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 미술사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게 된 것은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물을 통한 인생의 유한함이나 삶의 덧없음, 즉 진귀하거나 값비싼 물건, 책, 악기 또는해골이나 시계 등을 그려 넣음으로써 소유의 부질없음과 인생의 무상함을경고한 것이다. 헤다의 작품에 등장하는 정물 역시 이런 은유를 품고 있다.
고급 식기에 남아 있는 음식 찌꺼기나 금방 깨질 것처럼 보이는 유리잔, 식탁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나이프와 식기의 불안한 구성 등에서 그러한면을 볼 수 있다.
이를 바니타스 정물화‘ 라고 부른다. 바니타스는 덧없음‘ 을 뜻하는 라틴어로 구약성서의 "헛되고 헛되도다. 세상만사 헛되다" 라는 말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바니타스 정물화의 은유 방식은 이후 서양 회화의 중요한 표현법으로 자리 잡는다.
뭉크는 이 그림의 내용을 이렇게 고백했다.
두 친구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해가 지더니 갑자기 하늘이 핏빛으도 물들었다. 슬픔의 숨결이 느껴졌다. 가슴 아래로 찢어질 듯한 고통,
나는걸음을 멈추고 담벼락에 기댔다. 피로가 온몸을 엄습해왔다. 바닷가 위있는 구름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지만 나는 불안에 떨면서 가슴속의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벌벌 떨고 서 있었다. 바로 그때 공기를 가르는 거대하고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뭉크의 절규>
동양화는 동양의 회화라는 말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전체를 동양이라 부르니까, 동양화는 국적이 불분명한 아시아 전체의 그림을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이 우리 그림을 지칭하게 되었을까.
이 말은 일본이 우리 문화와 정신을 말살하려는 일제 강점기의 문화 정책에 따라 붙여준 것이다. 서양에서 들어온 회화를 서양화‘ 라 하고 그에대응하는 의미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미술은 고유한 국가의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는 억지가 담겨 있는 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일본은 우리를 영원한 속국으로 지배하겠다는 속내를 동양화라는 이름 속에숨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수치스러운 이름을 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여전히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