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꽃 민음사 세계시인선 1
보들레르 지음, 김붕구 옮김 / 민음사 / 197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알바트로스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지치는 배를 시름없는
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해조를

바닥 위에 내려놓자, 이 창공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스런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놋대처럼
가소 가련하게도 질질 끄는구나.


이 날개 달린 항해자가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들볶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날던 불구자 흉내낸다!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 P18

원수

내 청춘 한갓 캄캄한 뇌우였을 뿐
여기저기 눈부신 햇살이 뚫고 비쳤네.
천둥과 비가 하도 휘몰아쳐내 정원에는
빠알간 열매 몇 안 남았네.


나 지금 사상(思想)의 가을"에 닿았으니,
삽과 갈퀴 들고 다시 긁어 모아야지,
홍수가 지나며 묘혈처럼 곳곳이
커다란 웅덩이를 놓았으니.


누가 알리, 내가 꿈꾸는 새로운 꽃들이
모래톱처럼 씻긴 이 흙 속에서 
활력이 될 신비의 양분을 얻을지를?

---오 괴로워라! 괴로워라! <시간>은
생명을 파먹고, 심장을 갉는 정체모를 <원수>는
우리 흘리는 피로 자라며 강ㄷ거해지는구나! - P24

인간과 바다


자유인이여, 언제나 너는 바다를 사랑하리!
바다는 네 거울이니 너는 그 파도의
끝없는 전개 속에 네 넋을 관조하노니
네 마음 또한 그보다 덜 쓰지 않도다.


너는 즐겨 네 영상 품안으로 뛰어나니
눈과 팔로 그것을 포옹하며 네 가슴은
그 길들일 수 없는 이성의 비판소리에
때로 자신의 들끓음을 잊는구나.


그대들 둘이 모두 침침하고 조심스러워,
인간이여, 아무도 네 심연 바닥을 측량 못했고
오 바다여, 아무도 네 속의 재보를 모르나니,
그토록 그대들 악착스럽게 비밀을 지키는구나.


그런데도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두고
그대들은 무자비하고 가책없이 서로 싸우니,
그토록 살육과 죽음을 사랑하는가
오 영원의 투사들 어쩔 수 없는 형제여 - P30

흡혈귀

신음하는 내 가슴에
비수의 일격처럼 박힌 너.
마귀떼처럼 억센 것이,
치장하고 지랄스럽게 와서,


내 정신을 네 잠자리
네 영지로 만드는 너.
중죄수가 사슬에 매이듯이
내가 매어 있는 더러운 계집아,


끈질긴 도박꾼이 도박에 매이듯,
술주정뱅이 술병에 매이듯,
구더기에 썩을 짐승 시체가 매이듯,
- 망할 년, 망할년아!

날쌘 검의 일격이 내 자유를
전취해 주도록 나는 빌었고
믿지 못할 독약에게 내 비겁함을
구해달라고 나는 말했지

오호라! 독약과 검은
나를 멸시하여 말했어----
[저주받은 노예생활에서
널 끌어낼 보람도 없어]

[머저리야 ----만약 우리 애써
널 그년 질곡에서 해방시킨다면,
네 입맞춤으로 네 흡혈귀의
송장을 되살려놓을 게다]

- P60

음울

오랜 권태에 사로잡혀 신음하는 마음 위에
무겁게 내리덮인 하늘이 뚜껑처럼 짓누르며,
지평선의 틀을 죄어 껴안고, 밤보다도 더욱
처량한 어두운 낮을 우리에게 내리부을 때.


대지가 온통 축축한 토굴감옥으로 변하고
거기서 <희망>은 박쥐처럼 겁먹은 날개로
마냥 벽들을 두들기며, 썩은 천장에
머리를 이리저리 부딪치며 떠돌 때,


내리는 비 광막한 빗발을 펼쳐
드넓은 감옥의 쇠격자처럼 둘러칠 때,
더러운 거미들이 벙어리떼를 지어
우리 뇌 속에 그물을 칠 때면


별안간 종들이 맹렬하게 터져 울리며
하늘을 향하여 무시무시한 고함을 지르니
흡사 고향을 잃고 떠도는 정령들이
끈질기게 울부짖기 시작하는 듯

---그러곤 북도 음악도 없는 긴 영구차 행렬이
내 넋 속을 느릿느릿 줄지어 가는구나
<희망>은 꺾여 눈물짓고 잔인 난폭한 <고뇌>가
내 푹 숙인 두개골 위에 검은 기를 꽂는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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