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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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몇달동안 참으로 끈덕지게 책을 읽었다.

일단 손에 잡히는 대로, 구할 수 있는 대로.. 그렇게 닥치는대로 읽어내려갔더니... 조금 지쳐 버렸다. 아마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의 한계에 다다랗나 보다. 배가 가득찼음에도.. 일상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꾸역꾸역 입속으로 무언가를 밀어넣을 때처럼... 역한 토기가 올라올 정도로.. 그렇게 원없이 책만 읽었더니 지금은.. 그 어떤 책을 봐도.. 무미건조, 무감동.. 한마디로 재미가 없어졌다. 참으로 드물게 경험하는 현상인데... 이럴 때는 눈에도, 마음에도 그 어떤것도 담지 말고.. 그저 조용히 내안에 가득찬 무언가가 비워지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동안 마냥 있기가 뭐해서 요즘 내가 미친듯이 읽어내려간 소설 목록을 되짚어 보았더니  순전히 일본 소설 일색.. 일시적인 유행에 편승한 독서편식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이지 철저하게 일본 소설 위주로만 골라 읽었었다. 평소 주관이 뚜렷하다던가 소신있다던가 하는 성격과는 거리가 멀지만 일시적인 붐에 편승하는 행위 역시 혐오하는 나로서는 사뭇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일본 소설에 푹 빠져 있었던 걸까?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고.. 또 더듬어 올라가 마침내 다다른 곳이 바로 이 소설 키친이었다. 잠시 시간이나 때울 요량으로 구입했던 이 책에 반해.. 약속 시간을 한참이나 넘긴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던 수년전의 바로 그 날... 나는 일본 문학에 반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키친은.. 죽음과 익숙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작가는 꾸밈없이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분명 존재하던 소중한 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그 상실감과 슬픔을.. 그토록 무덤덤하게 뱉어내는 작가라니..

가볍게..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하고 있지만 뼛속까지 시린 그 슬픔과 상실감은 아예 사라진게 아니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어느날 갑자기 우리를 엄습하기도 한다. 우리가 어떤 큰 일을 겪을 때 그 당시에는 어떤 일을 겪는지도 모른체 그저 헤쳐 나오기에 급급하지만 정작 모든 것이 다 끝났다 싶을 때 그제서야 우리는 지독한 상실감을 경험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그런 큰 슬픔을 헤쳐 나오는 힘을 얻는것 역시... 바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누리는 작은 행복들에서이다. 신이 인간에게 견딜 수 있는 고통만 준다면, 인간은 그 어떤 고통 속에서도 끈덕지게 살아갈 수 있는 무언가를 지닌 존재이다. 그 무언가를 이 글에서는 아주 사소한 우리의 일상의 장소로, 행위로 그려낸 것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삶을 이어나갈 따뜻한 힘을 발견할 수 있는 이 글이야 말로.. 분명 내가 사랑하게 된 일본 소설의 시초임에 틀림없으며... 이와 같은 기분 좋은 발견을 다시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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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 2007-08-08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동안 옆에 끼고 다니던 책이에요. 우울하고 꿀꿀하던 시절 힘이 되어 주었고요. 그렇게 갖고 다니다 회복될 즈음 꿀꿀한 다른 친구에게 넘겨줬고요.

유스케 2007-08-09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할 때 읽으면.. 확실히 힘이 나는 책입니다. 읽는동안.. 내 맘 한구석에 있던 작은 용기가..희망이.. 반짝반짝 빛나게 되는 고마운 책이죠...

사치코 2007-08-30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아마도 요시모토바나나님의 매력인거 가타요~저도 반짝반짝 빛나고 싶을땐 요시모토바나나님 그리고 에쿠니 가오리님꺼 읽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