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동안 미국의 백인들은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지배적인 다수를 대표했다. 한 정치 부족이 그토록 압도적으로 우세할 때, 그들은 처벌받지 않고서 박해할 수 있지만, 오히려 좀 더 관대할 수도 있다. 1960년대의 WASP 와스프(White Anglo-Saxon Protestant는 앵글로색슨계 백인 개신교도) 엘리트들이 아이비리그 대학을 더 많은 유대인, 혹인, 다른 소수 집단에 개방한 것처럼(부분적으로는 그것이 옳은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더 보편적이고, 더 계몽되고, 더 포용적일 수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그 어떤 집단도 충분히 지배적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모든집단은 직업과 전리품뿐만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할 권리를 놓고 다른집단과 대결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제로섬 집단 경쟁, 즉 순수한 정치적 부족주의로 전락한다.

이 불안정성을 악화하는 것은 누가 권력을 쟁취하는지에 관한 불균형이다.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경험칙은 정치 권력이 인구 통계학보다 10년 뒤처져 있다는 것인데, 나이가 더 많을수록, 백인일수록, 기독교인일수록 투표율이 더 높게 나타난다. 존스는 "투표함은 타임머신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우리를 인종과 종교 측면에서 10년 전으로 데려갑니다. 우리는 오바마 재임 동안 백인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과반보다 적어지는 정점에 도달했지만, 투표함에서 그런 현상을 보려면2024년은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상원의 구조와 하원 선거구 획정, 선거인단 구성을 통해 볼 수 있는 미국의 정치 지형은 백인일수록, 농촌일수록, 기독교인일수록 힘을 실어줘서, 이들 연합체가 인구 통계적으로 볼 때 예상되는 것보다 더 많은 정치적 힘을 갖게 한다.
하지만 소비 브랜드들과 텔레비전 방송은 더 젊고, 더 도시적이며, 더 다양한 소비자들을 좇으면서 문화 권력은 인구 변동을 10년 이상 앞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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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는 문화가 있던 곳이 아니라 문화가 향하는 곳에 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문화 속에서 살고 있으며, 광고와 영화 출연자들에 반영되는 변하는 사회적 관행들을 보며 권력의이동을 느낀다. 그 결과 좌파는 정치 권력으로 변환되는 문화적 · 인구학적 힘을 가끔씩만 느끼게 되고, 우파는 정치 권력을 행사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점점 무시되며 불쾌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P152

정치는 시장으로, 백인 정체성과 같은 강력하고 원시적인 힘은 시장의 기회를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결국에는 누군가가 나타나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었을 것이다. 트럼프가 2016년에 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정치인이 2020년 혹은 2024년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압력은 계속 쌓일 터였다.
애슐리 자르디나Ashley Jardina는 인종 정체성을 연구하는 듀크대학교의 정치학자다. 자르디나는 『백인 정체성 정치White Identity Politics』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학자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히스패닉계, 아시아계 정체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백인 정체성은 가정하지 않았다고주장한다. 자르디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백인들이 그들이 속한 인종 집단의 지위에 불안감을 느끼는지, 혹은 백인이 정치적 결과를만들어내는 인종적 정체성을 가졌는지 고려할 때, 지난 50년 동안 대답은 일반적으로 ‘아니오‘였다. (……) 학자들 대부분은 백인들 사이의 인종적 연대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정치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백인들은 지배적인 지위와 수적 우세라는 특성 덕분에 그들의 인종을 당연시할 수 있었다." 백인들의 정치 정체성은 지금과 같은 위협과 도전의 시기에 드러났다. 인구 통계적 변화와 흑인 대통령 당선, 이 두 가지 현상에 이어진 문화적·정치적 결과는 "상당한 비중의 백인들에게 그들의 인종 집단과 그 집단이 누리는 혜택이 위험에 처했다고 믿게 했다. 그 결과, 이러한 인종적 연대는 많은 백인이 정치계와 사회계에서 그들의 방향성을 설정할 때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자르디나의 연구에는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인종 정체성은 집단내 편애나 외부 집단에 대한 적대감에 기초할 수 있다. 둘 다 존재할 수있지만(종종 그렇다), 자르디나는 백인 정치 정체성의 강화는 인종차별적 태도의 동반 상승이 없이, 백인의 정치적 특권 방어라는 측면을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어떤 이에게는 차이가 없게 느껴지겠지만,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치를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호소와 메시지에 반응하는지와 관련해서 의미가 있다. - P158

이것은 선거로 입증되었다. 갤럽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트럼프의 당선은 공화당원의 경제 신뢰도가 80점 상승하고, 민주당원사이에서는 37점 하락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트럼프 취임 이후미국 경제는 오바마의 마지막 해와 거의 같은 추세를 보였다(일자리 증가 추세는 약간 느리게 움직였다). 2016년 당시는 그들이 그렇게나 우울하게 보던 것과 거의 같은 경제였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 공화당의자신감은 계속 치솟았다. 테슬러가 수집한 자료는 인종적으로 가장 분노하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는 가장 낙관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형태는 국제적으로도 나타난다. 포퓰리즘 우파의 부상은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며, 2016년에 시작된 것도 아니다. 서방세계의 여러나라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그들은 경제가 좋거나 나쁘거나, 사회 안전망이 두텁거나 부실하거나 세계 어디서든 세력을 결집했다. 《복스》의 잭 보샴프Zack Beauchamp는 자료를 자세히 검토하고 나서, "극우정당의 정강들은 나라마다 다르며, 거기엔 페미니즘과 같은 주요 사회적 이슈와 복지 규모와 같은 경제 이슈가 포함된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한 가지 문제는 이민에 대한 적대감이며, 특히 이민자들이 비백인이고 이슬람교도일 때 그렇다"라고 썼다. - P163

정치학자 에릭 코프먼 Eric Kaufmann은 자신의 책 『화이트시프트: 포퓰리즘, 이민, 그리고 백인 다수의 미래 Whiteshift: Populism, Immigration, andthe Future of White Majorities 에서 "서구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라고 썼다. "첫째, 왜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좌파 포퓰리스트들보다 인기를 끌고 있는가? 둘째, 전반적으로 볼 때 경제 위기는 포퓰리즘 우파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데 왜 이민은 포퓰리즘적 우파의 수를 급증시켰는가? 자료에충실하면 답은 명확해진다. 경제적·정치적 발전이 아닌 인구 변동과 문화가 포퓰리즘 시대를 이해하는 열쇠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경제 불안이 현실이고, 더 폭넓게 공유되는경제 성장이 정치에 이득이라는 사실을 뒤집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 불안이 우리의 정치적 · 문화적 분열을 설명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트럼프가 그 증거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의 경제를 ‘기적‘이라고 부르지만, 그로 인해 그의 지지자들이 이민에대해 좀 더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거나, NFL 선수들이 경찰의 잔혹성에 항의하기 위해 무릎을 꿇은 일을 덜 걱정하게 되진 않았다. 더 나은 경제는 언제나 국가에 이득이다. 그러나 그것은 ‘색깔이 짙어지는‘ 미국의ㅍ어려움을 극복해지는 않을 것이다. - P164

 그렇다면 무엇이 변했는가? 디케이터에 따르면, 변한 것은 불쾌한 행동으로여겨지는 것을 누가 결정하는지다.

명문 대학 학생의 인종 비율은 50년 동안 급격하게 변했고, 그 결과 예의의 정의가 바뀌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하는 것을 무례한 행동으로 본다. 학생들에게 흑인 분장 자제 등 상대를 존중하는 행동규범을 권고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대학들이 해온 일의 연장이다. 달라진 것은 대학이 예의에 대한 규범을 내리는 것 자체가 아니라 예의에 대한 정의다. 일반적으로 대학 캠퍼스에서, 특히 케니언칼리지에서 50년 전(모든 구성원이남성이고 대부분 백인이었을 때)이라면 예의의 기준을 통과했을지 모르는 것들이 오늘날은 예의 없는 행동이 된다. 

이를 진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전 담론을 지배했던 이들에게는 상실이었고, 관련된 모든 이에게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새로운 선들이 그어지고 있지만, 아무도 그 선들이 어디에 그어지고 있는지, 누가그리는지 알지 못한다. 용인할 수 있는 행동과 공손한 담론을 규정하는힘은 심오하지만, 지금 당장에는 경합 대상이다.
리치슨은 "나는 이것을 불편함의 민주화라고 부릅니다. (・・・)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항상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민주화하고있습니다. 이제는 여러 인종과 다양한 종교를 가진 더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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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열이 한 사회를 갈라놓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위험한 것은 하나의 크고 깊은 분열, 즉 메가 분열이다. 메이슨은 이 점과 관련하여 미국 사회학의 창시자인 에드워드 앨즈워스 로스Edward Alsworth Ross가 사회학의 원리 The Principles of Sociology』에서 한 말을 인용한다.

사회에서 주요 대립은 개인, 성별, 나이, 인종, 국적, 지역, 계급, 정당, 종교 종파 사이에서 일어난다. 여러 대립이 동시에 최고치에 이를 수도 있지만, 숫자가 많다고 해서 그중 하나가 덜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 모든 갈등은 동시에 사회 내 다른 모든 갈등에 간섭하지만, 분열의 선이 일치할 때만큼은 예외다. 이경우 그들은 서로를 강화한다. (…) 그러므로 10여 개의 대립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선을 따라 분열하는 사회는 실제로 한 줄을 따라 분열하는 것보다 폭력으로 찢기거나 산산이 부서질 위험이 적다. - P107

메이슨은 양극화를 부추기는 데 정체성이 정책 이슈에 관한 입장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다른 모든 것이 똑같을 때, 정책과 관련해 가장 온건한 입장을 가진 사람과 가장 많은 교차 정체성을지닌 사람들을 비교한다면, 정책적 중도파가 교차 정체성으로 당파성을 억제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상대편에게 두 배 이상 적대적인 것으로나타난다. 다시 말하자면, 정체성 면에서 동질성을 느끼는 것이 정책적인 면에서 합의점을 찾는 것보다 혐오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메이슨은 이렇게 썼다. "이것은 미국의 정체성 위기다. 우리가 당파적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이전부터 당파적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는 당파적 정체성이 우리가 서로를 참아내지 못하는 편협함을 우리의 정치적 의견 불일치 정도를 뛰어넘는 수준으로까지 부추기면서, 다른 사회적 정체성들과 나란히 정렬될 때 나타난다." - P109

또다시 사람들이 한방에 모여 있다. 그들은 당장 해야 할 일과 관계없이 정체성에 따라, 그들이 속한 집단에 상을 주고 외부 집단을 벌주기위해 어떤 권력을 가졌는지에 따라 분류되어 있다. 아이엔가는 이렇게 말한다. "옛 이론에 따르면 정당들은 깊은 사회적 분열을 상징하기 위해 등장했다. (…) 그러나 이제 정당정치는 그것만의 생을 살기 시작했다. 이제 그것은 분열이다."
‘그것만의 생‘이라는 표현은 타이이 1970년에 쓴 글을 상기시킨다. 사회과학자들은 집단 분쟁의 ‘합리적 형태와 ‘비합리적‘ 형태를 구별했다. 타이펠은 "전자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갈등과 그에 수반되는 태도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 간의 진정한 경쟁을 반영한다. 후자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이것은 다양한 종류의 누적된 감정적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타이펠은 "이 두종류의 적대감을 구별하는 일은 그 둘이 가차 없이 서로를 강화하며 소용돌이에 빠지므로 생각보다 덜 명확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정책적 차이와 정체성 갈등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 둘은 서로를 강화하지 서로 반하지 않는다.  - P114

참가자들은 기사에 실린 프로그램에 대한 호감도를 1부터 7까지의 척도로 평가해보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이념적 성향이 강했고, 복지 정책에 관심도가 높은 학생들이었다. 하지만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진보적인 학생들과 보수적인 학생들 모두 정책 내용보다 준거집단에 따라 판단했다. 자기 당이 지지하면 진보주의자들은 엄격한 복지라도, 보수주의자들은 호화스러운 복지라도 지지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사고가 놀랍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직업, 학습,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소수의 주제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을가질 수 있다. 그러나 시민으로서, 그리고 선출된 관료로서 우리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 국제 송유관의 환경적 영향,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낙일찍는 일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에 관한 판단을 일상적으로 요구받고 있다.
정당의 역할 중 하나는 우리가 그러한 결정들 사이에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우리가 정당에 가입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가치관과 목표, 다시 말해 가족과 지역사회와 같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에 의해 우리에게 전해졌을지도 모르는 가치와 목표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슈들을 연구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우리가 하게 될 판단과 정당의 정책적 판단이 일치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정당들은, 비록 일련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지만, 사심 없는 진실 안내자가 아니다. 정당은 세력을 키우려는 단체다. 또는 심리학자들이 말하듯이, 그들의 추론은 정확성이 아닌 다른 동기에 의해 작동할 수 있다. - P125

하지만 카한과 그의 팀은 완전히 다른 가설도 세웠다. 사람들은 지식의 부족에 구애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은 일반적으로 해양학자들이 발견한 내용이나 다른 은하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논쟁에서 이기고 싶어 하지 정답을 찾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진실을 찾는 것 말고 다른 목적을 위해 이성을 활용할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공동체에서 그들의 지위를 높이거나 집단에서 추방당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더 똑똑하고 더 교육을 받은 시민이라고 해도이성적으로 의견 차이를 좁히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단지 논쟁의 참가자들이 자신의 편을 위한 주장을 펼칠 준비가 더 잘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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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결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싶다. 이것은 믿을 수 없는 발견이다. 문제를 정확하게 푸는 것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반하는 일이 될 경우 수학을 잘할수록 문제를 정확하게 풀 가능성이 줄어든다니 사람들은 올바른 답을 얻기 위해 합리적으로 추론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옳음을 보여주는 답을 찾기 위해 추론하는 것이었다. - P128

더 많은정보는 올바른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탐색이정확성이 아닌 어떤 목적을 위한 것이라면, 더 많은 정보가 우리를 오도하거나 더 정확히는, 우리가 자신을 오도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가장 좋은 증거를 찾는 것과 우리의 옳음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증거를찾는 것은 다르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에 그러한 증거와 전문가들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 P131

카한은 이 이론을 ‘정체성 보호 인지 identity-protective cognition‘라고부른다. "중요한 집단과 불화하거나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개인은 무의식적으로 집단의 가치를 위협하는 사실 정보에 저항한다." 다른 곳에서 그는 더 간결하게 표현했다. "우리가 믿는 사실은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그리고 많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심리적의무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자신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키는 것이다. - P134

이러한 예측이 앞으로도 계속될지를 두고 인구학자들의 의견은 일치하지 않는다. 아마도 20세기에 아일랜드인이 백인으로 분류된 것처럼 히스패닉계 백인들은 앞으로 일반적인 백인으로 인식될 것이다. 인좋은 하나의 구조이고, 우리는 계속해서 그 범주를 재구성한다. 중요한것은 인종과 권력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다. 그리고 인구 통계상의 변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현실을 앞지르고 있다. 2013년 미국진보센터, 폴리시링크Policy Link, 라티노 디시즌스 Latino Decisions, 록펠러 재단이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중위 참여자는 49%가 비백인이라고믿었는데, 정답은 37%였다.
나는 이런 순간, 즉 다수의 우세가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느끼는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두고 몇 달에 걸쳐 정치인, 사회심리학자, 정치학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수많은 연구를 통해 증명되고 미국 정치의 모든 곳에서 보이는 답은, 이런 대규모 변화는 선거뿐만 아니라 심리적 차원에서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바마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반동적인 새로운 사회운동과 사상가들의 부상, 대학교 캠퍼스에서의 정치적 올바름과 할리우드 배우들의 대표성을 둘러싼 전쟁, 미투 운동과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의힘, 이민에 대한 싸움 등 이 시대의 핵심 정치적 갈등들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맥락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권력이 곧 없어질 수도 있고, 오랫동안 우리가 느꼈던 부당함이 곧 바로잡힐 수도 있다는 느낌만큼 강하게 집단과의 동질감을 찾게 하는 것은 없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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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히틀러가 권력을 잡자 곧바로 여러 규정이 생기고, 많은 것들이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어요. 많은 지시와 긴급 조치들도 하루아침에 내려졌죠.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많았어요. 예를 들어 아우토반이 건설되기 시작했어요. 전체 사회 구조를 확 바꾸는 일이었죠. 일거리가 없어 거리에 나와 있던 사람들이 사라졌으니까요. 거지와 가난한 사람들 중에는 놀고먹는 것이 좋아서 빈둥거린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가난하고 할 일이 없어서 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일도 없고 대부분 식구도 많아 먹고살기가 더욱 팍팍했죠. 그렇다고 사회적 지원이 많은 것도 아니었어요. 히틀러는 우리가 짊어져야 했던 패전의 짐들을 처음엔 아주 멋들어지게 해결해 나갔어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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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포기하고 싶은 날글이 내게도 있습니다. 아무것에도 애착을 가질 수 없는 날들이 그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죽음으로, 죽음으로 향하는 내 안의 나선 경사로를 어떻게든 피해야겠다고. 구부러진 스프링을 어떻게든 펴야겠다고. 스스로의 비틀린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것이 좋은 예술가가 되는 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예술가가 되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매혹적으로 보이는 비틀림일수록 그 곁에 어린 환상들을 걷어내십시오. 직선으로 느리게 걷는것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택해야 하는 어려운 길입니다. - P30

"가족여행은 정말 오랜만이다."
자매의 마음속에 지난 세기 가족여행들의 풍경이 스쳐지나갔다. 이제 없는 사람들이 운전하는 차에 좁게 끼여 앉아 투닥거리던 시간들이.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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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전에는 누구도 유대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있어요. 순전히 나중에 나치에 의해 만들어진 거죠, 우리는 국가사회주의를 통해서야 유대인들이 우리와 다른 인간이라고 의식하게 됐어요. 그게 모두 나중에 유대인 말살 프로그램으로 이어졌죠. 우리는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이 전혀없었어요. 아니 그 반대였어요. 아버지는 손님 중에서 특히 유대인들을 좋아했어요. 돈이 많을 뿐 아니라 항상 값을 후하게 치렀거든요. 우리는 유대인 아이들과 놀기도 했어요.
그중에는 힐데라는 마음씨 고운 여자아이도 있었어요. 또바로 옆집에 내 또래의 유대인 아이가 있어서 종종 함께 어울렸어요. 비누 가겟집 딸 로자 레만 오펜하이머는 지금도또렷이 기억나요. 우리는 그 애들이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한 번도 없어요. 그건 다 커서도 마찬가지였죠. 국가 사회주의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을 때도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어요. 다만 우리는 친애하는 지도자를 향해 반갑게 손만 흔들어 주었을 뿐이에요. 왜 안 그러겠어요?
1933년 이전에 유대인 문제를 생각한 사람들은 소수였어요 처음에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었고 돈이 생겼어요. 나중에 우리는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베르사유 조약으로 사기를 당했다고 배웠어요.
한마디로 우리는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우리한테 무슨 일이 닥칠지 전혀 몰랐어요. - P45

하지만 아무리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어두운 면은 있기 마련이죠. 특히 제1차 세계 대전에 패배한 뒤가 그랬어요. 베를린의 거리 곳곳에 실업자와 거지, 가난한 사람들이 넘쳐났어요. 하지만 나처럼 베를린 근교의 좋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 궁핍과 가난이 판치던 시절에도 그런 특별한 지역이 있었던 거죠. 우린 그런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았고, 보지도 않았어요. 그냥 외면해버렸죠.
그러다 1933년 3월에 갑자기 나치가 선거에서 이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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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취임 직후엔 한마디로 그냥 희망이 들끓었어요.
히틀러가 정말 정권을 잡으리라고는 누구도 믿지 못했어요. 정말 깜짝 놀랄 일이었죠. 아마 그 사람들 자신도 깜짝놀랐을 거예요.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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