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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 - 잭 더 리퍼에게 희생된 다섯 여자 이야기
핼리 루벤홀드 지음, 오윤성 옮김 / 북트리거 / 2022년 2월
평점 :
나름 열심히 다 읽었다. 끈기있는 편이 못 되는데 샬럿 브론테의 수정궁 감상, 찰스 디킨슨 언급되는 부분, 챕 북(책 행상이 팔던 소책자) 문화 등등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더 재밌게 보지 않을까 싶었다. 작가가 노련하게 인물들의 생애를 재구성해줘서 마인드맵 그리고 싶어지네.. 잠시 고민했음.
빅토리아 시대 여자들의 신세가 새삼 가련하다. 생애주기 동안 중산층과 노동계급 사이에 걸쳐 있었던 당시 여성들의 삶은 대체로 이렇게 압축 가능하다.
“노동시간은 전과 다름없이 무척 길었다. …도망쳐 온 곳이 어디든 똑같았다. 울버햄프턴에서든 버밍엄에서든, 권투선수의 집에 살든 양철공의 집에 살든, 케이트의 일상은 그대로였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똑같은 일과를 반복할 것이었다. 결혼한 후에는 엄마로서 살아갈 터였다. 그 삶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출산의 고통, 육아의 피로, 걱정, 배고픔, 탈진, 그리고 최후에는 병과 죽음이었다.” 291
산업화 속에서 운좋게 자리를 잡은 가정에서 태어난다 하더라도 가세가 기울면 어린 나이부터 생계에 뛰어들게 된다든지, 낳는 아이들 족족 전염병으로 잃는 것, 알코올 중독에 빠지거나 구빈원에 입소하며 빈민층으로 신세가 몰락하는 것, 성매매 여성으로 낙인 찍혀 법과 제도 밖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 개중 누군가의 상황이 조금 나아 보여도 결국 여자들은 가난과 불명예를 겨우 면하는 삶으로 내몰리며 살아야 했다.
다섯 명의 삶을 들여다 보면 제각각 다른 이야기, 다른 인생인데 한데 모아 놓으면 다섯 명의 죽음에 작동한 부조리는 동일하다. 사회적 규범의 이중잣대, 미소지니, 설명할 필요 없는 죽음이라는 멸시.
책을 읽다보면 내용과는 별개로 이 논픽션을 작가가 쓰기까지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자료를 찾고, 인터뷰하고, 진위여부를 확인한 후, 그렇게 필요한 시료를 예비해두고 정교하게 접안렌즈의 배율을 맞추는 손가락 끝
조사 자료가 이렇게 방대하면서도 한편으론 빈약하다 느껴질 때 작가는 어떤 선택을 할까. 스스로가 만반으로 예비해 놓은 세계/세계관 안에 되려 갇히지는 않을까. 책의 전개상 지나칠 수 없는, 과거 인물에 대해 꼭 필요한 가정을 해야 할 때는 어떨지. 스스로의 판단이 어느 쪽으로 치우친다거나 감상적이 되지는 않을까.
폴리,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 저자는 어떻게 이 다섯 명의 삶을 주욱 펼쳐놓으려는 마음을 감히 먹었을까.
“잭 더 리퍼를 살아 숨 쉬게 하려고 우리는 피해자들을 잊어야 했다. 이 망각에 대해 우리는 공범이다. … 그 기원과 출처를 검토하지도 않고 증거의 신뢰성을 따지지도 않고 그 밑에 깔려 있는 전제들을 문제 삼지도 않고 학생들에게 그 ‘전설’을 가르칠 때, 우리는 폴리,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이 겪은 불의를 영속화하는 데 가담하는 것이고 가장 비열한 종류의 폭력들을 용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이 사람들을 되살림으로써만 잭 더 리퍼와 그가 상징하는 것들을 침묵시킬 수 있다.”
작가의 나오는 말을 읽고 앞으로는 조금 더 끈덕지게 읽으리라고 다짐한다.
폄훼되고 숨겨진 여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목소리를 돌려주는 것. 비극을 여기서 매듭짓는 것이 독자의 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가시화 하는 일입니다. … 우리를 그토록 취약하게 만드는 그 가시성은 우리가 지닌 가장 큰 힘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 오드리 로드
"9세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피해자들이 ‘그저 매춘부’라는 주장은 ‘세상에는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가 있다’는 믿음, 즉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을 영속화하는 주장이다. 세상에는 여자의 행동에 관한 적당한 기준이 있으며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은 처벌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그런 여자에게 악행을 저지른 남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예의 그 이중 잣대를 거듭 내세우는 주장이다. 이제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핼러윈에 잭 더 리퍼로 분장하고, 그가 되었다고 상상하고, 그의 천재성을 기리고, 여자들을 죽인 자를 웃음거리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잭 더 리퍼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1888년에 그를 둘러싸고 있던 일련의 가치관, 즉 여자들에게 너희는 가치가 적으니 치욕과 학대를 당하리라고 가르치는 그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쁜 여자’는 벌받아 마땅하고 ‘매춘부’는 여성의 하위종이라는 관념을 강화하는 것이다.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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