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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려고 하지 마라 - 퓰리처상 수상 작가의 유혹적인 글쓰기
메러디스 매런 엮음, 김희숙.윤승희 옮김 / 생각의길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저자는 저자가 아니라 '엮은이'로 표시되어 있다. 말 그대로 매러디스 매런이란 사람은 스무명의 미국 유명 작가들을 간략히 인터뷰해서 이 책을 엮어내었다. 한 책에 스무명이나 되는 작가의 인터뷰를 담으려니 인터뷰 내용이 짧을 수 밖에 없고 그 짧은 인터뷰에 딱히 인터뷰어의 통찰이나 직관이 담긴것도 아니라서 정말 그녀는 엮은이의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라이트하게 미국의 유명작가들이란 이런 경로로 글을 쓰고 이렇게 벌고 이런 생각을 하며 사는구나, 바자나 보그에 실린 유명인사들 인터뷰 보는 정도로 생각하고 읽으면 된다. 그 이상의 의미있는 무엇 - 잘 쓰려고 하지 마라는 식의 명료한 메시지-을 얻을 용도로는 적합하지 않다. 작법서는 더더욱 아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미국의 출판업계에서는 나름 잘 나간다, 자리를 잡았다 하는 전업 작가들이지만 한국 독자들이 한 번에 알만한 작가들은 별로 없다.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부를 팔았다, 수천만부를 팔았다 하는데 그들의 필모를 잘 보면 일단 양으로 많이 써낸 분들. 딱히 월드클래스 수준이 아니라도 저렇게 팔아치우는 걸 보면 영어로 쓰는게 깡패라는 깨달음이 온다.
책의 내용은 주로 그들이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와 작가론,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픈 말 등등인데 앞서 말했듯이 분량 자체가 적다보니 그렇게 깊이가 있지는 않다. 그리고 작가들의 커리어 패스가 너무도 제각각이다 보니 그들이 하는 조언이 상충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일년에 수억을 받는 직장을 때려치고 쓴 첫 책이 대박이 나서 고생따위 없이 커리어 전환을 한 작가는 '저질러라!' 식의 조언을 한다. 지금 다니는 그 직장 다니면서 써봐야 별 소득 없을거라는 이야기. 반면 육아를 하고 아이들 교육비를 벌기 위해 기술문서 작성등 글과 관련된 사이드잡을 여러개 하며 어렵게 어렵게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이어온 사람들은 반대의 조언을 한다. 밥벌이는 중요한 것이니 일단 먹고 살 방편을 생각하고 글을 쓰라고. 그러니, 이 책을 읽는 느낌은 명료한 제목과는 달리 그냥 아 이렇구나 저렇구나 남들의 생각을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제목을 보고 너무 큰 기대(?)를 하지는 마시길.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첫째, 미국식 작가 양성 과정. 대부분의 작가들이 대학에서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든 다양한 작가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수련하고 데뷔를 한다. 신춘문예로 대표되는 한국식 데뷔의례와는 다르다. 신인작가들이 유능한 에이전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둘째, 미국에서도 여성작가들의 커리어 잇기는 정말 힘들구나 하는 깨달음. 주로 자리를 잡은 나이가 있는 5670년생 작가들 이야기라 그런지 이 책에 나오는 여성작가들 대부분이 기혼인데 그들이 들려주는 애를 키우며 글을 쓰는 노력은 정말 눈물겹다. 책상 옆에 가두리를 치기도 하고 옷장 안에 책상을 넣은 다음 옷장 안에서 글을 쓰기도 한다. 남성 작가들의 인터뷰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 요즘 세대는 다를거 같지만 바로 직전 세대까지만 해도, 그 잘난 미국에서도 여자들은 이렇게 글을 써왔구나 하는 애틋함. 셋째, 미국에서 전업작가들은 대충 어떤 삶을 사는가 하는 흥미로운 구경. 정말 대박작가들이 편하게 하는 소리와 이름은 좀 유명하지만 아직도 겨우 밥먹고 사는 작가들의 이야기는 그 결이 달라서 그런지 굳이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인터뷰에서 느껴진다. 한국과는 상황이 다르기에 미국에서 작가로 사는 삶이 어떤것인지 대충이나마 그 다른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다소 어색한 번역, 그리고 각 작가의 인터뷰마다 그 작가의 책에서 한 문단 정도를 따와서 밑줄긋기 하듯 써놓았는데...그게 원문으로 보면 의미가 있겠지만 그저그런 번역으로 실려있다보니 읽어봐야 별 감흥 없는 쓸데없는 부분이 되고 말았다. 원문도 같이 병기를 해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고, 내용 자체가 그다지 어렵지 않기 때문에 원서로 읽어도 괜찮을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