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인간의 본질에 대한 답이었을까?

광골의 꿈 - 하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6년 9월

무리하며 교고쿠도 시리즈를 읽어온 탓일까?

교고쿠도 시리즈의 세번째 이야기인 이 <광골의 꿈> 이르러서는 어째 몸도, 마음도 제대로 지쳐버린 느낌이다.

전남편의 죽음과 함께 소실된 기억들, 해명에 대한 공포와 함께 되살아난 잃어버린 기억들 중에 타인의 기억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알고 불안해하는 아케미. 뼈무더기 위에서 정사를 벌이는 남녀에 대한 꿈을 어렸을 적부터 꾸어온 정신과 의사 후루하타. 가나가와 해안에서 목격된 금색의 해골은 점점 살이 붙어 사람의 형상의 띄어간다. 이야기는 이렇듯 개연성이라고는 전혀 없을 듯 보이는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을 한군데로 모아 하나의 큰 줄기로 이어버린다.

이런 구조는 바로 전작인 망량의 상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전작인 망량의 상자에서는 이러한 구성상의 전개가 과학적으로 납득할 수 있을만큼 치밀하지는 않을 지라도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했으며, 거기에서 우리는 인간이란 존재가 주는 나약함과 역겨움, 절망감을 모조리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광골의 꿈에서는 매력적인 각각의 사건들을 억지로 꿰어맞추는 바람에 다소 황당한 결말이 유도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쉽게도 말이다. 

뭐, 그런 황당한 결말에 다소의 당혹감을 느낄지라도 각각의 사건이 주는 매력이라던가 이야기 전체에서 느껴지는 이 작가만의 기괴스런 분위기는 충분히 만끽할 수 있으니 역시나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임에는 틀림없는 것일까?

이런 구성상에서 오는 황당한 결말을 제외하고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키워드는 바로 광골이란 요괴, 뼈에 대한 우리 인간들의 두려움과 집착이다. 죽음 그 자체를 나타내는 '뼈', 죽음이 주는 공포를 극복하려는 노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오랜 세월동안 우리 인간들은 뼈에 필요 이상의 많은 의미를 부여해 왔다. 그런 어리석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번권에서도 여전히 교고쿠도의 신랄한 독설은 이어진다.

바다는 많은 물로 이루어진다. 물이 곧 바다다. 하지만 바다에서 물 한잔을 떠본들.. 그 한잔의 물이 바다가 되지는 않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팔, 다리가 없어도 그것은 인간이다. 하지만 잘려나간 팔이나 다리가 인간이 될 수 없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어디에 존재할까? 머리일까? 몸통일까? 아니면 죽으면 썩어 문드러지는 살이나 머리카락이 아니라 오래도록 남아있는 뼈에..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영혼이,, 집념이..스며들어 있는 것일까?

종교와 철학, 민속학과 정신분석 등 온갖 장르 학문들을 끌여들여 펼치는 교고쿠도의 장광설이 실은 인간의 본질, 그 자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임을 시리즈물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알게 되었다. 교고쿠도가 내리는 인간의 본질, 그것에 대한 정의는 그대들이 교고쿠도 시리즈물을 통해서 직접들 확인하기를 바라며 나는 이 교고쿠도 시리즈에 마침표를 찍는다. 보름동안이나 골머리를 썩히며 읽었던..절대로 가볍지 않은 이 책들이 그대들에게도 작은 즐거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말이다.

인생은 역시 만만치 않아....

스킵 비트! 16
나카무라 요시키 지음 / 시공사(만화) / 2007년 8월

원령의 쿄코, 어둠의 쿄코, 저주의 쿄코...

여느 순정만화 주인공과는 다르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복수..

복수를 위해 어둠의 오오라를 연예계 이곳저곳에 잔뜩 뿌리고 다니던 쿄코에게 드디어 천적이 나타난걸까.... 자신의 복수상대인 후와 쇼를 모방한 5인조 그룹  '비  고울' 의 리더인 레이노에겐 교코의 원령도 맥을 못춘다..

일단 복수는 자신의 손으로... 란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중간에 나타나 후와 쇼를 괴롭히는 레이노가 못마땅한 쿄코지만.. 역시 상대가 천적이니만큼 악전고투하는데다 요즘 들어 후와 쇼와 관련해서는 묘하게 눈치가 보이는 렌에게 이런 상황을 들키기도 싫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우리의 쿄코가 복수보다는 눈앞에 찾아온 새로운 사랑에 좀 더 집중해 주길 바라지만.. 뭐.. 독점욕과 질투로 안절 부절 못하는 렌을 보는 재미도 솔솔하니 그대로도 좋은걸까...

당분간은..이런 둘의 모습을 그저 온전히 지켜보자. (그리고 이번권은 저 표지만으로도 알수 있겠지만.. 둘 사이의 러브모드가 조금은 진전된 듯 하다..조금은 말이닷... ㅡ,.ㅡ;;)

기존의 착하고 예쁘고 연약하던 여주인공을 이렇게 멋들어지 어둠의 존재로 둔갑시킨 작가의 유머코드에 찬사를 보낸다. 인생은 만만치 않은거다. 그런 힘든 세상에서 울기만 하고, 누군가에게 기대기만 하는 사람 따윈 질색이다. 착하고 얌전하게 행복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그런 이보다...사악할지라도 자신의 인생을 위해 세상의 풍파속으로 뛰어드는 그런 이가 맘에 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쿄코 화이팅!!을 외쳐본다.

보아서는 안되는 것을 엿보고 말았습니다.

망량의 상자 - 하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5년 6월

뒷맛이 나쁘다..

책을 덮은지 며칠이 지났건만.. 당시의 스멀스멀 기어오르던 불쾌감이 아직도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듯하다. 전작인 우부메의 여름으로 인해 이런 작풍에 어느정도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디까지나 생각뿐이었는지.. 지금의 나는 두려움과 역겨움, 초조함과 막막함에 어찌할바 모르고 있다. 

전작인 우부메의 여름에 이어 두번째로 접하게 된 교고쿠도 시리즈인 망량의 상자.

사건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망량의 요괴는.. 경계의 요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기에 경계에 서서 형체를 가진 이쪽 세계의 사람의 유혹한다. 단 한순간..찰라의 순간이지만 이 망량에게 유혹된 인간은 끝도 없는 심연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끝끝내 인간으로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 망량의 상자에서는 범죄자를 보는 시선이 너그럽다 해야 할지, 아니면 인간을 보는 시선이 냉담하다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쩌면 둘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도 모른다. 애당초 범죄란 그러한 상황과 마주했기에 할수 있는 인간의 반응이라고.. 욕망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범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범죄의 동기란, 후에 인간에 멋대로 가져다 붙인 나약한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고 단언하는 교고쿠도의 장광설에 일침을 놓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동감하지도 못한체 안절부절하는 내 모습에 짜증나고 이런 혼란속으로 날 밀어넣은 상황에 격분하고 있는 것은 내 자신에게도 존재할 망량의 그늘 때문일까?

아름다운 은막의 여배우와 여중생 자매, 기이한 소설가, 사이비 종교, 연쇄토막살인사건...전혀 별개의 것인듯 느껴지던 사건들이 하나의 접점에서 모두 모이는 순간, 우리를 엄습하는 공포와 혐오는 쉽게 잊혀질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열어서는 안될 상자를 얄팍한 호기심에 열어보고서,, 그곳에서 뛰쳐나온 무지막지한 현실에 어쩔줄 몰라하는 아이처럼,,  결코 보아서는 안되는 무언가를 보아버린것 같은 암담함에 어쩔줄 몰라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최고로 손꼽게 되는 나란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인간일까....

어중간한 기분으로 이 책을 펼쳐보지는 말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펴는 순간..당신은 지옥을 보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그런 지옥 속에서도 쾌락을 추구하는게 바로 죄많은 우리네 인간이지 않겠는가.... 그런 우리야 말로 망량..바로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행복한 미래에 대한 설레임을 안고...

네버랜드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이 책은 근래에 출간된 온다 여사님의 일상 미스터리와는 조금 다른.. 아니 일상 미스터리의 여운도 묘하게 풍기지만.. 본질은 성장 소설,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있는 남학교의 기숙사 쇼라이칸. 그리고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대부분의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 가운데 남아있는 네 명의 남학생.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체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휴가를 꿈꾸던 그들은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 진실 게임을 계기로 서로가 갖고 있는 비밀의 상처를 하나씩 내보이게 됩니다.

겨울밤의 기숙사에서 자신들의 상처를 내보이며 갈등을 인정함으로써, 미래로 전진할 일보를 내딛는 그들의 모습이 그토록 순수하고도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은.. 그들의 청춘 때문일까요?

온다 여사님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이런 십대의 주인공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아이도.. 어른도 아니지요. 아이도, 어른도 아닌 그 미묘한 경계에 선 이들의 유치함과 치열함, 나약함과 무모함을 이토록 권태롭게... 그러나 아름답게 잘 표현하는 작가는 아마도 없을 겁니다. 또한 온다 여사님은 배경이 가진 힘을 알고, 그것을 잘 이용할 수 있는 분이기도 하죠. 전작인 밤의 피크닉이 밤에서 새벽으로 가는, 그 자기고백적인 마법같은 시간의 배경을 십분 이용한 거라고 한다면, 이 작품 네버랜드에서는 오로지 십대만을 위한 공간인 한겨울의 기숙사란 공간을 배경으로 어디에도 없는 나라, 네버랜드가 허락하는 청춘의 마법과 낭만을 그려냈습니다.

온다 여사님의 다른 작품에서 많이 접하게 되는 어둠과 악에 물든 혹은 막 물들어가기 직전인 소년, 소녀는 이 책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소년들은 저마다의 처절한 기억과 비참한 과거를 지니고 있을지언정.. 그것은 그들에게 극복해야 할 대상이며, 행복한 미래로 가기위한 시련일 뿐이지요. 그래서인지 온다 여사님의 다른 작품을 읽고나서 드는 막연한 불안감 따위는 이 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지만 강한 희망을 예감하게 만들지요. 바로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성장소설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곳,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 <네버랜드>, 행복한 미래에 대한 설레임을 가질 수 있는, 꿈과 낭만으로 가득찬 온다 여사님의 작은 선물입니다.         

처음 접하는 라이트노벨의 세계...

제로의 사역마 4 - 서약의 수정령, J Novel
야마구치 노보루 지음, 윤영의 옮김, 우사츠카 에이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7년 8월

요즘 들어 라이트노벨의 폭풍이 출판업계에 거세게 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거센 폭풍과는 전혀 상관없이... 굳세게 나만의 취향을 고집하던 나로서는.. 어쩐지 이런 류의 책들이 달갑지 않았다고나 할까.. 재미만 있으면 뭐든 용서한다고 떠들어대면서도.. 이런 류의 책은 대뜸 깊이가 없네, 감동이 없네,, 하면서 무시해왔던게 사실이다. 일단 장르의 이름조차 라이트노벨이지 않은가. 마치 기름기 빠진 참치모양 소설 나름의 풍미가 빠져 있을 거라고..그렇게 멋대로 믿어왔었다.

그런 내가  이 책에 빠져들게 된 것은 순전히 동생이 보던 애니메이션 덕분이다. 동생이 재밌게 보던 애니메이션을 얼떨결에 같이 보게 되면서 원작인 소설에로까지 눈을 돌린 케이스라고나 할까? 덕분에 내 편협한 독서 취향의 폭이 또 한층 넓어졌다.

마법세계. 성적 제로, 마법 제로인 제로의 마법사 루이즈가 사역마를 소환하는 날 소환하게 된 것은 이계의 인간 사이토군. 1권에서부터 꾸준히 능력이 성장해 가고 있는 사이토군이지만 이번권에서도 여전히 루이즈에겐 변함없는 들개 취급을 받고 있으니.. 언제쯤 루이즈가 사이토군에게 솔직한 애정을 보여줄 수 있을런지 기대된다.

재미.. 그 이상의 뭔가를 기대하기 보단.. 오로지 재미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이들에겐 이 라이트노벨이란 장르가, 이 제로의 사역마란 소설이 꽤나 매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인정한다.

편견을 깨버리면 또 다른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새로운 세상에서 발견할 재미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역시... 취향은 폭넓을수록 좋구나... 하고 감격해버린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