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없는 길 1 - 거문고의 비밀 길 없는 길 (여백) 1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불교문학으로 최인호님의 소설인데 책정리하다 다시 읽어보니 예전과 다른 가슴에 남는 글들이 많다.

이십여 년 간 내가 모든 학문에 두루 정통하였다면. 그리하여 전국에서 구름처럼 몰려들어 오는 납자들에게 학문을 강의하는 당대제일의 대강백이 되었다면 그만큼 나는 내가 아는 것으로부터 속박당하고 있음이다. 나는 뗏목을 지고 가는 어리석은 배꾼에 지나지않으며, 고기를 잡고서도 통발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어리석은 어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토끼를 잡고서도 덫을 여전히 간직하고있는 어리석은 사냥꾼에 지나지 않는다.
버려라.
내가 배워온 모든 학문을.
버려라.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모든 알음알이를 내가 아는학문은 한갓 얕은 꾀에 지나지 않는다.
베어라. 그리고 끊어라. 그래야만 너는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를얻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너는 부처가 말한 평화로운 바다에이르지 못할 것이며, 그렇지 않고서는 너는 고기를 잡지 못하고 토끼를 잡지 못할 것이다.
너희들은 이 뗏목처럼 내가 말한 그 모든 교법마저도 버리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P174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 몽중이로다
천만고의 영웅 호걸 북망산 무덤이요
부귀 문장 쓸데없다 황천객을 면할쏘냐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의 이슬이요
바람 속의 등불이라
오호라, 나의 몸이 풀끝의 이슬이요바람 속의 등불이라....‘
- P202

사람들은 끊임없이 몰려오고 울고 통곡하고 그리고는 떠나갔다.
들어올 때는 죽은 사람 크기만큼의 관을 갖고 오고 떠나갈 때는 너나할것없이 과자상자만큼이나 작은 함 속에 한줌의 뼛가루를 배급받아 들고서. 살아 있을 때는 자기 나름대로의 이름과, 자기 나름대로의 사연과 자기 나름대로의 직업과,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아온 그 숱한 사람들이 죽어서는 모두들 단 하나의 공통된 이름, 죽은 사람(死者)으로 불리고, 자신의 이름 앞에 ‘고(故)‘의 접두어를 붙이고서.
나는 마치 죽음을 거래하는 시장(市場)바닥에 나와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죽음은 우리의 인생과 너무 밀접하게 가까이 놓여 있다.
하이데거가 인간을 ‘죽음에 붙여진 존재‘라고 규정하였듯 죽음은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누리는 쾌락, 우리가 보내는 시간 속 그 어디에도 조금씩 독(毒)처럼 녹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죽음이 자기와 상관없는 남의 일인 것처럼 잊어버리고 있을 뿐이다.
살아 있는 생의 뒷면이 바로 죽음 그 자체임을 애써 부정하면서 어떻게 해서든 이 죽음을 외면하고 잊으려고 술을 마시고, 쾌락으로 도망친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피살되어버릴 뿐인 것이다. - P254

떠나겠나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형제여내 온 형제들에게 절하며 작별하나이다.
여기 내 문(門)의 열쇠를 돌려드리나이다.
또 내 집에 대한 온갖 권리도 포기하나이다.
오직 그대들로부터마지막 다정한 말씀을 간청할 뿐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을 때오랫동안 이웃이었나이다.
하지만 주기보다는받는 것이 더 많았나이다.
이제 날이 밝아어두운 내 집의 구석을 밝히던 초롱불도 꺼졌나이다.
부르심이 왔나이다.
나는 이제 여행의 준비를 하고 있나이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탄잘리> - P255

죽음이란 타고르의 시처럼 ‘여행의 준비‘인지도 모른다. 죽음이란살아 있는 동안 간직하였던 문의 열쇠를 돌려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을 때 내 이웃이었던 어머니는 부르심을 받아 이 지상의상식으로는 알 수 없는 머나먼 곳으로 떠났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깊게 생각을 하였다.
어머니를 부른 그 사람은 누구일까. 어머니가 우리들에게 작별의인사를 하고, 인생의 열쇠를 돌려주고 떠난 그곳은 어디일까.
내 머리속에는 타고르의 다른 시 구절이 기억되어 떠올랐다.

님의 종인 죽음이 이 몸의 문 앞에 있나이다.
그는 미지의 바다를 건너 님의 부르심을저의 집에 전하러 왔나이다.
밤은 어둡고 이 내 가슴은 무겁나이다.
하지만 이 몸은 초롱불을 밝혀 들고 문을 열어
그를 환영하겠나이다.
저의 문 앞에 서 있는 죽음은 님의 전갈이니까요. - P256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그러자 사문이 대답하였다.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실망하여 말하였다.
"너는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부처님이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그는 대답하였다.
"밥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이 말하였다.
"너도 아직 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부처님이 또 다른 사문에게 물었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동안에 있느냐."
사문이 대답하였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이 마침내 말하였다.
"그렇다. 생과 사는 호흡하는 사이에 있다. 너야말로 도를 이루었다."

부처의 말은 비유가 아니다. 그의 말은 진리이다. 우리의 삶과 죽음은 며칠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밥 먹는 사이에 있음도 아니다. 우리의 삶은 숨을 들이마실 때 있고 우리의 죽음은 숨을 내쉴 때있다. 우리는 숨을 들이마실 때 살고 숨을 내쉴 때 죽는다. 우리는끊임없이 생과 사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우리가 쉴 새 없이 눈을 끔벅이고 있는 것처럼 눈을 감을 때 우리는장님이 된다. 그러나 뜰 때 우리는 빛을 본다. 그 장님과 봄(親)의찰나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도 우리는 그냥 "보고 있다"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숨을 내쉬고 들이마심으로써 삶과 죽음의 문턱을 하루에도 수만 번씩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 P256

‘그대는 온 사람의 길을 모르고 또한 간 사람의 길도 모른다. 그대는 생과 사, 그 두 끝을 보지 않고 그저 부질없이 슬피 울고만 있을것인가. 미망에 붙들려 울고불고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해서 무슨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현자들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울고 슬퍼하는 것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는 없다.
더욱더 괴로움이 생기고 ,몸만 여월 따름이다.‘
- P307

‘소치는 사람이 채찍으로 소를 몰아 목장으로 돌아가듯
늙음과 죽음도 또 그러하네.
사람의 목숨을 끊임없이 몰고 가네.
무엇을 웃고 무엇을 기뻐하랴.
세상은 끊임없이 타고 있는데
그대들은 어둠 속에 덮여 있구나.
그런데도 어찌하여 등불을 찾지 않는가.
보라, 이 부서지기 쉬운 병투성이
이 몸을 의지해 편하다고 하는가.
욕망도 많고 병들기도 쉬워
거기에는 변치 않는 일체가 없네.
목숨이 다해 정신이 떠나면
가을철에 버려지는 표주박처럼
살은 썩고 앙상한 백골만 뒹굴 것을.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즐길 것인가.‘ - P3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인의 미치광이 펭귄클래식 54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끊임없는 오가는 망상과 현실들이 읽는데 넘 힘들게 했다.

"그렇죠? 이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투성이죠. 예컨대 내주머니에 권총이 하나 있는데..…………, 왜 당신을 쏘아 죽이지 않았는지 나도 설명을 못 하겠다니까요."
엘사가 고개를 들어 테이블 끝에 서 있는 그를 노려봤다. 대위가 물었다.
"왜 그러지 않았습니까?"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 그래, 바로 이것때문인가 봐요. 사람 마음속엔 서로 다른 운명의 길이 나 있는것 같아요.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신비한 본능 같은 거라고나 할까. 지금 나한테 일어나고 있는 일도 내 운명의 길을따라가다 보면 겪을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우리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전에 어디선가 본같고...... 어디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P79

하긴 나도 정상이라고 할 순 없지. 난 원래 이런 인간은 아니었는데. 하지만 내 존재 의식을 되찾고, 또 내 존재를 긍정하려면 당장 뭐라도 해야 해. 그래 바로 그거야. 존재를 긍정하기 위해서. 지금 나는 산송장이나 마찬가지라고.
사실 내가 엘사나 대위, 더구나 바르트를 위해서 존재하는 건 아니잖아? 마음만 먹으면 저들은 나를 감옥에 처넣을 수도 있고,
바르트는 다시 내 뺨을 갈길 수도 있어. 내가 멀쩡히 보는 앞에서 엘사는 또 다른 놈들과 떠날 수도 있고, 대위가 그날 다시빼앗아 갈지도 모를 일이지. 저들의 눈에 나 따윈 보이지도 않을 거야. 나는 이 세상에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일 뿐이니까. 인간은 행동과는 다르다. 고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면유령같이 살면서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그렇기도하고, 아니기도 할 거야. 저기 저 사람들. 저들에겐 분명 처자식과 가정이 있을 테지. 게다가 저들도 나처럼 가난뱅이일 거야.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저들의 집에 침입해서 몇 푼 안 되는돈을 훔치거나 아내를 건드리려고 하면 저들은 당연히 사나운맹수처럼 덤벼들겠지. 그런데 나는 왜 나는 그렇게 못 하는 걸까? 누가 그 이유에 대해 속 시원하게 설명해 줄 수 없을까? 하긴 나 자신도 모르는 걸 남이 어떻게 알겠어. 내가 아는 거라곤늘 그렇게 살았다는 것, 허깨비 같은 존재였다는 것뿐이니. 이런 생각을 해도 나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지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고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리고나면 살인에 대한 호기심이 고요하고 텅 빈 마음속으로 연기처럼 피어오르지. 그래, 맞아. 난 절대로 미치지 않았어. 이처럼생각도 하고 논리적으로 추론도 할 수 있는데 내가 미치긴 왜미쳐 살인에 대한 호기심이 마음속으로 꾸역꾸역 올라오고 있어. 저 호기심은 분명 나를 불행하고 슬프게 만들 거야. 불행의씨앗을 품은 호기심, 혹은 악마와도 같은 호기심. 그래! 범죄를통해서 내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는 거야. 그래, 바로 그거야.
- P119

그러나 오직 악을 통해서만 지상의 인간들이 자신의 현존을 긍정하듯, 오로지 범죄를 통해서만 나는 나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다. 그래서 미래의 나는 에르도사인 바로 그 자신, 법에 의해서 그리 만들어졌지만 법에게는 끔찍한 악몽과도같을 에르도사인이라는 괴물이 되리라. 그리고 앞으로 나는 또다른 에르도사인, 진짜 에르도사인이 돼서 이 세상을 악으로물들이게 될 수천수만의 이름 없는 에르도사인들 위로 나타날것이다. 이 모든 게 너무 낯설고 이상해. 그렇긴 하지만 여전히어둠이 존재하고 있고, 인간의 영혼은 깊은 슬픔에 젖어 있잖아. 끝을 알 수 없는 슬픔, 아니, 삶이 이런 식이어서는 안 돼!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내 안에 있는 누군가가 절규한다.
만일 삶이 왜 이런 식이어서는 안 되는지 그 이유를 내가 밝혀낸다면, 내 몸에 구멍을 내서라도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거짓과위선을 죄다 빼버리고 말 거야. 그러면 지금의 나로부터 새로운 인간이, 우주를 창조한 신들처럼 강인한 인간이 나타나게될 거라고.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럴 때 딴 생각이 드는 거지? - P121

당시 상황에 관해 에르도사인은 뒷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렸을 때 오렌지색 구름 위에서 노니는 달빛과 장미꽃 위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이슬방울을보면서 그토록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기 위해서 태어난 줄만 알았어요. 그러니까 살면서 언제나 고상하고 아름다운 일만 생길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니까 제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거예요. 하늘과 땅차이였죠. 아름답기는커녕 사는 게 너무 따분하고 지루해서 견딜 수 없다는투였어요. 늘 비가 내리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 같았어요. 그치지 않고 내리는비 때문에 사람들의 눈동자엔 웅덩이가 고이고, 그래서 세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던 거죠. 결국 인간의 운명이란 게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와 다를 바가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인간들도 어항 속 물고기처럼 발버둥 치면서 살다가 언젠가 죽고 말겠죠. 저 푸르스름한 유리 벽 반대편엔 전혀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어요. 거기는 모든 게 다 아름답고 고상할 뿐 아니라 흥에 겨워 노래가 절로 나오는 그런 곳이죠. 여기와는 전혀 달라요. 모든 게 다양하고활기가 가득해요. 거기선 새로운 존재들, 우리 인간보다 훨씬 더 완벽한 존재들이 아름다운 육체를 뽐내며 부드러운 대기 속으로 솟아오르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런 말도 덧붙였다. "다 쓸데없는 짓이에요.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어요." - P146

중남미 현대문학의 선구자인 로베르토 아를트는 1900년대 초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배경으로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그려낸다. 그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리고 여기에는 항상 <돈>이라는 현실 논리가 결합되어 있다. 이렇게 아를트는 지극히 현실적인 요소와 형이상학적인 요소를 병치하여 그틈으로부터 나오는 실존의 의미와 존재의 조건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작품해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 / 비채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행복에 있어서 수수께끼란 없다.
불행한 이들은 모두 똑같다. 오래전부터 그들을 괴롭혀온 상처와거절된 소원, 자존심을 짓밟힌 마음의 상처가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다가 경멸로 인해, 더 심각하게는 무관심으로 인해 꺼져버린 사랑의재가 되어 불행한 이들에게 달라붙어 있다. 아니, 그들이 이런 것들에달라붙어 있다. 그리하여 불행한 이들은 수익처럼 자신들을 감싸는과거의 그림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행복한 이는 뒤돌아보지않는다. 앞을 바라보지도 않고, 다만 현재를 산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곤란한 점이 있다. 현재가 결코 가져다주지 않는 게 하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의미다. 행복해지는 방법과 의미를얻는 방법은 다르다.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순간을 살아야 한다. 단지순간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의미를, 꿈과 비밀과 인생에대한 의미를 얻고 싶다면, 아무리 어둡더라도 과거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하며, 아무리 불확실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연은 행복과 의미를 우리 앞에 대롱대롱 흔들어대며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다그친다. - P10

인간은 가장현실적이지 못한 것을 가장 좋아하게 마련이다. 의학은 내게 현실을상징했다. 의대에 가기 전에 내가 했던 일들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고, 모든게 놀이였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죽어야 죽어야 하는 것이다. 당신의 아들들에게 현실의 세상을 열어주기 위해서. - P1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석세스 에이징 - 노화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뇌과학의 힘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이은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유전자가 머리색, 피부색, 키와 같은 신체 특질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전자는 자신감, 동정심을 느끼는 경향, 정서적 다양성과 같은 정신 및 성격 특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 살배기 아기들이 모여있는 곳을 관찰해보면 어떤 아이는 유난히 차분하고 어떤 아이는 남달리 독립심이 강하며, 어떤 아이는 시끄럽고 어떤 아이는 조용하듯이 그 차이가뚜렷하게 드러난다. 자녀가 둘 이상인 부모들은 자녀들의 성격이 처음부터다르다는 사실에 놀란다. 나는 유전자가 특질에 영향을 미친다‘고 신중하게 언급했다. 이는 유전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어떤 사람이 될지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유전자는 성격이 형성되는 방식을 분명히 제약하고 제한한다. 유전학은 칙령이 아니다. 유전자에 영향받은 특질은 문화와 기회가 도사리고 있는 종잡을 수 없는 구불구불한 길을 여전히 헤쳐나가야 한다. 복잡한 특질은 어떤 하나의 유전자에서는 물론이고 대규모 유전자 집합에서도 예측할 수 없는 출현 속성emergentproperties (개별 구성 요소에는 없지만 그 구성 요소들로 이뤄진 전체 구조에는 나타나는 속성-옮긴이)으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 유전자가 오랜 기간에 걸쳐 발현되는 방식은 사회적 현실로서 특질 발달에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 P41

유전자는 가장 대략적인 사항만 설정한 인생 대본을 준다. 우리는 그대본을 바탕으로 즉흥 연기를 펼칠 수 있다. 문화와 기회, 환경은 우리가 대본을 해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일단 우리가 대본 해석을 마치면 그 대본은 다른사람들이 우리에게 반응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그런 반응이 우리 뇌의 신경 배선과 화학 반응을 바꿀수 있고, 이런 변화는 우리가 미래에 발생할 사건에 반응하는 방식과 어떤유전자를 활성화하고 정지시킬지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단계별로 복잡성이 증가한다. - P43

다른 사람을 잘못 판단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분명한 일은 바로 동정심 발휘, 즉 누군가의 행동을 특질 탓으로 돌리는 당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이다. 실제로 이는 사회심리학과 달라이 라마Dalai Lama 가르침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핵심 원칙이다. 달라이 라마는 동정심은 행복해지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고 우리 행복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로 정해집니다."라고 말한다. 달라이 라마는 이런 성향이 인류의 생물학적 특징, 모든 영장류에게 사회적 상호 관계가 지니는 중요성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그는 분노와 의혹, 불신같은 감정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끈기와 관용, 동정심을 실천하고자애쓴다. 또한 자기 자신이 특권을 가지고 있다거나 특별하다는 생각을 회피하며, 이런 노력이 행복을 크게 증진한다. - P72

동정하는 태도와 관점은 스트레스 감소와도 관련이 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선택하거나 적어도 그 방법을 학습할 수 있으며 이것이우리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 HPA axis은 코르티솔을 비롯한 스트레스 호르몬(글루코코르티코이드) 분비를 조절하는 내분비계다.
고농도 글루코코르티코이드에 노출되면 노화 중인 해마에 특히 해로울 수있다. 이는 학습 및 기억 감퇴와 관련된다. 심리 치료가 특히 큰 효과를 발휘하는 분야 중에서 스트레스 감소는 우리가 전반적인 건강 증진을 위해 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도가 지나쳐서는 안 된다. 스트레스 감소가 지나치면 낙관주의가 지나칠 때처럼 중대한 건강 문제를 무시하거나업무나 사회적 접촉에 의욕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적당한 수준으로 받아야 운동하고, 잘 먹으며, 친구를 사귀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정신건강을 풍요롭게 해야겠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 P73

기억은 정말로 많은 조각이 사라진 퍼즐처럼 보일 수 있다. 모든 조각을 떠올리는 경우는 드물고, 우리 뇌는 빠진 정보를 경험과 패턴 매칭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추측으로 메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불운한 잘못된 기억이만들어지고 대개 우리가 기억을 정확하게 떠올리고 있다는 고집스러운 확신까지 뒤따른다. 우리는 이 같은 부정확한 기억을 고수하고 기억 장치에부정확하게 저장하다가 여전히 부정확한 형태로 다시 떠올리면서 그 기억이 정확하다는 한층 더 강한 동시에 부적절한 확신까지 더한다.  - P77

뇌에서 기억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억을 불러오자마자 그 기억은 텍스트 문서와 마찬가지로 편집할 수 있다. 떠오른 기억은 불안정한상태가 되고 당신이 의도하거나 동의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고쳐쓸 수 있다. 주로 기억은 회상할 때 덧칠한 새로운 정보로 다시 작성되고, 당신이 의식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그 새로운 정보가 원래 기억과고르게 맞물려 저장된다. 이 과정은 뇌에 저장된 원래 기억이 뒤이은 해석과 인상, 회상으로 대체될 때까지 몇 번이고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다.
- P93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모두가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지혜는동기, 정서, 인지 경험을 결합하고, 난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며, 타인과 의미 있는 상호 작용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지혜는 주로 지적인 자질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정서적인 성숙과 우리를 움직이는 동기 변화에크게 좌우된다. 나이가 들면 뇌에서 수많은 다양한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의 기능 변화가 일어나면서 정서와 동기에도 변화가 발생한다.
누구에게나 결점은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지혜로운 일과 어리석은 일을 모두 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지혜란 지혜로운 행동을 어리석은 행동보다 더 많이 하는 지점에 이르고, 자기 자신이나 다른사람들이 얽히는 상황에서 바람직한 결과를 유도할 수 있는 관점으로 문제와 결정을 검토하는 위치에 있는 경지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혜는 함양하고 배울 수 있다. 지혜의 전조라고 할 수 있는 공감과 감정 조절, 비판적 사고는 어릴 때부터 형성하고 명확하게 배울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지능과 지혜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이를 다른 사람들을 돕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발전시키겠다는 더높은 이상을 달성하고자 노력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제인 구달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많은 젊은이들을 모집하는 것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동기라고 말한다. - P230

벌레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생존 회로는 특정한 뇌 반응과 신체 반응의
"우선순위를 높이도록 하는 동시에 다른 회로와 행동을 억제한다. 뇌와 몸이각성할 때 주의는 관련 환경 자극과 내부 자극에 집중하고, 동기 체계가 관여하며, 행동을 하고, 학습이 일어나고, 기억이 형성된다. 생존 혹은 동기 뇌회로가 활성 상태라고 의식적으로 감지하거나 신체 상태에 변화를 감지할때 우리가 정서나 감정이라고 부르는 것이 발생한다. 놀랍게도 그다음에 우리 의식이 이 상태를 평가하고 명명한다.
21-191 - P234

반추하는 사람은 잘못된 일과 그 일의 원인 및 결과를 끊임없이 계속 집중해서 생각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그들은 자기 방에 스스로를 가둔다. 내내침대에 누워서 최악의 미래 상황을 상상한다. 누구나 정도는 다르지만 이런경향을 나타낸다. 부정적인 경험을 한 뒤에 바깥세상과 단절하고 틀어박히는 것은 진화상 적응 행동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치유하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생산적으로 심사숙고할 시간을 확보함으로써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행동 패턴을 피하거나 수정할 수 있다. 또한 그런 반추 과정에서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어느 정도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분비되는 신경화학물질 프로락틴prolactin은 마음을 진정하고 달랜다. 이는 수유할 때 어머니와 아기가 분비하는 호르몬이기도 하다. - P256

도전에 직면했을 때 자신이 고착 마음가짐으로 반응하지 않는지 경계하라. 지나치게 우려하거나 머릿속에서 도망가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가? 무능하다거나 패배했다고 느끼는가? 변명거리를 찾는가? 비판이 고착 마음가짐을 끌어내지 않는지 주시하라. 사람들의 반응에서 배울 점을 찾아내는 대신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화를 내거나 움츠러드는가? 당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일을 당신보다 잘하는 사람을 봤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주시하라. 부럽고 절박한 느낌이 드는가, 아니면 배우고자 하는 의욕에 넘치는가? 그런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그것을 통해서 노력하라. 그리고 계속해서 그것과 함께, 그것을 통해서 노력하라 - P270

통증은 정서와 인지 기능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쳐서 우리가 나쁘거나 초조한 기분을 느끼도록 하고, 주의력과 기억력, 의사 결정력을 악화시킬 수있다. 반대로 부정적인 정서 상태가 통증 증가를 유발할 수 있고 긍정적인정서 상태가 통증을 줄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인지 평가가 통증 증가나감소를 유발할 수 있다. 뇌는 인지와 정서, 통증이 모두 양방향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배선돼 있다. - P322

나아가 체화된 인지 관점은 우리 인지 능력과 지각 능력은 정적인 자질이아니라 환경과 유익하고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어릴 때우리는 모래밭에서 놀고 정글짐에서 노는 등 환경과 상호 작용함으로써 환경에 대한 주체성과 통제감을 획득한다. 환경과 상호 작용이 줄어든다면 우리는 그런 주체성과 통제감을 잃을 수 있다. 또한 환경에 대처하는 능력에대한 동기 및 자신감 상실로 이어지면서 나락으로 빠져들 수 있다. 이는 환경과 상호 작용 감소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세 가지 신체 변화를 이미 경험하고 있는 노인에게 특히 큰 문제다. 첫째는 신경 전송 속도의 전반적인 감소, 신경 전도도 저하, 손과 눈의 협응 감소에서 비롯되는 손놀림 둔화다. 둘째는 소외와 외로움에서 비롯될 수 있는 동기 감소다. 셋째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는 데서 얻는 기쁨과 즐거움의 감소다. 이는 어느 정도 뇌의 보상화학 신호 경로인 도파민 분비와 흡수 감소에서 비롯된다. - P418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12-31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몽이엉덩이 2025-12-31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감사합니다
님도 오늘 밤 좋은 꿈꾸시고 건강한 한해 되세요.
 
오르부아르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베르와 에두아르가 앙리에게 거대한 복수를 해 주기를 원했지만 결말은 부조리한 사회에 개인적인 복수보다 큰 한방을 먹이는 것으로 끝난다.
끝이 매우 아쉽다.

페리쿠르 씨는눈과 귀를 닫아 버렸다.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왜 딸애는 다른 남자가 아닌 하필 이자와 결혼했단 말인가? 이것은그에게는 전적인 수수께끼였다. 그는 자기 아들의 삶에 대해서도, 죽음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은 자기 딸의 삶에 대해서도, 그녀의 결혼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이해할 수 없었다. 공동묘지 경비원은 오른팔이 없었다. 그와마주치며 페리쿠르 씨는 생각했다. 난 마음이 불구자야…………….
- P223

모든 이야기는 그 끝에 이르러야 한다. 그것이 삶의 본질이다. 심지어는 비극적일지라도, 심지어는 견딜 수 없는 것일지라도, 심지어는 우스꽝스러운 것일지라도 모든 것에는 끝이있어야 하는 법이거늘, 아버지와는 아직 끝이 없었다. 그들은원수로 헤어진 후에 다시 보지 못했다. 하나는 죽었고, 다른 하나는 죽지 않았지만, 둘 중 누구도 아직 <마지막〉이란 말을 하지 않았다. - P5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