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자체의 재미는 나쁘지 않고, 한 여성의 내적 성장을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겠지만 여성혐오와 레이시즘 범벅이라 읽기 힘들었다. 어렸을 때 썩 재밌게 읽었는데 독서모임 도서로 선정된 덕에 다시 읽었을 때가 하필 #stopasianhate 촉발시킨 사건 있을 때. 내가 이걸 세계명작, 명화(페인티드 베일) 등등으로 소비한 것도 오리엔탈리즘과 미소지니에 기여했을 거 같다는 생각은 과장일까. 하긴 그 유구한 배척과 타자화의 역사에 내가 몇자 읽었기로서니 간에 기별도 안 가겠지만 그래도 좌절감과 배신감은 들더라. 다른 얘기지만 어린이나 청소년 권장도서로 비판 없이 서양 고전 안 넣으면 좋겠다. 요새는 안그래야 할텐데. 옐로피버에 대한 기사들을 읽어보면서 외국에서 지낼 때 지인들이 (아마도) 좋은 뜻으로 해준 말에조차 읭?하며 속으로만 떨떠름했던 기억이 여러가지 떠올랐다. 그때 왜 난 알지 못했나라는 원망도 함께. 뭐 이제 아니까 괜찮다. 그깟 고추, 그깟 살갗색. 너네나 그렇게 붙들고 살아라.
시작
기후위기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타자를 보는 시선에 대한 그림책이라고도 느꼈다. 작가 인터뷰에서처럼 판다와 북극곰을 구분하는 인간의 기준은 무엇일지.. 북극곰을 향한 아이들의 적대감은 기원은 어디였을까? 혐오와 증오는 출처와 뚜렷한 근거 없이도 강력히 대물림되어 온다. 그걸 묵과하고 지나온 대가는 후에 더 크게 치르게 된다는 점에서 생태계 파괴와도 궤를 같이 한다. 쓰레기를 뒤지는 표지의 껄끄러운 촉감의 눈보라는 유난히 처량하고 빛난다.
고작 한 줌의 흙을 몸에 발랐을 뿐인데 자신에게 돌을 던지던 인간들이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눈보라는 그 까닭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원제는 <The undefeated>로 2020 칼데콧 대상을 수상한 작품인데, 여러가지로 무게감이 느껴지는 그림책이라 심호흡하고 펼쳐 들었다. 내가 그려진 인물 하나하나를 알아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도, 둔중한 울림을 준다.
읽으면서 내내 책에서도 다뤄진 인물 빌리 할리데이의 “strange fruit”을 생각했다. 이 노래에 대해 처음 알았을 때, 나는 좀 어렸는데 '그런 일을 노래한다고?'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하면 어른이 되어가면서 이해하게 된 몇 안되는 것 중에 하나다. 그런 일일 수록 노래하고 이야기해야 하는 거라고.
벅차기도 하지만, 숨이 턱 막히는 몇몇 장면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 역사를 시로 되새겨야 하고 노래 불러야 한다.
이 책이 감동적인 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만의 이야기이면서도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동시에, 끝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를 직시하는 눈과 남은 사람으로서의 과업을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아이와 같이 읽고 함께 이야기할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