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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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 그것은 위험한 허구다.

물고기를 예로 들어보자. 아가시는 이 순간 헛간 교실 바로 밖에서 헤엄치고 있는 모든 물고기, 그중 한 마리를 바다에서 건져올려 껍질을 벗겨보면 신이 보낸 아주 분명한 메시지를 발견하게될 거라고 했다. "인간의 육체적 본성이… 어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모르면, 인간이 얼마나 낮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고 도덕적으로 얼마나 졸렬해질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33 아가시가충격적이라고 느낄 만큼 인간과 유사한 어류의 골격 구조(작은 머리, 척추골, 갈비뼈를 닮은 돌출 가시)는 ‘인간‘에 대한 경고였다. 어류는 인간이 자신의 저열한 충동들에 저항하지 못하면 어디까지 미끈러져 내려갈 수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비늘 덮인 존재였다. "인간은 [어류와] 그를 구별해주는 도덕적.지저 재능을 활용할 수도 있고 남용할 수도 있다. (...) 인간은 자기가 속한 유형 중 가장 낮은 위치까지 가라앉을 수도 있고, 영적인 높이로 올라갈 수도 있다" - P46

심리학자들은 인간으로 산다는 건 가혹한 운명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우리는 세상이 기본적으로 냉담한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은 보장되지 않고,
수십만 명을 상대로 경쟁해야 하며, 자연 앞에서 무방비 상태이고,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이 결국에는 파괴될 것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은 거짓말 하나가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낼 수도 있고, 인생의 시련 속에서 계속 밀고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으며, 그 시련 속에서 가끔 우리는 우연한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 P142

그렇다면 어떤 인지적 결함이 그릿을 획득하는 데 도움이 될까? 바로 긍정적 착각이다. 다른 연구들도 마찬가지로 긍정적 착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좌절을 겪은 뒤에 낙담할 가능성이 적다는것을 보여주었다. 그릿이란 여러 특성들이 섞인 칵테일 같은 것이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좌절을 겪은 뒤에도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능력,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능력, 또는 더크워스의 표현을 빌리면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노력과 흥미를 유지하는 것 말이다. - P143

바우마이스터와 부시먼은 이렇게 썼다. "쉽게 말해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 거창한 자기상을 확인받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비판당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며 자기를 비판한 사람을 사납게 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 - P151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알려주려고 그토록 노력했던점이다. 사다리는 없다. 나투라 논 파싯 살툼Natura non facit saltum,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고 다윈은 과학자의 입으로 외쳤다. 우리가 보는 사다리의 충돌은 우리 상상의 산물이며, 진리보다는 "편리함"을 위한 것이다. 다윈에게 기생충은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라 경이였고, 비범한 적응성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크건 작건, 깃털이있건 빛을 발하건, 혹이 있건 미끈하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그어마어마한 범위 자체가 이 세상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 데는 무한히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 P206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
- P227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 P252

이 사다리, 그것은 아직도 살아 있다.
이 사다리, 그것은 위험한 허구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 허구를 쪼개버릴 물고기 모양의 대형 망치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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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와 분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3
윌리엄 포크너 지음, 공진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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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을 먹고 시작한 책은 생각보다 읽는 재미가 있었다.
벤과 퀜틴 챕터를 잘 넘긴다면 생각보다 잘 읽히고 감정이입도 된다.

커튼에 창틀 그림자가 보이니 일곱시에서 여덟시 사이일 것이며 시계 소리를 듣고 있는 나는 또다시 시간 안에 있는 것이다. 시계는 할아버지 것이었으며 아버지가 그것을 내게 주며 말하기를 내 너에게 모든 희망과 욕망의 능묘를 주니 네가 이것을 사용해 인간의 모든 경험이 결국은 부조리함을 알 것이며, 이는 네 개인적인 필요에 맞되 네 할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보다 나을 바 없을 것 같은생각이 드니 마음이 아프구나. 내 너에게 이것을 주는 건 시간을 기억하라 함이 아니라, 이따금 잠시라도 시간을 잊으라는 것이요. 시간을정복하려고 인생 전부를 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싸움이 성립조차 안 된다. 그전쟁터는 인간의 우매와 절망을 드러낼 뿐, 승리는 철학자들과 바보들의 망상이다. - P102

아버지가 말했다 인간은 자기 불행의 총합이다. 언젠가는 불행도 지칠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시간이 네 불행이야. 허공을 가로지르는 보이지 않는 전신에 앉아 있는 갈매기가 질질 끌리는 듯했다. 좌절의 상징을 영원으로 가져간다고 하자. 그러면 날개야 더 크겠지만 아버지가말하기를 다만 누가 하프를 연주할 줄 알겠니." - P140

이렇게 산소가 희박하고 열망으로 가득한 날들이, 서글프고 향수 어린 친숙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날들이. 아버지는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는 기후의 총합이라고했다. 인간은 기타 이런저런 것들의 총합이야. 불순한 속성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문제야. 이 문제는 끈덕지게 변함없는 무(無)로 이끌리는데, 이 무는 흙과 욕망의 교착상태야. - P166

그림자들 속으로, 그림자들 위에 앉은 가벼운 먼지 같은 지나간 슬픈 세대들의 발소리가 메아리치는 속으로 구부러져 올라가는 계단이 있을 뿐이었다. 내 걸음이 그 그림자들을 깨웠으며 그 먼지들은 다시 가볍게내려앉았다. - P228

아버지가사람이란 다 자기 미덕의 결정권자니라 그러나 다른 사람이 네 행복을규정하지 않도록 해 하기에 내가 잠깐 동안이에요 하자 아버지가 존재의 과거형은 가장 슬픈 말이야 세상에 그보다 슬픈 말은 없단다 절망도 시간이 흘러가야 있을 수 있지 시간조차 그 존재가 과거가 되지 않으면 시간이 아니니까 - P237

일순간 벤은 전적인 단절감에 휩싸이며 울부짖었다. 울부짖음에 울부짖음이 더해지며 그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숨을 쉴 틈도 두지 않았다. 거기에는 경악 이상의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공포였다. 충격이었다. 눈이 없고 혀가 없는 고통이었다. 그것은 오로지 소리였다.
- P419

모더니즘 문학은 전통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서술의 연속성을 해체하고 인물 묘사의 전범에서 이탈했으며, ‘의식의 흐름‘과 색다른 혁신적서술 양식을 도입함으로써 전통적인 서술의 구문과 통일성을 무시했다. "3) 이것은 당시를 특징짓는 "허무와 무질서의 광대한 파노라마)에 나름의 질서를 부여하려는 시도였다. 이 과정에서 제임스 조이스와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 마르셀 프루스트, 거트루드 스타인 등모더니즘 작가들은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를 찾았다. 그들은 서술로 과거의 기억을 불러들이지만, 그것은 그들이 경험하는 현재가 반영된 기억이다.
<해설> - P422

 벤지의 정신연령은 채 세 살도 되지않는다." 벤지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벤지가 세상을 경험하는 순간 포크너가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밀려다니는
‘영상‘을 포착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벤지의 서술은 거의전적으로 시각적, 영상적이다.18" 언어가 발달하기 전의 어떤 원시적상태를 최대한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형식을 상상하여 서술한 것으로생각해야 한다. "소설은 현실계를 묘사한다기보다는 있을 법한 이야기를 창조하고 독자로 하여금 그것을 ‘믿도록 설득한다."19) 그러기 위해서 포크너는 비정상적인 ‘백의 언어‘를 창조해 서술한다. 그리고 독자는 그것이 벤지의 언어라고 믿는 것이다.
<해설> - P426

이제 퀜틴 섹션으로 들어가보자. "벤지의 고립이 물리적, 감각적인것이라면, 퀜틴의 고립은 추상적인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퀜틴의 내면세계는 고립되어 있고 비이성적이다. 그는 세상이 어때야 한다는 기대감과 실제 경험 사이의 괴리감에절망한다. ‘근친‘의 경험을 말, 또는 언어로 강제하지만, 이 시도에 실패하자 자기가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벗어나려 죽음을 선택한다. "
퀜틴의 절망적인, 끊임없는 상념은 벤지의 신음, 울부짖음이 언어로 표현된 것이다. 
<해설> - P431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이
매일 이렇게 꾸물꾸물
기록되는 시간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어갈 것이며
우리의 모든 지난날들은
바보들에게 흙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밝혔다. 꺼지는구나, 꺼지는구나. 잠시뿐인 촛불이!
인생은 엑스트라의 그림자, 서투른 배우.
무대에 올라 뽐내며 걷고 안달하다가는
더이상 들리지 않지. 그것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 소리와 분노로 가득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멕베스 중> - P435

포크너에게 "현재는 혼돈된 소음 또는 소리, 그리고 지나간 미래"다. 그의 세계관은 "달리는 오픈카에 앉아 뒤를 돌아보는 것에 비유될수 있다. 무형의 그림자, 깜박이는 빛, 빛의 희미한 떨림, 빛의 파편들이 양쪽 시야에 들어오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그 모든 것들이 뒤로 밀려난 다음, 어느 정도 원근감이 생긴 뒤에서 나무가 되고, 사람이 되는것이다"퀜틴에게 ‘현재‘는 존재하지 않고 과거만 있을 뿐이다. 현재는 과거가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내고 존재하기 시작한다. "나는 존재했다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존재가 아니었다
<해설> - 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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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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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도 가물해진 책이지만 다시 읽어도 좋은 책.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 P21

진모가 나 못지않은, 아니, 나를 훨씬 능가하는 문제아로 청소년기를 보내는 동안에도 나는 그 애의 삶에 참견하지 않았다. 진모의 삶은 진모의 것이었고 진진이의 삶은 진진이의 것이었다.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삶의 공식인가 말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었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것이었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이었다.
누군가 내게 그런 실례의 발언을 하는 것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사람과는 두 번 다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상처받은 내 자존심이 용서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 P51

"해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이 저권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 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안진진,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본 적 있니? 낮도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 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 지고 마는 거야...." - P95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 P127

쓰러지지 못한 대신 어머니가 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생애에 되풀이 나타나는 불행들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어머니에게 극복되었다. - P152

진모 때문에 나는 울지 않았지만, 김장우는 자신의 형 때문에내 앞에서 눈물을 비쳤다. 진모의 일을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은 말이아니었다. 상처는 상처로 위로해야 가장 효험이 있는 법이었다. 당신이 겪고 있는 아픔은 그것인가, 자, 여기 나도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 어쩌면 내 것이 당신 것보다 더 큰 아픔일지도 모르겠다, 내불행에 비하면 당신은 그나마 천만다행이 아닌가...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 P188

세상의 모든 잊을 수 없는 것들은 언제나 뒤에 남겨져 있었다. 그래서, 그래서 과거를 버릴 수 없는 것인지도 - P191

사랑이란,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지 않고 무심히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다. 자신의 얼굴에 대해생애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의 눈과 코와 입을그윽하게 들여다보는 나. 한없이 들여다보는 나.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해준 그가 고맙다고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 P210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ㅇ은 인생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 P218

행방불명으로 먼 세상을 떠돌던 한 인간이 속세로 귀향하기에이만한 날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런 말을 알고 있다. 인생은 짧다고,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고, 아버지는 참으로 긴긴 인생을 살았다. 그것이 진정 아버지가 원했던삶이었을까. - P268

이모가 죽고도 세월은 흘렀다.
이모를 죽인 겨울이 지나고 봄은 무르익어서 사방에 꽃향기가난만했다. 겨울이 있어 봄도 있다.
나도 세월을 따라 살아갔다. 살아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 P291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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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배신 - 머릿속 생각을 끄고 일상을 회복하는 뇌과학 처방전
배종빈 지음 / 서사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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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책중에 작고 얇은 책이지만 충분히 읽을만큼 알차다.

부정적인 생각의 반복은 우리 뇌를 생존의 위협을 느꼈을 때의 뇌와 같은 상태로 변하게 한다. 우리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관한 생각을 반복하면 우리 뇌는 그 상황을 실제로 반복해서 경험했다고 착각한다. - P27

그런데 우리 뇌는 무언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도 여전히활발하게 움직인다. 흔히 ‘아무것도 안 할 때 오히려 잡생각이 많아진다‘라고 하는데, 실제로도 뇌는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휴식할 때 동시에 활성화되는 뇌 영역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고 부르는데, 이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거나 미래에 대한 상상, 자기 인식,
타인과의 관계 등을 살피게 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대인 관계를 원활히 맺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 이 기능이 과하게 작동하여 뇌가 지쳐버리게 된다. - P33

부정적인 생각을 반복하는 것은우리를 우울하고 불안하게 한다. 그런데도 왜 뇌는 이러한 생각을 반복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생각을 반복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고, 뇌는 우리의 행복보다 생존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 P35

행복을 바라보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지금 느끼는 감정으로서의 행복이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카너먼Daniel Kahneman은 행복을 현재 여기서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으로 정의한다. 이와 같은 의미의 행복은 우리가 즐거운 일을하거나 무언가에 몰입할 때 느껴지는 긍정의 감정을 말한다.
다음으로는 자기 삶에 대한 평가로서의 행복이다. 사회학자뤼트 베인호번Ruut Veenhoven은 자신의 전반적인 삶에 대한 만족감으로 행복을 정의한다. 순간의 즐거움을 자주 느낀다고 해서 반드시 삶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삶이 행복하다고 여기기 위해서는 즐거운 감정을 자주 느끼는 것 외에도 자신의 현재 상황이나,
지위, 관계, 건강 상태 등이 만족스러워야 한다. - P54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가진 심리적 자원을 아끼고이를 필요한 곳에 사용하여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데도 도움을준다.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물론 나이와 체력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지만 대개는 비슷한 수준이다.
그 때문에, 에너지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에 따라 각자의성취가 달라질 수 있다. 생각에 빠지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많은 에너지를 불필요한 생각을 하는 데 사용한다. 물론 그중에는삶에 도움이 되는 생각들도 있겠지만, 뚜렷한 목표 없이 떠도는대부분의 생각은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 P59

우리 뇌는 매일 수만 가지의 생각을 만들지만, 대부분 일시적으로 우리의 의식을 붙잡았다가 금세 흩어진다. 그런데 그중 몇몇 생각은 우리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사랑하는 연인과의만남을 생각하면 기대되고, 즐거운 감정이 함께 경험된다. 은행대출을 어떻게 갚을지 생각하면 답답하고 불안한 감정이 올라온다. 이처럼 어떤 생각들은 감정과 함께 기억되어, 그 생각을 떠올리면 감정이 함께 떠오른다.
다양한 감정 중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생각들은 유난히 우리 머릿속에 자주 떠오른다.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면 좋은일보다 나빴던 일이 더 강하게 기억되는 것도 뇌가 가진 특징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우리 뇌는 생존에 유리하도록 설계돼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생각을 더 자주, 더 쉽게 떠올림으로써, 생존의 위기에 처할 가능성을 낮추려는 것이다. - P65

생각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모든 생각은 중요하고 의미 있다는 잘못된 신념이 작용하고 있다. 생각은 합리적인 생각과 비합리적인 생각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중요하고 의미 있고 이성적인 생각들도 있지만, 아무 의미 없고우리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들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생각에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뚜렷한 목적이 없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의 80% 이상은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사라진다. 그런데 모든 생각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메타인지적 신념을 가진 사람의 경우, 모든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생각이 자연스럽게 흘러 사라지는 대신 우리의 의식에 잡혀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 P72

나를 힘들게 하는 상대를 자꾸만 생각하는 이유는 이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치 않으면 끊어버릴 수 있는 가벼운 관계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같이 가까운 상대와의 문제는 해결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관계를 끊을 수도 없는 딜레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통제감을 상실한다. 통제감을 상실하면 우리는 불안해지고 상대에 관한 생각을 반복하게 된다.
타인에 관한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왜 그런행동을 하는지 생각하기보다는 그 행동에 내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내 생각과 행동은 내가 결정할수 있다. 관계 자체는 어떻게 하지 못하더라도 관계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정 할 수 있는 것이다. - P95

상대방과의 대화가 두려운 것은상대방과의 대화 중 불편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두려워서다. - P95

그러므로 나를 힘들게 하는 상대방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오더라도 견딜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 P96

능동적인 생각을 일으키는 뇌 부위와 몸을 움직이게 하는 뇌 부위는 함께 활성화되고 서로의 연결 또한 강화되어 있다. 생각이 행동을 일으키는 것처럼,
행동이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다. 이와 유사한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 행동과 감정의 관계다. 흔히, 감정이 행동을 유발한다고 생각하지만, 심리학자들은 행동이 감정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심리학자인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은 《지금 바로 써먹는 심리학》에서 좋은 기분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행복한 생각을 떠올리는 것보다 좀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행복감을 높여준다고 이야기한다. 행동이 감정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행동은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행동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어떤 자세로 어떤 행동을 하면서 생각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 P164

목적을 정하고 생각하면 스트레스 반응을 줄일 수 있다. 때로는 싫어도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인간관계에서갈등이 있는 경우, 관계를 유지하고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해 생각해야만 한다. 갈등에 관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분노, 불안감, 무력감 같은 다양한 부정적 감정이 일어나고 스트레스 반응도 나타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생각, 감정, 스트레스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갈등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을 목표로 정하면, 주체가 되어서 능동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감정 반응과 스트레스 반응이 줄어든다.  -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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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테인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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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은 좀 지루했지만 역시 2권부터는 필립로스답게 몰아치듯 써 내려간 글들에 매혹되고 말았다.
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지울수 없는 오점이나 실수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아주 재미있는 소설.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모두가 알고 있다니...
어떤 일이 어떻게 해서 그런 식으로 일어나는지를 안다고? 인간사를규정하는 사건들, 불확실성들, 사고들, 불화, 충격적인 부조리의 연속인 난맥상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도? 아무도 알 수 없는 거요. 루 교수
"모두가 알고 있다"라는 말은 상투어를 이용한 호소인데, 경험을 진부하게 만들어버리는 출발점이다. 무엇보다 못 견디게 싫은 것은, 상투어를 내뱉는 자들의 위선적인 진중함과 권위의식이다. 우리가 유일게 아는 것은, 상투적이지 않은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아는 것도 실은 알지 못한다.
의도? 동기? 결과? 의미? 모르는 건 전부 놀랍게 느껴진다. 하지만 더놀라운 건 우리가 안다고 믿는 것들이다. - P17

가장 확실하고 믿을 수 있는감정선들만으로 형성된 이 남자, 하나의 권력으로서 파란만장한 내력을 지닌 이 유력자, 우아하게 교활하고 서글서글한 매력이 있고 겉보기에는 대장부의 완전체 같은 사람지만 그럼에도 그에게는 엄청난 비밀이 하나 있다. 나는 어쩌다 이런 결론에 이른 것일까? 왜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콜먼이 포니아와 함께 있을 때 뭔가 숨기는 게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있지 않을 때도 그는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 그가 지닌 비밀이 바로 그의 매력이다. 결여된 무언가가 사람을 현혹하고, 그동안 내내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만의 비밀로 지니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무언가가. 그는절반의 모습만 보여주는 달처럼 자신을 연출한다. 내게는 그의 모습을완전히 보이게 할 재간이 없다. 공백이 존재한다. 그게 내가 말할 수있는 전부다. 두 사람이 결합하면 공백 한 쌍이 된다. 그녀에게도 공백이 있다. 콜먼은 확실히 저명한 인물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여차하면완강하고 과단성 있는 적자신을 모욕하는 헛소리를 받아들이느차라리 사임하는 쪽을 택한 성난 거물급 교수-이 되기도 하지만, 그에게도 어딘가 공백이 있다. 지워진부분이, 삭제된 부분이 있다. 그게 뭔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사실 이 직감이 이치에 맞는 건지. 아니면 그저 다른 인간에 대한 나의 무지가 비현실적으로 드러난건지 결코 알 수 없지만. - P24

"당신이 훤히 보여요. 콜먼. 정말로 보인다니까요. 내가 뭘 보는지궁금하지 않아요?"
"당연히 궁금하지."
"당신은 내가 당신한테서 노인의 모습을 보고 있는지 궁금하겠죠.
안 그래요? 당신은 내가 당신한테서 노인의 모습을 보고 도망칠까봐두려워하고 있어요. 내가 당신한테서 젊은 남자들과 다른 점들을 볼까봐. 기운 빠진 모습이나 이미 사라져버린 것들을 볼까봐, 그래서 날 잃을까봐 두려워하고 있어요. 당신이 너무 늙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내가 뭘 보고 있는지 당신 알아요?"
"뭔데?"
"어린아이요. 꼭 어린애처럼 사랑에 빠진 당신이 보여요. 그래선 안돼요. 그러면 안 된다고요. 그것 말고 또 뭐가 보이는지 들어볼래요?"
"그럼."
"그래요. 이젠 그게 보여요. 노인이 보여요. 죽어가고 있는 노인이보여요."
"이야기해봐."
"당신은 모든 걸 잃었어요."
"그렇게 보이나?" - P54

"그럼요. 춤추고 있는 나를 뺀 모든 게 보여요. 내가 뭘 보는지 궁금하죠?"
"뭔데?"
"당신이 그런 패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요. 콜먼, 그게보여요. 당신이 노발대발하고 있는 게 보여요. 그리고 그러다 끝을 맞을 거라는 것도요. 성난 노인으로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어요. 나는그게 보여요. 당신의 울분이요. 분노와 치욕이 보여요. 노인으로서 시간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당신이 보여요. 그건 죽음이 가까워지기전에는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하지만 지금 당신은 이해하게 됐어요.
그래서 두려운 거죠. 되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다시 스무 살이 될 수없으니까요. 그 시절이 다시 오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인생이 끝나는 거죠. 그리고 죽어가는 것보다 더 싫은 것. 죽게 되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게 바로 당신을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그 빌어먹을 개자식들이죠. 당신한테서 모든 걸 빼앗아간 자들이요. 당신 안에서 그게 보여요. 콜먼. 내가 잘 아는 일이기 때문에 볼 수 있어요.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걸 바꿔놓은 그 빌어먹을 개자식들. 당신의 인생을 빼앗아 쓰레기통에 던져넣은 놈들. 당신의 인생을 빼앗은 다음 자기들끼리쓰레기통에 던져넣기로 결정했죠. 당신은 당신한테 딱 어울리는 춤추는 여자애를 찾아온 거예요. 그자들은 뭐가 쓰레기인지 정하고, 당신을쓰레기라고 정했어요. 개소리라는 게 뻔한 일을 가지고 한 남자를 모욕하고 명예를 떨어뜨리고 망가뜨린 거죠. 자기들에겐 아무런 의미도그야말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추잡한 말 한마디를 가지고요. 그리고그게 당신을 분노하게 만드는 거예요." - P55

우리는 오점을 남긴다. 우리는 자취를 남기고, 우리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불순함, 잔인함, 학대, 실수, 배설물, 정액- 달리 이 세상에 존재할 방법이 없다. 불복종과는 상관없다. 은총이나 구원 혹은 속죄와도 상관없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내면에 존재한다. 내재되어 있다. 타고난 것이다. 규정지어진 것이다. 밖으로 드러나기 전에 이미 오점은 존재한다. 아무런 신호도 없이 이미 존재한다. 오점은 표지가 필요치 않을 정도로 본질적이다. 오점은 불복종보다 선행하고, 불복종을 포함하며, 모든 설명과 이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 농담에 지나지 않는 이유이다. 그것도 아주 잔인한 농담. 순수성에 대해 환상을 갖는 건 소름끼치는 일이다. 미친 짓이다.  - P69

마크 실크는 자신이 영원히 증오할 수 있도록 아버지가 계속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증오하고, 증오하고, 증오하고, 또증오하다가, 제 분이 좀 풀리면, 어쩌면 비난 장면이 최고조에 달해서자식으로서의 불만이라는 응어리로 콜먼을 초주검이 되도록 채찍질하고 난 다음에야 용서하기로 했던 모양이었다. 그는 연극이 끝까지 상연될 때까지 콜먼이 이 세상에 머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자신과콜먼이 실제 인생이 아니라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남쪽 산허리에 있는 디오니소스에게 바쳐진 노천극장 위에 서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 P179

는 있을까? 하지만 삶이란 목적이 숨겨져 있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 관습이란 고찰을 허락하지 않는 어떤 것이라는 생각, 사회란 심한 결함이 있을지 몰라도 그 자체의 모습에 전념하는 것이라는 생각, 개인이란 그 사람을 규정하는 사회적 요인들과 완전히 별개로 그 요인들을넘어 실재하는 것이고 사회적 요인들이 실제로 그 개인에게는 실재하지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요컨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모든 혼란들은 유서 깊은 규칙 목록에 대한 그녀의 확고부동한헌신에서 다소 벗어난 곳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 P206

그렇게 콜먼의 정체를 알게 되자 나는 그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점점더 알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참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니스틴에게 들어 알게 된 사실이 원래 내가 콜먼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과 통합되는 대신 콜먼을 미지의 인물로, 더욱이 일관성 없는 인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의 비밀이 어떤 비율로, 어느 정도로까지 그의 일상을 결정하고, 그의 일상적 사고에 침투했던 걸까? 그 강렬했던 비밀도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덤덤하게 느껴지고, 결국엔 아무 중요성 없는 것으로, 오래전 자신과 한 내기나 대담하게 실행했어야 했던 무언가로 바뀌어 잊히고 말았을까? 그는 그 결정으로 자신이 추구하던 모험을 손에 넣었을까, 아니면 결정 자체가 모험이었을까?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재미있었던가,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하는 걸 무척 좋아했던 걸까, 거짓 신분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그에겐 여행 같았던 걸까?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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