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사람은 독재자(자비롭다고 하더라도)를 원한다. 책임을 전가하고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당신이 내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어. 내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우산 아래에 서 있으면서 자신의 몸이 젖고 있다고 불평하며 일생을 보내서는안 된다. 희생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외부에 초점을 맞추고 내다보며, 현재 상황에 대해 책망할, 혹은 자신의 목적, 운명, 가치를 대신 결정할 누군가를 찾는 일이다. - P363

해방은 수용에서부터 시작한다.
치유하기 위해, 우리는 어둠을 받아들인다. 빛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계곡의 그늘을 걸어서 지나가야만 한다.  - P395

이제 우리 차례다. 멩겔레 박사가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그녀는네 엄마니 아니면 네 언니니?" 그가 묻는다.
나는 엄마의 손에 매달리고 마그다 언니는 엄마의 다른 쪽을 껴안는다. 우리 중 아무도 왼쪽으로 보내지는 것의 의미와 오른쪽으로 보내지는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하지만, 엄마는 내가 내 나이 또래로 혹은더 나이가 많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첫 번째 선별 줄을 살아서 통과하기 위해서는 내가 충분히 나이 들어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엄마의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하지만, 엄마의 얼굴은내 얼굴만큼이나 매끈하다. 엄마는 나의 언니로 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나는 ‘엄마‘와 ‘언니‘ 중 어떤 단어가 엄마를 보호할지 생각하지 못한다. 생각이란 것을 전혀 할 수가 없다. 나는 그저 엄마를 사랑하는, 엄마를 필요로 하는 내 안의 세포 하나하나만 느낀다. 그녀는 나의 어머니, 나의 엄마, 나의 유일한 엄마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의식에서지우려고 애쓰며 평생을 보내게 되는 바로 그 말을 내뱉는다. 심지어오늘까지도 내가 나에게 기억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바로 그 말을 말이다.
"엄마예요." 내가 말한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목구멍 안으로 그 말을 다시집어넣고 싶다. 나는 그 질문의 중요성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녀는 네 엄마니 아니면 네 언니니?‘ ‘언니예요! 언니예요! 언니예요!‘ 나는소리치고 싶다. 멩겔레가 엄마에게 왼쪽으로 가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엄마가 어린아이들, 노인들, 임신한 엄마들, 팔에 아기를 안고있는 엄마들의 뒤를 따른다. 나는 엄마를 따라갈 것이다. 나는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지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엄마를 향해 달려가려 하지만 멩겔레가 내 어깨를 움켜잡는다. "곧 있으면 엄마를 보게 될 거야." 그가 말한다. 그가 나를 오른쪽으로 떠민다. 마그다 언니를 향해. 다른 쪽을 향해. 생존을 향해. - P406

"언니에요‘라고 말했어야 했어요! 왜 제가 ‘언니‘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내가 수십 년 건너에서 엄마에게 외치며 엄마의 용서를 구한다. 이것을 받기 위해 내가 아우슈비츠로 되돌아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엄마가 나에게 내가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해주는 것을듣기 위해서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말해주는 것을 듣기 위해서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아니 엄마가 그렇게 말한다고하더라도 나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치를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순간을 다시 살 수만있다면,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었던 바로 전 순간과 이 순간을 다시살 수만 있다면, 나는 처음부터 다시 모든 순간을 기꺼이 살아낼 것이다. 모든 선별 줄, 모든 샤워, 얼어 죽을 것처럼 추운 밤과 점호 시간, 모든 식사, 연기로 시커멓게 된 공기의 냄새, 거의 죽을 뻔하거나 죽고싶었던 모든 순간을 말이다. 멩겔레의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었던 바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의 목숨을구할 수 있었던 바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 P408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말한다. "의미를 찾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동기이다. (...) 이 의미는 각각의 인간에게 고유하고 구체적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만의 의미를 추구해야하고, 또한 자신만의 의미를 추구할 수 있다. 오로지 그때에야 그 의미는 중요성을 획득하고,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포기하는 건 의미를 창조하고 발견하는 능력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 P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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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그만은 실험이 실험들은 개들을 대상으로 실행되었다. 유감스럽게도, 동물 학대를 금지하는 현재의 보호법들이 생기기 이전이었다)을 통해 그가 ‘학습된 무기력 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이름 붙인 개념을 알아냈다. 개들에게 고통스러운 충격을 가한 후, 이 개들에게 레버를 눌러서 충격을 멈출 수 있게 조건 지웠을 때, 개들은 고통을 멈추는 법을 빠르게 배웠다. 그리고 이 개들은 뒤따른 실험에서 개 사육장안에서 고통스러운 충격이 가해지자 낮은 장벽을 뛰어넘어서 충격을 피하는 방법을 쉽게 알아냈다. 하지만 고통을 멈추는 수단이 주어지지 않은 개들은 자기들이 고통에 대해 무기력하다는 교훈을 배웠다. 그래서 개 사육장에 들여보낸 후 충격을 가하자, 이 개들은 탈출할수 있는 방법을 무시하고 그저 바닥에 엎드려서 낑낑거렸다. 이 실험으로부터 셀리그만은 우리가 자신의 상황에 통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느낄 때, 혹은 우리가 고통을 완화하거나 삶을 개선할 방법이 하나도 없다고 믿을 때, 우리는 자신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기를멈춘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확히 강제수용소에서 벌어졌던 상황이다. 해방된 수감자들은 강제수용소의 출입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수용소로 돌아와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침내 찾아온 자유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 P305

내게 매우 영향을 많이 준 멘토 중 한 사람인 칼 로저스는 환자들이 자기 자신을 완전하게 받아들이도록 돕는 일에 대가다. 로저스는자기실현의 욕구가 긍정적 수용의 욕구와 충돌할 때, 혹은 그 반대일때, 우리가 자신의 진짜 개성과 욕망을 억압하거나 숨기거나 무시할수 있다는 이론을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동시에‘ 진짜•자신으로 존재할 방법이 없다고 믿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부정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자기수용은 치유의 과정 중 내게 가장 힘든 부분이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나는 이것과 씨름하고 있다. 완벽주의는 내 어린 시절에 인정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 완벽주의는생존자로서의 죄책감에 대처하는 대응 기제로 내게 더 깊이 뿌리내렸다. 완벽주의는 무언가가 망가졌다는 신념이다. 바로 ‘자기 자신‘ 말이다. 그래서 학위, 성취, 포상, 논문 등으로 자신의 망가진 부분을 가리려고 하지만, 이러한 것 중 그 어느 것도 자신이 고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쳐줄 수 없다. 낮은 자존감과 싸우려고 애쓰면서, 나는오히려 나 자신이 가치 없다는 생각을 강화하고 있었다. 내담자들에게 완전한 사랑과 수용을 제공하게 되면서, 다행히 나는 나 자신에게도 이와 똑같은 것을 제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 P308

셀리그만과 엘리스의 이론을 공부하고 로저스를 연구 대상으로 하면서,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의견을 종합하는 방식에 큰 도•움을 받았다. 또한 절충적이면서도 직관적인 통찰력을 얻고, 인지 지향 심리치료 접근법을 도출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았다. 내 심리치료방식에 이름을 붙여야만 한다면 ‘선택 치료 Choice Theraphy‘라고 부르고싶다. 자유는 ‘선택 CHOICE‘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유는 연민Compassion, 유머Humor, 낙관주의 Optimism, 직관Intuition, 호기심Curiosity, 그리고 자기표현self-Expression을 선택하는 것의 문제다. 그러므로, 자유롭다는 것은 바로 현재에 사는 것이다. 과거에 갇힌 채 "여기 대신 저기‘만‘ 갔더라면" 혹은 "결혼을 다른 사람하고‘만‘ 했더라면..."이라고 말한다면, 자기 스스로 만든 감옥 안에 사는 것과 다름없다. "~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절대 행복할 수 없을 거야" 혹은 "딱 맞는사람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절대 행복할 수 없을 거야"라고 말하면서•미래에 우리의 시간을 쏟는다 해도 감옥 안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선택의 자유를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바로 현재뿐이다. - P310

오늘 나는 두 명의 새로운 환자를 할당받았다. 두 명 모두 베트남전참전 군인이고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이들은 진단(낮은 T급 척수 손상)이 같고 예후(생식기능과 성기능 장애, 다시 걷을 가능성 희박, 양손과 몸통 통제 용이) 또한 같다. 그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도 나는 이들 중 한 명이 내게 삶을 완전히 바꾸는 영향을 미칠지 아직 모르고있다. 나는 톰을 먼저 만난다. 그는 태아 자세로 웅크린 채 침대에 누워서 신과 조국을 저주하고 있다. 그는 감옥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다친 몸 때문에, 자신의 고통 때문에, 자신의 분노 때문에.
다른 참전 군인의 병실에 가니 척이 침대 밖으로 나와 휠체어에 앉아 있다. "흥미로워요." 그가 말한다. "제게 인생에서 두 번째 기회가 생겼어요. 놀랍지 않나요?" 그는 새로운 발견과 가능성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이 휠체어에 앉으면 잔디밭으로 나갈 수 있어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거죠. 게다가 꽃들을 훨씬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요. 내 아이들의 눈도 볼 수 있고요." - P317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랫동안 부정한 나의 일부가 풀려나면 무슨일이 벌어질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나는 분노의 힘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전혀 죽이지 못한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나는 살아 있다.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다. 과거에 관해 기억하거나 이야기할 때마다 두려움과 상실감에 다시 정면으로 부딪치는 일이 매우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 순간 이후로 나는 감정들은, 얼마나 강력할지는 몰라도 결코 죽음을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알았다. 또한 감정들은 일시적이다. 감정을 억압하는 것은 감정을 떠나보내능 것을 더 힘들게 만들 뿐이다. 표현Expression은 우울Depression의 반대말이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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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가을, 여명이 밝아올 무렵에 나는 프랭클의 가르침 중 가장핵심인 이 부분을 읽는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 매 순간은 선택이다. 우리의 경험이 얼마나 불만스럽든 지루하든 제한적이든 고통스럽든 억압적이든 간에, 우리는 항상 어떻게 대응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 마침내 나는 나에게도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깨닫는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나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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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것은 ‘플래시백Flashback‘이었다.내가 이날 경험한 끔찍한 신체적 감각(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에서 땀이 나고 시야가 좁아지는)은 트라우마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나는 살면서 이것을 수없이 계속 경험한다. 80대 후반이된 지금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Post-traumaticStress‘에 ‘장애 Disorder‘라는 이름을 붙여 일종의 병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는 트라우마에 대한 장애 반응이 아니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볼티모어에서의 이 11월 아침, 나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내가 깊이 손상됐기 때문에 무너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내가 손상된 인간이기때문이 아니라 단절된 삶이 남긴 결과에 고통받는 중이라는 사실을 그때도 알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 P240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는 도망치는 방법으로는 고통을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도망은 고통을 더 악화시킬뿐이다. 미국에 온 후 나는 수용소로부터 지리적으로 어느 때보다 더 떨어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이전보다 마음 감옥에 더 갇히게 됐다. 과거로부터,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는 과정에서 나는 자유를 찾지 못했다. 나는 두려움의 감옥을 만들었고 침묵으로 감옥의 자물쇠를 봉했다. - P242

밥의 아들인 디키가 자신의 엄마에게 나에 관해 묻고 있다. 내가 정말 미국인이 맞는지, 그렇다면 왜 영어가 그렇게 서투른지 말이다. 온몸이 뻣뻣해진다. 과거가 너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일어나는 현상이다. 마치 자동차가 급하게 멈춰 설 때 아이들 앞에 손을 뻗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반사적 반응이다. 나는 죽음의 수용소가 절대 내 아이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단 하나의 인생 목적으로 굳어졌다. ‘내 아이들은 절대 알아선 안 돼.‘ 내 아이들은 내가 굶주림에 뼈만 앙상한 채로 연기가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엄마가 만들어줬던 슈트루델을 꿈꾸는 모습을 절대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이 이미지를 마음속에 가져서는 절대 안 된다. 나는 아이들을 보호할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게 할 것이다. 하지만 디키의 질문들을 들으니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나 자신의 침묵을 선택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침묵을 유도할 수도있다. 하지만 내가 자리에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선택할 수는 없다. 내 딸아이들은 무슨 말을 우연히 듣게 될까? 진실을 꼭꼭 숨기려는 내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게 될까?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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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나는 치타가 먹이를 잡는 능력과 가젤이 포식자를 회피하는능력이 착실하게 성장해 나간다는 인상을 주었다. 독자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매 세대가 그 부모 세대보다 더 낫고 훨씬 더 용감해진다는 빅토리아 시대의 완고한 진보 개념을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계의 진실은 전혀 다르다. 의미 있는 개선이 확인될 수 있는 시간 척도는 어떤 경우든 한 세대와 그 이전 세대를 비교해 식별할 수 있는 시간보다 훨씬 길다. 더욱이 그 ‘개선‘은 전혀 연속적이지 않다. 그것은군비 확장 경쟁이라는 개념에서 나타나는 개선의 방향처럼 항상 분명한 ‘진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며, 정체하거나 심지어는 ‘여행‘ 하기까지하기 때문이다. 내가 ‘기후‘이라는 일반 항목에 일괄적으로 붙인 조건의 변화, 즉 무생물적 힘의 변화는 관찰자가 느낄 수 있는 한 군비 확장경쟁이라는 느리고 변덕스러운 경향을 압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군비 확장 경쟁에는 장기간에 걸친 ‘진보‘도, 그것에 따른 어떠한 진화적 변화도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296

두 번째 내가 ‘천적‘이라 부르는 관계가 치타와 가젤의 이야기에서설정한 둘로 이뤄진 단순한 관계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한 가지 골치 아픈 문제는 어느 종이 천적 둘(혹은 그 이상)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그 천적들이 서로 앙숙일 경우에 생긴다. 이것은풀이 뜯어먹힘 (혹은 베임)으로써 이익을 얻는다는 절반의 진리의 배후에 깔려 있는 원리이다. 소는 풀을 뜯어먹는다. 그런 의미에서 소는 풀의천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풀은 식물계에서 소 이외의다른 천적을 가지고 있다. 즉 경쟁 관계에 있는 잡초가 그 천적이다. 잡초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성장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잡초는 풀의 천적이 될 것이다. 어쩌면 소보다 훨씬 강력한 적이 될지도 모른다. 풀은 소에게 먹힘으로써 손해를 입지만 경쟁 관계에 있는 잡초 또한 소 때문에 그 이상의 손해를 입게 된다. 따라서 풀에 대해 소가 미치는 순효과(純效果)를 따진다면 풀이 이익을 얻는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는 풀의 천적이 아니라 오히려 이익을 주는 친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는 풀의 천적이다. 개체로서의 풀은 먹히기보다 먹히지 않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 P297

나무의 예를 통해 잘 드러나는 또 한 가지 사실은 군비 확장 경쟁이 반드시 다른 종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 그루 한그루의 나무는 이종(異種)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동종의 구성원이 드리운 그늘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어쩌면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다. 모든 생물은 이종보다는 동종과의 경쟁에서 더 심각한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동종의 구성원은 같은 자원을 둘러싼 경쟁자이며, 경쟁의 정도는 다른 종의 구성원과 비교해 훨씬 세세한 점에까지 파급된다. 같은 종 내에서는 수컷과 암컷의 역할의 사이에서,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역할 사이에서도 군비 확장 경쟁이 나타난다.  - P302

나무의 이야기를 통해 대칭 군비 확장 경쟁과 비대칭 군비 확장 경쟁이라 불리는 두 종류의 군비 확장 경쟁 사이의 일반적이고도 중요한 차이점을 소개했다. 대칭 군비 확장 경쟁은 대체적으로 서로 비슷한 일을하려는 경쟁자 사이의 경쟁이다. 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싸우는 나무들사이에서 벌어지는 군비 확장 경쟁이 그 한 예이다. 다른 종의 나무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다른 종의 나무와 경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특정 경쟁, 즉 수관부樹冠部가 받는 햇빛을 둘러싼 경쟁에 관한 한 같은 자원을 두고 다투는 경쟁자들이다. 이 나무들은 한편의 성공이 다른 한편의 실패가 되는의미에서 군비 확장 경쟁에 참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쟁이 대칭 군비 확장 경쟁이라 불리는 이유는 양쪽 모두에서 성공과 실패의 성질이 같기 때문이다. 즉 어느 편에게도 성공이란 햇빛을 획득하는 것이며, 실패란 그늘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러나 치타와 가젤의 군비 확장 경쟁은 비대칭이다. 어느 한편이 성공하면 다른 한편은 실패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군비 확장 경쟁이지만, 성공과 실패의 성질이 양자에게 매우 다르다. 양쪽의 동물은 각기 전혀 다른 일을 ‘시도 한다. 치타는 가젤을 먹으려 한다. 반면 가젤의 의도는 치타를 먹는 것이 아니라 치타에게 먹히지 않도록 도망치는 것이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비대칭 군비 확장 경쟁 쪽이 훨씬 더흥미롭다. 왜냐하면 비대칭 군비 확장 경쟁에 참여하는 경쟁자들이 복잡한 병기 체계를 생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간의 군사 기술의예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302

고전에 속하는[동물의 적응색]이라는 책의 저자인 H. B. 코트는 이미 1940년에 이점을 훌륭하게 지적했다. 생물학에 있어서의 군비 확장 경쟁이라는 비유가 활자상으로 나타난 것은 이 책이 최초일 것이다.

메뚜기나 나비가 가지고 있는 사람의 눈을 속이는 듯한 외관이 불필요한 정도까지 상세하다고 말하기 전에 그 천적의 지각력과 식별력이 어느정도인가를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적의 군사적특징이나 전투력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순양함이 지나치게 중무장을 하고있다는 둥, 대포의 사정거리가 너무 길다는 둥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실제로 밀림 속에서 벌어지는 원시적인 전투에서도, 문명 시대의 전쟁이 세련되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진화적인 군사 경쟁이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는, 방어하는 측에서는 속도,경계, 갑주(甲胄), 가시, 굴 뚫는 습성, 야행성, 유독물의 분비, 고약한 맛,
위장이나 그 밖의 종류의 보호 등의 장치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공격하는측에서는 속도, 불의의 공격, 잠복, 유혹, 시각의 예리함, 발톱, 이빨, 바늘, 독니, 미끼를 통한 유인 등의 대항 속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추적당하는 측의 속도가 추적하는 쪽의 속도 증가와 연관되어 발달하거나, 또는 방어용 갑주가 공격용 무기와 연관되어 발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몸을 숨기기 위한 장치의 완결성은 지각력의 증가에 반응해서 진화한다. - P307

군비 확장 경쟁은 어디서 끝이 날까? 때로는 한편의 멸종으로 끝날수도 있다. 그 경우. 한편은 상대에 대해 특별한 방향으로의 전진적인진화를 정지시키고, 나아가 경제적인 이유에서 ‘후퇴‘ 하게 만들기까지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설명하기로 하자. 또 다른 경우에는, 경제적 압박에 의해 군비 확장 경쟁에 안정적인 휴지 상태가 찾아올지 모른다. 비록 경쟁의 한편이 어떤 의미에서 반영구적으로 앞서 나가고 있어도 안정적인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달리기 속도를 살펴보자. 치타와 가젤이 달릴 수 있는 속도에는 궁극적인 한계, 즉 물리 법칙에서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치타와 가젤 모두 그 한계에 도달해 있지는 않다. 양편 모두 경제적이라 생각되는 하한의 경계 이상으로 주행 속도를 올려놓는 데는 성공했다. 고속으로 달리기 위한 기술은 값싸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빨리 달리려면 긴 다리뼈나 강한 근육, 용량이 큰 페등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은 어떤 동물이나 정말 빨리 달릴 필요가 있는경우라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얻으려면 그것에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 비용은 경제학자들이 ‘기회비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무언가를 얻기 위한 기회 비용은, 그것을 손에 넣기위해 대신 버려야(포기해야 하는 다른 모든 비용의 합계로 측정된다. 아이를 유료 사립학교에 보내는 기회 비용은 그 때문에 살 수 없게 된 모든 것의 총합이다. 즉 살 수 없게 된 새차라든가 더 이상 즐길 수 없게된 휴가 등이 거기에 포함된다. (당신이 이런 것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을 만큼 부자라면,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기회 비용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치타의 경우 다리 근육을 굵게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다리의 근육을 생성하는 데 사용된 물질과 에너지를 이용해 ‘할 수 있었던‘ 모든 것, 예를 들면 새끼를 위해 더 많은 젖을 만들 수 있었던 가능성 등의 총합이 된다. - P311

유전자가 선택되는 것은 유전자의 내적 성질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의 상호 작용에 따른 것이다. 어느 유전자의 환경으로 특히 중요한 구성 요소는 다른 유전자이다. 다른 유전자가 그토록 중요한 구성 요소를 이루는일반적 이유는 다른 유전자 또한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진화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귀결이 이루어진다.
하나는 어느 유전자가 유리해지면 그것은 그 유전자가 협동을 선호하는 상황하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다른 유전자와 ‘협동‘ 하는 성질을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전적인 것은 아니지만, 동종 내의 유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동일한 종 내의 유전자는 세포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협동 관계에 있는 많은 수의 유전자 집단의 진화를 일으키고 나아가서는 협동 사업의 산물로서 몸 자체의 진화로 이어지게 된다. 개체의 몸은 유전자들의 협동조합이 구축한, 각 조합원의 복제를 보존하기 위한 거대한 탈것, 혹은 ‘생존 기계인 셈이다. 유전자들이 협동하는 이유는 모든 유전자가 같은 결과, 즉함께 공유하고 있는 몸의 생존과 번식을 통해 이익을 얻기 때문이며, 또한 그 유전자들이 서로에 대해 자연선택이 작용하는 환경의 중요한 일부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항상 협동이 선호되는 것은 아니다. 지질학적 규모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대립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유전자들이 조우할 때도 있다. 이것은 특히, 물론 거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종 사이의 유전자의 경우에 해당된다. 다른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는 교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종과는 유전자가 섞일 수 없다는 것이 요점이다. 어느 종 내에서 선택되어 남은 유전자가 다른 종의 유전자가 선택되는환경을 제공할 때, 흔히 그 결과는 진화적 군비 확장 경쟁이 된다. 군비•확장 경쟁의 한쪽, 예를 들면 포식자에서 선택된 결과 발생한 하나하나의 새로운 유전적 개선은 군비 확장 경쟁의 다른 한쪽, 즉 먹이가 되는 생물의 유전자가 선택되는 환경을 변화시킨다. 진화에서 나타나는 명확한 ‘진보적인 성질, 예를 들면 달리기 속도, 비행술, 예리한 시각, 발달된 청각 등의 정교한 개선을 낳을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그러한 군비확장 경쟁이다. 이 군비 확장 경쟁은 영구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가령 그 이상 개선된다면 해당 동물 개체에 있어서 경제적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에 안정화된다. - P314

가장 관찰이 쉽고 두드러진 정의 피드백은 점차 감소하는 쪽이 아니라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오는 종류이다. 예를 들면 핵폭발이나 발작을일으키는 학교의 교사, 술집에서 벌어지는 싸움, 미국에 대해 날로 높아지는 비난의 목소리 등이 그것이다. (독자들은 내가 이 장의 첫머리에서 했던 경고를 상기하기 바란다.) 국제 정치에서 정正의 피드백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에스컬레이션‘ 이라는 전문 용어나, 중동이 ‘화약고‘라는 표현이나. 어떤 사건이 시작된 ‘도화선‘을 발견했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정의 피드백이라는 개념과 관련해 가장 잘 알려진 표현 중 하나는 「마태복음」에 잘 나타나 있다.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없는 사람에게는 있는 것마저도 빼앗을 것이다." 이 장은 진화에 있어서 정의 피드백에 해당하는 셈이다. 생물에서는 폭발적인 정의 피드백에따라 유도된 진화의 폭주 과정이 마치 최종 산물처럼 보이는 특성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앞 장의 군비 확장 경쟁도 그 예이지만, 실제로 가장 두드러진 예는 성(性)적인 과시를 위한 기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 P325

다윈은 암컷의 변덕을 단지 천성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변덕의 존재는 성 선택의 공리(公理)이며, 스스로 설명되는 무엇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선험적인(a prior) 전제이다. 그의 성 선택 이론의 평판이 떨어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이론은 1930년이 되어서야 겨우 피셔에 의해 구출될 수 있었으나 불행하게도 많은 생물학자들은 피셔를 무시하거나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줄리언 헉슬리를 시작으로 사람들로부터 제기된 반론은 암컷의 변덕이 진정한 과학 이론을 위한 기반으로는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피셔는 암컷의 선호를 수컷의 꼬리와 마찬가지로 의심의 여지없이 자연선택의 정당한 대상으로 취급함으로써 성 선택 이론을 구해 냈다. 암컷의 선호는 암컷의 신경계의 표출이다. 암컷의 신경계는 유전자의 영향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신경계의 속성은 과거 세대에서 이루어진 선택의 영향을 받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수컷의 장식이 정적(靜的)인 암컷의 선호도의 영향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했지만, 피셔는 암컷의 선호가 수컷의 장식과 보조를 같이하며 진화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이미 이 논의가 폭발적인 정의 피드백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 P328

 일반적인 결론은 이렇다. 수컷이든 암컷이든 모든개체는 수컷에게 특정 성질을 가지게 한 유전자와 암컷에게 그와 완전히똑같은 성질을 가지게 한 유전자 양쪽을 모두 가질 가능성이 높다.
즉 수컷의 성질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암컷에게 그 성질을 좋아하게만드는 유전자는 개체군 속에 제멋대로 뒤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한데 연대해 있는 경향이 있다. 이 ‘연대(togetherness)‘ 는 조금 어려운 전문 용어로 연결 비평형 (linkage disequilibrium)이라는 현상을 통해 진행되고, 수리유전학자들이 사용하는 방정식에 따라 불가사의한 일을 연출한다. 그현상은 매우 기묘하고 불가사의한 귀결을 가져오지만, 만약 피셔와 랜더의 이론이 옳다면 실제로 공작이나 긴꼬리천인조의 꼬리 그리고 그밖의 많은 유인 기관의 폭발적인 진화는 조금도 기묘하거나 불가사의한일이 아닌 셈이다.  - P333

다음에 다음과 같은 명백한 문제를 제기해 보자. 대부분의 암컷들이 10센티미터의 꼬리를 가진 수컷을 좋아한다면, 실제로 대부분의 수컷이 7.5센티미터의 꼬리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개체군의 평균 꼬리길이는 암컷의 성 선택의 영향에 따라 10센티미터로 길어지지 않은 것일까? 암컷이 좋아하는 꼬리 길이의 평균과 실제 꼬리 길이의 평균 사이에서 2.5센티미터의 편차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암컷의 선호도가 수컷의 꼬리 길이에 관계하는 유일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 그 답이다. 꼬리는 새의 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너무 길어도 너무 짧아도 비행 효율은 저하되고 만다. 게다가 긴 꼬리는이동할 때에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무엇보다 그처럼 길다란 꼬리를 만드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10센티미터의 꼬리를 가진 수컷은 암컷의 관심을 끌 수는 있겠지만, 그 대신 비행 효율의 저하, 에너지비용의 증대, 심지어는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위험의 증대라는 크나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것은 꼬리 길이에 ‘실용적인 최적값이 있다는의미일 것이다. 그 최적값은 성 선택에 따른 최적값과 달리, 일상적인 편의성이라는 기준에서 이상적인 꼬리 길이이다. 즉 암컷을 유혹하는 것을제외한 모든 관점에서 이상적인 꼬리 길이인 셈이다.
그렇다면 실제 수컷의 평균 꼬리 길이, 우리의 가상적인 예에서 설정한 7.5센티미터라는 평균 꼬리 길이는 이 실용상의 최적값과 같다고 간주해도 좋을까? 그렇지는 않다. 실용적인 면에서의 최적값은 그것보다작은 값, 대략 5센티미터 정도의 길이를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이유는 7.5센티미터라는 실제의 평균 꼬리 길이는 꼬리를 짧게 만들려는 실용 선택과 길게 만들려는 성 선택 사이에서 이루어진 타협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굳이 암컷을 유인할필요가 없다면 평균 꼬리 길이는 줄어들어서 5센티미터가 되었을 것이고 비행 효율이나 에너지 비용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면 평균 꼬리 길이는 차츰 늘어나서 10센티미터가 될 것이다. 7.5센티미터라는 실제 평균꼬리 길이는 둘 사이의 타협인 것이다. - P334

이 논의의 핵심은 앞에서 분명하게 밝힌 ‘연관 비평형聯關非平衡‘, 즉 어떤 길이든 주어진 길이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그것에 대응해서 같은 길이의 꼬리를 좋아하는 유전자와의 ‘연대‘라는 점에 있다. 우리는 이 ‘연대 인자‘를 측정 가능한 숫자로 생각할 수 있다. 연대 인자가 상당히 높은 경우에, 특정 개체의 꼬리 길이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알면, 상당히 정확하게 그 또는 그녀의 선호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예측할 수 있으며 그 역도 가능하다. 반대로 연대 인자가 낮은 경우에는, 어느 개체의 두 가지 부문, 즉 선호와 꼬리 길이 중 어느 한쪽의 유전자에 대한 지식을 얻으면, 그 또는 그녀의 다른 한쪽 부문의 유전자에 대해 약간의 암시밖에 얻을수 없게 된다.
연대 인자의 크기를 좌우하는 것은 암컷의 선호의 강도, 즉 암컷이 이상적이 아니라고 생각한 수컷을 어느 정도까지 참을 수 있는가, 수컷의 꼬리 길이에서 나타나는 변이가 어느 정도까지 환경 요인이 아닌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가 등이다. 이러한 모든 영향의 결과로 연대 인자, 말하자면 꼬리 길이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꼬리 길이에 대한 선호에 관계하는 유전자의 결합 정도가 극히 강하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수 있다. 어떤 수컷이 긴 꼬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선택될 때, 긴 꼬리에 관여하는 유전자만이 선택되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그 강한 ‘연대‘ 때문에 긴 꼬리를 좋아하는 유전자도 함께 선택된다. 다시 말해 암컷이 특정 길이의 꼬리를 가진 수컷을 선택하게 만드는 유전자는 실제로는 자기 자신의 복제를 선택하는 셈이다. 이것은 자기 강화 과정의 본질적 요소이다. 한마디로 자동적으로 그들 자신을 유지시키는 동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단 진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면, 이 힘은 진화를 같은 방향으로 지속시키는 경향을 낳는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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