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동안 미국의 백인들은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지배적인 다수를 대표했다. 한 정치 부족이 그토록 압도적으로 우세할 때, 그들은 처벌받지 않고서 박해할 수 있지만, 오히려 좀 더 관대할 수도 있다. 1960년대의 WASP 와스프(White Anglo-Saxon Protestant는 앵글로색슨계 백인 개신교도) 엘리트들이 아이비리그 대학을 더 많은 유대인, 혹인, 다른 소수 집단에 개방한 것처럼(부분적으로는 그것이 옳은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더 보편적이고, 더 계몽되고, 더 포용적일 수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그 어떤 집단도 충분히 지배적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모든집단은 직업과 전리품뿐만 아니라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할 권리를 놓고 다른집단과 대결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느낀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제로섬 집단 경쟁, 즉 순수한 정치적 부족주의로 전락한다.

이 불안정성을 악화하는 것은 누가 권력을 쟁취하는지에 관한 불균형이다.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경험칙은 정치 권력이 인구 통계학보다 10년 뒤처져 있다는 것인데, 나이가 더 많을수록, 백인일수록, 기독교인일수록 투표율이 더 높게 나타난다. 존스는 "투표함은 타임머신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우리를 인종과 종교 측면에서 10년 전으로 데려갑니다. 우리는 오바마 재임 동안 백인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과반보다 적어지는 정점에 도달했지만, 투표함에서 그런 현상을 보려면2024년은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상원의 구조와 하원 선거구 획정, 선거인단 구성을 통해 볼 수 있는 미국의 정치 지형은 백인일수록, 농촌일수록, 기독교인일수록 힘을 실어줘서, 이들 연합체가 인구 통계적으로 볼 때 예상되는 것보다 더 많은 정치적 힘을 갖게 한다.
하지만 소비 브랜드들과 텔레비전 방송은 더 젊고, 더 도시적이며, 더 다양한 소비자들을 좇으면서 문화 권력은 인구 변동을 10년 이상 앞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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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는 문화가 있던 곳이 아니라 문화가 향하는 곳에 있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람들 대부분은 문화 속에서 살고 있으며, 광고와 영화 출연자들에 반영되는 변하는 사회적 관행들을 보며 권력의이동을 느낀다. 그 결과 좌파는 정치 권력으로 변환되는 문화적 · 인구학적 힘을 가끔씩만 느끼게 되고, 우파는 정치 권력을 행사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점점 무시되며 불쾌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P152

정치는 시장으로, 백인 정체성과 같은 강력하고 원시적인 힘은 시장의 기회를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결국에는 누군가가 나타나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주었을 것이다. 트럼프가 2016년에 하지 않았다면 또 다른 정치인이 2020년 혹은 2024년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압력은 계속 쌓일 터였다.
애슐리 자르디나Ashley Jardina는 인종 정체성을 연구하는 듀크대학교의 정치학자다. 자르디나는 『백인 정체성 정치White Identity Politics』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학자들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히스패닉계, 아시아계 정체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백인 정체성은 가정하지 않았다고주장한다. 자르디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백인들이 그들이 속한 인종 집단의 지위에 불안감을 느끼는지, 혹은 백인이 정치적 결과를만들어내는 인종적 정체성을 가졌는지 고려할 때, 지난 50년 동안 대답은 일반적으로 ‘아니오‘였다. (……) 학자들 대부분은 백인들 사이의 인종적 연대가 눈에 보이지 않으며 정치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해왔다. 백인들은 지배적인 지위와 수적 우세라는 특성 덕분에 그들의 인종을 당연시할 수 있었다." 백인들의 정치 정체성은 지금과 같은 위협과 도전의 시기에 드러났다. 인구 통계적 변화와 흑인 대통령 당선, 이 두 가지 현상에 이어진 문화적·정치적 결과는 "상당한 비중의 백인들에게 그들의 인종 집단과 그 집단이 누리는 혜택이 위험에 처했다고 믿게 했다. 그 결과, 이러한 인종적 연대는 많은 백인이 정치계와 사회계에서 그들의 방향성을 설정할 때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자르디나의 연구에는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인종 정체성은 집단내 편애나 외부 집단에 대한 적대감에 기초할 수 있다. 둘 다 존재할 수있지만(종종 그렇다), 자르디나는 백인 정치 정체성의 강화는 인종차별적 태도의 동반 상승이 없이, 백인의 정치적 특권 방어라는 측면을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어떤 이에게는 차이가 없게 느껴지겠지만,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치를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호소와 메시지에 반응하는지와 관련해서 의미가 있다. - P158

이것은 선거로 입증되었다. 갤럽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트럼프의 당선은 공화당원의 경제 신뢰도가 80점 상승하고, 민주당원사이에서는 37점 하락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트럼프 취임 이후미국 경제는 오바마의 마지막 해와 거의 같은 추세를 보였다(일자리 증가 추세는 약간 느리게 움직였다). 2016년 당시는 그들이 그렇게나 우울하게 보던 것과 거의 같은 경제였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 공화당의자신감은 계속 치솟았다. 테슬러가 수집한 자료는 인종적으로 가장 분노하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는 가장 낙관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형태는 국제적으로도 나타난다. 포퓰리즘 우파의 부상은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며, 2016년에 시작된 것도 아니다. 서방세계의 여러나라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그들은 경제가 좋거나 나쁘거나, 사회 안전망이 두텁거나 부실하거나 세계 어디서든 세력을 결집했다. 《복스》의 잭 보샴프Zack Beauchamp는 자료를 자세히 검토하고 나서, "극우정당의 정강들은 나라마다 다르며, 거기엔 페미니즘과 같은 주요 사회적 이슈와 복지 규모와 같은 경제 이슈가 포함된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한 가지 문제는 이민에 대한 적대감이며, 특히 이민자들이 비백인이고 이슬람교도일 때 그렇다"라고 썼다. - P163

정치학자 에릭 코프먼 Eric Kaufmann은 자신의 책 『화이트시프트: 포퓰리즘, 이민, 그리고 백인 다수의 미래 Whiteshift: Populism, Immigration, andthe Future of White Majorities 에서 "서구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라고 썼다. "첫째, 왜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좌파 포퓰리스트들보다 인기를 끌고 있는가? 둘째, 전반적으로 볼 때 경제 위기는 포퓰리즘 우파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데 왜 이민은 포퓰리즘적 우파의 수를 급증시켰는가? 자료에충실하면 답은 명확해진다. 경제적·정치적 발전이 아닌 인구 변동과 문화가 포퓰리즘 시대를 이해하는 열쇠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경제 불안이 현실이고, 더 폭넓게 공유되는경제 성장이 정치에 이득이라는 사실을 뒤집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 불안이 우리의 정치적 · 문화적 분열을 설명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트럼프가 그 증거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의 경제를 ‘기적‘이라고 부르지만, 그로 인해 그의 지지자들이 이민에대해 좀 더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거나, NFL 선수들이 경찰의 잔혹성에 항의하기 위해 무릎을 꿇은 일을 덜 걱정하게 되진 않았다. 더 나은 경제는 언제나 국가에 이득이다. 그러나 그것은 ‘색깔이 짙어지는‘ 미국의ㅍ어려움을 극복해지는 않을 것이다. - P164

 그렇다면 무엇이 변했는가? 디케이터에 따르면, 변한 것은 불쾌한 행동으로여겨지는 것을 누가 결정하는지다.

명문 대학 학생의 인종 비율은 50년 동안 급격하게 변했고, 그 결과 예의의 정의가 바뀌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하는 것을 무례한 행동으로 본다. 학생들에게 흑인 분장 자제 등 상대를 존중하는 행동규범을 권고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대학들이 해온 일의 연장이다. 달라진 것은 대학이 예의에 대한 규범을 내리는 것 자체가 아니라 예의에 대한 정의다. 일반적으로 대학 캠퍼스에서, 특히 케니언칼리지에서 50년 전(모든 구성원이남성이고 대부분 백인이었을 때)이라면 예의의 기준을 통과했을지 모르는 것들이 오늘날은 예의 없는 행동이 된다. 

이를 진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전 담론을 지배했던 이들에게는 상실이었고, 관련된 모든 이에게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새로운 선들이 그어지고 있지만, 아무도 그 선들이 어디에 그어지고 있는지, 누가그리는지 알지 못한다. 용인할 수 있는 행동과 공손한 담론을 규정하는힘은 심오하지만, 지금 당장에는 경합 대상이다.
리치슨은 "나는 이것을 불편함의 민주화라고 부릅니다. (・・・)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항상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민주화하고있습니다. 이제는 여러 인종과 다양한 종교를 가진 더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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