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나이는 없습니다> 중 밑줄

“노년기 여성들의 정체성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다. 무엇이든 하고 싶고, 또 될 수 있는 상상력과 실천력을 빼앗는 현실은 사양한다.”
‘할머니’ 롤 모델과 ‘황혼’_김영옥

늙은 여성 배우들의 배짱에 기대어 앞으로 늙어갈 여자들도 떵떵거리는 큰 웃음을 웃어본다. (…) 현실과 문화 텍스트 간의 기분 좋은 상호 미러링을 기대한다. - P15

손자를 돌보는 것과 외로운 밤을 누군가의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보내는 것이 왜 꼭 양자택일이어야 하는지? 이런 식의 양자 택일 주장은 정의롭지 못하고 퇴행적이다. 상투적인 선입견들을 전제하는 이 반전이 몹시 불편하다. 훨씬 더 복잡한 요소들이 얽힌 구조의 문제를 사적 혈연의 책임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니 해결책으로도 너무 단선적이다. - P11

돌봄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 세대 간 돌봄 책임 이전이라는 정의롭지 못한 정책에 코를 박고 있으니,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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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이는 없습니다> 중 밑줄

생애주기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특정 사회의 정치경제학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사회가 만든 장치이기 때문이다.
나이듦? 그냥 생로병사_정희진

연령(age)과 연령주의(ageism)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나이는 자연의 질서일 뿐이다. 그러나 나이에 대한 사회적 해석, 나이에 맞는 정상성, 나이와 사회적 역할 등은 자본주의 시대의 산물이자 동력이다. 이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나이에 대한 개념은 200~300년밖에 되지 않았다.
나이 개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금 인류가 알고 있는 지식의 거의 전부가근대의 산물이다. 고대나 조선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논의 자체가 현재의 시각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천 년의 역사보다 지난 200~300 년 동안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일이 일어났다. (…)
‘생애주기(life circle)‘는 나이가 아니다. 나이에 대한 이데올로기다. 자본주의사회의 대표적인 통치 체제다. 개인의 건강이나 조건 등에 관련 없이 나이에 따라 삶의 정상성을 부여하고, 개인의 삶을 통제한다.

젊음도 ‘좋은 노동자‘의 당연한 조건이 아니며, 이러한 계급 격차가 오늘날한국 사회에서 세대 갈등으로 둔갑하여 나타나고 있다. 세대 갈등이 맞는 말이라면, 20대는 모두 가난하고 50대는 모두 부자여야 한다. 물론 그런 사회는 없다. 세대갈등이 감추고 있는 진실 중 하나는 ‘50대의 가난‘이다. 소위 ‘386‘은모두 잘 산다는가? 망상에 가까운 편견이 아닐 수 없다.
(…)
아픈 몸은 24시간 내 일상을 지배한다.
나는 모든 이들이 나이와 무관하게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연령은 계급, 젠더와 함께 중요한 사회 구성 요소로, 모든 분야가 노소(老少)에 따른 ‘우선권‘을 둘러싼 정치경제학의 전쟁터다. 나이는 다른 사회 구조와다르게 ‘어려도‘ ‘어중간해도‘ ‘늙어도‘ 맥락에 따라 차별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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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02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수 2023-01-02 09:35   좋아요 0 | URL
리디에서 만든거라 그런지 상품검색이 안되나봐요. 왜 이제오셨어요😭 기다렸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용!
 

정말 좋았던 책에 대해서, 아무 말도 잘 안 적어진다. 나만 그러진 않겠지만, 유독 심한 것 같은데. 

너무 좋았어... 으헝헝.. 엉엉엉.. 광광대는 것 말고는 좋다고 표현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하고, 아무 말이나 주워섬기다가 책(저자)에 실례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일 수도 있겠다. 나는 책을 혼자만 읽었어서, 꽤 오래 그랬어서, 이렇게 글로 책이 어디가 어떻게 좋았다..고 자세히 적어보는 게 온전히 나를 위한 행위일 수 있다니!(물론 그 이상이기도 하지만) 깨달은 지 얼마 안된 것도 있다.

 이렇게 왜일지 적어볼수록 그럴 필요까지 없는 이유들이라 이제 엉엉엉 거리지 말고 엉엉엉 카테고리 만들어서 본격 좋다고 광광대며 아무말이나 주워 섬기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내가 벼르던 리스트 xx권... 맨 위에 이 책이 있다.



책의 키워드는 여러가지가 있겠다. 책 소개에 쓰인대로 부제에 쓰여있듯 회복 일지, 트라우마, 생존자, 페미니스트, 페미니즘 교육, 몸, 양육, ..하고도 찾자면 더 있을 것이다. 모두 평소 내가 찾아 읽는 책들과 접점이 있는 화두들이라 내용을 모르는 ai라도 '이 책을 추천합니다'할 지경이겠지. 그런데 그에 더해, 뭐가 더 있는데. 나는 어떻게 그걸 설명할까.


"지금의 나는 무력감 속에서 '가부장'의 승인을 걱정하는 꿈속의 나에게서 멀리 와 있다. 그때에 비하면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몇 겹의 탈피를 거듭했을 것이다. 그러나 억압의 세계로부터 탈출한 게 아니라 여전히 짓눌린 채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을 뿐이다. 나의 한 시절을 완전히 장악했던 남교사의 폭력과 야만이 이제는 강건너 구경해도 되는 먼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편적인 폭력이라 굳이 꺼내 매만져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의 경험을 한 번은 다시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꿈에서 깨 얼굴을 찡그린 채로 허공을 응시하다가 깨달았다."


작가는 계속 현재 상태를 분석한다. 책에는 '그런 자신'에 대한 기록이 꽤 자주 나온다. 읽다보면 자연스럽다. '회복일지'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을 시작하면서 작가는 회복을 재정의하게 된 이유를 밝힌다. 

"일상의 회복'이라는 목표는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이며 그 목표를 감당하기에 하루라는 단위는 너무 작고 무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내가 되찾겠다고 하는 '일상'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을까 의심도 했다."

돌아가야 하는 일상만을 목표로 주의를 너무 많이 기울이면 현재가 흔들린다. 회복하고자 하는 상태는 더 멀어지기만 하고 현재 상태는 결핍을 더 크게 인식하게만 할 테니까. "회복에는 긍정적인 생각이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과거의 부정적 경험을 떠올리는 것이 이때만큼은 도움이 되었다. ...내가 되돌아가야할 일상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좀 편안해졌다."라는 고백에 상시로 곤두선 내 신경도 누그러진다.


최현희 선생님(작가보다 이렇게 말하는 게 더 편하네)은 내내 스스로를 다루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 와중에 몇몇 센 외부 자극(?)에 대해서는 의연하고 단호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이 글들에는 늘 웃음이 있다. 폭소라든지, 그게 아니라면 제목의 재치에서라도. 헛웃음이든, 아니면 별이를 보고 그려지는 미소일 수도. 이 기록을 보고 있는 읽는 사람에게는 묘한 동일시 감각을 준다.  공감도 하면서, 동시에 그런 상태가 아주 멀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책의 아주 웃기고 재미난 부분만 밑줄 인용 적으려고 했는데 그게 안되네. 또 써야지. 2022의 나는 이 책 너무 좋았으니까. 엉엉엉! 광광광!



누구나 그때는 최선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후회되는 선택 같은 걸 한다. 당연히 남편을 정하는 일도 그렇다. 서로 노력해서 함께 성장하는 부부 사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10년을 넘게 살면서 친구들이 겪어낸 일들을 생각하면, 애초에 글러먹은 관계도 있는 것이다. 특히 페미니즘의 언어가 삶에 스미지 않았던 시절 나이의 압박에 떠밀리듯 선택한 결혼이라면, 아내나 엄마가 아닌 동등한 한 인간으로 나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고를 만한 안목이 없던 시절의 선택이라면, 글러먹은 남편감을 골랐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거기에 애초에 여성을 인간으로 존중하는 남자라는 게 현실에 많기나 했을까. 이것은 복잡할 것도 없는 단순한 확률의 문제다. [이혼정보회사] - P261

심각한 표정으로 무너진 교권에 대해 말하는 다른 한 편에서는 학생들이 문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교사의 권위가 없어져서라고도 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 교사에게 더 많은 권력이 생김으로써 해결되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며, 더 이상 그런 시대가 오지도 않을 것이고 와서도 안된다.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데 필요한 단어들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다 가로채버린 것이다. 권력이나 권위 같은 말은 이미 너무 많은 악한 구습을 포함하고 있어서 내 고민의 진의를 항상 망가뜨린다. [교사의 권력을 내려놓는 것에 대해]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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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애정 -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
도리스 레싱 외 지음, 모이라 데이비 엮음, 김하현 옮김 / 시대의창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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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알게 된 후부터는 소소한 의식처럼 한해 마지막 날에 아무데나 펼치고 읽게 된다. 어제는 앨리스 워커와 어슐러 르 귄의 글이 특히 좋았다.


(자기 엄마 대답ㅋㅋㅋ 몇 대 맞으며 비판 받아야 된다고)



앨리스 워커가 젊은 시절 갓 엄마가 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스스로를 '우리의 젊은 엄마'로 전환해서 서술하는 부분이 놀랍도록 강렬하고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이 '젊은 엄마'는 글 말미에 이르러 "...은 저의 아이가 아닙니다."부분과 자연히 연결된다.


작가는 뉴잉글랜드로 이사가게 되는데 하필 어린 아이와 함께 독감에 걸린다. 낯선 곳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치료를 받으러 이리저리 알아보는데 이 과정에서 (아마도) '진보' 소아과 의사의 위선적이고 차별적인 태도에 불쾌감을 느낀다. 

워커는 이 경험을 "역겹지만, 엄마가 바라왔던, 결국은 이로운 결과를 여럿 남은 경험이었"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엄마와 아이를 사회의 어느 편이든 간에 이 남자와 반대편에 위치시킵니다. 이 여성, 엄마는 아이를 낳기 수년 전에 썼던 이야기를 마음속 더 깊은 곳에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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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경험이 내면에 균열을 낸다. 그 전까지의 모든 개인사를 재위치시키고 소용돌이를 만든다. 너 왜 그래?라는 물음에 한마디로 대답을 할 수 없게 된다. 안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사실은 앎의 여부가 아니라 어떤 원리를 학습하고 체화했는지의 영역에 속해있다는 것을 새로 깨닫는다. "마음속 더 깊은 곳에서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그런 뜻일 거다.


"이제 엄마도 (고열로 어지러운) 그 순간 자기가 구성하고 있는 이야기에서 새로운 차원을 보기 시작합니다. 엄마는 손으로 이마를 탁 치며 말합니다. 왜 모든 역사는 현재인가. 왜 모든 불의는 세상 어딘가에서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는가. "진보는 소수에게만 영향을 미칩니다. 오직 혁명만이 다수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 "그녀 자신"은 엄마 혼자만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어느 때건 그녀는 그저 대표였을 뿐입니다."


대표성, 여성운동에서의 통찰, 그리고 이후에 다시 창작의 고통과 자기연민....을 갖게 된 이 "우리의 젊은 엄마"는 글 마지막에서 "우리의 아이"를 재정의한다. "제 아이와 저, 우리는 함께입니다. 우리는 엄마와 아이입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의 온 존재를 부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자매입니다."209  이 문장은 책의 원제가 in search of our mother's garden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 풍성해지는 듯하다. 원문의 문맥은 모르지만 이 자체가 모성 담론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구제해줄 것 같아서ㅋㅋㅋ 왤까. 이제껏 학습해온 엄마 상을 따르려고 하다 보면 아이의 삶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까. 글 처음에서 워커가 뮤리얼 류카이저를 추모하며 말했듯이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것의 필요성과 더불어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항상 아이를, 자기 아이의 삶을 긍정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는 선언이 이렇게 성립하게 된다. 



뮤리얼 류카이저, <어둠의 속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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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전자책 기준)



“나는 그 악몽과 화해하며 살았습니다.”


“내가 정신을 잃지 않았던 것은 계속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말을 하고있습니다.”


“당신의 침묵은 자신과 공동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나에게는 인도 여성들이 선천적으로 갖고 있다는 수치심 유전자가 없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강간을 당하고 죄책감, 공포, 트라우마, 혼란 속에 사로잡혔지만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부모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 P24

나를 ‘드러냄으로써’ 얻은 이런 위로와 공감은 사실 전혀 원하던 바가 아니었습니다. 내게 진짜 공감과 위로가 필요했던 날로부터 30년이나 지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내 일에 충격과 분노를 느꼈지만, 나의 충격과 분노는 이미 오래전에 종결되었습니다. 그들의 위로는 내게 전혀 새롭지 않았고, 내가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는 이상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 P34

강간법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합니다. 남성이 남편을 강간하는 것은 허용될까요? 힘의 역학이 젠더의 역학으로 바뀔까요? - P80

나의 아버지는 나를 두 팔로 감싸 안고는 옥상으로 데리고 가면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고 싶니?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하자."

그로부터 4년 후, 나는 강간 생존자를 상담하고 전문가를 훈련시키고 학교에서 강의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을 생존자 행동 요령의 기본 지침으로 사용했습니다. 아버지는 심리학이니 사회학이니 젠더니 하는 교육은 전혀 받지 않은 평범한 중년의 무슬림이었습니다.

전혀 복잡하지 않습니다. 생존자에게 아무것도 통제하지 말고 무한으로 수용하고 지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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