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과 꿀
폴 윤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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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한다. '가로 지르다'라는 '디아'와 '씨앗처럼 '씨앗을 뿌리다'라는 '스포라'가 합쳐진 말이다. 다시말해서 어떤 이유로 씨앗처럼 흩뿌려진 이들의 이야기다. 고로 '디아스포라'를 소재로 한 '폴 윤' 작가의 '벌집과 꿀'에는 '시대'도, '지역'도, '언어'도 다른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나온다.

소재가 그렇듯 소설은 가볍지 않다. 그래서 이런 소재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해피앤딩'이나 마냥 밝은 분위기의 '작품'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매우 어두운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어두운 분위기'의 소설이 주는 묵직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선정할 때도 그렇다. 어떤 영화들은 주인공에게 '시련'과 '도전'을 던지지만 '러닝타임'이 끝나갈 중반 이후가 되면 갈등이 고고조에 이르다가 갑자기 모든 갈등이 마법처럼 풀려 버린다. 마치 모든 문제가 하나도 없어지는 것처럼 깔끔하게 문제들이 해결되고 나면 극은 마치 '디즈니 만화의 엔딩'처럼 '그렇게 모두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하고 끝나 버린다. 그 얼마나 비현실적인 결론인가.

가깝게 지내던 지인은 이런 비현실성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봤다.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마치 SF소설처럼 오히려 비현실이기에 더 극을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반대다. 모든 갈등이 깔끔하게 해결되는 그런 비현실성은 외계인이 침공해 오는 일보다 더 있을 수 없다. 적당한 현실성을 바탕으로 비현실성을 그릴 때 더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화창한 날씨'보다 '천둥번개'가 몰아치는 폭풍우의 날씨를 좋아한다. 물론 '일상'이 아닌 '주말'의 경우 그렇다. 번쩍 거리며 '우르르 쾅'하고 내리치는 천둥과 번개, 몰아치는 바람과 비를 창문 밖에서 바라 볼 때, 나는 때로 안정감을 느낀다.

적정한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에어컨', 은은하게 비추고 있는 조명등, 안락한 소파에 앉아서 창밖의 폭풍을 바라보면 지붕과 벽이라는 안전한 장치로부터 보호된다는 안정감을 갖게 된다.

'폴윤'의 벌집과 꿀은 그런 의미의 소설이다. 고통이나 상실, 외로움, 침묵, 단절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지만 활자 밖으로 눈을 꺼내면 쌍둥이 아이들이 시끄럽게 싸우고 놀고 있다. 일종의 이런 안정적인 대비감에서 '편안하게 비극'을 즐기는 것이다. 

실제로 심리학이나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삶이 안정적일수록 '공포, 불안, 비극을 담은 콘텐츠를 잘 감상하고 즐긴다고 한다. 안정적일 수록 '공포'나 '비극'이 주는 편도체의 활동이 적고 '전두엽'의 활동이 활발해지기 때문에 통제 가능한 공포나 비극에 대해 '오락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지구촌 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넷플릭스'라는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통해 '오징어게임'을 감상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아마 실제 그와 비슷한 생존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그런 영상 컨텐츠는 즐기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벌집과 꿀'은 '편함' 속에서 읽는 '비극'이다.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어디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름은 있지만 국적은 모호하고 가족은 있지만 함께하지 않으며 삶은 있지만 거기에 소속감 따위는 없다.

이들 대부분은 대부분 조용하게 살아간다.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다. '러시아', '일본', '스페인'처럼 그 배경은 다르지만 모두가 '이방인'이라는 감각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단순히 외국에 '이민'한 '이주민'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어디에도 두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비극이나 슬픔은 마음껏 떠들어댈 때보다 숨기고 침묵했을 때 더 깊어진다. 작가는 인물의 감정을 과하게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조차 드러나지 않는 장면도 많다. 그저 인물의 움직임이라던지, 시선, 말 없는 동작을 통해 그들이 지나온 시간을 짐작하게 만든다.

독자가 함부로 판단하거나 동정할 의지를 주지 않는다. 고로 이 책은 꽤 얇지만 읽는데 시간이 걸린다. 한 줄 한 줄 그 고통을 음미하며 온전히 느끼고 마치 무거운 돌을 하나 하나 들어 옮겨내듯 문장이 주는 삶의 무게를 감내해 보는 느낌이다.

'그래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하는 초비현실적인 이야기보다 묵직하지면 결국 모두가 적당한 고통을 안은 채 묵묵히 삶을 이어가는 이 이야기가 '몹시' 현실적이다.

무더운 여름 날, 조용한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에어컨 밑에서 이런 비극의 이야기를 읽어내는 안정감이 꼭 어쩌면 '지금의 삶'을 만족시키는 반전의 효과도 지니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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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하는 아이는 읽기머리가 다릅니다 - 어휘, 추론, 요약, 독해를 배우는 초등 읽기 기술
오현선 지음 / 온더페이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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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을 때, 다른 글에 비해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어떤 소설은 읽는데 빠르게 읽히기도 하고, 어떤 소설은 도무지 읽어도 이해가 안간다. 그건 왜 그런고 했더니, 사실상 '읽기'에도 종류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해외'에서 '공부'하던 시절 깨달은 바라고 한다면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굉장히 '추상적이다'라는 것이다. '언어를 잘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여러 방면에 대한 능통을 말한다. 사람은 각자 능력에 따라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의 능력이 다르다. 말을 잘하지만 글을 읽고는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있고, 잘 들을 수 있지만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쓰지만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처럼 언어라고 하는 것은 꽤 하나의 덩어리면서 때로는 파편적인 능력이기도 하다.

다시 앞서 말한 나의 '읽기능력'에 대해 되돌아가자면 나의 경우에는 '소설읽기'가 꽤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글에는 '비문학', '문학글'이 따로 있다. 사람마다 이런 영역별로 이해하는 속도가 다를 수 있는데, '유시민 작가'는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글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아이는 책을 좋아하지만 학교 성적이 낮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책 한권 읽지 않으면서도 학교 성적이 좋기도 한다. 그것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언어 능력에 관한 것이고 이 역시 사람에 따라 타고 나는 것과 길러지는 것의 차이가 발생할 수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읽기 능력' 자체의 향상이다. 읽기 능력은 개인적으로 '습관'에 의해 생긴다. 습관이라는 것은 '무의식'이 만들어낸 고정된 사고 방식의 발현이다. 다시말해서 우리가 어떤 행동이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의지력'이 소모가 되는데, 이는 정신적 피로도를 크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말 것이가, 그 행동을 할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며 얼마나 해야 하고 어디서 해야 하는가, 처럼 단일 행동에 대한 정신적 피로가 상당하게 된다. 다만 '습관'이라는 것은 반복적인 되풀이 과정에서 저절로 '의지력'을 사용하지 않고 결정과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이뤄지는 일이다. 고로 '행위'에 대한 결과는 같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에너지의 차이는 '극과 극'만큼의 차이가 발생한다.


'책을 읽는 행위'가 습관적 이라는 것은 '문자'를 일을 때 '의지력'이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많은 아이들이 '문자 읽기'에 '습관화'가 되어 있지 않아, 애당초 글의 종류는 고사하고 '글' 자체의 접근에 정신적 피로도를 느낀다.

물론 글자를 읽지 않고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있다. 가령 같은 또래의 친구라고 하더라도 '운동신경'이 좋은 친구와 그렇지 않은 친구가 있는데, 체육시간에 같이 '축구'를 하게 되면 그 차이가 아주 여실하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타고 난다는 것' 자체를 부인할 수가 없다. 사람마다 유연함이 다르고 체력이 다르고, '운동'에 대한 타고난 감각이 다를 수 있다. 아마 이것은 말그대로 '유전'일 수도 있고 어린 시절부터 보고 왔던 '스포츠'에 대한 동경이라던지, 스스로 '의지력'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저도 모르게 선택했던 여러 행동들의 결과일지 모른다.

학습이라고 크게 다를까 한다면 그렇지 않다. 분명 크게 의지력을 들이지 않음에도 앞서가는 아이가 있고, 큰 의지려을 들이고도 실패하는 이들이 있다. 겉으로 타고나는 것처럼 보여지는 이런 차이는 아마 '의지력'의 투여도와 성과에 대한 비대칭 때문에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다만 분명한 것이 있다. 타고난 아이와 평범한 아이의 운동 감각이라는 것은 분명 시작점에서는 큰 차이를 발생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시간'과 '노력'에 대한 '습관화'가 따르면 결국은 언제든 뒤집어 질 수 있다는 의미다.


조던 모리스는 미국의 축구선수다다. 다른 운동선수의 경우 '부모'가 운동선수인 경우가 많지만 그의 아버지는 '정형외과 의사'다. 어린시절 그는 축구를 그닥 잘하지 못했고 그럼에도 꾸준하게 기량을 올린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 본격적으로 실력이 향상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스타포드 대학교에 진학하고 3년간 23골을 기록하며 2015년 NCA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하고 Hermann 트로피'를 수상하기도 한다. 다시말해서 '유전'이라는 것은 시작점 일 뿐, 결국은 연습과 반복에서 갈린다. 타고난 피나 환경보다는 오히려 의지를 들이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지점까지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던 모리스는 학창시절 매일 운동장을 나갔다. 팀보다 느리고 발재간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고난 무언가를 넘어서는 연습량을 가졌다. 초기의 의지력은 '습관'으로 변형되고 결국에는 '의지'를 들이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지점에 도달한 뒤에는 '무의식'이 실력을 길렀다.


글 읽기도 마찬가지다. 같은 글을 읽더라도 이해력의 차이는 반드시 발생한다. 타고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에 최초에는 의지가 발동이 되고 차후에는 그것이 습관이 된다. 그러고나면 '시간'은 언제나 '습관'의 편으로 기량을 길러낸다. 고로 '좋아한다'는 것은 굉장한 득을 주는 일이다. '책을 억지로 읽게 하는 것'과 '책을 좋아하도록 하는 것'의 차이는 거기서 발생을 한다. 고로 아이가 어린 시절부터 책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고 '읽기'가 습관화가 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자로 된 문자를 보더라도 그것을 저절로 의미로 받아들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그 문자를 음성언어로 변환하고 그 변환된 것에 대한 의미로 변환하는 작업을 하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벌써 하나의 텍스트를 해결하는데 프로세스에 단계에 차별이 생긴다.

일단 읽기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면 '글'의 종류는 그다음 허들이다. 애초에 첫번째 허들에서 걸려 넘어지는 것보다는 수월하게 두번째 허들로 넘어 갈 수 있으며 두번 째 허들에서도 '습관화'를 무기로한 연습이 기량 향상을 돕는다.

결국 운동이던 공부던 '습관'이 가장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어떤 일이던 '습관화'까지 걸리는 시간은 분명히 존재하고 '습관화'부터 '기량향상'까지 들어가는 시간도 충분하게 들어가겠지만, 어떤 이들이 '시작'이라는 허들에서 '의지력'이라는 이름으로 '정신적 피로도'를 모두 소진하는 것에 비하면 가장 빠른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고로 '저도 모르게 글을 읽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은 차후 엄청나게 들어가게 될 사교육비를 절약하는 경제적이고 현명한 방법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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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다나카 야스히로 지음, 황선종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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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2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한 지방 마을, 행정구역상 '피렌체'에 속하는 곳에서 '다빈치'가 태어난 것은 인류에게 행운과 같았다. 그의 아버지가 '종이'를 많이 다루는 '회계사'인 것도. 아버지 피에로가 레오나르도의 어머니를 버린 것도, 인류의 역사를 보건데 굉장한 행운이었다.

다빈치의 아버지는 단순한 서기나 필경사가 아니었다. 법과 수, 계약과 문서를 다루는 공증인이었다. 당시 '종이'를 쉽게 구할 수 없던 시기에 '다빈치'가 널려 있는 필기구와 종이를 가지고 '메모광'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런 배경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훌륭한 생각'이 아니라 '계산과 기록의 질서'가 생겨난 근본적인 이유는 당시 다빈치를 둘러썬 모든 상황과 현실이 기가 막히게 도왔기 때문이다.

만약 다빈치의 아버지인 '피에로'가 가정에 대한 엄청난 책임감을 가지고 다빈치와 그의 어머니를 책임진다고 했다면 그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의 삶을 떠나 인류의 역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다빈치의 아버지는 다빈치와 어머니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다빈치는 장남으로 공증인이 될 필요가 없어졌다. 아버지 피에로의 '비인간적'이고 '비가정적인' 선택으로 우리는 인류 역사에 다시 없을 천재를 갖게 됐는지 모른다.

다빈치의 이야기가 아니다. 종이에 대한 이야기다. 종이의 역할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종이'는 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환경도 크게 바꿀 수 있었다. 상인들은 잉여자본을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뱅커'들의 공증으로 때로는 '송금'이나 '환전'도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냈따.

상인들은 장부를 기록하는 습관을 갖게 됐고 이 기록은 '약속'에 대한 '증명'이 됐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라는 '무존재성 담보'에 '존재성'이 발생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던 당시, 그가 참고했던 것이 하나 있다. 이 어마어머한 인류 최고의 예술 작품에 레퍼런스는 바로 '산술, 기하, 비율 및 비례의 총람'이라는 수학책이다. 이 책은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수학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다빈치는 여기에서 '원금법'에 대해 감명을 받는다. 그가 썼던 '할일 목록장'에는 '루카 선생에게서 평반근을 배울 것'과 같은 메모가 적혀 있기도 하다.

예술과 수학의 이런 만남은 흔히 예상할 수 있다. 좋은 음악이나 그림, 조각들은 수학과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 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수학'에서도 그 예술성이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수학의 예술성은 '균형'에 있다. 등호를 기준으로 양변의 균형을 정확하게 맞추는 일이 '수학'이다. 이런 '균형'은 '자연'을 닮았고, '예술'은 또한 '자연'을 닮았다. 대차대조표의 차변과 대변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도 엄밀하게 보자면 '자연'을 닮았고 '수학'을 닮았다. 아무튼 이런 수학적 참고를 바탕오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시작한 4년 후 작품을 완성했다.

'최후의 만찬'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기'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피렌체에서 상인들에게 큰 힘이 되어준 조력자는 '부기'다. 부기는 상인들에게 '상거래의 현재 상태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이 되도록 해주었다. 이런 '부기'를 보급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바로 '다빈치'의 선생 루카 파치올리다.

앞서 다빈치가 참고했다는 '산술, 기하, 비율 및 비례의 총람'이라는 도서에는 27쪽에 걸쳐서 부기에 대한 설명이 있다. 600쪽이 넘는 광대한 분량 중 27쪽은 당시 상거래와 비즈니스의 역사를 크게 바꿀 정도로 강력했다.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 '이자'를 받는 행위는 굉장히 불성한 일이었다. 시간에 따른 돈을 챙겨 받는 일은 '사탄의 행위'라고 볼 수 있었다. '시간'은 '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당시 유럽에서 '유대인'을 제외하고 이자를 받는 일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여기에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가 나온다.

메디치 가문은 본래 그 이름에서 보이듯 '의사' 가문이다. 다만 이들은 차후 모직물을 제조하고 폭넓은 교역활동을 한다. 그러다 상업 활동과 융자서비스를 조합한다. 가령 융자를 해주는 대신에 상품에 대한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다. 또한 메디치 은행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다양한 수수료와 중개료, 매매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다시말해서 '시간에 따른 이자'가 아니라 정보력과 예측력을 통해 교묘한 차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기록에 관한, 장부에 대한, 수학에 관한 약속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역사에서 파편적으로 흘렀을 리는 없다. 이 서사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생겼다 소멸되고 상생하다가 어느 순간 모여든다. 그 모여든 접점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다. 동인도회사는 자금을 모아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금을 맡은 경영자가 자금을 제공한 주주들에게 보고하는 것에서 부터 '회계'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회사가 망하면 개인이 연대책임을 받는 '무한책임'에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유한책임'의 시작이다. 무연고 주주가 안심하고 투자를 하는 환경이 만들어지자 거액의 자금이 장기적으로 조달되고 위가 알고 있는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는 그렇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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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트.킵.바잉 (특별증보판) -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줄 3개의 단어
닉 매기울리 지음, 오수원 옮김, 이상건 감수 / 서삼독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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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바하르 주의 가히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 마을은 높은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마을에서 병원이나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70km를 돌아서 가야 했는데요.


그 때문에 사람들은 병이나 사고로 자주 죽곤 했습니다.


어느날 '다뤼랏'의 아내, '파기'는 임신 중이었는데요.

그녀가 물과 식량을 옮기는 와중에 산을 넘다가

넘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그는 급하게 아내를 데리고 병원을 가려고 했습니다.


다만 병원까지 가는 길이 너무 험하고 멀어서

결국 도착하기도 전에 아내는 사망하고 맙니다.


그 뒤로


그는 '망치'와 '끌' 하나만 들고

그 지역을 가로 막고 있는 거대한 산을 깎기 시작합니다.


하루.. 이틀.. 삼일...


이 무모한 일에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습니다.

그는 가난했고 장비도 없고 도와줄 이도 없었습니다.


밥도 굶고 손에 피가 나도록

꾸준히 그 일을 하던 그의 하루가 22년이 되고


1960년부터 1982년까지

22년간.


그렇게 매일 같이 돌을 깎고 산을 파는 일을 한 그는

결국 산을 관통하여 바로 옆 마을까지 연결되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70km를 돌아서 가야 했던 길이 단 15km로 줄어 들었고

마을 사람들은 병원에 더 빨리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수많은 생명이 구해졌습니다.

단순히 돌아가면 될 길을

22년 간 파게 되었을 때,


그 변화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돌아가면 금방 도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엄청난 고생과 시간이 들더라도

한번 뚫린 길은

무한대로 그 혜택을 가져옵니다.


당장은 티가 나지 않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매일같이 묵묵히 하는 행동은 결국 삶 전반을 바꿀 수 있습니다.


'Just Keep Buying'이라는 도서의 핵심 내용은 간단합니다.

그냥 '최대한 빨리 사라', '전부 사라', '그리고 그냥 사라'


단순합니다.


타이밍을 계산할 것도 없이.

그냥 사면 됩니다.


정말 재수가 없어 1939년 미국 대공황이 시작한 시점부터

그것도 최고점부터 시작해서 주식매수를 한다고 해봅시다.


한두 번이 아니라,

매달 100달러씩, 빠지던 말던

세계대전이야 나던 말던,

일본이 진주만이 공격당하고

유럽 전역이 나치에게 점령되고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이 승기를 잡고 있던 말던


세게 정세가 어떻고, 미국 채권과 달러가 망한다거나 

과도한 부채로 결국 파산할지 모른다는 뉴스가 나오던 말던


S&P계열의 지수에 매달 정액 투자를 했더라면

정확히 대공황이 지나고 10년 뒤의 수익은 원금의 10배가 되어 있을 겁니다.


한번에 가지고 있는 자산을 모두 사고

심리적 데미지를 입고 저가에 판다면

그것은 재앙이 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세상이 어떻게 흔들던 말던

꾸준하게 ETF를 매수하고 있다면

자본주의는 반드시 원금을 넘어

엄청난 고수익을 남기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장타이밍이나 주가그래프 분석.

애널리스트의 정밀하고 냉정한 기업분석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최대한 빨리 매수를 시작해서 꾸준하게 사며

오래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232년 미국 자본주의 시장의 역사는

이런 방식을 매순간 증명해오고 있습니다.


911 테러가 발생하고

팬데믹이 터지고

브렉스트가 일어나고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하며 관세 전쟁을 시작하는 등


비관적인 뉴스가 '주식을 팔아라'라고 말하는 모든 순간이


지금에 와서 굉장한 저점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200년의 주식시장 역사가 매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다르다.'

'200년은 그래왔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 정도의 비관주의자라면

차라리 투자자가 되지 말고, 비평가가 되는 편이 낫습니다.


그런 경우라면 주식이 아니라

뭔들 해도 안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중요한 건,

시간과 꾸준함이 답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스트 킵 바잉'은

매우 좋은 책이었습니다.


읽고 또 읽고 또 읽어도 부족함 없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최대한 어린 나이에 읽는 것이

삶의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는 몹시 기대됩니다.


고로 저는 아이에게 '수능 문제집' 한권보다는

이 책을 먼저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근래 읽었던 경제관련 최고의 책,

무조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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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는 착각 - 상처받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법
황규진 지음 / 북스고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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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사람에게 끌렸는가?

연인, 친구, 가족까지...

내가 ‘운명’이라 믿고 계속 유지해온 관계들이 사실은

'익숙함에 중독된 패턴'일 수 있다.

그것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1장을 보면 이렇게 시작하는데요.

“무엇이 잘못됐을까?”

이 질문이 깊게 다가옵니다.


처음엔 모든 게 아름답고 따뜻했던 관계...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의 말, 행동, 표정 하나에 흔들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죠.

이때부터 균형은 무너져요.

서로를 대등하게 바라보는 관계가 아니라,

한 사람이 중심이 되고,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가 생기죠.

그 결과는 혼란과 깊은 상처예요.

나조차도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왜 헤어나오지 못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져요.


나르시시스트는 가면을 쓰고 다가옵니다

이 책은 ‘나르시시스트’라는 개념을

일반적인 이기적인 사람 이상으로 설명해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심리 조종자, 감정 학대자 등

다양한 유형을 포괄하면서,

그들이 보이는 공통된 심리와 행동 패턴을 분석하죠.

특히 무서운 건

그들이 처음엔 친절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거예요.

“이 사람은 운명이야”라고 믿게 만들고,

의존하게 만든 다음,

그제야 본색을 드러내요.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치밀하고 반복적이라는 걸 이 책은 알려줘요.

이건 내 잘못이 아니었어요

책을 읽다 보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감정이 있어요.

“내가 뭔가 잘못해서 그랬나?”

“왜 나는 이런 관계를 선택했을까?”

하지만 황규진 작가님은 말합니다.

“지금 관계로 인해 괴롭거나 고민하고 있다면,

그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고, 객관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고통을 잘 들여다보면 길이 보인다는 메시지예요.

관계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진짜 나의 것인지,

아니면 상대가 조종한 감정인지 구분하는 게

회복의 시작이라는 걸 알려줘요.


관계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로 봐야 해요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는

늘 상대가 중심이고, 나는 주변 인물이 되는 구조예요.

그 구조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얼마나 참아도,

얼마나 노력해도

관계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런 분께 추천드려요

연애나 인간관계에서 자주 상처받고 혼란을 느끼는 분

‘이건 운명인가?’라는 생각으로 아픈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분

상대의 눈치, 감정, 기분에 따라 내 감정이 휘둘리는 분

자신도 모르게 죄책감을 느끼며 관계를 끊지 못하는 분


'운명이라는 착각'은

'운명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의문을 품게 해주는 책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그건 운명이 아니라

처음부터 잘 짜여진 착각의 덫이었을지도 모른다고요.

관계 안에서 자꾸 나를 잃어가는 기분이 든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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