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수지 박람강기 프로젝트 8
모리 히로시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신인은 좌우지간 좋은 작품을 쉴 새 없이 발표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발표한 작품이 다음 작품에 대한 최고의 홍보가 된다. 이것 말고는 홍보할 길이 없다고 봐도 좋다. 따라서 첫 작업 때는 의뢰한 측이 기대한 것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건네줘야 한다. 가격에 걸맞지 않은 고품질의 작품을 만들어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홍보비라고 생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작품을 생산할 것, 그리고 마감을 지킬 것. 1년에 한 작품을 쓰는 식으로 느긋하게 창작해서는 설사 그 한 작품이 히트하더라도 금세 잊히고 말 것이다.

나는 내 작품이 만화로 제작되든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든 드라마로 제작되든 전혀 참견하지 않는다.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와 달라지더라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미지가 다르기 때문에 재미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정도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형편없는 작품으로 제작되었다고 해도 원작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원작은 더 재미있어라고 수군거리며 홍보해 줄지도 모른다.

데뷔작이 20년을 두고 꾸준히 팔리는 것은 이 작품이 특별히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모리 히로시가 꾸준히 신작을 내 왔기 때문이다. 신작을 꾸준히 세상에 내보내면 서점 매대에 항상 신작이 진열되고 매체나 광고에도 꾸준히 이름이 등장한다. 신작을 읽어 보았지만 신통치 않았다. 그렇다면 잘 알려진 작품으로 하나 더 읽어 볼까, 하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작품 하나를 출간하고 그것이 충분히 팔릴 때까지 기다리는 태도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역시 신작을 꾸준히 내는 것이 작가라는 직업의 기본이라고 해도 좋다.

출판이라는 영역의 문턱은 예전보다 훨씬 낮아지고 있지만, 많이 팔기는 그만큼 힘들어지고 있다. 책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있을 수는 없는 시절이다. 판매 부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늘려 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작가 스스로 궁리하여 전략을 세워야 한다. 출판사는 거기까지 생각해 주지 않는다. 그 사람보다 더 잘 팔리는 작가를 찾아내는 쪽이 더 쉽기 때문이다.

모리 히로시의 작품이 영상화에 어울리지 않는 까닭은, 소설이라는 마이너 영역이기에 가능한 거라고 볼 수 있는 금기적 전개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윤리에 반하는 일,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일, 나아가 영문을 모르겠다, 종잡을 수 없는 부조리 괴이 영역이라도 소설이라면 가능하다. 마이너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것이다. 마이너이기에 그 새로움을 알아봐 줄 수 있고 일정한 팬이 따라 준다. 만화에서도 잡지에 따라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그러니 티브이나 영화는 더 많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 튀는 요소를 없애지 않을 수 없다. 누구에게나 광범위하게 사랑받는 내용, 보다 많은 사람이 납득할 만한 내용, 나아가 어디서도 불만이 나오기 힘든 내용으로 만들지 않으면 상품으로서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성공한 작가들) 대개 그런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에 돈을 쏘당부을 뿐, 일반적인 사치를 부릴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늘 남을 부러워한다. 그래서 목돈이 들어오면 나도 그런 호사를 누리고 싶다, 즉 남들에게 부러움을 사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조건이 그를 성공으로 이끄는 예가 많다. 그런 논리로 보자면 남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성공하기 힘들다.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소설을 써서 자비로 출판하면 된다. 그러면 소설가가 될 수 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은 없다. 인터넷으로 잠깐만 알아보면 된다. 그래서는 프로 소설가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하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프로 소설가란 무엇인가 라는 개념이 문제가 된다. 집필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의 여부인가? 아니면 서점에서 책이 팔리고 있는 사람을 말할까?

이렇게 개념을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당찮은 짓이다. 소설가는 본인이 자처하면 소설가인 것이다. 명함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자기 직함 앞에 ‘프로‘라는 말을 덧붙이는 작가는 없다. 그것은 ‘일류‘라는 말을 덧붙이는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터무니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소설가 지망생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첫 작품을 발표한 뒤 그 반응을 기다리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일단 투고했으면 반응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등의 한가로운 짓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인터넷에 공개한 경우라도 반응 같은 걸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즉시 다음 작품을 집필해야 한다. 그것이 발표작에 대한최선의 지원 사격이기도 하다.

발표 후 다소 반응은 있을 것이다. 그것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 부정적 반응에 낙담하지 않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긍정적 반응에 기고만장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 몇몇에게 칭찬을 받은들 그게 무슨 대수인가. 기분은 좋아지겠지만 얼른 잊어야 한다. 이런 조절을 못하면 프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분명히 말하지만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글을 맛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마 조만간 초등학생 작가도 등장하리라. 다만 몇 개 작품을 연달아 쓸 수 있는 사람은 글 좀 쓴다는 사람 중에서도 열에 하나 정도다. 데뷔한 뒤 10년 동안 줄기차게 쓸 수 있는 사람은 더욱 적다. 20년쯤 지나면 데뷔한 사람가운데 9할 이상이 사라진다 살아남는 것도 나름 혹독한 것이다.

작가로 살다 보면 도무지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고 한다. 나는 그런 걱정을 해 본 적이 없고 슬럼프를 겪어 본 적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소설 집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밥벌이니까 마지못해 쓰고 있을 뿐이다.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 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라 남들한테 자랑할 만한 직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좋아하니까 쓴다는 사람은 려정이 식었을 때 슬럼프에 빠진다. 자랑할 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ㅏㄴ과 비난을 받으면 의욕으 ㄹ잃는다. 그러니까 그런 감정적 동기만으로 버티면 언젠가 감정 때문에 글을 못 쓰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일이니까 쓴다는 사람은 슬럼프를 모른다. 글을 쓰면 쓴 만큼 돈을 벌 수 있다. 마음은 배반하지만 돈은 배반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수전노 같은 말본새로 들리겠지만, 정직하게 하는 말이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수전노가 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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