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전에는 누구도 유대인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있어요. 순전히 나중에 나치에 의해 만들어진 거죠, 우리는 국가사회주의를 통해서야 유대인들이 우리와 다른 인간이라고 의식하게 됐어요. 그게 모두 나중에 유대인 말살 프로그램으로 이어졌죠. 우리는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이 전혀없었어요. 아니 그 반대였어요. 아버지는 손님 중에서 특히 유대인들을 좋아했어요. 돈이 많을 뿐 아니라 항상 값을 후하게 치렀거든요. 우리는 유대인 아이들과 놀기도 했어요.
그중에는 힐데라는 마음씨 고운 여자아이도 있었어요. 또바로 옆집에 내 또래의 유대인 아이가 있어서 종종 함께 어울렸어요. 비누 가겟집 딸 로자 레만 오펜하이머는 지금도또렷이 기억나요. 우리는 그 애들이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한 번도 없어요. 그건 다 커서도 마찬가지였죠. 국가 사회주의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을 때도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어요. 다만 우리는 친애하는 지도자를 향해 반갑게 손만 흔들어 주었을 뿐이에요. 왜 안 그러겠어요?
1933년 이전에 유대인 문제를 생각한 사람들은 소수였어요 처음에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었고 돈이 생겼어요. 나중에 우리는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베르사유 조약으로 사기를 당했다고 배웠어요.
한마디로 우리는 히틀러의 등장과 함께 우리한테 무슨 일이 닥칠지 전혀 몰랐어요. - P45

하지만 아무리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어두운 면은 있기 마련이죠. 특히 제1차 세계 대전에 패배한 뒤가 그랬어요. 베를린의 거리 곳곳에 실업자와 거지, 가난한 사람들이 넘쳐났어요. 하지만 나처럼 베를린 근교의 좋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어요. 궁핍과 가난이 판치던 시절에도 그런 특별한 지역이 있었던 거죠. 우린 그런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았고, 보지도 않았어요. 그냥 외면해버렸죠.
그러다 1933년 3월에 갑자기 나치가 선거에서 이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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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취임 직후엔 한마디로 그냥 희망이 들끓었어요.
히틀러가 정말 정권을 잡으리라고는 누구도 믿지 못했어요. 정말 깜짝 놀랄 일이었죠. 아마 그 사람들 자신도 깜짝놀랐을 거예요.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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