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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지도를 바꾼 회계의 세계사
다나카 야스히로 지음, 황선종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6월
평점 :
1452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한 지방 마을, 행정구역상 '피렌체'에 속하는 곳에서 '다빈치'가 태어난 것은 인류에게 행운과 같았다. 그의 아버지가 '종이'를 많이 다루는 '회계사'인 것도. 아버지 피에로가 레오나르도의 어머니를 버린 것도, 인류의 역사를 보건데 굉장한 행운이었다.
다빈치의 아버지는 단순한 서기나 필경사가 아니었다. 법과 수, 계약과 문서를 다루는 공증인이었다. 당시 '종이'를 쉽게 구할 수 없던 시기에 '다빈치'가 널려 있는 필기구와 종이를 가지고 '메모광'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그런 배경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훌륭한 생각'이 아니라 '계산과 기록의 질서'가 생겨난 근본적인 이유는 당시 다빈치를 둘러썬 모든 상황과 현실이 기가 막히게 도왔기 때문이다.
만약 다빈치의 아버지인 '피에로'가 가정에 대한 엄청난 책임감을 가지고 다빈치와 그의 어머니를 책임진다고 했다면 그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그의 삶을 떠나 인류의 역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다빈치의 아버지는 다빈치와 어머니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다빈치는 장남으로 공증인이 될 필요가 없어졌다. 아버지 피에로의 '비인간적'이고 '비가정적인' 선택으로 우리는 인류 역사에 다시 없을 천재를 갖게 됐는지 모른다.
다빈치의 이야기가 아니다. 종이에 대한 이야기다. 종이의 역할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종이'는 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환경도 크게 바꿀 수 있었다. 상인들은 잉여자본을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뱅커'들의 공증으로 때로는 '송금'이나 '환전'도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냈따.
상인들은 장부를 기록하는 습관을 갖게 됐고 이 기록은 '약속'에 대한 '증명'이 됐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라는 '무존재성 담보'에 '존재성'이 발생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던 당시, 그가 참고했던 것이 하나 있다. 이 어마어머한 인류 최고의 예술 작품에 레퍼런스는 바로 '산술, 기하, 비율 및 비례의 총람'이라는 수학책이다. 이 책은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수학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다빈치는 여기에서 '원금법'에 대해 감명을 받는다. 그가 썼던 '할일 목록장'에는 '루카 선생에게서 평반근을 배울 것'과 같은 메모가 적혀 있기도 하다.
예술과 수학의 이런 만남은 흔히 예상할 수 있다. 좋은 음악이나 그림, 조각들은 수학과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 말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수학'에서도 그 예술성이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수학의 예술성은 '균형'에 있다. 등호를 기준으로 양변의 균형을 정확하게 맞추는 일이 '수학'이다. 이런 '균형'은 '자연'을 닮았고, '예술'은 또한 '자연'을 닮았다. 대차대조표의 차변과 대변을 정확하게 맞추는 것도 엄밀하게 보자면 '자연'을 닮았고 '수학'을 닮았다. 아무튼 이런 수학적 참고를 바탕오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시작한 4년 후 작품을 완성했다.
'최후의 만찬'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기'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피렌체에서 상인들에게 큰 힘이 되어준 조력자는 '부기'다. 부기는 상인들에게 '상거래의 현재 상태을 이해할 수 있는 기본'이 되도록 해주었다. 이런 '부기'를 보급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바로 '다빈치'의 선생 루카 파치올리다.
앞서 다빈치가 참고했다는 '산술, 기하, 비율 및 비례의 총람'이라는 도서에는 27쪽에 걸쳐서 부기에 대한 설명이 있다. 600쪽이 넘는 광대한 분량 중 27쪽은 당시 상거래와 비즈니스의 역사를 크게 바꿀 정도로 강력했다.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 '이자'를 받는 행위는 굉장히 불성한 일이었다. 시간에 따른 돈을 챙겨 받는 일은 '사탄의 행위'라고 볼 수 있었다. '시간'은 '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고로 당시 유럽에서 '유대인'을 제외하고 이자를 받는 일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 여기에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가 나온다.
메디치 가문은 본래 그 이름에서 보이듯 '의사' 가문이다. 다만 이들은 차후 모직물을 제조하고 폭넓은 교역활동을 한다. 그러다 상업 활동과 융자서비스를 조합한다. 가령 융자를 해주는 대신에 상품에 대한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다. 또한 메디치 은행의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다양한 수수료와 중개료, 매매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다시말해서 '시간에 따른 이자'가 아니라 정보력과 예측력을 통해 교묘한 차익을 얻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기록에 관한, 장부에 대한, 수학에 관한 약속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역사에서 파편적으로 흘렀을 리는 없다. 이 서사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생겼다 소멸되고 상생하다가 어느 순간 모여든다. 그 모여든 접점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다. 동인도회사는 자금을 모아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자금을 맡은 경영자가 자금을 제공한 주주들에게 보고하는 것에서 부터 '회계'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회사가 망하면 개인이 연대책임을 받는 '무한책임'에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유한책임'의 시작이다. 무연고 주주가 안심하고 투자를 하는 환경이 만들어지자 거액의 자금이 장기적으로 조달되고 위가 알고 있는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는 그렇게 발전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