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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당무 ㅣ 삼성 어린이 세계명작 22
쥘 르나르 지음 / 삼성출판사 / 1998년 2월
평점 :
절판
홍당무를 성장소설이니 뭐니로 분류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단연코 이것에 '가정 내 권력관계와 어머니의 육아방법에 따른 아이들의 인성형성에 관한 고찰문'이라는 장황한 긴 제목을 붙이련다. 홍당무는 머리가 빨간 못생기고 거친 소년이다. 순수하지만 적절히 교육받지 못한 탓에 고양이를 쏴죽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처음엔 돌발적으로 나중엔 어서 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양이에게 해를 가하는 그 모습은, 잔인한 듯 보이지만 어린애 특유의 감정 그대로이며 사실 순수한 동정심이 더 크게 드러나있다.
홍당무는 기본적으로 순수한 보통소년인데 어쩐지 방치된 느낌이 든다. 왤까? 그에겐 아버지도 어머니도 심지어 형과 누나까지 있는데. 그러나 가족 중 아무도 그에게 깊은 관심이나 애정을 기울이지 않으며, 어머니의 경우 노골적으로 그를 무시하고 깍아내리기까지 한다. 나머지 가족들끼리만 수박을 먹고 홍당무에겐 껍질을 주며 그것도 토끼한테 갖다주라고 말하는 어머니. 그 모습에도 아무 말 안 하는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토끼장 옆에 앉아 초록색 껍질 위의 달콤한 흰 부분을 갉어먹는 홍당무. 홍당무가 당하는 수많은 일들 중에서 이 부분에서 가장 눈물이 났다.
흰 부분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홍당무는 그 처지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애의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당하는 각종 은근한 학대를 자각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고양이를 처음에 죽이려고 든 것은 학대받은 자로서 학대를 되돌리려는 심리라고 생각되는 것은, 내가 잘못 받아들인 것일까? 형과 누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 거만하며 홍당무에게도 무시와 냉대로 일관한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제약할 수 있으면서도 어머니와 두 남매와 갈등을 일으키기 싫어서 홍당무를 외면한다. 아버지가 사다준 나팔을 어머니가 빼앗아 옷장 위에 올려버리고 먼지쓸게 한, 그리고 결국 홍당무가 그 나팔을 단념하고 체념한 이야기는 그런 면을 잘 드러낸다.
어릴 때 읽었을 때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갔던 홍당무 어머니의 행동이지만 지금 생각하니 좀 알 것도 같다. 그녀에겐 이미 애정을 쏟아부을 대상인 두 아이가 있었고 홍당무는 '여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여분이 어찌되든지 신경도 안 쓰면서도 가끔씩 겉모습을 단장해줄 때 평소의 지저분한 모습을 꾸짖고 격하하고..정말이지 자신들의 나머지 두 아이가 늘 단정하고 빠릿하고 관습적인 것은 자신이 그렇게 키웠기 때문임을 모르는 그녀.
홍당무의 거친 모습이나 지저분한 외모를 홍당무 탓으로 돌리는 그녀. 육아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었다면 모를까,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나쁜 엄마다. 홍당무, 그 애는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부디 주변의 좋은 어른을 만나 바르게 성장했기를..환경이 너를 어떻게 종용한다고 해도 그 환경에 굴하지 말고, 네가 바라는 환경을 선택하고 만들어냈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