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사람은 독재자(자비롭다고 하더라도)를 원한다. 책임을 전가하고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당신이 내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어. 내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우산 아래에 서 있으면서 자신의 몸이 젖고 있다고 불평하며 일생을 보내서는안 된다. 희생자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외부에 초점을 맞추고 내다보며, 현재 상황에 대해 책망할, 혹은 자신의 목적, 운명, 가치를 대신 결정할 누군가를 찾는 일이다. - P363

해방은 수용에서부터 시작한다.
치유하기 위해, 우리는 어둠을 받아들인다. 빛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계곡의 그늘을 걸어서 지나가야만 한다.  - P395

이제 우리 차례다. 멩겔레 박사가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그녀는네 엄마니 아니면 네 언니니?" 그가 묻는다.
나는 엄마의 손에 매달리고 마그다 언니는 엄마의 다른 쪽을 껴안는다. 우리 중 아무도 왼쪽으로 보내지는 것의 의미와 오른쪽으로 보내지는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하지만, 엄마는 내가 내 나이 또래로 혹은더 나이가 많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첫 번째 선별 줄을 살아서 통과하기 위해서는 내가 충분히 나이 들어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엄마의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하지만, 엄마의 얼굴은내 얼굴만큼이나 매끈하다. 엄마는 나의 언니로 통할 수 있었다. 하지만나는 ‘엄마‘와 ‘언니‘ 중 어떤 단어가 엄마를 보호할지 생각하지 못한다. 생각이란 것을 전혀 할 수가 없다. 나는 그저 엄마를 사랑하는, 엄마를 필요로 하는 내 안의 세포 하나하나만 느낀다. 그녀는 나의 어머니, 나의 엄마, 나의 유일한 엄마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의식에서지우려고 애쓰며 평생을 보내게 되는 바로 그 말을 내뱉는다. 심지어오늘까지도 내가 나에게 기억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바로 그 말을 말이다.
"엄마예요." 내가 말한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목구멍 안으로 그 말을 다시집어넣고 싶다. 나는 그 질문의 중요성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녀는 네 엄마니 아니면 네 언니니?‘ ‘언니예요! 언니예요! 언니예요!‘ 나는소리치고 싶다. 멩겔레가 엄마에게 왼쪽으로 가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엄마가 어린아이들, 노인들, 임신한 엄마들, 팔에 아기를 안고있는 엄마들의 뒤를 따른다. 나는 엄마를 따라갈 것이다. 나는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지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엄마를 향해 달려가려 하지만 멩겔레가 내 어깨를 움켜잡는다. "곧 있으면 엄마를 보게 될 거야." 그가 말한다. 그가 나를 오른쪽으로 떠민다. 마그다 언니를 향해. 다른 쪽을 향해. 생존을 향해. - P406

"언니에요‘라고 말했어야 했어요! 왜 제가 ‘언니‘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내가 수십 년 건너에서 엄마에게 외치며 엄마의 용서를 구한다. 이것을 받기 위해 내가 아우슈비츠로 되돌아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엄마가 나에게 내가 아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해주는 것을듣기 위해서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말해주는 것을 듣기 위해서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아니 엄마가 그렇게 말한다고하더라도 나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치를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순간을 다시 살 수만있다면,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었던 바로 전 순간과 이 순간을 다시살 수만 있다면, 나는 처음부터 다시 모든 순간을 기꺼이 살아낼 것이다. 모든 선별 줄, 모든 샤워, 얼어 죽을 것처럼 추운 밤과 점호 시간, 모든 식사, 연기로 시커멓게 된 공기의 냄새, 거의 죽을 뻔하거나 죽고싶었던 모든 순간을 말이다. 멩겔레의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었던 바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의 목숨을구할 수 있었던 바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 P408

빅터 프랭클은 이렇게 말한다. "의미를 찾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동기이다. (...) 이 의미는 각각의 인간에게 고유하고 구체적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만의 의미를 추구해야하고, 또한 자신만의 의미를 추구할 수 있다. 오로지 그때에야 그 의미는 중요성을 획득하고,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 "스스로 책임지는 것을 포기하는 건 의미를 창조하고 발견하는 능력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 P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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