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도 흥미로운데 글도 유려하고..
번역가 이름 보고 흠칫 놀랐지만 다른 사람인 듯.
요즘 부쩍 느끼는 건데 논픽션의 재미를 평생 모르고 살았구나.
“산 정상에 오르는 일은 확고 부동하고 항구 불변하고 실질적인 일이었다. 등산하는 과정에서 으레 따르게 마련인 여러 가지 위험들은 그 일에 내 삶의 다른 측면들에서는 크게 상실되어 가고 있는 목적의 중요함을 더해주는 역할을 했다. 나는 진부한 삶의 평면을 뒤집어엎는 데서 오는 새로운 관점 속에서 쾌감을 느꼈다.”43
그리고 등산은 일종의 소속감 같은 것도 안겨줬다. 산악인이 된다는 건 세상의 관심권 밖에 있고 또 세상의 타락상에 크게 물들지 않은, 과묵하고 아주 이상주의적인 집단에 들어간다는 걸 뜻했다. - P43
요컨대 행복이라는 한 마디 말로 귀결될 수 있는 사소한 만족감들로 인해 등산에 대한 갈증은 많이 무디어졌다. (…) 하지만 나는 소년 시절의 꿈들은 여간해서는 죽지 않으며 그럴 때 사리 분별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1996년 2뤌 말, 브라이언트는 내게 전화를 해서 곧 출발할 예정인 로브 홀의 에베레스트 등반대에 내가 들어갈 자리가 있다고 했다. 그가 내게 정말로 이 일을 해내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장 "그렇다"고 대답했다. - P51
그러다 마침내 에베레스트의 뚜렷한 윤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피라미드 형의 정상부는 주위의 다른 봉우리들 위로 아주 선명한 윤곽을 그리면서 시커멓게 떠올라 있었다. 제트 기류 속으로 돌출한 그 산은 눈에 보일 정도로 깊게 갈라진 상처를 드러냈으며 그 상처자국에서는 시속 120노트의 강풍을 받아 반짝이는 얼음조각들이 비단 스카프처럼 동쪽으로 길게 휘날리고 있었다. 허공에 가로걸린 그 하얀 얼음조각 구름을 지켜보는 가운데 문득 에베레스트 정상부가 일정한 기압을 유지하면서 하늘을 나는 그 제트기와 정확히 같은 높이로 떠올라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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