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서는 안되는 것을 엿보고 말았습니다.

망량의 상자 - 하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05년 6월

뒷맛이 나쁘다..

책을 덮은지 며칠이 지났건만.. 당시의 스멀스멀 기어오르던 불쾌감이 아직도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듯하다. 전작인 우부메의 여름으로 인해 이런 작풍에 어느정도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디까지나 생각뿐이었는지.. 지금의 나는 두려움과 역겨움, 초조함과 막막함에 어찌할바 모르고 있다. 

전작인 우부메의 여름에 이어 두번째로 접하게 된 교고쿠도 시리즈인 망량의 상자.

사건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망량의 요괴는.. 경계의 요괴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기에 경계에 서서 형체를 가진 이쪽 세계의 사람의 유혹한다. 단 한순간..찰라의 순간이지만 이 망량에게 유혹된 인간은 끝도 없는 심연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끝끝내 인간으로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 망량의 상자에서는 범죄자를 보는 시선이 너그럽다 해야 할지, 아니면 인간을 보는 시선이 냉담하다고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쩌면 둘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도 모른다. 애당초 범죄란 그러한 상황과 마주했기에 할수 있는 인간의 반응이라고.. 욕망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범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범죄의 동기란, 후에 인간에 멋대로 가져다 붙인 나약한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고 단언하는 교고쿠도의 장광설에 일침을 놓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동감하지도 못한체 안절부절하는 내 모습에 짜증나고 이런 혼란속으로 날 밀어넣은 상황에 격분하고 있는 것은 내 자신에게도 존재할 망량의 그늘 때문일까?

아름다운 은막의 여배우와 여중생 자매, 기이한 소설가, 사이비 종교, 연쇄토막살인사건...전혀 별개의 것인듯 느껴지던 사건들이 하나의 접점에서 모두 모이는 순간, 우리를 엄습하는 공포와 혐오는 쉽게 잊혀질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열어서는 안될 상자를 얄팍한 호기심에 열어보고서,, 그곳에서 뛰쳐나온 무지막지한 현실에 어쩔줄 몰라하는 아이처럼,,  결코 보아서는 안되는 무언가를 보아버린것 같은 암담함에 어쩔줄 몰라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최고로 손꼽게 되는 나란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인간일까....

어중간한 기분으로 이 책을 펼쳐보지는 말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펴는 순간..당신은 지옥을 보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그런 지옥 속에서도 쾌락을 추구하는게 바로 죄많은 우리네 인간이지 않겠는가.... 그런 우리야 말로 망량..바로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