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의 밤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박솔뫼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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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은 그제야 6을 그릴 수 있었다. 아주 정확한 곳에 6을 그릴 수 있었다. 한솔은 언제부터 보편시민에서 박탈당한 것인지 27번 창구의 직원에게까지 설명했다 창구를 오가며 스물일곱 명의 직원에게 서른네 번 정도 설명했다. 한솔의 인생에서 무언가 사건이 있었고 그 이후, 이전의 삶을 회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보편시민에서 박탈당했는지 또한 배제라는 말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반복해서 설명했다. 그러고 나서야 서류에 필요한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한솔은 그 서류로 보편시민 등록을 마치고 이제 프라하에 집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한솔은 프라하로 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 p.55

이 소설은 작가 본인도 소설 속에 썼듯, 명백하게 카프카의 영향 아래 씌어진 소설이다.

사실 카프카 이후, 세계의 많은 작가들은 전부, 마치 거대 행성의 힘에 빨려 들어온 것처럼

카프카의 중력권 안에 좌표를 찍고 있다.

박솔뫼의 이 소설도 그런 위성소설 중 하나다.

그러니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언제나 생각한다. '이런 책을 백 권 읽을 바에는 카프카의을 한 번 더 읽는 것이 낫지.'

레이먼드 카버를 흉내낸 미국소설 풍의 책을 읽고, 로베르토 볼라뇨를 흉내낸 남미소설 풍의 책을 읽고, 프란츠 카프카를 흉내낸 동유럽소설 풍의 책을 읽는 것은 힘빠지는 일이다. 그 돈과 시간과 체력으로 레이먼드 카버과 로베르토 볼라뇨와 프란츠 카프카를 그냥 오리진으로 읽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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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의 밤'은 여행기다.

두 인물 - 한솔과 나미는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부산에서도 만남을 이어간다.

기차에서 만났던 그들은 부산 여객선 터미널에서 만나 일본으로 떠나는 배들을 응시하며 대화를 나눈다.

난데없는 만남과 어지러운 사유, 뭔가 비껴나가는 듯한 대화, 통합되지 않는 이야기들, 맥락 없는 돌아다님.

홍한솔 김영우 조유이 나미 신유미 등등 어떤 이름으로도 존재할 수 있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다. 홍상수 영화 같다.

한솔은 아마도 성전환 수술을 받은 -M F의 기호 사이에서 흔들리는 존재 같고, 나미는 사이비 종교 교단에서 탈출해 나온 사람이다.

들은 육체-정신의 측면에서 '불안'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부산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더욱 증폭되고 일본으로 건너가려는 생각 속에 더욱 적극적으로 '향유'된다. 이 점이 흥미로운 것이다. 불안은 도망쳐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향유된다'.

존재의 근원적 불안을 소설 전체의 정조로 삼고 있는 책.

'나는 누구이고,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탐정' 이라는 은유로 드러내는 책.

그러나 불안에서 출발한 그 질문은 불안으로 수렴되지 않는다. 불안은 거기에 있고 그것은 우리의 새로운 흥밋거리다.

우울증과 불안증은 현대인의 새로운 쾌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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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이즈에 비해 책값이 비싸고 인쇄 상태가 나빴다. 비뚜름하게 인쇄가 되어 있어 읽기에 힘들었다. 독립출판 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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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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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황정은 작가가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출간하고 상수동 이리 까페에서 낭독회를 가졌을 때, 독자와의 질문 대답 시간에 내가 첫타자로 '이 책에는 문단 첫 들여쓰기가 되어 있지 않던데 의도적인 것이냐' 라고 물었다. 작가는 대답했다. '의도적인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질의는 거기서 끝났다. 나는 당연히 의도적이라면 왜 의도적인 것인지에, 무슨 의도였는지에 대한 후속 답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질문용 마이크는 다음 사람에게로 넘어갔다.


우리집에는 황정은 작가의 전작이 다 있는데, 2010년 민음사 출간작 '백의 그림자'는 문단 들여쓰기가 되어 있지 않다. 2012년 창비에서 출간된 단편소설 모음집 '파씨의 입문'은 문단 들여쓰기가 되어 있다. 바로 이 다음책이자 내가 의문을 제기했던 2013년도 출간작 '야만적인 앨리스씨' 부터는 다시 문단 들여쓰기가 되어 있지 않고, 그때부터 '계속해보겠습니다'와 이번 '디디의 우산' 역시 들여쓰기를 거부하는 형태로 문단을 짜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디디의 우산' 수록작 'd'의 전작격이라 할 수 있는, '아무도 아닌' 수록작 '웃는 남자'의 경우에는 들여쓰기가 되어 있다.


단 한 칸. 두 번의 스페이스 바. 왜 이것을 하지 않을까? 하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어떤 소설에서는 하고, 어떤 소설에서는 하지 않는다. 그냥 우연인가? 랜덤인가?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럼 무엇인가? 어떤 의도가 있고 무슨 패턴이 있는가? 답을 모르겠다. 이거 하나가 나를 붙잡고 놔주질 않는다.


의도와 목적. 이런 것 없이 씌어지는 소설-책이 있을까? 작가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 긴 시간과 여러 사람의 공을 들여 기필코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의도'가 없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소설-책을 읽을 때마다 언제나 이것을 찾는다. 마치 계주 선수처럼, 저 뒤에서 달려와 내 손에 파란 바통을 넘기려고 하는 작가의 페이스에 맞춰 나도 먼저 달리기를 시작하며, 그 바통을 제대로 받아쥐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리고 그 바통을 쥐면, 다음 선수에게 달린다.


'디디의 우산'은 명백히 목적이 있는 소설이고 나는 이런 것을 좋아한다. 'd'를 읽으며 이 소설을 쉽게 독해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누구일까를 생각했다. 1층인 집이 묘한 경사를 타고 내려가 반지하가 되어 버리는 그런 집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을 생각했고,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세운상가의 골목길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을 생각해보았다. 그렇다, 이 소설은 철저히 '공간성'에 대한 소설이었다. 완만한 내리막의 반지하와, 골목길에서 마시는 양귀비차, 1950 6 28일 폭파된 한강 다리, 일본에서 건축 공부한 자들이 지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세운상가와 창문도 없고 오디오 놓을 자리도 없는 고시원 방. 그리고 차벽. 광화문을 에워싼 거대하고도 거대한 차벽-이른바 명박산성. 어디로도 빠져 나갈 수 없어 카프카의 ''에 나오는 K처럼 헤매고 헤매고 또 헤매야 하는 청계천과 종로의 거리들. 이 소설은 '공간' 에 대한 서사이며 '공간'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지도였다. 그리고 그 공간성의 제약을 기어이 넘어설 수 있는 '소리'-진정한 파동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윤선오 노인이 꿈꾸던 물 흐르는 소리, d가 고시원에서 재현하고자 했던 엘비스 프레슬리, 세운상가 564호에서 울려 퍼지는 진공관의 소리까지. 그 소리들은 '공간'-'space',두 번의 스페이스 바, 달칵달칵, 만들어진 한 칸의 공백-을 넘어서려는 어떤 결정적 파동이다. '탈출이 불가능하다면 여기서 날 수 밖에, 여기서 마찰하는 수밖에 없어.'1) 소설의 의도와 목적은, 소설의 형식과 맞물리고 독자는 여기서 쾌감을 느낀다. 문자를 해독하는 사람, 문자열이 만들어낸 형식을 감상할 수 있는 사람, 시야가 멀어지고 있는 '아무것도 말할...'의 주인공에게 너무나 잔인하게도, 오직 묵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쾌감이다.


그러나 공간을 넘어서는 파동을 말하는 듯한 이 소설은, 결국 그 '공간'에 대한 밀도 깊은 묘사로 최종 기억된다. '디디의 우산'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이나 '천변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은 '쏘다니기'의 서사였고 청각 이미지보다 시각 이미지에 강한 나-아마도 다수의 현대적 독자들에게 결국 기억 남는 것은 철저히 현실적인 그 공간들이다. 오늘날 박태원의 소설들이 그러하듯 '디디의 우산'도 언젠가 하나의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가장 가깝게는 세운상가가 사라지는 날, 학생들이 갇혔던 연세대 생활관이 철거되는 날, 명박산성과 세월호 집회가 잊혀지는 날, 고시원과 반지하가 (간절히 바라옵게도) 사라지는 날, 그렇게 되리라. ' TR이나 IC가 발명되기 전에 나온 빈티지'인 여소녀의 진공관처럼, '세종대로 사거리는 두개의 긴 벽을 사이에 둔 공간이 되어' '고요하게 정지되어 있어 진공이나 다름 없고 '저 소리는 이 진공을 도저히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2)하지만 기어이 그 소리는 진공관 안을 뜨겁고 뜨겁게 채워 수백 만개의 불꽃이 되고 그것을 의심하는 자의 손을 아프게 하고 뻗어 뻗어 나가리라. '이제 그 얘기 그만하면 안 될까.' 하고 말하는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는, 2017 3 10일 오전 열한 시-생명권 보호 의무에 대한 판결문을 읽는 소리. 공간과, 공간이 만드는 진공에 대해, 그리고 진공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기어이 얘기하고야 마는 이 현실밀착의 목적 분명한 소설은 불완전한 혁명의 시대가 가고 언젠가 그 시절의 레퍼런스가 필요한 날 반드시 다시 책장에서 꺼내지리라. 몇 번이고.







1) 황정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디디의 우산", 창비, 2019, p.292'

2) 황정은, 'd', "디디의 우산", 창비, 2019, p.13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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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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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어느 매거진에서 (아마도 채널예스였던가) 정세랑 작가의 인터뷰를 보고 이 사람 괜찮네, 싶어 구매했다. 청소년 소설처럼 깜찍한 표지인데, 내용도 깜찍하다. 


첫 소설 '웨딩드레스 44'는 웹소설 시대에 맞네, 깜찍하다, 싶었고 두번째 소설 '효진'은 흔한 느낌 있었고 살짝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이 정도면 역시 귀여운 범주에 넣어줄 수 있었다. 흥미가 돋기 시작한 건 세번째 소설 '알다시피, 은열' 부터였다. '은열'이라는 역사 속 인물을 조사하는 역사학과 대학원생의 글로벌한 동아시아 연합 밴드의 활동 내용이었는데, 꽤 괜찮았다. 경계를 가볍게 넘어다니는 젊고 발랄한 애들 이야기가 보기 좋았고 질척해지지도 암울해지지도 않는 마무리가 산뜻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소설 하나를 뽑으라면 네 번째 소설 '보늬'겠다. 언니 보늬의 돌연사 이후 돌연사.net을 만들고, 언니철머 갑자기 죽음을 맞은 사람들을 우주의 별처럼 인터넷 공간에 띄워놓는 작업을 하게 된 동생 보윤과 그들의 친구 규진, 매지의 이야기다. 인물들에 대한 이상화가 없었고, 역시 위에 적은 질척함과 암울함 대신 솔직함과 발랄함이 과장되지 않게 칠해져 있어 매력적이었다. '개인적 비극을 딛고 일어난 젊은이들이 사회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멋진 작업을 해냈'으며 '뿌리 깊은 착취의 구조를 점선으로나마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고' 보이고, '요새 젊은이들은 그저 무기력하다는 윗세대의 오해를 풀 때가 되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좋은 소설이었다.(보라색은 작중에서 돌연사.net을 취재한 기자의 기사를 인용) 이것은 작가가 인물의 입을 빌어 '개떡같이 말했지만 찰떡같이 받아' 해석한 독자-나의 평과도 일치한다.


장르문학 작가 출신임을 입증하는 듯한 '옥상에서 만나요', '영원히 77사이즈'나 '해피 쿠키 이어'도 나쁘지 않았고 역사학도 출신임을 반영하는 듯한 '이마와 모래'도 좋았다. 이 모든 게 다 프레임인 건 알지만, 어쨌거나 한국작가와 한국소설의 저변이 어둡고 칙칙하고 희망도 대안도 의지도 없는 구질구질의 경계를 허물고 범위를 넓혀가는 걸 보는 일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짧고 가벼운 터치로 씌어진 문장들, 인물이 직접 말하는 것 같은 구어체의 활용은 문학이 생동하는 일상의 영역 깊숙이 들어왔음을, 또 인터넷과 sns 세대의 세상 안에 확고히 맞물리게 되었음을 느끼게 했다. 꾸미지 않은 단순한 말들 속에 오늘의 사회와 인간들에 대한 응시와 고민이 무겁지 않게, 하지만 분명히 진지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이 같은 '옥상에서 만나요'의 성취는 오늘의 한국문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과도 같다. 참신한 소재도 좋고 인물들의 굽히지 않는 꿋꿋함과 공동체적 연대에 대한 한결같은 믿음도 든든하다. 앞으로 주목할만 한 작가가 한 명 늘었다 싶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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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오늘 뭐 먹지? 12 오늘밤은♪꼬치구이 (체험판) 오늘 뭐 먹지? (체험판) 12
후쿠마루 야스코 외18명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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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체험판이라지만... 각 에피소드의 첫 장들만 보여주고 끊어버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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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의 세계
듀나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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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지는 사랑스럽지만 내용은 사랑스럽지 않은 책, 듀나의 '민트의 세계'를 읽었다. 배스킨라빈스 민트 초콜릿 칩 같은 달콤하고 향기로운 소설을 기대한다면 책의 시작부터 '덕트 안에서 불타버린 여고생의 시체'에 깜짝 놀라고 말 것이다.

 여고생은 얼굴도 몸통도 불타 알아볼 수 없지만 오른손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어 쉽게 신원을 알 수 있는 사람이다. 하긴 오른손이 불타 없어졌다고 해도 신체의 DNA 정보만 있으면 쉽게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이 시대는 2050년이기 때문이다.

2050년은 어떤 시대인가. 초능력자들의 세상이다. 초능력자라는 말이 더 이상 사용되지조차 않을 만큼 초능력자들이 흔해진 시대이다. 2026년 전주에서 최초의 '배터리 인간'이 등장한 후로, 인간의 내부에 감춰져 있던 갖가지 초능력들이 '배터리'의 힘을 받아 깨어난다. 초능력의 종류는 다양하다. 타인의 정신과 접속해 그것을 조종할 수 있는 정신감응자, 물건을 움직이는 염동력자, 하늘을 나는 비행능력자 등 여러 종류가 있고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능력을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복합능력자'가 되기도 한다. 많은 인간들이 선천적으로 초능력을 갖고 태어났지만 그건 우물 없는 두레박 같은 것, 배터리 없는 전자기기처럼 아무 쓸모도 없이 그저 내재되어 있는 장치일 뿐이었다. 그러나 '능력자'에게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배터리 인간'이 태어나고 와이파이처럼 존재만으로도 주위에 에너지를 주는 이 배터리들 때문에 세상은 깨어난 초능력자들이 가득한 곳이 된다. 당연히, 초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자 한다. 이에 LK 그룹을 위시한 거대 기업들은 초능력과 배터리를 연구하며 능력자들을 특수 학교에 넣어 체계적, 전문적으로 교육시켜 나라의 심장부를 거머쥐려 한다. 이것이 2050년의 세상이다.

 책의 뒷편에는 '전 인류가 초능력을 갖게 된 2049년' 이라는 배명훈 작가의 추천사가 적혀 있다. 그런데 내가 지금 2050년이라고 쓰는 것은, 이 책은 두 개의 시간축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것을 작가가 교묘히 감추고 있기 때문에 - 감췄다기 보다는 그냥 말을 하지 않은 거지만, 작품의 후반부에서 독자는 지금껏 하나의 시간 위에 굴러가는 두 개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두 개의 다른 시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둘 다 2049년 10월 25일부터 26일까지의 24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의 이야기가 아니라, 능력자-배터리 연합 팩(무리)인 민트 갱과 그들이 일으키는 LK 대전투가 2049년 10월 25~26일간의 이야기이며, 불타버린 시체의 신원이 LK 특수학교를 탈출한 복합능력자 소녀 류수현임을 알게 된 형사 한상우가 미스테리 속으로 빠져 '나는 누구이고 이 사건은 무엇인가' 의 질문 속을 헤매게 되는 이야기는 그로부터 약 1년 후의 이야기임을, 독자는 책이 거의 끝나갈 때쯤 알게 된다. 나만 그런가? 나보다 눈치 빠른 독자는 일찌감치 눈치 챘을지도.

 이렇게 미리 적어놓으면 스포일링이 아닌가 하겠지만, 이 이야기의 재미라는 게 '두 개의 시간축을 놓고 전개되는 것이었다!' 가 전부가 아니므로, 쓰는 데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듀나는 좋은 SF 소설이 갖춰야 할 두 가지 조건, 첫째 '시간'을 염두에 둘 것과, 둘째 '새로운 세계'를 구축할 것, 둘 모두를 달성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 소설의 진짜 재미는 후자에 있기 때문이다. 즉 '민트의 세계'는 그야말로 정교한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2018년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서울과 전국의 주요 도시들을 배경 삼아 그것을 눈에 잡힐 듯 사실적으로 활용하는데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인간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2049~2050년의 신인간이며 이들이 펼쳐 보이는 활동들은 지금의 우리가 감히 꿈꿀 수 없는 적극적 환타지다. 이 두 가지의 부조화스러운 충돌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도리어 독자를 매혹시킨다. 익숙한 공간을 완전히 뒤흔드는 새로운 인간상의 출현. 그로 인해 붕괴되는 '익숙함'의 느낌. 내 눈앞에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펼쳐지는 것처럼 보이는 '자명한 세계' 에 대한 의심은 이 사랑스러운 책 '민트의 세계'로 인해 촉발된 '새로운 세계'이다.  

 분량이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굉장히 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2050년 서울은 코스모폴리탄들의 대도시이므로 당연히 전세계의 다양한 국적, 다양한 인물들이 뒤섞여 있다) 많은 지명과 가공의 사건명들이 계속 쏟아져 나와 독자를 어지럽게 하지만, 그 어지러움 마저도 새로운 세계에서 타는 롤러코스터의 짜릿함으로 느껴진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라. 초능력을 갖춘 신인간이라고 해도 그들의 나약한 정신 세계는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억의 형태를 가진 마약'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몽마' - 인간의 미련과 집착적 회상의 표상물 같은 이 괴물이 자라나 '유령'이 되고 결국 사회의 주요 인간형을 이룬다는 점에서 그렇고, 제멋대로 조작하고 기워붙인 정보-기억들이 또한 스스로 '유령'이 되어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사실 2049년의 초능력자들도 2018년의 우리와 별다를 바 없기도 하니까. 당신의 롤러 코스터는 그다지 낯선 것만은 아닐 것이다.




- 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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