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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 - 국경선은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가
존 엘리지 지음, 이영래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8월
평점 :
최근 이스라엘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공습에 뉴스가 나왔었다. 요즘은 꽤 조용해진 것 처럼 보이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미사일이 오고 가는 영상들이 뉴스와 SNS를 통해 쉴 새 없이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전쟁을 실시간을 목격했고 꽤 현대적인 도시가 폭격을 당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얼마전 파키스탄과 인도의 갈등도 그렇다. 갑자기 어느 순간 벌어진 비극 같은 이 사건은 대체로 백 년 전, 제국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가 시작한다.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모여 앉아 나눠 가졌다. 민족, 종교, 언어, 생활권은 고려되지 않았다. 기준은 역시나 유럽인들의 이해에 의해 결정됐다. 아프리카의 국경선이 자로 잰 듯 깔끔하게 그어져 있는 이유다.
이 단순한 선 긋기는 아프리카 대륙을 수 세기 동안 고통스럽게 했다. 하나의 민족이 여러 나라로 찢어졌고 본래 적대적이었던 부족들은 아무 맥락없이 한 국경 안에 묶여 한 국가가 되었다.
'존 엘리지의 47개의 역사로 본 세계사'는 국경선이 어떻게 삶과 운명, 정치와 경제를 결정짓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도서는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한다. 경계라는 것이 굉장히 모호하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굳이 경계를 지을 필요가 고대 국가에 있었을까, 그런 가벼운 의문부터 시작하여 작가는 경계 하나 하나를 시간과 공간을 옮겨가며 설명한다.
예전 한반도와 중국에 관련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고대 중국의 제국은 왜 한반도의 작은 나라들을 점령하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을 풀어가는 책이었다. 해당 책에 의하면 우리가 '상나라, 하나라, 한, 진, 위, 촉, 오' 하는 대부분의 중국 국가들의 크기가 생각보다 부풀려져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한나라'가 그렇다. '한나라'하면 중국 전역에 거린 거대한 영토처럼 보인다. 다만 사실 현대 표시되는 지도에 비해 실제 한나라의 영토는 훨씬 작았다. 실제 한나라 시대에는 도로망이나 군현 설치, 조세체계가 닿는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고로 직속령으로 통치하는 범위는 매우 좁았다. 결국 '한나라 국경'이라고 지금 지도에 표시되는 선은 후대가 만들어낸 허상에 가깝다. 고대 국가의 경계는 오늘날 처럼 확정적이지 않았다. 경계란 언제나 권력자가 그려낸 상상속의 질서인 셈이다.
47개의 경계로 본 세계사는 바로 이 '상상의 질서'가 어떻게 만들어 졌으며 현대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이 경계는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업이 확장되고 축소된다. 바다에서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두고 분쟁이 벌어지고 하늘에서는 영공이 새로운 갈등의 무대가 되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국경의 개념은 점차 변형된다. 심지어 인간은 이제 우주에까지 경계를 긋기 시작한다.
세계지도를 펴보면 대체로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국경선이 그어진 지도가 보인다. 다만 애초에 '국경선'이라는 것은 자연상 존재할 수 없다. 유럽과 아시아 또한 두 대륙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완전하게 이어진 하나 대륙이다. 우리의 인식 방식을 투영하는 이런 국경선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책을 보면 알 수 있게 된다. 책은 인류가 '종교, 민족, 역사'를 가지고 만들어 놓은 국경선이라는 흔적에 대해 다양한 시선으로 알려준다. 책은 각각을 독립된 꼭지로 다룬 책이라 중간 중간 끊어 읽기도 좋고 시간을 내어 읽을 필요도 없는 부담감이 적은 책이다.
문체가 가볍고 사례중심이라 짧게 짧게 집중력을 발휘하고 읽어도 충분하다. 단숨에 통독하지 않고 하루 한두 꼭지씩 가볍게 읽기 좋은 역사, 인문학책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