비한다. 어쩌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그 모습은 너무 차분하다.

 

비록 모노 레코딩이지만 1번 4악장의 그 유명한, 거대한 물결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상승점을 찍는 과정 속에서는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 녹음과 가까이에는 토스카니니, 푸르트뱅글러 요훔, 뮌시등이 있겠고, 이후 카라얀, 반트, 번스타인 등의 녹음을 꼽을 수 있겠지만 클렘페러의 전집은 약간 거친 감이 있으나 브람스의 음들을 호소력 있게 차분히 전해준다.

 

 

 

 

 

 

 

 

 

 

몇 해 전에 나왔던 첼레비다케의 EMI 녹음 전집 박스물처럼 클렘페러도 한꺼번에 이렇게 묶여 나오고 있다. 상대적으로 첼리비다케보다는 적은 주목을 받고 있는 감이 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예술에 있어 모더니즘의 시대는 가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성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지만 클렘페러가 남긴 음악은 시대가 흘러도 그 의미를 잃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