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것은 ‘플래시백Flashback‘이었다.내가 이날 경험한 끔찍한 신체적 감각(심장이 빠르게 뛰고 손에서 땀이 나고 시야가 좁아지는)은 트라우마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그리고 나는 살면서 이것을 수없이 계속 경험한다. 80대 후반이된 지금까지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외상 후 스트레스Post-traumaticStress‘에 ‘장애 Disorder‘라는 이름을 붙여 일종의 병으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는 트라우마에 대한 장애 반응이 아니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반응이다. 하지만 볼티모어에서의 이 11월 아침, 나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내가 깊이 손상됐기 때문에 무너졌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내가 손상된 인간이기때문이 아니라 단절된 삶이 남긴 결과에 고통받는 중이라는 사실을 그때도 알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 P240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는 도망치는 방법으로는 고통을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도망은 고통을 더 악화시킬뿐이다. 미국에 온 후 나는 수용소로부터 지리적으로 어느 때보다 더 떨어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이전보다 마음 감옥에 더 갇히게 됐다. 과거로부터,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는 과정에서 나는 자유를 찾지 못했다. 나는 두려움의 감옥을 만들었고 침묵으로 감옥의 자물쇠를 봉했다. - P242

밥의 아들인 디키가 자신의 엄마에게 나에 관해 묻고 있다. 내가 정말 미국인이 맞는지, 그렇다면 왜 영어가 그렇게 서투른지 말이다. 온몸이 뻣뻣해진다. 과거가 너무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일어나는 현상이다. 마치 자동차가 급하게 멈춰 설 때 아이들 앞에 손을 뻗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반사적 반응이다. 나는 죽음의 수용소가 절대 내 아이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은 단 하나의 인생 목적으로 굳어졌다. ‘내 아이들은 절대 알아선 안 돼.‘ 내 아이들은 내가 굶주림에 뼈만 앙상한 채로 연기가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엄마가 만들어줬던 슈트루델을 꿈꾸는 모습을 절대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이 이미지를 마음속에 가져서는 절대 안 된다. 나는 아이들을 보호할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게 할 것이다. 하지만 디키의 질문들을 들으니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나 자신의 침묵을 선택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의 침묵을 유도할 수도있다. 하지만 내가 자리에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선택할 수는 없다. 내 딸아이들은 무슨 말을 우연히 듣게 될까? 진실을 꼭꼭 숨기려는 내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게 될까? - P2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