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위저드 1 - (절판 예정)
카야타 스나코 지음, 김소형 옮김, 키가와 린 그림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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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야타 스나코의 작품들은 아무리 장르가 달라도 척 보면 '카야타作'임을 알 수 있다. 스피디하게 딱딱 끊어지는 단문장, 도저히 웃지 않곤 못 배길 유머센스, 충격으로 일순 멍해질만큼의 명장면 출동! 그녀의 작품 중 <델피니아 전기>나 <키리하라가의 사람들>도 흥미진진했지만, 이번에 읽게 된 <스칼렛 위저드>는 가히 으뜸이라고 단언한다. <스칼렛 위저드>는 장르상 SF판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SF물의 전형적인 요소를 모두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책을 덮고나면 SF를 읽었다는 생각이 별로 안 드는 신기한 책이다.

인류의 우주진출, 행성개척, 몇만 광년을 한 번에 뛰어넘는 통로(게이트), 전행성을 통제하는 연방의 존재 등 소설의 틀 자체는 Star Wars식 전형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이 쿠어재벌이라는 전우주적 재벌의 회장인데다 여자에,연방군대의 골칫덩이란 경력과 해커 중의 해커란 능력 거기다 키 191센티의 장신 터프우먼이기까지 하면, 도저히 이 소설이 전형적이다라고는 말할 수 없게 된다. 뿐이랴, 그녀의 마수에 걸리는 전우주적 불행남 켈리와 그의 우주선이자 감응두뇌 다이앤에 이르면, '전형성이 비전형으로 바뀌는 탁월한 예'가 어떠한 것인지 절절히 새길 수 있다. 여러 sf소설과 여러 인공두뇌를 접했지만 다이앤같은 경우는 정말 처음 봤다! 켈리는 재스민 쿠어라는 쿠어재벌여왕에게 코가 꿰이지 않았어도 다이앤 때문이라도 충분히 여난을 겪는다고 볼 수 있겠다.

작가가 작품후기에서 밝혔듯이 이 소설의 제목은 '여왕과 해적'이 가장 어울린다. 확실히 좀 너무 노골적이라 쓸 수 없다는 데 동의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스칼렛 위저드보단 여왕과 해적이 정말 딱인데 말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영웅적인 여왕님, 그리고 덩치와 능력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가련해보이는 해적님, 그들 커플의 위기관리능력과 상황대처능력을 보고 있다면 그저 감탄과 경악과 웃음이 나올 뿐이다. 쿠어회장의 사후 신회장 재스민을 몰아내려는 음모를 꾸미는 일곱 명의 중역들이지만, 글쎄, 아무래도 이 사람들을 잘 모르는 것 아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고래로부터의 명언을 좀 공부해두었으면 좋았을텐데.

여왕과 해적의 앞에 놓인 난제는 많다. 당면한 것은 일단 중역들의 음모에 맞서 쿠어 왕국을 안정시키는 것, 다음으론 여왕님과 해적씨 각각이 연방군과 맺은 껄그러운 관계의 해결, 전인류적인 문제인 정체불명 외계인과의 관계 설정 등 그들이 풀어야 할 문제는 많고도 많다. 그들이 그 모든 걸 명쾌히 풀고 해피엔딩(?)에 도달할 때까지 나는 그들과 함께할 것이다. 내 최고의 SF판타지 목록에서 <은하영웅전설>과 <스칼렛 위저드>가 다툰다. 나의 6년을 지배한 은영전의 입지를 이토록 거세게 흔들어놓다니, 카야타 스나코라는 작가의 역량에 다시한번 감탄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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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비극 - 시그마 북스 012 시그마 북스 12
엘러리 퀸 지음 / 시공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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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엘러리 퀸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다. 소설 속의 탐정과 똑같은 양의 단서를 독자에게 제공하며, '자-어떠냐, 알아맞춰보시지'라고 자신만만하게 도전장을 내민다는 추리작가. 기존의 추리소설들은 독자와 소설 속 탐정(해결사) 간의 메울 수 없는 격차-사건해결의 단서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엘러리 퀸이라는 2인 1조의 혼성작가콤비는 과감히 그 형식을 깼다는 것이다. 코난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에만 익숙해있던 내게 엘러리 퀸은 도전이었고 탐험이었다. 그 첫 발걸음을 내민 것이 바로 유명한 Y의 비극이다. XYZ시리즈 중에서 가장 극찬을 받는 Y.

1막, 2막, 3막의 세 막으로 나뉜 살인극은, 그러나 1막을 채 다 읽기도 전에 나를 당황케 했다. 왜냐...범인이 그 사람 말곤 아무도 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막이 끝날 때, 소설 속 탐정 드루리 레인은 말한다. '기가 막히게도,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모든 단서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어!' 더하고 뺄 것도 없이 그 말대로다.

단서1: 장님에 벙어리에 귀머거리인 루이자 캠피언이 한밤중에 손을 뻗어 범인의 볼을 만졌다. 그 범인의 볼은 아주 매끈하고 부드러웠으며 범인에겐 바닐라 향이 풍겼다.
단서2: 살인의 흉기가 된 독극물과 주사기는 잠겨진 실험실에 있었고, 그 실험실로 범인은 벽난로를 통해 드나들었다. (여자라기보단 남자일 가능성이 커짐)
단서3: 실험실 독극물 선반 앞에는 세 발 의자가 옮겨져 있었다. 먼지가 잔뜩 쌓인 바닥이라 그 옮김이 극명하다.

이 단서들에, 이 집안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광기와 교활함이라는 저주받을 피가 흐른다는 점을 첨가시켜보자. 그렇다면 범인은 간단하게 떠오른다. 너무도 단순하기에, 그러니까 어떤 고정관념도 없이 그냥 보면, 범인은 너무 뻔하다. '설마 그럴리가!'라는 편견과 선입견만 없다면 지극히 간단명료한 것이다. 1막에서 이미 범인을 알아챈 탓에 김이 빠졌지만, 드루리 레인이라는 독특한 탐정의 매력과 섬 경감의 완고하면서도 교과서적 수사의 어우러짐, 해터 집안 사람들의 기묘한 면면과 살인의 동기가 밝혀지는 과정이 흥미로웠기에 끝까지 독파했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소설에서 현실로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드루리 레인이라는 탐정의 매력이라기보단 소설의 무대인 <해터집안>을 통해 느낀 염증과 공포 때문이었다. 뉴욕의 유명한 대부호 해터집안은, 늙은 괴짜 여걸 엘리스 해터로터 그 자식들 및 손자들 심지어는 며느리와 고용인에 이르기까지 정상들이 아니다. 읽어보면 딱 공감하게 되는 '미치광이 해터'라는 별칭, 그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미친 모자장수(hatter)에서 따 온 것이다. 차이는 앨리스에서처럼 재미있는 광기가 아니라 꺼려지는 광기라는 것. 범인이 누군지 초반에 알아챈다 해도, 이 책은 끝까지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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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하기의 즐거움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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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낯설게 하기의 즐거움>은 여러 가지 것들을 일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봄으로써 접할 수 있는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언제나 그렇지만 에코를 읽으려면 독자도 백과사전적 지식을 잡다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그게 한층 더하다. 그런데 에코가 '낯설게 하기의 즐거움'의 예로 드는 작가들이 하나같이 유럽쪽 계열이라, 미국이나 일본에 편식된 서점가의 한국독자로선 무척 곤란한 노릇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냅다 포기해버릴 필요는 없다. 언제는 우리가 중세유럽의 거미줄같은 종교계상황을 잘 알아서 <장미의 이름>을 읽었는가. 몰라도 읽으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읽으면서 알아갈 수 있다. <낯설게 하기의 즐거움>에서 예로 든 작가들이 생소하기 짝이 없었음에도, 에코의 시선과 수술메스같은 펜을 통해 웃음의 자락을 찾을 수 있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언어'가 '낯설어졌을 때' 유발되는 '즐거움'이었다. 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함축(적 언어)에 관한 상호협력이 결여된 비유적 예'들 중 몇 개를 들겠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아세요?'
'네.'

'난 포스타치오입니다. 당신은요?'
'난 아니에요.'

상대방의 물음에 담긴 함축적 의미를 죄다 무시해버릴 때-상호협력이 결여될 때 웃음이 터져나온다.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이 비틀리면 즐거움이 생겨난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인식 못 하는 것들, 그걸 꼬집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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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믿을 것인가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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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과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 <바우돌리노> 이후 기력이 쇠잔해서 한동안 에코를 손에서 놓고 있었다. 백과사전식 저술의 대가이자 읽는 사람에게도 백과사전식을 요구하는 움베르토 에코씨의 마수에 걸리면, 기력이 보통책을 읽을 때보다 훨씬 많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최근 그럭저럭 다시 에코를 읽을만큼 원기회복이 되었는지 그의 책들이 무척 읽고 싶어졌다. 그래도 <푸코의 진자>같이 무시무시하게 얽히고 설킨 장편을 읽을 용기는 부족했기에, 비교적 얄팍한 소책자를 집어들었다.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과 에코가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책, 바로 <무엇을 믿을 것인가>였다.

잡지사가 기획한 비신앙인과 신앙인 간의 대화에 당첨된 움베르토 에코와 마르티니 추기경. 두 사람은 자의로서가 아닌, 잡지사에 의해 별안간 하늘에서 떨어진 대화상대를 덜컥 떠맡게 된 게다. 이런 두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진행해 나가기를 기대하기란, 확실히 무리다. 4번의 대화(서신 교환)를 찬찬히 살펴보고 내가 결린 결론은, '이 두 사람 어지간히 안 맞는군' 이었다. 예리하고 날카롭고 핵심을 파고드는 에코의 방식과 성직자 특유의 느릿함과 여유로 요리조리 에두르며 두리뭉실한 답을 내놓는 마르티니의 방식. 서로가 그런 차이에 흥미를 느낀다면 외려 좋을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느끼기로는 둘 다 서로의 방식을 싫어하고 있었다. 점잖고 현학적인 말투 속에 감춰져 있긴 하지만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그 행간 사이의 짜증이라니, 정말이지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4번의 서신교환중 3번을 에코가 포문을 연다. 대화주제를 선정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면 마르티니 추기경이 이에 대꾸한다. 그런데 말이다, 첫 번째 서신교환에서부터 이 사람들 삐그덕거리기 시작한다. 에코는 '친애하는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라는 말로 서두를 열고 있다. '추기경'이라는 존칭을 붙이지 않은 것은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이 시대의 지식인으로서의 당신과 대화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말이다. 답장에서 마르티니는 그 말에 흔쾌히 동의를 표하고 있지만, 기실은 자신의 신분적 입장 '추기경'의 위치를 어찌나 표내고 있던지! 게다가 에코의 물음-종말론의 비판적 가치에 대한-에 대해서도 말은 많지만 확연한 답은 하지 앟는다.

아아, 이에 대해 짜증이 난 우리의 에코씨, 두 번째 편지에서 통렬히 이 점을 꼬집고 싶었음인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초반부터 아주 강조를 한다. 답장하는 마르티니 추기경, 자신이 멍청해서 못 알아들은 게 아님을 주장하고 싶은지 역시나 초반에 에코가 묻고자 하는 핵심이 무언지 일일이 재확인한다. 그러나 재밌는 건 에코의 물음의 의도를 그렇게나 잘 알면서 역시 첫 번째 편지에서처럼 답을 두리뭉실 흐리는 것이다. 세 번째 편지를 볼작시면 에코씨는 이제 아주 많이 짜증이 난 상태다. 왜 자신이 먼저 편지를 시작해야 되냐며 '먼저 화두를 여는 곤혹스러움'에 대해 토로하고 있지만, 그 속내는 실상 이런 게 아닐까. '대답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데, 질문만 하는 입장이라 그게 안 돼 답답하다!라는. 마르티니 추기경도 이 짜증을 감지했음인가, 정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자기가 미리 질문을 준비하고 있었노라며 다음 번 편지에서 그 질문으로 먼저 편지하겠다고 말한다.

사실 이 책,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서 알맹이는 두 사람이 나눈 대화주제인 '종말론의 비판적 가치/낙태찬반론/남녀평등' 인지 모른다. 물론 두 사람 각각의 그에 대한 견해를 접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내 취향이 오묘함인가, 표면적으로 명백히 드러나는 그것들보다 물 밑의 신경전이 훨씬 더 흥미로운 것을 어쩌랴. 지극히 점잖은 두 분이 지극히 점잖게 신경전을 벌인다, 그리고 약간 비틀린 시각을 가진 독자가 알아채고 재밌어한다. 독자는 이리저리 말을 돌리는 마르티니 추기경보다 직선적으로 말해버리는 에코씨의 편에 서 있다. 책을 덮고나선 두 사람의 대화주제보다 신경전 쪽을 뇌리에 푹 새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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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개론
신채식 지음 / 삼영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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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하면 의례 지루하고 따분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요즘같이 책을 도외시하는 풍조 속에서 역사책이라고 하면 과연 몇이나 읽으려고 할까..하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상당히 반가운 책이었다. 특히 중국사에 관심이 많았던터라 어떻게 공부를 할까 고민하던중 책만한 교재가 없다싶어 이것저것 뒤적였지만, 결국 동양사의 일인자 신채식 선생님의 저서 동양사개론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책의 두께에 눌려 꺼려되기도 했었다. 한국사와는 다른 방대한 영토와 어지러운 왕계. 하지만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그런 고민은 싹 가시게 된다. 선사시대의 동양사(중국)에서부터 전설시대 은.주.춘추전국시대.진.한....이렇게 시간적 흐름에 맞추어 왕조의 정치,문화,사회,경제에 걸쳐 설명하고 있다. 지루할 듯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단순히 지식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필연성과 연계성 등을 알기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론이라하여 수박 겉핥기식의 단편적이고도 얕은 역사서가 아니다. 왕조의 흥망이 교차하고 사회가 발전해 나가며 그 속에서 민중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할지라도 읽어두면 오늘을 살아가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다양한 계층을 이해하는 안목을 길러주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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