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ad Air + Paper53 / 충정로 어딘가에서.

 

 

 

한 시간. 어디선가의 일을 그만둔 채, 2년 만에 다시 돌아온 그곳의 한 시간.

무수한 말과 글, 생각들을 놓아둔 채 떠나온 곳에서 코코아 한 잔을 주문했다.

태블릿 PC의 커버를 열고 펜을 손에 쥐고 공간에 흩어질 한 시간을 담았다.

 

 

오후 다섯 시의 한산함. 이제 정해진 어디론가로 떠나는 자의 여유.

그러나 지친 몸과 마음의 관성이 그 여유를 쉬이 즐기지 못하게 한다.

눈빛과 손 끝 다양한 감정이 섞인 시간은 짧지도, 길지도 않게 흐른다.

 

 

1년에 더해진 며칠. 의자가 놓여진 곳에서 잠시 일어나 다시 돌아오는 시간.

자리에 앉아 영화 한 편을 보는 데 필요한 시간.

음반 한 장을 들으며 흘러가는 시간.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나의 한 시간은 여섯 계절동안 그렇게 흘렀고,

이름모를 검은 발자국은 경계 안으로, 현란한 흰 손짓은 경계 밖에서

제각각 다른 이름을 품고 춤을 추었다.

 

 

 

 

 

 

 

미하일 하네케는 시간을 평범하게 보여주지만, 그 시간을 제시하는 화면은 꽤나 농밀하다. 카메라는 애써 많은 것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감독의 시선은 높지도 낮지도 않다. 포스터가 얘기해주는 말처럼 나이든 부부의 시간과 시선.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은 밝지 않다.

 

 

한 시간 남짓. 연극무대를 보는 듯 화면을 응시하면 "사랑" 에 대한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이 아닐까? 사랑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희생해야 하고, 어떤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닐까. 그 흔하디 흔한 말. <사랑>

 

 

많아야 대 여섯명이, 뻔해 보이는 스토리를 엮어 나가며 말하고 몸짓한다. 영화를 떠올리며 생각하는 방식, 말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영화 한 편이, 감상하는 사람의 나머지 시간과 삶을 점유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영화에는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가 출연한다. 연약하고 담백한 느낌을 주며, 연주 또한 정갈한 맛을 풍기는 이 젊은이가 이 시간의 흐름에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다. 조금 흔해진 듯 해서 통속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영화에 흐르는 음악을 슈베르트로 선택한 것은 꽤나 잘 어울린다.

 

 

 

 

 

 

 

 

 

 

 

언젠가 간단히 말했듯 잉그리트 헤블러(Ingrid Haebler) 의 연주는 맑고 담백한 터치가 귀를 잡아 끈다. 맑고 담백한 터치와 심장 깊은 곳을 두드리는 연주. 그 대명사격인 빌헬름 켐프의 연주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보다 내밀한 연주를 들려주었던 "그 시대" 를 이제는 쉽게 회상할 수 있게 되었다.

 

 

네이버 캐스트에 이 영화 <아무르> 에 대한 글이 있다. 유니버설쪽에서 협찬을 받아 이 음반에 있는 음원을 샘플로 쓰고 있는데 담담하면서, 살짝 예뻐보이는 음색이 영화의 분위기와 어울린다. 좀 더 음영이 짙은 느낌이 들어야 할 장면도 있지만 이 영화는 병자의 수발기를 다룬 다큐는 아니기에 작은 반짝임도 있어야 하겠다.

 

 

너무 봄이 오는 시간. 2월.

봄의 기운이 마치 뜻밖의 손님을 맞듯 놀라게 할 때, 막연한 아련함과 한 낮의 햇빛에 지나간 시간들을 꺼내 바스락 거릴 때, 아무리 씩씩하게 걸어도 작고 볼품없던 나의 갈색 발자국은 소리 없이 웃는다.

 

 

 

 

 

 

 

 

우리시대의 진정한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세상을 떴다. (1933년 6월 26일 (이탈리아) - 2014년 1월 20일)

건강이 좋지 않아 그의 팬들을 안타깝게 했지만, 다시 서서 열심히 활동을 하던 그였으나 더 이상은 시간의 발자국의 웃음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미리 어느 정도 예견을 했던 것인지 도이치 그라모폰에서는 그의 교향곡 연주를 묶어 발매를 해 놓았다.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말러, 브람스, 모차르트, 하이든의 교향곡들이 들어 있는데 연주나 가격에서 매우 훌륭한 박스라고 할 수 있다.

 

 

슈베르트, 멘델스존, 말러, 그리고 브람스에서 누구와도 당당히 견줄 수 있는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데 슈베르트와 멘델스존에서는 산뜻하면서도 미풍이 부는 느낌을, 말러에서는 다채로운 얼굴의 변화무쌍함을, 브람스에서는 정갈함과 균형성을 품고 있으면서도 유려한 감성까지 덧붙이면서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지나간 시간, 웃지 못하는 발자국, 이루었으되 이루는 마음을 붙들어야 하는 시간에.

마음이 떠돈다. 어지러운 마음에. 

포근히 놓아둔 눈빛과 손 끝 다양한 감정은 제각각 다른 이름을 품고 춤을 추었다. 나를 잊지 말라고.

 

 

 

 

 

 

그야말로 베토벤이 없었다면 오늘의 음반시장은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베토벤의 음반들. 베토벤의 교향곡집은 그 가운데에서도 꽤 많이 나오는 음반이다. 그러나 베토벤이 그러했듯 몇몇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는 음반이 거대한 산맥을 형성한 이후로 그다지 주목할 만한 연주가 있나 싶다.

 

 

막상 떠오려 보면 인상 깊었던 음반은 그리 많지 않다. 거의 전설적으로 대접을 받는, 그래서 더더욱 들으면서도 궁금해지는 푸르트뱅글러와 토스카니니. 두툼하고 치열함이 느껴지는 클렘페러의 연주, 날렵하면서도 당시 시대악기의 느낌이 생생한 가디너, 단단하고 단호한 반트, 리듬의 화신 클라이버.. 그리고 요훔, 블롬슈테트.. 등등

 

 

최근에 나온 음반으로는 리카르도 샤이와 게반트 오케스트라의 데카음반이 참신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할 음반은 칼 뵘의 재발매 반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런 저런 경로로 이미 거의 다 구해 듣고 있겠지만 나치 부역에 대한 내용 때문인지 전집은 재발매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컬렉터스 에디션으로 다시 나와 반갑다.

 

 

새벽 안개가 자욱한 길을 걸으면 꿈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 착각하게 만드는 6번 <전원>은 목관의 따뜻한 느낌과 현의 유려함이 아찔할 정도이다. 3번 또한 쉽게 지나칠 수 없이 클렘페러와는 다른 면에서 구조적이며 이지적인 느낌을 준다. 단원과 지휘자의 일체감 속에 나타난 결과물로 우표시리즈의 디자인이 아닌 것도 매우 다행스럽다.

 

 

 

 

 

지네트 느뵈, 요한나 마르치, 미셀 오클레르, 롤라 보베스코.. 모두 한 시대를 풍미했다고 전해지는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들이다. 느뵈는 열악한 음질 때문에 아쉽고, 요한나 마르치는 테스타먼트를 통해 나온 슈베르트로 한 차례 큰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미셀 오클레르의 음반은 모 방송에서 극찬의 극찬 속에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브람스는 확실히 뛰어나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처음부터 꽉찬 톤 속에서 자유로움을 구사하는 모습, 흔들림 없으면서도 미묘한 끝처리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 그 위로 발산하는 열정. 

 

 

내지의 해설처럼 요즘처럼 모범생이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연주와는 다른 느낌다. 그러나 코간의 선 굵은 연주나 오이스트라흐의 유려함, 헨릭 셰링의 탄탄함을 갖춘 명연주가 있으며..... 최근의 Batiashvili 등의 연주도 좋다. 오클레르의 연주가 훌륭함에는 이견이 없지만 저마다의 근거 있는 열풍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후 여섯시에서 일곱시로 넘어가는 어느 즈음의 아련함.

그 공백을 채우는 한 시간. 

눈빛과 손 끝 다양한 감정이 섞인 시간은 짧지도, 길지도 않게 흐른다. 지금도. 

 

 

 

 

 

 

내 곁에서 멀어지고 있는 기억.

 

사랑과 슈베르트.

 

이젠 세상에 없는 연주자들.

 

그것과 그들이 내게 불러 위안하는 한 시간.

 

 

 

 

 

 

 

 

 

 

 

나는 어느 이름 없는 꽃
어두운 응달에 둥지를 터
움직이지 못하는 내 몸
아무곳도 갈 수가 없네요

나의 눈물, 나의 미소, 내 마음을 새긴
나의 눈빛 잊지 말아줘요
그대 얼굴, 그대 음성, 그대 웃음으로
행복한 한철을 보내고 시들어가요

다시 그대를 만나는 새 봄이 오면
그 긴 잠을 깰 수 있을까
내 목소리, 내 숨소리, 내 향기까지도
잊지 마요. 잊지 말아줘요

그대 고백, 그대 위로, 그대의 노래들
잊지 않고 나 기억할께요
내 목소리, 내 숨소리, 내 향기까지도
잊지 마요. 잊지 말아줘요

그대 고백, 그대 위로, 그대의 노래들
잊지 않고 나 기억할께요
잊지 못해요. 잊지 못해요

 

 

 

 

 

- 박새별 <물망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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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2-12 0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섯시에서 일곱시 사이. 가족과 떨어져 저 혼자 있는 동안엔 그 시간이 하루중 제일 오묘하고 불안한 시간이었어요. 해가 지면서 마음도 한번 지는지.
많지 않지만 식솔을 거느린 (!) 지금은 그 시간이 아주 분주한 시간대가 되었지요. 집으로 돌아오는 가족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니까요. 완전히 다른 시간대가 되어버렸답니다.
예전에 갔던 장소에 오랜만에 발걸음을 해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 짐작이 안되어요. 그곳이 아직 그곳에 있기나 할지. 요즘은 새로 생기는 곳도 많고 업종도 자주 바뀌고요.
Schubert 피아노소나타 CD 표지의 피아노 건반을 보니 새삼 반가와요. 가지런히,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 오늘은 저도 오랜만에 슈베르트를 들어야겠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전집으로 가지고 있는 작곡가이기도 하니까.
위의 그림에서 커피향이 나네요 ^^

Nussbaum 2014-02-16 14:02   좋아요 0 | URL
hnine님 안녕하세요.
주중에 계속 지방에 내려가 있어서 댓글이 늦어졌습니다. 죄송스런 마음이..

지난 이년간 하루를 보내며 저녁 여섯시에서 일곱시 사이에는 참 많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까닭 모를 슬픔, 기쁨, 희망, 절망 같은 것들의 조각이 켜켜이 쌓여있는 마음에 바람이 불곤 했었지요. 그 시간을 얘기해 주시니 다시 그 시간에 걷던 길이 생각나네요.

hnine님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을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또 바뀌어버린 시간도요. 아마도 그 시간은 늘 새로운 얼굴을 하고 누군가를 맞이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대략 인상은 비슷하지만 늘 조금씩은 다른 무엇으로 말이지요.

예전에 한참을 다녔던 그 동네를 다시 가보니 뭔가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높다랗고 반짝이는 건물이 들어서고 허름했던 그곳은 더 허름한 느낌이 들어 조금은 서글퍼졌는데 너무 이른 봄을 느끼는 내 마음이 그러한 것은 아닐까 .. 하는 생각도 잠깐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시간이 말씀해주신 해가 지는 무렵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해가 지면서 마음도 한 번 지는지.." 참 멋진 표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곳을 다녀오면서 마음이 꼭 세 번 정도 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영화와 음악을 같이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제 서재에 오셔서 슈베르트에 관한 얘기를 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아마도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였지 싶은데요. 박새별의 노래를 들으며 슈베르트가 곡을 쓰고 세상을 떠나면서 들었던 생각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면으로 젖어 들어가면서도 마음은 그 표면위로 떠있고 싶은 마음.

..

아이패드 앱의 한계이겠지만 그림이 정교하게 그려지지 않는데,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잠깐 시간이 날 때 뭔가를 그려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매우 바쁘고 산만한 2월이 지나면 손으로 뭔가를 그려서 다시 페잎에 올려봐야겠습니다.

oren 2014-02-1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구경조차 못해본 명반들을 Nussbaum 님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그림과 함께 소개해 주시니 정말 좋네요.

아바도가 고인이 된 직후 한동안, 라디오를 통해서나마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너무나 멋진 연주들을 자주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는데, 어느새 그의 연주도 차츰 뜸하게 소개된다 싶어 잠시나마 서글픈 생각이 들 때도 있더라구요.

Nussbaum 2014-02-15 15:23   좋아요 0 | URL
종종 oren 님의 서재에 들려 멋진 사진을 보고 오곤 했는데 이렇게 들려주시니 다시 그 사진들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클래식 음반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그 음반에 대한 객관적 정보 이외에는 주관적인 느낌을 덧붙이게 되는데, 나름의 감정을 남긴 페이퍼에 많은 공감을 해주시니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고클래식에서 아바도를 추모하는 배너를 띄워놓은 것 같은데, 그간 여러 회원이 남긴 여러 글에서 아바도의 흔적이 다시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아바도의 브람스 교향곡을 담은 음반이 꽤나 비싸고, 멘델스존이나 슈베르트가 아주 훌륭한데 이렇게 여러 음반을 묶어 나오니 그의 음악 표현력을 살펴보는 데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아마 이미 세상을 떠난, 다른 지휘자가 그렇듯 잠시 잊혀지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그의 이름을 꼭 부르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숲노래 2014-02-12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시간이라는 틀에
한 사람 살아온 나날을 갈무리할 수 있으면,
이 한 시간을 누리면서
(노래로나 영화로나 책으로나)
더없이 아름답구나 싶어 웃음과 눈물이 샘솟겠구나 싶어요.

Nussbaum 2014-02-15 14:53   좋아요 0 | URL
네. 가끔 길을 걷다 보면 내가 너무 빨리 걷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용 걷다보면 걷는 속도도 함께 느려지게 되고요.

그렇게 느리게 근처 공원을 산책하다보면 지난 몇 시간, 몇 나날. 몇 달을 떠올리다보면 지난 시간과 그 시간에 했던 일과 같은 것이 눈 앞에 펼쳐지며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게 되는 것 같네요.

얘기하신대로 생각을 갈무리하고 시간을 잘 누리면 삶에 대해 긍정적이고, 밝은 웃음에 약간의 눈물도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너무 봄이 온다.

 

지나간 구름, 눈()과 차가운 바람이 어둠을 기억하기도 전에.

 

흰 구름, 먹구름, 저무는 햇살, 어두워지는 하늘, 아직 푸른 하늘이 마구 뒤섞인 풍경을 보았다.

아름다운 혼돈이라 쓰고 누군가를 생각한다.

 

아직 늦가을에 멈춘 내 눈과 손과 머리칼은 빈 공백을 채우지 못해 머뭇거린다.

 

 

약간 바람이 곱다.

 

눈끝을 좀 더 아래로, 발걸음을 좀 더 뒤로, 생각을 좀 더 위로.

 

너를 생각하면,

 

흘러가던 것이 멈춰 선다,

 

문득 바람이 멎고,

 

문득 시간이 정지한다,

 

마음속에 단단히 고정된,

 

너의 노래들은 하나의 음표 안에,

 

고스란히 발이 묶인다.

 

문득 손 끝의 뜨거움이 눈동자에 맺힐 즈음에 찾아낸 오후 세 시의 초침.

 

 

 

기억에 녹은 눈 꽃.

 

낮, 밤, 오전, 오후, 아침, 저녁, 새벽..

 

다시 한 번 계절이 바뀌는 자리에 이르렀다.

 

혼란은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닥쳐온다.

 

자꾸만 박자를 놓치며 절뚝거리며

 

텅 빔과 부재와 공백의 거리를 나는

 

천천히 걷는다.

 

눈 꽃 녹은 바람이 빈 시간을 메꾼다.

 

무딜대로 무디어진 눈과 머리와 손 대신 마음에.

 

 

 

너무 봄이 온다.

 

낯선 마음을 안고 걷는 총총..

 

돌아오는 짧은 발걸음 속에 먼지만한 한 톨, 바람이 들어있다.

 

바람은 바람을 품고, 지나간 계절과 흘러간 시간과, 잃어버린 발자국을 더듬는다. 

 

무딘 칼날 같은 밤, 무딘 마음 속에서.

 

 

 

 

 

 

 

밤 열한 시, 음반 하나를 꺼내 든다.

 

 

 

 

 

 

베토벤 현악 사중주 전집. - 베그(Vegh) 쿼텟 / 녹음연도 1972-74년 / 레이블 Naive.

 

 

 

그간 구할 수 없었던 음반이 나왔다.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 전집 또는 선집은 그 음악적 깊이와 내용의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연주 단체(아르테미스, 벨시아 쿼텟 등)가 줄기차게 녹음하고 있는 곡이다. 언젠가 에머슨, 린지, 아마데우스, 이탈리아, 부다페스트, 알반베르크, 타카시가 남긴 녹음들에 대해 얘기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 당시 베그 쿼텟의 음반을 들을 길 없어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바로 얘기해보자면 베그 쿼텟의 장점은 꿈꾸는 듯한 연주에 있다. 물론 이는 이탈리아 쿼텟이나, 아마데우스, 부다페스트 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겠지만 몽글몽글하게 피어오르는 듯한 프레이징 처리는 이쪽이 더 좋다는 느낌이다. 에머슨이나 타카시의 밀도 있는 느낌도 아니고 린지(구반)의 중용적이며 관조적인 해석도 아니어서 어떻게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연주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자연스럽고, 귀여운 맛이 느껴진다. 어린아이같은 천진난만한 연주로 이탈리아 쿼텟의 풍성함과 린지의 유연함을 섞어 놓은 듯한 느낌으로, 듣는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 않는다. 앞서의 단체들과 비교했을 때 초, 중기의 곡에서 더 인상적인 느낌이다. 이 음반은 녹음탓인지 뭉툭함이 적어 각각의 악기가 공평하게 서로 역할을 다하는 느낌이 좋다.

 

이 "꿈꾸는 듯한 연주" 라는 것은 어느 곡, 어느 연주에나 붙여도 상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협주곡이든, 교향곡이든, 독주곡이든.. 그러나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가장 큰 까닭은 이 베토벤 현악 사중주(특히 후기쪽)라는 음악 장르가 네 대의 현악기로 다양한 음악적 인상을 풀어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교향곡이나 협주곡처럼 아주 꽉차있지도, 독주곡처럼 한 대의 악기만이 연주하는 것도 아니다. 아주 깊은 잠은 아니고, 잠깐 졸고 있을 때의 느낌. 몽환적이라기 보다는 살짝 느슨하게 졸린 상태의 그것이다.

 

베그 쿼텟의 베토벤에 대해 굳이 느낌상의 단점을 꼽아 보자면, 약간 건조한 느낌이 든다고 할 수 있는 에머슨이나 타카시의 느낌에서 받을 수 있는 날 선 느낌은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점이다. 음의 격렬함이 적다보니 때로는 두루뭉술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 까닭에서인지 때로는 리듬감이 어눌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베그 쿼텟이 지향하는 바는 그 날 선 치밀함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강렬하고 한껏 부풀린 인상보다는 차분하게 곡을 진행한다. 그것이 베토벤이 각각의 현악 사중주라는 곡을 쓸 때의 의도에 부합하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 음반은 나이브 레이블에서 재발매는 했지만 국내에는 배포를 하지 못한 것 같다. 국내에서 선주문을 너무 적게 했거나 해외에서 출고한 수량이 너무 많아 할당을 하지 못한 듯 보인다. 그러나 아마존이나 프레스토클레시컬등 다양한 경로로 구할 수 있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니 그간 베그 쿼텟의 베토벤을 궁금해 했던 사람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밤과 아침, 마음이 허할 때 쥐어드는 무엇.

 

 

 

PAPER 53

 

http://www.fiftythree.com/paper

 

 

 

 

 

아이패드 에어를 구매하면서 간단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앱을 내려 받았다. 이름은 "PAPER"

잉크펜처럼 생긴 라인툴, 연필, 마카, 수성펜, 수채(또는 동양화)붓을 쓸 수 있으며, 색을 팔레트에서 섞어 사용할 수 있다. 그림을 그릴 때 쓸 수 있는 펜을 따로 구매할 수 있는데 정밀함은 떨어지지만 간결하게 스케치하거나 그림을 그려보기엔 좋다.

 

 

 

 

 

가끔 머리와 가슴이 비어 있는 느낌이 들 때, 나무로 만들어진 펜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따스해진다.

 

 

 

 

 

 

 paper53 pen.

 

 

 

 

 

 

 

 

 

 

 

 

 

 

 

 

동양화스러운 국화, 장미

 

 

 

 

 

 

 

너무 봄이 온다.

 

시간을 꿈꾼다.  

 

마음을 채운다.

 

 

 

 

 

 

 

 

 

 

* 빨간 글씨는 황경신의 책 <밤 열한 시> 에서 인용한 문구.

* 기타 글 & 그림은 Nussb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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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휘트먼 (Walt Whitman) / 1819 - 1892

오딜롱 르동 (Odilon Redon)  / 1840 - 1916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 / 1865 - 1939

기욤 아폴리네르 (Guillaume Apollinaire) / 1880-1918

 

 

 

열음의 한 가운데에서 길모퉁이에 다다른 발걸음 하나를 꺼내본다. 비가 내리는 하늘에 뒷모습을 내어주고, 습기먹은 마음을 얇게 접어본다. 어찌하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어떤 이. 접은 마음에는 풀잎이, 새벽이, 장미가 있다.

 

 

 

살아오며 나의 발걸음이 끝나는 지점은 늘 길모퉁이였다.

직선으로 나 있는 짧았던 길도, 길고 복잡했던 구불구불한 길도.

 

몇 걸음 조심스러운 발자국을 찍으면 나타나는 길모퉁이. 칠월의 회색구름처럼, 부풀어 마음을 누르는 공기처럼, 머리를 짓누르며 내리는 비처럼.


푸름을 머금은 공기와 바람. 

그것은 내게 멀리 떨어져 있었고, 다만 조용한 풀잎만이 내 발 가까이 나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무겁고 검은 상처를 밤새 맞은 아침, 길에서 그 검정을 투명으로 바꾸어 조용히 바람을 맞고 있는 풀잎.

늘 내게 펼쳐져 있던 길모퉁이를 지나, 험한 길 앞에서 조용히 풀잎에게 말을 건넨다. 




 



 

 

풀잎 - <나 자신의 노래> 중 

 

                                                      휘트먼 (Walt Whitman)


한 아이가 물었다. 풀잎이 뭐예요? 손안 가득 그것을 가져와 내밀면서.

내가 그 애에게 무어라 답할 수 있을까 ...... 그것이 무엇인지

그 애가 알지 못하듯 나도 알지 못하는데.


나는 그것이 내 기분의 깃발, 희망찬 초록 뭉치들로 직조된 

깃발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나는 그것이 하느님의 손수건이라고 생각한다. 

향기로운 선물이자 일부러 떨어뜨려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한 구석 어디엔가 그 주인의 이름을 간직하고 있어 그것을 

본 우리가 누구 것이지? 하고 묻게 되는 그런 것.


아니면 나는 풀잎은 아이 그 자체라고 ...... 식물로 만들어진

아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나는 그것이 불면의 상형 문자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것은, 넓은 곳에서든 좁은 곳에서든 똑같이 피어나며, 

흑인들 사이에서, 마치 백인들 사이에서처럼,

프랑스계 캐나다인, 버지니아 사람, 하원 의원들,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들 사이에서처럼 자라난다는 것, 

내가 그들에게 똑같이 주고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금 그것은 내개 깎이지 않은 아름다운 죽음의 

머리칼로 보인다. 


나 너 둥근 풀입을 부드러이 사용하겠다. 

아마도 너는 젊은 사람들의 가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내가 그들을 알았다면 나는 그들을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너는 나이 든 사람들과 여성들로부터, 그들 어머니들의 

무릎에서 곧장 받은 후손들에게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이곳에서 어머니들의 무릎인 것이다. 


....



칠월, 유난히 키가 커지는 풀잎은 낮은 사람들의 것이다. 생각이 낮고, 눈이 낮고, 마음이 낮은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누군가 규격화한 머리와 허리, 눈과 귀가 잘려지기 전의 풀잎은.


눈 안, 바스락거리며 돌아다니는 모래알같은 팍팍함과 증발해버릴 것 같은 느낌의 열기, 낯선이에게 밟힌 상처를 지닌 사람들에게 풀잎은 이슬눈물을 전해준다. 비록 곧 제 몸이 사라질지라도.


닮지 않음의 닮음, 말없음의 가르침, 법칙을 벗어난 법칙. 빛과 물질 아래 나를 자꾸 어딘가로 떠나 보내려는 사람들에게 굵은 목소리로 말없이 소리친다. 짧은 길 끝 좁은 길모퉁이를 걸어도, 나를 잊지 말라고.


습한 공기속에 들어 있는 뜨거운 햇살이 지치게 할 때면 나로 향한 나긋한 목소리, 세상으로 향한 굵은 목소리. 또는 그 반대의 목소리를 늘 잊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열음의 계절에, 여린 마음에게.


풀잎이 떨면 바람이 분다. 풀잎이 눈을 감으면 비가 온다.  



 

 

나의 발은 늘 갓길을 걷고 있었다. 한 낮 뜨거움과 차가움으로 열음을 맺으려는 칠월의 분주한 새벽에도 나의 새벽은 무겁고, 시끄러웠으며, 가볍고, 침묵했다. 


앞으로 나 있는 계단, 그 모서리를 걷던 발은 얇고 시린 피부를 지녔다.  시린 피부를 어루만질 새도 없이 갓실, 아슬아슬한 모서리를 걸으며 노래했다. 


벗겨진 피부, 시리고 지친 눈이 숨을 수 없는 칠월의 새벽이 되면 마음을 먼곳에 두고 눈을 감았다. 멀고 먼 다른나라 어느 곳, 멀고 먼 어느 이의 마음에 닿을 것처럼.


짧은 새벽이 지나면 네모진 건물, 세모진 무수한 마음들 속으로. 

갓길같은 그 도형의 선을 따라 끊임없는 길을 걷는다. 마음이 띠를 어딘가에 풀어둔채.

 


 


 



 

<새벽>


                               W. B. 예이츠 


나 무심하고 싶어라, 

브로치의 핀으로

도시를 재는 저 늙은 여왕이나

자신들의 현학적인 바빌론에서 

제 길을 가는 속 편한 행성들과

달이 뜨는 곳에서 사라지는 별들을 보며

서판을 가져와 셈을 하던

시들어 빠진 남자들을 내려다보는 

새벽처럼.

나 저 새벽처럼 무심하고 싶어라, 

그저 서서, 말들의 구름 진 어깨너머

반짝이는 마차를 흔드는 새벽처럼 

어떤 지식도 지푸라기만 한 가치도 없으므로

나는 무심하면서도 제멋대로인 새벽이고 싶어라.

 


 

마음의 띠를 풀고 풀어, 무심함이 무심함을 넘어설 때.   

이른 새벽이 걷히고 풀이 노래할 때. 그제서야 잔뜩 부풀어 오른 공기를 분주히 담는다.  


깊은 여름의 날카로움, 카드처럼 평평해진 일상의 명료함.

짧고 깊은, 밤 사이 저마다 의미와 그로 빚어진 행동을 덮었던 희고 얇은 이불을 걷어내고 그렇게 갓길을 걷는다. 

 

 

 

 

 

 

 

 

<미래>

 

                      기욤 아폴리네르

 

밀짚을 올리자

눈을 쳐다보자

편지를 쓰자

명령을 기다리자

 

사랑을 생각하며

파이프를 피우자

진지는 저기 있나니

장미꽃을 바라보자

 

분수는 마르지 않았고

밀짚의 황금도 시들지 않았다

꿀벌을 쳐다보고

미래 때위는 생각지 말자

 

우리들 손바닥을 들여다보자

손바닥은 미래와 같이

눈이요 장미요

그리고 꿀벌이다

 

 

열음의 한 가운데에서 길모퉁이에 다다른 발걸음 하나를 다시 걷어낸다. 비가 그친 하늘에 뒷모습을 내어주고, 팽팽하게 마른 마음을 다시 펼쳐본다. 어찌하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어떤 이. 장미 향기 한 줌 손에 쥐고 서 있다.


 

 

 

 


 

 

 

<한낮의 천문학>

                                                  가을방학

 

 

낯선 도시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

해 떨어지는 시간을 적기

그림자가 섞이는 그때 비로소 난 도착할 수 있는 것


낯선 그대가 내게 퍼붓는 질문들

겸손한 학생의 눈빛으로

천문학자가 밤을 기다리듯 조금만 시간을 가져요


어제 일과 작년의 다짐과

어린 시절의 반짝거림들

이 모든 것들을 어찌 다 전하나요

한낮 창가의 문답 몇 개로 


숱한 밤을 함께 보내며

켜켜이 쌓인 은하수만큼 많은 얘길 나눠도

동이 트고 태양이 뜨면 연인들의 별은 빛을 잃던 걸요


잔인한 한 낮 더위에도

제자리에 붙잡한 별들이 때론 안쓰럽죠


숱한 밤을 함께 보내며

켜켜이 쌓인 은하수만큼 많은 얘길 나눠요

동이 트고 태양이 뜨면 

겸손한 학생이 되어 기다려요. 우리..


 


 







 

칠월은 누군가가 아닌, 어딘가에 말을 건네기에 좋은 달이다. 

잔뜩 부푼 공기, 날카로운 명암을 만드는 햇빛, 변덕스러운 비와 구름, 어느새 훌쩍 커버린 풀잎, 아주 투명하고 고운 두께와 질감을 가지고 밤을 덮는 새벽. 


늘 그렇게. 길가를 따라 잠시 걷다 만난 길모퉁이에서 뒤돌아보며 묻기. 

열음의 한 가운데에서 풀잎과 새벽은 침묵의 대답을 건넨다. 대답없는 답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명료한 빛과 어둠이 만들어내는 편평함 속에서, 견디고 또 견디어낸 어떤 이의 마음을 듣는다. 설운 장미향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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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24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잎 마음이 되어
풀잎 노래를 부르고
풀잎 동무를 사귀니
모두 푸른 빛이 되겠군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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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한 영화 <러브 레터> 의 한 장면.


이 영화에는 후지이 이츠키가 읽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가 나온다. 

영화의 얼개와 잘 맞아떨어진 느낌. 두툼한 양장본으로 되어 있던, 하얀 표지의 책. 

아픈 추억, 좋은 느낌을 담은 기억의 단편의 향기를 다시 꺼내 놓으라 한다. 


잊은 줄 알았던.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별과 재회 또는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이다. (...) 작품 세계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것은, 우리가 부단히 죽어 가고 있다는 세네카식의 인식이다. 특히 망각현상이 그 극명한 예이다. 까마득히 먼 유년시절에 겪었던 일들은 물론, 불과 며칠 전의 일들도 쉽게 잊거나 잊혀진다. 그것이 프루스트가 인식한 우리의 정서적 모습이다. 다시 말해 살아 있음의 뚜렷한 징표인 우리의 정서적 퇴직물은 덧없이 지워진다. 


그러나 영영 지워지는 것일까? 그렇게 죽어 소멸되는 것일까? 그것이 '잃어버린 시간' 의 중심적인 의문이다. (...) 잃어버린 시간은 그토록 하찮은 사물에 의해 촉발된 황홀감이나 격정의 비밀을 깨달아 가는 역정을 그리고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터득한 '진정한 예술'의 본질을 규정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말하는 '잃어버린 시간'은 '잃어버린 줄로 믿었던 시간'을 가리키는 반어법일 뿐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존재적 체험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조선일보 2005년 4월 9일 "책 읽는 대한민국"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편 발췌 (이형식 교수)



이 방대하고 읽기 까다로운 소설을 따라 읽어 나가기도 벅찬데, 이 소설을 과연 내가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온갖 외피같은 부연 설명을 제거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란 이 소설에 대한 인상뿐일지 모른다. 프루스트의 소설은 명료함과는 거리가 있다. 이 소설은 한 번에 손에 잡히지 않는다. 소설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면 손에 잡히기는커녕 손가락 사이로 그 텍스트들이 줄줄 새어 흩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왜 이 소설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그런 텍스트가 흩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일까? 지독한 만연체, 하나의 기억을 회상하는 문장의 길이와 두께,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화가와 음악들이 파편처럼 마르셀의 기억 저편에 두툼한 먼지구름을 일으켜 그것을 감싸고 있다. 하여 나는 이 텍스트들을 읽을 때마다 하르트만이 제시한 '전경'과 '후경' 을 넘나들며 마르셀과 프루스트의 기억을 함께 더듬게 된다. 

 

 

마르셀 프루스트 (1871년 7월 10일 - 1922년 11월 8일) 의 삶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니체와 프로이트가 매우 큰 영향력을 떨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태어나 살았으며 러스킨과 모리스가 들고 나온 미술공예운동의 수공예와 과감한 재료의 사용과 유기적 곡선을 그 특징으로 하는 아르누보적 예술의 중심에서 살았다. 미술사적으로는 후기인상의 화가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발휘하던 시기로, 어쩌면 그의 작품은 프로이트가 예술에 가져다준 초현실적인 의식 흐름과 당시 예술적 분위기를 함께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 소설은 모두 일곱 권 (7부)로 되어 있다. 그 간단한 줄거리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 - 책, 2010.3.26, 들녘)

 

「스왕네 집 쪽으로(Du côté chez Swann)」라고 이름 붙여진 첫 권은 마르셀의 유년기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한다. 그가 해마다 부모와 함께 콩브레에서 보냈던 여름 휴가의 기억들이 그려진다. 마르셀이 이 초창기 시절에서 떠올리는 유일한 기억은 잠자리에 들기 전의 인사를 거부했던 연극이다. 그 집안의 친구인 스왕이 저녁마다 찾아오면 당시 열 살배기인 마르셀은 어머니에게 받고 싶어했던 잘 자라는 뽀뽀도 받지 못한 채 어김없이 잠자리로 가야 했다. 어머니의 관심을 계속해서 잃게 되자 이것이 평생의 상처로 남게 되고, 그 내면적 상처는 이후 마르셀에게 여성에 대한 상실의 불안과 공격적 질투심이라는 형태로 남게 된다. 잠자리 인사의 에피소드가 유년기의 유일한 기억인 반면에, 저 유명한 마들렌 과자 맛의 느낌은 돌연히 유년기 당시에 있었던 인물들, 장소들과 더불어 그의 기억을 다시 살아나게 만든다. 사랑받는 할머니, 고집 센 집안 하녀 프랑수아즈, 우울증을 보이는 레오니 고모, 서양산사나무 울타리, 콩브레의 교회 등까지 말이다.


제1권의 2부는 「스왕의 사랑」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그는 예술 애호가 스왕과 아주 수상한 소문이 떠도는 부인인 아름다운 오데트 드 크레시 사이의 연애담을 서술한다. 그 둘은 베르뒤랭 부인의 살롱에서 만난다. 그 살롱은 상류 시민층이 모이는 곳으로 귀족들이 모이는 게르망트 살롱과 함께 소설에서 사회적 배경의 초점을 이루는 곳이다. 스왕은 오데트가 자신을 속였다고 의심하고 엄청난 질투심에 시달린다. 그의 사랑이 식었을 때 그는 오데트와 결혼한다. 「스왕의 사랑」은 아마도 프루스트의 소설을 처음 읽으려는 사람이 먼저 떼어 읽어볼 수 있는 부분으로 가장 적합할 것이다. 이 부분은 그 자체로 완결된 이야기를 형성한다. 화자의 탄생 시기에서부터 시작하는 이 부분은 소설의 모든 부분들 중에서 통념적인 독자의 기대에 가장 상응하는 곳이다.

제2권의 제목은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À l'ombre des jeunes filles en fleurs)」다. 사춘기로 들어선 마르셀은 난생 처음으로 성적인 경험을 하게 되고, 스왕의 딸인 새침떼기 질베르트를 샹젤리제에서 재미 삼아 만나 잊지 못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천식에 시달리던 마르셀은(프루스트도 그랬다) 열일곱 살 때 그의 할머니와 함께 노르망디 해변의 발베크로 해수욕을 하러 간다. 그곳에서 그는 로베르 드 생 루를 사귀게 된다. 생 루는 대단히 매력적인 젊은이인데, 훗날 동성애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질베르트와 결혼한다. 마르셀은 생 루의 삼촌 샤를뤼 남작도 만나는데, 그는 이후 동성애를 통해 치명적인 결과를 맞이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르셀은 발베크에서 자신의 본격적인 사랑의 주인공 알베르틴을 만나게 된다. 마르셀이 그녀를 처음 본 것은 그녀가 여자 친구들과 함께 있던 해변 거리에서였다. 그는 아름답고 활동적이고 현대적인 젊은 여성을 발견하고는 아주 놀란다.

제3권 「게르망트가의 사람들(Le côté de Guermantes)」에서는 마르셀이 그의 부모와 함께 파리로 이주한다. 그들은 이제 게르망트 저택에 속하는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마르셀은 (늘 그랬던 것처럼) 먼발치에서 게르망트 공작 부인을 사랑한다. 마침내 그 부인을 만났을 때 그는 (역시 늘 그랬던 것처럼) 실망한다. 당시 사회생활의 중심인 살롱의 끊임없는 대화 소재는 유대인 대위 드레퓌스 사건(드레퓌스라는 유대인 대위가 군 당국이 조작한 증거를 근거로 국가반역죄 판결을 받았다가 혐의를 벗고 석방되자 사회에서 반유대인 물결이 일어났던 사건­옮긴이)이다. 드레퓌스는 1894년 이른바 모반죄라는 혐의를 쓰고 유형지인 섬으로 유배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프랑스 내정에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제4권 「소돔과 고모라(Sodome et Gomorrhe)」의 주요 테마는 동성애다. 처음에 마르셀은 우연히 샤를뤼 남작의 동성애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다. 남작은 이 동성애 사건으로 점차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그 사이 알베르틴을 다시 만나게 된 마르셀은 그녀 역시 동성애적 성향이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제5권 「갇힌 여인(La Prisonniére)」에서 마르셀은 알베르틴을 자기가 있는 파리로 불러들인다. 그녀는 그의 집에서 기거한다. 알베르틴이 외출하면 그는 질투심에 불타 그녀를 감시한다. 소유욕에 사로잡힌 마르셀의 태도 때문에 알베르틴은 어느 날 아침 그 집을 떠나고 만다.

그 다음 제6권 「사라진 알베르틴(Albertine disparue)」에서 마르셀은 친구 생 루에게 알베르틴을 수소문하여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마르셀은 알베르틴이 승마를 하다 사고가 나서 치명적인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7권이자 마지막 권인 「되찾은 시간(Le Temps retrouvé)」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 마르셀은 게르망트 공작 저택으로 마티네를 방문한다. 그 집의 서재에서 마르셀은 문득 시간이 흐르는 것을 기억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르셀은 이런 깨달음을 오래 간직하기 위하여 소설을 쓰고자 결심한다. 그래서 프루스트의 소설은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처음으로 회귀하게 된다. 마르셀은 이 소설을 쓰게 되고,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는 비로소 독서를 마치게 되는 셈이다.


 


 

1부 <스완씨 댁 쪽으로>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을 잠시 옮겨보자.


"오랜 시간,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 왔다. 때로 촛불이 꺼지자마자 눈이 너무 빨리 감겨 '잠이 드는구나.' 라고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그러다 삼십여분이 지나면 잠을 청해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에 잠이 깨곤 했다. 그러면 나는 여전히 손에 들고 있다고 생각한 책을 내려 놓으려 하고 촛불을 끄려고 했다. 나는 잠을 자면서도 방금 읽은 책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는데, 그 새악은 약간 특이한 형태로 나타났다. 마치 나 자신이 책에 나오는 성당, 사중주곡, 프랑수와 1세와 카를 5세와 경쟁관계라도 되는 것 같았다. 이 믿음은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몇 초 더 지속하여 내 이성에 거슬리지는 않았지만, 내 눈을 비늘처럼 무겁게 짓눌러 촛불이 꺼졌다는 사실조차도 알아치리지 못하게 했다. (...)


나는 어린 시절 뺨처럼 팽팽하고 싱그러운 베게에다 뺨을 갖다 대었다. 시계를 보려고 성냥을 켰다. 곧 자정이다.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환자가 낯선 호텔 방에서 잠이 들었다가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깨어나 문 아래로 스며든 한 줄기 햇살을 기뻐하는 순간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벌써 아침이라니 ! 곧 종업원들이 일어날 테고 종을 울릴 수 있고, 그러면 누군가 와서 보살펴 주겠지 ! 고통을 덜 수 있다는 희망이 아픔을 견뎌 낼 용기를 준다. (...)


다시 잠이 들었다. 이따금 나는 아주 짧은 순간, 나무 벽판이 규칙적으로 삐걱대는 소리를 듣거나, 어둠의 만화경을 응시하려고 눈을 뜨거나, 아니면 의식의 일시적인 빛 덕분에 수면을 음미하는 그런 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때 가구며 방이며 모든 것은 잠 속에 잠겨 있었고, 그 작은 부분에 불과한 나 역시 무감각한 잠의 세계와 하나가 되려고 이내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또는 잠을 자면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내 원초적인 삶의 시기로 금세 되돌아가, 작은 할아버지가 내 곱슬머리를 잡아당기던 어린 시절 공포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렇게 잠을 깨는 과정에서의 의식을 적어 내려가는 장면을 굳이 분류하자면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10페이지 가까이 되는 그 길이 속에서 사물과 나와의 관계, 그 오랜 관계에서 빚어진 심리적 거리, 언젠가 있었던 사건과 그 사건이 불러일으키는 다채로운 프리즘의 환영들, 그리고 사라져 없어진 것 같았던 기억을 인간의 오감각으로 재생해내고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소설 속에서 그것을 이렇게 얘기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과거도 마찬가지다. 지나가 버린 과거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헛된 일이며, 모든 지성의 노력도 불필요하다. 과거는 우리 지성의 영역 밖에,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우리가 전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떤 물질적 대상 안에 숨어 있다. 이러한 대상을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에 달렸다." (p.85)

 

 


한편 이 소설은 끊임없이 화가와 작곡가를 등장시킨다. 너무나 유명한 인물들과 작품이 나오는데 나의 견해로는 대부분 이야기의 흐름, 또는 인물의 유형을 드러내는데 보조적인 장치로 배치한 것이 아닌가 싶다. 휙휙 스케치하듯 그림을 그린 티치아노와 바르비종파 화가 코로, 베토벤의 교향곡, 프란츠 리스트의 작품, 모차르트의 우울한 클라리넷 오중주 등 프루스트는 그의 유복한 가정환경에 걸맞은 다양한 교양적 지식을 뽐낸다. 살짝, 조금씩 겹쳐 나오는 이런 부분들은 누군가에겐 명료함을 누군가에겐 쓸데 없는 사족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예시를 나열해보자. 스완이 등장하고 나서는 이런 부분을 만날 수 있다. 


할머니는 내 방에 가장 아름다운 유적들이나 풍경 사진을 걸어 주고 싶어 하셨지만, 막상 그런 사신들을 구입하려고 하는 순간에는, 비록 상당한 미학적 가치가 있다 할지라도, 사진술이라는 기술 복제 방식에서 저속함과 유용성을 발견하셨다. 그리하여 궁여지책으로 상업적인 저속함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다소나마 저속함을 줄이면서 그 상당 부분을 예술적인 것으로 대체하고, 예술의 여러 '두께' 를 입하려고 하셨다. 그래서 샤르트르 대성당이나 생클루 분수, 베수비어 화산을 찍은 사신 대신, 혹시 어떤 위대한 화가가 그린 것이 없는지 스완 씨에게 알아본 다음, 차라리 코로가 그린 [샤르트르 대성당] 이나 위베르 로베르가 그린 [생클루 분수], 터너가 그린 [베수비오 화산] 을 찍은 사진을 내게 주는 편을 더 좋아하셨다. (...) 그러나 이런 식으로 예술을 이해하고 선물하는 방식이 반드시 성공적인 결과마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석호를 배경으로 그렸다는 티치아노의 데생을 보고 내가 베네체아에 대해 가지게 된 관념은, 분명히 단순한 사진이 주는 관념보다 훨씬 부정확했으니까 (p. 78-79)

 

 


그리고 <스완씨 댁 쪽으로> 2권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렇다면 알겠소, 그럼 안단테만 연주하라고 하겠소." 하고 베르뒤랭 씨가 말했다. "안단테만이라고요?" 당신은 참, 바로 그 안단테가 내 팔과 다리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걸요. 참으로 대단하신 주인양반이군요. <제 9교향곡> 에서 마지막 장만 듣자고 하거나 <마이스터징어> 에서 서곡만 듣겠다고 하는 것과 다름없군요." 베르뒤랭 부인이 말했다. (p.41)


"스완은 울적하고 냉소적인 기분으로, 플루트의 아리아에 이어 연주된 리스트의 피아노를 위한 인터메조 <새와 이야기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를 들으며 피아니스트의 현란한 연주를 듣고 있는 두 부인을 바라보았다. (p.242)


"오리안, 내일 저녁 잠시 우리 집에 와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오중주곡을 들어 주었으면 좋겠어. 네 의견을 알고 싶으니까." (p.250)



이렇게, 긴 호흡으로 제시하는 수 많은 생각과 인상들이, 당시 상류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들, 많은 화가와 문필가, 음악가들과 함께 우리에게 한꺼번에 밀려옴으로써 우리는 텍스트 속에 숨겨진 감정의 홍수를 만난다. 바로 그 부분이 이 소설을 그리 손에 쥐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날씨, 계절, 사물, 사람, 사회, 예술작품, 사랑... 우리가 살아가며 겪고 느끼며, 감정과 마음의 얇은 판에 새기는 무수한 감정들. 각각 저마다의 무수한 경험속 장면들에 새겨진 감정을 일깨우고, 또 그것을 느끼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이 소설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나는 어떤 소설이든 "반드시 읽어야 할 목록"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봄날의 빛이 사그라진 건물 안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과 먼지의 켜가 겹겹이 쌓인 어느 조용한 방 안에서, 잊어버린 줄만 알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줄기 기억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 것은 꽤 근사한 일이 될 것 같다. 아주 미묘한 자국을 남기며 기록했던 누군가의 향기와 말이, 날씨와 계절에 따른 나의 시절에 추억이 진정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프랑스의 벨에어(BelAir) 에서 프루스트의 소설을 바탕으로 발레를 제작한 DVD 가 나와 있다. 롤랑 쁘띠가 안무를 맡고, 베토벤, 드뷔시, 포레, 프랑크 등의 작곡가의 음악을 소설의 부분을 재구성하여 챕터별로 제시하고 있다. 소설을 바탕으로 그 분위기를 묘사하는 장면은 함축적이면서도 프루스트의 소설의 분위기를 잘 묘사해 주고 있다.


   

 

 * 오른편 박스셑에는 왼편의 DVD가 함께 들어 있다.

 


 







 


 

마르셀의 눈으로 본 세계. 

한 걸음 한 걸음 세상을 돌아보며, 사람을 만나고, 사물을 만지고, 세심한 눈으로 그것을 관찰하고 또 마음으로 보여주는 글과 소리, 감각들.

 

비록 프루스트가 남긴 문학적 성취를, 얕고 모자란 내 눈과 마음으로 마나 받아들일 뿐이지만 지금은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 언젠가부터 더 빨라지고, 지루해진 일상 속에서 부서지기 쉬운 저마다의 마음속 얇고 부드러운 기억의 판에 나 있는 그 홈을 따라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떠날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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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15 0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며 누린 즐거움을 떠올리며
살짝 옮겨적을 수 있으면
넉넉하리라 생각해요.

Nussbaum 2013-07-21 15:02   좋아요 0 | URL
네. 가끔 책에 적힌 낱말, 문장을 옮겨 적을 때가 있는데 그럴때마다 글자들을 어루만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여름이 가져다 준 넉넉한 마음을 품고 찬찬히 글을 보듬어봐야겠습니다.
 

 

 

 

 

 

[여름밤]

 

- 메리 올리버

 

 

밤은 너무도 길고, 그 페이지들은 너무도

천천히 넘어간다.

누가 그걸 읽을 수 있겠는가?

누가 그 마지막 챕터를, 후기를

짐작할 수 있겠는가?

 

달빛은 별개의 이야기, 대개 연인들의 이야기다.

별빛도 별개의 이야기, 우리가 안개 낀 하늘에 바라는 하늘의 이야기다.

 

그리고, 가끔, 작은 음악도 있다.

흉내지빠귀도 잠들지 못하는 듯.

 

밖으로 나가면 풀이나 비 냄새를 맡는다.

아니면 꿀주머니 냄새, 또 하나의 깨어 있는 -

 

파란 붓꽃, 너무도 곧고, 너무도 달콤한 입술을 지닌.

어둠 속에 홀로 부드럽게 피어 있는.

 

 

 

 

 

 

 

 

 

 

 

칠월은 갑자기 나타난다. 저 먼 곳, 오래전 잊혀졌던 누군가의 방문처럼.

한 때는 가까웠으나 이제는 반가울 리 없는 발자국 소리.

그것은 흡사 진하게 흩뿌리고 사라지는 빗줄기와 같다.

 

한바탕 마음을 뒤척이고 나면,

감정의 평행선을 오래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닿아있다.

 

잠시 함께 할 만 하다고.

살갑게 얘기할만하다고.

꾸벅, 더위에 깨어 꿈 얘기를 들려줄 만 하다고. 

 

강한 어깨 뒤에 감추어진 많은 눈물과, 세월의 흔적, 열정의 이야기들.

짧지만 긴 밤이 오면 그 이야기가 새어 나온다.

저 멀리, 아스라이 멀어진 것들.

 

칠월. 무뚝뚝하게 검게 그을린 얼굴 뒤엔 그런 것들이 있다.

그리고, 마침내 애써 그 안의 그것을 찾았을 때. 

밤이 지나 조금씩 동이 터올때면 작별인사를 건넨다. 조용히.

 

 

 

 

 

 

 

Leo Brouwer / Un Dia de Noviembre / Tatyana Ryzhkova - Guitar

 

 

7월의 느닷없는 빗줄기.

어느 11월, 조금은 추운 모습을 하고 나타날 그 누군가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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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7-03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칠월 시원하고 축축하고 후끈후끈 찾아와 지나가면
팔월과 구월과 시월을 지나
산들산들 상그러운 십일월이 오겠군요

Nussbaum 2013-07-03 22:17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안녕하세요 :)

말씀하신 대로 칠월은 시원하고 축축하고 후끈후끈 찾아와 지나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보며, 십일월의 겨울을 재촉하는 빗줄기를 잠시 떠올리게 되었는데요.
이렇게 느닷없지만, 뭔가를 재촉하는 비는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어떤 결 같은 느낌을 줍니다.

이제 찾아올 칠월을 잘 맞이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