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 국경선은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가
존 엘리지 지음, 이영래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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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스라엘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공습에 뉴스가 나왔었다. 요즘은 꽤 조용해진 것 처럼 보이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미사일이 오고 가는 영상들이 뉴스와 SNS를 통해 쉴 새 없이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전쟁을 실시간을 목격했고 꽤 현대적인 도시가 폭격을 당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얼마전 파키스탄과 인도의 갈등도 그렇다. 갑자기 어느 순간 벌어진 비극 같은 이 사건은 대체로 백 년 전, 제국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가 시작한다.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모여 앉아 나눠 가졌다. 민족, 종교, 언어, 생활권은 고려되지 않았다. 기준은 역시나 유럽인들의 이해에 의해 결정됐다. 아프리카의 국경선이 자로 잰 듯 깔끔하게 그어져 있는 이유다.

이 단순한 선 긋기는 아프리카 대륙을 수 세기 동안 고통스럽게 했다. 하나의 민족이 여러 나라로 찢어졌고 본래 적대적이었던 부족들은 아무 맥락없이 한 국경 안에 묶여 한 국가가 되었다.

'존 엘리지의 47개의 역사로 본 세계사'는 국경선이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도서는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한다. 경계라는 것이 굉장히 모호하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굳이 경계를 지을 필요가 고대 국가에 있었을까, 그런 가벼운 의문부터 시작하여 작가는 경계 하나 하나를 시간과 공간을 옮겨가며 설명한다.

예전 한반도와 중국에 관련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고대 중국의 제국은 왜 한반도의 작은 나라들을 점령하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을 풀어가는 책이었다. 해당 책에 의하면 우리가 '상나라, 하나라, 한, 진, 위, 촉, 오' 하는 대부분의 중국 국가들의 크기가 생각보다 부풀려져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한나라'가 그렇다. '한나라'하면 중국 전역에 거린 거대한 영토처럼 보인다. 다만 사실 현대 표시되는 지도에 비해 실제 한나라의 영토는 훨씬 작았다. 실제 한나라 시대에는 도로망이나 군현 설치, 조세체계가 닿는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고로 직속령으로 통치하는 범위는 매우 좁았다. 결국 '한나라 국경'이라고 지금 지도에 표시되는 선은 후대가 만들어낸 허상에 가깝다. 고대 국가의 경계는 오늘날 처럼 확정적이지 않았다. 경계란 언제나 권력자가 그려낸 상상속의 질서인 셈이다.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는 바로 이 '상상의 질서'가 어떻게 만들어 졌으며 현대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이 경계는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업이 확장되고 축소된다. 바다에서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두고 분쟁이 벌어지고 하늘에서는 영공이 새로운 갈등의 무대가 되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국경의 개념은 점차 변형된다. 심지어 인간은 이제 우주에까지 경계를 긋기 시작한다.

세계지도를 펴보면 대체로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국경선이 그어진 지도가 보인다. 다만 애초에 '국경선'이라는 것은 자연상 존재할 수 없다. 유럽과 아시아 또한 두 대륙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완전하게 이어진 하나 대륙이다. 우리의 인식 방식을 투영하는 이런 국경선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책을 보면 알 수 있게 된다. 책은 인류가 '종교, 민족, 역사'를 가지고 만들어 놓은 국경선이라는 흔적에 대해 다양한 시선으로 알려준다. 책은 각각을 독립된 꼭지로 다룬 책이라 중간 중간 끊어 읽기도 좋고 시간을 내어 읽을 필요도 없는 부담감이 적은 책이다.

문체가 가볍고 사례중심이라 짧게 짧게 집중력을 발휘하고 읽어도 충분하다. 단숨에 통독하지 않고 하루 한두 꼭지씩 가볍게 읽기 좋은 역사, 인문학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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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부모 수업 - 교육학자 할아버지가 평생의 삶으로 증명한 교육의 원칙
이해명 지음 / 청림Life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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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주문하면 가운데가 눌려 있는 '납작한 모양의 빨때'를 함께 준다. 그것을 '쉽스틱'이라고 하던데 본래 설탕이나 우유를 잘 저어 마시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 모금씩 마시라는 용도도 있다고 한다.

물론 그 빨때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 십중팔구 혀가 데겠지만 용도를 다 해보겠노라는 욕심으로 미지근한 커피를 빨아 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힘을 주고 빨아도 음료는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다. 역시 앞니로 빨대 입구를 막고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답답할 때가 있다.

어느샌가 '쉽스틱'을 보니 '교육'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가는 분명 중요하겠지만 애초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중요하지 않을 리가 없다. 일본에서 '피라미드 수박', '하트 수박'하며 다양한 수박을 생산해 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점'이라고 했다. 이미 다 자란 수박은 잘라내는 것 말고는 모양을 다듬을 방법이 없지만 한창 성장하고 있는 수박에 '틀'을 씌워 두면 수박이 원하는 모양으로 자란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난 수박은 썩어 문드러지기 전까지는 같은 모양을 유지한다.

'쉽스틱'을 만드는 주재료가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은 가공이 용이하다는 어원을 갖고 있다. 실제로 생산 과정에서 열을 가하면 플라스틱은 자유자재로 가공할 수 있다. 다만 그 모양이 굳어지고 열이 식으면 그것은 딱딱하게 굳어 쉽게 변형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러한 '적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그러한 '적기'라고 하면 '초등학교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수박이 조금 단단한 외피를 갖게 되는 경우에도, 말랑거리던 플라스틱이 조금 단단히 굳어가는 과정에도 얼마든 그 모양을 변형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 더 쉬운 시기가 분명하게 있으며 그 시기를 놓치면 같은 노력이 다른 결과를 가지고 온다는 것이다.

본래 '교육'이라고 하는 것은 '언어'를 기반으로 한다. 수학, 과학, 예술까지도 개념과 절차를 설명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 교육 심리학자 '비고츠키' 또한 '사고는 언어를 통해 발달한다'고 봤는데 단어가 풍부하면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고 문제 해결과 비판적 사고 능력이 더 정교해지기 때문이다. 학교 공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미술, 음악, 체육도 감상 단계에서는 언어로 해설과 평가, 지시가 이뤄지고 수학이나 과학도 모두 언어를 거쳐 체계화된다. 인류가 만들어낸 체계 중 언어 없이 순수 감각만으로 교육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99%은 '선사시대'다. 언어가 없던 시대에 인간은 자신의 평생을 일궈 놓은 지식을 후대에 전수하지 못하고 죽었다. 정보가 전달되지 못했던 '사피엔스'의 문명 수준이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던 300만년이 지나고 첫 문자가 발견되기 시각한 5000년 전부터 인간의 지식은 비약적으로 누적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자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을 기르는 '교육'이 아닌 셈이다. 우리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훈련 시킬 수 있지만 '교육'시킬 수는 없다. 교육은 인간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언어 기반 지식 전달체계다.

그렇다면 이 언어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가. 가장 좋은 방법은 '글'과 '말'이다. '글'을 읽을 수 있게 하고, '소통'을 많이 하는 것이다. 이중 '글'이라고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말'과 다르게 '글'은 '보관'과 '전달', '이동'이 용이하다. 고로 언제든 반복적으로 꺼내 볼 수 있고 전달할 수 있으며 가지고 다닐 수 있다. 

글 중에서도 무엇이 필요한가. 동아프리카에서 사용하는 '스와힐리어'는 '케냐, 탄자니아, 우간다' 등에서도 널리 쓰이는 언어다. 이 언어 사용자가 1억명이라는 것은 '한국어'보다 현재 세계에서 영향력이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스와힐리어'를 공부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는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 그 언어가 '국어', '수학', '한자', '영어'라는 것에는 결코 이견이 없다.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 '태국어', '스페인어' 등도 배우면 좋다.

다만 우리가 '모국어'로 사회 생활을 하며 사고의 확장을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언어는 앞서 말한 4개의 언어가 최선처럼 보인다.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딸은 현재 한자와 수학, 영어 그리고 독서를 매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는 흔히 말하는 '조기교육'과는 의미가 다르다. 그저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교육'의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사회 엘리트'가 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이 인간으로써 사회에서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본업과 관련 없이 '글을 읽는 독자'가 됐으면 하고, 될 수 있으면 본업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는 작가'가 됐으면 한다.

직업이야, 뭐가 되던 상관이 없다. 스티브잡스의 부모는 그의 아들이 '스마트폰'을 만들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링컨의 부모도 자식을 대통령으로 만들려 조기교육하지 않았다. 그것은 부모가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다. 본래 직업이란 살면서 기회가 생기는 부분에서 현명한 판단으로 잘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본래 링컨은 25년동안 변호사로 살았고 말년에 4년 대통령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로널드 레이건은 20년간 배우 생활을 했고, 이순신 장군은 그의 삶 대부분이 '수군 지휘관'이 아니였다. 본래 직업이란 이랬다가, 저럴 수도 있고, 저렇다가도 이럴 수 가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의사를 하다가 유튜버가 되기도 하고, 축구선수를 하다가도 수필작가가 되기도 한다. 그것을 한 세대 먼저 태어난 이가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부모가 된지 벌써 8년이 다 되어간다. 어떤 의미에서 처음 겪는 다양한 '선택'들에 '설명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얼마나 나에게 '빛'과 '소금' 같은가.

살면서 아이에 대한 교육 방식이 길을 잃어 갈 때마다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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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마음 수업 - 감정 이해부터 관계 맺기까지, 초등 사회정서 훈련
김소연 지음, 그리움리우 그림, 김우람 글 / 메가스터디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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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마음을 가르치지 않는다. 부족한 공교육의 부재를 사교육은 채우지만 '마음 수업'의 부재는 '사교육'에서도 채워지지 않는다. 고로 우리는 마음을 모른채 어른이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 공백이 보여질 때가 있다.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려 고민하다 보면 결국 '나'의 어린시절을 만나게 된다. 어린시절을 만난 뒤에는 삶을 돌이켜 현재의 나까지 온다.

본래 사람은 태어나면 단일의 감정 밖에 없단다. 그 감정은 '긍정과 부정'으로 쪼개진다. 긍정은 기쁨과 사랑으로 분화하고 부정은 두려움과 분노로 분화한다. 마치 아이의 생물학적 신체가 세포분할하듯 감정 또한 제곱분화한다. 처음 한개의 원초적 감정 즉 무감정은 2개의 대분류(긍정과 부정)으로 나눠지고, 각 두개는 다시 2개씩 세분화되어 4개로 나눠진다. 4개가 다시 2개씩 갈라져서 8개...

이런 구조는 뇌 발달, 언어 습득, 사회적 경험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데 모든 감정이 고르게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감정은 제대로 이름 붙여지지 못하고, 어떤 감정은 너무 일찍 억눌려 마른 가지처럼 되어 버린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채, 거의 반사적 반응만 하며 살아간다.

외부 입력값에 자동반사하듯 주체성 없이 외부적인 환경에 자극만 받는다.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반응', 저런 경우에는 '저렇게 반응' 이런 반사적 반응은 거의 자동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 매커니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고로 중요한 것은 먼저 '인지'하고 '이해'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어린이 마음 수업'은 앞서 말한 '감정 분화 과정에서 잘못 자란 감정의 가지를 되돌아보도록 한다.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학술적 개념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일상 속 상황을 이야기로 꺼내어 그 속에 숨은 감정의 본질을 찾는다. 애당초 감정이란 언어화 하기 힘든 것 아니던가.

'마음이야기, 마음 진단, 마음활동'

3단 구조를 통해 '그랬구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제대로 인식 혹은 인지하고, 개념으로 정리하며 행동으로 옮긴다.

가령 불안이라는 감정은 어디서 시작됐는지, 그것이 어떻게 짜증이라는 2차적 감정으로 포장되는지를 풀어낸다. 아이가 '짜증난 것이 아니라 불안했었구나'하고 말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실 이런 감정 수업이 어디 아이에게만 필요하던가. 마음 수업은 우리 아이에게만 부재한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부모들에게도 부재하다. 나 역시 그렇다. 어떤 감정이 올라왔을 때, 그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그것을 다루기 쉽지 않다. 어린 아이일 때는 그것에 붙일 마땅한 이름을 몰랐기에, 그 어휘력 부재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면 성인이 된 다음에 와서는 그저 떠돌아다니는 감정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이면 대상을 다룰 수 있게 된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런 관계를 맺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은 '상호 주종관계'를 맺도록 하고 인연을 맺도록 돕는다. 이름 없는 어떤 것에는 막연함이 있지만 대상에 이름을 짓는 순간, 그것을 불러 다룰 수 있고 그것이 왔을 때 쉽게 인지할 수 있다.

책의 후반부에는 자존감, 용기, 공감,다양성 존중등 긍정적 감정의 성장을 다룬다. 이런 감정 분화의 마지막 가지를 건강하게 뻗어날 수 있도록 한다. 부모를 위한 감정 교육 가이드도 포함되어 있다. 아이의 마음뿐만 아니라 부모의 반응까지 함께 다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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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사소한 별리
최석규 지음 / 문학수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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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이런 류의 소설이 참 좋은데 자극적이지 않고 수수한 맛이 있어 그렇다. 뭔가 대단한 서사. 자극적인 '사랑'과 '이별'이 아니라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별 이야기.

그렇다고 내 주변에 이런 이야기가 흔한고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소설은 중단편으로 이뤄져 있다. 특별히 '이별 이야기'라고 생각치 않고 다른 인생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설에는 다양한 배경과 성격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가져보지 못한 직업과 취미, 삶에 대해 간접 체험을 해보는 일은 몹시 즐거운 일이다. 짧은 소설 하나하나 다양한 인물의 삶이 녹아져 있으며 그 체험을 하는 일은 뜻 깊다. 또한 그 인물들로 하여금 뒷맛이 떫은 이별을 경험하는 일은 여운이 길게 남는다.

떫다. 이별 이야기는 어떤 방식이든 깔끔치 못하다. 개운하지 못하고 텁텁하다. 그렇다고 그 미각 장애가 오래는 것은 아니다. 얼마간 혀와 입앗을 괴롭히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라져 버린다.

장애인을 도와주는 사회복지사 '중배'는 장애인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한때 춤을 굉장히 잘 추던 대학 동기를 만난다. 그리고 절뚝 거리는 그녀의 장애를 목격하고 돕는다. 소설은 친절치 못하다. 그들의 감정과 서사를 과감히 생략하고 주요 사건만 전개한다. 고로 사건이 있었다는 점.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 그리고 어떻게 되었다는 나열이 있다. 이 불친절한 전개는 불쾌보다는 쾌에 가깝다.

빈 구간은 공백이 아니라 여백이다. 공백과 여백 확실히 다르다. 공백은 비어 있는 '부재'만 있지만 '여백'은 의도적으로 남겨둔다. 빈 공간에는 독자의 상상이 채워진다. 알지 못하는 인물의 현재와 과거를 알게 되고 독자는 그의 인생과 현재, 미래를 음미할 수 있게 된다. 과연 그렇다. 소설 하나 하나가 끝날 때마다 알지 못한 여운이 남는다. 여백이 남긴 여운은 중단편답지 않게 길게 간다.

오디션에 수없이 떨어진 기타리스트의 이야기가 두 번째 단편에 나온다. 꿈을 접고 현실로 돌아온 그는 밥벌이를 위해 '생동성 실험'에 참여한다. 이 얼마나 현실감 있는가. 꿈을 달성한 하나의 스타 아래로 얼마나 많은 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는가. 과연 그렇다. 어떤 꿈을 가져 본 적 있고 거기에 근접하게 닿아 본 적 있었을 때, 꿈이란 '노력'을 만나면 반드시 닿게 되는 '필연'처럼 느껴진다. 마치 시킨대로 했으니, 약속대로 '내놔'하는 것처럼 떼를 쓰면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꿈'이라는 것은 매우 현실적이며 '노력'이 아니라 '기회와 운'이 함께 따랐을 때 이뤄진다. 수많은 방아쇠를 당겼던 러시아룰렛의 참가자 중 생존자의 이야기처럼 '누구나 될 수 있다'고 믿으면 다음 방아쇠의 희생자가 될 여지도 있다. 그렇게 밀리고 밀려서 현실의 어느 공간에 닿게 되면 그곳은 꽤 극단적인 상황으로 떨어져 있을 때가 있다.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소설이라는 허구에서 그 현실과 꿈의 괴리를 다시 한번 보았다. 기타리스트는 그림을 그리는 여자를 발견한다. 그녀는 꽤 까칠한 사람이다. 우연히 그녀가 항상 듣고 있던 노래가 자신의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림'을 그리던 그녀는 어떻게 '이곳'에 닿게 됐는가. 따지고보면 음악을 사랑하던 그가 그곳에 닿게 된 바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냉정하도록 현실은 맡겨 놓은 생선을 내어 놓지 않는다. 그저 모르쇠하고 노력에 대한 더 가혹한 현실을 부여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던가. 녹녹치 않은 현실에서 꿈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때로는 '사랑'이나 '경제', 그 어디에서도 여유를 잃어 버린다.

벌써 최석규 작가의 책은 3권도 넘게 읽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놀라운 것은 '한 사람' 이토록 많은 인생을 묘사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모든 인물이 다른 성격과 다른 과거를 가지고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마치 '밑' 위로 지수가 높아지면 '차수'가 곱으로 변하듯, 이야기의 가능성은 무한대로 넓어진다. 이런 다양성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현실'도 좋지면 '소설'이 너무 좋다.

허구의 인물과 인생들이겠지만 내가 어디서 '그런 삶'을 관찰해 보겠는가.

소설은 잔잔하고 사소한 이별을 이야기한다. 그 이별이란 단순히 남녀의 사랑 끝에오는 비극적 결말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흘러간 대부분의 흔적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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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진짜 재밌는 괴물 그림책 - 그림으로 배우는 신기한 지식 백과 진짜 진짜 재밌는 그림책
게리 맥콜.크리스 맥냅 지음, 케런 해러건 그림, 김맑아.김경덕 옮김 / 라이카미(부즈펌어린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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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입장에서 '역사책', '과학책', '상식책' 이런 것들을 꺼내 읽으면 좋겠지만 아이들이 가장 많이 꺼내 보는 책 중 하나는 '괴물책'이다.


 이 책을 어떻게 발견했는가,하면 아이와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구경을 할 때 였다. 아이가 보는 동화책은 너무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만 잔뜩 있는데, 개인적으로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자극적인 그림이 있는 책을 뽑아 보여줬더니 그 책이 이 책이다. 그때가 대략 7살인가 8살이었던 것 같다. 그뒤로 몇번을 이 책을 빌려보다가, 나중에는 아이가 사달라고 이야기해서 사두었다.


 사회에서도 불법이거나 음지에 있던 활동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제도권으로 안전하게 끌어 들이는 일들이 있다. 가령 노점상을 양성화 한다거나, 사채 시정을 법정 금융권으로 유도하거나 그런 일들 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식 중 하나는 '강원랜드'다. 강원랜드는 대표적인 제도화 된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다. 음지로 두면 더 음습해지고 극단적으로 변해간다. 일부를 양성화하여 이를 차라리 잘 관리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 동의한다.


 아이에게 '괴물'이 있고, '비극'이 있고, '실패'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애당초 모르게 키울 수 있다면 상관 없겠지만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숨길 것이 아니라 잘 관리하는 편이 낫다.


 초등학교 시절 꽤 비싼 대학노트를 산 적 있다. 거기에 무엇을 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노트를 아주 예쁘게 관리하고 싶었던 마음은 확실히 남아 있다.

 첫 페이지에 무언가를 기록했고 두 번째 페이지에 다른 무언가를 기록하기 전에 나는 첫 번째 페이지를 찢어 버렸다.

 삐뚤빼뚤하게 글씨가 써졌다거나, 앞장에 비해 뒷장에 눌린 연필자국이 불쾌해 보여서 그렇다. 그렇게 완벽하게 유지하고 싶던 그 노트는 정말로 실패를 할 때마다 찢어내면서 완전해졌다. 단 한장도 쓰여지지 않은 '새것'의 상태로 어딘가 뒹굴다가 사라졌다.


 그것이 내가 본 '완벽'의 모습이다. 가장 완벽한 성공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도전'하지 않으면 된다. 쉽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최고의 완벽주의자가 때로는 엉망의 결과를 내어 놓는 이유는 나의 '최선'을 발견하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 무언가 100%를 발휘하지 않는 실패하지 않은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아무런 도전과 실패도 하지 않는 '실패자'보다 차라리 '게으른 천재'로 남고 싶은 그 바람은 언제나 이루어진다.


 이유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안해도 되기 때문이다.

 후반에 다다르면 모든 갈등이 마법처럼 풀려지는 '디즈니'같은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일찍 깨우쳐야 하고, 어차피 느껴야 하는 공포나 실패 같은 거라면, '그거 원래 있는거야, 당연한거야,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인식을 어린 시절부터 학습하고 사회로 나가는 편이 낫다.


 살다보니 어린 시절에는 무시무시하던 '괴물'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다. 이유는 세상에는 '괴물'보다 훨씬 무서운 것들이 많으며 대체로 그런 것에는 '사람'과 '세상'이 포함되어 있어서 그렇다.


 어디서 듣기에 '귀신'이 나오는 영화가 무섭지 않은 이유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알아서 그렇단다. 실제로 귀신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아무런 감흥이 없다. 차라리 '살인자'라던지, '배신자'가 등장하여 실질적인 위협을 끼치는 영화에서 더 소름이 끼치곤 한다.


 인간은 '공포'가 제도권에 있다는 확신이 있으면 그것을 '여가'로 즐기기도 한다. 공포나 스릴러 영화를 즐겨보고 어떤 경우에는 떨어지는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한다. 그것이 허상이고 감정만 남기고 실질 위협은 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삶이 안정적일수록 그런 믿음이 더 강하고 '현실'에서 느끼지 못하는 공포를 '유희'하고자 한다. 어쩌면 무서운 이야기를 찾는 아이가 되려 올바른 정서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리가 불안하면 공포영화던 추리소설이던 즐겨 보지 못한다. 이건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경험인데, 꽤 확실한 결과를 내려 두었다.


책장에는 '살인'이나 '범죄'에 관한 추리소설이 가득하다. 아빠도 이런 공포를 즐긴다. 아이가 좋아하는 '괴물책'에 그런 의미를 부여해 본다.


 책은 그냥 괴물이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설화에 나오는 괴물들이다. 여기에는 꽤 많은 국가들이 나오고, 꽤 많은 문화와 문명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 그렇게 시작하는 거지..


 방에 문을 닫고 한참을 떠들던 아이들이 가끔 문을 열어보면 둘이서 머리를 박고 이 책을 들여다보며 한참 이야기 한다.


 '그거 다 거짓말이야'라고 알려주지 않고 조용히 방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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