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허벅지 다나베 세이코 에세이 선집 1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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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을 좋아해서 읽게 된 그녀의 에세이인데 사실 초중반부 까지는 너무 별로라 어서 읽고 눈 앞에서 보이지 않게 중고책방에 팔아버려야겠다 생각했다. 읽는 내 시간이 아까울 정도? 그 이유라면 첫째 글의 분량이 짧고 소재가 음담패설이라 글에 별다른 깊이가 없다는 점, 둘째, 다나베 세이코가 1920년대 출신인 이상 그 시대의 보수적이고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벗어날 수 없어서 '이게 뭔소리래' 싶은 시대착오적 내용이 많다는 점. 그런데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역시 썩어도 준치, 기대보다 못하다 해도 유명작가는 유명작가군...싶었다. 객관적으로 좀 괜찮은 글이 후반부에 많이 실린 탓도 있고(역자가 인상 깊다고 언급한 글이 다 후반부에 실린 글이고 나 역시 동일하게 느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 글의 리듬에 좀 익숙해진 덕도 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글은 단행본으로 엮기 보다는 페이스북 같은 채널에 가볍게 농담하듯 올리면 더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을 그런 종류의 글이라고. 단행본으로 보자면 아무리 봐도 글이 날린다. 70년대 주간지에 연재한 글들을 모아두었다 하는데 그 시대엔 인터넷도 없고 SNS도 없었으니 이런 가벼운 글이 유통될 창구로는 주간지 정도가 제격이었을 것이다. 수십년 전의 글이 살아남아 이렇게 후대에게 읽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긴 하겠지만 역시나 SNS에서 가볍게 읽었더라면 더 깔깔거리고 어머 재미있어 했을 글들인데 무거운 책의 형태로 보자니 김이 샌다. 이 시리즈를 3권 정도로 출간할 예정이라 하던데 정말 괜찮은 글들만 고르고 골라 한 권으로 출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출판사 입장에서야 많이 찍고 많이 팔면 돈이 되겠지만 70년대의 글 전량을 있는 그대로 옮기다 보니 시대와의 불화 탓에 책의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내 서재에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한 권의 책으론 다소 밀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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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허벅지 다나베 세이코 에세이 선집 1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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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잘 변한다. 가정이라는 냉장고 안에 잘 넣어 둔다고 해도 잘 상하고 잘 변한다.

사실 가정과 육친이란 것 모두 성을 기반으로 성립된 관계인데, 막상 구성이 끝나기만 하면 그 성적인 부분이 완전히 배제돼버린다. 그 점이 참으로 이상하다.

옛날에는 침소사퇴식 같은 게 있지 않았습니까.
네, 알지요, 장군 혹은 영주의 부인은 서른을 넘기면 부군의 침소에 드는 것을 스스로 사퇴하고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간다는 거잖아요.

자신이 사는 집과 자신이 먹은 음식에 대한 뒷마무리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남자아이가 그런 것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면 나중에 큰일 못해요." 엄마 본인은 이런 불평을 늘어놓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큰일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대학에 들어가 일류 회사에 근무하는 것, 그래서 임원이 되는 것? 가만 보면 남자들이 한다는 그 큰일이라는 건 고작 돈벌이 아니면 전쟁에 우르르 끌려가는 것이다. 대항해시대는 이미 끝났다. 큰일을 여자가 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남자 혹은 여자라는 이유로 가정 수업에 대한 구별이 생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갓난아기처럼 손이 많이 가는 남자가 있다. 나는 아무리 귀여워도 이렇게 바보같은 남자는 사절이다. 빨래 하나 못하고 요리 또한 못해서 아내가 없으면 수염이 덥수룩해지고 주린 배와 분노를 부여잡으며 꾹 참는 것밖에 못하는 남자. 이런 남자는 무능한 바보라고 본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자 없으면 어떻게 먹고 사느냐고 말하는 여자도 똑같은 존재다. 남자 없으면 외로워서 못 산다고? 그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남자가 벌어다 주는 돈이 아니면 못 산다고 하는 여자도 난감하기로는 마찬가지다. 자기 힘으로 먹고 사는 것 또한 인간이 해야 할 뒷마무리일지도 모른다.

못 마신다고 해서 슬퍼하는 건 대인배가 아니지요. 대인배는 세끼 밥만 먹어도 취할 수 있답니다.

보통 오사카에서 장사꾼이라고 하면 칭찬이다. 장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인품이 좋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뭔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자신의 요구 또한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접점을 찾기 위해 밀고 당기기도 하고 한 발 물러나기도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험해 본 다음, 합의를 하지 못하더라도 바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럼 차나 한잔하실까요." 그렇게 차라도 한잔하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사전 조사를 다시 한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성격이나 습관까지 파악해 이렇게 제시하면 저렇게 말할 거라는 것을 예측한다. ...그만큼의 일이 진행되려면 실없는 이야기도 꽤 많이 해야 한다. 실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고객의 관심을 잃지 않으려면 역량이 필요하다. 역량은 인생 경험에서만 나온다. 그래서 오사카 사람은 그런 역량을 갖춘 남자와 여자를 보고 말한다."저 사람 장사꾼이로구먼." 반면에 역량이 없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월급쟁이야"라며 깎아내린다.

뭐라고 하시든 위로가 사랑으로 변화하는 일은 없습니다. 사랑은 언젠가 반드시 위로로 바뀌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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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와 영화감독의 스캔들을 보며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불륜을 안(못)한다는 수동적 액션만으로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한냥 뿌듯해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자기가 남편감 신붓감의 직장, 연봉, 부모노후대비정도, 맞벌이 가능여부, 육아휴직 가능일수 등을 꼼꼼히 따져 메이팅 상대를 찾는 것은 합법적인 결혼의 틀 안이라면 얼마든 성스럽고, 김민희가 다 필요없다 던지고 좋아하는 남자에게 가는 건 화냥년 부메랑 맞을 년 욕 얻어 먹을 일이란거다. 감독의 가정이 온전한 형태였다가 불륜으로 깨진거라면 그 비난에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겠지만 이미 경제공동체 외에 별다른 실체가 없었다는 관계에 왜그리 큰 의미를 두는지 모르겠다. 이 사건으로 얻어야 할 교훈은 유부남과 바람을 피지 말자가 아니라, commitment가 깨어진 배우자는 하루빨리 갖다 버릴 것, 경제적 독립 못한 상태라고 남편 같지도 않은 남편 붙잡고 살아봐야 말년에 더 험한 꼴 본다 정도 아닐까. 거짓으로 자유를 꾸미고 공허한 일탈로 자신의 삶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셀러브리티들도 있다. 하지만 김민희는 셀카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거나 자기연민에 젖어 피해자인척 하거나 영양가 없는 무리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시시한 짓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연기를 했고, 그냥 연기가 아니라 예술 수준의 연기를 했고, 그 연기는 뛰어남에 대해 객관적 인정을 받았다. 감독과 언젠가 헤어질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민희가 그걸로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의 가치는 그녀가 만나는 남자들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며, 일련의 스캔들과 이번 영화제 수상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지 할일 잘하고 시덥지 않은 대중의 고나리질은 쌩까는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인지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앞으로도 잘 살 것이다. 그리고 행복할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이 저년이 벌을 받아야 한다며 부들부들하지 말고 당신 몫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시라. 당신의 인생을 예술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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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수지 박람강기 프로젝트 8
모리 히로시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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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세로 수백억을 번 작가 모리 히로시는 사실 자기는 글 쓰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전문적인 작법 교습을 받아본 적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공하였는가? 그는 작가로서 돈을 벌기 위해서  1. 참신한 글(시장이 원하는 글)을 써라 2. 계속 써라 고 말한다. 나는 그의 소설은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지만 그가 말하는포인트를 이 에세이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방식과 그걸 글로 풀어내는 실행력이 아닐까 싶은데...우선 이 글만 하여도 단순히 '인세수입이 얼마나 되는가'에 대한 대중들의 말초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출판계가 돌아가는 비지니스 원리를 간략히 담고 있고 그에 더하여 자신의 작품관 직업관도 담고 있고 더 나아가서는 성공의 원리까지 간략히 전하고 있으니 실용서.자기계발서.에세이.자서전 등등의 성격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렇게나 온갖 분야를 가로지르는 지멋대로 성격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지라 좀 얼떨떨하기는 하였으나 우선 너무 재미있잖아! 역시 인세로 부자가 된 작가는 다르구나 싶었다.


사실 한국 출판계와 일본 출판계는 그냥 다른 세상이기 때문에 이 책에 담긴 작가의 수지타산 이야기가 한국독자에게 실용적 정보로서 기능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전자책 시장으로 가면 판매부수가 적어도 인세비율이 월등이 높아지기 때문에 작가로서 수입 측면에선 종이책 출판만큼 이익이 될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는 어느정도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작가도 아니고 일본인도 아닌 나에게 인세로 200억쯤 벌었다는 이야기는 판타지 소설 같았으며(...) 그런 비현실성 때문에 더 재미있었다. 인세로 10억쯤 번 한국작가가 작가로서의 생계에 대해 글을 썼다면 이렇게 재미지진 못했을 터... 자본주의 경제에선 사이즈가 중요한 법이다. 


그리고 모리 히로시가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에 대해 돈의 규모를 떠나서도 생각을 해보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소설을 쓰는 행위를 노동으로 정의하고, 노동으로 얼만큼의 돈을 벌 수 있을까 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하는 사고방식이 신선하다. 모리 히로시는 애초에 자신이 소설을 쓴 동기 자체가 부수입을 얻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소설을 쓴 시간과 책으로 얻는 인세수입을 계산하여 자신의 노동이 시급으론 한 천만원쯤 된다고 말하는데,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또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한 작가가 있었던가? 소설가의 에세이나 소설가의 작법에 대한 책이 넘쳐나지만 이런 접근으로 자신의 일을 바라본 작가는 없었다. 단순히 책을 팔기 위한 기교로서 돈돈 거리는게 아니라는 건 그의 글을 보면 잘 알수 있다.


"나는 내 작품이 만화로 제작되든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든 드라마로 제작되든 전혀 참견하지 않는다.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와 달라지더라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형편없는 작품으로 제작되었다고 해도 원작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원작은 더 재미있어라고 수군거리며 홍보해 줄지도 모른다."


돈도 간절히 바라고 구하는 사람이 모을 수 있다고...이 정도로 책을 팔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야 하는구나 생각하게 된다. 2차 창작으로 자신의 작품이 훼손될까봐 부들부들하는 구태의연한 작가들의 모습과는 180도 달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2. 한 인간으로서의 깊이있는 사유가 글 곳곳에 배어 있다. 요즘 에세이가 넘쳐나지만 진짜 내가 시간과 돈을 들여서 볼만한 깊이는 없어서 짜증이 팍 난 상태였는데 별 기대도 않은 이 책을 읽으며 그의 인사이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성공한 작가들은 대개 그런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에 돈을 쏟아부을 뿐, 일반적인 사치를 부릴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늘 남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목돈이 들어오면 나도 그런 호사를 누리고 싶다, 즉 남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조건이 그를 성공으로 이끄는 예가 많다. 그런 논리로 보자면 남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힘들다."


철도덕후인 그는 그래서 성공한 뒤 자기 집에 실제 사람이 탈 수 있는 철도를 만들어 기차를 타고 다닌다고 한다. 그 정도로 자신의 세계에 확신이 있어야 성공하는 것이다.



3. 쓸데 있는 소리를 한다. 뜬구름 잡듯 '꿈을 잃지 마세요!' '자신을 믿으세요!' 이딴 소리 안하고 정말로 작가로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와 전략에 대해 냉정하게 조언을 한다. 이책이 진정 실용서로서 가치를 가진다면 구체적인 인세 수입의 액수보다는 이런 조언의 유용성 때문일거라고 생각한다.


"출판이라는 영역의 문턱은 예전보다 훨씬 낮아지고 있지만, 많이 팔기는 그만큼 힘들어지고 있다. 책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있을 수는 없는 시절이다. 판매 부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늘려 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작가 스스로 궁리하여 전략을 세워야 한다. 출판사는 거기까지 생각해 주지 않는다. 그 사람보다 더 잘 팔리는 작가를 찾아내는 쪽이 더 쉽기 때문이다. "


"신인은 좌우지간 좋은 작품을 쉴 새 없이 발표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발표한 작품이 다음 작품에 대한 최고의 홍보가 된다. 이것 말고는 홍보할 길이 없다고 봐도 좋다. 따라서 첫 작업 때는 의뢰한 측이 기대한 것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건네줘야 한다. 가격에 걸맞지 않은 고품질의 작품을 만들어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홍보비라고 생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작품을 생산할 것, 그리고 마감을 지킬 것. 1년에 한 작품을 쓰는 식으로 느긋하게 창작해서는 설사 그 한 작품이 히트하더라도 금세 잊히고 말 것이다."


"소설가 지망생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첫 작품을 발표한 뒤 그 반응을 기다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일단 투고했으면 반응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등의 한가로운 짓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인터넷에 공개한 경우라도 반응 같은 걸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즉시 다음 작품을 집필해야 한다. 그것이 발표작에 대한최선의 지원 사격이기도 하다."



작년에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어느정도 비슷한 부분도 있다. 업으로서 소설가를 택했기 때문에 작품 자체의 퀄리티 뿐 아니라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도 동등하게 중요성을 부여하고 상당부분 기술한 반면 모리 히로시는 비지니스적인 전략에 더 집중한 느낌이고, 잘 팔리는 글을 쓰는 부분에 대해서는 '노하우'의 영역이라며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이는 다시 또 새로운 책을 내기 위한 세그멘테이션 전략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독자가 그렇게 느낀다는 건 모리 히로시가 이 책을 얼마나 잘 썼는지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지. 요즘 그렇고 그런 에세이에 물려 짜증이 난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에세이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참신했고 그냥 뭣보다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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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수지 박람강기 프로젝트 8
모리 히로시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신인은 좌우지간 좋은 작품을 쉴 새 없이 발표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발표한 작품이 다음 작품에 대한 최고의 홍보가 된다. 이것 말고는 홍보할 길이 없다고 봐도 좋다. 따라서 첫 작업 때는 의뢰한 측이 기대한 것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건네줘야 한다. 가격에 걸맞지 않은 고품질의 작품을 만들어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홍보비라고 생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작품을 생산할 것, 그리고 마감을 지킬 것. 1년에 한 작품을 쓰는 식으로 느긋하게 창작해서는 설사 그 한 작품이 히트하더라도 금세 잊히고 말 것이다.

나는 내 작품이 만화로 제작되든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든 드라마로 제작되든 전혀 참견하지 않는다.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와 달라지더라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형편없는 작품으로 제작되었다고 해도 원작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원작은 더 재미있어라고 수군거리며 홍보해 줄지도 모른다.

데뷔작이 20년을 두고 꾸준히 팔리는 것은 이 작품이 특별히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모리 히로시가 꾸준히 신작을 내 왔기 때문이다. 신작을 꾸준히 세상에 내보내면 서점 매대에 항상 신작이 진열되고 매체나 광고에도 꾸준히 이름이 등장한다. 신작을 읽어 보았지만 신통치 않았다. 그렇다면 잘 알려진 작품으로 하나 더 읽어 볼까, 하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작품 하나를 출간하고 그것이 충분히 팔릴 때까지 기다리는 태도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역시 신작을 꾸준히 내는 것이 작가라는 직업의 기본이라고 해도 좋다.

출판이라는 영역의 문턱은 예전보다 훨씬 낮아지고 있지만, 많이 팔기는 그만큼 힘들어지고 있다. 책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있을 수는 없는 시절이다. 판매 부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늘려 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작가 스스로 궁리하여 전략을 세워야 한다. 출판사는 거기까지 생각해 주지 않는다. 그 사람보다 더 잘 팔리는 작가를 찾아내는 쪽이 더 쉽기 때문이다.

모리 히로시의 작품이 영상화에 어울리지 않는 까닭은, 소설이라는 마이너 영역이기에 가능한 거라고 볼 수 있는 금기적 전개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윤리에 반하는 일,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일, 나아가 영문을 모르겠다, 종잡을 수 없는 부조리 괴이 영역이라도 소설이라면 가능하다. 마이너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것이다. 마이너이기에 그 새로움을 알아봐 줄 수 있고 일정한 팬이 따라 준다. 만화에서도 잡지에 따라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그러니 티브이나 영화는 더 많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 튀는 요소를 없애지 않을 수 없다. 누구에게나 광범위하게 사랑받는 내용, 보다 많은 사람이 납득할 만한 내용, 나아가 어디서도 불만이 나오기 힘든 내용으로 만들지 않으면 상품으로서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성공한 작가들) 대개 그런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에 돈을 쏘당부을 뿐, 일반적인 사치를 부릴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늘 남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목돈이 들어오면 나도 그런 호사를 누리고 싶다, 즉 남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조건이 그를 성공으로 이끄는 예가 많다. 그런 논리로 보자면 남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힘들다.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소설을 써서 자비로 출판하면 된다. 그러면 소설가가 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은 없다. 인터넷으로 잠깐만 알아보면 된다. 그래서는 프로 소설가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하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프로 소설가란 무엇인가 라는 개념이 문제가 된다. 집필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인가? 아니면 서점에서 책이 팔리고 있는 사람을 말할까?

이렇게 개념을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당찮은 짓이다. 소설가는 본인이 자처하면 소설가인 것이다. 명함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자기 직함 앞에 ‘프로‘라는 말을 덧붙이는 작가는 없다. 그것은 ‘일류‘라는 말을 덧붙이는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터무니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지망생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첫 작품을 발표한 뒤 그 반응을 기다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일단 투고했으면 반응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등의 한가로운 짓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인터넷에 공개한 경우라도 반응 같은 걸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즉시 다음 작품을 집필해야 한다. 그것이 발표작에 대한최선의 지원 사격이기도 하다.

발표 후 다소 반응은 있을 것이다. 그것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 부정적 반응에 낙담하지 않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긍정적 반응에 기고만장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 몇몇에게 칭찬을 받은들 그게 무슨 대수인가. 기분은 좋아지겠지만 얼른 잊어야 한다. 이런 조절을 못하면 프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분명히 말하지만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글을 맛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마 조만간 초등학생 작가도 등장하리라. 다만 몇 개 작품을 연달아 쓸 수 있는 사람은 글 좀 쓴다는 사람 중에서도 열에 하나 정도다. 데뷔한 뒤 10년 동안 줄기차게 쓸 수 있는 사람은 더욱 적다. 20년쯤 지나면 데뷔한 사람가운데 9할 이상이 사라진다 살아남는 것도 나름 혹독한 것이다.

작가로 살다 보면 도무지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고 한다. 나는 그런 걱정을 해 본 적이 없고 슬럼프를 겪어 본 적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소설 집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밥벌이니까 마지못해 쓰고 있을 뿐이다.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 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라 남들한테 자랑할 만한 직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좋아하니까 쓴다는 사람은 려정이 식었을 때 슬럼프에 빠진다. 자랑할 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ㅏㄴ과 비난을 받으면 의욕으 ㄹ잃는다. 그러니까 그런 감정적 동기만으로 버티면 언젠가 감정 때문에 글을 못 쓰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일이니까 쓴다는 사람은 슬럼프를 모른다. 글을 쓰면 쓴 만큼 돈을 벌 수 있다. 마음은 배반하지만 돈은 배반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수전노 같은 말본새로 들리겠지만, 정직하게 하는 말이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수전노가 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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