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터 아웃사이더 딕테 시리즈 1
오드리 로드 지음, 주해연.박미선 옮김 / 후마니타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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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또 서로에게 배울 기회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사치스러운(!!!) 최종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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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들은 혹독한 비평을 받았다며 불평하곤 하나 때로 소설 서평은 복지 정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 P87

작가는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본인 역시 혼란에 빠져야 한다. - P91

어떤 소설 안에 서평이 이미 담겨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서평 안에는 서평가의 소설이 담겨 있다. 이는 해석의 다양성 때문이라기보다는 … - P93

이런 점에서 서평은 소설의 대체물로서, 서평을 읽는 이들에게 서평가의 경험이라는 또 하나ㅇㅢ 차원을 더해준다. - P98

소설가는 설교해서는 안 될지 모르나 서평가는 매번 설교를 일삼는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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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다가 이 책에서 언급되는 책들 잘 모르겠어서 내려놨었는데 정희진 선생님 때문에 다시 펼쳤다. 얼마전 오디오매거진 구독자 강연 들으니까 선생님이 하시는 책 얘기 또 듣고 싶어지는 거다. 그전에 같은 장소에서 이다혜 작가님과 하셨다던 이 책 북토크(두 분 꿀조합…돌베개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음)가 생각나서 틀었고 듣다 또 뿜었다. 


https://youtu.be/t5j7_WaKEj0


정 - 제가 히키코모리인데도 이 책 선전하러 꼭 나와야겠다. (..) 제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글이 잘 팔리면 제가 아픈 거예요. 그 분을 미워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 - 선생님, 근데 그렇게 되면 맨날 아프잖아요.

정 - 근까, 맨날 아포!ㅋㅋㅋㅋㅋㅋㅋㅋ


(서평가의 책을 서평하는 북토크를 듣고 서평을 쓴다는 건.. )


암튼 이 짧은 글은 장편소설에 한해서 서평가와 서평 쓰기를 다루는데 그러다 보니 서평가가 소설과 단합하거나 혹은 충돌하게 되는 지점도 지적한다. 의도가 있는 서평에 대해서 비판할 때 (서평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면 그걸 무조건적으로 비판할 수도 없는 거겠지만) 까도 되게 고급스럽게 깐다.

 

“비평가들은 무성하게 자라나는 초목을 베고 앞으로 나아갈 필요도 없이 위태롭게 자라나는 꽃들에게 매주 입맞춤으로 생명을 불어넣어야 하는 형편이다.”


“이런 서평을 보면 소설가들이 책무가 줄어들어 괴로워 한다든지 비평가들이 솔직한 반응을 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는 암시는 전혀 읽을 수가 없다.”


“소설 서평가들은 오로지 해럴드 로빈스나 시드니 셸던처럼 부와 명성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 소설가들을 상대로만 마음껏 비평할 자유가 있다.”

 

아 그동안 내가 쓴 건 뭐였지, 메타적으로 후드려 맞으며 챙피해지려고 할 때 결론을 이렇게 맺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서평가에게 바라는 바는 서평가 자신이 바라는 바와 얼추 비슷하다. 절제되고 두드러지지 않는 참신함, 소설의 장점에 대한 정교하면서도 정황적인 설명, 그리고 이에 대한 그럴싸한(아니, ‘진실한’이라고 해야 하려나?) 감상 말이다.”


일기를 쓸 때조차도 나는 쓰기에 대해 느끼는 부담이 큰데.. 잘 안써봤기 때문일까. 좋은 글에 대한 혼자만의 기준이 높은 걸까. 좋은 글은 진실한 글이라고 생각하는데, 진실하게 산다는 것에 대한 부담과 괴로움일 수도. 솔닛은 이렇게 말했다. “따라서 어떤 글을 쓰는 작업에는 그보다 더 큰 작업, 즉 먼저 자신이 쓰려는 그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되는 작업이 선행한다.”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등록완료를 미루게 될 때, 메리 케이 윌머스의 말은 스스로가 웃으면서 참고할 만한 간단 명료한 지침이 된다. “그럴싸한 감상” 



책 서문에 나오는 원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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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 - 잭 더 리퍼에게 희생된 다섯 여자 이야기
핼리 루벤홀드 지음, 오윤성 옮김 / 북트리거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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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열심히 다 읽었다. 끈기있는 편이 못 되는데 샬럿 브론테의 수정궁 감상, 찰스 디킨슨 언급되는 부분, 챕 북(책 행상이 팔던 소책자) 문화 등등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더 재밌게 보지 않을까 싶었다. 작가가 노련하게 인물들의 생애를 재구성해줘서 마인드맵 그리고 싶어지네.. 잠시 고민했음.




빅토리아 시대 여자들의 신세가 새삼 가련하다. 생애주기 동안 중산층과 노동계급 사이에 걸쳐 있었던 당시 여성들의 삶은 대체로 이렇게 압축 가능하다. 


“노동시간은 전과 다름없이 무척 길었다. …도망쳐 온 곳이 어디든 똑같았다. 울버햄프턴에서든 버밍엄에서든, 권투선수의 집에 살든 양철공의 집에 살든, 케이트의 일상은 그대로였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똑같은 일과를 반복할 것이었다. 결혼한 후에는 엄마로서 살아갈 터였다. 그 삶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출산의 고통, 육아의 피로, 걱정, 배고픔, 탈진, 그리고 최후에는 병과 죽음이었다.” 291


산업화 속에서 운좋게 자리를 잡은 가정에서 태어난다 하더라도 가세가 기울면 어린 나이부터 생계에 뛰어들게 된다든지, 낳는 아이들 족족 전염병으로 잃는 것, 알코올 중독에 빠지거나 구빈원에 입소하며 빈민층으로 신세가 몰락하는 것, 성매매 여성으로 낙인 찍혀 법과 제도 밖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 개중 누군가의 상황이 조금 나아 보여도 결국 여자들은 가난과 불명예를 겨우 면하는 삶으로 내몰리며 살아야 했다.

다섯 명의 삶을 들여다 보면 제각각 다른 이야기, 다른 인생인데 한데 모아 놓으면 다섯 명의 죽음에 작동한 부조리는 동일하다. 사회적 규범의 이중잣대, 미소지니, 설명할 필요 없는 죽음이라는 멸시.


책을 읽다보면 내용과는 별개로 이 논픽션을 작가가 쓰기까지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자료를 찾고, 인터뷰하고, 진위여부를 확인한 후, 그렇게 필요한 시료를 예비해두고 정교하게 접안렌즈의 배율을 맞추는 손가락 끝  


조사 자료가 이렇게 방대하면서도 한편으론 빈약하다 느껴질 때 작가는 어떤 선택을 할까. 스스로가 만반으로 예비해 놓은 세계/세계관 안에 되려 갇히지는 않을까. 책의 전개상 지나칠 수 없는, 과거 인물에 대해 꼭 필요한 가정을 해야 할 때는 어떨지. 스스로의 판단이 어느 쪽으로 치우친다거나 감상적이 되지는 않을까. 

폴리,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 저자는 어떻게 이 다섯 명의 삶을 주욱 펼쳐놓으려는 마음을 감히 먹었을까. 


“잭 더 리퍼를 살아 숨 쉬게 하려고 우리는 피해자들을 잊어야 했다. 이 망각에 대해 우리는 공범이다. … 그 기원과 출처를 검토하지도 않고 증거의 신뢰성을 따지지도 않고 그 밑에 깔려 있는 전제들을 문제 삼지도 않고 학생들에게 그 ‘전설’을 가르칠 때, 우리는 폴리,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이 겪은 불의를 영속화하는 데 가담하는 것이고 가장 비열한 종류의 폭력들을 용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이 사람들을 되살림으로써만 잭 더 리퍼와 그가 상징하는 것들을 침묵시킬 수 있다.”



작가의 나오는 말을 읽고 앞으로는 조금 더 끈덕지게 읽으리라고 다짐한다. 

폄훼되고 숨겨진 여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목소리를 돌려주는 것. 비극을 여기서 매듭짓는 것이 독자의 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가시화 하는 일입니다. … 우리를 그토록 취약하게 만드는 그 가시성은 우리가 지닌 가장 큰 힘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 오드리 로드



"9세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피해자들이 ‘그저 매춘부’라는 주장은 ‘세상에는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가 있다’는 믿음, 즉 성녀와 창녀의 이분법을 영속화하는 주장이다. 세상에는 여자의 행동에 관한 적당한 기준이 있으며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은 처벌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그런 여자에게 악행을 저지른 남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예의 그 이중 잣대를 거듭 내세우는 주장이다.
이제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핼러윈에 잭 더 리퍼로 분장하고, 그가 되었다고 상상하고, 그의 천재성을 기리고, 여자들을 죽인 자를 웃음거리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잭 더 리퍼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1888년에 그를 둘러싸고 있던 일련의 가치관, 즉 여자들에게 너희는 가치가 적으니 치욕과 학대를 당하리라고 가르치는 그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쁜 여자’는 벌받아 마땅하고 ‘매춘부’는 여성의 하위종이라는 관념을 강화하는 것이다.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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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시에게 우렁이 껍질은 ‘자기만의 방’이다. 때가 되어 서로의 어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사랑조차 벗어날 수 있는 자기만의 안전한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20

“집단의 기억은 주류 남성들의 기획물이다. ‘효자로서, 착하고 부지런하게 살다 보면 평생 말없이 밥해 주는 예쁜 여성을 얻는다’는 따위의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아니다.“24

구비문학대계에서는 우리가 대체로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우렁이 각시를 부엌에 가둔 총각이 비극을 맞는다. 우렁각시의 ‘자기만의 방’을 존중하지 않은 남자가 어떤 결말을 맞는지 우린 너무 모르고 살았던 듯하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진짜 옛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내게 한문은 낡은 외국어가 아니라 오늘의 내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는 모국어[]의 큰 기둥이었고, 죽을 때까지 벗어날수 없는 장벽이었다. 월경이 끝나고 임신 출산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음에도 나를 여전히 ‘여자‘로 가두는 감옥이기도 했다. 나는 이부담스러운 존재를 대면해 보기로 했다. - P7

자료에 대해 덧붙이자면, 처음에 나는 전문가들이 읽기 좋게 정리한 ‘대표적‘ 옛이야기들을 자주 봤다. 그런데 이분들의 친절한 ‘길잡이‘는 ‘교훈‘이라는 옹색한 방향으로 흐르기 일쑤여서 매끄러운 문장 솜씨에도 불구하고 생동감을 느낄 수 없었다. 우대부분 가부장인 그들의 옛이야기 작품에서 여성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아내나 어머니로 준비된 존재일 뿐이었다. 고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현재의 ‘대표적‘ 옛이야기에서도 여성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은 그들의 의도대로 편집되고 있었다. - P10

그동안 배운 것은 고전이든 옛이야기든 주인공은 언제나
‘나‘이고, 공부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한다는 점이다. 장벽도 감옥도모두 이야기일 뿐이다. 열쇠는 어떤 이야기에도 휘둘리거나 잡아먹히지 않고 자유로이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내공을 기르는 것. 그리하여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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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1-12 1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수님! 너무 좋은 책을 참 잘도 고르시네요. 들어가서 목차 보았더니 고전 ‘다시쓰기‘네요. 인용해주신 부분도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습니다. 좋은 책 소개, 고마워요!!

유수 2023-01-12 15:29   좋아요 1 | URL
”참 잘도 고르시네요.“라시니 너무 으쓱해집니다?!!크크크

2023-01-12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12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13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