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엘스티르의 작품과 대화를 통해 한 단계 성장하는 마르셀과 바닷가의 소녀들에게서 느끼는 사랑스런 감정 표현들이 웃음짓게 한다.

해돋이는 삶은 달걀이나 그림이 든 신문, 카드놀이, 또는 배들이 아무리 애를써도 좀처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강물처럼 긴 여행의 동반자다. 어느 순간 내가 잠이 들었는지 확인해 보려고 조금 전 내 정신을 가득 채웠던 생각들을 열거해 보려 했을 때(또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한 불확실성조차 긍정적인 대답을 주려 했을 때 나는 차창 너머 작은 검은 숲 위로 부드러운 솜털 같은 부분이 장밋빛으로 고정되어 꼼짝하지 않는깊게 파인 구름을 보았는데, 그 빛을 흡수하여 물들인 날개의깃털이나 화가의 충동적인 몸짓이 칠해 놓은 파스텔처럼 변하지 않을 장밋빛이었다. 하지만 난 이 빛깔이 무기력하거나 변덕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필연성이자 삶 자체인 듯 느껴졌다. 이내이 빛깔 뒤로 빛의 공간이 몰려왔다. 그러자 빛깔은 더욱 선명해졌고 하늘은 살구색으로 변했다. - P31

그러나 엘스티르의 작품은 자연이 시적인 상태로 있는 드문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금이 순간 엘스티르 옆에 있는 바다 풍경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은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땅과 바다를 비교하면서 그 사이에 놓인 모든 경계를 삭제하는 은유였다. 동일한 캔버스에서 암묵적으로 끈질기게 반복되는 이러한 비교가 화폭에 다양한 형태의 강력한 통일을 부여했으며, 이 통일성이야말로 바로 그의 그림이 몇몇 애호가들에게 불러일으키는 열광의 원인이었는데, 그들 자신도 아직 명확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 P324

 "젊은 시절 어느 한때는 생각만해도 불쾌해져서 할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은 말을 하고 그런삶을 경험하는 법이라네. 하지만 그런 사실을 그렇게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게, 현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능한 일이라면,이 마지막 화신에 앞서 어리석고 추악한 단계를 모두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지. 나는 명문가 출신 자손으로 중학교 시절부터 가정교사에게 정신의 고결함과 도덕적인 정중한 태도를교육받은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아네. 아마도 그들 삶에는 버릴 게 하나도 없으며, 그들이 말한 모든 걸 책으로 발표하거나 서명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교조주의자의 무력한 후손들로서 그들의 정신은 더없이 초라하고 그 지혜는부정적이며 불모의 것이라네. 지혜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 그 누구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고, 면제해 줄 수 없는 여정을 통해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라네. 지혜란 사물을 보는 하나의 관점이기 때문이지. 자네가 감탄하는 삶, 고상하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집안 가장이나 가정교사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 삶의 주변을 지배하는 악덕이나 평범한 것의 영향을 받아 아주 상이한 출발점에서 만들어진 거라네. - P368

이처럼 우리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첫번째 시각의 오류를 깨달은 후에야 한 존재에 대한 정확한인식에 만약 이런 인식이 가능하다면 도달한다. 그러나 정확한 인식은 사실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 대한 우리 시각이 수정되는 동안, 그 사람 자신도 무기력한 대상이 아닌 이상 변하기 마련이므로, 그를 포착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며, 마침내 그 모습을 보다분명히 보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우리가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고 믿은 그 이미지는 단지 예전에 포착했던 옛 이미지들에지나지 않으므로 더 이상 그를 나타내주지 못한다.
- P383

청소년기는 완전한 응고가 진행되기 전이라, 소녀들 곁에 있을때면 그 불안정한 대립 속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희하는 형태가 주는 광경에 상쾌함을 느끼게 되고, 이대립은 우리가 바다앞에서 관조하듯, 자연의 기본 원소들이 끊임없이 재창조되는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 P4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유냐 존재냐 까치글방 114
에리히 프롬 지음, 차경아 옮김 / 까치 / 199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소유하는 삶을 살지, 존재하는 인간으로 살지 나는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

"소유적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에 의존하는 반면, "존재적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 기탄없이 응답할용기만 지니면 새로운 무엇이 탄생하리라는 사실에 자신을 맡긴다.
그는 자기가 가진 것을 고수하려고 전전긍긍하느라 거리끼는 일이없기 때문에 대화에 활기를 가지고 임한다. 그의 활기가 전염되어대화의 상대방도 흔히 자기 중심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  - P59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은 나의 자아이다. 자아는 많은 것을 포괄한다. 자신의 육체, 이름, 사회적 지위, 소유물(지식을 포함한), 그리고 스스로 품고 있고 타인에게 과시하고 싶은자신의 이미지 등. 우리의 자아는 지식이나 능력 같은 실질적 자질과, 실재하는 핵심의 언저리에 우리가 쌓는 허구적 자질의 혼합물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점은 자아가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느냐 하는 점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각기 소유물로 느낀다는점, 그리고 그 "사물"이 우리 자신을 확인하는 경험적 토대가 되고있다는 점이다. - P108

궁극적으로 "나(주체)는 무엇(객체)을 가지고 있다"는 진술은 객체를 소유하고 있음을 빌려서 나의 자아를 정의하고 있다. 나자신이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주체이다. 나의소유물이 나와 나의 실체의 근거가 된다. "나는 나이다"라는 진술의토대가 되는 생각은 "나는 X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나이다"이다.
여기서 X는 내가 영속적으로 소유하며 지배할 수 있는 힘에 의해서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자연의 사물과 인간이다. - P116

존재적 실존양식의 전제조건은 독립과 자유 그리고 비판적 이성을지니는 것이다. 그 가장 본질적 특성은 능동성이다. 여기서 능동성이라고 함은 겉으로 보기에 바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힘을 생산적으로 사용한다는 의미에서의 내면적 활동상태를 뜻한다.
이 활동상태는 인간에게 주어진 소질과 재능 -- 타고난 정도는 다르지만-- 천부적으로 갖추어진 풍요로운 인간적 재능의 표출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새롭게 하는 것, 자기를 성장시키고 흐르게 하며 사랑하는 것, 고립된 자아의 감옥을 초극하며,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이며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 P130

이 고찰들은 인간의 내부에는 두 가지 성향이 있다는 결론을 허용한다. 그 하나는 소유하고자 하는, 자기 것으로 하려는 성향으로서궁극적으로 살아남고자 하는 생물학적 소망에서 뻗어나온 힘이다.
다른 하나는 존재하고자 하는, 나누어가지고 베풀고 희생하려는 성향으로서 인간실존의 특유의 조건에서, 특히 타자와 하나가 됨으로써자신이 고립을 극복하려는 타고난 욕구에서 나온 성향이다. 모든 인간의 내부에는 이 두 가지 상반된 성향이 있으므로 사회의 구조와가치, 그리고 규범은 두 가능성 중에서 어느 한쪽을 우세한 것으로보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소유지향, 즉 소유적 실존양식을 조장하는사회는 인간의 전자의 잠재성에 근거하며, 존재와 나눔을 장려하는사회는 인간의 후자의 잠재성에 근거한다. 우리는 이 두 잠재성 가운데 어느 것을 개발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며, 아울러 우리의 결정은그 어느 한쪽 성향으로의 해결을 조장하는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구조에 상당 부분 달려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 P15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의 꽃 민음사 세계시인선 1
보들레르 지음, 김붕구 옮김 / 민음사 / 197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알바트로스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지치는 배를 시름없는
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해조를

바닥 위에 내려놓자, 이 창공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스런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놋대처럼
가소 가련하게도 질질 끄는구나.


이 날개 달린 항해자가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들볶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날던 불구자 흉내낸다!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 P18

원수

내 청춘 한갓 캄캄한 뇌우였을 뿐
여기저기 눈부신 햇살이 뚫고 비쳤네.
천둥과 비가 하도 휘몰아쳐내 정원에는
빠알간 열매 몇 안 남았네.


나 지금 사상(思想)의 가을"에 닿았으니,
삽과 갈퀴 들고 다시 긁어 모아야지,
홍수가 지나며 묘혈처럼 곳곳이
커다란 웅덩이를 놓았으니.


누가 알리, 내가 꿈꾸는 새로운 꽃들이
모래톱처럼 씻긴 이 흙 속에서 
활력이 될 신비의 양분을 얻을지를?

---오 괴로워라! 괴로워라! <시간>은
생명을 파먹고, 심장을 갉는 정체모를 <원수>는
우리 흘리는 피로 자라며 강ㄷ거해지는구나! - P24

인간과 바다


자유인이여, 언제나 너는 바다를 사랑하리!
바다는 네 거울이니 너는 그 파도의
끝없는 전개 속에 네 넋을 관조하노니
네 마음 또한 그보다 덜 쓰지 않도다.


너는 즐겨 네 영상 품안으로 뛰어나니
눈과 팔로 그것을 포옹하며 네 가슴은
그 길들일 수 없는 이성의 비판소리에
때로 자신의 들끓음을 잊는구나.


그대들 둘이 모두 침침하고 조심스러워,
인간이여, 아무도 네 심연 바닥을 측량 못했고
오 바다여, 아무도 네 속의 재보를 모르나니,
그토록 그대들 악착스럽게 비밀을 지키는구나.


그런데도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두고
그대들은 무자비하고 가책없이 서로 싸우니,
그토록 살육과 죽음을 사랑하는가
오 영원의 투사들 어쩔 수 없는 형제여 - P30

흡혈귀

신음하는 내 가슴에
비수의 일격처럼 박힌 너.
마귀떼처럼 억센 것이,
치장하고 지랄스럽게 와서,


내 정신을 네 잠자리
네 영지로 만드는 너.
중죄수가 사슬에 매이듯이
내가 매어 있는 더러운 계집아,


끈질긴 도박꾼이 도박에 매이듯,
술주정뱅이 술병에 매이듯,
구더기에 썩을 짐승 시체가 매이듯,
- 망할 년, 망할년아!

날쌘 검의 일격이 내 자유를
전취해 주도록 나는 빌었고
믿지 못할 독약에게 내 비겁함을
구해달라고 나는 말했지

오호라! 독약과 검은
나를 멸시하여 말했어----
[저주받은 노예생활에서
널 끌어낼 보람도 없어]

[머저리야 ----만약 우리 애써
널 그년 질곡에서 해방시킨다면,
네 입맞춤으로 네 흡혈귀의
송장을 되살려놓을 게다]

- P60

음울

오랜 권태에 사로잡혀 신음하는 마음 위에
무겁게 내리덮인 하늘이 뚜껑처럼 짓누르며,
지평선의 틀을 죄어 껴안고, 밤보다도 더욱
처량한 어두운 낮을 우리에게 내리부을 때.


대지가 온통 축축한 토굴감옥으로 변하고
거기서 <희망>은 박쥐처럼 겁먹은 날개로
마냥 벽들을 두들기며, 썩은 천장에
머리를 이리저리 부딪치며 떠돌 때,


내리는 비 광막한 빗발을 펼쳐
드넓은 감옥의 쇠격자처럼 둘러칠 때,
더러운 거미들이 벙어리떼를 지어
우리 뇌 속에 그물을 칠 때면


별안간 종들이 맹렬하게 터져 울리며
하늘을 향하여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니
흡사 고향을 잃고 떠도는 정령들이
끈질기게 울부짖기 시작하는 듯

---그러곤 북도 음악도 없는 긴 영구차 행렬이
내 넋 속을 느릿느릿 줄지어 가는구나
<희망>은 꺾여 눈물짓고 잔인 난폭한 <고뇌>가
내 푹 숙인 두개골 위에 검은 기를 꽂는다 - P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스타샤
조지수 지음 / 베아르피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민자로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조지.
어떤 삶의 목적도 의미없는 하루를 보내는 조지에게 온통 인생의 모든 것이 된 나스타샤를 만나 온전한 사랑을 펼치는 조지의 이야기.

우리 모두는 늙어간다. 정념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남은삶이 회상과 추억에 의해 아름다워질 때, 젊은 시절의 방황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준다. 어떤 느낌인가를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그 방황은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면 수많은 영혼들이 나에게 말을 건다. 나는 속삭인다.
"그렇다. 우리는 힘겨웠다. 모두가 무엇인가를 위해 애섰다. 그러나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했다는 것 - 이것들이 중요하다. - P173

나를 힘들게 한 것은 환상과 희망과 무지였다. 나는 무의미에서의미를 찾으려 하는 헛된 시도 가운데 불행했다. 누군가 가르쳐주었어야 했다. 삶이란 살아가고 있는 너 자신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구원은 없고 구원을 추구하는 너만 있을 뿐이라고 죽음은 없고 죽어가는 네가 있을 뿐이라고. 내가 이것을 이 우크라이나의 낯선 여자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이 여자는 절망을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폐허 위에서 새로운 건설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녀는 감당할수 있을까? 단지 건설을 위한 건설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노역을. - P265

나스타샤는 삶이 얼마만큼 소중할 수 있는가를 내게 가르쳐주었다. 나는 나스타샤를 사랑하게 되면서 삶이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내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렇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죽은 삶일 여러 가지가 있었다. 두근거림,열정, 충족,안타까움, 위안, 공감, 이해, 존경, 동정. 이러한 것들이 사랑을 통해나스타샤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나는 나스타샤를 통해 비로소물질에 대한 정신의 우위를 알게 되었다. 우리의 탄생이진흙으로부터라고 해도 생명과 사랑은 그 위에 불어진 숨결에 의한 것이었다.
나스타샤가 내 뺨에 숨결을 불어넣지 않았더라면 나는 단지 진흙 덩어리였을 것이다. 그 숨결은 기계에 흐르기 시작한 전류였다. 나스타샤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 나는 비로소 나의 무목적적인
발걸음이 생명을 얻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 P4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르셀 뒤샹 - 현대 미술의 혁명가 시공아트 52
닐 콕스 외 지음, 황보화 옮김 / 시공아트 / 200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회화를 넘어서서 현대미술의 혁명가인 마르셀 뒤샹을 알게 되어 기쁘다.
책을 읽다가 다음 페이지를 열었는데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 느낌이다.

<큰 유리>가 뒤샹의 반망막적 신념에 기반하여 여러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은 주요한 특징이 바로 원근법적 표현에 있다는 점에서 또한 매우 망막적이다. 원근법은 뒤샹이활용한 작품의 작동 체계의 하나로, <큰 유리>의 전체적인 개념적 구조를 밝혀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이다. 그는 원근법을 단일한 체계가 아닌 대안적 방식으로 사용했으며, 전혀 다른 종류의 질서 또는 구조를 서로 겹치고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활용했다.
뒤샹은 대부분의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폐기한 원근법을 회화적구성의 방법으로 도입했지만, 그것의 패턴을 체계화시키기보다는 교란시키는 방식으로 활용했다. 신부 영역은 언뜻 보기에 원근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독신자 영역은 시각적으로 원근법을 적용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상단부와 하단부의 불일치 자체가 강한 인상을 준다. 신부의 세계는 추상적이고 유기적이며 뚜렷한 형식이 없는 반면, 독신자들의 세계는 원근법에 의해 엄격하게 구성되어 있다. - P135

리처드 머트의 사례」는 그 당시에 뒤샹이 ‘레디메이드‘에 대해언급한 유일한 진술이었다.

6달러를 지불하는 모든 예술가는 전시할 수 있었다
리처드 머트 씨는 <샘>을 출품했다. 아무런 논의도 없이 그 작품은 사라졌고 전시되지 않았다. 머트 씨의 <샘>을 어떤 이유에서 거절한 것일까? - P157

1.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외설스럽고 저속하다고 보았다.
2.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표절이고 평범한 위생용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욕조가 외설스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머트 씨의 <샘> 역시 외설스럽지 않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것은 배관공의진열대에서 날마다 볼 수 있는 비품에 불과하다.
머트 씨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샘>을 제작했는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그는 일상적인 생활용품을 택하여 그것에 새로운 명칭과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고, 그것이 원래 지니고 있는 실용적 가치를 상실하는 장소에 그것을 갖다 놓았다. 결국 그는 이 오브제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 낸 것이다.
위생용품이라서 안 된다고? 한마디로 웃기는 말이다. 미국의 위생용품과 다리는 일찍이 미국이 생산한 유일한 예술 작품이다. - P158

두 번째 쟁점은 <샘>이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그것이 작품으로 갖게 되는 진정성의 문제다. 이는 레디메이드와 그것의 개념적 기반에 대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머트 씨는 세 가지 일을 했다. 그는 오브제를 선택했고, 그것에 새로운 명칭을 부여했으며(그것은 ‘샘‘이라고 불리면서 장식적인 스타일의 기념비적 오브제가 되었다. 더욱이 변기를 뒤집어 놓음으로써 이론적으로 액체는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샘솟는 것이된다), 그것에 새로운 관점(혹자는 원근법으로 보기도 한다)을 부여했다. 변기가 창조적이거나 독창적이지 않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으로, 사설에서 제기했듯이 변기의 실용적 기능을 제거하고 그것의 환경을 완전히변경함으로써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 것이다.
- P159

레디메이드의 다양한 위장 속에 숨은 개념이 세 개 있다. 첫째, 창작 과정에서 개념과 손재주 그리고 우연하게 등장한 요소의 역할 등예술 창작의 본성으로 가정되는 것들에 대한 도전이 있다. 둘째, 예술로서 중요성을 부여받는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와 예술 제도의 역할을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셋째, 산업적으로 대량생산, 따라서익명으로 생산될 수밖에 없는 것을 ‘욕망의 오브제‘로 제시하고 싶은열망이 있다.
레디메이드는 대량생산된 산업이자 동시에 예술가 개인의 유일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모순이다. 그것은 중요한 철학적 · 미학적 · 사회적 문제를 제기한다. 금세기에 와서 레디메이드는 예술 제도가 어떻게 예술 작품을 인정하고 분류하는가 하는 과정들을 재평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P190

대량생산된 상품 오브제와 무관심하고도 우연한 마주침이라는 개넘은 레디메이드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이다. 진열장 창안의 상품을냉담하게 구경만 하고 다니는 소비자의 행위는 재정적 성공이나 생존(즉 과소비나 바가지 쓰는 것을 피할 수 있는)뿐 아니라 쾌락과도 관련된다.
뒤샹이 레디메이드를 선택(소비)할 때 느끼는 무관심은, 소비자가자신을 잠정적 구입자로 이용하려는 판매자의 욕망 또는 실현 불가능한 욕망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태도에 대한 모방일 수 있다.
뒤샹은 레디메이드와 노트에서 표현된 상품 오브제의 만남을 통해 ‘예술과 ‘상품‘ 사이의 모순, 즉 미학과 상품 가치가 전적으로 반대 지점에 있다고 가장하는 전통적인 위선을 들춰내고자 했다. - P199

그러나 한번에 오직 한 명의 관람자만이 이 작품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예술 작품을 보기가 가진 사적 소유의 본성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거나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주어진 것>을 관람하는 경험 방식은 유일하다. 어떠한 기술적 방법도 문에 뚫린 구멍을통한 물리적 만남을 대체할 수 없다. <주어진 것>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것, 말 그대로 한 번에 안과 밖을 사진으로 찍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전체적인 하나로 존재하지만, 그것을 관람하는 것은 연속적인 행위다. 우리는 하나를 보고, 두 구멍을 통해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 P25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