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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사소한 별리
최석규 지음 / 문학수첩 / 2025년 7월
평점 :
요즘 들어 이런 류의 소설이 참 좋은데 자극적이지 않고 수수한 맛이 있어 그렇다. 뭔가 대단한 서사. 자극적인 '사랑'과 '이별'이 아니라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별 이야기.
그렇다고 내 주변에 이런 이야기가 흔한고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소설은 중단편으로 이뤄져 있다. 특별히 '이별 이야기'라고 생각치 않고 다른 인생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설에는 다양한 배경과 성격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가져보지 못한 직업과 취미, 삶에 대해 간접 체험을 해보는 일은 몹시 즐거운 일이다. 짧은 소설 하나하나 다양한 인물의 삶이 녹아져 있으며 그 체험을 하는 일은 뜻 깊다. 또한 그 인물들로 하여금 뒷맛이 떫은 이별을 경험하는 일은 여운이 길게 남는다.
떫다. 이별 이야기는 어떤 방식이든 깔끔치 못하다. 개운하지 못하고 텁텁하다. 그렇다고 그 미각 장애가 오래는 것은 아니다. 얼마간 혀와 입앗을 괴롭히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라져 버린다.
장애인을 도와주는 사회복지사 '중배'는 장애인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한때 춤을 굉장히 잘 추던 대학 동기를 만난다. 그리고 절뚝 거리는 그녀의 장애를 목격하고 돕는다. 소설은 친절치 못하다. 그들의 감정과 서사를 과감히 생략하고 주요 사건만 전개한다. 고로 사건이 있었다는 점.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 그리고 어떻게 되었다는 나열이 있다. 이 불친절한 전개는 불쾌보다는 쾌에 가깝다.
빈 구간은 공백이 아니라 여백이다. 공백과 여백 확실히 다르다. 공백은 비어 있는 '부재'만 있지만 '여백'은 의도적으로 남겨둔다. 빈 공간에는 독자의 상상이 채워진다. 알지 못하는 인물의 현재와 과거를 알게 되고 독자는 그의 인생과 현재, 미래를 음미할 수 있게 된다. 과연 그렇다. 소설 하나 하나가 끝날 때마다 알지 못한 여운이 남는다. 여백이 남긴 여운은 중단편답지 않게 길게 간다.
오디션에 수없이 떨어진 기타리스트의 이야기가 두 번째 단편에 나온다. 꿈을 접고 현실로 돌아온 그는 밥벌이를 위해 '생동성 실험'에 참여한다. 이 얼마나 현실감 있는가. 꿈을 달성한 하나의 스타 아래로 얼마나 많은 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는가. 과연 그렇다. 어떤 꿈을 가져 본 적 있고 거기에 근접하게 닿아 본 적 있었을 때, 꿈이란 '노력'을 만나면 반드시 닿게 되는 '필연'처럼 느껴진다. 마치 시킨대로 했으니, 약속대로 '내놔'하는 것처럼 떼를 쓰면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꿈'이라는 것은 매우 현실적이며 '노력'이 아니라 '기회와 운'이 함께 따랐을 때 이뤄진다. 수많은 방아쇠를 당겼던 러시아룰렛의 참가자 중 생존자의 이야기처럼 '누구나 될 수 있다'고 믿으면 다음 방아쇠의 희생자가 될 여지도 있다. 그렇게 밀리고 밀려서 현실의 어느 공간에 닿게 되면 그곳은 꽤 극단적인 상황으로 떨어져 있을 때가 있다.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소설이라는 허구에서 그 현실과 꿈의 괴리를 다시 한번 보았다. 기타리스트는 그림을 그리는 여자를 발견한다. 그녀는 꽤 까칠한 사람이다. 우연히 그녀가 항상 듣고 있던 노래가 자신의 노래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림'을 그리던 그녀는 어떻게 '이곳'에 닿게 됐는가. 따지고보면 음악을 사랑하던 그가 그곳에 닿게 된 바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냉정하도록 현실은 맡겨 놓은 생선을 내어 놓지 않는다. 그저 모르쇠하고 노력에 대한 더 가혹한 현실을 부여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던가. 녹녹치 않은 현실에서 꿈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때로는 '사랑'이나 '경제', 그 어디에서도 여유를 잃어 버린다.
벌써 최석규 작가의 책은 3권도 넘게 읽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놀라운 것은 '한 사람' 이토록 많은 인생을 묘사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모든 인물이 다른 성격과 다른 과거를 가지고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마치 '밑' 위로 지수가 높아지면 '차수'가 곱으로 변하듯, 이야기의 가능성은 무한대로 넓어진다. 이런 다양성을 만날 수 있는 것은 '현실'도 좋지면 '소설'이 너무 좋다.
허구의 인물과 인생들이겠지만 내가 어디서 '그런 삶'을 관찰해 보겠는가.
소설은 잔잔하고 사소한 이별을 이야기한다. 그 이별이란 단순히 남녀의 사랑 끝에오는 비극적 결말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흘러간 대부분의 흔적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