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시에게 우렁이 껍질은 ‘자기만의 방’이다. 때가 되어 서로의 어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사랑조차 벗어날 수 있는 자기만의 안전한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20

“집단의 기억은 주류 남성들의 기획물이다. ‘효자로서, 착하고 부지런하게 살다 보면 평생 말없이 밥해 주는 예쁜 여성을 얻는다’는 따위의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아니다.“24

구비문학대계에서는 우리가 대체로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다르게 우렁이 각시를 부엌에 가둔 총각이 비극을 맞는다. 우렁각시의 ‘자기만의 방’을 존중하지 않은 남자가 어떤 결말을 맞는지 우린 너무 모르고 살았던 듯하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진짜 옛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내게 한문은 낡은 외국어가 아니라 오늘의 내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는 모국어[]의 큰 기둥이었고, 죽을 때까지 벗어날수 없는 장벽이었다. 월경이 끝나고 임신 출산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음에도 나를 여전히 ‘여자‘로 가두는 감옥이기도 했다. 나는 이부담스러운 존재를 대면해 보기로 했다. - P7

자료에 대해 덧붙이자면, 처음에 나는 전문가들이 읽기 좋게 정리한 ‘대표적‘ 옛이야기들을 자주 봤다. 그런데 이분들의 친절한 ‘길잡이‘는 ‘교훈‘이라는 옹색한 방향으로 흐르기 일쑤여서 매끄러운 문장 솜씨에도 불구하고 생동감을 느낄 수 없었다. 우대부분 가부장인 그들의 옛이야기 작품에서 여성은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라, 아내나 어머니로 준비된 존재일 뿐이었다. 고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현재의 ‘대표적‘ 옛이야기에서도 여성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은 그들의 의도대로 편집되고 있었다. - P10

그동안 배운 것은 고전이든 옛이야기든 주인공은 언제나
‘나‘이고, 공부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한다는 점이다. 장벽도 감옥도모두 이야기일 뿐이다. 열쇠는 어떤 이야기에도 휘둘리거나 잡아먹히지 않고 자유로이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내공을 기르는 것. 그리하여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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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1-12 1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수님! 너무 좋은 책을 참 잘도 고르시네요. 들어가서 목차 보았더니 고전 ‘다시쓰기‘네요. 인용해주신 부분도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습니다. 좋은 책 소개, 고마워요!!

유수 2023-01-12 15:29   좋아요 1 | URL
”참 잘도 고르시네요.“라시니 너무 으쓱해집니다?!!크크크

2023-01-12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12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13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