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 로렌스의 정의에 따르면 그녀는 다른 사람, 다른 나라, 다른 연인 같은, '다른 것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낭만주의자였다.
그것은 랭보가 청춘시절"la vie est ailleurs(인생은 다른 곳에 있다)"라고 했던 말의 메아리와 같다.-9쪽
앨리스는 자신이 왜 이렇게 절망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행복이란 즐거운 상태가 아니라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하던 자신이 아닌가. 괜찮은 직장이 있고, 건강하고, 살 집이 있는 마당에 왜 주기적으로 아이처럼 울고 짜고 난리람?
불만이 있다면 자신이 타인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 뿐이었다. 지구상에서, 그리고 거기 사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 자신은 불필요한 존재 같았다.-13쪽
플라톤은 예술이란 삶을 모방하고자 분투하지만, 결국 실패할 뿐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예술가들은 이상 사회에서는 잉여 인간이었다. 로댕이나 클림트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들은 이미 존재하기에 재생산 될 필요가 없는 것들을 모방할 뿐이니까. 실제로 침대가 옆에 있는데 침대를 스케치 하는 게 무슨 소용있을까? 키스가 아주 흔한 마당에 무엇 하러 키스 장면을 영화로 찍는단 말인가?
오스카 와일드라면 정중하게 다른 의견을 주장했으리라. 지금은 진부해져 버렸지만 전설적인 그의 말에 의하면, 예술이 생활을 모방하는 게 아니고 생활이 예술을 모방한다. 이런 당황스러운 경구를 통해, 오스카 와일드는 무엇ㅇ르 말하려 했을까? 그것은 예술이 생활보다 나은 점이 있다는, 3차원적인 애인에게 받는 키스는 영화에서 보는 키스보다 판에 박은 듯 형편없다는 것이다. 와일드의 '낭만적인 미학'은 토니 같은 남자들에게 그녀가 내리는 판결문과 같았다. 토니는 사무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앨리스에게 키스했는데 토니의 입에서는 양파수프 냄새가 폴폴 났고, 행동거지는 오랜만에 돌아온 주인을 맞아 촐랑대는 개와 비슷했다.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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