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사실 인간관계와 행복의 연결 고리는 매우 허약하다.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는다면 삶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고,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인간관계는 분명 뭔가 잘못된 거라는 우리의 생각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물론 사랑과 우정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중요한 부분이다.하지만 행복의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변하고 발전한다. 노년이 되면 대체로 인간관계의중요성이 덜해진다. 어쩌면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쩔 수없이 해야 하는 이별을 덜 고통스럽게 하려는 자연의 자비로운 섭리일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는 인간관계에는 불확실성의 요소가 늘 있기 때문에, 그 인간관계가 완전무결한 것으로 미화되거 나 무언가를 이루는 유일한 길이 될 수는 없다. 아마도 가장 친밀한 관계일 결혼이 그렇게도 불안정한 이유도 사람들이 인간관계 를 과대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을 행복의 주된 요소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결혼생활을 눈물로 끝내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대부분의 창의적인 사람들이 성인기에 이르면 사람들과의 관계를 피하고 혼자 있으려 하는 성향을 어느 정도는 보인다. 하지만 내가 이 장에서 말하려는 사람들은 그 이상이다. 이들은 표면적으로 보면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외향적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적 친밀감에 대한 기대를 버리는 법을 배웠기 때문일 때가 많다. 그들은 관계가나빠질 때 별로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친밀한 인간관계에 삶의의미를 과도하게 두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능력‘은 학습과 사고와 혁신을 가능하게 하며 변천를 받아들이게 하고 상상이라는 내면 세계와 늘 접촉하게 하는귀중한 자질이다. 친밀한 관계를 맺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해도 창의적인 상상력의 개발로 치유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관계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의미와 질서를 만드는 것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는 창의적인 사람들도 많다.
끝까지 피오나의 감정에 이입되어 읽었다.남편과의 관계도, 애덤과의 관계도, 그리고 판사로써의 책임도 항상 어려운 우리는 어리석은 인간이다.
강변의 들판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지.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흰 손을 얹었네.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 하지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작가가 직접 체험한 극한직업에 대한 이야기들.사실 이렇게나 험한 일들이 많은지 잘 몰라서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나만 힘들다고 여전히 착각하고 사는 내가 부끄러웠다.
항구에서는 모든 사람의 삶이 하향 평준화된 사회가 주는 만족감이있었다. 모두가 헌 추리닝을 입고 형편없는 식사를 하고 매일같이 위험하고 힘들게 일했다. 볼품없는 외모를 주눅 들게 만드는 예쁜 여자도없었다. 누구도 드러내놓고 표현하진 않았지만 거기에 실패를 받아들인 데서 오는 편안함도 있었던 것 같다. 항구에선 더 이상 내 인생이 아무 문제없는 척할 필요가 없었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부모님이 원하는삶을 살고 있을 거라고 약속할 필요도 없었고 왜 나는 친구들 같지 못한가 자책할 필요도 없었다. 자기계발서가 권하는 어설픈 거짓말로 자신을 속일 필요도 없었다. 밑바닥까지 떨어진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었고 나는 그 밑바닥에 있었다. 내가 신경 쓸 일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놀랍게도 항구에선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어디서나 충고가 곧 상대방을 돕는 행동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건전한 상식의 소유자로서 이런 견해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우리는 충고라는 사치를 만끽하려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삶부터 돌아봐야 할 것같다.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충고란 자신과 이웃에게 긍정적이고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뿐이다. 누군가에게 충고를 건네고 싶다면 상대방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생각하는지부터 알아볼 일이다.(상대의 동의를 얻지 않고 충고하는 사람들을 법적으로 처벌하자! 모든 자기 계발서 저자는 사기죄로 구속되어야 마땅하다.) 만약 당신이 그런 삶을 살고있지 못하다면 충고할 자격이 없는 것이고 그런 삶을 살고 있는데도 상대가 당신을 좋은 충고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두 사람은 충고를 주고받로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닌 것이다. 어느 쪽에 해당하건 당신은 침묵해야 한다. 앞으로는 충고의 대가들이 제멋대로 남의 인생을 재단하기 전에 먼저 거울을 주의깊게 들여다 봤으면 좋겠다.
˝이 뜻을 위해 나는 모든 걸 바치겠다.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파우스트의 죄는 무엇인가? 안식을 모르는 영혼이다. 파우스트의구원은 무엇인가? 역시 안식을 모르는 영혼이다." 라는 에리히 헬러(Erich Heller)의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지요. 그렇다면 "누구든 줄곧 노력하며 애쓰는 이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습니다." 라는 시구 속에 파우스트의 구원에 대한 열쇠가 숨겨져 있다는 괴테의 말이 지닌 뜻은다름이 아닙니다. 누구든 자기실현을 위해 줄곧 노력하며 애쓰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알고 보면, 바로 이것이 독일 낭만주의의 궁극적 이상이자 긍정적 목표였습니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자기실현이란 단순한 자아의 완성이 아니라 신적인 것을 닮아가는 것이며,진리의 구현이자 구원의 길이었지요..김용규<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중 파우스트에서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 미술사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게 된 것은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물을 통한 인생의 유한함이나 삶의 덧없음, 즉 진귀하거나 값비싼 물건, 책, 악기 또는해골이나 시계 등을 그려 넣음으로써 소유의 부질없음과 인생의 무상함을경고한 것이다. 헤다의 작품에 등장하는 정물 역시 이런 은유를 품고 있다.고급 식기에 남아 있는 음식 찌꺼기나 금방 깨질 것처럼 보이는 유리잔, 식탁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나이프와 식기의 불안한 구성 등에서 그러한면을 볼 수 있다. 이를 바니타스 정물화‘ 라고 부른다. 바니타스는 덧없음‘ 을 뜻하는 라틴어로 구약성서의 "헛되고 헛되도다. 세상만사 헛되다" 라는 말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바니타스 정물화의 은유 방식은 이후 서양 회화의 중요한 표현법으로 자리 잡는다.
뭉크는 이 그림의 내용을 이렇게 고백했다.두 친구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해가 지더니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도 물들었다. 슬픔의 숨결이 느껴졌다. 가슴 아래로 찢어질 듯한 고통, 나는걸음을 멈추고 담벼락에 기댔다. 피로가 온몸을 엄습해왔다. 바닷가 위있는 구름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지만 나는 불안에 떨면서 가슴속의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벌벌 떨고 서 있었다. 바로 그때 공기를 가르는 거대하고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뭉크의 절규>
동양화는 동양의 회화라는 말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전체를 동양이라 부르니까, 동양화는 국적이 불분명한 아시아 전체의 그림을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이 우리 그림을 지칭하게 되었을까.이 말은 일본이 우리 문화와 정신을 말살하려는 일제 강점기의 문화 정책에 따라 붙여준 것이다. 서양에서 들어온 회화를 서양화‘ 라 하고 그에대응하는 의미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미술은 고유한 국가의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는 억지가 담겨 있는 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본은 우리를 영원한 속국으로 지배하겠다는 속내를 동양화라는 이름 속에숨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수치스러운 이름을 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여전히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